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간단하게 트위터에서 썰풀다가 마무리할 생각이었는데 망상이 폭주해서 연성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형님조 중심으로 쵸로오소+카라오소 포함된 연작 비슷한 글이 될 예정이라 다음에 올라올 글은 높은 확률로 카라오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형님조 너무 좋아요ㅠㅠ 너무 좋은 나머지 지금이 시험기간이라는 것도 잊을 지경입니다ㅠㅠ(어이)
어느 마을의 언덕 위에 위치한 저택에는, 푸른 장미 화원이 있다고 한다.
세간에는 보기 드문 희귀한 푸른 장미로만 만들어진 화원은 비록 그 규모가 작더라도 어디에서도 보지 못할 신비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어 그 화원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 모두가 그 화원을 한번이라도 보는 것을 소원으로 삼았고, 정원사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푸른 장미 화원을 가꾸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화원을 만들어낸 장본인인 저택의 젊은 안주인은 귀한 것이 있으면 함부로 남에게 보이지 않고 독점하는 기질이 있어 화원을 저택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놓고 누구도 함부로 화원을 볼 수 없도록 엄중히 관리하도록 만들었다. 덕분에 저택의 고용인들 대부분도 화원의 실체를 보지 못했고, 하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애가 타면서 사실은 그냥 헛소문이 아닐까하는 의혹까지 생겨들었다. 그러나 그런 의혹 속에서마저 한 번이라도 좋으니 푸른 장미 화원을 보고 싶다는 갈망과 환상이 어렴풋이 빛났다.
쵸로마츠는 그런 갈망과 환상을 가진 정원사들 중 하나였다. 그는 푸른 장미 화원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때부터 정원사로서 그 화원을 제 손으로 꾸미고 관리하고 싶다는 소원을 품었고, 그 소원을 이루고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노력도 쏟아 부었다. 그 아름다운 푸른 장미를 제 손으로 만질 수만 있다면.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올라 주체가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쵸로마츠는 드디어 정원사로서 저택에 고용되는 것에 성공했다. 당연히 쵸로마츠는 뛸 듯이 기뻐했고, 저택에 들어가는 것뿐인데도 이제 조금만 더 노력하면 푸른 장미 화원에 발을 들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감히 품었었다. 그러나 그의 앞에 놓여 진 시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원사를 고용했다고 해도 이제 막 들어온 신참에게 아끼는 화원을 무턱대고 맡길 수는 없었는지 고용주인 저택의 주인은 측근인 집사를 통해 첫날부터 쵸로마츠에게 저택의 앞마당과 일부 뒤뜰을 제외하고는 일절 발을 들이지도, 간섭하지도 말라는 엄령을 내렸다. 그 말을 들은 직후, 쵸로마츠는 당장 화원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에 실망하였지만 이내 희망을 새롭게 다 잡았다. 저택에 고용된 것만으로도 이미 절반은 성공한 일이다. 여기서 자신이 실력이 인정받게 된다면 언젠가 화원을 관리하는 권한을 받을지도 모른다. 쵸로마츠는 그리 결심하고 누구보다도 성실히 일했다. 본래부터 꼼꼼한 성격과 조형미에 대한 안목을 나름 갖추고 있는지라 쵸로마츠는 정갈하면서도 과하지 않을 만큼 수려한 정원수들을 제 손으로 꾸며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쵸로마츠의 실력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인정하였고, 어느 날에는 주인어른이 우연히 저택 안에서 정원을 내려 보다가 이번 정원사는 실력이 좋다며 지나가는 식으로 말했다는 집사의 증언까지 나왔다. 그 말을 듣고 쵸로마츠는 자신의 실력이 인정받았다는 기쁨과 동시에 화원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갔다는 성취감까지 얻어냈다. 그래서 쵸로마츠는 더욱 노력했다. 언젠가 화원으로 들어가는 그 날을 위해서.
[쵸로오소]푸른 장미(上)
W. Arcadia.
“오늘도 열심이시네요, 쵸로 씨.”
