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장 소재 주의
*제목을 뭘로 할까 고민하다가 번뜩 떠올린 유명 라노벨 제목 패러디로 결정했는데 써놓고 보니 뜻밖의 성우장난이 성립되고 말았습니다(내여귀 남주 성우=카라마츠 성우)
X됐다.
지금도 생생하게 되새길 수 있는 간결하고 함축적인 석자의 문장은, 마츠노 가의 막내 마츠노 토도마츠가 자신의 쌍둥이 형제 중 한 명이자 마츠노 가의 차남으로 알려진 마츠노 카라마츠에게 자신에게 있어 가장 은밀하면서 동시에 형제들에게는 혀 깨물고 죽는 한이 있어도(어디까지나 비유적 표현이 그렇다는 거지 실제로 혀를 깨물거나 하지 않았다. 실제로 토도마츠는 지금도 무사히 살아있지 않은가.)절대로 들키고 싶지 않았던 특이한 비밀을 들켰을 때 백지가 된 머릿속에서 유일하게 떠올린 문장이었다.
그만큼, 당시의 마츠노 토도마츠에게 있어서는 절망적이라는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던 상황이라는 것이다.
“…토도마츠?”
확실히 여장하고 남자를 꼬시는 자신의 모습을 원망스러운 우연의 힘에 의해 현장에서 쌍둥이 형제에게 들킨다는 것은, 어찌해서 객관적인 시선으로 판단한다면 여러모로 쪽팔려 죽고 싶은 상황이긴 하다.
그 날에 자신을 보고 얼빠진 얼굴로 믿기지 않는 듯 막내 동생의 이름을 부른 카라마츠의 모습을, 토도마츠는 여러 의미에서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 지금도 가끔씩 회고했다.
[카라토도]내 남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
W. Arcadia.
형제들 사이에는 비밀이 없다는 여섯 쌍둥이의 암묵적 불문율에도 불구하고 마츠노 토도마츠에게는 형제들에게 숨기는 비밀들이 많았다. 대개는 거짓말과 달변으로 숨겨둔 경우가 많았는데, 이렇게 숨길 경우 여섯 쌍둥이의 별 아래서 태어난 운명의 인과적 작용 때문인지 뭔지는 몰라도 대부분 형들에게 들켜버리곤 했다. 파칭코에서 딴 거금을 들키거나, 일명 톳티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일방적인 자기 불이익으로 끝난다 해도 일종의 해프닝으로서 마무리 되니까. 파칭코에서 딴 거금으로 다 같이 초밥을 사먹거나, 톳티라는 새로운 별명이 생기는 것이 해프닝의 결과물이었다. 뭐라고 해도 들키지 않는 것이 제일 좋은 결과였지만 이정도만 해도 토도마츠에게는 중대한 비밀이 되지 못했기에 그만한 정신적 타격도 없었다.
그러나 마츠노 토도마츠에게는 유일하게 무슨 일이 있어도 형제들은 당연하고 자신을 아는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들켜서는 안 되는 가장 깊숙한 비밀이 존재했다.
마츠노 가의 쌍둥이들은 서로가 구분하기 힘들만큼 닮았다고 해도 면면들을 자세히 뜯어보면 각자의 개성과 미세한 차이점이 분명히 존재했다. 토도마츠의 경우에는 형제들 중에서 유독 귀여움이 느껴지는 인상에 여성스러운 태도를 갖췄다는 것이 그만의 개성이자 다른 형제들과 구분할 수 있는 차이점이었다. 학창시절부터 남자애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여자애들과 수다 떠는 것을 즐겼던 그는 종종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계집애 같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물론 성별학적으로는 의심할 여지없는 남자였기에 처음에는 그러한 평을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아도 속으로는 께름칙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자주 그런 말을 듣게 되자 토도마츠는 슬쩍 호기심과 흥미가 동하기 시작했다.
정말로 그렇게 여자 같이 보이나?
