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고오소 요소 포함.
쵸로마츠 중심. 전체적으로 우울한 분위기입니다.
그리움도 이렇게 고이면 독이 된다
네가 떠나면서
나는 흉가로 남아
황사의 날들을 지나며 한 방울
독의 힘으로 눈 뜨고 있었다.
ㅡ이문재, 「적막강산」
기억을 되짚어보면 열 살 때인가, 당시 우리 집에 며칠 동안 하숙을 했던 젊은 남자가 있었다. 가늘고 날카로운 눈매에 여우를 연상시키는 날렵한 미소가 인상적인 남자는 항상 단정한 양복을 입고 멋지게 그려 넣은 미소로 우리 가족들 앞에 섰다. 우리 형제들의 짓궂은 장난을 싫은 기색 하나 없이 받아줬고, 부모님에게도 늘 친절했으며 타고난 예의범절이 몸 속 깊숙이 심어서 그대로 배어나오는 남자였다. 그런 남자를 한 때는 동경했다. 모두의 신뢰와 호의를 받을 수 있는 그야말로 ‘어른’의 모범적 표본이라 감히 말할 수 있는 남자. 알게 모르게 어렸을 적 가졌던 이상적 어른의 이미지를 그 남자를 통해 구축했다고 할 수 있다. 그 이미지가 그대로 남았더라면, 나는 지금까지도 그 남자와 같은 어른이 되겠다며 열심히 살았을 거다. 그러나 남자의 이미지는 그의 위에 두껍게 덮어져 있던 가면과 껍데기를 전부 벗겨냄과 동시에 무참히 깨어졌다. 아니, 그 남자의 본성이 어쨌든, 원래의 얼굴이 선량한 미소가 아닌 흉악한 범죄자의 미소든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동경을 품고 어른의 롤모델로 삼았다 해도 결국에는 어린애의 순진한 착각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그 남자는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질렀다. 그 남자가 가면을 깨부숴 나의 기대와 동경까지 짓밟아도,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짓을,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을 저질렀다.
「쵸로마츠.」
그는 나에게서 가장 소중한 사람을 빼앗아갔다.
[쵸로오소]돌아갈 수 없는
W. Arcadia.
“장부는 이게 전부인가?”
“네.”
깍듯이 외치는 부하의 대답에도 쵸로마츠는 귀에 거슬리는지 파리를 쫓는 것처럼 한 손을 공중에 대충 휘저었다. 끄으으. 아, 저 소리도 거슬려. 어이, 저 자식 입 좀 다물게 해라. 쵸로마츠의 명령에 옆에 서있던 남자는 바로 고개를 숙여 쵸로마츠의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다른 일행들과 함께 굵고 두터운 파이프를 챙겨들고 피떡이 된 상태로 묶여서 쓰러져있는 중년의 살집 있는 남자에게로 걸어가서는 그를 끌고 다른 장소로 옮겼다. 수면부족으로 심기가 불편해 보임이 숨김없이 드러나 있는 쵸로마츠의 앞에서 이 이상 소란을 피웠다가는 자신들에게도 불똥이 튈 것이라는 경험에 의거한 현명한 판단이었다. 수하들이 남자를 데려가자 오롯이 혼자 남은 쵸로마츠는 부하들이 찾아온 장부들을 휘적휘적 넘기고는 중간서부터 읽는 것을 관두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패대기를 쳤다. 시발. 쵸로마츠는 거칠게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버려진 창고 안에는 자신들이 찾아내 초죽음으로 만들어낸 남자의 혈흔과, 쓰레기나 마찬가지인 기자재들과, 희뿌연 담배 연기와, 그 중심에 서 있는 쵸로마츠만이 있었다. 간혹 이런 날이 있었다. 한두 달에 두어 번 꼴로 수면부족으로 심기가 가라앉다 못해 내핵까지 뚫고 들어가는 쵸로마츠의 ‘그 날’이 말이다. 이 날의 쵸로마츠는 신경이 날카로워질 대로 날카로워져서 평소보다 더 날 선 태도로 부하들이나 사업차 만나는 채무자들을 상대로 필요 이상의 화풀이를 일삼았고, 이런 경우를 몇 번이고 겪은 부하들은 그 날만 되면 자신들의 몸을 사리고자 평소 이상으로 과하게 쵸로마츠의 눈치를 살폈다.
