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 카라마츠와 오소마츠 이야기. 오소마츠는 조금 연령대를 낮췄습니다.(대략 10대 후반 정도)
살짝 토고오소 요소 포함.
촛불이 한순간 일렁였다.
카라마츠는 성경을 필사하던 오른손을 멈춰 세운 뒤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조금 전에는 초저녁의 풀벌레 소리만이 들리던 고요한 바깥이 어느새 폭우로 어수선해졌다. 빗방울이 거센 바람을 타고 사정없이 유리창을 두들겨서 불길하게 덜컹거리는 소리가 났다. 비가 내릴 낌새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는데. 하지만 하늘은 카라마츠가 필사에 한눈을 판 사이에 뭐가 그리 서러워졌는지 우르릉 우르릉 칭얼대는 소리를 자지러지게 냈다. 비는 금방 그칠 것처럼 보이지 않고 새벽녘까지 퍼부어댈 것 같아 카라마츠는 서랍에서 손전등을 꺼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당 안으로 빗물들이 죄 들어오기 전에 문단속을 해야 됐다.
카라마츠가 이 성당에 온 지도 이럭저럭 3개월을 채웠다. 신부가 되고 처음 맡게 된 성당이라 적응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그래도 나름 자리를 잡은 태가 나게 되었다. 마을 외곽에 위치해있고, 연식이 오래되어 몇 번의 보수를 거친 작고 소박한 성당이지만 카라마츠는 처음부터 이 성당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화려한 성당보다는 이런 곳이 길 잃은 어린 양들이 부담 없이 찾아올 수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호감이었다.
평소 숙식을 하는 별관에서 나온 카라마츠는 손전등을 켜고 곧장 성당으로 향했다. 큰 보폭에 따라 어둠 속에서 그의 신부복이 윤기 있는 검은 물결을 나부꼈다. 뚜벅거리는 발소리를 이끌고 금방 성당에 도착한 카라마츠는 뒷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와 눈대중으로 안을 살폈다. 다행히 그새 빗물이 침범하여 안을 젖게 만들지는 않았다. 성당의 문을 언제라도 신도들이 찾아오기 위해 한밤중이 되어도 문을 잠그지 않고 있었다. 카라마츠는 천천히 시선을 시계 방향으로 크게 훑었다. 성당에 들어서면 바로 마주하게 되는 넓은 공간에는 신의 아들과 그의 제자들, 그리고 신의 사자들이 그려진 스테인드글라스를 배경으로 삼아 크고 화려한 제대가 성스러운 위엄을 휘감아 성당에 들어오는 이들을 근엄히 맞이했다. 그리고 제대를 중심으로 가운데에 길이 나고 그 양 옆에 신도들의 기도를 위한 장의자가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었다. 바깥에는 폭우로 요란한데도 이곳만큼은 정갈한 침묵만이 침착하게 유지되었다. 저절로 신께 기도를 드리고 싶은 정겹고도 신성한 고요함을 카라마츠는 무척 좋아했다.
덜컹!
그 고요함에 잠시 취해있던 카라마츠의 귀에 불경하게도 그것을 깨뜨리는 소음이 났다. 누군가가 성당에 들어왔다. 카라마츠는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소리가 난 곳으로 손전등 불빛을 돌렸다. 성당의 왼편, 장의자가 나열된 줄의 맨 끝 구석. 낯선 그림자는 그곳에 웅크려 자리를 잡고 있었다.
“거기, 누구 계신가요?”
카라마츠는 침착하게 상대를 불렀다. 상대의 경계심을 풀기 위한 의도에서 먼저 말은 건 것이지만, 상대로부터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카라마츠는 손전등을 끄고 발소리를 죽여 조금씩 거리를 좁혀갔다. 그 와중에도 그림자는 여전히 아무 반응도 없었다.
마침내 검은 그림자가 앉아있는 장의자의 근처까지 왔을 때, 카라마츠는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그림자의 정체를 볼 수 있었다. 그림자를 뒤집어쓰고 성당 구석에 웅크려 앉아있는 인물은 카라마츠보다 조금 어린 10대 소년이었다. 마른 다리가 잘 드러나는 청바지에 검은색 바탕에 한가운데에 빨간 소나무 무늬가 그려진 후드티를 입고는 후드 모자를 머리에 푹 뒤집어 쓴 소년은 폭우를 뚫고 여기에 온 것인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빗물로 푹 젖어있었다. 뺨과 목 부분에 반창고를 붙인 소년은 잔뜩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카라마츠를 노려봤다.
