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병님 리퀘 요청 소설. 상디 사망 소재 주의.
소중한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온 몸을 난도질당하는 것과도 같은 큰 고통이 찾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몇 번을 경험해도 결코 익숙해지지 못하는 것이며, 매 순간마다 지옥의 불구덩이에 맨몸으로 뛰어드는 것과도 같았다. 차라리 자신이 죽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렇다면 자신은 앞으로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일까. 이 지긋지긋한 상실의 순환에서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루피는 부질없는 회한을 되뇌며 어둠 속에서 고개를 숙였다.
상디가 죽었다. 사황과의 대규모 충돌에 휩쓸린 것이 원인이었다. 마지막까지 동료들의 뒤에서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싸우던 상디는 결국 동료들과 헤어지기 전, 돌아가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힘없이 웃는 얼굴을 동료들의 기억 속에 지울 수 없는 상흔으로 남겨놓고 영원히 떠나고 말았다. 처음으로 겪게 된 동료의 죽음은 유대감이 강한 해적단 내부에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상디의 죽음이 알려지자 누구나 할 것 없이 그 자리에서 목 놓아 울부짖었으며, 상디와 으르렁거리는 악우 사이로 지내던 조로도 차마 비통한 감정을 숨길 수 없다는 듯 얼굴 깊이 그늘을 드리웠다. 높게 찢어지는 오열과 눈물들 사이에서 루피는 그저 조용히 선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며 죽음을 추모하는 모습은 아무리 슬퍼도 그의 죽음을 끝내 인정한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루피는 눈물을 흘리지도, 추모를 올리지도 않았다. 그는 언제나 소중한 사람을 잃게 되면 현실에서 도망치게 되었다. 어떠한 일이든 강인하게 대처하는 루피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 나약한 모습이자 대처였다. 상대에게 유대와 동료애를 쏟은 만큼 그것을 잃은 것에 대한 상실의 반동도 큰 법이었다. 루피는 남들보다도 타인에게 아낌없는 정을 주었고, 그것이 결국 큰 상처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었다. 에이스의 죽음 직후에 이성을 놓아 기절해버린 것도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를 돌파해버린 탓에 그의 정신이 선택한 자기 방어적 도피였다. 지금의 루피의 모습은 에이스의 죽음에 대한 대처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었다. 동료들은 자신들의 감정을 어느 정도 추스르게 되자 이제는 상디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지 않는 루피를 걱정했다. 그들은 루피가 상디를 얼마나 아끼는지 잘 알고 있었다. 루피와 상디가 서로에게 연심을 품고 있던 사이라는 것은 해적단 내부에서 어느 정도 쉬쉬하던 이야기였다. 어느 정도 두 사람의 관계의 사정을 알고 있던 동료들은 루피가 자신들보다도 더 큰 충격을 받았을 거라 짐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짐작대로 상디의 사후 후 한동안 루피는 혼자 방 안에 틀어박혀 지내는 일로 하루의 여과를 전부 써버렸다. 그토록 좋아하던 밥도 먹지 않으며 어두운 방 안에 들어간 루피의 모습에 동료들의 속은 더 애가 탔다. 갖가지 맛있는 음식들을 구해 루피의 방 앞에 잔뜩 쌓아놔도 루피는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음식들을 먹지 않았다. 다시 한 번 현실에 도피하며 루피는 자신을 어떻게 해서든 현실로 끌고 가려는 동료들의 목소리를 필사적으로 무시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들이 밖에서 기다려도 루피에게는 무의미했다. 상디의 요리가 아니면 그 어떠한 산해진미도 루피에게는 먹을 수 없는 돌덩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음식을 가져와도 상디의 죽음 이후 루피는 식욕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으며 배고프지도 않았다. 상디의 부재는 루피에게 공복도 앗아가게 만들었다.
눈물을 흘리지 않고, 배고픔을 느끼지 않으며 루피는 어둠 속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작별의 만찬
W. 아르카디
자장가처럼 잔잔히 울려 퍼지는 파도소리에 루피는 설핏 정신을 차리고 귀를 기울였다.
