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는 여러 유형의 인간이 있다. 모든 인간은 저마다의 특성을 지니고 있고, 각자의 개성이 갖춰져 있기에 자아가 있고 주관이 있어 서로 완전히 같을 수가 없고, 많은 공통점을 가졌다 해도 결정적인 차이점이 존재할 수 있다. 이 지구상에는 약 60억 명에 육박하는 숫자의 저와 다른 ‘타인’이 존재한다. 그래서 누구든 특별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존재할 수 있어서, 나와 완벽하게 동일한 사람이 없기에 그것만으로도 ‘나’는 특별해지고 존중받을 자격이 충족된다. 인권이라는 개념이 탄생하게 된 원천이 그곳에 존재하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그’도 유일무이한 특별한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할 가치를 지닌 것일까. 아니, 오히려 반대였다. 그 누구도 소유하기는 고사하고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남다른 ‘특별함’을 지닌 ‘그것’을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받아들여 그에게 인권적 가치를 부여해야 하는가. 당시 인류는 ‘그것’을 주제로 자신들에게 재해처럼 들이닥친 난제에 대해 골몰했다. 그리고 난제는 여전히 답이 나오지 않은 미제가 되어 현재진행형이다.
뭐, 시간이 남아도는 늙은이들 잘하는 거야 탁상공론 밖에 더 없으니 그런 개똥철학을 붙들고 쓸 때 없이 머리를 싸매고 있는 거지만. 모든 인류가 난제에 대한 해답을 찾을 때 마츠노 쵸로마츠는 가장 먼저 냉소적 태도로 문제에서 벗어났다. 딱히 해답을 찾아서가 아녔다. 그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그런 시답잖은 문제보다도, 그 문제를 만들어내는 ‘그것’ 그 자체였다.
쵸로마츠는 야근으로 뻐근해진 어깨를 가볍게 돌린 뒤 ID 카드를 인증기에 대어 자동문을 열었다. 이 문을 열 수 있는 ID 카드를 가지고 있는 인물은 오로지 쵸로마츠 한 명 뿐이고, 그 말은 곧 이곳을 드나들어 ‘그것’을 마주할 수 있는 유일한 자격을 갖춘 인물이라는 증표기도 했다. 문을 연 쵸로마츠의 앞에 펼쳐진 것은 사방이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져 밖에서도 안이 훤히 드러나 사생활이라고는 있을 수가 없는 사각형의 방이었고, 그 안에서 조용히 담배를 피우고 있는 한 남자였다. 칙칙한 보라색 파카와 물 빠진 검은 츄리닝 바지, 삼선 슬리퍼를 차려입은 20대 초반의 젊은 청년은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뒤로 돌렸다. 반쯤 감긴 눈으로 담배를 뻑뻑 피워대고 있는 그는 쌍둥이라고 착각할 만큼 쵸로마츠와 똑 닮은 얼굴을 지녔다. ‘그’는 인간의 신체를 지녔다. 그러나 불길한 보랏빛 피부가, 입에서 담배연기와 함께 뿜어져 나오는 독한 연보랏빛 연기가 그를 ‘인간’으로 만들지 않았다.
“여어, 이치마츠. 기분은 좀 어때?”
“…별로.”
하얀 가운을 걸쳐 입은 연구원의 살짝 비꼬는 어투의 아침 인사에 대해 이치마츠는 덤덤히 받아 넘기는 것으로 답했다.
* * *
어느 공장이 있었다. 회사가 부도나버린 바람에 처리 비용도 없어서 그냥 방치되어 버린 공장은 멈춰버린 기자재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폐기물이 누구의 처분 없이 그대로 남겨졌고, 공장 관계자들은 공장 문을 나무판자로 박은 뒤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팻말을 세우는 것으로 자신들의 공장과 관계된 모든 것들을 처분했다고 믿어버렸다. 그렇게 공장은 사람들의 손에 벗어나 버려졌고, 점점 낡아져가는 공장 안의 산업폐기물은 시간의 휘저음에 따라 오염을 심화시켜갔다. 드럼통 안에 그득히 담긴 산업폐기물은 폐기물을 넘어서 인간과 자연 모두에게 무분별한 피해를 안겨주는 ‘독’으로 승화되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폐기물은 여전히 공장 안에서 조용히 제 자리를 지켰고, 폐기물이 진득하게 농축될 만큼의 아득한 시간이 흘렀다.