계속 멍하니 담배만 뻑뻑 피워댈 때, 누군가가 겁 없이 쵸로마츠의 곁으로 다가왔다. 양 손을 주머니에 꽂고, 파란 와이셔츠를 입은 카라마츠는 그가 내팽겨 쳐둔 장부를 챙겨들고 쵸로마츠에게 덤덤히 말을 걸었다.
“뒤처리는 애들한테 맡기고 그만 돌아가자, 쵸로마츠.”
“…어.”
카라마츠의 말에 쵸로마츠는 순순히 따랐다. 그 날의 쵸로마츠에게 겁 없이 평소처럼 말을 걸 수 있는 건 그의 바로 위에 있는 쌍둥이 형인 마츠노 카라마츠 뿐이었다. 카라마츠를 따라 창고 밖으로 나온 쵸로마츠는 대기 중이던 검은 차의 뒷좌석에 올라탔고, 바로 앞에 세워진 차에 카라마츠까지 올라타자 두 대의 차는 지체 없이 창고에서 떠났다. 쵸로마츠는 턱을 괴고 게슴츠레 뜬 눈으로 창밖을 살폈다. 머리 위에 있던 해가 차차 서쪽으로 기울어져 가는 모습이 보였다. 점심때가 훌쩍 지나 밥 먹을 때를 놓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공복에서도 쵸로마츠는 배고픔을 느끼지 못했다. 돌아가자. 불현 듯 카라마츠가 조금 전 자신에게 꺼낸 말이 상기되어졌다.
돌아가자니, 형은 아직 돌아오고 싶어 해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데 자신만 감히 어디로 돌아가야 한다는 건가.
울컥 치미는 독백이 꽁꽁 싸매어 깊숙한 곳에 가뒀던 감정들까지 줄줄이 끄집어내려고 하자 쵸로마츠는 운전석에서 운전에 몰두하고 있는 부하가 눈치 채지 못하게 백미러의 사각지대에서 한 손으로 두 눈을 가렸다. 피곤했다. 고작 반나절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미치도록 피곤했다. 쵸로마츠는 지난 10년 동안 단 한 번도 편히 잠들지 못했고, 마음 편히 숨을 쉬지도 못했다. 그가, 마츠노 오소마츠가 없는 삶이 쵸로마츠에게 피로 이상의 고통을 안겨줬다.
* * *
하숙인 토고가 강도라는 사실이 마츠노 가에 밝혀지자 그는 치비타가 부른 경찰들에게 붙잡히기 전에 재빨리 도망쳐서 홀연히 모습을 감췄다. 그러나 모습을 감춘 것은 그 혼자만이 아녔다. 그가 인질로 데려간 마츠노 가의 장남, 마츠노 오소마츠도 함께였다. 가족들은 혼비백산하여 오소마츠를 찾고자 백방을 돌아다녔고, 경찰에서도 수배령을 내려 전국을 뒤졌으나 토고와 오소마츠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부모님은 실신하기 일보직전이었고, 남은 형제들을 웃음을 잃었다. 실종 5년째가 되어 경찰이 오소마츠가 살해되어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며 포기하라는 말을 마츠노 가에 통보했을 때 마츠요는 눈물에 젖어 기절했고, 카라마츠는 처음으로 크게 화를 내며 경찰의 멱살을 잡아 소리를 질러댔다. 그 아수라장 속에서도 쵸로마츠는 현실감을 얻지 못했다. 오소마츠가 토고에게 붙잡혀 사라졌다는 사실은 너무 크고 괴로워서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러 현실감을 버렸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쵸로마츠는 오소마츠의 실종도, 죽음도 인정하지 않았다. 오소마츠 형은 반드시 돌아올 거야. 형은 강하니까 언젠가 토고를 쓰러뜨리고 집으로 돌아올 거야. 쵸로마츠는 형제들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그런 말을 끊임없이 되풀이 말했다. 그것은 형제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진정시키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렇지 않으면 형제들 중에서 가장 속절없이 무너질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그래서는 안 되었다. 형이 살아있을지도 모르는데 자신이 먼저 포기해서는 안 되었다. 그렇게 쵸로마츠는 형을 기다렸고, 또 기다려 10년이라는 세월을 허비했다. 오소마츠 없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쳐서 이제 학생이 아닌 어엿한 성인이 되었을 때, 쵸로마츠는 기다리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오소마츠 형을 찾을 거야. 찾아서, 형하고 같이 집으로 돌아올 거야.」
고등학교 졸업식 날, 쵸로마츠는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그런 선언을 남기고 무작정 자립을 했다. 형이 돌아올 수 없는 상태라면 자신이 가서 데려오면 된다. 이제 자신은 토고와 같은 어른이니 형을 구해내 집으로 함께 돌아가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쵸로마츠는 자신이 어른이 되는 이 순간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의 뜻에 동의해서 함께 자립을 나선 카라마츠가 있다는 점이었다. 그 또한 오소마츠를 잊지 못했고, 동생으로서 형을 데려오고 싶다는 마음이 쵸로마츠 만큼이나 강했기에 기꺼이 쵸로마츠를 따라 나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도 과연 카라마츠와 같다고 할 수 있을까. 형제애를 내세우며 자신의 곁에 나란히 서는 카라마츠는 보며 쵸로마츠는 자신이 단순히 형제애만으로 길을 나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래도 괜찮았다. 오소마츠를 집으로 데려오면, 그 때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고백해도 늦지 않는 일이다.