바다. 그의 꿈은 전설 속의 바다를 두 눈으로 목격하는 것이었다. 모두가 말 그대로 전설 속의 이야기라며 비웃었지만 자신은 이 세상 어딘가에 꼭 존재할 것이라 믿고 꿈을 키워나갔다. 그의 푸른 두 눈과 황금빛 머리카락은 바다와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바다를 배경으로 반짝이는 그 모습은 그가 항상 이야기하는 전설 속의 바다의 풍경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루피는 처음 상디와 만나 올 블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을 때를 떠올려봤다. 너, 혹시 올 블루가 뭔지 알아? 이전까지의 불만스러운 뚱한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루피와 닮은 꿈을 꾸는 소년의 로망에 찬 표정을 지으며 신나게 꿈을 이야기하는 상디의 모습에서 루피는 이렇게까지 눈부시게 빛나는 사람은 처음 봤다며 속으로 감탄했다. 꿈을 꾸며 살아가는 것에서 스스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지만 상디의 모습처럼 그토록 아름답게는 빛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루피였다. 그렇다. 그의 꿈은 그토록 아름다웠으며 마땅히 이뤄져야 했던 꿈이었다. 그러나 그의 꿈은 채 피어나기도 전에 뿌리 채 뽑혀버린 것이었다. 마치 타인의 일처럼 멀리서 느꼈던 상실의 통증이 바늘에 찔린 것처럼 쿡쿡 쑤셔오자 루피는 그것을 잊기 위해 다시금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그 미소를 볼 수 없다는 것이, 더 이상 상디에게서 올 블루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이, 그의 꿈이 영원히 이뤄지지 못한 채 차차 빛바랜 모습으로 변할 것이라는 사실을 납득할 수 없었다.
다시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백사장에 떠밀려오는 새하얀 파도와도 같이 퍼져나가는 냄새가 풍겨져 왔다.
처음 루피는 동료들이 또 다시 자신을 밖으로 끄집어내기 위한 미끼로 요리들을 준비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점차 냄새가 강해지자 루피는 조금씩 그 냄새가 나미나 로빈이 만든 요리거나, 마을에서 사온 최고급 요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이면서도 만든 이의 개성이 느껴지는 풍미 있는 냄새는 맡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후각을 자극하여 군침을 돌게 만들 정도의 식욕을 증진시키는 힘이 있었다. 이 냄새. 루피는 고개를 들고 문 밖에서 스며들어오는 냄새에 눈동자를 흔들었다. 냄새. 다시는 맡을 수 없다며 동료들이 고개를 내저었던 그리우면서도 잊을 수 없는 냄새. 그것을 맡는 것으로 루피는 아침을 맞이하여 저녁을 보내는 것으로 하루를 즐겁게 지내었다. 이전의 평화로운 일상으로 회귀하는 것 같아 루피는 이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오래 걷지 못한 탓에 약간 비틀거리며 문 앞에 도착했다. 잠시 문 앞에 서서 멈칫하던 루피는 이내 결심한 듯 땀으로 젖은 손으로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보이는 것은 써니호의 잔디 갑판과 암청색의 밤바다였다. 한밤중이었던 탓인지 동료들은 각자의 침소로 돌아가 잠을 청하는 것처럼 보였다. 루피는 그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의 기묘한 감상을 품으며 냄새의 근원지를 찾기 시작했다. 식성이 강한 덕분에 후각이 예민한 루피는 바로 냄새가 나는 곳으로 발을 옮겼다.
이윽고 루피는 목적지에 도착했고, 냄새가 풍겨지는 곳의 문 앞에서 루피는 멍하니 입을 벌린 채 따뜻한 오렌지색 빛이 새어나오는 문을 보았다. 냄새가 나오는 곳은 주방이었다. 따지고 보면 당연하면서도, 한편으로 설명하기 힘든 일이었다. 이 냄새를 풍길 수 있는 장소는 하나뿐이고, 그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도 한 명 뿐이었다. 정말로 일까. 루피는 자신도 모르게 떨리는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갈등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결정을 내리고는 자신의 총애하는 요리사의 사후 후 한 번도 들어가지 않은 식당의 문을 열어젖혔다.