오래된 것에는 의지가 깃든다.
한 때 사람들은 그런 전승을 믿었다. 오래된 것들에는 어떤 의지가 깃들게 되어 이윽고 하나의 자아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괴담에 나오는 오래된 인형이 갑자기 살아 움직인다는 이야기와 같은 맥락을 가졌다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폐기물에도 예외 없이 적용됐다. 긴 세월동안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좌선을 앉아 명상을 하는 고승처럼 시간의 고행을 버텨내 그 자리를 지켜내는 것에 성공한 산업폐기물은 마침내 그 노고를 치하 받게 되었다. ‘그’의 기억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공교롭게도 운명의 여신의 친절이었는지, 그가 처음으로 눈을 뜬 날에 많은 사람들이 공장을 찾아왔다. 방치된 폐쇄 공장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환경 단체가 환경 보호의 일환으로 공장을 완전히 허물고 산업폐기물을 깨끗이 처분하기 위해서 찾아온 것이다. 하루라도 늦었다면 ‘그’는 산업폐기물 그대로 사람들의 손에 사라졌을 것이다. 어쨌든 그는 살아남았다. 끈적이는 보라색과 초록색이 뒤섞여진 산업폐기물에서 꾸물꾸물 기어 나오는 그의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괴물이나 유령으로 혼동에 혼비백산으로 도망쳤다. 뭐, 어찌 보면 비슷하다고 할 수 있으니 완전히 틀린 착각은 아녔지만 말이다. 놀란 것도 잠시, 사람들은 그가 실체를 지녔다는 것을 알고는 당장 그를 데려갔다. 그 당시에 대한 그의 기억은 산발적으로 끊겨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달라붙어 정체를 알아내고자 했고, 고명한 연구원의 검사를 통해 그는 독으로부터 태어난 일명 ‘독 인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독에서 태어난 인간이라니! 이런 일은 전대미문이라 거짓말이라는 소리도 있었으나 그를 처음 발견한 최초 목격자와 그의 몸의 성분이 100%라는 연구원의 분석 결과는 그의 정체가 진실이라는 것을 규명했다. 그러나 정체가 밝혀졌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 고위들은 그를 중심으로 모여 그의 처분에 대해 논의했다. 그러나 처분에 대한 기준부터 분분했다. 그를 ‘인간’으로서 대할 것인가, ‘독’으로서 대할 것이다. 어느 쪽이든 골치 아픈 주제였다. 마땅히 지능과 자아를 가졌으니 그를 인간으로 존중해서 시민권 같은 기본 인권을 부여한다는 말부터 그냥 인간의 외형을 지닌 독일뿐인데 인권은 과하다, 일반 사회에 던졌다가 독으로 문제가 생길지 모르니 당장 폐기 처분해야 한다는 말부터 그들의 탁상공론에서 터져 나오는 발언은 다양했다. 그리고 그들의 한가운데에 있는 그들의 발언을 이해하지 못했다. 분명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그 스스로가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상당히 우스운 상황이라 그는 속으로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참았다. 저런 이야기를 자신의 면전에다가 하는 것부터가 지들이 멋들어지게 떠들며 내세우는 ‘인권 존중’이 물 건너간 게 아닌가. 그는 토론의 결론이 어찌되어도 좋으니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시끄럽다. 인간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건 상상 이상으로 소란스럽다. 적막이 유유히 흐르던 공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토론의 결과는 정부 고위 관료들과 독 인간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튀어나왔다.
“허락만 해주신다면 제가 그를 전담하겠습니다.”
