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지 디자인은 하민님(@0hamin)께서 커미션 제작해주셨습니다.
2017년 9월 3일 오소마츠 상 통합 온리전 <오소마츠리>에서 발간 예정인 쵸로오소 소설 개인지 <불멸의 죽음> 샘플 페이지 입니다.
▶ A5 / 중철본 / 32P / 3000원
▶ 폭력, 살인, 사망 관련 묘사 주의
▶ 평범한 인간인 쵸로마츠와 불멸의 존재인 오소마츠의 이야기입니다.
▶ 본 회지의 표지 디자인은 하민님께서 커미션 제작해주셨습니다.
현장판매 & 통판 선입금 페이지 : https://goo.gl/ZzfKYd (~8/27)
오늘, 마츠노 쵸로마츠는 살인을 저질렀다.
후우. 쵸로마츠는 크게 숨을 내쉬고서 넥타이를 아래로 잡아당겼다. 그렇게 힘을 들이거나 무리했다는 생각은 없는데도 숨소리가 거칠고 구슬땀이 흘러내렸다. 어깨는 숨을 내쉴 때마다 눈에 띄게 들썩이면서 아래로 내려앉았고, 굵은 땀방울은 턱 선을 타고 매끄럽게 흘러내리다가 이윽고 아래로 뚝 떨어졌다. 쳇. 겨우 규칙적으로 안정을 되찾은 숨결 사이로 혀 차는 소리가 이물질처럼 섞여들었다. 최대한 피가 묻지 않도록 주의를 했는데도 양복과 와이셔츠는 피투성이가 되어버렸다. 젠장, 피는 잘 지워지지도 않는데. 회사에 입고 갈 양복이 한 벌 뿐이라 곤란한 상황이었지만, 내일이 휴일인 것은 그나마 다행인 일이었다. 쯧. 쵸로마츠는 부엌으로 들어가 손에 든 식칼을 싱크대에 넣고 수돗물을 틀었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줄기가 식칼과 쵸로마츠의 손에 묻은 피들을 깨끗이 씻어내 줬다. 피곤하다. 쵸로마츠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역시 퇴근 후에 바로 살인을 저지르는 짓은 관두는 게 좋을 것 같다. 가뜩이나 쌓여있는 피로가 방금 전의 살인으로 두 배로 불어나고 말아 심신이 천근과 같이 무거워졌다. 게다가 배도 더 고파졌다. 지금 저녁을 차려먹기에는 귀찮기도 한지라 오늘은 편의점 도시락으로 대충 때우기로 결정했다. 쵸로마츠는 수도꼭지를 잠근 뒤 물기 묻은 손을 근처에 걸어뒀던 수건으로 대충 닦고서 입고 있는 양복과 와이셔츠를 빨랫감을 모아두는 바구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녹색 체크무늬 셔츠와 베이지색 면바지로 갈아입고는 지갑을 챙겨들고 신발을 신었다.
“뭐 필요한 거라도 있어?”
“…럭키 스트라이크랑 아사히. 그리고 닭 꼬치.”
“돌아올 때까지 치워놓으면 생각해 볼게.”
“하아!? 이거 애당초 네가 어지럽힌 거거든?”
“그냥 얻어먹을 생각은 하지 마. 내가 올 때까지 제대로 안 치워놓으면 닭 꼬치는 없는 줄 알아.”
“체엣, 치사하게 먹는 걸로 협박하다니. 딸딸마츠 주제에.”
“입 안 닥치면 네 몫은 하나도 없는 줄 알아.”
“애초에 퇴근하자마자 다짜고짜 가만히 있던 사람을 찌른 게 누군데. 그러다가 죽으면 어쩌려고.”
눈을 뜨자마자 상체를 벌떡 일으키고는 나불나불 투덜거림을 멈추지 않고 제 얼굴에 묻은 피를 소매로 대충 닦아내는 동거인을 내버려두고서 쵸로마츠는 밖으로 나와 현관문을 닫았다. 문을 닫자마자 주변은 금방 조용해졌다. 열쇠를 꺼내 문단속까지 한 뒤, 쵸로마츠는 선선한 밤공기를 맞으며 가까운 편의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죽지도 않잖아. 쵸로마츠는 조금 늦은 핀잔을 중얼거렸다.
