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또 한 번 저물고 초저녁이 되어 어스름이 찾아와 서쪽 하늘에서부터 옅은 쪽빛 하늘이 그 색을 짙게 물들여 암청색의 밤하늘을 만들었다. 여름의 밤은 늦게 찾아오면서도 아차 하고 정신을 차리고 보면 금방 어둑해지는 밤이었다. 어둠이 찾아오면서 가로등불이 하나 둘 켜지게 되고, 밝은 조명 아래로 본능적으로 찾게 된 벌레들이 들끓게 되었다. 무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을 정도로 제 몸을 던져 불에 뛰어드는 벌레들은 지글거리는 소리를 내며 조금씩 제 몸을 태우다가 결국 바닥에 추락하여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된다. 조금 후덥지근한 초여름의 밤길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인적이 드물면서도 눅눅한 공기로 어수선한 분위기를 풍겼다. 여름에서만 들을 수 있는 쓰르라미의 울음소리만이 밤공기를 흔들고 있을 때, 가벼운 발소리가 규칙적으로 간격을 두며 밤거리를 비추고 있는 가로등 아래로 지나갔다. 오래되어 관리가 허술한 탓에 불규칙적으로 깜빡거리는 가로등 불빛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나가는 사내는 발소리와는 대조적으로 보통의 성인 남성보다도 큰 체격을 지니고 있었으며 초여름에 입기에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털이 많은 분홍빛 코트를 몸에 걸쳐 멀리서 그 인영을 보면 사람이라기보다는 한 마리의 새를 연상케 만들었다. 발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지만 사내는 콧노래 또한 가볍게 흥얼거리고 있었다. 발소리와 콧노래만으로도 남자의 기분이 적어도 나쁘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남자는 계속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며 이제는 가로등조차 드문드문 서 있다가 어느새 완전히 사라져 이제는 달빛만이 힘겹게 어둠을 걷어내려고 애쓰고 있는 컴컴한 골목길에 접어들었다. 거기서 얼마나 더 걸었을까. 남자는 드디어 자신의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발걸음을 멈추고 어느 건물 앞에 서게 되었다. 건물은 오래 전에 모종의 이유로 공사를 그만 둔 것인지 유리창 하나 있지 않고 공사 자재들이 어지러이 널브러져 있으며 쌔 한 기운만이 흘러나와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는 5층짜리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불빛 하나 새나오지 않아 어둠에 완전히 파묻혀져 있는 건물은 달빛만이 건물의 윤곽을 보여주고 있었다. 만약 달빛조차 없는 밤이었다면 그 자리에 건물이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다.
흠. 남자는 고개를 들어 건물을 위아래로 쭉 살펴 자신이 제대로 찾아왔다는 것에 대한 확인을 마치고는 바로 망설임 없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입구를 지나치자 바로 로비가 나타났다. 로비하고 해도 공사 기자재들과 여기저기 부서지고, 녹이 슬며, 갉아 먹힌 낡아빠진 물건들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황망한 풍경을 그려내고 있었다. 무언가 튀어나올 것과도 같은 으스스한 공간을 남자는 무서움 하나 없이 똑바로 가로질러 입구 맞은편 벽에 위치한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이런 건물에 전기가 들어올지도 의심스러웠지만 예상 밖에도 엘리베이터 문의 바로 위의 안내판은 희미한 불빛을 내며 층수를 그려내고 있었다. 남자는 시험 삼아 버튼을 눌러보았고, 이윽고 칠이 다 벗겨지고 기름칠을 안해 녹이 다 슬어버린 엘리베이터 문이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힘겹게 열렸다. 문이 열리면서 엘리베이터의 작은 공간에서 침침한 노란 불빛이 쏟아져 나왔다. 그렇게 밝은 빛은 아니었지만 지금껏 빛 한 점 없던 건물 내부와 비교해보면 선글라스를 쓴 남자가 잠시 주춤하고 눈을 깜빡거리며 빛에 적응하려고 했을 정도로 지금 상황에는 충분히 밝은 빛이었다. 두세 번 눈을 깜빡인 후, 남자는 큰 보폭으로 성큼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와 층수가 적힌 버튼들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이윽고 결정을 내려 지하로 향하는 버튼을 눌렀다. 문은 처음 열렸을 때처럼 같은 소음을 내지르며 닫히게 되고, 엘리베이터는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만나게 되는군. 여기까지 발걸음을 했으니 부디 그 수고에 걸 맞는 성과가 나오기를 바라며 도플라밍고는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며 서늘한 미소를 그렸다.