조용히 손을 들고 나선 이는 이 자리에서 가장 어린 인간이었다. 그의 발언에 지금껏 떠들기 바빴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독 인간도 놀란 반응을 드러냈다. 단정한 와이셔츠와 초록색 넥타이, 하얀 가운을 걸쳐 입은 그는 토론이 시작하면서부터 줄곧 토론에 적극적으로 끼어드는 것이 아니라 말없이 그를 바라보는 것에 집중했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의 두 눈동자는 속내를 읽을 수 없는 눈동자로 비딱하게 시선을 그에게로 고정했다. 그리고 토론은 젊은 연구원의 자처로 생각보다 싱겁게 끝을 맺었다. 그리하여 독 인간은 마츠노 쵸로마츠의 관리 하에 놓이게 되었다.
마츠노 쵸로마츠는 국가 소속 연구소의 선임연구원으로 젊은 나이에 뛰어난 두뇌로 국가에서부터 인정받고 있는 인재 중 한명이다. 그는 오로지 국가를 위한 연구에 자신의 신념과 인생을 바치고 있었으며, 그의 충성심은 연구원이라기보다는 마치 군인의 것에 가까워 정부 고위 관료들도 그의 성과와 충성에 높은 신뢰와 지원을 전폭적으로 보내줬다. 쵸로마츠가 독 인간을 전담하겠다는 발언을 주제넘게 꺼냈음에도 그들이 무리 없이 수궁한 것도 그런 배경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가 독 인간을 데려가는 것도 인도적 차원과 사적인 동정심이 아닌, 그의 능력을 이용해 국가에 헌신할 수 있는 연구 성과를 내기 위해서라는 지극히 충실한 공적인 이유에서였다.
독 인간을 데려온 쵸로마츠는 바로 그를 위한 특별한 방을 만들었다. 연구실 한 가운데에 설치된 사방이 유리로 지어진 사각형의 작은 방이 그에게 허락된 개인적 공간의 전부였다. 그의 생태를 보다 직접적으로 관찰하기 위해서라는 이유에서였다. 첫날, 쵸로마츠는 방 안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그와 유리를 사이에 두고 서서 여러 사항들을 알려줬다. 무슨 일이 있으면 방 안에 있는 호출기를 사용해라, 방 밖으로 나가는 건 자신의 허락 없이는 불가능하며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한정된 만큼 최대한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편의는 제공해주겠다는 것이 쵸로마츠가 그에게 설명하는 사항들의 요점이었다. 설명이 거의 끝날 때 쯤, 쵸로마츠는 마지막으로 그에게 첫 질문을 던졌다.
“그러고 보니 네 이름은 뭐지?”
“폐기물한테 이름이 있을 리가 없잖아. 그냥 쓰레기라고 부르면 충분해.”
“부르는 이쪽이 충분하지 않거든. 흠, 그러면… 이치마츠(一松)는 어떠냐?”
“이치, 마츠?”
“그래. 첫 번째(一) 독 인간이라는 기념과 더불어 나랑 똑같이 ‘마츠(松)’ 돌림으로 해서 말이지.”
“촌스러.”
잠깐 고민한 뒤에 제시한 쵸로마츠의 이름에 그는 가차 없는 혹평을 던졌다. 그의 반응을 들은 쵸로마츠는 기껏 생각해서 이름을 지어준 보람도 느끼지 못해서 단번에 기분이 팍 상해버린 바람에 팔짱을 끼고 독 인간이라서 말투에도 독기가 서려있다고 투덜거렸다.
“게다가 폐기물한테 이름을 붙여주다니, 지금까지 본 인간들 중 가장 이상하군.”
“뭐, 그런가. 그래도 확실히 이름을 붙여주는 편이 좋겠지. 앞으로 오래 얼굴 볼 사이인데 말이야. 미리 말하지만, 널 연구할거라고 해서 인간 대접해주지 않겠다는 소리는 아니거든.”
“이런 방에 감금시킨 녀석한테 그런 설득력이 있을 것 같냐.”
“윽, 어쩔 수 없잖아. 네가 밖으로 돌아다니면 겁먹을 녀석들이 이 연구소에 잔뜩 있다고.”