* * *
이 세상에는 『불멸의 존재』가 있다.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고, 전설이나 환상 속의 이야기도 아닌, 엄연히 현실에 실존하는 자들에 대한 것이다. 얼핏 겉으로 살펴보면 특별한 점이 없어 보이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상을 지니고 있지만, 딱 한 가지 평범하지 않은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불멸의 힘’이었다. 말 그대로 늙지도, 죽지도 않은 채 끝없는 영생을 누리고 있는 자들. 많은 인류가 그토록 갈망하던 불로불사의 삶을 그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아낌없이 누리고 있는 중이었다.
어떻게 해서 그들이 『불멸의 존재』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당사자들부터가 어떤 과정을 통해 자신이 그런 대단한 힘을 얻게 되었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본인들에게 물어보면 그저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늙지도, 죽지도 않는 몸이 되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특별한 약을 먹었다거나, 저주에 걸렸다거나, 어떤 이를 통해 신비한 힘을 손에 넣었다거나 하는 말도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평생을 바쳐 간절히 찾아 헤맸던 힘을 그들은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경위로 손쉽게 얻어내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한 때는 자신들이 어떻게 이런 존재가 되었는지를 궁금해 했던 적도 있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은 자신의 근원에 대해 탐구하는 것을 관두고 현실을 받아들였다. 어떻게 얻어낸 힘인지를 모르니 알 방법이 없었고, 그렇다면 힘들게 머리 싸매고 고민하지 말고 일단은 이대로 지내보자는 게 이들이 내린 결론이었다.
그들은 늙지 않았다. 수 십, 수 백, 그 이상의 오랜 세원이 지나도 그들의 외모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들은 죽지 않았다.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죽거나 혹은 죽여도 얼마 지나지 않아 되살아났다. 그들은 억겁의 세월 속에서 변치 않았고,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도 생을 떠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얻어낸 불멸의 힘으로 만인이 동경하는 삶을 살아간다. 그러한 동경조차 닳고 닳아서 형태조차 남지 않을 만큼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말이다.
그러다보니 현대에 이르러서는 많은 사람들이 『불멸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믿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사람들의 상상으로 만들어낸 허구의 존재라고, 현실적으로 그런 게 가능하냐고 부정했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증명을 허무맹랑한 소리로 일축하면서 무시로 일관했다.
마츠노 쵸로마츠도 그런 부류의 인간이었다. 보편적이고 현실적인 삶을 추구하면서, 그러한 삶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원하는 지극히 소시민적 사고방식을 지닌 평범한 인간. 그래서 쵸로마츠 또한 『불멸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단호하게 헛소리로 치부했다. 그러나 그 말을 무시하면서도 차마 거짓이라고 부정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쵸로마츠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쵸로마츠의 오랜 친구이자, 동거인이자, 사랑하는 연인은 『불멸의 존재』였다.
(이어지는 부분이 아닙니다.)
오소마츠는 『불멸의 존재』였다. 어린아이가 어른이 될 만큼의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아무리 다양한 방법으로 수 없이 죽어버려도 다시 되살아나는 영생을 살아간다. 당사자조차 알지 못하는 불가사의한 힘으로, 그들이 원하든 원치 않았든 간에 얻어버린 수상쩍은 힘으로, 그들은 끝없는 삶을 누린다. 어디가 시작인지도 끝인지도 모르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평범한 인간이자 필멸의 존재에 불과한 쵸로마츠로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문제였다.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변해가는 자신과 변치 않는 외모를 유지하는 오소마츠. 한 번의 죽음만이 허락되고 두 번의 삶은 허락받지 못한 자신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죽음을 겪어도 그만큼 다시 살아가는 것을 허락받은 오소마츠. 아직 짧은 인생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턱없이 부족한 시간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필멸의 존재와 아득히 먼 과거와 미래를 두고서 끝없는 인생을 지속해야 하는 불멸의 존재.
