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시브에서 풀었던 썰로 소설. 로우 중심. 도플라밍고를 쓰러뜨린 직후.
끝났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오직 그뿐이었다.
밝혀진 진실, 되찾은 기억, 잊혀 진 사람들의 귀환, 헤어져버린 사람들과의 재회, 광대 왕의 몰락, 왕의 귀환, 다시 원래대로 맞춰지는 톱니바퀴.
섬을 가득 채우는 환호성에는 여러 감정들이 뒤섞이고 있었다. 기억 속에서 잊혀 져 버렸던 소중한 사람과의 재회에 대한 기쁨과 십 년 동안 거짓 속에서 살아가야 했던 배신과 자신들의 얕은 믿음으로 외면하고 비난한 군주에 대한 죄책감과 그럼에도 자신들을 위해 싸워준 것에 대한 고마움과 드디어 되돌아온 진정한 평화에 대한 환희가 뒤섞여 섬 전체로 퍼져나갔다. 많은 이들의 눈물과 웃음소리가 적셔지고 있었다.
군중들의 틈새에서 한 사내가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가슴팍이 다 드러나는 검은 옷에 무늬가 그려진 스키니 진을 입고 온 몸이 말라붙은 피투성이인 젊은 사내를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군중 속의 고요에서 사내는 모자의 챙 아래에 드리워진 그늘 속에서 조용히 한 가지 사실을 곱씹으며 그 의미를 이해하고자 했다.
돈키호테 도플라밍고가 쓰러졌다.
그것은 사내, 트라팔가 로우가 지난 13년 동안의 악연 속에서 바랐던 것이다. 코라 씨에 대한 복수, 자유에 대한 갈망. 그 두 가지를 이루기 위해 로우는 자신의 인생의 반평생을 오로지 도플라밍고 하나만을 매달리며 살아왔다. 13살의 어린 나이에 피투성이인 인물의 시체를 바라보며 쏟아지려고 하는 감정을 억지로 억누르며, 가슴에 하트의 문신을 새기면서 고통을 감내하며 자신은 몇 번이고 맹세했다. 도플라밍고를 자신의 목숨과 맞바꾸는 한이 있어도 없애자고. 그러나 도플라밍고에게 있어서 로우는 여전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어린 아이였고 그 사실이 로우를 몇 번이고 무력하게 만들었다. 자신은 13년 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도플라밍고의 눈빛이 로우는 무엇보다도 무서웠다. 도플라밍고를 쓰러뜨리려는 것은 어쩌면 그에게 자신은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로우는 그를 쓰러뜨리기 위해 모든 일을 시도했다. 그것은 차근히 인내심이 요구되는 일이었지만 모든 것은 로우가 바라는 대로 이뤄졌다. 바다로 나가 하트해적단을 만들고, 초신성이라고 불리며 칠무해가 되었고, 펑키 해저드로 가서 SAD를 파괴하고, 밀짚모자 일당과 동맹을 맺어 드레스로자로 가서 마침내 도플라밍고를 쓰러뜨렸다.
복수를 이루고, 진정으로 도플라밍고에게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고, 그리고…
그 다음에 이어질 말은 없었다.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이뤄지고, 끝나게 되었을 때 그 후에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심지어 모든 것이 끝나면 어떤 감정이 들지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오로지 로우의 가슴 속을 맴돌아 치는 것은 혼란뿐이었다.
이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일 수 있다. 줄곧 바라왔던 일이었지만 동시에 이뤄지지 않을 꿈이라고 생각했기에.
“로우.”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로우는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군중들을 배경으로 로우의 앞에 서 있는 인물은 그의 꿈을 이뤄주게 만든 자였다. 밀짚모자가 어울리는 소년, 몽키 D. 루피는 허리를 곧게 펴 로우를 똑바로 내려다보았다. 문득, 로우는 루피가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똑바로 불러줬다는 사실을 자각하였다. 루피는 로우의 이름을 부르고 잠시 아무 말 않고 그를 보았다. 로우를 보면 자주 보여줬던 미소와는 달리 입을 꾹 다문 채 흔들림 없이 로우를 바라보았다.
“밀짚모자여, 무슨 할 말이라도….”
“캡틴!!”
로우의 말이 채 마치기도 전에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드는 목소리가 있었다. 높게 울려 퍼지는 익숙한 목소리. 그 목소리는 로우가 익히 아는 목소리였으며, 자신을 그렇게 부르는 자들은 로우가 알기에는 극소수뿐이었다.
루피와 로우가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동시에 고개를 돌리자 시선이 닿는 방향에는 루피의 동료들과 더불어 하트해적단의 선원들, 로우의 부하이자 동료들이 일제히 로우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그들의 등장에 로우는 동공이 커지면서 그로서는 드물게 진심으로 당황한 반응을 보여줬다.