쵸로마츠는 정곡을 찌르는 이치마츠의 발언에 변명처럼 엄지손가락으로 어깨 너머 연구실 입구를 가리켰다. 이치마츠의 존재를 아는 대부분은 그를 두려워했다. 조금이라도 닿으면 독에 중독되어 병을 얻거나 죽어버릴 수 있고, 자칫하면 연구소 전체를 녹여버릴 수 있는 위력을 지녔기에 그 위험성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를 톡으로 빚어진 움직이는 재해 취급을 했다. 물론 쵸로마츠라고 해서 그런 이치마츠가 두려운 것은 아녔다. 그를 이런 유리방에 가둔 것도 보안과 더불어 자신의 안위를 일차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가만히 있어도 이치마츠는 독기와 독가스를 뿜어대기에 쵸로마츠도 써야하는 연구실에 그냥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쵸로마츠를 비인도적이라 비난할 수는 없었다. 적어도 이 연구소에서는 말이다. 이치마츠를 데려온 직후, 이치마츠를 구속시켜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밀폐된 공간에 가둬야 한다는 소장의 말에 반박하여 첨예한 말싸움을 하고 온 그였다.
“아무튼, 잘 지내보자고.”
이치마츠는 쵸로마츠의 우호적인 인사에 고개를 들어서 그를 올려봤다. 가장 먼저, 그의 목에 메어진 초록색 넥타이가 눈에 들어왔다. 자신의 몸 전체를 보라색으로 이뤄져 있지만, 원래 산업폐기물이었을 당시의 색은 선뜩한 빛을 내는 초록색이었다. 거기서 어떤 변이가 일어나 보라색으로 변했는지에 대해서는 이치마츠도 알 도리가 없었으나, 어쨌든 그런 연유에서 이치마츠는 쵸로마츠의 넥타이 색깔이 마음에 들었다. 초록색 넥타이가 그에게 잘 어울렸다. 자신이 한 때 품었던 빛깔과 어울리는 남자라면, 그나마 지금까지 만난 인간들 중에서 자신을 최소한의 인격적 대우를 해준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기에, 일단은 그와 함께 여기서 지내보기로 하자. 이치마츠는 그런 심정으로 악수 대신 고개를 작게 주억거렸다. 쵸로마츠는 그 고갯짓을 확인하고 피식 웃었다.
그 후로 쵸로마츠와 이치마츠는 같은 공간이면서도 서로 분리된 공간 안에서 함께 지내기 시작했다. 연구라고 해서 특별한 건 없었다. 성분 분석이나 그의 성질을 활용할 연구를 위해 체혈을 하거나, 이치마츠의 상태를 주기적으로 체크하는 것이 전부였다. 짐작보다 훨씬 싱거운 연구 방식에 이치마츠는 조금 실망까지 할 뻔했다. 그의 일과는 대부분 유리방에 앉거나 누워서 멍하니 연구실 내부의 허공을 응시하거나 쵸로마츠가 그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준 독성 담배를 피워대기만 했다. 일반 담배는 이치마츠의 독에 녹아버리고, 피우지 않으면 공기가 금방 오염되어버려 쵸로마츠가 그의 성분 분석이 끝나자마자 바로 만들어준 담배였다. 이치마츠의 담배는 쵸로마츠가 피우는 담배의 희뿌연 연기가 아닌 연한 녹빛의 연기를 하늘하늘 피워 올렸다. 이치마츠는 하루의 대부분을 담배를 피우며 보냈다.
어느 날부턴가 이치마츠의 얼굴이 쵸로마츠와 똑같아졌다. 얼굴은 물론이고 체격까지 동일해져 쵸로마츠는 그가 자신의 모습을 본뜬 첫날에 연구실에 들어오자마자 깜짝 놀라 뒤로 자빠지고 말았다. 하루아침 사이에 자신과 똑같은 얼굴의 보랏빛 남자가 유리방 안에 있으니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녔다. 알고 보니 독은 형태가 정해진 것이 없기에 이치마츠도 원하는 대로 얼굴과 체형을 변형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처음부터 알고 있던 능력은 아니고, 그냥 해봤더니 어렵지 않게 되더라는 식이였다. 놀란 것도 잠시, 이치마츠의 새로운 특성에 쵸로마츠는 바로 그의 외견을 자세히 뜯어 살폈다. 가까이서 살피니 부스스한 머리카락과 반쯤 감은 흐리멍덩한 눈에서 쵸로마츠와 차이점이 드러났다.