어느 날 학교에 가기 전 거울에 비춰진 자신의 얼굴을 요모조모 살피며 그런 생각을 짧게 가졌던 것이 시초였다.
10대 남자 청소년이 가질법한 시답잖은 호기심과 흥미였고, 어떤 식으로 보면 이성에 대한 관심이 다소 특이하게 발현된 것이라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계기가 어떻든 간에 중요한 것은 그로 인한 결과였다. 어쨌든 그런 흐름으로, 토도마츠는 여장이라는 혼자만이 아닌 취미를 가지게 되었다. 학창 시절에는 단순히 혼자 방에서 여자애 옷을 입어보면서 나름 패션에 대한 연구를 해보는 것이 전부였지만, 성인이 되니 학생으로서의 제약이 없어진 것에 대한 무모한 용기가 생겨버려 그 때부터 조금씩 여장을 하고 밖으로 나가는 횟수를 늘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장한 자신에게 헌팅을 시도한 남자를 처음으로 조우했을 때, 토도마츠는 ‘이건 써먹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번뜩 가지게 되었다. 그것을 전환점으로 토도마츠는 더욱 자신의 여장에 공을 들이게 되었다. 가발, 옷차림, 구두, 말투와 행동는 물론이고 심지어 여장할 때 남자들의 연락처를 저장해둘 휴대폰을 따로 장만하거나 ‘토모코’라는 가칭까지 짓는 철저함을 선보였다. 그런 일련의 행동들은 단순한 취미 차원에서가 아니라 남자들을 역헌팅하여 그들의 지갑을 털어내는, 지극히 타산적이고 음험한 계획에서 비롯된 노력이었다. 그런 토도마츠의 노력은 제법 빛을 발하게 되었고, 점점 넘어오는 남자들의 횟수가 늘어나자 최근에는 아예 여러 남자들과 동시에 만나 다리를 걸치는 등 대범한 행동을 벌이기까지 했다. 자신의 취미도 즐기고 남자들에게 돈을 얻어내는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효과였다. 그렇게 토도마츠는 자신의 비밀을 남자들에게도, 형제들에게도 들키지 않고 지금까지 잘 지켜나갔다.
마츠노 카라마츠에게 우연찮게 들키기 전까지는 말이다.
여장을 했다고 해도 20년 가까이 함께 살아온 쌍둥이 남동생을 못 알아볼 카라마츠가 아니었다. 자신의 쌍둥이 남동생이 여장을 하고 낯선 남자와 팔짱을 껴서 갖은 교태를 부리는 장면을 목격하고, 여장을 하고 낯선 남자와 팔짱을 끼고 애교를 부리는 것을 쌍둥이 형에게 들키는 서로 입장은 반대여도 당시의 기분을 말과 글로 설명하기 난해하다는 점은 동일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발각되고, 발견해버린 이상 무슨 변명이 필요할까. 일단 데이트하던 남자에게 대충 변명을 붙여 급하게 돌려보낸 토도마츠가 곧바로 카라마츠를 아무도 없는 뒷골목으로 끌고 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필사의 도게자였다.
“부탁입니다! 비밀로 해주세요!!”
겉으로 드러나는 두 사람의 현재 모습은 칙칙한 뒷골목에서 세련된 옷차림을 한 곱슬머리의(물론 가발이다) 여자아이가 가죽점퍼에 선글라스를 쓴 남자에게 도게자 하며 비는 불쌍한 모습이라 사건 정황을 모르고 보면 카라마츠는 가련한 여자아이를 뒷골목에 도게자를 시킨 파렴치한으로 비춰졌다. 누군가가 이런 모습을 봤다가는 경찰에 끌려갈지도 모르고, 남동생을 계속 차가운 맨땅에 도게자 시키기에는 동생을 아끼는 형으로서도 못할 짓인지라 카라마츠는 일단 토도마츠를 일으켜 세워 진정시키고자 했다.