통통통통. 보글보글. 치이익. 도마를 두드리는 식칼의 일정한 리듬과 끓어오르는 물소리, 자글자글 프라이펜에 구워지는 고기의 기름튀기는 소리. 모든 것이 주방 안에서 절묘한 하모니를 이루며 본래의 모습에서 차차 변해가고 있었다. 식당의 안에는 한 명의 인물만이 있었다. 검은 정장을 입고 하얀 앞치마를 두르며 샛노란 머리카락을 살짝 흔들거리며 입에는 위생상 그다지 보기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담배가 물려져 있었다. 사소한 모든 것들이 완벽할 정도로 동일했기에 루피는 자신이 오랜 악몽에서 깨어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해방감과 희망과 환희에 빠져 말문이 턱 막힌 채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주방문이 열리는 소리에 요리에 집중하고 있던 요리사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손님을 맞이했다.
“하여튼 코는 개코라니까.”
이제는 상대의 난입이 익숙해졌는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어버리는 상디의 미소는 생전의 것과 같은 빛을 띄었다.
* * * * *
“상…디?”
“뭘 그렇게 멍하니 서 있냐. 평소라면 득달같이 달려들 녀석이.”
한쪽 손을 허리에 얹고 다른 손에는 식칼을 가볍게 흔들며 가볍게 웃어버리는 상디의 모습은 정말로 루피가 기억하고 있는 상디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살아있었어. 죽지 않았어. 돌아왔어. 머릿속에 조금씩 채워져 가는 희망에 찬 말들에 루피는 한 발짝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내딛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끌어안고 싶다. 익숙한 조미료 냄새와 담배 냄새가 섞인 체취를 맡아보며, 남들보다 조금 낮은 체온이지만 그래도 자신에게는 여전히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자신보다 조금 마른 허리를 끌어안으며 그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실재한다는 것을 두 손에 끌어안아 느껴보고 싶었다. 떨리는 손을 상디에게 뻗으며 루피는 떨림으로 굳어진 미소를 애써 지어보고는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상디, 살아있었던 거야? 죽지 않았던 거야? 그런 거야?”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으면서도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잡으며 애써 그 희망으로 웃어보려는 루피의 모습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안쓰러움으로 저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상디도 그러한 감정을 느낀 것인지 그 어느 것보다도 쓰디 쓴 담배를 피우는 것처럼 고운 미간을 찡그리며 루피를 잠시 아무 말 없이 바라보다가 이윽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체념의 빛을 담아 눈을 감으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니, 죽었어.”
이제 여기에 없어.
확인사살과도 같은, 간결하면서도 허무함이 느껴지는 그 짧은 대답에 루피는 상디에게 다가가는 것을 멈추게 되었다. 조금만, 바로 몇 발자국만 앞으로 나아가면 상디와 닿을 수 있는 거리까지 오게 되었는데 왜 이 찰나의 거리가 이토록 멀게만 느껴지는 것일까. 상디에게로 뻗어졌던 루피의 손이 힘없이 아래로 떨어지게 되었다. 명백히 상처받는 표정과 거칠게 흔들리는 검은 눈동자를 차마 그대로 마주하기는 힘든 것인지 상디는 살짝 고개를 숙여 루피와의 시선을 피하게 되었다. 그로서도 루피에게 이런 식으로 상처를 주는 자신의 현재가 원망스러울 따름이었지만, 결국에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불변의 사실이었다. 상디의 대답에 루피는 한순간에 희망의 꼭대기에 올라갔다가 누군가의 떠밀림으로 절망의 나락에 떨어가는 추락감을 느끼며, 그럼에도 썩은 동앗줄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울음기 가득한 목소리를 떨며 말했다.
“하, 하지만… 상디는 여기 있잖아? 바로 내 눈앞에 있잖아. 그런데 어째서….”
