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장미(上)에 이어서.
인연이에요 인연 서러운 인연이요
너와 내가 무슨 인연으로 만났는지의 서러운 인연이요
ㅡ박지혜, 「R의 드릴」
그곳에는 붉은 장미가 피었었다.
“그러고 보면 이 열쇠도 꽤 오래 되었지.”
이제 바꿀 때가 되긴 했어. 티끌하나 묻어나있지 않는 백색의 면장갑을 낀 손바닥 위에 낡은 열쇠를 얹어놓고 오소마츠는 새삼스러운 목소리로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녹이 잔뜩 슬어서 본래의 기능을 제대로 할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만큼 형편없이 낡아버린 열쇠에는 본디 청동으로 만들어진 몸체에 울긋불긋 붉은 녹이 엉망으로 칠해져 있었다. 카라마츠도 그를 따라 열쇠를 내려다봤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오랜 세월의 풍파를 맞은 장미 열쇠는 안쓰럽게 보이기까지 했다. 카라마츠는 그 열쇠를 알고 있었다. 저택의 가장 안쪽에, 자신의 어머니가 은밀히 숨겨놓고 독점하고 있는 새파란 낙원으로 통하는 입구의 열쇠였다. 아니, 달랐다. 그 열쇠는 푸른 화원으로 통하는 열쇠가 아니었다. 그래서 카라마츠는 열쇠에 달라붙은 탁한 붉은 빛의 녹을 보며 열쇠가 이토록 낡아버린 이유가 본래 자신이 만들어진 의미를 상실했기 때문이지 않을까하는 추측을 품었다. 오소마츠는 조금 더 자신의 시선을 열쇠에 머물게 했다가 눈꺼풀을 감아 거둬들이고는 손바닥에 올려놓은 그대로 손가락을 접어 열쇠를 감싸 쥐었다. 그답지 않게 소중히 품어주는 모양새라 카라마츠는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자신의 짙은 눈썹을 팔자로 만들었다. 그리고 오소마츠는 열쇠를 도로 원래의 재킷 안주머니, 심장과 가장 가깝고도 깊은 곳에 넣었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그는 아마도 저 열쇠를 버리지 않겠지. 낡았다 불평을 해도 마지막에는 품안에 고이 넣어 간직하겠지.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모친이 남기고 간 유품과 함께 모든 것을 버릴 만한 남자가 되지 못했다.
카라마츠가 인정하고 존경하는 하나 뿐인 형은 그런 사람이었다.
불행하게도, 말이다.
[카라오소]붉은 장미(上)
W. Arcadia.
열 살, 처음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저택에 들어온 날을 카라마츠는 뚜렷이 기억했다.
그의 어머니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좋은 사람은 되지 못한 여자였다. 허영심과 출세욕이 강하고 오만한데다가 기분이 안 좋을 때면 히스테릭한 모습을 드러냈고, 어디서 났는지 모를 멀쩡한 어린 아들을 버젓이 두었음에도 아들을 위해 제대로 일해서 돈을 벌 생각을 조금도 가지지 않고 하루하루 돈쓰는 궁리만 열심이인 자격미달의 어머니였기에 주변 사람들에게 그녀의 평판이 좋을 리 없었다. 카라마츠도 자신의 어머니가 좋은 사람은 아니고, 문제점이 많다는 것을 어렸을 적부터 인지하고 있었으나, 어찌 되었든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였다. 모성애가 없을 만큼 되먹지 못한 인간은 아니었는지라 그녀는 아들인 카라마츠를 나름대로 아껴줬고, 짜증을 부리더라도 결코 아들에게 화풀이로 언성을 높이거나 손찌검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과보호적인 면까지 보일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런 어머니의 애정을 받으면서도 카라마츠는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그녀는 마치 자신을 이런 비루한 삶에서 꺼내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그런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카라마츠는 자신이 그런 구원자와 어머니를 이어주는 매개체 밖에 되지 않다는 것에 속이 비틀려 애써 외면했다.