“토, 토도마츠. 일단 일어나도록 해라. 일어난 뒤에 무슨 일인지 자초지종부터 듣고….”
“비밀로 하겠다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절대로 못 일어나!!”
“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일단 일어나, 응?”
나중에 가서는 본인이 거의 반쯤 울 기세로 막내의 진정을 호소하는 마츠노 가의 차남과 비밀 보장을 사전에 약속받기위해 온몸을 투신할 각오로 필사적인 마츠노 가의 막내 사이에서 벌어진 의미불명의 실랑이는 몇 번이고 카라마츠가 비밀을 지키겠다고 약속한 뒤에야 토도마츠는 한참 동안 도게자로 엎드린 몸을 간신히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그 후 카라마츠는 토도마츠의 취미와 그것을 이용한 수법들에 대해 듣게 되었다. 이런 일을 자기 입으로 형제에게 직접 말해줘야 한다는 것이 상당히 쪽팔린 일이지만, 잠깐의 당황 뒤에 드러난 선글라스 너머의 눈빛에는 확실한 설명을 요구하는 뜻이 깃들어있어서 토도마츠는 막내의 숙명으로서 그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기에 전부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이런 과정을 거쳐 카라마츠는 토도마츠의 비밀을 알게 되었고, 그의 비밀을 지켜주기로 했다. 처음에는 동생이 여장하고 남자들에게 작업 건다는 것이 걱정되었는지 토도마츠에게서 설명을 다 듣고는 그만두라는 뜻을 넌지시 내비쳤지만 토도마츠가 그에게 형제간의 취향은 존중해주라는 말과 함께(“나도 지금까지 카라마츠 형의 그 안쓰러운 취향을 간신히 눈감아주고 있거든?”) 지금까지 아무 일 없었고, 이야미, 치비타와는 달리 자신은 적당할 때 끊으니 문제없는 자신감을 보여줬기에 원래부터 동생들의 고집에는 약한 카라마츠는 결국 막내의 기세에 밀려 어물쩍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 경위를 거쳐 토도마츠는 카라마츠의 입단속을 단단히 시키는 것에 성공하였고, 그리하여 한 명만이 알고 있던 비밀은 두 사람만의 비밀이 되었다.
* * *
그리고 현재, 오늘도 ‘토모코’ 휴대폰 주소록에 저장되어 있는 수많은 메일주소 중 한 명과 데이트를 하던 중인 마츠노 토도마츠(ver. 토모코)는 상당히 난처한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토모코 짱~ 그러지 말고 내가 진-짜 재밌는 곳을 알고 있으니까 거기로 가자, 응? 토모코 짱도 분명 좋아할 거라니까?”
아, 젠장. 진짜 징그럽네. 토도마츠는 속이 뻔히 보이는 남자의 말에 마음속으로만 헛구역질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여장을 하고 남자들을 상대하다보면 간혹 단순히 가벼운 데이트를 하는 엔조이한 관계가 아니라 육체적 관계만을 노리고 접근하는 아랫도리에 뇌가 달려있는 것 같은 녀석들이 달라붙게 된다. 그런 녀석들을 상대하게 되면 자신과 데이트를 하면서 은근한 손길로 허리나 엉덩이를 만지거나, 심지어 실수를 빙자해 가슴을 스쳐 만지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다행히 가슴에는 패드를 넣어 남자들은 토도마츠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했지만 그런 성추행을 겪을 때마다 토도마츠는 여자들의 고충을 절실히 동감하면서 억지웃음으로 애써 아무렇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여자들도 당연히 싫어하는데 하물며 남자라고 좋겠는가. 오히려 남자라서 더 싫었다. 그런 토도마츠가 상대 얼굴에 주먹을 날리지 않는 인내심을 발휘하는 이유는 아직 뜯어먹을게 많은 상대방의 두툼한 지갑의 공로가 컸다.