“자세한 건 나도 잘 몰라. 하지만 루피, 나는 죽었어. 지금의 나는 아마 유령 비슷한 존재라고 생각해.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이지만 내 심장은 이제 뛰지 않고, 몸도 따뜻하지 않아. 그리고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내가 죽는 그 마지막 순간을. 그러니까….”
“거짓말! 거짓말이야!”
더 이상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듯 루피는 아예 자신의 귀를 막으며 상디의 말을 자신의 비명에 가까운 부정으로 지워버리듯이 거칠게 덧씌워버렸다. 눈에 확연히 보일 정도로 덜덜 떨며 눈을 꼭 감은 채 지금 이 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루피의 모습은 겁에 질린 어린아이와 같아 상디는 괴로운 표정으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수많은 시련을 겪어 신체적, 정신적 성장을 이뤄냈다고 해도 여전히 여린 부분이 남아있는 자신의 선장이 그저 안쓰러워 상디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자신의 시선보다 조금 아래에 있는 루피를 보았다. 언제나 모두의 의지가 되어주는 선장이기에 자신이 뒤에서 묵묵히 지켜주고 싶었다. 그가 모르는 곳에서 남모르게 싸워도, 그가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힘이 루피에게 큰 힘이 되어준다면, 역전의 발판이 되어준다면 상디는 그것으로 충분히 보상을 받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정작 루피가 결정적으로 힘들어할 때 상디는 그의 곁에 있어주지 못했다. 2년 전에도, 지금도 상디는 사랑하는 이의 눈물을 닦아줄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자신은 여기에 있는 것일까. 죽는 그 순간까지 버리지 못한 미련이 스스로를 이승에 묶어둔 것인지도 모른다. 상디는 그렇게 짐작해보고는 루피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다행이 영혼만 남은 모습이라고 해도 손이 실체를 통과해버리는 일은 없었다. 심장이 뛰지 않는 탓에 평소의 미지근한 손이 조금 차가웠지만 그래도 닿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상디는 조심스럽게 루피의 새까만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이렇게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을 좋아했었다는 상념에 젖으며.
“…거짓말이라고 해줘.”
아아, 바보같이 자신은 왜 죽어버린 것일까.
손바닥 사이로 흘러내리는 눈물과 애원을 거둬낼 수 없다는 사실에 끝없이 분통해하며 상디는 목 메인 목소리로 루피의 기대를 배반했다.
“미안하다.”
* * * * *
짧은 재회를 끝낸 후, 상디는 마지막이니 선장을 위한 특식을 준비하겠다며 억지로 루피를 식당 중앙에 위치한 테이블에 앉혀놓고는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 요리를 재개했다. 조금 울어버린 탓에 약간 붉게 변한 눈가를 비비던 루피는 정면에 보이는 상디의 뒷모습에 다시 알싸한 통증이 가슴에 퍼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요리를 하는 상디의 뒷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에 기뻐해야 할지, 이것으로 정말 마지막이라는 것에 슬퍼해야 할지 헛갈렸다. 그래도 여전히 요리를 하는 상디의 모습은 근사하고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피는 요리가 다 될 때까지 기대감에 부풀며 상디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가끔 상디의 기분이 좋으면 들려오던 콧노래를 듣는 것도 좋아했었다. 아니, 그저 자신의 눈앞에 상디가 있다는 것이 좋았던 것인지도 몰랐다.
달그락. 접시가 식탁에 내려앉는 소리가 들리자 루피가 푹 숙인 고개를 들어 이제 막 세팅을 끝낸 요리들을 살펴보았다. 전부 루피가 특별히 좋아하는 요리들이었으며 평소보다도 몇 배는 정성을 다한 티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음식이라는 것을 뛰어넘어 하나의 예술로 보일 정도의 만찬에 루피는 잠시 음식의 향과 멋에 취해 감상에 젖었다. 그저 눈으로 보고 냄새를 맡는 것으로 식욕을 돋우며 굳이 먹지 않아도 진미를 선사해 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루피는 평소처럼 득달같이 달려들지 못하고 주먹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그런 루피의 반응에 맞은편에 서 있던 상디가 루피의 이상에 의문을 느끼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보았다.
