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오글거림 주의.
루피에게.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갑작스레 이렇게 편지만 남기고 떠난 것에 대한 사죄를 먼저 말한다. 너한테만큼은 직접 만나 말하고 떠날까 생각하고 갈등했지만 끝내 너와 마주해 이별을 고하기에는 내가 겁이 많고, 너한테도 못할 짓 같아서 결국 비겁하게나마 편지로 그 뜻을 전한다.
먼저 너에게 어떤 인간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그 녀석을 만나던 때는 지금 생각하면 이제 기억 자체가 너무 낡아 너덜너덜해져 흐릿하게 기억될 정도로, 우리 요괴들에게 있어서도 오래 전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홀로 나무 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인간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붉은 머리가 인상적인, 요괴만큼이나 사납고 야성적인 인간 남자였다. 요괴를 볼 수 있는 인간이 있다는 이야기는 몇 번 들어봤지만 실제로 만난 적은 처음이라 나는 깜짝 놀랐지만 그 자는 익숙하다는 듯이 여기서는 처음 본 요괴라며 말을 걸어왔다. 그래, 그것이 키드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 후로 키드는 그 나무로 찾아왔고, 나는 처음에는 귀찮게 생각해도 차차 키드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나와는 정 반대로 호전적인 오니만큼이나 사나운 성격이었지만 언뜻 비춰지는 인간만이 가지는 특유의 정에 이끌렸다. 무리들 사이에서 겉돌며 혼자 지내는 나에게 키드는 처음 사귄 친구이자 다른 요괴들이나 인간들과는 달리 특별하게 생각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래, 이제 와서 무엇을 숨기겠나. 나는 정신 차리고 보니 그 녀석을 연모하게 되었다. 약속의 나무 아래서 서로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내 하루 중 가장 의미 있고 기쁜 시간이었으며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시기가 내 인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더 이상 숨기기 힘들어 키드에게 내 마음을 고백했고, 키드는 자신도 같은 마음이었다면서 제 머리만큼이나 새빨간 얼굴로 나와 똑같은 마음을 고백했다. 그 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벅차올라 견딜 수가 없다. 인간과 요괴, 서로 다른 두 종족이었고 인간은 요괴만큼이나 오래 살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해서 그런 자잘한 것은 신경 쓰지 않았다. 내 세계에는 오로지 나와 키드 단 둘만이 있었으니까. 그 녀석이 죽을 때가 되면 나도 같이 죽을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너도 알다시피 요괴와 인간은 서로 가까이 해서는 안 될 존재이며 그것은 요괴들 전체 사이에서 금기로 정해져 있다. 텐구들 뿐만이 아니라 많은 요괴들이 나와 키드 사이를 알아차리게 되었고, 텐구들은 나와 키드 사이를 알아차리고 거의 발작할 기세로 반응하며 어떻게 해서는 나와 그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했다. 우리 둘은 어떻게 해서는 버티려고 했으나 결국 키드는 요괴들의 함정에 빠져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게 되었다. 그 바보는, 죽어가는 와중에도 나를 걱정하며 부디 제 몫까지 살아달라고, 사랑했다고 말하며 숨을 거두게 되었다. 요괴의 입장에서도, 인간의 입장에서도 그의 죽음은 너무나도 이른 것이었다.
그 녀석의 말은 망령처럼 나에게 남아버리게 되어 나는 결국 그 녀석을 따라 죽지 못하고 그 녀석과 자주 만나던 나무에 머물며 떠나지 못하고 추억에 집착한 채 살게 되었다. 세월이 흐르면 자연히 잊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내 안에 그 녀석은 너무 깊게, 크게 남아서 야속하게도 지워지지도 않았다. 아마 나는 평생 그 녀석을 그리며, 그 녀석만을 사랑하며 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저주처럼 옮아 매는 그 녀석의 유언과 미소가 계속 마음에 걸려 원망스러우면서도 어쩔 수 없이 연심을 버릴 수 없더라.
여기서 다시 한 번 너에게 사과해야 한다. 사실 나는 너의 마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모른 척하고 있었다.
그래, 기억하고 있다. 너와 처음 만나던 날, 봄비가 내리던 그 날을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비에 젖어가며 죽어가던 어린 오니를 모른 척 할 수가 없어서 결국 구해주게 되었다. 한쪽 눈만 떠서 나를 응시하는 그 여린 시선은 아직도 생생히 떠오르게 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그 눈빛은 여전하더구나. 나만을 바라보는 그 눈빛은 순수하면서도 강하고, 어딘지 모르게 그 녀석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티끌 한 점 더러움 없는 맑은 눈빛에서 나는 네가 아닌 키드와의 추억을 찾아 헤맸다. 네가 나를 연모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가슴 속에 새겨진 그 녀석의 존재를 품고 다른 이를 사랑할 수가 없어 너의 마음을 어쩔 수 없이 외면하게 되었다. 정말 미안하다. 몇 번을 사과해도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제 와서 전하는 말이지만, 한 때나마 너에게 흔들린 적이 있었다. 이대로 키드를 잊은 채 너를 사랑하여 새로이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죄책감과 함께 키드가 떠올랐으며 이번에도 장애가 되는 종족차가 마음에 걸리더라. 오니와 텐구, 인간과 요괴만큼이나 서로 간의 관계를 허락할 수 없는 상반된 존재. 게다가 너는 장차 오니들을 이끌 수장이 될 몸이다. 또 다시 나 때문에 누군가가 상처를 받거나, 곤란에 빠지거나, 죽는 일은 원치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와 너는 서로 이어져서는 안 될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될 뿐이었다.
네가 싫다는 것이 아니다. 네가 있어서 나는 잠시나마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키드의 빈자리를 조금이나마 메울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관계는 여기까지가 한계인 것 같았다. 우리는 평행선처럼 서로만을 바라보며 닿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함께 있을수록 서로 상처만 남길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 떠나고자 하는 것이다. 멀리 떠나, 너와 키드만을 그리며 누구에게도 연심을 품지 않은 채 홀로 살아갈 생각이다. 너처럼 강하지 못해 도망치는 비겁한 나를 부디 용서해줬으면 한다.
미안하다. 너에게는 이 말 밖에 할 말이 없구나. 그래도 한 가지,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니 그 말을 할 수 있게 해주었으면 한다.
너와 함께 있어서 잠시나마 행복했다. 나를 사랑해줘서 고맙다. 이제 서로 만날 수 없더라도 너는 남은 자들을 위해 앞으로 살아줬으면 한다. 과거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한 나와는 달리 너는 부디 살아서 행복해졌으면 한다. 그리고 너를 위해, 나를 위해 작별의 말 대신 남길 말을 마지막으로 이 편지를 끝내겠다. 이 편지를 전부 다 읽었으면 조용히 태워버렸으면 한다.
루피, 사랑했다.
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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