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라님 리퀘 요청 소설.
“아직 여기에 있었군.”
조금은 의외라는 듯한 반응으로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며 다가오는 상대에게 크로커다일은 고개를 뒤로 돌렸다. 반쯤 몸이 돌아간 덕분에 그의 어께에 걸친 코트가 펄럭이는 소리를 묵직하게 퍼트렸다. 매캐한 연기가 아직까지도 피어오르는 전쟁터를 가로질러 걸어오는 인물은 자신보다도 체구가 작으면서 스스로의 몸집과 비슷한 크기의 십자가 형태의 검을 등에 짊어진 사내였다. 체격으로는 크게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으나 그의 눈은 한 번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모든 살점을 뜯어먹을 것 같은 날카롭고 고고한 매를 떠올리게 하여 그의 위험성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매의 눈 쥬라큘 미호크. 세계 최강의 검호이자 한 때 자신이 소속되어 있었던 왕하 칠무해의 일원이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온 것이 퍽 신선했는지 크로커다일은 싫은 기색을 보이지 않으며 그의 말에 대답해주었다.
“아아, 그렇지. 이제 슬슬 떠날 생각이다.”
“행선지는 정해져 있나?”
“그걸 왜 궁금해 하지? 천하의 매의 눈께서 나를 잡으러 가기 위해 쫓아올 생각인건가.”
“난 누군가의 뒤를 쫓는 일에 대해서는 질색이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볼일이다.”
“개인적인 볼일이라. 그 말이 더 신경 쓰이는군.”
철저하게 개인주의로 행동하며 타인의 일에는 필요로 하지 않는 이상 일체 관심을 두지 않는 고고한 검사의 사적인 이유에 크로커다일은 정말로 신경이 쓰이는 듯이 가볍게 입 꼬리는 올리면서도 눈매를 한층 더 경계로 날카로워졌다. 누군가의 명령을 받는 일을 싫어하는 그가 정부의 명령으로 자신을 추격하러 올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지만 그래도 한 마리의 날카로운 매가 자신의 뒤를 쫓아 날아오는 것은 뒷통수가 따끔하다 못해 제법 욱신거리는 이야기였기에 주의를 가지게 되었다. 자신은 이제 정부의 보호를 받는 칠무해가 아니라 그들의 전면적인 추격을 받게 될 해적이라는 입장도ㅡ스스로가 인정하지 싫은 것이지만ㅡ초조함과 경계심을 부추기는 이유 중 하나였다. 슬그머니 드러내는 크로커다일의 경계에 미호크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잠시 다가오는 것을 멈추고 가만히 서서 크로커다일을 보았다. 빤히 자신을 보는 매의 눈은 여러모로 사람의 속을 불편하게 만들어서 크로커다일은 시가 끝을 잘근잘근 씹었다. 가끔 이렇게 상대를 말없이 보는 것은 미호크의 습관 중 하나였다. 평소에 눈을 마주하는 것도 충분히 부담스러운 일인데 말없이 노려보기까지 하면 부담감은 배로 작용되었다. 생각을 읽기 힘든 황금빛 눈빛도 불편함의 원인으로서 선정될 수 있었다.
하아. 결국 크로커다일은 미호크의 끈질긴 눈빛에 졌다는 듯이 무겁게 한숨을 쉬고는 몸을 마저 틀어서 미호크와 똑바로 마주하였다,
“원하는 게 뭐야.”
그 말을 기다린 것인지 미호크의 대답은 크로커다일의 예상을 넘어서 빠르게, 그리고 상당히 놀라운 것이었다.
“내 성으로 같이 가는 게 어떻겠나. Sir. 크로커다일.”
편련(片戀)
W. 아르카디
설마 정말로 오게 될 줄이야.
상당히 낡았지만 그 속에서도 고풍스러운 분위기만큼은 여전히 잃지 않은 붉은 벨벳 소파에 앉아 창밖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보며 크로커다일은 시가를 피우며 뒤늦은 후회를 떠올려보았다.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자신의 성으로 가지 않겠다는 미호크의 제안에 크로커다일은 자신도 모르게 승낙의 표시를 보인 것이 실수였다. 확실히 당장 해군이 움직일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한동안 조용해질 때까지 몸을 숨길 장소가 필요했으며, 그런 의미에서 미호크 외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음산하고 멀리서 보기만 해도 불길함을 주는 섬은 여러 조건을 부합해주는 좋은 곳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덜컥 받아들이다니. 크로커다일은 자신답지 않은 짧은 판단을 탓했지만 이미 여기에 온 이상 다시 나가는 것도 자존심이 묘하게 허락해주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나. 크로커다일은 끝내 자신의 현황을 체념하듯이 받아들이고 일단 오늘은 여기서 머물고 내일 아침 일찍 떠나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을 내렸다.
