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아파트 복도를 시원하게 울리는 울음소리가 있었다. 이제 막 현관에서 나와 문단속을 위해 열쇠를 꺼내들려고 한 로우는 불쾌한 기색 없이 이제는 익숙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과연 그곳에는 로우의 예상대로 소음의 주범이 있었다. 나이는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조그마한 남자아이가 형제로 보이는 남자 고등학생 두 명의 다리를 각각 한손으로 붙잡고 매달리며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다. 아이의 행동에 두 남학생들은 난감해 하면서 어떻게든 자신의 다리에서 부드럽게 아이를 떼어내려고 했지만 그들의 생각만큼 아이는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몸을 뒤로 젖히면서 울부짖는 모습은 거의 발작과도 같아 아이의 몸이 걱정될 정도였다. 그냥 지나치려고 해도 이웃사촌으로서 알고 지내온 인연이 있다 보니 결국 로우는 학교 가는 시간을 조금 뒤로 늦추고 삼형제에게 다가가 먼저 자연스레 아침인사부터 했다.
“좋은 아침. 아침부터 왜 이렇게 소란인거냐.”
“아, 로우 씨. 안녕하세요. 죄송해요, 소란스럽게 굴어서.”
“얌마, 루피. 그만 좀 울어. 두 밤만 자면 금방 온다고 했는데도 자꾸 떼쓰면 어떡해!”
“그치만, 그치만… 우에에에….”
로우의 인사에 사보와 에이스 둘 다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인사를 받아주고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동생의 울음을 어떻게든 그치게 하려고 애를 썼다. 로우는 그런 삼형제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시야에 그들의 뒤에 놓여 진 물건을 보았다. 두 명 분의 캐리어. 고등학생이 학교에 가져갈 물건은 아니었다. 조금 전 그들과 나눈 대화에서 캐리어의 존재를 눈치 챈 로우는 확인 차 물어보았다.
“뒤에 짐들을 보아하니 어디 멀리 가나보지?”
“아, 네. 오늘부터 2박 3일로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가거든요. 어제 그렇게 잘 설명해줬는데 막상 아침이 되니까 이래서….”
“루피, 최대한 빨리 올 테니까 한동안 할아범네 가 있어.”
“싫어! 사보 형이랑 에이스 형이랑 같이 있을 거야!”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으며 두 형의 다리에 매달리는 루피의 얼굴은 눈물콧물로 젖어 있으며 하도 울어서 목소리도 거의 쉬어버렸다. 그렇게도 할아버지의 집에 가는 것이 싫을까. 손자 사랑이 지극한 루피의 할아버지가 이 광경을 봤더라면 분명 마음에 큰 상처를 받을 것이라고 로우는 짐작했다. 막내 동생의 형들의 사랑이 담긴 투정이 싫은 것이 아니지만 수학여행에 어린 동생을 데리고 갈 수 없는 노릇이라 두 형의 얼굴에는 똑같이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 조금은 진정이 되었지만 고목나무에 붙은 매미처럼 훌쩍거리며 달라붙은 루피의 모습에 로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윽고 어쩔 수 없다는 의미의 한숨을 가볍게 쉬고는 자리에 앉아 루피와 눈높이를 맞추고는 말했다.
“루피. 할아버지에게 가기 싫으면 형들이 올 때까지 우리 집에 있지 않겠나?”
“훌쩍…트랑이네 집에?”
“아아. 예비 열쇠 줄 테니까 내가 올 때까지 우리 집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
“잠깐, 로우 씨. 그러면 저희들이 죄송해서….”
“괜찮아. 어차피 혼자 사는 집이고 사흘 동안이면 상관없으니까. 자. 결정은 네가 해라, 루피.”
로우의 제안에 사보와 에이스 둘 다 신세를 지는 것에 죄송하다는 것이 역력한 빛으로 말렸으나 로우는 선뜻 괜찮다며 루피를 자신이 맡을 것을 제안했다. 확실히 바로 옆집이고 루피가 로우를 예전부터 잘 따랐으며 이 아파트에 살 때부터 서로 많은 도움을 받아 이제는 벽을 사이에 뒀을 뿐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가지였지만 그래도 한창 바쁜 대학 시기에 어린 동생이 혹여나 폐를 끼칠까 걱정이 가득한 형들이었다.
그런 형들의 걱정은 자신하고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 루피는 로우의 제안을 듣고는 울음을 뚝 그치고 코를 훌쩍이며 로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이내 활짝 웃으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 트랑이랑 같이 있을래!”
“그럼 이걸로 된 거군.”
루피의 허락에 로우도 슬며시 웃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평소에 스킨십이 적은 로우였기에 루피는 로우의 손길을 전해 받으며 언제 대성통곡을 했냐는 듯 배시시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