조금 전에 도착한 비료 포대들을 창고로 쌓아올리던 중에, 누군가가 자신에게 말을 걸며 다가오자 쵸로마츠는 하던 일을 멈추고 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닦으며 뒤를 돌아봤다. 창고 입구에서 쵸로마츠를 지켜보고 있는 인물은 오소마츠였다. 아니, 이미 처음부터 쵸로마츠는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 인물의 정체를 얼굴을 확인하지 않고도 금방 간파해냈다. 이 저택 내에서 자신을 ‘쵸로 씨’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인물은 그 뿐이니까. 저택 내에서 집사라는 신분으로서 유일하게 단정하면서도 몸에 착 달라붙는 검은 집사복과 하얀 면장갑, 붉은 넥타이를 갖춰서 입고 있는 그는 마치 자신과 같이 놀아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철부지 어린아이처럼 장난 끼 가득 머금은 미소로 창고에서 나오는 쵸로마츠를 반겼다.
“열심히 일하는 것도 좋지만 쉬엄쉬엄하는 편이 좋다고? 마침 어르신하고 마님은 외출 중이니 땡땡이치려면 지금이 좋은 기회고.”
“그래서 오소마츠 씨도 땡땡이 치고 있는 겁니까?”
“그야 당연하지!”
주인 어르신과 안주인이 외출한 틈을 타 일은 팽개치고 땡땡이를 치고 있다는 선언을 당당히 꺼내놓는 오소마츠의 근거 없는 자신감 넘치는 태도에 쵸로마츠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본디 집사가 가지고 있어야 할 규율에 대한 엄격함과 예절에 대한 근엄함은 어디에 버리고 왔는지 항상 볼 때마다 땡땡이치기 일쑤이고, 종종 고용인들과 담배를 피우며 노름을 하거나 메이드들을 주제로 음담패설을 서슴없이 늘어놓는 등 쵸로마츠가 보는 오소마츠는 여러모로 집사로서 자격 미달인 사람이었다. 이런 모습을 주인어른과 안주인에게 들키지 않고 용케 이 집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 마냥 신기할 지경이라 쵸로마츠는 항상 자신을 볼 때마다 나쁜 길로 유혹하는 오소마츠에게 어떤 의미에서는 감탄으로 혀를 내두른 적도 있었다. 하지만 계속 오소마츠의 제안을 거절하기에는 한창 많은 비료를 거의 대부분 혼자서 옮겼는지라 체력이 거의 방전되어 잠깐이라도 몰래 쉬고 싶은 것도 사실이었다. 결국 쵸로마츠는 한참 망설인 끝에 처음으로 오소마츠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의미에서 창고 옆에 대충 쓰러지듯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어차피 지금 작업복은 흙투성인지라 옷이 더러워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뜻밖에도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인 쵸로마츠의 태도에 오히려 당황한 쪽은 오소마츠였다.
“에, 정말로? 그 동정 쵸로마츠 씨가 지금 땡땡이를 친다는 겁니까?”
“동정이랑 땡땡이는 관계없거든요!! 안 그래도 아침부터 계속 비료포대 나르느라 힘들었던 차라 잠깐 쉬었다가 다시 일할 생각입니다.”