크로커다일은 창문에서 시선을 돌려 이번에는 성 안을 살펴보았다. 중세 시대 풍의 거대한 성은 미호크 혼자서 살기에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넓은 곳이었으며 혼자서 관리하는 것에 한계가 있는 것은 당연한지 성 안에 들어오면서 간단하게 살펴본 방들 중에서 몇 개는 먼지만이 잔뜩 쌓여있는 곳도 있었다. 미호크가 넓은 성에서 홀로 산다는 이야기는 칠무해로 있던 시절에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실제로 방문한 적은 처음이었다. 그의 고고하면서 품격이 느껴지는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곳이지만 한편으로는 홀로 살기에는 제법 쓸쓸함이 느껴지는 ‘집’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그런 감정적인 것을 느낄 것이라 생각하지 않기에 크로커다일은 짧은 감상을 접고 앞으로의 일을 머릿속으로 차근차근 계획하며 쌓아두기 시작했다. 전쟁이 끝나고, 흰 수염이 죽으면서 세계의 판도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말 그대로 ‘신세계’가 도래하게 되었다.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신중하게 행동해야 할 것이다. 자신도 그 신세계에 뛰어든 무모한 자들 중 하나이기에.
신세계라. 크로커다일은 잠시 미래에 대한 플랜을 접고 언제나 입버릇처럼 신세계를 꿈꾸듯이 말하던 또 다른 칠무해를 떠올렸다. 광대처럼 과장스러운 몸짓으로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며 항상 분홍빛 털코트를 입고 다니던 사내. 돈키호테 도플라밍고. 크로커다일은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심드렁한 표정으로 정상 결전에서 마주친 도플라밍고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때의 도플라밍고는 전장에서 마주친 자신에게 같이 가자고 먼저 손을 내밀어 제안했다. 더 이상 칠무해도, 바로크 회사의 사장도 아닌 한낱 임펠다운의 탈옥수인 자신에게 무엇을 바란다고 손을 내민 것일까. 크게 알고 싶지 않은 이유였지만, 크로커다일은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을 억지로 알 수밖에 없었다.
사실, 도플라밍고의 구애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칠무해 가입 전, 아직까지 바다 위를 투기 넘치게 활보하며 루키로서 이름을 알리던 시절부터 도플라밍고와의 악연이 이어져오게 되었고, 도플라밍고는 크로커다일의 무엇인가가 마음에 들었는지 첫 만남 이후로 만났다하면 바로 크로커다일에게 함께 가자며 손을 내밀었다. 크로커다일은 그런 도플라밍고의 제안을 항상 콧방귀를 뀌는 것으로 거절하였다. 인간적으로 도플라밍고의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며 누군가와 손을 잡는다는 것 자체를 신용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해적들 사이에서 손을 잡는다는 것은 언젠가 자신의 손이 통째로 잘려나간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으며 크로커다일도 그 의미 그대로 해석하여 도플라밍고를 신용하지 않은 채 일관적인 태도로 무시했다. 그러나 도플라밍고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크로커다일을 찾아갔으며, 그쯤 되니 크로커다일은 도플라밍고의 근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크로커다일이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신세계. 도플라밍고는 언제나 신세계를 갈망했다. 그가 지향하는 신세계에는 오로지 혼란과 혼돈만이 있었으며 도플라밍고는 그 세계를 휘젓고 싶어 안달이 난 남자였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이용하여 세계마저도 자신의 손아래서 순순히 움직이는 꼭두각시 인형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크로커다일은 그런 세계를 원하지 않았다. 자신은 그처럼 잔혹함과 스릴을 즐기는 자가 아니었다. 그 세계에 혼돈만이 있다면 과연 그것에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일까. 크로커다일은 그의 망상 속에 존재하는 세계의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비틀림을 발견하고만 것이었다. 언젠가 저 남자는 자신이 그토록 기대에 가득 차 노래하며 부르던 신세계의 틈에 끼여 죽게 될 것이다. 바라기만 할 뿐, 자신은 무엇 하나 변하지 않고 그 자리를 유지하는 모습이 우습기 짝이 없었다. 믿었던 녀석에게 뒷통수를 맞지나 않으면 다행이겠군. 크로커다일은 도플라밍고의 우둔함을 비웃으며 그의 대한 생각을 정리하였다. 그의 목을 노리는 칼날에 대한 불쾌감을 이면에 감춘 채.
