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오소마츠 형이 사라졌다.
그건 정말인지 어떤 전조도 없이, 단어 그대로 ‘사라졌다’라는 말 외에는 상황을 설명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날씨는 맑고, 컨디션은 그럭저럭 괜찮은,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없는 평탄한 하루였다. 우리는 여전히 사회 카스트의 밑바닥을 기어 다니는 니트였고, 늦은 아침에 자명종 시계보다 정확한 배꼽시계에 맞춰 일어나 잠이 덜 깬 발걸음을 흐느적흐느적 옮겨 거실로 내려와 엄마가 때맞춰 차려준 아침을 먹는, 그야말로 ‘일상’에 가장 알맞은 하루의 시작이었다. 오소마츠 형도, 잠이 덜 깬 눈을 억지로 부비며 까치집이 된 머리를 까닥이며 아침밥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평소대로’의 오소마츠 형이었다. 아침식사가 끝나자 다들 각자의 볼일을 위해 외출준비를 서둘렀다. 쵸로마츠 형은 헬로 위크에 나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쿠소마츠는 자칭 ‘카라마츠 걸즈’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위한 헌팅을 위해, 쥬시마츠는 야구를 위해, 토도마츠는 라인을 통해 알게 된 여자아이와 만나기 위해. 부산스러운 상황 안에서 잠결 섞인 여운을 만끽하며 느긋하게 관망하는 사람은 나와 오소마츠 형뿐이었다. 오소마츠 형은 원래 기본적으로 외출 준비가 늦은 편에 속했고, 나는 오늘 친구들(고양이들)과 만날 계획이 없어 오늘은 그냥 집에서 안타는 쓰레기답게 시간을 축낼 예정이었다. 하나 둘 씩 집 밖으로 나갔고, 집안에는 이제 나와 오소마츠 형만이 남게 되었다. 거실에 형과 단 둘이 남게 되자 찾아온 것은 정적이었다. 의외라면 충분히 의외지만, 오소마츠 형과 단둘이 한 공간에 남게 되면 이런 정적을 맛볼 수 있다. 편안하면서도 언제라도 당장 깨질 수 있는 얇은 정적이 어딘지 모르게 포근하고 마음에 들어 나는 남들 모르게 이 정적을 즐겼다. 그래서 오늘은 오랜만에 오소마츠 형과 둘이서 이 분위기를 즐길 수 있겠구나 싶어 살짝 입 꼬리가 올라갔었다.
“자, 그럼 나도 이제 나가볼까?”
하지만 아쉽게도 오늘은 오소마츠 형도 외출 예정이 잡혀있었던 모양이다.
“에, 오소마츠 형도 나가려고?”
“응. 오늘은 외출하기 딱 좋은 날씨라서.”
그리 말한 뒤, 내 안색을 살피더니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라, 뭐야 그 반응은? 내가 나간다고 하니까 섭섭한 거야? 그 이치마츠가 설마 외로움 타는 거?”
“그, 그런 거 아니거든! 나갈 거면 얼른 나가버리기나 해.”
하여튼 이런 부분에서 쓸 때 없이 촉이 좋아 곤란하다. 속내를 들켜버려 찔린 심정에 나는 일부로 말 속에 짜증을 조금 더 섞어 넣어 얼른 나가라고 오소마츠 형을 쫓아냈다. 그런 내 말을 들은 오소마츠 형은 금방 나가지 않고 가만히 서 있다가, 자박자박 나에게로 걸어와 내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뜬금없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그럼에도 어렸을 적부터 수없이 많이 겪었던 익숙한 쓰다듦에 나는 놀람과 약간의 위화감으로 오소마츠 형의 얼굴을 확인하려고 했지만, 찰나의 순간은 이미 지나가버리고, 내 정수리를 떠나간 손길 뒤에는 ‘평소’의 오소마츠 형이 있었다.
“그럼, 형아 없는 동안에 집 잘 보고 있어.”
그런 말을 남기고, 오소마츠 형은 집을 나섰다. 평소에 즐겨 입고 다니는 붉은 후드 티와 물 빠진 청바지, 낡은 운동화를 신고, 딱히 챙긴 물건이나 연락 수단 없이, 빈손을 주머니에 꽂고, 요 앞에 마실 나가러 가볍게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 그대로 현관문을 가뿐히 넘었다.
화창한 날씨에, 일상의 평화로움이 물결처럼 잔잔히 흐르는, 한가로운 일상.
오소마츠 형은, 나에게 그런 모습만을 마지막으로 남겨둔 채 일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 * *
오소마츠 형의 실종신고를 경찰서에 넣은 건 그 날로부터 나흘 뒤였다.
