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레옹>와 비슷한 분위기의 글을 써보고 싶어서 도전하다가 애매하게 나온 글.
“Is life always this hard? Or is it just when you’re a kid?”
“Always like this.”
ㅡ영화 「레옹」 中
“아저씨. 사람을 죽여본 적 있어?”
맹랑하고 말본새가 되바라진 꼬맹이. 남자가 아이에게 가진 첫인상은 그러했다.
성인 남성 한 명 정도는 너끈히 지나갈 수 있는 좁지도 넓지도 않은 골목길. 남자가 사는 아파트로 향하는 지름길은 볕이 적당히 들어오고 너비도 그리 답답하게 느껴질 만큼 좁지 않아서 밀폐되어 있다는 인상이 옅은데도 남자는 이곳을 지나칠 때마다 항상 숨이 턱턱 막히는 감각을 경험했다. 하수구로 올라오는 역한 냄새 때문인지, 토사물과 음식물 쓰레기, 들개들의 배설물, 그 밖의 여타 난잡한 쓰레기들이 구석구석 채워져 있어서 그런지, 습한 공기가 물뱀처럼 아래서부터 스멀스멀 기어올라 기어이 폐로 비집고 들어와서 그런지, 아니면 입구서부터 불길하게 끔뻑이는 깨진 가로등 때문에 그런지. 여하튼 길지도 짧지도 않은 그 지름길은 충분히 사람들의 혐오감을 사기 충분한 길이었다. 그런데도 남자는 집에 가장 빨리 도착할 수 있는 루트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남들은 기피하는 그 길을 매일같이 지나쳐갔다. 어차피 슬럼가에서 이런 골목길은 흔히 퍼져있는 것이고, 꾸물대지 말고 잰걸음으로 걸어가다 보면 금방 도착하는 길이니 약간의 인내심을 쥐고 걸으면 그만인 일이었다.
아이는 그 골목길 한 구석에 매일 같이 쭈그려 앉아있었다.
비위가 좋은 것인지 이런 골목에 앉아있으면서 찡그림 하나 없이 두 눈만을 크게 뜨고 있는 아이는 어느 날인가 남자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었고, 이번에도 아이를 골목길의 일부로 취급해 무시하고 걸어가려던 남자는 자신에게 날아온 말에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춰 세우고 시선만을 옆으로 흘긋 돌려 아이를 처음으로 제대로 쳐다봤다. 무릎을 감싸고 웅크려 앉아있는 사내아이는 외견만으로 짐작했을 때 대략 여덟 살, 많아도 열 살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제 몸집보다도 큰 붉은 후드 티와 후줄근한 바지. 몸에 걸치고 있는 헤어진 상하의가 아이가 가지고 있는 전부였다. 제대로 된 보호도 받지 못하고 길거리에 나앉아 있는 아이에게 남자는 어떤 동정의 빛도 보이지 않고 말했다.
“넌 내가 누군지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거냐?”
“아저씨, 사람 죽이는 사람이잖아.”
“이렇게 선량한 인상의 아저씨의 어디가 살인마 같다는 거지?”
“별로 착해 보이지는 않은데.”
어른하고 말하는데도 지고 들어가는 기색이 없는 꼬맹이의 말대답에 남자는 반사적으로 눈썹을 씰룩였다. 나중에 또 제 심기를 건드리면 그 때 발로 걷어차도 늦지 않은 일이었다. 남자는 이참에 거슬리게 하는 것을 치우자는 심산으로 무릎을 굽히고 앉아 아이와 시선을 맞췄다. 가까이서 본 아이는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못해 피폐한 모습이었지만, 눈빛만큼은 아직 살아있었다.
“자꾸 쓸 때 없는 걸로 바쁜 아저씨 귀찮게 하지 말고 좋은 말로 할 때 집으로 들어가라.”
“들어갈 집이 없으니까 여기에 있는 거잖아. 아저씨, 사실은 바보지?”
