까네님 리퀘 소설. 주군의 태양 패러디.
사람은 누구나 인생에 있어서 가장 극적인 순간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트라팔가 로우라는 인물의 26년의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은 무엇일까. 로우는 그 질문에 망설이지 않고 13년 전의 사고를 언급할 것이다. 그 불의의 사고는 트라팔가 로우라는 인물의 나름 평범했단 인상을 송두리째 빼앗아버린 원흉이라고 할 수 있으며 사고로 인해 로우는 3년간의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었고, 그 후 남들은 볼 수 없는 귀신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원치 않게 가지게 되었다. 그를 위해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원치 않은 능력이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원만한 대인관계와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던 로우는 귀신을 볼 수 있게 된 이후로 이 모든 행운을 잃게 되었으며 매일같이 귀신들에게 시달리는 일상을 보내게 되었다. 어떻게든 귀신을 보지 않기 위해 갖은 방법들을 찾아봤지만 성과가 전혀 없었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그 피해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 로우는 결국 폐쇄적인 성격이 되어 타인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고 혼자 밤을 지새우는 처지가 되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메말라가며 조금씩 기력을 빼앗기듯이 지쳐갔다. 이제는 익숙해질 때도 되었건만 매번 나타나는 귀신들은 사망 직후의 끔찍한 몰골로 예고 없이 로우의 눈앞에 나타나 심장을 들었다 놨다 하는 식이라 악질적인 장난이라고 생각될 지경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극복하려고, 무시하려고 애써 봐도 허공을 떠도는 그로테스크한 모습들은 비위를 뒤집어 놓기 충분했다.
10년 간 트라팔가 로우는 귀신들이 만들어내는 공포 속에서 떨었다. 물론 10년의 시간 속에서 로우가 무력하게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10년 동안 로우는 귀신들이 자신의 약한 모습을 쉽게 발견하고 거기에 자신을 얕보고 달려든다는 사실을 깨달게 되자 로우는 자신의 내면을 숨기는 방법을 익혀나갔고, 현재에 이르러 로우는 함부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없었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타인에게 마음을 열지 않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무미건조한 존재가 되어 그 황량함은 아이러니하게도 귀신과 닮아있었다. 그러나 로우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두려움을 숨기고, 의연한 모습을 보임으로서 그들에게 자신이 얕보이지 않게 하고 싶었다. 평생을 당하며 산다고 해도 겉으로나마 그들에게 굴복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로우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두꺼운 껍질을 뒤집어썼다. 귀신도, 인간도 부술 수 없는 견고한 보호막이었다.
이제 아무에게도 의지하지 않아. 속으로 몇 번이고 다짐하며 로우는 보호막에서 가장 깊은 곳까지 도망쳤다.
그러던 중, 보호막에 금이 가면서 돌파구 없는 어둠 속에서 홀로 싸워야했던 로우에게 한 줄기 구원이 내려왔다.
돈키호테 도플라밍고. 트라팔가 로우의 앞에 기적처럼 등장한 ‘방공호’였다.
보호
W. 아르카디
“…미안.”
뒷짐을 지고 고개를 숙이며 만연히 미안한 기색을 드러내며 사죄를 전하는 로우의 모습에도 도플라밍고는 노기를 쉽게 거둬내지 않았다. 살벌한 적막감을 사이에 두고 서 있는 두 사람의 대립에서 도플라밍고의 비서인 모네는 이 사태에 대해 그녀로서는 드물게 난색을 얼굴에 그대로 드러내며 두 사람의 눈치를 살펴보며 과연 이 일을 어떻게 좋게 마무리할 것인지에 대해 궁리했다.