Addiction
W. 아르카디
덜컹. 아래로 내려가던 엘리베이터는 마침내 그 끝에 도달하여 움직임을 멈추었다. 다시금 문이 열리면서 엘리베이터의 문 너머로 로비에서와 같은 어둠이 펼쳐졌다. 그러나 로비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길게 이어진 복도의 가운데에 누군가가 서 있다는 점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빛의 끝과 그 너머로 시작되는 어둠의 경계에 서 있는 남자는 하얀 작업복을 입고 [PENGUIN]이라고 쓴 푸른 방한모자를 깊게 눌러쓴 인상착의를 하고 있었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건물에 찾아온 이방인을 경비견처럼 경계를 내세우며 서 있는 남자는 빛과 어둠에 경계에 서서 얼굴에 짙은 그늘을 만들어 자신을 보고 있는 상대가 지레 겁을 먹고 돌아가게 만들 정도의 날이 선 위협감이 있었다. 그러나 암흑가에서 활동하며 수많은 군상을 보고, 그들이 자신에게 드러내는 경계심을 지겹도록 느낀 도플라밍고에게 경비견의 경계심은 이제 와서 새로운 것도 아니었다. 도플라밍고는 처음 엘리베이터에 올라탔을 때와 마찬가지로 큰 보폭으로 한 걸음 내딛는 것으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바로 그 자리에 딱 서게 되었다. 도플라밍고는 쓰고 있는 선글라스를 중지로 받침대를 눌러 올리는 것으로 제대로 고쳐 쓰고는 자신의 앞에 선 남자에게 말했다.
“훗훗훗. 경비견인가? 그래, 네 주인은 지금 어디 있지?”
“먼저 자기소개가 우선이 아닌가?”
“훗훗훗. 말 받아치는 게 제법이군. 하지만 손님을 대접하는 솜씨는 영 꽝이야. 다시 한 번 물어보지. 네 주인은 어디 있지?”
도플라밍고의 입에서 언급된 ‘손님’이라는 단어에 남자의 주변을 감돌던 분위기가 살며시 변하게 되어, 일단은 도플라밍고를 향한 경계심을 물러내었다. 굳이 그 단어 때문이 아니라, 도플라밍고가 슬며시 꺼내든 폭력에 가까운 살기에 자신이 함부로 덤벼들어 상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파악했던 점도 있었다. 호오, 제 주제를 아는 녀석이라군. 도플라밍고는 남자의 풀려난 경계심에 적어도 사리분별 못하는 멍청이는 아니라고 생각하며 한 발짝 앞으로 더 나아갔고, 남자는 적어도 이곳을 헤집고 다닐 무뢰배는 아니라고 판단하여 어둠이 깔린 곳을 향해 몸을 반쯤 돌려 조금 전의 대화보다 많이 누그러진 말투로 도플라밍고를 안내했다.
“이쪽으로 따라오시죠.”
남자의 안내를 받아 도플라밍고는 복도의 안쪽으로 들어갔고, 도플라밍고가 발걸음을 떼자 엘리베이터의 문이 그제야 닫히게 되었다.
복도를 걸어가는 동안 두 남자는 간단하게 서로의 통성명을 주고받았다. 건물을 찾아온 자의 이름은 돈키호테 도플라밍고였으며 그의 앞에 잠시나마 가로막았던 남자의 이름은 펭귄이었다. 돈키호테였던 건가. 펭귄은 자신의 뒤에서 따라오는 남자의 이름을 속으로 되새겨보고는 자신이 그 자리에서 일찍 비켜내지 않았으면 어찌 되었을 지를 상상해보고는 도플라밍고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작게 마른 침을 삼키는 소리를 내었다. 누구나 한 번씩 ‘어둠’에 몸을 담구면서 돈키호테 패밀리라는 암흑가를 지배하는 거대 세력의 이름과 그 세력의 정점에 서 있는 ‘조커’ 돈키호테 도플라밍고의 말을 지나가는 식으로라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고, 그 이름을 듣지 못했다면 그 사람은 완전히 어둠에 들어선 것이 아니라는 반은 농담에, 반은 진담에 가까운 말이 나올 정도로 돈키호테 패밀리와 돈키호테 도플라밍고는 암흑가 그 자체나 다름없는 세력이자 인물이었다. 손에 닿는 것이라면 아무리 사소한 가치라고 해도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긁어모아 제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쥐어봐야지 직성이 풀릴 정도로 탐욕스러웠으며 제 심기를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자가 있다면 가차 없이 제 이름 아래 잔혹하게 죽일 정도로 광기에 물들어진 자였다. 그 흉악함과 탐욕스러움과 강대한 권력과 그 모든 것을 뒷받침하는 카리스마는 마치 폭군을 연상시켰다. 뒷 세계의 왕. 그를 표현하는 가장 정확하면서 간략한 별명이었다.