“애새끼가 어른이 말하는데 자꾸 기어오르려고 하고 있어. 가만 보니 어른이랑 말하는데 제대로 존댓말도 쓰지 않고 말이야.”
“아까 물어본 거 대답하면 존댓말 쓸게.”
허. 남자의 입에서 기가 막힌 나머지 감탄 비슷한 말이 튀어나왔다. 아무 말도 안하고 가만히 앉아만 있어서 얕보고 있었더니, 실체는 어른을 상대로 협상하려는 건방진 꼬맹이였다.
“뭐, 그래. 좋아. 네 말대로 사람을 죽인 적이 있다. 네 녀석 나이 수보다도 많은 녀석들을 죽였지만, 이 바닥에서 사람 안 죽여 본 녀석은 없다고. 딱히 이런 일을 전문으로 먹고 사는 건 아니지만, 먹고 살다보면 이런 일도 저런 일도 하는 거지. 그, 뭐냐…. 아, 그래. 약육강식이라 이거야.”
자신이 저지른 살인에 대한 정당성과 다른 이들도 다 먹고 살기 위해서 이런 짓을 저지른다는 책임전가로 말이 길어진 남자는 말을 끝내자 문득 자신이 이런 꼬맹이에게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하는 회의감이 밀려들었다. 오늘 일진이 사납다 하더니 이런 꼬맹이한테까지 별별 소리를 다하는군. 남자는 이제 정말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일부터 다시 아이를 골목길의 벽 비슷한 것으로 치부해서 무심히 지나치면 그만인 일이었다. 그러나 남자의 생각은 지극히 안일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처럼, 남자는 이미 아이와 되돌릴 수 없는 어떤 인연을 맺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리고 아이는, 그 인연의 끈을 놓을 생각이 없는지 남자를 향해 처음으로 짓궂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나도 죽여줄 수 있겠네.”
기대와 흥미로 차올라있는 그 말에 남자는 자신이 아주 귀찮은 꼬맹이와 얽히고 말았다는 것을, 잔뜩 구겨진 얼굴로 직감했다.
[토고오소]동행
W. Arcadia.
아이의 이름은 오소마츠였다. 물론 남자가 아이에게 직접 물어서 알게 된 것이 아닌, 아이가 꼬맹이로 불리기 싫다는 이유로 남자에게 억지로 가르쳐준 이름이었다. 그 날을 기점으로 오소마츠는 남자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에 거리낌이 없어졌는지 매일 남자가 골목길을 지나가는 저녁 어스름에 같은 자리에 서서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아이와 노닥거리는 취미는 없었기에 남자로서는 예전처럼 아이의 존재를 무시하며 지나치고 싶었지만, 무시를 하면 바로 남자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말들을 늘어놓거나, 소리를 빽 지르는 식으로 남자가 자신을 무시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물론 그럴 때마다 남자는 잊어버리지 않고 아이에게 다시 돌아와 친히 훈계를 위한 폭력을 휘둘렀지만, 코피가 터지는 와중에도 아이는 능글맞게 웃으면서 그러니까 무시하지 말라고. 하는 말만을 늘어놓아서 남자의 복장을 뒤집어 놓게 만들었다. 결국 남자는 오소마츠와 합의점을 찾았다. 매일 이 시간,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은 때 오소마츠를 상대해주겠다는 조건을 내걸었고, 아이는 흔쾌히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 귀찮고 건방진 꼬맹이 같으니. 