이야기는 몇 시간 전으로 올라갔다. 대형 백화점 ‘돈키호테’의 젊은 사장인 돈키호테 도플라밍고와 귀신을 볼 수 있는 남자 트라팔가 로우는 서로 일종의 이용 관계로 맺어진 자들이었다. 폭풍우 치던 날 밤에 우연히 만나게 된 인연은 로우가 그의 몸을 접촉하면 귀신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서 이어나가게 되었으며, 귀신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어쩌면 마지막 남은 희망일지도 몰라 끈질기게 도플라밍고를 쫓아다닌 로우로 인해 도플라밍고도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어서 로우의 능력과 사정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역으로 로우의 능력을 이용하면 사업적으로도 이득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두 사람은 자신의 안전과 이득이라는 지극히 계산적이고 형식적인 관계를 맺어 로우는 특별 직원으로 도플라밍고의 측근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 후 두 사람은 상당히 속내가 검고 이기적인 관계와 삐걱거리는 악연으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나름 좋게 굴러가는 편이었다. 서로가 필요할 때가 아니면 간섭하거나 먼저 찾지 않았으며 그렇기에 상대의 감정을 상하는 일이 드물었다. 성격차로 투닥거리기는 해도 중재자이자 두 사람이 잘 지내기를 바라는 모네가 두 사람 사이에서 윤활제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에 무난하게 넘어가는 식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도플라밍고가 로우를 옆에 두기로 결정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몇 년 전에 실종된 베르고의 행방을 찾기 위해서였다. 이미 그가 죽은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적어도 그의 시신이나 흔적이라도 거둬줘서 제대로 장례를 치루고 싶다는 마음에서 로우의 힘을 빌리기로 한 것이었다. 로우도 평소의 도플라밍고와는 다른 진지한 간절함에 베르고를 찾는 일에 될 수 있는 한 많은 것을 알아내고 싶었다. 그러나 간신히 만난 베르고의 혼령은 로우에게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았고, 도플라밍고는 베르고가 바로 근처에 있다는 사실만 알 뿐 그저 곁에만 맴돌며 입을 꾹 다문 베르고의 태도에 실망으로 지쳐가고 있었다. 그런 모습에 로우는 자신이 지금까지 알고 지낸 도플라밍고와 다르다는 불안감과 초조함으로 인해 저도 모르게 도플라밍고에게 베르고에게 들었다면서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처음 도플라밍고는 그런 로우의 말을 믿어주었고, 로우를 통해 전해 듣는 베르고의 거짓된 위로와 격려에 점차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하게 된 것이었다. 베르고에 대한 이야기는 도플라밍고를 통해 한정적인 사실들만 알고 있었던 로우는 그만 거짓말을 하던 도중 도플라밍고가 알고 있는 본래의 베르고와는 다른 이야기를 내뱉고만 것이었다. 눈치가 빠른 도플라밍고는 그 작은 허점만으로 로우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간파해냈고, 로우는 도플라밍고의 고요한 분노에 이번만큼은 자신의 잘못이 확실했기에 평소의 반항적인 태도를 접고 저자세로 들어간 것이었다. 그러나 로우의 사과만으로는 분노가 쉬이 풀리지 않는 것인지 도플라밍고는 로우의 사고에도 답하지 않고 계속해서 차가운 눈빛으로 로우를 노려보았다. 선글라스를 사이에 두고 있다고 해도 느껴지는 도플라밍고의 새파란 눈빛은 귀신들을 마주할 때 느낄 수 있는 뼛속까지 느껴지는 날카로운 냉기와 닮아있었다. 잠시 후, 침묵의 끄트머리에서 도플라밍고가 찢어질 듯한 미소를 지었다. 평소에 자주 짓던 미소와는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훗훗훗. 감히 나한테 거짓말을 하다니… 속셈이 뭐지?”
“딱히 속셈이라고 할 것도 없어.”
“그렇다면 어째서 나한테 거짓말을 한 거지?”
“그건….”