“그런데 어째서 내 얼굴이야?”
그의 얼굴과 신체를 살피는 것을 마치고 쵸로마츠는 이치마츠에게 그리 물었지만, 이치마츠는 고개를 돌려 묵비권을 행사했다.
그 후로 딱히 달라진 점은 없었다. 이치마츠는 하릴없이 유리방에 멍하니 갇혀있었고, 쵸로마츠는 그에 대해 연구했다. 그리고 이따금 시간이 남으면 두 사람은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소소한 이야기를 나눴다. 줄곧 갇혀만 있는 이치마츠에게는 이야깃거리가 없기에 대부분의 주제가 쵸로마츠에게서 나왔다. 그는 자신의 일에 대해 강한 자긍심을 가졌다. 자신이 옳은 길을 가고 있다고, 많은 사람들과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는 굳은 믿음을 가졌다. 어찌 보면 순진했다. 국가를 위해 나선다고 해도 세상 물정을 몰랐다. 그러나 그것은 이치마츠에게 관심 없는 일이었다. 그의 세상은 작은 유리방과 그 너머의 연구실이 전부였고, 그 안에는 이치마츠와 쵸로마츠만이 존재했다. 그러니 쵸로마츠만이 이치마츠의 유일한 관심사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연구가 끝나면 그 때야말로 나는 폐기 처분인가? 쓰레기는 빨리 처분하는 편이 모두에게 이롭다고.”
“또 그 소리냐. 글쎄, 아직 해야 할 연구가 많이 남았지만… 뭐, 설마 폐기 처분까지야 되겠어.”
“헤에, 설마 이런 쓰레기를 먹여 살리려고 하는 거야?”
“그렇게 말하면 지금도 반쯤 먹여 살리고 있는데 말이지. 그래도,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그리고 쵸로마츠는 이치마츠와 눈높이를 맞춰 앉아 유리벽에 손을 갖다 댔다. 유리벽에 달라붙은 쵸로마츠의 손바닥이 드러나자 이치마츠는 반사적으로 자신의 손을 뻗으려다가 도로 거둬들였다. 자신의 독이라면 저 얇은 유리벽마저 녹여버릴 수 있었다. 쵸로마츠는 남은 한 손으로 턱을 괴어 이치마츠를 빤히 쳐다보다가 문득 무언가가 떠오른 듯 새삼스럽게 중얼거렸다.
“이렇게 보고 있으니 얼굴이 닮아서 그런가, 꼭 쌍둥이 동생이 생긴 것 같네.”
“어이, 왜 내가 네 녀석 동생인거야.”
“아니, 내가 돌봐주고 있으니까 포지션 상으로는 형이지.”
“살기는 내가 네 녀석보다 훨씬 오래 살았거든. 게다가 아직 동정인 주제에.”
“그건 따지자면 너도 마찬가지잖아!!”
동정이라는 콤플렉스를 가차 없이 건드리고 만 이치마츠의 독설에 쵸로마츠는 바로 발끈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런 식의 도발에 넘어가는걸 보면 정말 동정이 맞을지도.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이치마츠는 쵸로마츠의 화난 모습에도 전혀 겁먹지 않고 담배를 입에 문 채로 그를 빤히 올려다보기만 했다. 그런 이치마츠의 태연자약한 모습에 쵸로마츠는 왠지 자기만 일방적으로 놀림 당한 것 같아 씩씩거렸다.