오소마츠의 말에 바로 버럭 거리며 반박한 쵸로마츠는 그 뒤에 비료를 짊어지느라 반나절동안 무리한 어깨를 이리저리 돌리며 뭉쳐진 피로를 조금이라도 풀어내고자 했지만, 그것만으로 피로가 완전히 풀리지는 못했다. 역시 이럴 때는 그게 있어야 하는데. 그런 쵸로마츠의 생각을 읽은 건지 오소마츠가 잠시 헤에, 하는 의미 모를 감탄사를 읊조린 뒤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오소마츠가 꺼낸 것은 다름 아닌 담배였다. 그는 담배갑에서 담배 두 개피를 꺼내고는 그 중 하나를 쵸로마츠에게 권했다. 자신의 눈앞에 내밀어진 담배에 쵸로마츠는 잠시 망설이다가 때마침 필요했던 것이 사실인지라 쵸로마츠는 목장갑을 벗어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오소마츠에게서 담배를 받았다. 새하얀 면장갑을 낀 두 손가락으로 담배를 쥔 모양새가 어쩐지 묘하게 인상 깊다는 생각도 몰래 품으면서 말이다. 쵸로마츠가 입에 담배를 물자마자 오소마츠는 바로 기다렸다는 듯이 미리 준비한 라이터에 불을 피워 그대로 쵸로마츠의 담배 끝에 불을 붙여줬다. 군더더기 없이 유려한 몸짓으로 상대에게 불을 붙여주는 모습은 이런 일 자체가 완전히 몸에 베어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일개 정원사한테까지 굳이 이렇게까지 나올 필요가 없는데도 말이다. 그런 프로페셔널 한 모습을 우연히 볼 때마다 쵸로마츠는 그대로 그가 집사는 집사구나 하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모습을 평소에는 찾으려고 해도 쉽게 찾을 수가 없는 것이 문제라면 나름대로 큰 문제였다. 쵸로마츠는 여러모로 아깝다는 생각을 하면서 담배 연기를 자신의 폐 안으로 밀어 넣었다. 폐와 뇌로 침입해 들어오는 담배 연기가 긴장을 완화시켜줘서 동시에 피로도 어느 정도 풀리는 기분까지 들었다. 기분 좋게 한 모금을 들이마신 쵸로마츠는 문득 시선을 위로 올려 자신의 앞에 서서 자신을 챙겨주느라 한 박자 늦게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그러고 보니 저 면장갑, 한 번도 벗은 걸 본 적이 없네.
한 손으로는 라이터를 당기며, 다른 한 손으로는 불이 잘 붙기 위해 담배와 라이터의 불을 감싸는 오소마츠의 손을 유심히 살피며 쵸로마츠는 뜬금없이 그런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는 신경도 쓰지 않은 부분인데 오늘따라 유독 눈에 들어왔다.
한동안 두 사람 사이에는 두 개의 담배 연기만이 배회했다.
“아, 그러고 보니 예전부터 쵸로 씨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말이야~”
“뭡니까, 갑자기.”
또 쓸 때 없는 이야기인가 싶어 벌써부터 미심쩍은 눈빛으로 보내는 쵸로마츠의 차가운 반응에 오소마츠는 잠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다가 은밀한 목소리로 쵸로마츠에게 말했다.
“쵸로 씨도 그것 때문에 들어온 거죠? 푸른 장미 화원.”
“쿨럭, 쿨럭!!”
또 장난치는 건가 싶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오소마츠의 말에서 예상 밖의 말이 튀어나오자 쵸로마츠는 당황한 나머지 헛들어간 담배 연기로 인해 한참 가래 섞인 기침을 쿨럭이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어라. 쵸로 씨, 괜찮아? 그런 쵸로마츠의 반응에 오소마츠는 태연히 그의 등을 두드리며 짐짓 걱정하는 반응을 보였지만, 지금 쵸로마츠에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혼자서 남몰래 품고 다녔던 저택에 들어온 본래 목적이 들통 난 것이다.
“쿨럭, 쿨럭! 어, 어떻게 그걸…!!”
“여기 들어오고 싶어 하는 정원사들 목적이야 다~들 똑같으니까 말이지. 쵸로 씨가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도 그것 때문 아니겠어?”
“저, 저는 그게….”
“아, 걱정하지 마. 그것 때문에 뭐라 할 생각도 없고, 어르신에게 찌를 생각도 없으니까. 쵸로 씨는 성실하고, 일도 잘하니까 말이지. 그냥 개인적으로 확인 차 물어본 거야. 확인 차.”
자신의 목적이 들통 났으니 그것을 트집삼아 쫓아내지는 않을까 싶어 불안감에 안색이 파리해진 쵸로마츠의 반응에 오소마츠가 바로 손사래를 치며 그를 안심시키고자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차원에서 물어본 질문이었다며 일축시켰다. 이제 보니 쵸로 씨, 완전 새가슴이네. 역시 동정이라 그런가? 오히려 쵸로마츠의 반응을 통해 놀림거리를 찾아낸 오소마츠의 능글맞은 말에 쵸로마츠는 잠시 들켜버린 것에 당황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오소마츠의 말에 울컥해서는 버럭 화부터 냈다. 그러니까 동정하고는 관계없다니까요! 진지함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그의 말에 쵸로마츠는 자신이 잠시나마 놀렸던 것이 억울할 정도였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을 위해 분위기를 풀어주면서 비밀을 지켜주겠다고 해준 오소마츠의 말에 은근히 안심할 수 있었다.