다행인 점은 카라마츠를 향한 그녀의 모성은 진실이었고, 불행인 점은 카라마츠의 어렴풋한 짐작이 사실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카라마츠의 친모는 젊은 시절 어떤 부호의 남자와 눈이 맞았고, 두 사람은 정열적인 사랑에 빠져 급속도로 관계를 발전해나가다가 나중에는 카라마츠라는 떡두꺼비 같은 아들까지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남자에게는 집안에서 결정해준 정혼자가 있었고, 양 집안의 관계와 더불어 그녀와 결혼을 하면 졸부였던 자신의 집안의 명성이 더 드높아지는지라 남자는 카라마츠의 친모에게 정혼자는 어차피 몸이 안 좋아 얼마 살지 못할 테니 그녀가 죽는 10년 후가 되면 반드시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했고, 그녀는 그 약속을 믿고 지금까지 카라마츠를 키우며 남자를 기다렸다.
저택에 들어가기 전날, 카라마츠는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연애담과 더불어 그것을 한 편의 로맨스 소설처럼 근사하게 포장해 아들에게 들려주면서도 황홀경에 젖은 표정으로 자신의 이야기에 스스로 도취되어버린 어머니의 표정을 보며 카라마츠는 그 이야기를 마냥 좋은 연애적 미담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어느 한 명이 죽어야지 성사가 되는 사랑이 아닌가. 그리고 그 정혼자라는 사람이 10년을 채워도 병으로 죽지 않는다면? 카라마츠는 그 허점을 떠올렸다가 어머니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고 금방 그 허점을 메울 방법을 찾아내고는 주먹을 꼭 쥐며 부디 그 사람이 제때 병으로 죽었길 바랐다.
그리하여 카라마츠는 열 살이 되던 해 어머니와 함께 인생 역전이 되어 대저택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크고 웅장한 저택에 들어서고, 태어나서 처음 만나게 된 친부와 더불어 자신을 ‘카라마츠 도련님’이라고 부르며 허리를 깊이 숙이는 사용인들의 모습에 카라마츠는 이 상황 자체가 적응이 되지 않아 기가 죽은 나머지 어머니의 옷자락을 잡으며 움찔움찔 떨기에 바빴다. 그에 비해 그의 친모는 처음부터 이곳이 자신의 집이었다는 듯 당당히 고개를 빳빳이 들고 새로운 안주인으로서 사용인들의 인사를 거만하게 받아들였다.
그 후 카라마츠의 부친은 처음으로 가족들끼리 모였으니 쌓인 회포를 풀자며 제의했지만 카라마츠는 모처럼의 만남이니 부모님들끼리 먼저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은 그 사이에 저택을 구경하고 싶다는 핑계를 댔다. 카라마츠의 말에 부친은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아직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했는지 관대함이 드러난 끄덕임으로 카라마츠의 핑계를 받아들여줬고, 덕분에 카라마츠는 무사히 저택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저택을 안내하겠다는 사용인들의 제안을 일일이 거절한 뒤야에 간신히 밖으로 나온 카라마츠는 정원 쪽으로 가서야 제대로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이렇게 커다란 저택에서 산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속이 뒤틀리고 가슴이 답답했다. 풍요롭지 못했어도 이전의 삶이 나쁘다고 할 수 없었는데 말이다. 카라마츠는 벌써부터 자신이 예전에 지냈던 집이 그리워졌지만, 어머니와 아버지의 앞에서는 차마 그 그리움을 표현하지 못했다.
하아. 한참 동안 정원을 배회하던 카라마츠가 어느 나무 밑에 쭈그려 앉아 한숨을 푹 쉴 때였다.
“거기서 뭐해?”
자기 또래로 추정되는 앳된 목소리에 카라마츠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그곳에는 자신과 닮은 얼굴의 사내아이가 서 있었다. 단정한 연미복을 입고 있는 열 살 남짓의 아이는 나무 그늘 밑에 앉아있는 카라마츠를 흥미로운 눈빛으로 관찰하다가 이윽고 손바닥 위를 주먹으로 탁 치면서 무언가를 알아차리고는 카라마츠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아! 네가 오늘 들어온 새로운 도련님이구나, 그치?”
“에? 아, 응. 그런데 그쪽은 누구….”
“난 오소마츠! 오늘부터 이 저택에서 일하게 된 집사, 라고 해야 할까. 그러는 도련님 이름은 뭔데?”
“난 카라마츠라고 해.”
“카라마츠인가. 음, 꽤 괜찮네. 그나저나 카라마츠, 도련님이라는 녀석이 그렇게 기가 죽으면 어떻게? 모처럼 이렇게 커다란 저택에 들어온 거라고? 즐거워해야 하는 게 당연하잖아?”
“하지만 이런 덴 익숙하지가 않아서…. 사실은 별로 오기 싫었는데… 그렇지만 엄마가 줄곧 여기에 오고 싶어 했으니까.”