도플라밍고의 질문에 로우는 말문이 막혀 말꼬리를 흐리며 입을 다물었다. 사실은 너를 위로해주고 싶었어. 머릿속에서 바로 떠올린 대답이었지만 지금의 도플라밍고의 심기로 봐서는 그런 대답을 내뱉으면 어중간한 동정심은 집어치우라며 역으로 더 화를 낼지도 몰랐다. 그리고 애초에, 자신이 왜 도플라밍고를 위로해주고 싶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각을 입 밖으로 내는 것을 막아내었다. 자신은 왜 이 남자를 위로하고 싶었던 것일까. 서로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형식적이고 계산적인 관계에서 감정적인 이유로 거짓말을 할 것은 없었다. 그런데 자신은 거짓말로라도 그를 위로하고 싶었던 것일까.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거짓말의 의도에서 로우는 혼란스러운 눈빛을 아래로 내렸다. 그것을 대답하기 싫다는 거절의 뜻으로 받아들인 것인지 도플라밍고는 잠시 턱을 괴던 손으로 주먹을 꽉 쥐더니 이내 예고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그 때까지 구석에서 서 있던 모네에게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네. 다음 일정은?”
“네? 아, 그게… 조금 있으면 바로크 회사와의 거래가 있습니다.”
“차를 준비시켜. 지금 출발한다.”
“…알겠습니다.”
이대로 거래처와의 약속을 이행하려고 하는 도플라밍고의 태도에 모네는 당황스러워하면서도 비서로서의 역할에 충실히 따랐으며 도플라밍고는 그대로 모네의 안내를 받으며 사장실에서 나갔다.
나가기 전, 로우의 옆에 스쳐 지나가며 그에게 전한 한 마디만을 남겨놓은 채.
“꺼져라. 거짓말쟁이와는 마주하고 싶지 않다.”
쾅. 무거운 사장실의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넓고 고급스러운 사장실에는 충격에 빠져 온 몸이 굳어버린 채 망연히 서 있는 로우만이 남겨지고 말았다.
* * * * *
로우가 정신을 차렸을 때쯤에는 이미 그는 사장실에서 벗어나 거리를 걷고 있었다. 충격에 헤어 나오지 못한 탓인지 사장실에 홀로 남겨졌을 때부터 사장실에 나와 거리를 걷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기 직전까지의 기억이 마치 잘려나간 필름처럼 허전하게 비워진 것 같았다. 로우는 잠시 힘없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사거리의 건널목에 선 로우는 자신이 이정도의 일로 충격을 받았다는 것인가. 로우는 기억 속에서 아직까지 잔류하고 있는 도플라밍고의 말을 떠올렸다. 거짓말쟁이. 로우는 가시처럼 박힌 도플라밍고의 말을 상기하게 되자 아랫입술을 깨물어 그 말이 전하는 통증을 견뎌내려고 애썼다.
거짓말쟁이. 귀신이 보이게 된 후로 로우가 살면서 많이 들어본 호칭 중 하나였다. 주변 사람들에게 귀신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도 사람들은 귀신을 보지 못했기에 로우의 말을 거짓으로 이해했고, 로우는 사실을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쟁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몇 번을 사실대로 이야기해도 돌아오는 것은 사람들의 냉담한 시선과 자신을 정신병자로 취급하는 태도라는 현실에 로우는 가슴 깊이 큰 상흔을 입고 말았다. 사고로 입은 중상들보다도 더 큰 고통은 로우에게 타인에 대한 의지를 완전히 빼앗고 말았다. 다시는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귀신들로 인해 거짓말쟁이 취급을 받는 것이 지긋지긋했다. 그래서 로우는 귀신이 보인다는 것을 철저하게 숨겼으며 그들에 대해서도 외면한 것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시간의 힘으로 상처는 아물어가고 흉터만 남게 되었을 때, 도플라밍고의 말이 마치 벼락처럼 내려와 흉터를 찢어 가르고 예전의 고통을 들춰낸 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잖아.”