하지만 이번 건 상대가 나빴다. 월척이 낚였구나 싶어서 며칠 정도 어울려 줬더니 제 머릿속에서 이미 중간 과정은 전부 거쳐 간 것인지 대놓고 발정 난 모습을 보여주며 능글맞은 목소리로 토도마츠를 러브호텔로 끌고 가려고 한 것이다. 아 젠장, 돈이고 뭐고 일찍 잘라내야 했는데. 그렇게 후회해봤자 애석하게도 이미 늦은 일이 되었다. 토도마츠는 최후의 수단으로 자신이 사실 남자라는 것을 밝힌 뒤 상대의 다리 사이를 걷어차고 도망칠까 싶었지만 자신을 벽으로 몰아붙이고 거칠고 습기 찬 기분 나쁜 숨을 연이어 헐떡이는 지금 모습을 봐서는 토도마츠의 다리 사이에 또 다른 다리가 달려있어도 박을 구멍이 있으니 전혀 상관없다며 강제로 러브호텔로 데려갈 오싹한 예감이 들었기에 차마 그러지도 못했다.
이렇게 되면 방법은 하나뿐이네. 토도마츠는 최후의 수단으로 등 뒤로 감춘 또 다른 휴대폰으로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전송했다. 이제 남은 건 시간을 끄는 일이겠구나 싶어 토도마츠는 최대한 가련하고 불쌍한 눈망울로 남자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토, 토모코는 아직 그런 거 무서워서 싫은데… 오, 오늘은 무리고 다음에 마음의 준비가 되면….”
“에헤이~ 무서워할 거 하나도 없다니까? 이 오빠만 믿고 따라오면 된다고?”
네 녀석을 믿을 바에야 차라리 내일부터 근면성실하게 일하겠다는 오소마츠 형의 말을 믿겠다.
아무래도 남자는 오늘 날을 제대로 잡고 왔는지 쉽사리 토도마츠를 보내지 않았다. 그렇게 몇 번의 묘한 눈치 싸움과 실랑이가 벌어질 때 쯤, 남자는 무언가를 깨달은 표정을 드러내더니 곧이어 음흉한 미소를 보란 듯이 토도마츠의 눈앞에 선히 드러냈다. 아, 이거 위험해. 그 불길한 미소에 토도마츠의 머릿속에서 빨간불이 켜지는 건 당연했다.
“아하~ 알았다? 토모코 짱은 러브호텔보다 이런 데서 하는 걸 즐기는 편이구나?”
누가 그렇다는 거야! 대체 어떤 뇌구조를 가지면 이런 생각을 하는지 토도마츠는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형제들 중에서 가장 밝히는 오소마츠 형도 이런 짐승 이하의 사고방식을 하지 않을 거라는 태클을 걸던 중, 남자의 손이 자신의 허벅지를 타고 짧은 미니스커트 안으로 슬슬 들어오려고 하자 토도마츠는 바로 인상을 매섭게 구기며 늦기 전에 일단 이자식의 다리 사이를 걷어차 재기불능으로 만들어 놓을까 진지하게 고민하던 때였다.
“어이.”
그 때, 무시무시한 기세로 낮아진 목소리가 남녀(사실은 남남)의 사이를 갈랐다.
토도마츠가 정신을 차리고 육안으로 사태를 확인했을 때는 이미 자신에게 찰싹 달라붙어 발정 난 기세를 보여줬던 남자는 반대편에 위치한 쓰레기장에 던져졌고, 그 대신 토도마츠의 앞에는 또 다른 익숙한 인물이 가로막고 있었다. 가슴을 열어젖힌 파란 점프슈트와 걷어 올려 진 소매 아래로 보여 지는 굵은 팔, 그리고 토도마츠의 기억을 기준으로 봤을 때 그로서는 상당히 오랜만에 보는 카라마츠의 화난 얼굴이 토도마츠의 시야를 가득 메웠다.
“어이, 네 녀석. 내 동생에게 그딴 짓을 하다니, 각오는 되어 있겠지?”