조금 전에 남자에게 뺨을 얻어맞았는데도 해냈다는 미소를 보란 듯이 선보이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남자는 자신이 손해 본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 후로 남자는 오소마츠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오소마츠는 남자의 일이 궁금한지 이것저것 캐물었고, 남자는 그 질문에 적당히 상대해줬기에 딱히 정해진 주제도 없었고, 흐름도 제멋대로였지만 어쨌든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알아갔다. 남자에게는 딱히 정해진 일이 없었다. 번듯한 일자리를 구할 생각 없이 그냥 자신의 적성에 맞게 적당히 먹고 살만한 일을 하다 보니 이런 슬럼가에 어울리는 일을 하게 되었다. 강도, 유괴, 협박, 살인. 남자의 범죄 행각은 충분히 쇠고랑을 찰만한 악질범이지만, 용케도 아직까지 몸보신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남자는 자신이 언제부터 이런 일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잊었다. 죄책감 같은 필요 없는 감정들도 옛적에 전부 버렸다. 살아남기 위해서. 남자에게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족했다. 아이는 남자의 경험담을 흥미롭게 들었고, 가끔 남자는 저도 모르게 청중의 열렬한 눈빛에 심취해서 필요 이상의 이야기를 무심코 흘려버린 적도 있었다. 심지어 살인에 대한 이야기도 서슴지 않았다. 어린 아이 앞에서 할 소리는 절대 아니었지만, 이미 관념적인 모럴이 약해진 두 사람에게 그런 것은 대단히 중요치도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내가 그 자식의 숨통을 끊어 놓았다는 거지.”
“헤에. 아저씨 대단하네. 뭔가 진짜 같다. 아저씨 정말로 살인범이구나.”
“그러니까 처음부터 말했잖아. 그리고 말로만 들어서는 간단해 보이지, 남의 뒤통수 때리는 일은 상당한 실력이 없으면 힘든 일이라고.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라 이거지.”
위선으로 타인을 신뢰를 배신해 단물을 남김없이 빨아 마신 것도 모자라 마지막에 감히 자신에게 대든 상대를 죽인 경험담을 보란 듯이 늘어놓고도 남자는 스스로가 대견하다는 표정으로 담배 한 모금 만끽했다. 벽에 기댄 채로 서서 이야기를 줄곧 듣고 있던 아이는 그런 남자의 담배 피는 모습에 호기심에 찬 얼굴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불쑥 자신의 오른손을 남자에게 내밀었다.
“나도 한 번 피워볼래.”
“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꼬맹이가 오냐오냐 하니까 이젠 별걸 다 해보려고 하네. 그리고 이제 돗대 밖에 안 남았거든,”
“이제 와서 새삼스러울 거 없잖아. 그리고 죽기 전에 담배 같은 거 피워보고 싶은데, 그거 연습해보고 싶어.”
어디서 듣고 본 건 있어서는. 남자는 오소마츠의 말에서 그가 처음 자신에게 말을 걸었을 당시의 대화를 떠올리고는 혀를 차면서도 끝내 주머니를 뒤적여 담배갑을 꺼내 안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돗대 한 개를 아이의 손바닥 위에 얹어주었다. 오소마츠는 그것을 받아들고는 잠시 신기하다는 듯이 유심히 담배를 살피다가 조심히 담배 끝을 입으로 물고는 고개를 들어 남자를 올려봤다. 아이는 남자에게 불을 원하는 눈빛을 보냈다. 아니, 아이의 눈빛은 항상 남자에게 무언가를 갈구했다. 담뱃불 이상의 것을, 예를 들어 죽음이라는 불을 항상 요구했다. 그 유리구슬 같이 빛나는 작은 두 눈동자가, 남자는 진절머리 만치 싫었다. 남자는 자신의 담배 끝을 아이의 입에 물린 담배 끝에 갖다 대었다. 새빨갛게 반짝이던 남자의 담배 끝이 차츰 아이 쪽으로 옮겨져 갔다.
“천천히 빨아 마셔.”