“뭐야. 자비로운 신부님께서 설마 비에 젖은 어린 양을 그냥 쫓아내실 생각은 아니겠지?”
허나 그것도 잠시였다. 곧바로 제 페이스를 드러내 장난과 도발이 적절히 섞여있는 말과 눈웃음을 치는 소년의 말에 카라마츠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고 몸을 흠칫 떨었다. 빗물로 인해 고개를 뒤로 슬쩍 꺾었을 때 드러난 젖은 쇄골이 금욕적이어야 하는 신부와는 정 반대로 악마의 것과 같이 뇌쇄적으로 어둠 속에서 빛났다. 카라마츠는 금방 그곳에서 황급히 시선을 떼어내고는 무언가를 깜빡한 사람처럼 급히 왔던 길을 되돌아 안으로 뛰다시피 들어갔다.
카라마츠의 신부복 자락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오소마츠는 몸을 나른히 풀어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하지만 나무로 만들어진 장의자는 기도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 몇 번이나 몸을 뒤척여도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아니, 성당이라는 공간 자체가 오소마츠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젠장, 비만 아니었어도 이딴 곳에는 들어오지 않는 건데.”
온종일 허탕만 쳤을 뿐더러 이제는 때 아닌 폭우까지 쫄딱 맞아 평생 연이 없을 곳에 발을 들였으니 오소마츠의 기분이 진창에 나뒹군 것과 같이 더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곳을 빠져나와 굳이 애써서 폭우를 뚫고 도착하고 싶은 거점지도 아녔다. 오소마츠는 의도적으로 ‘집’이라는 표현을 피하며 비에 젖어 으슬으슬 떠는 몸을 손을 쓸어내렸다. 그러다 문득 시선이 제대에 닿았다. 이 을씨년스러운 밤에도 금빛으로 번쩍이는 십자가가 상스러워 보였다. 신은 개뿔. 오소마츠는 입버릇에 가깝게 반사적으로 욕을 탁 뱉었다. 그는 신을 믿지 않았다. 악마에게 끌려가 지옥의 밑바닥에 기는 인생을 살기 시작한 후로 자신에게 구원의 여지조차 주지 않고 매정히 방관만 하는 신이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였다. 지금만 해도, 자신은 비에 젖어 추위에 덜덜 떨며 온기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풀썩
그 독백이 끝남과 동시에, 오소마츠의 머리 위로 뽀송뽀송한 무언가가 사뿐히 내려앉았다. 별안간 머리에 얹어진 것에 뭔가 싶어 손으로 잡아보니 그것은 흰 수건이었다. 오소마츠의 옆에는 어느 틈엔가 카라마츠가 품 안에 수건을 한 아름 들고 와서는 허둥지둥 오소마츠의 몸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괜찮은가? 많이 젖은 것 같은데 빨리 닦지 않으면 감기 걸리기 쉽다.”
“에? 아, 아니 난 괜찮은데. 우왓, 잠깐만! 지금 어딜 만지는 거야!”
“가만히 있어봐라. 빗물에 젖으면 더 꼼꼼히 닦아줘야 하는 법이다.”
펄쩍 놀라며 카라마츠의 손길을 어떻게든 뿌리치려는 오소마츠였지만, 마른 신부복을 입은 것과 달리 힘은 카라마츠가 더 우세였는지라 카라마츠는 반쯤 막무가내로 오소마츠의 말에 아랑곳 않고 오소마츠의 얼굴을 가린 후드 모자를 벗기고 젖은 머리카락을 쓱쓱 닦아줬다.
아, 따뜻하다.
자신의 머리카락을 야무지게, 그리고 상냥하게 닦아주는 손길과 햇볕내음을 아직까지도 잔뜩 묻히고 있는 수건의 향기가 오소마츠에게 온기를 선사해주고 있었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온기인가. 오소마츠는 낯선 감각에 자꾸만 몸이 간지러워 괜히 몸을 이리저리 뒤틀었다. 잠깐, 가만히 있어봐라. 그런 오소마츠의 뒤척임에 카라마츠가 간단히 주의를 주고는 곧이어 오소마츠의 얼굴과 목, 그리고 젖은 옷의 물기를 전부 닦아내줬다. 그런 카라마츠의 수고 덕분에, 오소마츠는 전보다 상당히 푸근해진 상태가 되었다.