그에 맞춰, 거대한 방문이 열리면서 미호크가 안으로 들어왔다. 입고 있던 코트를 벗고 하얀 와이셔츠만을 입은 미호크는 들고 온 흑도를 벽 한쪽에 세워두고는 크로커다일의 맞은편에 위치한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덜그럭. 두 사람 사이에 위치한 테이블 위로 고급 와인과 유리잔 두 개가 차려지게 되었다. 손님을 맞이한 예를 차리기 위해서 미호크가 가져온 것이었다.
“한 잔 하겠나?”
“…그러지.”
와인 병을 능숙하게 연 미호크는 각자의 반에 차례대로 레드 와인을 적당한 양만큼 따라 넣었다. 와인이 잔을 채우자 크로커다일은 얇은 유리잔의 손잡이 부분을 집어 올리고는 그대로 입에 조심스럽게 마셔보았다. 적당히 숙성시킨 와인이 깊은 풍미를 안겨주자 크로커다일은 최근 들어 처음으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주었다.
“괜찮군. 자네에게 이런 와인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앞으로는 어쩔 생각인가. 신세계에 갈 생각인가?”
크로커다일의 칭찬에 답해주기 보다는 그의 후일에 대해 물어보는 미호크의 질문에 크로커다일은 자신의 말이 무시 되었다는 것에 신경 쓰기보다는 그의 질문에 의아하다는 표정을 잠시 짓다가 다시금 와인을 목 뒤로 넘겨 축이고는 그의 질문에 무난하게 대답해주었다.
“아아. 내일 일찍 출발해서 다즈하고 합류한 뒤에 상황을 살펴보다가 떠날 예정이다. 너는 어쩔 생각이지? 너도 신세계로 갈 생각인가.”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 그쪽으로 가겠지.”
신세계인가. 미호크는 유리잔에 찰랑거리는 와인을 내려다보며 그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딘지 낯설게 느껴지는 단어를 속으로 남몰래 읊어보았다. 미호크는 남들과는 다르게 신세계에 대한 갈망과 흥미를 크게 가지고 있지 않았다. 세계 최강의 자리에 오래 전부터 올라와 있는 그에게 세계는 더 이상의 강함을 강요하지 않고 정상에서의 고독과 정체만을 안겨주었다. 그런 그에게 새로운 세계라고 해봤자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새로운 세력들, 새로운 강자들이 등장한다고 해도 그들은 아직까지 저 높다란 산 위에 군림하고 있는 매의 발끝까지도 도달하지 못한 자들이었다. 추하게 기어오르려는 원숭이들을 보며 매는 한심스러움 밖에 느끼지 못했다.
무료함이라는 둔하지만 깊게 찔러오는 칼날에 죽어가던 매의 눈에 들어온 남자들이 있었다.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어 그곳의 왕으로 군림하기를 원하는 자들. 권력을 탐하고, 백성들을 지배하고, 많은 이들에게 경외를 받는 왕이 되고자 했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그 결과 한 명은 왕이 되었지만 다른 한 명은 실패하여 추락하게 되었다. 무너진 모래성에 파묻혀서 나락 속으로 추락한 자를 보며 사람들은 두 번 다시 기어오르지 못할 것이라며 비웃었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아직까지도 형형히 살아있어 결국에는 지옥에서 기어 올라와 세계의 소용돌이 속에 과감히 뛰어들어 자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그 카리스마를 보며 미호크는 생각했다. 그는 왕으로서 선택받지 못했지만 언젠가 그 선택권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는 벼랑을 악착같이 올라오는 원숭이들과는 달랐다. 그는 당연스럽게 매와 같은 자리에 서있고자 하는 남자였으며 이제는 자신과 동등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 끝을 모르는 탐욕에 미호크는 오래 전부터 비밀스러운 감정을 품게 되었다. 속세에 벗어난 자신과는 다른, 속세의 정점에 서고자 하는 남자.
이 남자라면 나를 무료의 고문 속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은밀하게 품으며 미호크는 그가 가고자 할 신세계로 떠날 결심을 하게 되었다.
“너도 신세계로 가는 건가?”
“재밌는 애송이가 있어서 말이지. …그리고 신경 쓰이는 녀석이 간다고 해서 말이다.”