가끔씩 외박하는 일도 있어서 첫째 날에는 그런 날이구나 싶어 넘어갔고, 둘째 날에는 걱정으로 만들어낸 불안 속에서 설마, 하는 생각으로 기다렸고, 셋째 날의 자정을 넘기고 넷째 날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루 이틀 외박하는 일이 있어도 연락도 없이 이만큼이나 혼자서 집에 들어오지 않은 적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었다. 양손의 손톱이 죄다 너덜너덜해진 쵸로마츠 형이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경찰서에 실종신고를 넣자고 했고, 카라마츠가 부모님과 함께 경찰서로 찾아가 실종신고를 신청했다. 그 후로 우리의 평범했던 일상은 격변했다. 아침 해가 뜨면 날카로운 부산스러움 안에서 토스트 같이 간단하게 차려진 아침으로 대충 배를 채우고서 밖으로 나가 온종일 오소마츠 형을 찾으러 마을 내를 샅샅이 뒤졌고, 실종 포스터를 뿌리거나 벽에 붙이곤 했다. 그리고 해가 지면 하루 종일 돌아다녀 녹초가 된 몸과 오늘도 오소마츠 형을 찾아내지 못했다는 좌절감으로 무너진 정신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 대충 깔은 이불에 피로에 질린 심신을 뉘였다. 성과 없는 수색 속에서 모두가 지쳐갔다. 쵸로마츠 형은 신경질적으로 우울한 모습을 보여줬고, 쥬시마츠는 크게 입을 벌려 웃는 모습보다 입을 꾹 다물고 길을 잃은 어린애 같은 표정을 자주 드러냈고, 토도마츠는 짐짓 괜찮은 척 굴었지만 밤중에 자주 훌쩍이는 소리를 내 어느 날에는 듣다 못한 쵸로마츠 형이 그만 좀 질질 짜라고, 너만 울고 싶은 심정이냐고 버럭 화를 내어 대판 싸운 적도 있었다. 카라마츠는 오소마츠 형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어떻게든 동생들을 수습하여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하지만 역시 힘든 건 마찬가지인지 이전보다 더 말수가 줄어들었고, 줄담배를 뻑뻑 피우는 습관이 새로 생겼다. 요새 들어 자주 보이는 담배꽁초로 수북한 재떨이가 지금의 카라마츠의 상태를 적나라하게 대변해줬다.
나는, 나는 지금 어떤 상태일까.
아마도지만, 우리들 중에서 그나마 충격을 덜 받고 있는 건 나일 것이다. 마치 이런 날이 올 것을 예감한 사람처럼 충격에 대비해 완충용 쿠션을 몇 개 구해서 제 위에 덮어둔 것 같았다. 그것이 의연한인지, 이해인지, 체념인지는 둘째치더라도.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치마츠가 제일 걱정되거든.」
그 말대로 오소마츠 형은 이런 나를 걱정해서 이딴 것들을 나에게 미리 구해다 준 것일까. 하루하루 천천히, 그리고 착실하게 자신을 짓누르며 코와 입을 막아 숨을 못 쉬게 하는 쿠션의 압박 속에서 나는 형의 상냥함을 느껴야만 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이 찾아왔다. 다들 풀리지 않은 피로를 가까스로 추스른 뒤 집을 나섰다. 오늘도 오소마츠 형을 보면 바로 연락하라는 당부를 서로에게 잊지 않고 전하며, 각자가 맡은 구역을 향해 발걸음을 바삐 옮겼다. 나는 그들이 떠나는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슬리퍼를 지익지익 끌면서 내가 맡은 구역과는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처음부터 나는 오소마츠 형을 찾으려는 수고조차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오소마츠 형이 사라지고 나서 매일 찾아가는 곳이 있었다.
느릿느릿 발걸음을 꾸준히 옮긴 끝에 도착한 곳은 어느 폐건물이었다. 칙칙한 회색빛으로 칠해진 건물은 원래 흥신소나 요상한 이름을 가진 수상쩍은 사무소들이 자주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는 곳이었지만, 그것도 다 옛말이 되어 지금은 십년 이상 방치된 흉물스러운 폐건물이 되었다. 사람들의 발길도 적고, 겉으로 보면 을씨년스러운 곳인지라 아무도 그 폐건물 가까이에 오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익숙하게 폐건물의 문을 열고 낡은 자재들을 밟고 건너며 차가운 돌계단을 올랐다. 숨이 좀 차오르려던 때가 되면 옥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출입문을 열고 옥상으로 나오면 시멘트 가루가 섞인 탁하고 차가운 건물 공기와는 다른 크고 상쾌한 바람을 만나게 된다. 건물 내부와는 상반되게 생각보다 깔끔한, 다시 말해 아무것도 없는 작은 옥상에서 나는 발걸음을 딱 세 걸음만 앞으로 내딛었다. 하나, 둘, 셋. 걸음을 멈추니 옥상 중심 자리에 설 수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옥상 바닥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니, 오늘도 날씨는 평소처럼 맑았다.
