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루피와 칠무해 로우. 루피 계급은 대충 대령~소장 정도. 2년 전에 로우가 루피를 구해준 이후로(해군이라는 사실을 몰랐음) 친해졌다는 설정.
“트랑아!”
해군 본부 내에서 ‘트랑이’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인물은 단 한 명뿐이며 그 ‘트랑이’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잘 알고 있지만 트라팔가 로우는 매번 자신이 그 호칭으로 불려 질 때가 되면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부정하고 도망치면 반응을 보일 때까지 자기 뒤를 쫓아다니며 그 호칭으로 부를 것이 당연했고, 그렇게 되면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은 자신이 되기에 로우는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고개를 돌려 자신에게 달려오는 상대를 보았다.
밀짚모자를 쓴 앳된 티가 남은 소년은 자기 몸보다 커서 보기만 해도 무겁게 느껴지는 정의라는 이름의 백색 코트를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폴짝폴짝 뛰며 달려오는 소년을 과연 누가 해군 본부 소속 장교이자 지금까지 수많은 악명 높은 해적들을 잡아들인 그 유명한 밀짚모자 몽키 D. 루피라는 사실을 금방 파악할 수 있을까.
적어도 칠무해이자 죽음의 외과의로 알려진 잔학무도한 해적으로 알려진 트라팔가 로우를 ‘트랑이’라는 멋대로 지은 별명으로 부르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루피와 자신 사이의 거리가 대화를 나누기 충분한 거리로 좁혀지자 로우는 고개를 숙여 자기보다 키가 작은 루피를 내려다보았다.
“해군 본부 내에서는 그런 식으로 부르지 마라, 밀짚모자여.”
“트랑이가 뭐가 어때서?”
“너는 괜찮을지 몰라도 다른 해군 녀석들이 들으면 웃음거리가 되는 것 같아 싫다.”
“누가 트랑이를 비웃어? 그럼 내가 그 녀석 날려버릴게! 그러니까 괜찮지?”
“괜찮아진 것이 전혀 없다. 칠무해를 감싸려고 같은 편끼리 싸우자면 어쩌자는 거야.”
해군 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던, 해군들끼리 싸우던 로우에게는 상관없고 오히려 해적의 입장으로서는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상식적으로 바로잡아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칠무해와 친하게 지내는 해군이라니, 그의 할아버지의 해군의 영웅이 알면 펄쩍 뛸 일이다.그리고 자신하고 친하게 지내봤자 이득은커녕 손해만 볼 일이었다. 로우는 한숨을 가볍게 쉬고 말했다.
“그렇게 나와 친밀하게 나오면 너에게도 좋지 않을거다, 밀짚모자여.”
“응? 트랑이랑 친하게 지내는 게 나빠? 트랑이는 칠무해니까 우리랑 같은 편이잖아. 그럼 동료지!”
“칠무해라고 해도 나는 해적, 너는 해군이다. 너의 이런 모습을 위나 아래에서 좋게 볼 리가 없을 터. 조금은 하얀 사냥꾼을 본받아서 경계심을 키우지 않겠나.”
그런 의미에서 하얀 사냥꾼, 스모커의 칠무해에 대한 적개심과 경계심은 옳은 것이다. 세계 정부라는 울타리 아래에 있지만 서로가 서로의 목적과 이득을 위해 이용하고 있는 관계이며 언제 깨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살얼음판과도 같았다. 로우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지금 정부의 개가 되었다고 해도 정부에 계속 충성할 마음은 전혀 없으며 언젠가 자신이 원하던 바를 이루게 되면 미련 없이 칠무해를 그만둘 생각이었다.
해군에 대한 호의적 감정이 없음에도 루피에게 이러한 충고를 해주는 것은, 그가 자신으로 인해 안 좋은 일을 겪게 되는 것이 석연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해군이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하지만 어쨌든 자신이 한 번 구한 목숨이며 그 후로 이렇게 자신을 따르고 있다. 제 아무리 죽음의 외과의라고 해도 이런 루피의 태도를 자신과 상관없다고 무 썰 듯 무시할 정도로 비정하지는 않다.
개인적인 감정으로 본다면, 해군 치고는 나쁘게 생각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것을 알고 이렇게 접근하는 것일까.
로우의 말을 들은 루피는 잠시 아무 말 않고 눈을 두세 번 깜짝이며 로우를 보더니 이윽고 늘 그에게 보여주는 환한 미소로 답했다.
“그래도 괜찮아! 난 트랑이가 좋은걸? 나중에 트랑이가 해적이라고 해도 상관없어. 넌 내 목숨을 구해주기도 했고, 또 이렇게 날 걱정해주는 좋은 녀석이잖아? 그러니까 괜찮아!”
“밀짚모자여, 내 말을 이해하기는…!!”
로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루피가 먼저 행동에 옮겨 제자리에서 폴짝 뛰어오르더니 그대로 로우의 품 안으로 돌진했다. 갑자기 자기를 덮쳐오는 루피를 예상하지 못한 로우는 그대로 루피를 받아 안고 뒤로 자빠지고 말았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해군 본부 복도 바닥에 엎어진 로우는 자신의 몸 위에 올라타 그의 코트에 자신의 볼을 부벼 대는 루피를 보며 복도에 자신과 루피 단 둘이라는 사실을 다행히 여겼다.
이시싯. 루피가 고개를 들어 등과 머리에서 느껴지는 지끈거리는 통증에 눈살을 찌푸리는 로우를 향해 웃어보였다. 자신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모른다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미소였다. 그 미소에 로우는 무엇인가 더 따지고 싶어 입을 열었다가 결국 입을 닫아버렸다.
정말로 이 어린 해군 간부는 자신이 그렇게나 좋은 것일까. 이쯤 되면 설득보다도 체념이 먼저 밀려들어와 로우는 마음대로 하라는 심정으로 강아지처럼 몸을 부비는 루피의 밀짚모자를 쓴 머리에 손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