펭귄이 도플라밍고를 데리고 도착한 곳은 제법 널찍한 방이었다. 소파와 테이블이 배치되어 있는 것 이외에는 방의 크기에 비해 상당히 초라하게 꾸며진 곳은 간신히 응접실로서의 구색을 갖춘, 뒷세계의 왕이 찾아오기에는 너무나도 누구하고 미천한 장소였다. 그러나 도플라밍고는 애초에 건물에 들어설 때부터 근사한 대접은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는 듯이 개의치 않아하며 펭귄이 지정한 자리에 앉았다. 도플라밍고가 앉아 낡은 소파에서 회색 먼지가 구름을 만들며 크게 일어났고, 성인 세 명 정도는 나란히 앉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소파는 도플라밍고 한 명이 앉는 것만으로도 벅찬 것인지 그 혼자서 공간을 거의 다 차지했을 뿐만이 아니라 스프링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끼익거리는 소리를 질렀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펭귄은 도플라밍고에게 간단히 말하고는 방 안쪽에 또 자리를 잡은 쪽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아마 자신의 주인을 부르러 간 것이라 짐작하며 도플라밍고는 여유롭게 기다리기로 하며 자신이 여기까지 단신으로 오게 된 경위를 떠올렸다.
돈키호테 도플라밍고는 쾌락과 스릴을 사랑했으며 권태와 나약함을 증오했다. 특히나 권태는 기생충과도 같은 것이어서 잠시만 방심하면 곧바로 자신의 몸에 기어오르며 조금씩 자신의 몸과 정신을 갉아먹으며 감각을 마비시키다가 결국에는 무력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이었다. 권태는 죄악이다. 어디선가 들어본 격언을 나름대로 머릿속에 기억하며 도플라밍고는 쾌락과 스릴을 통해 권태를 물리쳐냈다. 그러던 중, 도플라밍고의 귀로 흥미로운 소문이 들어갔다. 어느 한 불법 외과의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암흑가에서 야매 의사들의 존재는 간단히 말해 중립지역 같은 것이었다. 싸움과 죽음이 일상처럼 일어나는 세계에서 사람을 살리는 능력이 있는 의사의 존재는 양지에 나가지 못하는 뒷세계의 사람들에게는 구원과도 같은 존재들이었다. 거대 세력들의 경우에는 자신들이 직접 우수한 의사를 자신들만의 전문 의사로서 고용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은 야매 의사들을 찾아가기 십상이었다. 비록 치료에 대한 값을 상당히 비싸게 치루며, 그것을 이유로 함부로 사람의 목숨을 저울질 하여 죽어가는 환자들을 협박을 하는 독종들이었지만 끝내 환자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여 의사들의 악질적인 협박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야매들 중에서, 유독 톡 튀는 특이한 의사가 있다고 한다. 그 야매는 의사로서의 본업 하나에만 매달리지 않고 마약 밀거래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가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을 망가뜨리는 약을 퍼트리고 있다는 사실에서 아이러니를 찾을 수 있었다. 의료 쪽으로는 현재 암흑가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하며 마약 관련으로는 희귀하고 매니악한 마약만을 취급하고 있지만 그래서인지 장기 단골이 상당히 많다고 하며 자세히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의사로서 버는 수익보다 약쟁이로서 일할 때의 수익이 더 많이 나온다고 할 정도다. 도플라밍고는 그 의사 겸 약쟁이에 대한 소문을 듣고 흥미가 생겨났다. 마약에 딱히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의사와 마약 거래상이라는 아이러니에 기묘한 이끌림을 느꼈다. 한 번 흥미가 생기면 그것이 해소될 때까지 멈추지 않는 도플라밍고였기에 결국 참지 못하고 최측근에게까지 비밀로 하여 홀로 밖으로 나와 밤중에 소문의 근원지를 찾으러 온 것이었다.