입구에서부터 딱 세 발자국만 걸으면 정확하게 옥상의 중심에 도착할 수 있어.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낭만 넘치는 모험가처럼, 오소마츠 형이 호들갑을 떨면서 나에게 알려줬던 작은 발견이었다.
* * *
“언젠가 나는 달나라로 떠날 거야, 이치마츠.”
폐건물의 존재를 알게 된 건 전적으로 오소마츠 형 때문이었다.
학창시절, 스스로가 구제 불능의 쓰레기인 것을 인정하고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포기하여 고양이들에게 우정을 느끼고자 노력했던, 그 시절에도 여전히 의미 없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수많은 날들 중 어느 날에 오소마츠 형이 자신의 비밀기지를 발견했다면서 내 손목을 잡고서 이곳으로 끌고 왔다. 어찌할 새도 없이 오소마츠 형에게 잡혀서 끌려가는 와중에도 나는 오소마츠 형이 나를 데려가면서 ‘너한테만 알려주는 거야.’라고 귀엣말로 속삭이는 것에 한쪽 귀가 데일 것 같이 뜨거워져 입술을 깨물었고, 내 손목을 잡는 오소마츠 형의 뜨거운 손에 눈길이 가는 것을 애써 참아내고자 무진 애를 써야만 했다. 해가 저물고 밤하늘이 퍼져나가는 초저녁에서야 폐건물에 도착한 오소마츠 형은 지체 없이 나를 이끌고 옥상까지 올라왔다. 여기가 내 비밀기지야. 예상 밖으로 초라한, 오소마츠 형답지 않은 ‘비밀기지’에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기가? 응.
“왜 이런 곳을 비밀기지로 삼은 건데?”
“그야, 여기가 가장 달이 잘 보이는 곳이니까.”
하나, 둘, 셋. 적당한 보폭으로 딱 세 걸음.
세 걸음을 내딛고, 옥상의 중앙에 서서, 한쪽 발끝으로 꼭지점을 잡고 빙그르르 돌면서 두 팔을 활짝 벌린 채로 나에게 미소를 짓는 오소마츠 형의 뒤에는, 그를 집어삼킬 것같이 커다란 둥근 달이 떠있었다. 달빛을 받아 그림자가 진 오소마츠 형의 야릇한 미소는, 이곳에서만 감상할 수 있는 은밀함의 상징이 되었다.
폐건물의 옥상에서 오소마츠 형은 달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어디선가 풍문으로 알음알음 주워들은 달과 관련된 지식들과 신화 속 이야기들은 오소마츠 형이 선정하는 주제치고는 상당히 이질적이었으나 큼직한 달 아래서 그런 주제로 대화를 나눠서 그런지 아주 허무맹랑한 소리처럼 들리지가 않았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달에 대한 여러 환상들을 품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달에는 이상향이 존재한다는 전설이 각 지역마다 꼭 하나쯤은 있었다. 밤마다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손에 닿을 듯 바로 눈앞에 존재하는 곳이지만,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다다를 수 없는 미지와 신비의 영역. 눈앞에 신기루처럼 어른거리는 바로 코앞에 두니 인간의 상상력은 기상천외하게 뻗어나갔다. 별보다 더 밝게 밤의 어둠을 밝혀주는 것에서 사람들은 신성함을 느꼈고, 태양과 상반되어 어둠 속에서만 모습을 드러내는 것에서 불길함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것도 전부 옛말이다. 인류가 최초로 달에 발걸음을 남기고, 무례하리만치 속속히 달의 모든 것을 뜯어내어 밝혀진 허탈한 진실 앞에서 사람들은 환상과 낭만, 상상력을 모두 잃고 말았다. 이제 어린애라도 달에는 토끼가 살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으며, 사람들은 달에게서 품었던 미지와 환상의 기대를 우주에 펼쳐진 무수히 많은 별들에게 걸었다.
그런 시류 속에서, 오소마츠 형은 확실히 별종이었다.