“음, 이제 괜찮을 거다.”
“아, 저기. 고마워.”
“No, No~ 비에 젖은 가녀린 어린 양들을 위해서라면 이런 수고쯤은 No problem이다. 훗.”
“푸핫! 뭐야, 그게ㅋㅋㅋㅋㅋㅋㅋ요즘 신부님들은 그런 안쓰러운 대사도 하는 거야? 아프다고~”
“에, 아프다고!? 혹시 어디 다친 곳이라도 있는 건가?? 아아, 이렇게 또 어린 양에게 상처를 입히다니, 이것도 신이 주시는 시련이란 말인가.”
“앜ㅋㅋㅋㅋㅋㅋㅋ잠깐ㅋㅋㅋㅋㅋㅋㅋ갈비뼈 아프니까 진짜 그만해ㅋㅋㅋㅋㅋㅋㅋㅋ”
있는 대로 느끼한 폼을 잡으면서 안쓰러운 대사를 읊는 카라마츠의 말에 오소마츠는 빵 터져서는 옆구리를 잡고는 아프다며 웃어대자 카라마츠는 그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는 오소마츠의 상태를 걱정했는데, 그 모습조차도 웃겨서 오소마츠는 그게 아니라고 간신히 말하면서 끅끅거리기까지 했다. 덕분에 조금 전까지의 우울한 기분이 싹 날아가게 되어 조금 진정이 된 오소마츠는 전보다 훨씬 후련하면서도 본래의 제 모습과 가장 가까운 얼굴로 카라마츠에게 씩 웃어줬다.
“나 원래는 이런 곳 싫어하지만, 이렇게 안쓰러운 신부님이 있는 성당이라면 나쁘지 않네. 아, 그러고 보니 신부님 이름은 뭐야?”
“아, 카라마츠라고 한다.”
“헤에. 난 오소마츠! 있지, 신부님. 다음에 또 찾아와도 괜찮아?”
“아아, 물론이다. 우리 성당은 항상 어린 양들을 위해 활짝 열려있는 상태니까 말이지. 신께서도 분명 오소마츠를 반겨주실 거다.”
“…아니, 그건 아니지 않을까.”
오소마츠는 시선을 위로 올려 다시 제대에 세워진 십자가를 올려봤다. 여전히 묵묵히 두 사람을 내려다보는, 그 모습이 무척이나 심기 불편하게 마음에 들지 않은 날카로운 십자가의 형세를 오소마츠는 원망에 가까운 눈빛으로 쏘아봤다.
“신 같은 건 없다고, 신부님.”
신을 부정하는 그의 말에는 깊고도 오랜 세월에 거쳐 단단히 굳혀진 원망이 밑바탕으로 깔려있어, 신부로서 신을 섬기는 몸인데도 카라마츠는 그 말에 함부로 반박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카라마츠는 깨달았다. 오소마츠의 그 말은 방금 전의 미소로 가려져 있는 상흔의 일부분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할 일은 신의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신께서는 내 곁으로 이 어린 양을 보내신 게 분명했다. 카라마츠는 오소마츠와의 만남을 신과 연관 지어 그리 해석하고는 몰래 주먹을 쥐었다.
굳이 신의 뜻이 아니더라도, 카라마츠는 수도 없이 난도질되어 자신의 상처의 크기와 깊이를 완전히 가늠하지 못하고 있는 회한 섞인 눈빛을 그냥 둘 수가 없었다.
그 후로 오소마츠는 종종 카라마츠를 만나러 성당을 방문했다. 오소마츠가 성당을 찾아오는 시간대는 상당히 불규칙했지만 대부분이 사람들이 적을 시간대에 찾아왔고, 카라마츠는 오소마츠가 언제 찾아오든 항상 반갑게 맞이해줬다. 성당을 방문하는 오소마츠는 다른 신도들과는 달리 제단 앞에 손을 모아 신께 기도를 올리는 행위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맨 앞자리에 앉아 카라마츠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잡담을 나눌 뿐이었다. 주로 카라마츠가 안쓰러운 대사를 읊으면, 오소마츠가 갈비뼈를 부여잡고 웃는 패턴이었다. 카라마츠는 오소마츠가 왜 자신의 말에 안쓰럽다며 폭소를 터트리는지 몰랐지만, 그리 웃고 난 뒤의 오소마츠는 잠시 동안 무언가가 떨어져 나간 것처럼 후련해진 얼굴을 하는지라 카라마츠는 속으로 안도하며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히야, 신부님하고 같이 있으면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니까.”