카라마츠를 그렇게 계속 말꼬리를 흐리다가 반쯤 웅얼거림으로 끝을 내고는 고개를 푹 수그렸다. 커다란 저택도, 자신을 떠받드는 사용인도,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한 부친도 그는 평생 살면서 원한 적이 없었다. 그가 원했던 것은 다만 소박하더라도 어머니와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어머니의 바람은 달랐다. 그녀는 어떻게 해서는 사랑하는 사람과 그가 가지고 있는 막대한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쥐고 싶었던 야망이 넘쳤던 사람이었다. 자신은 그저 어머니의 야망에 이끌려 여기까지 반강제로 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돌아가고 싶어도, 카라마츠는 어머니의 꿈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사랑하는 어머니의 바람이니까.
“…그럼 익숙해지면 되잖아.”
“어?”
오소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고개를 들자 줄곧 양 허리에 손을 얹고 대화를 이어나가던 오소마츠가 어느 틈엔가 그의 앞에 쭈그려 앉아 눈을 맞춰주고 있었다.
“내가 도와줄게. 네가 여기서 잘 지낼 수 있도록 도와줄게. 어머니하고 같이 있고 싶은 거잖아, 안 그래?”
그리고 오소마츠는 말을 마치고 카라마츠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줬다. 위로의 손길이 담겨진 오소마츠의 쓰다듦에 카라마츠는 그 순간, 지금까지 억눌러왔던 불안과 외로움이 봇물처럼 터져 나와 그대로 눈물로 바뀌어서는 뚝뚝 흘러내리게 했다. 자신과 동갑내기로 보이는데도 마치 형이 있다면 이렇게 위로받았을 것 같아 카라마츠는 한 번 쏟아낸 눈물을 그치지 못했고, 반면 오소마츠는 갑자기 카라마츠가 울 줄은 몰랐는지 잠시 놀랐다가, 이내 어린애치고는 너무 많은 것이 함축되어 있는 씁쓸한 미소로 카라마츠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으면서 그를 위로했다.
그리고 눈물을 그치고 어느 정도 진정되자 카라마츠는 슬슬 부모님에게 가봐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뒤이어 오소마츠도 같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란히 카라마츠 옆에 섰다. 그런 오소마츠의 모습에 카라마츠는 더할 나위 없이 안심이 되었다. 조금 전의 일 때문에 그런지 카라마츠는 벌써부터 오소마츠에게 많은 호감과 신뢰를 가졌고, 동시에 이 저택에 자기 또래의 남자아이가 있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오소마츠가 있다면, 괜찮을지도 몰라. 카라마츠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그리 생각했다.
그래, 어머니에게 소개시켜 주자. 집사라고 해도 나이가 비슷하니까 친구해도 되냐고 아버지에게 물어보도록 하자.
결심이 선 카라마츠는 바로 오소마츠의 손을 잡고 그대로 그를 데리고 저택으로 향했다. 갑자기 자신의 손을 잡고 저택으로 향하는 카라마츠의 카라마츠의 돌발행동에 오소마츠는 당황해서는 몇 번이고 멈춰서 손을 놓으라고 외쳤지만 카라마츠의 머릿속에는 그저 부모님에게 오소마츠를 소개시켜주는 것으로 꽉 찼기에 애석하게도 그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만약 그러지 않았더라면, 뭔가가 바뀌거나 했을까. 지금 생각해도 답이 잘 나오지 않는 질문이었다.
저택 앞에 도착하자 때마침 카라마츠의 친모가 아들을 찾기 위해 밖으로 나왔던 참이었다. 카라마츠는 두 사람을 발견하자마자 바로 웃으며 손을 흔들고는 기쁘게 외쳤다.
“엄마! 봐요, 저 친구가 생겼어요!”
자신의 앞에 달려오면서 그리 외치는 카라마츠의 말에 그녀는 잠시 무슨 의미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뒤이어 카라마츠가 데리고 온 아이의 얼굴을 확인했고,
그리고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ㅡ철썩!
오소마츠의 뺨을 사납게 내리쳤다.
* * *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소마츠와 카라마츠는 형제였다. 다만, 이복형제라는 것이 결점이었다.