오소마츠와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그의 불멸을 알아갈수록, 쵸로마츠는 점점 깨달아갈 수밖에 없었다. 자신과 오소마츠는 서로 다른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다.
쵸로마츠는 앞으로도 오소마츠와 함께 지낼 것이다. 그와 연인 사이로서 함께 살아가고, 그러다가 언젠가 늙어 죽을 것이다. 중간에 수많은 일들이 벌어진다고 해도 마지막에는 나이를 먹고 죽는 것은 확실했다. 그것은 본인이 원해서 선택한 것이 아닌,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이자 필연적인 끝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마츠노 쵸로마츠의 끝이지 오소마츠의 끝은 아녔다. 쵸로마츠의 인생이 끝난다고 해도, 늙어서 죽어버린다고 해도, 오소마츠는 여전히 한결 같은 모습으로 죽지 않고 계속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와 만나 인연을 만들어가고, 사랑에 빠지고, 다시 그 사람의 끝을 지켜볼 것이다. 그것은 오소마츠에게 있어서 특별한 것이 되지 못했다. 그들은 『불멸의 존재』가 아니었기에 수명이 다하여 죽는 것이고, 오소마츠는 『불멸의 존재』였기에 그저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것은 『불멸의 존재』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것과 같이 스스로도 모르는 어떠한 힘으로서 일어나는 결과였다.
오소마츠는 쵸로마츠가 죽어서도 살아갈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마츠노 쵸로마츠의 존재는, 그를 사랑한다는 감정은, 모두 그가 살아있을 때만 지속되는 찰나의 것이었다. 그것이 어느 순간부터 못내 억울해졌다. 자신에게 있어서 그는 지금껏 살아온 시간 속에서 그의 존재가 태반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만큼 부정하지 못할 정도로 크나큰 의미가 되어버렸는데, 오소마츠에게 있어서 자신은 일말의 의미조차 가지지 못하고 세월의 거대한 풍파에 휩쓸려 사라져버릴 한 때의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불멸의 존재의 앞에서 필멸의 존재는 어떠한 의미조차 가지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다. 그것이 두 존재가 양립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쵸로마츠는 두려워졌다. 언젠가 찾아올 자신의 끝이, 그리고 그 끝의 너머에서 자신을 잊고 살아갈 오소마츠의 존재가.
차라리 자신도 불멸의 존재가 된다면 이러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오소마츠와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는지 쵸로마츠는 알지 못했다. 찾아낼 방법도 바로 옆에 있는 당사자조차 자신이 어떻게 해서 이런 존재가 되었는지를 모르는 판국에 찾으러 나설 시도도 할 수 없었다. 오소마츠의 말을 들어보면 자신과 같은 존재들이 몇 명 더 있다고 하지만, 그들도 오소마츠와 같은 사정이었으니 만난다고 해도 방법을 얻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싫었다. 이대로 있는 것은 싫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오소마츠와 같은 존재가 될 수 없다면, 오소마츠가 자신과 같은 존재가 되었으면 싶었다.
“어서 와, 쵸로마츠. 오늘은 좀 늦었네. 기다리다가 배고파서 나 먼저 저녁 먹었는데 쵸로마츠는 어쩔래?”
“…오소마츠 형. 한 가지 부탁 좀 해도 될까?”
“에에. 뭐야, 갑자기. 무슨 부탁?”
“지금 당장 죽어줬으면 좋겠어.”
그 말을 듣고서야 오소마츠는 쵸로마츠가 항상 들고 다니는 서류 가방에 무언가가 툭 튀어나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근처 가게에서 막 구입한지라 날이 잘 든 식칼이었다. 아, 아픈 건 싫은데. 오소마츠의 머릿속으로 가벼운 투정이 지나갔지만 쵸로마츠의 부탁이니 이내 어깨를 으쓱하고는 선선히 답해줬다.
“좋아.”
오소마츠가 답했다. 재밌는 장난에 어울려주겠다는 의미의 미소와 함께.
그 날 밤, 쵸로마츠는 처음으로 오소마츠를 살해했다.
'INFO'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라오소]<자양화> SAMPLE (0) | 2017.08.1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