자신이 거짓말을 했다고 해도 악감정이 아닌 나름 좋은 의도로 꺼낸 말이었는데 그걸 악의로 판단하여 매도라는 도플라밍고의 태도에 로우는 슬그머니 서운함과 억울함을 드러냈지만 그렇다고 도플라밍고를 무조건적으로 비난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들었던 거짓말쟁이라는 말과는 달리 도플라밍고의 말은 본의 아니게 친구의 상실을 들춰서 자극시킨 로우의 거짓말에 대한 비난이었다. 그의 입장을 생각할 때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말이었다.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도플라밍고의 발언에 대한 당위성을 찾아내 스스로를 납득시키려고 했지만 가슴에서 피어오르는 섭섭함은 쉬이 잠재워지지 않았다. 하아. 어째서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 답답함에 비어져 나온 한숨이 커다란 김을 만들어내었다. 일단 내일 일찍 찾아가 다시 한 번 사과하자. 그렇게 결정한 로우는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떼어 집으로 향하려고 했다.
콰앙!!!
고막을 찢어 가르는 충격음과 함께 로우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커다란 시내버스와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화물차의 충돌 사고였다. 뒤이어 그들의 바로 뒤에서 달려오던 자동자 두 대들도 채 멈춰 서지 못하고 뒤이어 버스와 화물차의 뒤를 들이받게 되었고, 4중으로 충돌된 차는 충격으로 인해 엔진이 터지면서 불꽃이 치솟아 올랐다. 순식간에 사거리는 연옥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 되었으며 로우와 함께 그 자리에서 사고를 목격한 자들과 사고의 피해자들이 내지르는 충격과 고통의 비명소리가 조용했던 밤하늘을 찢어놓을 듯이 퍼져나갔다.
“꺄아아악!!!”
“뭐, 뭐야 갑자기?!”
“세상에, 이게 무슨 난리야!”
“빨리 구급차부터 불러!”
눈앞에서 급작스럽게 일어난 사고에 지켜보던 사람들은 각자의 반응을 보여주었다. 눈앞에서 벌어진 참사에 경악하는 사람,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두세 명씩 무리를 지어 사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다급하게 구급차를 외치며 당장에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 인명 구조를 서두르는 사람들. 각양각색의 군상들이 사고라는 하나의 사건에서 다양한 반응을 보여주고 있을 때, 유일하게 한 사람만이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아아.”
새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사고 현장에 못 박힌 채 선 로우는 시야에 조금씩 회색빛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 * * * *
“밖이 왜 이렇게 소란스럽지? 차는 또 왜 이렇게 안 가고.”
“글쎄요.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인 것 같습니다.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그 시각, 바로크 회사의 거래를 위해 차를 타고 이동 중이었던 도플라밍고와 모네는 중간에 도로 한복판에서 발이 묶여버리고 말았다. 퇴근 시간대라고 생각해도 도플라밍고 일행이 달리고 있는 구간은 주요 정체 구간이 아니었으며 주변 분위기도 다소 어수선해보였다. 창밖으로 보이는 수군거리는 목소리와 멀리서 들리는 사이렌 소리는 가뜩이나 깊게 가라앉은 도플라밍고의 심기에 좋지 않은 영향만 주었다. 무릎에 팔꿈치를 올리고 그대로 턱을 괴며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미간 사이의 주름을 그려내는 자신의 상사의 모습을 모네는 잠시 살펴보며 그의 기분을 가늠하다가 곧바로 운전기사와의 대화와 라디오에서 전해주는 현재 교통 상황으로 갑자기 발이 묶인 이유를 알아냈다.
“알아보니 근처에 사고가 나서 그것으로 인해 정체된 것 같습니다.”
“사고?”
“사거리 쪽에서 4중 충돌 사고가 생겼다고 합니다.”
“…그런 사고라면 사상자도 많이 나오겠지?”
“아마 그럴 겁니다. 꽤나 큰 사고로 예측되니까요.”