“그렇다고 너무 늦게까지 있지 않는 편이 좋다. 집에서도 걱정하고 있을 테니까.”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나 같은 거 걱정해 줄만큼 인정머리 있는 아저씨도 아니고 말이지.”
“아저씨?”
“아, 미안. 말실수했어. 그냥 흘려 넘겨.”
그러나 간혹 대화 도중에 ‘아저씨’라는 단어가 말실수로 나오면 오소마츠는 웃는 것도 멈추고 슬쩍 말을 돌려버리기 일쑤였다. 그 때까지도 카라마츠는 오소마츠의 가정 사정 같은 사생활은 전혀 들을 수 없었다. 학교는 다니고 있는지, 가족은 누가 있는지, 교회에 오기 전에는 뭘 하고 있는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만큼 자신이 오소마츠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적다는 것을 깨달을 때면 카라마츠는 답답한 심정을 떨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어렴풋이 알 수 있는 건, 오소마츠는 집으로, 정확히는 ‘아저씨’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들어가기 싫어했다. 늦은 시간까지 교회에 죽치고 앉아 시간을 때우려고 했고, 휴대폰으로 전화가 오면 황급히 성당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와서는 이만 가봐야 한다며 쌩하니 돌아갔다. 상대 쪽에서 독촉이 올 때까지 오소마츠는 그런 패턴을 끈질기게 반복했다. 오소마츠가 돌아갈 때, 카라마츠는 ‘집’에 돌아 가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오소마츠는 그 말을 듣고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 때, 무슨 얼굴을 하고 그런 대답을 했는지는 카라마츠는 기억하지 못했다. 기억할 수 있지만, 일부러 지워낸 것처럼 볼품없이 흐렸다. 집이 아닌 곳은 어떤 곳일까. ‘아저씨’는 누구일까. 이런 저런 단서들을 종합해 봤을 때 카라마츠는 오소마츠의 주변 상황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님을 알 수 있었지만, 아직은 추측의 영역이라 함부로 손댈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오소마츠가 책상에 걸터앉아 방금 기도를 마친 카라마츠에게 말했다.
“신부님. 나쁜 짓을 하면 지옥에 간다는 게 사실이야?”
“그야 당연하지. 신의 뜻에 거역하여 사악한 길에 빠져들면 악마의 꾐에 넘어가 지옥으로 끌려가게 된다.”
“그럼 그 뒤에는 어떻게 되는데? 영원히 그 지옥 밑창에 처박혀 있는 거야?”
“그렇겠지. 혹독한 형벌을 받을 거다.”
“뭐야. 생각보다 되게 매정하게 나오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녀석 말을 어떻게 믿고 따르냐고. 본인이 정말로 원해서 잘못한 게 아닐 수 있잖아.”
“하지만 잘못된 길을 걷는 것 자체만으로도 죄가 될 수 있지.”
그 말을 발설하고, 카라마츠는 어째선지 자신이 큰 실수를 한 것 같은 뜨끔함에 입안이 바짝 말라갔다. 하지만 그 뒤를 따른 오소마츠의 목소리는 카라마츠의 찔림과 상관없이 그런가, 라는 말을 여전히 태평하게 내뱉었다.
“아무리 실수라고 해도 잘못은 잘못이니까.”
“…그럼, 신부님도 그런 ‘실수’를 하면 지옥으로 떨어지는 걸까?”
“뭐?”