아니, 잠깐만. 어쩌면 이건 기회일지도 몰라.
불현 듯 머리에 스쳐든 생각에, 쵸로마츠는 바로 황급히 이때를 기회삼아 오소마츠에게 줄곧 묻고 싶었던 것을 마침내 던졌다.
“저, 오소마츠 씨는 이 저택에서 일하신지 꽤 오래 되셨죠?”
“음? 뭐, 그렇지.”
“저, 그러면 혹시… 그 화원을, 보신 적이 있으세요?”
그 질문에, 두 사람 사이에 흐르던 분위기가 일변했다.
가슴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질문을 뱉어내자마자 입안이 바싹 말라갔다. 어쩌면 사소한 것을 물은 걸 수도 있는데도 마치 비밀을 감춘 베일을 몰래 벗겨내는 것 같은 발칙한 심정에 손이 벌벌 떨리는 것을 간신히 막았다. 그렇지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그토록 염원하는 화원에 다가가는 단서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소마츠가 저택에서 언제부터인지 정확히는 몰라도 오래 전부터 일해 왔다는 사실은 이전에 다른 고용인들을 통해 이미 들은 바가 있었다. 게다가 집사라는 직책이 허울은 아닌지라 저택 내에 있는 사소한 일이라도 전부 꿰뚫고 있었고, 저택의 구조와 은밀한 비밀들을 전부 알게 모르게 손에 쥔 남자였다. 어쩌면 이 저택의 주인보다도 더 깊숙이 저택에 대한 일들을 알고 있을지도 모를 만큼.
그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소문의 푸른 장미 화원에 대한 것을, 그것이 실존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헛소문인지에 대한 사실여부는 물론이고, 어쩌면 그라면, 오소마츠라면 그 화원을 목격한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떨리는 기대감을 끌어안으며 쵸로마츠는 오소마츠의 대답을 기다렸고, 오소마츠는 잠시 고개를 수그린 채 대답을 기다리는 쵸로마츠를 말없이 내려 보다가 아직 반이나 되는 길이가 남은 담배를 땅에 떨어뜨리고 발로 짓이겨 꺼뜨렸다.
“…뭐, 어차피 이쯤에서 맡길 예정이기도 했으니까.”
그 중얼거림은, 쵸로마츠에게 닿지 않았다.
오소마츠는 천천히 무릎을 굽히고 자리에 앉아 쵸로마츠와 시선을 동등하게 맞추더니 이윽고 자신의 재킷 오른쪽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뒤적여 꺼내고는 쵸로마츠의 눈앞에 불쑥 들이밀었다. 갑자기 눈앞에 들이닥친 물건에 쵸로마츠는 깜짝 놀라 고개를 뒤로 내빼었다가 오소마츠가 꺼내든 물건을 뒤늦게 확인했다.
꼭대기 부근에는 장미 문양이 새겨져 있지만 오래된 나머지 녹이 슬어버려 빛이 바래버린, 볼품없게 보일만큼 낡아빠진 열쇠였다.
“그 열쇠는….”
“화원 입구 열쇠.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있지?”
그 말의 다음으로 오소마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란 듯이 띄워보였다. 그 열쇠가 오소마츠의 대답인 것이다.
열쇠의 정체에 쵸로마츠는 믿기지 않는 얼굴로 오소마츠의 얼굴과 열쇠를 번갈아 살피느라 정신없었고, 오소마츠는 그런 쵸로마츠의 반응이 마음에 든 것인지 만족스럽게 어깨를 으쓱이며 열쇠를 도로 안주머니 깊숙한 곳에 고이 넣었다. 그리고는 턱을 괴고 재가 되어 떨어져가는 쵸로마츠의 담배를 뺏어 입에 물고는 한 모금을 들이마신 뒤 악의 없는 장난 끼가 물씬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보고 싶지 않아?”