쵸로마츠와 카라마츠는 바로 오소마츠를 찾는 일에 나섰고, 그들은 공권력이 닿지 않는 곳, 즉 뒷세계에 뛰어들어 형에 대한 자그마한 단서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2년 전, 쵸로마츠는 마침내 ‘토고’라는 이름을 들을 수 있었다. 토고. 오소마츠만큼이나 잊지 못하는 이름이었고, 유일하게 이 세상에서 마츠노 오소마츠의 행방을 알고 있는 인물의 이름에 쵸로마츠는 반쯤 이성을 잃고 수소문을 거듭해 드디어 토고가 몸담고 있는 조직을 찾아냈다. 어처구니없게도 토고는 마츠노 가에서 나온 뒤 뒷세계의 지인들의 힘을 빌려 손쉽게 경찰들의 눈을 피해 몸을 숨겼다가 수사가 누그러지자 본격적으로 범죄의 길에 뛰어들어 어느 범죄조직의 그럭저럭 힘이 되는 자리에까지 오른 상태였다. 그는 이제 경찰에 신고한다고 해서 겁을 먹고 도망칠 사람도, 경찰이 무턱대고 체포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게 되었다.
카라마츠와 쵸로마츠가 처음 자신을 찾아왔을 때, 토고는 어린 시절이 생각나는 웃는 낯으로 그들을 반겼다. 주름이 늘어났지만 변함없는 미소와, 마치 귀여워 해줬던 이웃집 아이들을 반겨주는 것 같은 가증스러운 위선적 태도에 쵸로마츠는 당장 얼굴 가죽을 벗겨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우선순위는 따로 있었다. 토고의 부하들이 나가고, 방 안에 세 사람만 남게 되었을 때 쵸로마츠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오소마츠 형은 어디 있지?」
단도직입적인 쵸로마츠의 질문에 토고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도 다를 바 없는 그 미소가, 끔찍이도 싫었다.
그 뒤로 오간 대화와 욕설들을 제하고 결론부터 말하면, 토고는 그들에게 오소마츠의 모습을 보여주지도, 어디에 있는지도, 어떤 상태인지도 일절 말하지 않았다. 한 가지 알 수 있는 건 오소마츠는 지금 토고의 밑에 있으며 그만이 오소마츠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형을 만나고 싶다면 직접 찾아보렴.
토고의 낯짝 두꺼운 말에 구역질이 올랐다. 바로 조금만 더 하면, 저 인간을 거치면 오소마츠가 있는데도 그의 그림자조차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도 원통했다. 쵸로마츠는 당장에 그의 목을 졸라버리고 싶지만 그렇게 되면 오소마츠는 다시 단서도 없이 실종 상태에 놓이게 된다. 좋든 싫든 현재의 오소마츠에 대해 가장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토고였다. 그 사실이, 쵸로마츠로서는 미치도록 분했다. 토고를 만난 후, 일단 밖으로 나온 카라마츠와 쵸로마츠는 어른이 되어도 여전한 자신들의 무력감에 치를 떨었다. 어른이 되면 구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는데, 실상 자신들은 열 살의 무력감 그대로를 품고 성장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떡하지. 길거리를 정처 없이 방황하며 쵸로마츠는 끊임없이 자문했고, 하룻밤을 꼬박 세워서야 쵸로마츠는 처음부터 나와 있는 최악의 해답을 선택했다. 막상 선택하고 나니 후회도, 망설임도 없었다.
오소마츠가 아직도 그에게 붙잡혀 저 깊고 어두운 밑바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면, 자신이 그 안으로 들어가 끄집어내면 그만이었다.