그런 식으로, 이치마츠는 쵸로마츠와 작은 공간에서 함께 잘 지냈다. 처음에는 산업폐기물 인만큼 세상에 도움은커녕 해가 되는 자신이니 얼른 연구 재료로 쓰이고 처분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살아갈 의욕이 없는 쓰레기 그 자체인 자신에게 어떤 가치도 없으니까. 그런 의미의 연장선에서 처음 자신을 연구하겠다는 관심을 보인 쵸로마츠가 이치마츠에게 있어서 지금까지 본 인간들 중 가장 이상했다. 움직일 기력도 없는 쓰레기인 자신에게 이름도 지어주고, 옷도 사주고, 대화도 하고, 이제는 동생처럼 생각한다. 쓰레기인 동생이라니, 없는 편이 훨씬 낫잖아. 그러나 이치마츠는 쵸로마츠의 말에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 그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을 무시하지 못했다. 쵸로마츠와 같은 공간과 시간을 공유함으로서 이치마츠는 쓰레기인 자신이 감히 그와 함께 지내는 것을 갈구하게 되었다. 이대로 계속 있고 싶다, 연구가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만약에, 정말 만약의 확률로 허락만 된다면 그의 동생이 되고 싶다. 그것이 독이 인간이 되고 처음으로 품은 ‘소망’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품은 날, 이치마츠는 처음으로 꿈이라는 걸 꿨다. 평범한 인간인 자신이 쵸로마츠의 쌍둥이 동생이 되어 지내는 소박한 꿈이었다. 쵸로마츠랑 같이 고양이를 돌보고, 그의 쓰다듬을 받는 나날들이 전부인 특별한 것 하나 없는 보잘 것 없는 꿈이었다. 그러나 이치마츠에게는 그마저도 과분했다. 쓰레기이자 독극물인 자신이 감히 가져서는 안 되는 바람이다. 그럼에도 이치마츠는 꿈을 꿨고, 현실은 감히 꿈같은 걸 품은 독에게 벌을 내렸다.
어느 날부터 쵸로마츠가 연구실에 드나드는 횟수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연구실을 찾아오더라도 쵸로마츠의 안색은 상당히 안 좋았고, 표정도 초조함으로 굳어져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무슨 안 좋은 일이 일어났음을 이치마츠는 직감했다. 그리고 며칠 뒤의 밤, 쵸로마츠가 울면서 이치마츠를 찾아와 유리벽에 몸을 기대어 좌절을 쏟아냈다. 쵸로마츠가 이치마츠를 통해 얻어낸 연구 성과를 정부가 악용해 강력한 독극물 병기를 만들었고, 그것으로 전쟁에서 잔혹하게 이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정부가 사용한 악질적 수법이 드러나게 되자 주변 국가에서 비난이 들끓었고, 정부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연구 성과를 낸 쵸로마츠와 그 근원인 이치마츠를 매스컴에 뿌려서 기존의 사실을 왜곡해 두 사람을 만악의 근원으로 비난몰이를 하고 말았다. 정부의 교활한 수법은 성공하여 국민들과 주변국은 모든 원흉이 새파란 연구원과 끔찍한 독 인간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는 두 사람을 처형시키라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오늘 저녁, 정부는 쵸로마츠의 사형과 이치마츠의 폐기 처분 결정을 체결했음을 공식 발표했다. 쵸로마츠는 패닉에 빠져 눈물을 뚝뚝 흘리며 제 머리를 쥐어뜯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더불어 자신이 그토록 믿었던 국가에게 배신당한 절망이 그의 믿음을 수어 번 망가뜨렸다.
그런 쵸로마츠의 모습을 이치마츠는 구석에 쭈그려 앉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사태가 이렇게 된 근원인 자신이 쵸로마츠에게 위로의 말을 할 자격이 없었다. 위로해주고 싶어도 투명한 벽이 이치마츠를 가로막았다. 마음만 먹으면 자신의 힘으로 무너뜨릴 수 있음에도 이치마츠는 그러지 못했다. 그러니까, 나 같은 쓰레기는 빨리 폐기 처분하는 것이 좋았어. 이치마츠는 마스크 아래로 자조적인 미소를 비뚤비뚤 그렸다. 진즉에 쵸로마츠를 부추겨 폐기물로 처리되지 못한 자신이 제일 한심하고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아직 처분되어서는 안 된다. 먼저 쵸로마츠를 살려야 한다. 자신 같은 구제불능의 쓰레기 때문에 그가 죽어서는 안 된다. 그는 폐기물인 자신과 달리, 가치 있는 인간이다. 어차피 자신만 죽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일이다. 이치마츠는 쵸로마츠에게 모든 게 자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말하려고 했다.