카라마츠가 의문과 함께 고개를 돌린 순간, 타이밍 맞게 오소마츠가 순식간에 카라마츠의 곁에 서서는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갑자기 제 입술에 와 닿는 부드러운 감촉에 카라마츠는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나려고 했지만, 오소마츠가 재빨리 카라마츠의 손목을 낚아채어 도망칠 수 없도록 했다. 그 틈에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입 안으로 혀를 밀어 넣어서는 본격적으로 그의 혀와 제 혀를 서로 뒤섞이게 만들었다. 서로의 혀가 타인의 타액에 젖어 질척이는 소리를 음탕하게 흘렸다. 신성한 성당에 이런 짓이라니. 카라마츠는 대경실색에서 당장이라도 오소마츠를 뿌리치고 싶었지만, 오소마츠의 혀가 주는 열락은 카라마츠의 이성으로 쉽게 뿌리칠 수 있는 것이 아녔다. 무엇보다 오소마츠의 테크닉은 카라마츠와 달리 능숙함으로 다져져 더욱 카라마츠에게 매달려 놓지 않고 있었다. 오소마츠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좀 전에 잡은 카라마츠의 손을 자신의 후드 티 안으로 밀어 넣어 맨 가슴을 만지게 했다. 크고 차가운 손이 안으로 들어와 흠칫 놀라기는 했지만, 오소마츠는 그 차가움마저 즐기면서 카라마츠의 손이 자신의 가슴을 위에서 아래로 슬쩍 쓸어내리게 만들었다. 카라마츠는 갑작스런 상황에 혼란에 빠져 어쩔 바를 모르면서도, 이성으로는 이것이 잘못된 쾌락이라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빨갛게 젖어 들어가는 오소마츠의 눈매에 도무지 시선을 떼어내지를 못했다.
그리고 자신의 손끝이 오소마츠의 유두를 스쳐가고, 오소마츠가 그 스침으로 기다렸다는 듯이 교태에 젖은 신음을 터트리고서야 카라마츠는 가까스로 모든 이성을 긁어모아 오소마츠의 어깨를 붙잡고 저에게서 떼어낼 수 있었다.
잠시, 서로의 신음소리가 성당을 그득히 메웠다. 살짝 젖어든 오소마츠의 시선이 여전히 자신의 어깨를 붙잡고 고개를 죄인처럼 수그린 카라마츠를 향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제단을 올려봤다. 서슬 퍼런 십자가와 그것을 등지고서 자애로운 미소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성모상이 보였다. 어쩐지 저 성스러운 것들마저 자신들의 행위에 숨죽여 지켜보고서 흥분한 것 같아 오소마츠는 당장이라도 폭소하고 싶었다.
“오소마츠.”
간신히 오소마츠의 이름을 부른 카라마츠지만, 여전히 고개는 들지 못했다. 그 이름 뒤에 수많은 물음이 신기루처럼 따라 붙었지만, 그 의문에 대답해줄 말은 어느 무엇도 들리지 않았다.
“유감이네, 신부님. 신부님이랑 같이 지옥에 가고 싶었는데.”
그 말만을 남기고 오소마츠는 떠났지만, 카라마츠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 후로 오소마츠는 며칠 동안 성당을 찾아오지 않았다. 카라마츠의 일상은 다시 오소마츠를 만나기 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카라마츠는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굴었다. 겉으로는 평범한 일상을 영위해가는 것처럼 굴어도, 틈이 날 때면 입구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지라 몇몇 신도들이 혹여 누군가와 만나기로 했냐면서 물어보기까지 했다. 그럴 때마다 카라마츠는 어색하게 웃어줄 뿐 아무 대답도 못했다. 카라마츠는 오소마츠를 찾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신의 보금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소마츠가 찾아오기만을 우직히 기다리기만 했다.
그 동안 카라마츠는 오소마츠가 마지막에 자신에게 한 행위들을 곰곰이 생각했다. 신을 모시는 신성한 제단 앞에서 그런 짓을 하다니. 몇 번이고 참회를 올려야 할 만큼 깊은 잘못이었다. 그러나 카라마츠는 오소마츠를 탓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다.
마지막에 오소마츠가 남긴 말이 마음에 걸렸다. 함께 지옥에 가자는 말보다도, 자신이 있는 지옥으로 카라마츠를 끌어들이고 싶다는 외침에 더 가까웠다. 그리고 카라마츠는 오소마츠의 그 말에서 외로움을 느꼈다. 카라마츠를 미워해서 그를 타락시키고 싶다는 것이 아닌, 너무도 외로워서 그를 자신이 있는 곳까지 추락시키고 싶다는 절박함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절박한 손을 잡아주지 못한 건, 카라마츠였다.
신이시여. 제가 어찌 해야 오소마츠를 구원해줄 수 있습니까.
그 물음과 함께 매일 십자가 앞에서 기도를 올려도, 카라마츠가 누구보다 믿고 신봉하는 신에게서는 어떤 계시도 없었다.