“너희들…!”
“캡틴!!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선장! 동료로서 선장님 혼자 도플라밍고와 싸우게 만들고!”
“애초에 왜 저희들에게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까!! 저희들은 선장님을 위해서라면 그 누구라도 싸울 각오가 되어있는데!”
“비블 카드가 타들어 갈 때마다 저희들 심장이 타들어 가는 줄 알았다고요!”
“게다가 이 상처! 도플라밍고 녀석, 감히 선장님을 이렇게 만들다니! 빨리 치료하셔야지 안 그러면 상처가 곯습니다. 죽음의 외과의라는 이명도 있으신 분이 자기 몸은 왜 그렇게 소홀히 하시는 거예요!”
“우아아아아!! 캡틴!!”
“잠깐, 베포! 너 치사하게, 가 아니라 캡틴 몸 안 좋으신데 끌어안지 마!”
로우와 가까워지자마자 눈물 콧물 범벅이가 된 얼굴들로 2년 가까이 헤어지면서 못했던 말들을 전부 늘어놓겠다는 듯이 맹렬한 기세로 달려드는 크루들의 모습에 로우는 그 기세에 눌려 저도 모르게 몸을 뒤로 젖힐 정도였다. 걱정, 원망, 슬픔, 안도, 기쁨. 여러 감정들이 어지러울 정도로 쏟아졌지만 그 모든 것들이 단 하나, 자신들의 소중한 선장을 위한 것들이었다.
어린아이처럼 목청껏 높이 울며 선장보다도 몇 배나 큰 몸에 그대로 로우를 끌어안은 베포에 로우는 뭐라 말리고 피할 틈도 없이 그대로 당하고 말았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베포의 폭신하고 따뜻한 품에 로우는 어딘가, 자신의 마음 한 구석에서부터 찌르르 울리는 감각을 느꼈다. 감각은 파문처럼 넓게 퍼져나가 로우의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그것이 무엇인지 로우는 알지 못했다. 난생 처음 느껴지는 감각은 생소하고 낯설고 어색하기만 했지만 그렇다고 싫은 것은 아니었다. 가슴에서부터 간질거리는 느낌에 로우는 더 이상 가만히 베포의 품에 안겨있지 않고 잠시 백곰의 품 안에서 벗어나 어느새 자신을 중심으로 에워싸고 있는 크루들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2년. 길고도 짧았던 시간에서 그들은 한 치도 변하지 않은 마음으로 로우를 기다렸다. 돌아올지 아닐지 모르는 불확실함과 그곳에서 찾아오는 불안과 걱정 속에서도 그들은 결코 로우에 대한 믿음과 충성을 버리지 않았다.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 그들은 모든 것을 견뎌낼 수 있었다.
로우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가며 하나 둘 크루들의 얼굴들을 살펴보았다. 2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로우의 기억 속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에서 차이가 있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로우가 기억하고 있고, 결코 단 한 번도 잊지 않은 얼굴들이었다.
로우는 마지막으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그 모습들을 지켜보고 있는 루피를 보았다. 로우와 눈이 마주치자 그제야 루피는 로우가 지금까지 본 미소 중 가장 환하고 루피다운 미소를 지어주며 말했다.
“동료들과 만나서 다행이다, 로우!”
그 말과 동시에, 로우의 눈에서 한 줄기의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어째서 자신은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했을까. 자신이 바다로 나가고, 동료들을 모으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는 단순히 복수 때문이 아니었는데. 이렇게 자신을 위해서 기다려준 동료들이 있는데. 함께 싸워준 자들이 있는데. 그런데 어째서 자신은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제야 로우는 전신을 타고 흐르는 그것이 ‘기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13년 동안 잊었던, 잊어야만 했던, 억눌러야만 했던 감정. 지금까지 살면서 자신은 몇 번이고 복수라는 이유로 모든 감정들을 괴롭게 목구멍 아래로 삼켜야만 했을까.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참지 않아도 되었다. 이제는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바다를 항해하고, 진정한 꿈을 꾸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 사실이 너무 행복해서, 기뻐서, 트라팔가 로우는 13년 만에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것이다.
“우왓! 서, 선장! 왜 우세요! 어디 아프세요?”
“이봐, 밀짚모자! 선장을 울리지 말라고!!”
“캡틴, 괜찮아요?”
“우, 울지 마, 캡틴. 내가 너무 세게 안아서….”
“아니, 아니야… 괜찮다. 이제 괜찮아….”
그래. 이제 괜찮은 것이다. 모든 것이.
13년 동안 흘리지 못한 눈물과 함께 로우는 그제야 맘 편히 웃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