오소마츠 형은 이곳에 올 때마다 달나라로 가겠다는 말을 했다. 언제, 어떻게, 무슨 이유로 그런 말을 하는지는 일절 알려주지 않았다. 형은 당장이라도 달로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처럼 아무 미련도 없이, 내일도 맑았으면 좋겠다는 말처럼 당연한 바람으로 나에게 끊임없이 그런 말을 전했다.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여기보다, 우리들과 함께 있는 것보다 있지도 않는 달나라로 가겠다는 거야? 아무리 철이 없어도 그렇지 언제까지 그런 말을 할 거냐고. 오소마츠 형은, 왜, 왜.
“왜 나한테만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참지 못하고 묻게 된 어느 날, 나는 밤하늘에 뜬 수많은 별들과 비등한 수의 의문들 중에서 유일하게 딱 하나, 그거 하나만을 꺼내서 물을 수 있었다. 오늘도 달빛을 온몸으로 한껏 받던 오소마츠 형은, 내 물음을 듣고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달빛에 젖은 오소마츠 형의 모습은 순간, 이곳에서는 있어서는 안 될 사람처럼 보여 가슴이 철렁였다. 그 모습에서 나는 어렸을 적에 읽었던 카구야 공주 이야기를 떠올렸다. 달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했지만, 결국에는 자신을 헌신하고 사랑해준 사람들로부터 떠나 어느 날 갑자기 달로 홀연히 돌아가 버린, 달의 공주.
우습게도 나마저 오소마츠 형의 말에 어느새 홀딱 넘어간 것인지, 나는 오소마츠 형이 카구야 공주처럼 정말로 달에서 살다가 지상으로 내려온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달은 점점 커지면서 한층 더 밝게 빛났고, 그 때문에 오소마츠 형의 얼굴에는 더욱 짙은 그늘이 져서 표정을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오소마츠 형의 얼굴이 보고 싶어 눈에 힘을 주고 노려보다시피 형을 바라볼 때, 오소마츠 형은 고개를 틀고 달을 바라보며 말했다.
“언젠가, 내가 없어지더라도 다른 녀석들은 괜찮겠지.”
“뭐?”
“시간은 걸리겠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다들 괜찮아 질 거야. 쵸로마츠가 좀 오래 걸리겠지만, 그래도 녀석이라면 털고 일어나겠지. 나중에는 아, 그러고 보니 우리 다섯 쌍둥이가 아니라 여섯 쌍둥이였지, 하고 간식 먹다가 가볍게 떠올릴 수 있을 거야.”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그런 게 가능할리가…!”
“하지만 너는 그러지 못하잖아, 이치마츠.”
달의 기운을 품은 눈동자가 이치마츠를 응시했다. 그의 겉모습이 아닌, 내면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파헤쳐 들어가는, 그럼에도 피할 수 없는 강한 마력을 지닌 눈동자와 말에 이치마츠는 따지려던 말을 미처 끝내지도 못하고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달의 힘을 빌려 모든 것을 이미 오래전에 꿰뚫어본 사람처럼 오소마츠 형은 기정사실마냥 읊어댔다. 아니, 굳이 달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오소마츠 형은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형제들의 진심을 들추어낼 수 있다.
자신의 동생이 저에게 형제애 이상의 감정을 가지고 그것을 꽁꽁 숨겨놓고 있다는 구질구질한 진실마저도.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치마츠가 제일 걱정되거든. 내가 말도 없이 갑자기 사라지면 이치마츠가 제일 힘들어할 것 같단 말이야. 그래서 달나라로 가려고 해도 자꾸만 눈에 밟혀서 형아는 마음이 찢어지답니다~”
마지막 말은 일부로인 것 마냥 말꼬리를 장난스럽게 늘이면서, 오소마츠 형은 푸석푸석한 내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천천히, 고양이의 등을 쓰다듬어주는 것처럼 다정하고 상냥하게.
이따금 칭찬과 함께 보상으로 얻는 이 손길을 얼마나 좋아했던가. 주인에게 쓰다듦을 받고 싶어 어리광을 부리는 고양이처럼, 혹은 짝사랑하는 사람의 온기를 갈구하는 미련 많은 남자처럼, 자신은 오소마츠 형의 손길을 무엇보다 사랑했다. 그런데 형이 달로 떠나게 된다면, 이제 자신의 시야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면, 더는 이런 사사로운 손길마저도 느낄 수 없게 된다는 걸까. 차라리 농담이라고 해줬으면, 자신이라도 마음 한 구석으로 헛소리라고 받아들였으면 좋았을 것이다. 허나 달이 오소마츠 형을 통해서 저에게 걸어둔 최면은 상당히 강력한 것인지 몰라도, 나는 오소마츠 형의 말이 한 톨의 거짓말도 없는 진실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끝끝내 나는 오소마츠 형의 손아래 서 눈물을 터트렸다. 오소마츠 형과 헤어지고 싶지 않은데, 저딴 달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하면 오소마츠 형을 잃지 않을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도무지 알지 못해서, 그런 서러움에 나는 두 팔에 얼굴을 파묻고 끅끅 울음을 흘렸다.