나쁜 장난질을 계획하는 어린 아이의 꼬드김과 같은 그 노골적인 유혹에 대답하려던 순간이었다.
“오소마츠.”
그의 이름을 부르는 낮은 목소리에 이름이 불려 진 오소마츠는 물론이고 쵸로마츠까지 덩달아 깜짝 놀라 두 사람은 동시에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두 사람이 있는 곳에서 머지않은 위치에 어떤 남자가 홀로 우두커니 서있었다. 짙은 푸른색의 고급 진 양복을 제법 멋들어지게 차려 입은 남자는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다소 안절부절 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살피기 여념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오소마츠의 행동을 살피느라 정신없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자신이 저택에 일하면서 지금까지 마주한 적 없는 낯선 남자의 등장에 쵸로마츠는 그의 정체를 몰라 어리둥절했지만, 그에 비해 오소마츠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를 오랫동안 알고 지낸 것처럼 친근한 반응을 보였다.
“어라, 어쩐 일로 밖에 나와 계시는 겁니까, 카라마츠 도련님.”
오소마츠의 말을 듣고서야 쵸로마츠는 남자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카라마츠 도련님. 저택 주인의 유일한 외동아들로 알려져 있으며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는 저택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귀한 도련님이었다. 뒤늦게 알게 된 남자의 정체에 쵸로마츠는 기겁해서는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나 몸에 묻은 흙들을 털어내고는 급히 허리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 하지만 그런 쵸로마츠의 노골적인 예우가 부담스러운 것인지 도련님은 잠시 주춤거리다가 재빨리 오소마츠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저택 안에 네가 안 보이기에 찾으러 나왔어,”
“절 찾으시는 거라면 종을 울리던가, 다른 사용인들 시켜서 부르면 될 것을 굳이 이렇게 나올 필요는 없잖아요.”
“아니, 그런 식으로 부르는 건 영 내키질 않아서….”
남자다우면서도 듬직한 인상과는 다르게 소극적으로 내키지 않는다는 기색을 드러내는 도련님의 말에 오소마츠는 눈썹을 휘어 올리며 묘한 시선으로 도련님을 살피다가 이내 다시 평소의 태도대로 어깨를 으쓱이며 집사로서 도련님에게 대하는 태도치고는 무례할 만큼 가볍게 말했다.
“하여튼 도련님도 배짱이 없다니까. 그럼 같이 들어가도록 하죠.”
그리 말한 뒤 오소마츠는 조금 전에 뺏어들었던 쵸로마츠의 담배를 다시 그의 손에 쥐어주고는 자신과 석연치 않을 만큼 어딘지 모르게 닮은 도련님의 뒤를 따라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사라지고 나서 혼자가 되어 남겨진 쵸로마츠는 잠시 넋을 놓은 채로 멍하니 서 있다가 천천히 손을 올려 자신의 오른쪽 귀를 감쌌다.
분명히, 똑똑히 들렸다. 오소마츠가 쵸로마츠에게 도로 담배를 돌려주던 그 짧은 순간에 오소마츠는 쵸로마츠의 오른쪽 귓가에 입을 가까이 가져다가 작은 목소리로 스쳐 속삭였던 그 말을, 쵸로마츠는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들었다.
“내일 자정에 뒤뜰로 나와. 좋은 거 보여줄 테니까.”
웃음기로 가득한 귓속말이 전해주는 유혹의 제안을 뿌리치는 방법을, 쵸로마츠는 알지 못했다. 애초에 자신이 오소마츠의 말에 넘어간 것인지, 아니면 그의 목소리와 함께 은근히 보여줬던 색다른 미소에 넘어간 것인지조차 종잡을 수 없었다.
젠장. 쵸로마츠는 의미 없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자신의 다른 손에 오소마츠가 쥐어준 담배가 재가 되어 떨어져가는 와중에도 발갛게 달아오른 자신의 오른쪽 귀를 감싼 손을 차마 떼어내지 못한 채 망연히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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