“…도망치자.”
그러나 먼저 말을 꺼낸 쪽은 이치마츠가 아닌 쵸로마츠였다.
그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유리벽에 유일하게 난 문에 설치된 도어락을 열고 비밀번호를 누른 뒤 문을 열어 방독면 없이 안으로 들어가 이치마츠의 손목을 맨손으로 덥썩 잡더니 그대로 그를 끌고 유리방에서 나와 뒤이어 연구실에서도 나왔다. 갑작스런 쵸로마츠의 돌발행동에 이치마츠는 다급히 그의 손아귀를 뿌리치려고 했지만, 어디서 이런 힘이 솟아나는지 쵸로마츠의 악력은 이치마츠의 힘으로는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을 만큼 억셌다. 이치마츠는 연구소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유리로 만들어진 방과, 연구실을 나와, 연구소까지 나왔다. 연구소 밖은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광야였고, 하늘은 온통 깜깜한 밤이었다. 이치마츠는 처음으로 바깥 공기를 마셨다. 줄곧 알 수 없는 어딘가로 이리저리 끌려 다니기만 해서 이렇게 밖으로 직접 나와 보는 것은 그로서는 처음이었다. 이치마츠는 쵸로마츠의 손에 이끌려가는 와중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봤다. 수없이 많은 별들이 이치마츠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인간처럼 보이지만 인간이 아닌 그의 모습을 보고 신기해하는 것인지 별들은 수런거리며 이치마츠를 살피기 바빴다. 그리고 이치마츠는 자신을 끌고 앞서 광야를 나아갔다. 헉헉거리며 차오르는 숨소리에서 지친 기색이 진득하게 묻어나는데도 쵸로마츠는 그의 손을 놓지도, 뜀박질을 멈추지도 않았다. 이치마츠는 자신의 손목을 잡은 쵸로마츠의 손을 내려 봤다. 그의 손은 벌써 이치마츠의 독으로 인해 검보랏빛으로 중독되어 손 전체를 넘어 팔까지 올라가고 있었다. 이정도면 상당히 아플 텐데도, 쵸로마츠는 단 한 번도 이치마츠의 손을 놓기는커녕 더욱 세게 그의 손을 잡았다. 이치마츠는 당장이라도 위험하니 쵸로마츠에게 손을 놓으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자신을 직접 만져주는 것이 처음이라, 게다가 그 온기가 자신과 다르게 닿은 곳이 녹아내릴 만큼 따듯해서, 이치마츠는 자신의 눈에서부터 독이 녹아내려 주르륵 쏟아질 것 같았다.
“…그만 …그만… 그만하라고, 쵸로마츠!!”
쵸로마츠는 이치마츠의 심상찮은 외침에 처음으로 발걸음을 멈춰 그제야 이치마츠를 돌아봤고, 곧이어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독에서 태어난 인간은 본래 자신의 색깔이었던 초록색 액체를 눈에서 뚝뚝 흘려 내보내고 있었다.
그 모양새가 마치, 눈물과 같았다.
“이치마츠.”
“어째서… 어째서 날 데리고 도망치는 거야!! 도망 칠거면 혼자 도망치던가! 산업 폐기물인 나 같은 건 그냥 인간들 손에 뒈지던가, 쓰레기로 처분 되던가 그냥 내버려 두라고!! 그래야지 네 녀석이라도 살 거 아니야! 독극물 쓰레기 살리자고 죽다니, 진짜 웃음도 안 나오거든! 진짜 머리가 어떻게 된 거냐고… 애초에 쓰레기인 날 인간 취급 한 것부터가 이상하잖아….”
쓰레기인 자신은 쓰레기 그대로도 충분했다. 이렇게 인간 흉내 내면서 지내는 것도 자신에게는 턱없이 과분하고 분수에 넘치는 일이었다. 쓰레기는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폐 공장에서 썩어나갔어야 했는데. 이치마츠는 다시 폐공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곳에서 자신이 썩어서 사라지기를 원했다. 흔적도 남김없이, 자신은 이 세상에서 깨끗이 없어져야 한다. 이치마츠는 그런 비참함으로 끅끅 녹색의 눈물을 굵게 떨구었다.
