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시리즈 패러디.
백발 이치마츠가 보고싶다는 욕망이 안 좋은 곳을 스쳐서 나온 글 같습니다.
어느 날 길을 걷다 우연히 이름 없는 고양이 시체를 발견했다.
한적한 넓은 대로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여 진 그것은 차에 치인 것인지, 굶어서 기력이 다해 쓰러져 죽은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아무튼 옆으로 뉘인 자세로 미동도 없이 누워있었다.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는 길, 그 위에 놓여 진 고양이 시체는 아마추어가 연출한 것처럼 상당히 부자연스러웠지만, 그래서인지 더욱 시선을 끌게 만들었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본 고양이는 무척이나 새하얗다. 피도, 흙먼지도, 음식물 쓰레기도 묻어있지 않고 털 한 가닥까지 말끔한 외견은 다른 곳에서 길러진 고양이로도, 쓰레기통을 전전하는 길고양이로도 보여 지지 않았다. 분명 죽은 것이 확실한데도 그저 싸늘하게 식어있을 뿐 고양이의 몸에서는 붉은 핏방울 하나 흘러나오지 않았다. 꺼림칙하다. 그냥 시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수 있는데 석연치 않은 섬뜩한 위화감까지 보이니 가까이 가는 것조차 꺼려졌고, 그러다보니 고양이는 그대로 지금까지 방치된 상태였다.
그러나 소년은 망설임 없이 하얀 고양이 시체를 두 손으로 조심히 안아들었다.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시체의 냉기와 기분 나쁠 만큼 깨끗한 털을 만지면서도 소년의 낯빛은 거부감 하나 비춰지지 않았고, 오히려 죽어버린 고양이의 죽음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으로 젖어들었다. 소년은 깨끗한 천 대신 편의점에서 구입한 티슈로 고양이의 몸을 감았고, 어느 공터의 양지바른 한 구석에 땅을 파서 구덩이 안에 고양이를 넣어주고는 다시 고운 흙으로 정성스레 덮은 후 진흙으로 더러워진 손으로 합장을 해줬다. 소년이 고양이 시체를 거둬들여 묻어준 것은 순수한 선의였다. 평소에 고양이를 좋아했고, 길고양이들을 돌봐주는 일이 많았기에 비명횡사한 고양이들의 시체를 매장시켜주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이번의 흰 고양이도 비록 이 근처에서는 보지 못한 고양이였지만 멀리까지 왔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짐작하고 다른 고양이들처럼 편히 잠들 수 있게 도와준 것이다. 소년은 고양이를 묻어준 뒤에도 한참을 무덤 앞에 쭈그려 앉아 곁을 지켜줬다. 고양이의 시신을 묻어주는 일이 이번에 처음이 아닌데도 여전히 적응하지 못한 모양새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해가 서편으로 뉘엿뉘엿 저물 쯤 되어서야 소년은 저려서 감각이 없는 다리를 간신히 펴서 느릿느릿한 발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턱 밑의 마스크를 코 밑까지 끌어올리고 소년은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집으로 향했다. 소년은 떠나고서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흙무덤 위의 고양이가 등이 굽은 소년을 향해 길게 울음을 뽐냈다.
[오소+이치]고양이
W. Arcadia.
“집단 기절?!”