남자는 처음으로 아이를 위한 충고를 해줬다. 오소마츠도 이번에는 토 달지 않고 순순히 남자의 말에 따랐다. 아이의 작고 빨간 입술이 뻐끔거리며 희뿌연 연기를 마시려했다. 담배와 같은 불순한 것에는 입에도 대지 않았을 것이 분명한 그 입술이 자신이 준 담배로 더럽혀져 가는 그 과정이, 남자의 안에 있는 무언가를 자극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 밖에 들이마셨음에도 오소마츠는 금방 크게 쿨럭이며 담배에서 입을 떼어냈다. 맵고 독한 연기가 아이의 여린 기도와 폐를 고통스럽게 헤집어갔다. 남자는 그 모습에 이번에도 혀를 찼다.
“그러니까 꼬맹이한테는 아직 이르다니까.”
그러다 남자는 아이의 모습을 찬찬히 살폈다. 기침으로 눈꼬리에 맺혀지다가 끝내 한 방울을 밖으로 또르르 흘려버린 눈물, 발그스름해진 양 볼, 새빨간 입술과 여전히 그 주변을 배회하고 있는 희미한 연기, 후드 티 사이로 보이는 목선과 쇄골, 더러운 골목길, 저녁 어스름이 피어오르는 하늘, 불규칙적으로 깜빡이는 깨진 가로등 빛. 모든 것이 음탕하고 천박하게 어우러지면서, 아이의 순수와 보호 받아야 할 고결함마저도 침범하려 들었다, 마치 성역을 더럽혀 가는 과정에 자신도 가담한 것 같아 남자는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남자는 물론이고 아이는 더더욱 취향도 아닌데 말이다. 아무래도 여자를 안은 적이 꽤 지나서 쌓인 탓에 그런가 싶어 남자는 조금 조급한 기분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 사이 오소마츠는 진정이 되었는지 잔기침만 흘리며 여전히 연기를 피어올리고 있는 담배를 두 손가락 사이에 끼워 가만히 지켜봤다.
“어째서 어른들은 이런 맛도 없는 걸 피우는 거야?”
“글쎄다.”
“아저씨도 어른이잖아. 그런데도 모르는 거야?”
“몰라. 살다보니 그런 걸 입에 물게 되었을 뿐이야. 넌 뭘 그렇게 꼬치꼬치 캐묻는 거냐.”
“그런가.”
오소마츠는 남자의 말에 나름 이해한 것인지 더는 묻지 않고 손에 든 담배가 전부 타들어가는 것을 지켜봤고, 남자도 어쩐 일로 금방 자리를 떠나지 않고 아이와 함께 담배를 지켜보며 검회색의 재만 남겨질 때까지 아이의 곁을 지켰다. 어스름이 떠나고 밤이 찾아오고, 나방 하나가 겁 없이 가로등에 달려들어 태워질 때까지, 두 사람은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다.
* * *
남자가 오소마츠에 대해 알게 된 점은, 먼저 아이가 고아라는 점이었다.
아이는 자신의 과거를 기억해내지 못했다. 슬럼가로 흘러들어오기 전, 어느 고아원에 있었던 기억이 단편적으로 남아있을 뿐, 자신이 낳아준 부모의 얼굴과 이름, 자신을 안아주던 온기조차도 아이에게는 남겨져있지 않았다. 그리고 고아원이 망하고, 남은 아이들이 수상쩍은 남자들에게 팔려가듯 끌려갔을 때 오소마츠는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해 극적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그러나 도망친 아이에게 돌아갈 곳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렇게 길거리를 전전하다보니 어느 틈엔가 슬럼가에 지내게 되었다고 했다. 딱히 특별한 이야기도 못 된 사정이었다. 이곳에 있는 아이들은 대부분이 그런 과정을 거쳐 들어온 것이니까. 어찌 보면 아이들이 슬럼가로 들어오기 위한 일종의 통과 의례와도 같았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새로운 얼굴을 발견할 때마다 끌고 와서는 신고식으로 신참의 과거사를 낱낱이 캐물어본 뒤 조금이라도 자기보다 잘 살았다 싶으면 주저 없이 집단 구타를 시행했다. 그렇게 신고식을 거친 아이는 슬럼가의 일원이 되었고, 그곳에서 살다가 죽는 어른이 되는 것이다. 오소마츠도 예외는 아녔다. 오소마츠는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래도 그런 애들은 운이 좋은 편이라고 넉살스럽게 말했다. 자기는 몸집이 서너 배는 큰 어른들에게 반죽음 당할 때까지 얻어맞았다는 말을 곁들어서.