* * *
“쵸로마츠 씨, 다 왔습니다.”
부하의 부름에 쵸로마츠는 눈을 떴다. 잠깐 사이에 무슨 꿈을 꾼 것 같았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쵸로마츠는 밖으로 나와 문득 카라마츠가 탄 차가 여기에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마 다른 일 때문에 중간에 갈라진 모양이다. 쵸로마츠는 다른 볼일이 있어서 먼저 실례하겠다는 부하를 손대중으로 보내준 뒤 혼자서 겉으로는 평범한 3층 건물 입구에 들어섰다. 토고가 밑에 일하고 있는 애들의 보고를 주로 받는 곳으로 쵸로마츠도 이곳에서 그와 만나곤 했다. 3층 밖에 안 되는 작은 건물이기에 쵸로마츠는 낡은 계단을 차곡차곡 밟으며 올라갔다. 실제로는 더 좋은 건물에서 지내며 일을 하면서도 부하들을 만날 때만큼은 눈속임이라는 이유로 이런 건물에서 만남을 주선하는 그의 이중적인 태도에 계단을 밟을 때마다 매번 짜증이 치밀었다. 그렇다고 과할만큼 화려한 건물에서 토사물 같은 그의 낯짝을 마주하고 싶지도 않지만 말이다. 쵸로마츠는 2층과 3층 사이의 계단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는 담배를 피우기 위해 다시 웃옷 안쪽에서 담배갑을 꺼냈다. 그것은 어느 순간부터 토고를 만나기 전에 꼭 거쳐 가는 통과의례가 되었다. 쵸로마츠는 벽에 몸을 기대고 담배를 피우며 간밤에 꾼 꿈을 떠올렸다.
쵸로마츠의 꿈에는 항상 어린 오소마츠가 나왔다. 그의 손에 억지로 이끌려 어디론가 떠나는 오소마츠가, 형제들 앞에서는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던 그가 눈물을 흘리며 쵸로마츠의 이름을 부르던 오소마츠의 모습이 쵸로마츠가 기억하고 있는 오소마츠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꿈에서도 쵸로마츠는 오소마츠를 토고로부터 구해낼 수 없었다. 손을 뻗어 오소마츠의 손을 잡으려고 해도, 그의 이름을 부르고 싶어도 어느 쪽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망연히 그가 떠나는 모습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것 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의 두 눈이 밉고도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덕분에 쵸로마츠는 그런 꿈을 꿀 때마다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하고 해가 뜰 때까지 뜬눈으로 줄담배를 뻑뻑 피워댔다. 쵸로마츠는 증오가 들어찬 매서운 눈빛으로 아마도 바로 윗층에 있을 토고를 향해 천장을 노려봤다. 자신이 아는 오소마츠는,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은 오소마츠는 그렇게 울면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자신은 그런 형을 구하고 싶어서 필사적인데도 구할 수가 없어서 미치기 일보직전인데 그만이 자신에게서 오소마츠를 빼앗아 가서 지금의 그가 어떤 모습인지, 어떻게 변하고 무엇이 그대로인지 알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쵸로마츠는 반쯤 남은 담배를 계단에 떨어뜨려 그대로 짓이겨 꺼뜨렸다.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 쵸로마츠는 뒷세계에 뛰어들어 야쿠자가 되었음에도 오소마츠를 찾아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돌아갈 수 있다. 오소마츠 형과, 카라마츠와 함께 부모님과 이치마츠, 쥬시마츠, 토도마츠가 기다리고 있는 우리들의 집으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형을 찾아야 했다. 토고의 밑에서 고개를 숙이는 한이 있더라도 그로부터 형의 소재를 뜯어내 구해내야 했다. 그것이 지금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꿈에서는 구해낼 수 없어도 현실에서라도 구해내면 된다고. 쵸로마츠는 믿고 또 믿었다.
마저 계단을 다 오른 쵸로마츠는 문 앞에 서서 두 번 노크를 했다. 대답은 없었다. 쵸로마츠는 조금 이상함을 느꼈지만 일단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 넓다고 할 수 없지만 정돈이 잘 되어있는 쾌적한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상하다, 어딜 나간 건가. 쵸로마츠는 찌푸린 눈살로 사무실 전경을 크게 살펴봤지만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다가, 쵸로마츠의 시선에 무언가가 잡혀 들어왔다. 사무실 안쪽에 있는 문. 그 문에 대해 쵸로마츠는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다만 토고와 같은 공간에 오래 있기 싫어서 보고만 마치면 바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 문을 보고도 큰 관심을 들이지 않았기에 그 문에 다가가거나 안으로 들어가 본 적은 없었다. 혹시 저 안에 있는 건가. 쵸로마츠는 발소리를 죽여 문 가까이로 다가갔다. 그리고 문 앞에 서서, 문손잡이를 잡았을 때였다.