오소마츠가 TV에서나 들어볼 법한 사건 명칭에 깜짝 놀란 나머지 톤이 조금 올라간 목소리로 되묻자 쵸로마츠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쥬시마츠는 안절부절 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길게 늘어진 소매로 입을 가리면서 큰형과 셋째 형을 번갈아보며 살폈다. 오소마츠 뿐만 아니라 뒤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카라마츠와 토도마츠도 이야기를 다 듣고는 서로를 마주보며 의문을 나눠야만 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와 보니 한참 전에 먼저 집에 도착해서는 거실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쵸로마츠와 쥬시마츠가 돌아온 세 형제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TV에 나올법한 기묘한 사건이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같은 학교를 다니던 여섯 쌍둥이였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쌍둥이들은 크게 두 그룹으로 분리되어 각각 다른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오소마츠, 카라마츠, 토도마츠는 A 학교에 다녔고 쵸로마츠, 이치마츠, 쥬시마츠는 B 학교에 다녔다. 여섯 명 모두 같은 학교를 다니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이 아쉬울 수밖에 없었지만 언젠가부터 서로에게 ‘형’이라는 명칭을 붙여주면서 각자의 개성을 가지기 시작한 형제들은 이것도 변화 중 하나로 받아들였다. 혼자 학교를 다니는 것도 아니고 다른 두 형제하고 같이 다니는 것이니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라는 장남의 긍정적인 말에 동생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모두들 고등학교라는 새로운 일상에 적응해가기 시작했고, 2학년이 되었을 쯤에는 모두가 학교에서 자신만의 위치를 찾아내 자리를 차지했다.
단 한 사람만을 제외하고.
“에, 그럼 뭐야, 이치마츠 형 설마 따돌림을 당했다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니지. 이치마츠 녀석이 설마 그냥 맞고 다닐 녀석이겠어?”
“아, 하긴 그렇네.”
이치마츠가 동급생들하고 잘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았다는 대목을 듣자마자 토도마츠가 기겁한 목소리로 쵸로마츠의 말을 끊고 들어오자 오소마츠가 바로 막내의 말에 반박하고 들어오자 토도마츠도 오소마츠의 말에 금방 납득했다. 이치마츠의 성격 상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뒤끝이 좋지 않다는 것은 토도마츠는 물론 다른 형제들도 충분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 새지 말라는 법은 없다. 쵸로마츠가 바로 오소마츠의 말을 뒷받침 해줬다.
“뭐, 친하게 지내는 애들은 없어도 괴롭힘 당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어. 책상에 낙서를 한다던가, 뒤에 불려가서 맞고 다닌다거나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으니까. 무엇보다 오소마츠 형이랑 카라마츠 형에 대한 소문이 우리 학교까지 쫙 퍼져있는데 누가 건드리겠어.”
“이야, 그 말을 들으니 어쩐지 쑥스러운데.”
“훗. 갑작스러운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군, 고맙다, 브라더.”
“아니 이거 칭찬 아니거든!? 다른 학교에까지 싸우고 다닌다는 소문이 퍼졌다는 말을 듣고 뭔가 느낀 거 없냐고!!”
마음 같아서는 당장 장남과 차남을 붙잡고 최근 일진들을 상대로 싸우고 다니는 일들에 대해 따져 묻고 싶은 심정이 목 끝까지 차오른 쵸로마츠였지만 지금 대화의 주제는 어디까지나 이치마츠였으니 쵸로마츠는 계속 오늘 있었던 사건을 설명했다.
앞서 언급된 이유들로 인해 다행히 폭력이 동반된 질 나쁜 괴롭힘은 없었으나 이치마츠는 2년 동안 부평초처럼 누구하고도 사귀지 않고 둥둥 떠다니기만 했으며, 그런 이치마츠의 존재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녀석들이 몇몇 존재했다. 그들은 이치마츠와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뒤로 넘어질 만큼 세게 어깨를 밀치고 사과 한 마디 없이 모른 척 지나가거나 이치마츠에게 귀찮은 일들을 교묘하게 떠넘기는 등 적당한 선에서 이치마츠에게 시비를 걸어왔다. 그에 대해 이치마츠는 무시로 일관했다. 우연히 그런 장면을 목격한 쵸로마츠가 제대로 항의하는 편이 좋다고 말해도 귀찮다는 식으로 적당히 덮어 넘기기만 했다. 그래도 그 때까지 큰 사건은 없었고, 쵸로마츠도 명확한 괴롭힘이 없으니 나중에 심해지면 그 때 자기라도 나서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있었던 참이다.