잔에 흔들리는 붉은 와인에 시선을 돌려 은유적으로 자신의 심정을 표현하는 미호크의 말에 크로커다일은 그 의미를 파악하고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짓고 말았다. 어쩐지 묘하게 시선을 마주하기 힘들어져 미호크는 그 후로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미호크는 충분히 자각하고 있었다. 그가 자신과 같은 것을 품지 않고 있다는 사실과 그것을 자신아 아닌 다른 이를 향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함께 칠무해로 지내던 시절에 깨닫게 되었다. 언제나 오만한 태도로 상대를 우습게 생각하던 크로커다일이지만 그것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위한 방어적인 수단이었다. 가벼운 말투와는 반대로 험악한 대화 내용을 주고받는 도플라밍고와 크로커다일은 보며 미호크는 그 누구도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 수 없다는 사실을 몇 번이고 자각하고 말았다. 외롭다고, 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본능적으로 다가가게 되는 두 사람에 대한 의혹과 미련이 미호크의 시선을 붙잡고 놓아주지를 않고 있었다. 바라보는 것은 같은데 이렇게 거리에서 차이가 나는 것일까. 미호크는 씁쓸함으로 입 안이 바짝 말라가는 것을 느꼈지만 그럼에도 시선을 돌릴 수 없었다.
크로커다일은 미호크의 말에 잠시 잔을 내려놓고 턱을 괸 채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있는 미호크를 보았다. 속을 모르는 사내였기에 가끔씩 돌발적으로 드러내는 속내에는 당혹스러움을 먼저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잠시의 당혹스러움 뒤에 찾아온 것은 뜻밖의 덤덤함이었다. 그런 거였군. 크로커다일은 미호크의 심중을 무심할 정도로 담백하게 받아내었다. 갑작스러운 고백에 놀랐다고는 하지만 자신 또한 어렴풋이 알아차리고, 받아들였던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것을 알아차렸다고 해도 자신이 무언가를 해줄 수는 없었다. 서로 바라만보는 것은 똑같았기에.
왕이 되고 싶었다. 남들 위에 서고 싶었다. 해적왕의 처형 장면을 보게 된 것이 그러한 야망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지만 결정적으로 다가올 수 있었던 것은 8년 전, 신세계의 어느 한 나라를 빼앗아 점령해버린 광대 같은 남자 때문이었다. 그에게 지고 싶지 않아서, 그보다 낮은 위치에 서고 싶지 않아서, 그와 동등한 존재가 되고 싶어서. 지기 싫다는 자존심과 오기로 본심을 숨기며 크로커다일은 도플라밍고와 같은 위치에 서고자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나라를 얻어 왕이 되고자 했다. 그러나 결국 그의 계획은 실패하게 되었고 지옥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지옥의 끝에서 다시 돌아왔을 때, 도플라밍고는 자신과 함께 가자며 손을 내밀었다. 크로커다일은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도플라밍고에 대해 자기 자신을 얕보고 있다는 치욕스러움과, 뭉개져가는 자존심에 대한 분함과, 약해진 심성으로 한 순간 손을 잡고 싶었다는 자신의 바람에 대한 환멸을 동시에 느꼈다. 그의 손을 잡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다. 다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와 같은 위치에 올라가던지, 그가 자신이 있는 곳까지 굴러 떨어지든지. 둘 중 하나가 이뤄지지 않는 이상 그의 손을 잡을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크로커다일은 스스로가 자처하여 바라보는 것을 선택했다.
“어째서 도플라밍고의 제안을 거절했나.”
망설임의 끝에서 미호크는 크로커다일에게 질문을 던졌다. 대답을 알고 있기에 듣고 싶지 않았던, 그러나 듣고 싶었던 모순적인 감정을 담은 질문이었다. 미호크의 질문에 크로커다일은 대답을 잠시 유보하고 품 안에서 시가를 담은 은색 보관함을 열어 새로운 시가를 꺼내 입에 물고는 불을 붙였다. 고급인 덕분에 냄새가 거의 안 나는 시가는 높다란 성 안의 천장까지 닿을 정도로 올라갔다.
“불쾌했으니까. 자기가 높은 곳에 있다는 걸 자랑하듯이 손을 내미는데 내가 그걸 잡을 것 같나?”
“그럼 네가 도플라밍고와 동등한 위치에 있을 때 그 손을 잡겠다는 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난 그 녀석의 손을 잡지 않아. 언젠가 그 건방진 녀석이 나한테 매달리듯이 손을 잡게 해달라고 말하게 해줄 테니까.”