위협적으로 손을 우득거리며 다가오는 카라마츠의 모습에 쓰레기 범벅이 된 남자는 꼴사나운 비명을 지르더니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나 꽁지 빠진 개처럼 쏜살같이 도망치고 말았다. 도망치는 남자의 꼴사나운 뒷모습을 보고 잠깐 동안 쫓아갈지 그냥 놔둘지 망설이던 카라마츠는 일단 저런 녀석을 쫓는 것보다 동생의 안위를 살피는 것이 우선적이기에 남자가 아닌 토도마츠에게로 달려왔다.
“토도마츠, 괜찮은 거야?”
“정말, 메일 보낸 지가 언제인데 왜 이렇게 늦은 거야, 카라마츠 형! 덕분에 나 혼자 뒷감당 하는 줄 알고 내심 겁먹었는데 말이야.”
카라마츠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토도마츠는 입고 있던 미니스커트의 주름을 펴고 머리에 쓴 가발과 모자를 정돈하며 늦게 온 카라마츠에 대해 타박했다. 카라마츠에게 비밀을 들킨 후로 가끔 토도마츠는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카라마츠를 불렀다. 다른 남자들을 불렀다가는 어장 관리했다는 사실이 들통 날 수도 있고, 주소록에 있는 남자들 중에서 카라마츠보다 더 강한 녀석은 없었기에 토도마츠는 항상 임시방편으로 그를 부르곤 했다. 다만 카라마츠를 부르면 과잉 진압으로 그 상대방과 연락이 끊겨질 각오는 해야 되지만, 대개가 조금 전과 같이 질이 나쁜 경우이기에 딱히 단점이라 단정 짓기도 뭐했다.
카라마츠는 잠시 동안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토도마츠를 찌푸린 얼굴로 쭉 지켜보다가 마침내 결심이 선 얼굴로 토도마츠에게 말을 걸었다.
“토도마츠.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역시 이 일 그만두는 게 좋을 것 같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조금 전과 같이 그런 녀석들한테 무슨 봉변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그래.”
“아, 저런 녀석들이야 드물게 있는 경우야. 이번에는 끊을 타이밍을 놓쳐서 이렇게 된 것 뿐이니까….”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잖아! 좀 더 너 자신을 소중히 여기라는 의미에서 말하는 거라고!!!”
그 말이 끝나고, 두 사람 사이에 잠시 동안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드물게 동생 앞에서 역정을 내버린 카라마츠의 언행도 충분히 놀라운 일이지만, 그것보다도 더 뜻밖인 것은 카라마츠가 쏟아낸 말의 내용이었다. 그 말은 단순히 남동생의 안위를 걱정해서 말하는 것과는 차원이 조금 달랐다.
그것은, 마치,
“헤에ㅡ 카라마츠 형, 혹시 질투하는 거야?”
토도마츠는 바로 짓궂은 웃음과 함께 손으로 입을 반쯤 가리면서 놀리는 듯한 말투로 카라마츠의 말을 받아치자 카라마츠는 토도마츠의 말에 방금 전의 기세는 어딘가에 버리고 온 것인지 바로 당황하는 반응을 즉각 보이며 조금 붉어진 얼굴로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버렸다.
“뭐…!! 아니, 나는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니라!!”
“하긴 조금 전의 카라마츠 형은 확실히 여자들의 시선에서 봤더라면 충분히 멋있었으니까. 나도 조금 전에 살짝 두근거렸을 정도라고?”
그렇게 말하면서 조금씩 자신을 벽으로 몰아붙이는 모습은 은근히 오소마츠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안 그래도 죽이 잘 맞다고 생각하던 차였는데 역시 이런 안 좋은 부분까지 형님을 닮아버렸나 싶은 난처한 생각이 얼핏 들었지만, 그런 생각은 잠시 뒤로 미뤄둬야 할 일이었다. 역시 이런 부분에서 동정 티가 난다니까. 토도마츠는 자신이 천연덕스럽게 다가올수록 더더욱 당황하면서 물러나고 마는 카라마츠의 모습이 더욱 재밌어져서 토도마츠는 아예 카라마츠와 팔짱까지 해서 교태가 묻어나는 목소리로 아양을 선보였다.