오소마츠는 자신이 유일하게 기억하고 있는 과거가 ‘형제’라고 말했다. 자신에게는 쌍둥이 형제가, 그것도 다섯이나 있었던 것 같다고 오소마츠는 어느 날인가 남자에게 말했다.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그런 어렴풋한 감각이 본능적으로 남아있는 것이라 신빙성은 낮았지만, 오소마츠는 형제의 존재를 의심치 않아했다. 신기하지? 똑같은 얼굴이 여섯이나 있다고. 오소마츠는 흥미로운 목소리로 신나게 떠들어 댔지만, 얼굴은 전혀 웃는 낯이 아녔다. 오소마츠는 부모의 얼굴보다도 형제의 얼굴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거울만 보면 오소마츠는 자신의 동생들을 만날 수 있는 덕택이었다.
“그래서 난 거울이 싫어. 일전에는 쇼윈도에 내 얼굴이 비춰진 바람에 나도 모르게 커다란 돌을 집어 던져서 유리를 죄다 깨뜨렸는걸. 뭐, 다행히 주인이랑 경찰들한테 잡히지는 않았지만.”
오소마츠는 그 말을 끝으로 코 밑을 검지로 쓸면서 씨익 웃었다. 그것이 남자가 오소마츠의 입에서 유일하게 들을 수 있었던 쌍둥이 형제들의 이야기였다.
남자가 낮에는 돈을 벌기 위해 일하러 나가는 것처럼, 오소마츠도 계속 골목길에 머물지 않고 슬럼가를 이리저리 쏘다녔다. 뭘 하고 돌아다니는지는 남자도 알 수 없었고, 알아낼 마음도 없었지만 가끔씩 남자보다 한 발 늦게 골목길에 오는 날이면 오소마츠는 얼굴에 멍이나 상처를 달고 나타났다. 오소마츠는 아프거나 슬픈 기색 하나 없이 웃으면서 남자를 반겼고, 남자도 오소마츠의 상처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런 슬럼가에서 나약한 어린애들은 폭력의 제물로 선택된다. 이곳에는 약하다는 것이 곧 죄가 된다. 연약한 어린애라도 예외는 없었다. 그러니 오소마츠가 때때로 누군가에게 얻어맞고 남자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도, 남자는 폭력에 대한 분노도, 아이에 대한 안쓰러움과 동정도, 아이를 때린 불특정 다수에 대한 혐오도 품지 않았다. 약육강식. 남자가 오소마츠에게 말한 단어처럼, 아이도, 남자도, 약육강식이라는 마땅한 법칙 아래에 그렇게 살아가기에.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이의 얻어터진 낯짝이 마음에 든 것은 아녔다. 울퉁불퉁한 얼굴로 씩 웃어버리는 아이의 얼굴은 더욱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남자는 그럴 때마다 자신의 손이 아이의 얼굴에 날아가지 않도록 저답지 않은 자제심을 발휘해야만 했다. 이유 모를 불쾌함은 누군가를 향해야 할지 몰라 계속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마지막에는 애꿎은 아이에게로 화살이 돌아가게 되었다. 그럴 때면 남자는 아이와 더는 대화를 하지 않고 무정히 골목길에서 벗어났다. 그런 남자를, 아이는 잡지 않았다. 어지러운 가로등 아래서 다만 남자의 떠나가는 뒷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이는 처음으로 골목길에 나타나지 않았다. 골목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남자는 당황한 듯 미간을 좁히고 골목길 안을 크게 살폈지만, 어디에도 아이의 그림자도, 인기척도 보이지 않았다. 별일이군. 남자는 그리 생각하며 늘 아이가 있던 빈자리를 내려다 봤다. 항상 이곳에서 아이는 자신을 반겼다. 따르는 이웃집 아저씨를 반기는 것처럼, 남자가 어떤 인물인지 알면서도 두려운 기색 하나 없이 그 나이에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장난끼와 세파로부터 얻어낸 피폐감이 묻어나 있는 미소로 손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것은 마치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온 남자를 위한 마중과도 같았다. 남자는 오소마츠의 잔상을 빈자리에 덧그리며 아이가 자신의 일상에 어느 틈엔가 들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어차피 잘 된 일인지도 모른다.