“뭐야, 기껏 신경 써서 준비했는데 왜 안 먹는 거야. 제사상 앞에 있는 것도 아니고. 설마 내 실력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겠지?”
상디의 미심쩍어하는 질문에 루피는 바로 고개를 세차게 흔드는 것으로 그의 말을 즉각 부정해주었다. 상디의 실력은 처음 만난 그 시점부터 확고한 신뢰를 이미 가지게 되었으니까. 그럼에도 차마 음식에 쉽게 손이 가지 않는 것은 이 순간이 지나면 상디가 바로 자신의 앞에서 사라질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었다. 이것이 마지막 만찬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제는 정말로 저 요리들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하면 목 안에 커다란 가시가 걸린 것처럼 턱 막혀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 루피의 모습에 상디는 잠시 한숨을 푹 쉬고는 루피를 달래는 자상한 목소리로 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루피. 네가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 대충 짐작은 간다. 하지만 네가 그렇게 가만히 앉아서 내 요리를 안 먹으면 내가 여기까지 와서 너만을 위해 요리를 해준 이유가 없잖아. 나는 마지막으로, 너에게 내 최고의 요리를 만들어주고 싶어서 여기에 온 거야. 루피 네가 내 요리를 맛있게 먹는 모습이 보고 싶어서 여기에 온 거고. 더 이상 네가 나로 인해 아무것도 먹지 않고 축 쳐져있는 꼴도 더는 못 보겠어서 그래.”
“상디.”
“그러니까, 너를 걱정하는 나를, 아니 남아있는 녀석들을 위해서라도 먹어라. 선장이란 녀석이 자꾸 동료들 걱정시키는 것도 보기 안 좋아.”
“………….”
“그러니까 먹어라, 루피. 더는 나 때문에 굶고 다니지 마.”
무겁게 내려앉은 상디의 부탁으로 루피는 고개를 들고 상디를 보았다. 노란 머리카락 뒤에 숨겨진 그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충분히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잠깐 입술을 바르르 떨며 아무 말도 못하던 루피는 마침내 힘겹게 결심을 내린 것인지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는 큰 소리로 두 손을 맞부딪쳐 합장을 하며 외쳤다,.
“잘 먹겠습니다!!!”
인사를 마치자마자 루피는 바로 손을 뻗어 음식들을 마구잡이로 끌어당기고는 그대로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상디의 죽음 이후로 먹게 되는 요리들은 지금까지 먹어봤던 상디의 요리들 중 가장 맛있었다. 터질 듯이 입 안에 한계까지 닥치는 대로 넣으며 씹어 삼키는 루피의 모습은 어쩐지 필사적으로 보여서 상디는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한 발짝 아픔에서 극복하는 모습이 기특해 쓴 웃음을 지으며 조용히 지켜봐주었다.
잠시 후, 루피는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음식을 전부 먹어치웠다. 식탁 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려지던 음식들은 빈 접시만 남겨놓은 채 루피의 뱃속으로 전부 남김없이 들어가게 되었다. 루피의 입가에는 음식 부스러기들이 잔뜩 묻어있었으며 그의 배는 올챙이처럼 크게 부풀어 올라 있는 모습이었다. 여전히 대단한 속도라니까.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은 식사량과 속도에 상디는 감탄하는 말로 감상을 마치고는 잠시 한 박자 쉬어 담배연기를 빨아 마시다가 다시 입으로 뱉어내고는 자신 있는 눈빛으로 루피에게 물었다.
“그래서 평가는?”
평가를 요청하는 상디의 말에 루피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이윽고 상디의 요리를 통해 비로소 조금은 찾을 수 있었던 루피 특유의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해주었다.
“역시 상디의 요리는 세계 최고야!”
이 이상 완벽한 평가는 없다는 듯이 확고하게 말하는 루피의 평가에 상디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이윽고 볼을 분홍빛으로 발그레 물들이며 루피와 닮은 미소를 지어주는 것으로 화답했다.
“그거야 당연하지. 이 몸의 요리라고!”
아, 저 미소는.