그러던 중 오늘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 사건이 터져버렸다. 평소 이치마츠에게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오는 무리들이 집단성 기절을 한 채 구급차에 실려 간 소동이 일어났고,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들을 기절시킨 범인이 마츠노 이치마츠라는 것이었다,
“많이 다치기라도 한 거야?”
“그게, 좀 이상한 점이 다들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하다는데도 계속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는 거야. 뭔가에 얻어맞거나 약에 쓰러진 것도 아닌데도 말이지.”
“그런데 정말 이치마츠 형이 범인인 거야?”
“처음 현장을 발견한 목격자가 한 말에 따르면 그 자리에서 유일하게 쓰러지지 않고 멀쩡했던 인물이 이치마츠였다고 했어.”
“어째서 이치마츠 녀석이 그 녀석들하고 같이 있었던 거지?”
“그건 나도 몰라. 목격자가 발견했을 땐 이미 다른 녀석들이 쓰러진 뒤라서….”
“그리고 이치마츠는 현재 도주 중이란 말이지.”
“덕분에 학교에서는 난리도 아니야. 그 녀석들 부모 중 몇 명이 찾아와서 나랑 쥬시마츠한테 이치마츠가 어디 있냐고, 몰래 빼돌린 거 아니냐고 따지고 들어서 결국 쥬시마츠하고 조퇴하고 집으로 돌아왔어.”
“이치마츠한테 연락은 왔었나.”
카라마츠의 말에 쥬시마츠는 풀죽은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고, 쵸로마츠는 바로 밑에 있는 동생으로 인해 머리가 아픈지 이마를 짚고 한숨을 푹푹 쉬었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답답한 속내를 토로했다.
“아아, 정말인지! 그렇다고 그렇게 도망치고서 모습을 감추면 어쩌자는 거야! 이러면 괜히 의심만 살 수 있는데 말이야!!”
“어쩔 거야, 형님.”
팔짱을 끼고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카라마츠가 자신의 옆에 있는 오소마츠에게 물어보자 다른 형제들도 일제히 오소마츠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오소마츠 또한 카라마츠처럼 팔짱을 낀 자세로 눈을 감은 채 가만히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 이윽고 예고도 없이 좋았어, 라는 말과 동시에 무릎을 탁 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을 올려다보는 동생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일단 편의점에 가서 담배 좀 사가지고 올게!”
그 뒤로 바로 쵸로마츠의 장남 이 새끼야!! 라는 욕설 섞인 외침이 터져 나왔지만 오소마츠는 바로 쏜살같이 꽁무니를 빼며 집밖으로 재빨리 도망치고 말았다. 무사히 집 밖으로 빠져나온 오소마츠는 여전히 안에서 갖은 불평들을 터트리는 동생들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오소마츠는 이런 상황에서도 다만 키득키득 웃고는 머리 뒤로 깍지를 끼고는 행선지가 명확히 정해놓지 않은 발을 마음 내키는대로 움직였다.
오소마츠가 선택한 방향은 편의점과는 반대 방향이었다.
* * *
공터의 한 구석, 적당한 크기의 나무 아래에 작은 흙무덤이 있다.
양지바른 곳에 봉긋이 솟아나 있는 흙무덤은 서툰 솜씨로 쌓은 건지 어딘지 엉성한 티가 묻어나 있었고, 흙무덤을 드리우는 나무 그늘이 그 위를 덮어 마치 감싸 안아주는 것처럼 보여 졌다. 잠시 아무 말 없이 뭐가 묻혀있는지 모를 무덤만 계속 내려다보니 나무에 붙어있던 매미가 갑자기 쨍쨍 울어댔다. 고막을 울리는 우렁찬 소리는 불청객을 쫓아내려는 것인지 쉼 없이 울어댔다. 그럼에도 무덤을 찾아온 조문객은 계속 흙무덤 앞에 가만히 서있었다. 시기 상 이제 여름이 시작되었을 뿐인데도 교복 마의 밑에 입고 있는 후드 티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만큼 후덥지근했다. 그런데도 소년은 계속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아, 뭐야. 여기 있었네.”