ㅡ아.
처음 듣는 목소리. 그런데도 쵸로마츠는 한 번에 알아챘다. 그 목소리가, 오소마츠의 목소리라는 것을
잔뜩 눌리고 쉬어진 단발마에 가까운 신음소리 뿐인데도 쵸로마츠의 심장이 목소리의 주인을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유래 없이 크게 뛰고 있었다. 이 문 너머에, 문 안 쪽에 그토록 찾아 헤매던 오소마츠가 있다. 쵸로마츠가 필사적으로 찾아 헤맸고, 그리움에 헐떡일 만큼 보고 싶어 했고,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구해주고 싶었던, 사랑하는 형. 마츠노 오소마츠가, 저 너머에.
그러나 문 밖으로 새어나오는 목소리는 그것이 전부가 아녔다.
ㅡ아, 아저씨… 아, 아파… 그만…. 잘못했어요….
ㅡ그게 아니잖니, 오소마츠 군. 오랜만에 만져주니까 이렇게 좋아하면서 말이야. 착한 아이는 거짓말 하면 안 되지, 안 그래?
ㅡ아, 읏, 하앗… 흐으, 으….
ㅡ착한 아이니까, 솔직하게 말해야지?
ㅡ우으…읏, 하아… 조, 좋아, 좋아요, 아저씨… 잘못, 흣, …좋아….
ㅡ그래, 그래. 착하구나, 오소마츠 군. 착한 아이인 만큼 오늘은 아저씨가 하루 종일 놀아주마.
「토고에게는 숨겨진 정부가 존재한다.」
언제인지도 모르는 때, 부하들이 지나가는 말로 떠들어대던 말이, 왜, 지금에야.
쵸로마츠는 문손잡이에서 손을 떼어내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렸다. 형, 오소마츠 형. 쵸로마츠는 속으로 오소마츠를 불렀다. 오소마츠를 구해야 하는 자신이 막상 정말로 힘들 때면 구원을 호소하며 찾게 되는 유일한 인물이 오소마츠라는 것이 모순적이었다. 쵸로마츠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 속으로 계속 오소마츠를 불렀다. 그러나 속으로 아무리 부르짖는다고 해서 오소마츠가 답해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오소마츠가 쵸로마츠에게 들려줄 수 있는 건 고통과 쾌락 사이에서 헐떡이는 젖은 신음소리가 전부였다. 저 문을 열면 오소마츠가 있는데도, 쵸로마츠는 그 문을 열 용기가 차마 나지 않았다. 문 너머의 그가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 상상조차 하기 두려웠다. 문 너머에 있는 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형인데도, 만날 수가 없었다. 망가지고 부서져 원래대로 되돌릴 수 없는 자신의 형을 마주하는 것이 너무도 무서웠다. 그가 지난 10년 동안 어떻게 망가져 있을지에 대해서는 왜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왜 그가 토고의 밑에 있으면서도 무사히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할 것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을까. 답은 금방 나왔다. 그 날, 어린 시절에 처음부터 오소마츠를 구해내지 못한 자신의 원죄를 마주하기 때문이었다.
쵸로마츠는 인정하고 말았다. 설령 오소마츠를 토고에게서 구해낸다고 해도, 자신들은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었다. 어린 시절처럼 함께 웃으면서 지낼 수 있는 그 날로, 그리운 집으로 돌아가 그의 두 손을 잡으며 좋아한다고 고백할 수 있는 기회도,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쵸로마츠는 어째서 토고가 처음 오소마츠를 찾으러 온 자신을 보며 태연히 웃을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쵸로마츠의 믿음은 처음부터 무참히 배신당해 깨어진 상태였다. 그리고 그 믿음을 깨부순 인물은, 다른 누구도 아닌 오소마츠였다.
가식에 찬 친절로 꾸며진 토고의 목소리도, 잔뜩 엉망이 되어 망가진 오소마츠의 신음소리도, 아무것도 못하고 문 밖에서 쭈그리고 앉아 눈물을 흘리는 자신도, 지금은 그저 모든 것이 한없이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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