남자는 그리 여기며 천천히 발걸음을 떼어내 더 이상 아이를 찾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 어차피 자신은 아이를 돌보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 자신을 위해서도, 아이를 위해서도 남자는 일말의 불안감과 찜찜함을 빈자리에 떨쳐내고자 노력하며 평소보다 느린 발걸음으로 귀가했다.
다음 날, 남자는 해가 중천에 떠서야 집에서 나왔다. 어차피 정해진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 느긋하게 굴어도 상관없었다. 슬슬 주머니 사정도 아슬아슬하니 크게 한탕을 칠까 하는 생각으로 슬럼가로 나왔다. 하지만 길거리를 돌아다녀도 마땅한 표적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오늘따라 일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어제의 찜찜함이 끝끝내 남자에게 질척질척 달라붙어 오늘까지 매달려있는 상태였다. 젠장. 남자는 욕설과 함께 침을 길바닥에 탁 뱉어냈다. 이게 다 그 꼬맹이 때문이었다. 모습을 보이지 않아도 자신을 귀찮게 구는 꼬맹이에게 속으로 온갖 욕을 다하며 화풀이를 일삼고 있을 때, 남자의 시야로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남자보다도 체구가 큰 사내와, 그의 한 손에 팔이 붙잡혀 길바닥에 질질 끌려가고 있는, 붉은 후드를 입은 사내아이.
순간, 남자와 아이의 시선이 마주쳤다. 맥없이 붙잡혀 끌려가는 아이의 초점 잃은 눈이 한 순간 조금 크게 떠졌지만, 곧바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아이의 두 눈은 피멍으로 퉁퉁 부어있어 시야를 제대로 분간하기도 어려워 보였지만, 남자는 아이가 자신을 발견하고 그런 반응을 보였다는 것에 확신했다. 아이를 붙잡고 짐짝처럼 끌고 가던 육중한 몸집의 사내는 이윽고 어느 골목길 안으로 들어갔다. 그 골목길은, 남자와 오소마츠가 만나던 그 골목길이었다.
사내가 오소마츠에게 무엇을 할지 남자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저 사내야말로 오소마츠가 남자에게 원했던 일을 들어줄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자신이 나서서 쓸 때 없는 일에 끼어들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남자는 자꾸만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오소마츠의 마지막 눈빛을 떨쳐낼 수 없었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아무 조건도 바라지 않는 순박한 구원을 바라는 눈빛을 보낸 적은, 지금껏 살면서 처음이었다.
“…귀찮은 꼬맹이 같으니라고.”
남자는 자신의 외투 안쪽에 있는 오랜 파트너의 무게를 재확인 한 뒤 사내와 아이의 뒤를 따라 골목길 안으로 들어섰다.
* * *
“아… 크악! 끄으으…으….”