오소마츠는 남자와 그의 정혼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다. 카라마츠보다 몇 개월 앞서 태어난 오소마츠는 건장한 사내아이로 이 세상에 나와 줬지만, 반면 그의 친모는 가뜩이나 유약한 몸에 아이까지 직접 출산해서 기력을 소진한 탓에 더욱 병약해지고 말았다. 덕분에 그녀는 하루의 대부분을 병석에 누워서 보냈고, 오소마츠는 그런 어머니가 쓸쓸해하지 않기 위해 매일 같이 그녀를 찾아왔다. 그녀는 항상 웃는 얼굴로 하나 뿐인 아들을 반겼고, 아들도 어머니를 웃게 해기 위해 언제나 밝은 모습만을 보여줬다. 그러나 오소마츠는 어렸을 적부터 남다른 판단력으로 자신들의 부모가 처음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을 감지했다. 부인이 아픈데도 따뜻한 말은 고사하고 병석에 찾아와주지 않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에게 체념한 어머니. 오소마츠는 자신의 어머니가 처음부터 버려진 존재라는 것을, 그래서 아버지가 자신의 어머니가 알아서 사라져주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는 더욱 어머니에게 매달리면서 그녀를 낫게 할 방도를 나름대로 찾아봤지만 결국은 허사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더욱 기력이 쇠해져 가끔은 뒤뜰로 산책 갔던 것도 더는 못하게 되었고, 그저 자리에 누워 가쁜 숨을 쉬는 것 밖에 하지 못했다.
너라도 부디 여기에 남아있어주렴.
함께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살아온 생애만큼이나 덧없는 유언이었다.
본래라면 전처의 아들인 오소마츠가 저택에 남아있을 수 없었다. 시설에 맡겨지는 식으로 저택에서 쫓겨나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하지만 오소마츠는 이 저택에 남고자 했다. 어머니의 죽음의 방조한 원망스러운 아버지가 있는 저택이었지만, 동시에 어머니의 추억이 남겨진 유일한 장소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저택에 남아 달라고 부탁받았다. 마지막 부탁을 받은 이상, 오소마츠는 좋든 싫든 저택에 필사적으로 매달려야만 했다. 그는 아들로 인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사용인으로 부려먹어도 좋으니 자신을 이 저택에서 계속 지내게 해달라고 아버지에게 엎드려 빌었다. 자존심은 이미 벗어던진 지 오래였고, 아버지를 향한 원망도 전부 깊숙한 곳에 넣어두고 썩히도록 방치했다. 그것들 보다 중요한 것이 오소마츠에게는 있었다. 그런 어린 아들의 애원에 그는 잠시 난처해하다가, 그래도 최소한의 부성애는 존재했는지 결국 오소마츠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이제 오소마츠는 저택의 도련님으로 지낼 수 없게 되었다. 저택의 사용인으로서 저택에 지낼 자격을 얻게 된 반면, 그와의 혈연적 권한과 지원, 인연은 전부 박탈당하게 되었다. 그렇게 오소마츠는 저택의 집사가 된 것이다.
저택의 집사가 되고 오소마츠는 한동안 집사 교육을 받았고, 교육이 거의 끝나가 정식으로 집사 채용이 되었을 때, 카라마츠 모자가 저택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제는 자신의 고용주가 된 친부는 당분간은 눈에 띄지 않도록 숨어서 지내라 명령했고, 오소마츠도 자신의 존재를 옛적부터 알고 있어 껄끄럽게 여기던 그녀와 굳이 얼굴을 맞대서 험한 꼴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친모를 생각하면 진심으로 사이좋게 지낼 수도 없었고 말이다.
그러나 결국 카라마츠의 앞에 존재를 드러냈고, 곧이어 그의 친모에게까지 자신의 존재가 들통나버려 끝내 모든 것이 발가벗겨지고 말았다.
“형님.”
자신을 부르는 낮은 목소리에 오소마츠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오소마츠가 잠시 딴생각을 하는 그 사이에 카라마츠는 오소마츠의 옆에 나란히 앉아 팔짱낀 자세로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우왓, 깜짝이야. 소리 없이 옆에 앉지 말라고, 카라마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는 거야.”
걱정에 찬 목소리로 카라마츠가 물어보자 오소마츠는 가볍게 음, 하는 소리를 내다가 금방 대답해줬다.
“그리운 옛날 생각. 탱탱했던 당시의 마님하고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라서 말이지.”
“아….”