매달리는 것은 싫다. 그와 동등한 위치에서, 내가 아닌 그가 손을 잡게 해달라고 말할 때 그 때 손을 내밀어 잡게 해줄 것이다. 그것이 크로커다일의 자존심이 허락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선이었다. 굽히지 않는 자존심에 미호크는 살짝 어이없으면서도 그것이 바로 크로커다일답다고 생각했다. 그는 먼저 손을 내밀지 않는다. 그의 주위에 있는 자들은 모두가 그의 카리스마에 이끌려 매달리는 자들이었다. 그리고 크로커다일은 그 매달림은 굳이 뿌리치지 않고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도플라밍고도 마찬가지였다. 그 또한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타인이 먼저 다가오도록 만드는 남자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손을 내밀지만 그 손을 잡아줄 또 다른 손은 없었다. 양립할 수 없는 자존심이 두 사람을 평행선상에 올려두었다. 나라면, 그 손을 잡을 수 있는데. 미호크는 입 안에서 맴도는 말을 끝내 내뱉지 않았다. 평행선이라도 서로가 서로를 마주보며 맞추지 않아도 자신의 반쪽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자신은 그 평행선에 설 자격조차 가지지 못했다.
“나는 너의 손을 잡을 수 없는 건가.”
미호크의 말에 크로커다일은 드물게 인간적인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유감스럽게도 내 손을 잡을 녀석은 이미 정해져있다.”
그런가. 미호크는 유리잔에 남은 와인을 입 안에 전부 털어 넣었다. 와인의 뒷맛이 꽤 씁쓸했다.
* * * * *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미호크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살펴보았다. 밤사이에 와인을 몇 병이나 마신 덕분에 소파에 그대로 자버린 탓에 숙취로 인한 두통과 속 쓰림이 그대로 찾아왔다. 미호크는 관자놀이를 잠시 눌러 통증을 진정시키고는 크로커다일이 누워있을 법한 맞은편을 보았다. 맞은편의 소파에는 이미 오래 전에 사람의 온기가 식어있는 채 덩그러니 빈자리만 남겨져 있었다. 아침 일찍 떠난다는 크로커다일의 말을 떠올린 미호크는 그가 자신이 일어나기 전에 일치감치 떠난 것을 짐작했다. 다음에 다시 만날 때는 신세계인가. 그 넓은 세계에 또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인지 짐작도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같은 세계에 있으면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긴다.
그 가능성을 예측하고 있을 때, 방구석에 위치한 전보벌레가 시끄럽게 울렸다. 자신에게로 직접 전화를 걸 인물은 몇 안 되었기에 미호크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전보벌레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서 전화를 받았다. 달칵하는 연결음이 들리면서 바로 다음으로 낮게 울리는 웃음소리가 수화기에서 들려왔다. 이 웃음소리는. 조금 의외의 통화 상대였다.
[훗훗훗. 아침부터 실례하도록 하지. 매의 눈.]
“무슨 일이지, 도플라밍고.”
[크로커다일이 그쪽으로 갔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말이야. 여기에 있나?]
그 사이에 크로커다일이 자신과 함께 있다는 정보를 알아낸 것에 미호크는 크로커다일에 대한 그의 집념을 느낄 수 있었다. 미호크는 전보벌레를 들고 조금 전의 소파로 돌아와 앉고는 도플라밍고의 질문에 대답했다.
“새벽에 일찍 나간 것 같더군. 이제 그는 여기에 없다.”
[훗훗. 그런가. 유감이로군. 그럼 이대로 전화를 끊기도 아쉬우니 한 가지 충고는 해야겠군, 매의 눈.]
“나에게 감히 충고를 하겠다는 건가?”
[그렇게 나오도록 만든 건 네 녀석이라고. 아무튼 그 녀석은 내가 먼저 선점했으니 가로챌 생각은 하지 말라고.]
충고라기보다는 경고성에 가까운 도플라밍고의 말에 미호크는 불쾌하다는 뜻을 담으며 미간을 좁혔다. 도플라밍고가 자신의 감정을 눈치 챘다는 것은 놀라운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들으면 역시 기분이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감정도 금방 수그러들게 되었다. 전날 밤의 대화로 완전히 체념하게 된 것이기 때문일까. 결국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 아무도 다가갈 수 없다는 고독과 무료에 져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순순히 도플라밍고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은 두 사람만큼이나 강한 미호크의 자존심이 허락되지 않았기에 굳이 그의 말에 반박하고 만다.
“그런 유치한 짓은 하지 않으니 안심해도 된다. 너야말로 그렇게 스스로에게 도취되어 있다가 당하지나 않는 것이 좋을 거다. 크로커다일은 너를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을뿐더러, 너는 쓸 때 없는 적들을 많이 만들어내니까.”
[훗훗훗. 쓸 때 없는 충고는 감사히 여기도록 하지. 그럼 신세계에서 보자고.]
달칵. 일방적으로 끊은 소리에 미호크는 도플라밍고의 태도에 여전히 마음에 안 드는 태도라고 생각하며 자신도 그를 따라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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