샛노란 빛으로 퍼져나가는 따스한 햇살 아래서 바다를 배경으로 꿈을 이야기하던 두 소년이 있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불가능한 꿈이라고 손가락질 했지만 소년들은 각자의 품을 안고 저 드넓은 바다에 뛰어들었다. 자신들에게 꿈을 선사할 로망의 바다에 소년들은 언제고 꿈을 이룰 때까지 함께 하자며 손을 맞잡았다. 이보다 더 아름답고 눈부신 것은 없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값지고 소중한 것이었다. 어쩌면 이것이 자신이 찾던 비보인 것은 아닐까. 소년은 또 다른 소년의 태양을 닮은 미소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서로가 서로의 꿈으로 인도해 줄 태양이 되어 거친 파도를 몇 번이나 뛰어넘었다. 함께라면 괜찮아. 혼자가 아니야. 너의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면 분명히 우리는 꿈을 이룰 수 있어. 함께 꿈을 이루자. 서로의 꿈을 응원해주며 앞으로 나아가자. 나는 이 바다에서 가장 자유로운 자가 되어서, 너는 이 세상의 모든 바다를 발견하여 함께 그 순간들을 지켜보자. 그의 미소를 처음 목격한 그 날, 소년은 남몰래 앞으로의 나날들을 그려가며 바다보다도 넓고 태양보다도 빛나는 감정들을 품게 되며 서로가 말하지 않아도 꿈을 공유하며 하나로 섞어내었다. 너의 꿈은 나의 꿈이며, 나의 꿈도 너의 꿈이었는데 어째서 이렇게 둘로 갈라지게 되어 하나는 영원히 이루지 못하게 되어버린 것일까. 왜 너는 더 이상 꿈을 꾸지 못하게 되었을까.
슬프다. 더 이상 저 미소를 볼 수 없다는 것이 이다지도 애통하다. 둘도 없는 너의 미소를 무엇보다도 사랑했는데.
너를 누구보다도 많이 사랑하였는데 왜 너는 이제 내 곁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일까.
“루피. 내가 없더라도 밥 꼬박꼬박 챙겨먹어. 너무 고기만 챙겨먹지 말고 채소도 먹으면서 건강 잘 챙기고. 밤에 냉장고 뒤지는 것도 그만하고, 내가 만든 요리가 아니더라도 맛있게 잘 먹어. 나미 씨나 로빈 양, 그리고 다른 녀석들 말도 잘 듣고.
루피, 그 날 네가 나를 바다로 이끌어주고, 내가 꿈을 꿀 수 있게 만들어줬어. 네가 아니었으면 나는 영원히 꿈을 그대로 가슴에 품은 채 미련 속에서 살아가야 했을지도 몰라. 너는 나를 바다로 이끌어준 녀석이야. 네가 있어서 나는 꿈을 꾸며 여기까지 나아갈 수 있었어. 나는 후회 없어.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여기서 끝난다고 해도 나한테는 아직 네가, 동료들이 남아있어. 너희들의 꿈이 이뤄지고, 내 몫까지 올 블루를 보고 온다면 그것으로 내 꿈은 이뤄지는 거야.
루피, 나는 더 이상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된 게 아니야. 내 꿈은 아직 살아있어. 너희들이 내 꿈이야. 그러니까 나는 너희들이 살아서 끝까지 꿈을 이뤄줬으면 좋겠어. 너라면 분명 해적왕이 될 수 있을 거야. 해적왕이 되어서, 올 블루를 봐줘.
그러니까, 이번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나 때문에 힘들어하지 마라.”
깃털처럼 포근하게 내려앉은 상디의 손은 루피의 머리를 소중한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루피는 어느새 지금껏 쏟아내지 못했던 모든 감정들을 눈물로 바꿔서 밖으로 흘려내고 있었다. 상디, 미안해.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정말로 미안해. 고장 난 레코드처럼 되풀이하는 용서를 상디는 관용으로서 루피의 머리를 자신의 품 안에 넣어주며 조용히 달래주었다. 괜찮아. 고마워. 단 두 마디뿐인 위로의 말이었지만 루피는 그것으로도 충분히 구원받을 수 있었다. 상디의 손길 하나하나가 루피의 등을 괴롭게 짓누르고 있는 죄책감을 조금씩 덜어내고 있었다.