도플라밍고의 의미심장한 질문에 모네는 덤덤히 대답했고, 그 말을 들은 도플라밍고는 이전보다는 조금 누그러졌지만 다른 의미로 미간을 구기면서 창밖을 보았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길에 답답한 모습으로 멈춰서 있는 차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사고가 무서워.
예전, 도플라밍고는 로우에게서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어쩌다가 우연히 나온 말에 도플라밍고는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사고라면 누구나 무서워하는 것이 아닐까. 자신, 혹은 타인이 갑작스럽게 외부의 요인으로 인해 중상을 입거나 사망할 수 있기에 사람들은 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피해 다닌다. 그런데 그걸 굳이 자신의 입 밖으로 새삼스럽게 내뱉을 것이 있을까. 도플라밍고의 반응을 예상한 것인지 로우는 좀 더 구체적으로 자신의 두려움을 표현했다.
지난번에 말했다시피 나는 13년 전의 사고로 귀신이 보이게 되었어. 그것으로 인해 사고에 대해 안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보다 더 싫은 건, 사고 현장에서는 생령들을 볼 수 있다는 거야. 사상자가 나오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대형 사고에서는 반드시 사상자가 나와. 그런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곧바로 생령이 되어 모습을 드러내. 그것도 죽기 직전의, 사고로 끔찍해진 몰골을 한 채로. …불의로 목숨을 잃은 것에는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무서운 감정을 완전히 없애지 못해. 피를 뒤집어쓰고, 내장이 복부에서 흘러내리고, 뇌수가 터지고, 뼈가 깨지며 피부가 벗겨진 모습들은 어떤 특수효과로도 흉내 낼 수 없는 모습이야. 게다가 그런 유령들이 한꺼번에 나타나서 나한테 달려와. 마치 나더러 살려달라는 듯이, 대신 죽어달라는 듯이. 지옥이 있다면 여기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야. 그래서 되도록 사고 현장에는 안 가려고 해. 현장이 정리된 후에도. 그런 유령들은 한동안은 그 자리에 계속 남는 경우가 많거든.
로우가 누군가의 앞에서 자신의 심정을 솔직하게, 그리고 이렇게 길게 남겨놓은 적이 드물었기에 도플라밍고는 그 말을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유령이 안 보이는 평범한 인간인 도플라밍고로서는 로우의 고충을 쉽게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간혹 TV나 실제로 사고현장을 목격한 적이 두세 번 있는 도플라밍고는 사고 직후의 인간이 얼마나 망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나마 알고 있었다. 참혹한 시신이 되어 뜬 눈으로 실려 가는 시신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죽음에 대한 오싹함이 느껴지는데, 사후 직후의 모습으로 움직인다면 얼마나 처참하면서 두려운 것일까. 몇 번을 상상을 해봐도 도플라밍고가 온전히 로우의 상황을 공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가까워지고, 서로 일정한 비밀을 공유한다고 해도 결코 메워질 수 없는 정해진 거리가 있는 것이다. 그 거리감은 서로가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인데도, 막상 마주하게 되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그 거리가 비정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거짓말을 한 것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화를 전부 식힐 수 없었다. 무슨 의도로 했던지 로우가 자신에게 한 것은 기만인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로우가 그런 식으로라도 자신을 위로하려고 했다는 것에 기쁨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타인의 일에 대해서는 말 그대로 타인의 일처럼 대하며 먼저 다가가는 일이 없었던 로우였기에 그가 자신을 향해 한 걸음 다가왔다는 사실이 기쁘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화를 낸 것은 동시에 자신이 그런 사소한 일로 일희일비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분함이었다. 내가, 돈키호테 도플라밍고가 한 남자의 말 한마디와 그 안에 담긴 의도로 기뻐하거나 화를 낸다는 것을 쉽게 인정할 수 없었기에 그 굽히지 않는 자존심으로 로우를 몰아붙인 것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거짓말쟁이라고 말한 건 역시 심한가.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도플라밍고의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지나치는 것이 있었다. 사거리. 이 근방의 사거리라면 분명 육교가 있는 사거리이다. 그곳은 로우가 항상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반드시 지나치는 곳이었다. 그렇다면, 만약 로우가 자신이 나간 뒤에 사장실에서 나와 집으로 향했다면. 도플라밍고는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몸이 먼저 튀어나왔다. 차문을 벌컥 열고 밖으로 뛰쳐나가는 상사의 행동에 조수석에 앉아있던 모네가 기겁하며 다급히 그를 불렀다.