“어때? 아까 구해준 답례로 데이트 정도는 해줄 수 있는데. 아, 그래도 돈은 받아낼 생각이긴 하지만.”
“아니 그게… 그러니까….”
“아까 전에 여자를 빼앗긴 것 같은 질투로 불타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왜 자꾸 빼는 걸까~”
“여, 여자가 아니라….”
“응?”
“여자가 아니라, 그게, 여동생 같아서… 데이트는 조금… 그, 뭐랄까… 묘한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여동생,
확실히, 곰곰이 따져보면 토도마츠는 여장을 했다고 해도 본래의 타고난 이목구비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닌지라 여장을 한 채로 다른 형제들과 나란히 서도 성별은 둘째 치고 쌍둥이라는 것은 금방 확연히 드러날 정도였기에 지금의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은 그런 외모의 공통점 덕분인지 연인이라기보다는 우애 좋은 남매 사이로 먼저 비춰지기 쉬웠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카라마츠가 남자를 쫓아낼 때 사납게 던진 말은 연인 이전에 여동생을 지키는 오빠의 인상이 강렬했다.
그런 건 사실은 당연한 일이었다. 카라마츠가 여장한 토도마츠를 여동생으로 보는 것도 납득은 힘들어도 이해는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어째선지, 토도마츠에게는 ‘여자’보다도 ‘여동생’이라는 말이 더욱 부끄러운 단어로 다가오고 말아 카라마츠의 말뜻을 이해하자마자 바로 카라마츠 이상으로 얼굴을 새빨갛게 달구고서는 바로 팔짱을 풀고 본래의 목소리와 태도로 돌아와 민망함을 견디지 못하고 빽 소리치고 말았다.
“하, 하아아!?!? 바보 아냐!? 진짜 안쓰럽네! 정말로 사이코패스 아니냐고!! 안쓰럽네, 정말!!”
“토, 토도마츠?”
“시끄러! 말하지 말라고! 바보 아냐!? 말하면 말할수록 안쓰럽기만 하니까 진짜 아무 말도 하지 마! 아아, 정말 이런 안쓰러운 형한테 왜….”
스스로도 원인 모를 부끄러움에 한동안 새빨개진 얼굴로 난리를 치며 지금까지 카라마츠에게 던졌던 막말들을 총망라해서 되는대로 던져버리던 토도마츠는 제풀에 지쳐 잠시 얼굴을 감싸고 제자리에 주저앉다가 갑자기 텐션이 급변하는 막내의 모습에 다시 걱정이 들어 어디가 아픈 게 아닌가 하고 다가가던 카라마츠의 손이 토도마츠의 머리에 닿기 전에, 토도마츠가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부루퉁한 표정으로 카라마츠를 잠시 노려본 뒤 예고도 없이 몸을 틀어 골목길 밖으로 씩씩거리며 걸어 나가다가 고개를 카라마츠가 있는 곳으로 돌려서는 방금 전까지 소리치던 것과는 달리 여전히 붉은 기가 남아있는 얼굴과 잔뜩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스타버 갈 건데, 어떡할래?”
토도마츠의 뜻밖의 제안에 카라마츠는 잠시 멍하니 자리에 서서 두 눈만을 깜빡거리다가 이윽고 평소의 허세 넘치는 미소를 짓고는 토도마츠가 서있는 곳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원하는 대로 함께 어울려주지, 마이 브라더.”
“정말로 안쓰럽다니까.”
그렇게 말한 토도마츠였지만, 그 말과 함께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지어보인 미소는 더없이 자연스러우면서 평소의 토도마츠의 모습 그대로였기에 카라마츠도 그에 뒤따라 함께 웃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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