쵸로마츠는 그런 이치마츠의 눈물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의 눈물이 떨어질 때마다 땅이 썩어 들어갔다. 그가 처음으로 ‘인간’으로서 흘린 눈물마저 그가 ‘인간’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처럼 독으로서의 본질을 드러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쵸로마츠는 자신도 울고 싶은 것을 꾹 눌러 참으며 멀쩡한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가렸다. 처음에는 연구를 위해 그를 데려왔다. 지극히 연구원으로서의 이유로 그를 거둬들였고, 그를 연구 소재 이상으로 보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함께 보낸 시간이 길어질수록 쵸로마츠는 그가 단순한 산업 폐기물에서 탄생한 살아 움직이는 독이자 연구 대상이 아닌 한 명인 ‘인간’으로 보여 졌다.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 공과 사를 나누고자 했다. 자신은 모두를 위해 나아가야 한다. 자신을 믿고 신뢰하는 나라를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 지금껏 쵸로마츠는 그것 하나만 올곧게 바라보며 앞서 달려갔다. 그러나 그런 나라와 만인에게 배신당한 지금, 쵸로마츠는 이제 자신에게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차라리 국가의 손에 의해 형장의 이슬이 되어버릴까 하는 자포자기의 심정도 있었다.
그런 쵸로마츠의 시야에, 이치마츠가 들어왔다.
그 순간, 그만큼은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쵸로마츠의 뇌리를 꿰뚫었다. 자신을 위해 지금껏 자유를 빼앗긴 채 실험용 쥐처럼 살아온 그를 여기서 헛되이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자신에게 남은 것이 이치마츠 뿐이라면, 해야 할 일은 하나 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옳은 일인지는 쵸로마츠로서는 알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건 자신답지 않았다. 언제나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자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과 똑같은 얼굴로 스스로를 쓰레기라고 자기비하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이치마츠를 보게 되자, 쵸로마츠는 그런 갈등마저도 전부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쵸로마츠는 이치마츠를 잡았던 자신의 손을 잠깐 내려다 봤다. 검보랏빛으로 중독된 손은 심상찮게 벌벌 떨며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럼에도 쵸로마츠는 자신의 손에 담긴 보랏빛이 혐오스럽지 않았다. 이치마츠의 색. 쵸로마츠는 그 손을 천천히 앞으로 뻗어 이치마츠의 머리 위에 조용히 얹었다. 투명한 벽의 방해도 없이, 쵸로마츠는 자신의 몸으로 뻗어나가는 독에도 전혀 개의치 않아하며 그의 머리를 연신 쓰다듬었다.
“…그 때, 유리벽에 손을 대었을 때, 사실은 이렇게 쓰다듬어주고 싶었어.”
그 말에 이치마츠는 결국 이를 악물고 짐승과 같은 기이한 울음소리를 내며 독으로 계속 광야를 적셔나갔고, 쵸로마츠는 그런 이치마츠를 말없이 끌어안아 기꺼이 자신의 품 안에 넣어줬다. 그에게 닿은 신체 부위가 독으로 침식되어갔지만 쵸로마츠는 이치마츠를 품에서 놓지 않았다. 이미 자신은 독에 중독된 지 오래였기에, 이제 와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쵸로마츠는 조금 전 이치마츠가 올려봤던 하늘을 살폈다. 밤하늘은 독으로 중독되어가는 지상과 달리 여전히 별들이 가득 차 맑고도 찬란했다.
어쩌면, 자신이 그에게 정말로 원했던 건 따로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없는 공허한 광야의 한 가운데서, 보랏빛 독을 품은 남자가 그런 생각을 품었다.
'おそ松さん'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소+이치]고양이 (0) | 2016.01.09 |
---|---|
[이치카라]상자 속 남자 (0) | 2015.12.26 |
[쵸로오소]푸른 장미(中) (2) | 2015.12.19 |
[카라토도]내 남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 (0) | 2015.12.16 |
[쵸로오소]아네모네와 달리아 (0) | 2015.1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