“지금까지 고마웠어, 루피.”
그렇게 요리사는 마지막으로 감사의 인사를 조용히 남기며 최후이자 최고의 만찬을 마무리하였다.
* * * * *
“…피, 루피, 일어나봐. 루피.”
자신의 몸을 흔들어 깨우는 손길과 눈을 가볍게 찌르는 햇살에 루피는 조금씩 눈을 뜨며 의식을 차리기 시작했다. 잠시 흐릿했던 시야는 점차 초점을 되찾아 뚜렷해지게 되어 루피는 자신의 옆에서 허리를 살짝 숙인 채 방금 전까지 조심스러운 손길로 자신을 깨우던 나미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오렌지빛 머리가 아침햇살과 섞여 반짝반짝 빛나 루피의 남은 잠들을 전부 몰아내게 해주었다. 루피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자신이 있는 장소를 살펴보았다. 루피가 있는 곳은 바로 조금 전까지 상디와 함께 있던 식당이었다. 빈 접시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제자리에 놓여 져 있었고, 터질 듯이 불러왔던 배는 푹 꺼져있었다.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조용한 주변의 모습에 루피는 멍한 표정으로 주방을 응시했다. 그런 루피의 모습에 나미는 안절부절 한 표정으로 걱정스레 루피에게 말을 걸었다.
“갑자기 식당에서 자고 있어서 놀랐어. 그런데 여기에는 왜 온 거야? 설마….”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말꼬리를 흐리며 입을 다문 나미의 반응에 루피는 주방에서 시선을 돌려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루피는 나미의 걱정을 통해 상디의 충고를 떠올렸다. 그것은 꿈이었을까, 현실이었을까. 루피는 손으로 자신의 배를 쓸어내려 보았다. 입 안에는 상디의 요리의 맛이 희미하게 감도는 것 같았다. 루피는 눈을 감고 마지막으로 봤던 상디의 미소를 떠올렸다. 지금까지 고마웠어, 루피. 그 말에는 상디를 향한 루피의 비밀스러운 감정에 대한 고마움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상디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고, 그것을 받아주면 되었다. 그 감사에 그만의 상냥함이 들어있는 것 같아서, 그의 요리만큼이나 따스함이 듬뿍 들어가 있어서 자신도 똑같이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주고 싶었을 정도였다.
꿈이라고 해도 괜찮았다. 앞으로 혼자라도 괜찮다. 아니, 혼자가 아니다. 그의 말대로 자신에게는 남은 동료들과 상디의 꿈이 남아있었다. 그의 꿈은 공백을 채워주며 자신의 꿈과 온전히 하나가 될 것이다. 상디, 올 블루는 어떤 곳일까. 벌써부터 너를 대신해 보게 될 꿈의 바다가 궁금해. 분명 너의 미소를 만들어주게 했으니 틀림없이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낭만적인 곳일 거야. 빨리 보고 싶다.
어서 너의 꿈을 이뤄주고 싶어.
꼬르륵.
그 때, 루피의 뱃속에서 반가울 정도로 오랜만에 공복을 알리는 뱃소리가 울리게 되자 루피와 나미가 함께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상디가 죽은 이후로 울리지 않았던 공복의 소리에 나미가 놀라 뭐라 반응을 하기도 전에, 루피가 먼저 킥킥거리며 웃음을 터트리게 되었다. 소리에 이어 루피의 웃음까지 연이어 보게 된 나미는 이제 살짝 무서울 지경이 되어 뭐라 말을 걸기도 겁날 정도였다. 한참을 그렇게 혼자서 웃던 루피는 잠시 조금은 어른스러운, 요리사를 닮은 미소를 지어보이더니 곧바로 생전의 그가 좋아했던 태양을 닮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시시싯. 배고프다, 나미. 다 같이 밥 먹자.”
그 말을 마지막으로 구석에 희미하게 흔들리던 회색빛 담배연기가 아스라이 사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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