영락없는 돼지 멱따는 소리였다. 남자는 피 웅덩이에서 꿈틀대고 있는 사내가 거슬린다는 듯이 총알이 박힌 복부를 한 번 세게 후려 찬 뒤에 손수건을 꺼내 피가 조금 묻은 구두를 닦아냈다. 얼마나 살을 무식하게도 찌웠으면 허여멀건 지방 덩어리까지 나오는 건지. 하지만 그 덕분에 살집이 총알을 어느 정도 막아내서 아직은 목숨을 연명하고 있었다. 남자는 고개를 저은 뒤 슬쩍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남자의 시선에 다다른 곳에는 구타로 인한 피멍과 사내의 피로 엉망이 된 오소마츠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사내와 남자를 떨리는 눈빛으로 번갈아 살피기 바빴다. 이 꼬맹이, 이제 보니 살인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이구만. 남자는 문득 오소마츠가 자신에게 꺼낸 말을 떠올렸다.
“어이, 오소마츠 군.”
남자가 처음으로 오소마츠의 이름을 불렀다. 이런 혼란 속에서도 그 사실을 알아차린 것인지 오소마츠는 화들짝 놀라서는 이번에는 조금 다른 의미의 놀란 얼굴로 남자를 의아하게 쳐다봤다. 이름 하나 불렀다고 저런 표정인가 싶어 남자는 어쩐지 모를 멋쩍음에 잠시 뒷목을 만지작거렸다. 처음으로 혀에 굴려보는 아이의 이름은, 생각 외로 어감이 좋았던 탓도 있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일단 뒤로 넘기고, 남자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오소마츠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아이의 손에 담배를 쥐어줬던 것처럼, 무언가를 아이의 작은 두 손에 쥐어줬다.
아직도 뜨끈뜨끈한데다가 화약 냄새가 풍겨져 나오고 있는, 검은 총이었다.
“저 자식을 끝장낸다면, 네가 나한테 부탁했던 걸 들어주도록 하마.”
어른이 하는 말을 잘 듣는 아이는 착한 아이니까, 마땅히 상을 줘야지.
남자는 그리 말하고는 처음으로 오소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어줌과 동시에 미소까지 지어줬다. 선량한 미소. 법 없이도 성실하고 착하게 살 것 같은 순박하고 올곧은 인상을 손쉽게도 안겨주는 그 가식어린 미소에 오소마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렇게 웃으면서, 아이에게 총을 쥐어주고 살인을 하라고, 그러면 자신이 뒤이어 죽여주겠다는 말을 한다. 그런 말을, 행위를, 남자는 아무런 거리낌과 어려움 없이 무난히 해내었다. 그제야 오소마츠는 비로소 자신의 앞에 있는 남자가 범죄자라는 것을, 살인마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가 자신에게 처음 지어준 미소가, 오소마츠는 눈앞에서 벌어진 살인보다도 무서웠다. 그러나 점점 차게 식어가고 있는 총이, 아직도 더럽게 살아있는 지방 덩어리가, 아이의 안에 미숙하게 자리 잡은 살인 충동을 자극시켰다. 그가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오소마츠도 남자만큼이나 충분히 알고 있었다.
오소마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걸음을 옮기고, 사시나무처럼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총을 다 잡고 총구를 사내의 머리에 겨눴다. 아이에게 저지르려던 죄를 스스로도 알고 있는지, 남자는 어떻게든 제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어떤 말이라도 꺼내보려고 했지만, 애석하게도 남자의 집에서 나오는 것은 피가 차올라 흉측하게 구겨진 쇳소리가 전부였다. 죽여야 한다. 저런 쓰레기만도 못한 녀석은, 차라리 죽는 것이 나았다. 그리고 자신도, 죽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아이는 할 수 없었다. 살인에 대한 거부감도, 두려움도, 죽어가는 사내에 대한 측은함조차 아녔다. 죽고 싶지 않다. 그 생각이, 오소마츠가 총을 끌어안고 오열을 터트리게 만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존재감조차 흐릿해져가는 동생들과 헤어지고, 홀로 슬럼가를 떠돌아다니며 살아갈 이유도, 기력도 찾아내지 못했던 오소마츠는 죽음의 문턱 앞에서 살인을 마주하고 나서야 마침내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눈물로 흠뻑 젖어버린 총을 회수한 남자는, 말없이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연신 닦아내기 바쁜 아이를 바라봤다. 역시나, 하는 생각이 남자의 머릿속을 스쳐갔다. 여간 사람을 귀찮게 만드는 꼬맹이라고 여기면서도, 처음으로 제대로 아이를 보는 남자의 눈빛이, 이제껏과는 다른 어떤 감정을 담아내고 있었다. 남자는 지금에서야 누군가가, 저 작은 아이가 안쓰럽다는 생각을 가졌다. 이런 생활을 거듭하면서 마모되어 전부 닳아 사라져버린 줄 알았던 자신의 감정이, 아이의 눈물을 받아 다시 발아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소마츠와 함께, 남자도 잊고 있었던 무언가를 깨달아갔다.