처음 듣는 목소리지만 몸은 기억하고 있는지라 반사적으로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그의 앞에는 숙주가 입고 있는 보라색 파카와 같은 디자인의 붉은 파카를 걸치고 있는 똑같은 얼굴의 소년이 반갑게 손을 흔들며 서있었다. 여. 오소마츠가 반갑게 말을 걸었다.
“이야, 설마하니 우리 사남이 그런 대형 사고를 저지를 줄이야, 형아가 이야기 듣고 얼마나 놀랬는지 아냐. 그런데도 사고 친 당사자는 여기서 태평하게 서있기나 하고 말이야. 쵸로마츠 녀석 지금 화나서 들어오기만 하면 아주 잡을 기세라고.”
“…헤에. 이상하네.”
“응? 뭔 소리야?”
“아니, 이상하잖아. 보통은 말을 못 건다고. 말을 걸기도 이전에 기겁하며 도망칠걸? 조금 전에도 몇 명이 그렇게 도망쳤고.”
“그런가. 딱히 무섭게 보이지 않은데. 뭐, 이치마츠는 가만히 있어도 무서운 인상이니 어쩔 수 없나. 그것보다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말이야.”
나, 이제 슬슬 ‘이치마츠’하고 이야기 하고 싶거든? ‘고양이 씨’
마츠노 이치마츠는 고양이에게 씌어 진 상태였다.
계기는 며칠 전, 이치마츠가 우연히 길에서 하얀 고양이 시체를 발견해 그것을 거둬들여 묻은 일이었다. 사실 그것은 일종의 함정이었다. 고양이는 사람들의 선의를 이용해 그런 식으로 현혹시켜서 몸을 차지하는 수법을 사용했고, 운 없게도 이치마츠가 그 수법에 걸려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다면 왜 시체를 묻은 날이 아니라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오늘에서야 이치마츠의 몸을 차지해 모습을 드러냈느냐, 하는 질문에 고양이는 ‘스트레스’를 답변으로 내놓았다. 요컨대 이치마츠의 안에 있던 스트레스와 더불어 감정의 진폭이 극단적인 변화를 일으켜 지금껏 안에 잠들어 있던 고양이 괴이를 깨워버려 몸과 의식을 빼앗긴 것이었다. 겉으로는 태연한 모습을 보였다고 해도 지속적인 시비에 이치마츠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알게 모르게 쌓아가고 있었고, 결정적으로 그것이 폭발한 때는 사건이 일어난 점심시간 무렵, 우연히 지나가다가 자신을 귀찮게 구는 무리들이 어디서 길고양이 하나를 잡아다가 괴롭히는 모습을 발견했고, 그것에 대해 따지고 들어가다가 급기야 이치마츠 앞에서 덜덜 떠는 고양이를 발로 차는 몰상식한 짓까지 벌이자 끝내 이치마츠의 감정이 크게 폭발함과 동시에 고양이 괴이까지 덩달아 깨운 것이다. 패거리들이 상처 하나 없이 기절한 것은 고양이의 짓이었다. 고양이는 상대의 기력을 흡수하는 능력이 있어서 주먹 한 방을 먹이면 상대의 기력을 순식간에 흡수해버려 쓰러뜨릴 수 있다고 친히 오소마츠에게 설명했다.
“아마 그 상태면 3일 동안은 계속 정신 못 차리고 누워있어야 할 걸?”
“헤에. 대단하잖아, 그거. 그나저나 역시 그 녀석들이 잘못한 거였네.”