며칠을 더 지나 몇 달이 되었을 날이었다. 그 날은 근처에 태풍이 올라와서 또 사나운 폭우가 찾아왔었다. 해자 저물자마자 기세 좋게 퍼붓는 빗방울들은 밖으로 나갈 엄두조차 가지지 못하게 했다. 불길하게 덜컹이는 유리창과 가녀리게 떨리는 촛불이 자꾸만 분위기를 을씨년스럽게 몰아갔다. 그 때와 무척 빼닮은 날이었다. 카라마츠는 그 날처럼 필사하던 손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에도 비가 새들어오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지만, 이런 날이니 혹시나 싶은 심정도 들었다. 카라마츠는 손전등을 챙겨들고 조금 급한 발걸음으로 나갔다.
성당에 도착하니 넓고 텅 빈 공간만이 썰렁하게 카라마츠를 반겼다. 그러나 어디에도 그림자는 없었다. 카라마츠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 표정으로 안을 크게 살피다가, 크게 난 성당 입구의 문이 조금 열린 것을 발견했다. 작은 틈새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서는 바닥을 적시는 빗물에 카라마츠는 문을 닫기 위해 그곳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조금씩 다가갈수록 뭔가가 이상했다. 보통 이정도 틈새가 열리면 바람으로 인해 문이 활짝 열리기 마련인데, 문이 열린 틈은 그대로 고정되어 더는 열리지 않았다. 자연의 힘으로 열었기 보다는,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열었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리고 틈 사이로 바깥에서 보이는 낯익은 그림자의 형태와, 언뜻 보이는 검은 후드 티 자락에 카라마츠는 거의 뜀박질에 가깝게 입구로 달려와서는 그대로 문을 열어젖혔다.
성당의 입구 앞에는, 그 날처럼 처량하게 비에 젖은 오소마츠가 쭈그려 앉아있었다.
후드 티에 달린 모자를 푹 눌러쓰고, 얼굴에는 잔뜩 부은 피멍들 달고, 젖은 쇄골에는 붉은 자국을 달고, 빗물 내음에도 지워지지 않는 은은한 밤꽃 향을 달고, 오소마츠는 신의 보금자리에 들어오지 못한 채 입구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신이시여. 어찌하여 이 어린 양의 죄를 사하지 않고, 안아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까. 당신의 보금자리에 들어오지 못해 떨고 있는 이가 보이지 않으십니까.
처음으로 신을 원망하면서도, 카라마츠는 신이 오소마츠를 제 품에 넣어주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리고 한 발짝 성당 밖으로 나와 그대로 비를 맞으며 오소마츠를 끌어안아줬다.
“카라마츠.”
오소마츠는 잠깐 당황하며 얼떨결에 카라마츠의 품에 갇혀서는 횡설수설 어떤 말들을 늘어놓았지만, 빗소리에 그 말들이 전부 파묻혔다. 어차피 들을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결국 오소마츠도 반쯤 포기한 것인지 카라마츠의 등을 토닥토닥 쓰다듬어줬다. 위로 받아야 하는 건 본인인데도 도리어 카라마츠를 위로해주고 있었다.
“아저씨가 어디서 네 얘길 듣고는 기분 상해서 말이야. 한동안 비위 맞춰주느라고 시간이 나야지.”
“그런가.”
“어렸을 적부터 익숙했어.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해야 한다는 말이 당연하게 들려왔지. 잘못되었다고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고.”
“그랬구나.”
“그 아저씨 밑에 지낼 때부터 신이라는 작자가 싫었어. 나한테 잘해준 것 하나 없는데 뭐 좋다고 믿냐고. 그런 악마에게 떠맡겼으면 한 번은 좋은 일 좀 생기게 해주지 말이야. 그러고 보니, 나 크리스마스 때 그 아저씨가 나 따먹었다? 되게 웃기지?”
“오소마츠.”
“그래서, 구원이니 뭐니 하는 사탕발림은 다 포기하고 있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갈 데가 여기밖에 없더라.”
오소마츠는 그 말을 다하고 카라마츠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빗물에 잔뜩 젖어 알 수 없었고 착각일 수 있지만, 카라마츠는 오소마츠가 닿는 곳이 조금 따뜻해져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카라마츠.”
그 부름에 카라마츠가 줄 수 있는 구원은, 그저 더 이상 차가운 비에 젖게 하지 않게 더욱 세게 오소마츠를 끌어안아 주는 것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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