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스타스 여, <인어공주>라는 것을 알고 있나?”
사흘에 한 번 있는 수족관 청소를 위해 물이 빠진 빈 수족관 안에 들어가 대걸레로 물때를 닦고 있던 키드는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근처 욕조에 몸을 담구고 있는 로우를 보았다. 때 아닌 로우의 질문에 키드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대걸레 끝에 턱을 괸 자세로 빤히 쳐다보자 그 시선이 부담스러운 것인지, 대답도 안하고 쳐다보는 것이 기분 나빠졌는지 로우는 자신의 꼬리로 한 번 찰싹 수면을 때려주는 것으로 대답을 재촉했다.
“어이, 질문을 했으면 대답을 해라.”
“아아, 아니. 인어가 <인어공주>에 대해서 물어보는 걸 보니 조금 묘한 기분이 들어서.”
“무슨 의미야.”
“별로. 그런데 갑자기 그런 건 왜 묻냐?”
“어떤 여자애가 오늘 나한테 찾아와서 물어보더군.”
키드의 질문에 로우는 낮에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평소와 같이 구경꾼들의 시선을 반쯤 무시하며 수족관 안을 유유히 헤엄치며 시간을 보내고 있던 로우는 통통거리며 수족관의 유리벽을 두드리는 것으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돌려 소리가 들리는 곳을 보았다. 소리가 들리는 곳은 수족관 바닥에 가까운 곳이었으며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로우를 보고 있는 인물은 8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였다. 오렌지빛 머리가 인상적인 여자아이는 품 안에 어떤 책을 꼭 끌어안으며 엄마와 언니로 보이는 두 명의 여자와 어린아이의 사이에 있었다. 인간의 아이는 그리 싫지 않았던 로우였기에 호기심을 느끼며 호출에 응해주었다. 자신의 부름에 정말로 달려올 줄은 몰랐던 것인지 유리벽 가까이로 온 로우의 모습에 여자아이는 잠깐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나다가 이내 인어가 자신의 눈 앞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에 활짝 웃으며 눈을 반짝였다. 순수한 눈빛 그대로를 품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제법 귀여웠다. 아이는 이번이 아니면 여기에 못 오는 사람처럼 호들갑스럽게 머리 위로 품 안에 있던 책을 올리며 폴짝폴짝 뛰었다.
“저기요, 인어 오빠! 인어공주님은 어디 계세요?”
“인어공주? 그게 누구지?”
“오빠 인어공주님 몰라요?”
“인어는 나 밖에 없어. 다른 인어들은 모른다.”
“히잉.”
로우의 대답에 크게 실망한 것인지 여자아이는 조금 전의 밝은 모습은 어디로 가고 풀이 죽어버리자 아이의 언니로 보이는 또 다른 여자아이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위로해주었다. 그 일이 유독 기억에 남은 로우는 혹시나 자신이 모르는 인어가 또 있는 것인가 싶어 청소 시간을 틈타 키드에게 물어본 것이었다.
사정을 알게 된 키드는 잠시 로우가 인어공주에 대해 모른다는 사실에 웃음이 터질 뻔 했지만 인어이기에 인간의 문화에 대해 모를 수도 있다는 나름의 이유와 여기에 웃었다가는 일주일 내내 삐져서는 자신에게 한 마디 말도 걸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간의 경험을 통해 짐작해본 키드는 인내심으로 웃음을 간신히 누르고는 서 있는 자세를 바꿔 대답해주었다.
“<인어공주>는 동화 제목이야. 그 동화에는 너와 같은 인어인 공주가 나오거든. 그 여자애는 널 보고 동화 속에 나오는 공주가 정말로 있을까 싶어서 물어본 거겠지.”
“흐음. 이야기라. 어떤 내용이지?”
“뭐, 인어인 여자가 우연히 왕자님을 만나서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지. 마법으로 두 다리를 얻은 인어는 왕자를 만나게 되었지만 왕자는 인어를 알아보지 못하고 결국 다른 여자와 결혼하게 되고, 그리고….”
“그리고?”
기억 속에서 드문드문 기억하고 있던 인어공주 이야기를 간단하게 설명해주던 키드는 마지막에서 말을 멈추고 말았다. 아차. 키드는 자신이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을 후회했다. 마지막에 인어공주는 결국 왕자님과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게 되는 비극을 겪게 되었다. 물론 정말로 로우가 실연으로 물거품이 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같은 인어로서 그런 결말을 싫어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한편, 그런 키드의 사정을 모르기에 갑자기 말을 멈추고 머뭇거리는 키드에 답답함을 느낀 로우는 재촉의 뜻으로 꼬리 끝을 펄떡이며 말했다.
“뭐야, 말을 했으면 끝까지 해.”
“아, 그게… 결국 그 인어는 마지막에 왕자하고 이뤄지지 못하고 물거품이 된다.”
결국 로우의 재촉을 이기지 못하고 결말을 실토해버린 키드의 말에 로우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짓게 되었고, 키드는 그런 로우의 반응에 혹여나 기분 나빠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리고 가슴에 스며들게 된 답답함도.
단순한 이야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저 꾸며낸 이야기, 현실이 아닌 상상으로 만들어낸 허구이다. 그러나 일말의 불안감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우리도 이야기 속의 왕자와 인어처럼 서로 엇갈려져서 비극으로 끝나버리는 것인 아닐까. 애초에 서로 이뤄질 수 있을지 부터가 불확실한 이야기였다. 키드에게서 들은 이야기의 결말에 잠시 무언가 생각하듯이 욕조 끝에 턱을 걸친 채 아무 말하지 않던 로우는 이윽고 천천히 욕조 안에서 꼬리를 흔들거리며 물어보았다.
“왜 인어와 왕자가 이뤄지지 않은 거지?”
“어? 그건… 인어가 다리를 얻을 때 목소리를 잃어버려서 왕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해주지 못해서, 왕자도 인어의 마음을 알아채지 못했던 거지.”
“겨우 알아주지 못했던 걸로 물거품이 되었다는 건가.”
말하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것일까. 전하지 않아도 서로가 사랑한다면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인어의 마음을 눈치 채지 못한 왕자가 야속스러워져 로우는 잠시 머리를 물속에 넣고 눈을 감았다. 인어는 다리를 얻고, 목소리를 잃는 수고까지 겪게 되었는데 왕자는 바로 옆에 자신을 사랑해주는 존재가 있음에도 알아주지 못하고 끝내 인어가 물거품이 되어 사라질 때도 알아채주지 못했다. 인어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끝내 자신의 마음을 알아채주지 않고, 결국 다른 이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며 인어는 어떤 생각을 하며 물거품으로 변했을까. 원망했을까, 슬퍼했을까, 아니면 왕자의 행복을 축복해줬을까.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과 끝내 이뤄지지 못했고, 자신의 마음을 전해주지 못했고, 알아주지 않아줬다는 것은 분명 슬프고 아픈 일이다. 그리고 자신도, 언젠가 이 마음이 동화 속 인어와 같이 산산이 부서지지 않을까.
그렇게 찾아온 불안감에 로우는 한기를 느끼며 몸을 둥글게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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