“?! 사장님, 어디가세요!!”
“크로커다일 녀석한테는 거래를 다음으로 미루자고 해!”
그렇게 말한 후 벌써 저만치로 달려간 사장의 모습을 모네는 그저 망연히 그의 뒷모습을 볼 수밖에 없었다.
* * * * *
비명이 울린다. 울음소리가 그쳐지지 않는다. 비통함이 퍼져나간다.
도망쳐야 해. 몇 번이고 경고음이 머릿속에서 시끄럽게 울려대며 도망쳐야 한다는 본능적인 알림을 나타내고 있었지만 이미 로우의 몸은 딱딱하게 굳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동안 평소에 길을 걷는 와중에도 사고가 나지 않을까 신중하게 걸었던 때와는 달리 다른 일에 신경이 쏠린 탓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고 바로 눈앞에서 사고를 목격했기에 그에 대한 충격이 고스란히 육체에 남아 그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이었다. 시체들의 위로 새하얀 혼령들이 꽃처럼 피어나며 점차 형상화하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완전히 모습을 찾아 육신에서 완전히 벗어난 그들이 자신을 볼 수 있는 로우에게로 달려들 것이었다. 그러나 이성적으로 판단하며 본능적으로 움직이려고 해도 사지는 아직 경직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도와줘. 누가 제발 나 좀 도와줘. 달싹이는 입술로 살려달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그 누구 하나 로우를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주변 사람들은 전부 사고 현장에 정신이 집중되어 있으며 귀신이 보이지 않는 그들에게 로우의 외침은 거짓말로 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사라져. 제 발 내 눈 앞에 나타나지 마. 어째서 자신은 이런 것들을 보게 된 것일까. 보고 싶지 않았는데, 원치 않았는데 왜 남들과 다른 것을 볼 수 있게 되어 시련을 겪게 되는 것일까. 도플라밍고. 그 때, 로우의 머릿속으로 스쳐지나가는 인물이 있었다. 도플라밍고. 자신의 방공호. 두려움에서 몸을 숨길 수 있게 해주며 몸에 닿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며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남자. 하지만 지금은 그도 이 자리에 없다. 아무도 자신을 위험에서 지켜주지 않는다. 언제나 자신은 혼자였다. 새삼스레 떠올린 절망적인 현실에 로우는 끝내 도움을 포기하고 스스로를 체념하려고 했다.
구원의 손길은 그 순간 로우에게 뻗어나갔다.
로우의 뒤에서 예고 없이 등장한 커다란 손은 망설임 없이 그의 손목을 잡아 끌어당겼으며, 로우는 그 강한 힘에 힘없이 이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귀신이라고 생각했지만 귀신의 차가운 손과는 달리 따뜻하고 익숙한 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로우는 그의 품 안에 자연스레 안기고 있었다. 가슴팍에 묻힌 얼굴과 온 몸을 감싸 안는 긴 팔과 분홍빛 코트는 익숙한 향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 남자. 그 사람이 어째서 여기에. 머릿속에서는 새로운 당혹스러움이 떠올랐지만 그것보다도 지금, 처음으로 위기의 순간에 받아보는 구원의 손길에 로우의 눈에서는 그도 모르는 사이에 작은 눈물이 조용히 맺혔다.
머리 위에서 위로하듯이 속삭이는 낮은 목소리는 로우에게 있어서 그 어떠한 것보다도 크나큰 위로와 안심을 주었다.
“방공호 왔다. 숨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