오소마츠의 말에 카라마츠는 금방 안색이 변해버려서는 죄책감으로 시선을 아래로 떨궈버렸다. 금방 티가 난다니까.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반응을 보고 씁쓸하게 웃어버렸다. 몇 번이고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했는데도 카라마츠는 지금도 그 당시의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언급되면 금방 제 잘못인양 풀이 죽어버리고 말았다. 그 때 자신이 눈치 없게 굴지 않았더라면 형이 엄마에게 맞지도, 아버지에게 매질 당해서 한동안 창고에 갇혀 지내지 않아도 되었을 거라고 그는 늘 후회로 중얼거렸다. 카라마츠는 그 때의 일을 지금도 잊지 못했다. 사랑하는 어머니의 매서운 손길이 자신의 이복형제의 뺨을 땅에 떨어지는 붉은 장미 꽃잎보다도 더욱 붉디붉게 칠했던 그 날의 순간을, 잊을 수 없었다.
“저, 형님.”
“응?”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괜찮겠어?”
“어이쿠, 우리 귀하디귀한 카라마츠 도련님이 뭐가 궁금해서 그러실까~”
“처음 나무 밑에서 만났던 때, 형님은 그 때부터 나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었지?”
그런데도
어째서 그렇게 상냥하게 대해줬던 거야?
그 말에 오소마츠는 잠시 눈을 살짝 크게 떴다가 천천히, 슬로우 모션과 같이 눈꺼풀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그러게, 왜 그랬을까. 어렸을 적, 당시의 자신은, 카라마츠를 어떤 심정으로 다가가 마주했을까. 이제 먼 기억이라 그 당시의 감정도 제대로 떠오르지 못했지만, 그래도 서로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어린 마음에 조금은 미워하는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만 해볼 뿐이었다. 하지만 곧이어 오소마츠는 그 추측을 부정했다. 그 때도, 열 살의 자신은 카라마츠를 미워하지는 않았을 거다. 만일 그랬더라면 지금처럼 이렇게 지낼 수는 없었겠지. 음, 맞아. 그랬을 거야. 신기하게도 자신은 카라마츠를 봤을 때 미워하지 못했다. 미워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형님.
붉은 장미 꽃잎이 떨어졌다.
부름에 따라 하늘하늘 떨어지는 장미 꽃잎 하나를 지켜보다가 손에 쥐어봤다. 떨어진 꽃잎이 내 손에 얹어진 것처럼, 너의 그 호칭도 처음에 그렇게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던가.
아, 그래. 그랬었지.
뭐야, 겨우 그런 걸 물어본 거냐.
“당연하잖아.”
그 말의 다음으로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어깨에 머리를 얹었다.
“형이 동생을 미워하면 되겠냐.”
입가에 미소를 띠우며 오소마츠는 망설임 없이 답해줬다. 처음 카라마츠를 만났을 때부터, 그를 만나기 전부터 형이 되었다. 오소마츠에게 있어서 카라마츠는 하나 뿐인 소중한 동생이었고, 그것이 전부였다. 다른 불필요한 것들은 갖다 붙일 필요도 없었다. 형이 동생을 챙겨주고 아껴주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니까. 오소마츠는 그렇게 생각하며 조금 더 카라마츠의 어깨에 무게를 실었다.
그런 오소마츠의 대답과 모습을 잠시 놀랜 눈빛으로 내려다본 카라마츠는 얼마 지나지 않아 기뻐하는 건지 슬퍼하는 건지 종잡을 수 없는 흐린 눈빛으로 얼굴을 굳히며 눈을 감고 가만히 자신에게 기대고 있는 오소마츠를 바라봤다. 처음에는 그런 형이 좋았다. 자신과 오소마츠 사이의 진실에 대해서 알게 되었을 때 카라마츠는 기꺼이 오소마츠에게 미움 받을 각오를 했다. 오소마츠는 자신을 미워할만한 자격을 가졌고, 자신은 마땅히 그 미움을 감내해야 한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오소마츠는 카라마츠를 미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집사로서 그를 성심성의껏 챙겨줬고, 형으로서 그에게 든든한 모습을 보여줘 의지할 수 있게 해줬다. 그런 오소마츠에 대해 카라마츠는 가슴 깊이 존경했고, 동생으로서 의지했고, 형제애의 의미에서 사랑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였을까. 그 사랑이 형제애의 범주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오소마츠의 말을 들었음에도 완전히 기뻐할 수 없는 자신이 그저 원망스러워 카라마츠는 그 몰래 주먹을 살짝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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