달칵. 쪽방의 문이 열리면서 방 안으로 누군가가 나오자 도플라밍고는 인기척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방에서 나온 인물은 펭귄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그가 바로 도플라밍고가 만나러 온 소문의 의사였다. 의사는 소문으로 퍼지던 뛰어난 실력과는 반비례 하듯이 예상을 깨고 나이가 도플라밍고보다도 한참 어려보이는, 족히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청년이었다. 굽이 있는 구두를 신고 긴 다리를 잘 드러내는 청바지에 노란 티셔츠를 입고 다시 그 위에 의사를 상징하는 하얀 가운을 걸쳤지만 그것은 한쪽은 아슬아슬하게 어깨에 걸쳐져 있고, 다른 한 쪽은 거의 흘러내려 팔에 걸려버린, 전체적으로 흐트러진 의상착의였다. 비척거리는 걸음걸이로 도플라밍고가 앉아있는 소파의 맞은편까지 온 청년은 이윽고 자신의 몸을 빈 소파에 아무렇게 던지듯이 그대로 몸을 반쯤 뉘였다. 덕분에 옷은 더욱 흐트러지고 주름이 생겨 쇄골선이 노골적으로 드러날 정도였다. 구릿빛 피부 위에 새겨진 손가락의 문신들은 청년 특유의 퇴폐적인 미를 한껏 돋보이고 있었으며 눈 밑의 다크 서클도 그 미에 한 몫을 더해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남자의 외모였다. 전체적으로 특별하게 잘생겼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길에서 걷다가 지나치게 되면 한 번 돌아보고 싶을 정도의 평균 이상의 미형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남자의 두 눈에 박혀있는 두 눈은 나른하고 선정적으로 젖은 눈빛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상대를 현혹시킬 위험한 매력을 지녔다. 윤락가에서의 창녀들도 쉽게 가질 수 없는, 말 그대로 천부적인 재능의 눈빛이었다. 잠시 청년의 외모에 자신도 모를 정도로 크게 감탄하며 지켜보던 도플라밍고는 뒤늦게야 남자의 눈동자의 초점이 불안하게 맞춰진 점과 걷어진 소매 끝에서 보이는 주사자국을 발견하였다. 재능과 약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라는 것인가. 도플라밍고가 그렇게 생각할 쯤, 남자가 힘이 없어 낮게 가라앉아 버렸지만 그 안에 희미하게 빛나는 의식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먼저 말문을 열었다.
“환자? 아니, 행색을 보아하니 손님에 가깝겠군.”
수수께끼 같은 로우의 말에 도플라밍고는 어림짐작으로 환자와 손님의 차이를 짐작해봤다. 의사를 찾으러왔나, 약을 찾으러 왔냐는 일종의 절차에 가까운 질문이었다. 로우는 느릿하게 두세 번 눈을 끔뻑거리더니 뒤늦게야 상대가 누군지 알아챈 것인지 반쯤 감은 눈을 완전히 떠서는 조금은 잠에서 깬 목소리로 말했다.
“…돈키호테 도플라밍고?”
“훗훗훗. 이제야 알아보는 건가? 어지간히도 약에 취해있었나 보군.”
“당신 같은 자가 여기까지는 어쩐 일이지? 당신 같은 사람이 다쳐서 올 것 같지는 않고, 약에 관심이 있어서 온 것은 더 아닌 것 같군.”
“그래. 미안하지만 둘 다 아니다.”
“그럼 무슨 용건으로 여기에 온 거지?”
“용건이라. 이유를 댄다면 그쪽이라고 말해두지. 트라팔가 로우.”
돈키호테 도플라밍고 같은 거물이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인지 로우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도플라밍고를 빤히 보았다. 그의 존재가 로우에게 있어서 일종의 각성제가 되어 무의식에 거의 잠겨있었던 의식을 밖으로 끄집어내고 있었다. 커다란 체격, 눈에 강하게 박혀 들어오는 핑크빛 털코트, 눈을 가리고 있는 선글라스, 귀기 서린 미소. 모든 것이 자신과는 상반되어 대척점에 선 존재와도 같이 보였다. 섞일 리 없고, 만날 리도 없을 인연이 왜 굳이 자신을 이유로 여기에 찾아온 것일까. 로우는 궁금증을 담아 입 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었다. 단순히 입과 눈매를 활처럼 휘었을 뿐인데도 그 미소로 인해 트라팔가 로우만의 성적인 매력이 더욱 도드라지게 드러나 버렸다. 로우의 미소에 도플라밍고는 끓어오르는 충동을 느꼈다. 그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느꼈던 묘한 이끌림을 여기서 깨닫게 되었다. 그는 자신에게 쾌락과 스릴을 안겨줄 수 있으며 권태라는 죄악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는 자였다. 자신의 탐욕을 자극하고, 지배욕을 돋우며 그러면서도 다른 이들과 달리 자신을 숭배하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손님’들에게 최고의 약을 선사한다고 한다. 그 말대로 트라팔가 로우라는 약은 돈키호테 도플라밍고에게 있어서 최고라는 찬사를 받을 정도로 충분히 중독성이 강한 약이며, 앞으로도 그것을 놓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미 그의 존재를 알게 된 순간부터, 도플라밍고는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재밌네, 당신.”
그리고 중독은, 전염되는 것이기도 했다.
그것을 알아차린 것인지, 로우는 키득거리며 앞으로 경험하게 될 새로운 자극을 기대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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