언젠가 나는 달나라로 떠날 거야, 이치마츠.
달이 안겨주는 상냥함에,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
* * *
찬 공기에 소름이 돋아 잠에서 깼다. 옥상에서 넋 놓고 하릴없이 앉아만 있더니 깜빡 졸아버린 모양이다. 채 가시지 않은 졸음을 눈을 부비면서 쫓아내자, 뚜렷해진 시야로 커다란 달이 불쑥 나타났다. 이 시간까지 잠들었던 건가. 나는 멍하니 달을 올려다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오소마츠 형이 사라지고 나서 매일 찾아가는 곳이지만 항상 해질녘이 되면 바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떠났기에 여기서 달을 본 것은 무척이나 오랜만이었다. 오늘도 달은 무척이나 아름답고 환하게 빛났다.
저 달에 분명 오소마츠 형이 있을 것이다. 오소마츠 형은 정말로 달나라로 떠났을까 하는 생각은 안하기로 했다. 형이라면 분명, 달나라로 갔겠지. 가기 전에 달토끼도 보고 싶다고 그렇게 노래했는데 봤을까? 달에도 고양이가 사는지 자기 대신 확인해주겠다는 말을 지켜주고 있을까?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을까? 오소마츠 형은,
…오소마츠 형은,
혼자서, 저 달에 홀로 지내며 나를 그리워하고 있을까.
떠나기 전, 오소마츠 형은 나에게 혹시나 내가 그립거든 저 달을 보면 된다고 일러줬다. 자신도 매일 마을을 살펴볼 테니까 너도 달을 봐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달을 보고 있으면 얻어지는 것이라고는 가슴에 차갑게 에이는 쓸쓸함과 그리움, 그리고 손을 뻗으면 금방이라도 잡히고 닿을 것 같지만 신기루처럼 결코 잡히지 않는 것에 대한 지독한 허무함 밖에 없었다.
아직도 나는 오소마츠 형이 무슨 이유로 달나라로 떠났는지 알지 못한다. 뭐가 있는지 모르는 곳으로 혼자 떠난 오소마츠 형의 심정은 과연 어땠을까. 눈을 감고 옥상에서 달을 올려다보던 오소마츠 형의 모습과 사라지기 직전의 모습들을 떠올려봤지만 오소마츠 형은 여전히 ‘오소마츠 형’이었다. 외로움도 잘 타는 사람이 무슨 배짱으로 혼자서 갔는지도 도통 모르겠다. 그렇게 내가 걱정되면 차라리 나도 데려가지 그랬나 싶은 원망도 들었다. 오소마츠 형이 없는 세상 따위, 아무 의미도 없는데. 옥상에 올라오면서 몇 번이고 여기서 뛰어내려볼까 싶은 충동도 들었지만, 끝내 관둬버린 것은 오소마츠 형의 마지막 말 때문이었다.
「그럼, 형아 없는 동안에 집 잘 보고 있어.」
상실감보다, 남겨둔 상냥함이 제 목을 조여감과 동시에 자신의 목숨을 건져내고 있었다.
그러나 형의 말대로, 나는 아마 모두가 괜찮아지는 날이 오더라도, 그 날이 지나 수많은 시간이 흘러도, 절대로 괜찮아지지 않겠지.
그래서 나는 고약한 마음을 품기로 했다. 달나라로 홀로 떠나가 버린 형이 자신을 그리워하고 황량한 달에서 자신만은 잊지 않고 기억해주기를 매달리듯이, 혼나지 않기 위해 잘못한 짓을 몰래 숨긴 아이처럼 그렇게 꽁꽁 감춰뒀다.
지금도, 여전히 미련스럽게 형의 흔적만을 더듬으며 여전히 놓지 못하고 있음을, 말이다.
그런 심술 섞인 소원 하나를, 조용히 달에게 빌었다.
달빛 속에서 적막이 흘렀다. 자신이 좋아했던, 익숙하고 편안한 적막이었다.
'おそ松さん'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쵸로오소이치]새장 (0) | 2016.07.19 |
---|---|
[카라오소이치]목소리 (0) | 2016.07.18 |
[쵸로오소]RE : (0) | 2016.07.09 |
[카라오소]각인 (0) | 2016.07.05 |
[색깔마츠/이치카라]Egoist (0) | 2016.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