고양이 괴이로 인해 3일 동안 혼수상태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오소마츠는 일말의 동정심을 나타내지 않았다. 녀석들이 한 짓거리들을 보면 그야말로 자업자득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았으니까 말이다. 오소마츠는 사건의 진상을 알아 후련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고양이 괴이는 그런 오소마츠가 여전히 신기한지 눈을 말똥말똥 뜨며 오소마츠를 지그시 쳐다봤다. 우와, 설마 이치마츠한테서 이런 시선을 받을 줄은 몰랐는데. 오소마츠는 묘한 기분으로 고양이에게 씌어 진 이치마츠의 모습을 살폈다. 속에 들어가 있는 게 흰 고양이라서 그런지 이치마츠의 머리카락도 고양이의 털처럼 새하얗게 변해버렸고, 백발이 된 머리 위에는 고양이 귀가 쫑긋거렸으며 엉덩이 부근에는 길고 가느다란 꼬리가 계속 살랑거렸다. 이치마츠 녀석 생각보다 백발이 잘 어울리네. 흠, 쵸로마츠가 보면 좋아할지도? 앙증맞게 움직이는 고양이 귀와 부드럽게 흔들리는 고양이 꼬리가 제법 귀엽게 보여 질 수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고양이 귀와 꼬리에 대한 페티시가 없는 오소마츠는 그 대신 삼남의 취향을 끄집어내서 이치마츠의 외견에 대한 감상을 간단하게 남겼다.
“그나저나 언제까지 이치마츠 안에 있을 생각인거야?”
“앞으로도 계속. 주인하고 나하고 파장이 잘 맞는데다가 나 같은 경우에는 한 번 들어가면 다시 빼내기 힘들다고.”
“우와, 진짜냐.”
“헤에, 뭐야. 동생이 걱정되는 거야? 그렇게 걱정되면 무리해서라도 날 쫓아내 보던가. 주인이 죽을 수도 있는 가능성을 감수하면서, 말이지.”
그렇게 말한 뒤 눈과 입을 반원으로 둥글게 만들어 웃어 보이는 이치마츠의 모습은 정말로 고양이가 웃고 있는 것처럼 보여 이치마츠의 몸에 고양이가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고양이가 이치마츠의 모습으로 둔갑했다는 설정이 더 잘 어울릴 정도였다. 이치마츠와 닮은 말투와 표정을 지으면서도 종종 기지개를 켜거나 몸을 살짝 꼬는 모습을 보면 과연 고양이다운 야살스러움이 감추지 못하고 이치마츠의 몸을 통해 드러나고 있었다. 그런 고양이의 모습을 보며 오소마츠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갑자기 뜬금없이 이치마츠의 새하얀 백발에 손을 얹고는 그대로 쓱쓱 쓰다듬어줬다. 갑작스런 쓰다듦에 고양이는 조금 당황하면서도 금방 오소마츠의 손길에 익숙해져서는 눈을 감고 오소마츠의 손길을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고양이의 습성도 있지만, 그의 몸부터가 오소마츠의 손길을 무척이나 반기고 있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별로 이대로도 상관없겠지. 어차피 방법도 모르고, 찾자니 귀찮고. 이치마츠 녀석 어차피 고양이 좋아했으니 자기 안에 고양이가 있다고 하면 오히려 좋아 할지도? 너도 그 녀석들 때려눕힌 걸 보면 나쁜 녀석으로는 보이지 않고.”
“헤에, 그럼 허락해 주는 거?”
마치 길에서 주운 버려진 고양이를 키우는 것에 대한 허락을 내려주는 것처럼 시원스럽게 말하는 오소마츠의 말에 고양이는 두 눈을 가늘게 접어 휘어서는 상당히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음, 그렇네. 조금은 이해가 갈지도.
잠시 후, 오소마츠가 손길을 거두자 고양이는 바로 고개를 털어내고는 손으로 얼굴을 씻는 시늉을 하면서 나름대로의 몸단장을 마쳤고, 오소마츠는 눈 깜짝할 사이에 해가 저무는 것을 보고는 쵸로마츠가 화내겠다면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그럼 이제 집으로 가야 하니까 이치마츠 좀 불러줘.”