“토고 아저씨.”
오소마츠는 눈물 젖은 얼굴을 들어 처음으로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남자가 아이의 이름을 부른 것처럼, 아이 또한 남자의 이름을 어색함 없이 익숙하게 불렀다.
“나도 데려가 줘요. 아저씨랑 같이 있을래요.”
토고는 그 말이, 아이가 자신에게 진정으로 원했던 것이라는 걸 바로 이해했다.
“나쁜 아저씨는 함부로 쫓아가는 게 아니라고 네 엄마한테 못 들었냐?”
“그런 말 몰라. 엄마인지 뭔지 있었는지도 모르는 사람 말보다는, 지금 내 옆에 있어주는 아저씨를 따라가는 게 나아.”
오소마츠의 곁에는 다른 누구도 아닌 토고가 있었다. 가식으로 점철된 웃음 뒤로 남의 믿음을 배신하고, 끝내 살인까지 저지르는 악당이라고 해도, 때때로 자신에게 손찌검을 하거나 귀찮다며 질색을 하더라도, 오소마츠에게 있어서는 유일하게 자신의 곁에 머물러준 존재였다. 아이에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깨우치게 해준 남자였다. 아이는 그를 의지할 수 있는 안식처로, 혹은 그 이상을 갈구하는 눈빛으로 남자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정말인지, 말 안 듣는 애송이 같으니라고.”
맹랑한 녀석. 토고는 오소마츠의 첫인상을 다시 떠올렸다. 그에게 있어서 여전히 오소마츠는 귀찮고 어른 말 안 듣는 새파란 애송이였다. 그럼에도, 토고는 자신에게 구원을 원하는 눈빛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어느 틈엔가 살인만을 저지르던 자신이 유일하게 구원해버린 목숨이었다. 정말로 어지간히 번거로운 것에 얽혀버렸구나 했지만, 이제 와서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린애를 돌보는 건 적성에 맞지 않지만 뭐, 데리고 있다 보면 언젠가 쓸모가 있겠지. 토고는 그런 식으로 스스로를 설득시키고는 총을 원래 있던 외투 안쪽에 집어넣고는 발걸음을 돌려 몇 걸음 앞서 걸어가다가 오소마츠를 향해 돌아보며 말했다.
“얼른 안 쫓아오면 혼날 줄 알아라.”
그 말에 오소마츠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는 그 사이 놓쳐버릴 새라 후다닥 토고의 옆으로 달려가서는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맞잡아본 그의 굳은 살 박힌 손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굵고 거칠었다. 그럼에도 오소마츠는 마음에 들었는지 어느 때보다도 짓궂게 웃어보였고, 토고는 그 미소에 조금 민망한 기분이 들어 괜히 자신의 뒷머리만을 긁적였다.
이윽고 두 사람은 함께 골목길 밖으로 나왔다. 이제 저 골목길을 지나칠 일이 없을 거라는 사실을 두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멀리서, 가로등이 대낮임에도 불을 연신 깜빡이며 멀어지는 두 사람을 배웅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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