“흠, 알았어. 나도 이제 슬슬 졸리니까 들어가서 잘래. 그럼 앞으로 잘 지내보자고, 「오소마츠 형」”
오소마츠의 말에 순순히 따르기로 한 고양이가 눈을 감자 몸에 돋아났던 새하얀 고양이 귀와 꼬리가 서서히 희미해져갔고, 한 가닥도 빼놓지 않고 새하얗게 새버린 머리카락 또한 정수리부터 시작해서 점차 원래의 검은색으로 되돌아갔다. 잠시 뒤, 고양이가 아닌 인간 마츠노 이치마츠로 돌아온 이치마츠는 눈을 뜨고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갑자기 정신이 돌아와서 그런지 다리에 힘이 탁 풀려 그대로 쓰러질 뻔 했지만 무릎이 땅에 닿기 전에 오소마츠가 재빨리 이치마츠의 말을 잡아채 일으켜 세워줬다.
“여, 이치마츠. 괜찮냐?”
“…오소마츠, 형.”
“기억은 좀 나냐.”
고양이가 빙의된 상태에서도 어느 정도 기억이 남아있는 건지 이치마츠는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잠시 아무 말 않고 오소마츠의 얼굴만을 몽롱한 눈빛으로 올려다 보다가 서서히 떠올려지는 기억들에 바로 표정이 돌변해서는 얼굴을 금방 질색하는 티가 팍팍 느껴질 만큼 험하게 찡그렸고, 그 모습에 오소마츠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크하하하! 너도 참 별일을 다 당하는구나. 설마하니 고양이한테 홀려버리다니 말이야.”
“시끄러, 닥쳐, 죽여버린다.”
“에이, 너무 그러지 말라고. 살다보면 어쩌다가 고양이한테 홀릴 수도 있지, 안 그래?”
“전혀 그렇지 않거든. 쳇.”
오소마츠의 도움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난 이치마츠는 잠시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이치마츠의 기억 안에 고양이의 기억이 대부분 삽입되어졌다. 자신을 귀찮게 굴던 녀석들을 쓰러뜨린 것부터 시작해서 오소마츠와 대화를 했던 부분까지. 이치마츠는 줄곧 내려다보던 텅 빈 손바닥을 가슴에 얹고는 살짝 옷자락을 말아 쥐었다. 마치 자신의 안에서 지금쯤 똬리를 트고 자리를 잡아 잠들어있는 고양이에게 불만을 표시하는 일종의 시위처럼 보였다.
이치마츠의 안에 들어간 고양이는 이치마츠의 몸을 차지하는 동안 그의 감정과 기억들을 배려와 존중도 없이 전부 헤집어댔다. 그러다보니 고양이는 자신의 숙주에 대해 어지간한 것들을 알게 되었고, 덕분에 이치마츠는 자신의 치부를 전부 알아버린 고양이가 제일 말해서는 안 되는 사람한테 방정맞게 떠들어 댈까봐 안에서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다행히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기지 않아서 어느 정도 입을 다물게 만드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말이다. 이치마츠는 자신의 안에 있는 고양이가 지금쯤 자신을 보며 웃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비웃는 것인지, 연민의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의 의미가 담겨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치마츠는 고양이의 미소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쓸 때 없는 짓 하지 마.
이치마츠의 말에 고양이는 그저 꼬리를 한 번 흔들 뿐이었다.
“거기 서서 뭐하고 있냐. 슬슬 집으로 돌아가자, 이치마츠.”
“…응.”
노을을 등지고 이를 씩 드러내며 웃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이치마츠는 한 박자 늦게 작은 목소리로 그의 말에 대답하면서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먼저 앞장서서 집으로 향하는 오소마츠의 뒷모습을 당연하다는 듯이 뒤따라갔다. 지난번과 같은 느릿한 발걸음이 아닌, 그의 뒤를 쫓아가기 위해 조금 힘을 실은 빠른 발걸음이었다.
노을을 향해 걸어가는 두 사람의 빈 자리에는 텅 빈 흙무덤만 남겨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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