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부스럭
짚을 실어놓은 짐마차에서 무언가가 짚을 헤치고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작게 바스락거린 소리는 자칫하면 놓칠 수도 있던 거였지만 고요하게 젖은 밤공기가 주위를 울려 에이스의 귀에 크게 들려왔다. 이제 막 담요를 덮고 잠이 들려했던 에이스는 그 소리에 고개를 홱 돌려 짐마차를 보았다. 짚더미들이 두툼하게 쌓여있는 짐마차는 에이스의 낮은 시선으로 봤을 때는 별 이상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잘못 들은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생생한 소리라서 에이스는 결국 확인하기 위해 담요를 제 몸 위에서 치워 옆에 놔두고는 피로에 젖은 몸을 무겁게 일으켰다.부스럭.
에이스가 일어서자마자 다시 한 번 들린 소리, 그리고 그 소리에 따라 크게 들썩였던 짚더미. 이제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기에 에이스는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자신의 짐마차에 무엇인가 타고 있다고. 움직임의 크기를 봐서는 큰 짐승이나 사람 한 명이 타고 있는 것으로 짐작되었다. 문득 에이스는 자신과 같이 장사꾼으로 일하고 있는 마르코에게서 간혹 떠돌이 집시들이 짐마차에 몰래 숨어 탈 때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을 떠올렸다. 혹시나 그 이야기처럼 누군가가 자신의 짐마차에 몰래 타고 있는 것인가 싶어 에이스는 긴장감에 한 번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긴장할 필요 없어. 만약에 사실이라고 해도 상대는 여자일터. 그렇다면 쫓아내는데 무리는 없을거야. 에이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긴장을 풀기 위해 노력했다. 사람 하나 오늘 짐마차에 재운다고 해도 문제는 없으나 혹여나 잘못 얽히면 이래저래 고생이 많아질 것이었다. 장사꾼으로 지내는 이상 복잡한 일에는 얽히고 싶지 않았다. 일단 짚더미를 걷어내어 누가 있는지부터 확인하고 그 후에 어떻게 대처할지 결정하자. 그렇게 결정내린 에이스는 조심스럽게 짐마차에 접근하여 천천히 손을 뻗었다. 잠시 호흡이 멈춰지고, 주위는 긴장감으로 한층 더 조용해졌다. 벌레 울음 소리, 새가 퍼득이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때, 에이스는 한번에 짚더미를 들어올려 그대로 옆으로 치워내었다. 짚더미가 치워지고, 짐마차의 밑부분이 대부분 들어나면서 알맹이가 드러나게 되었다.
그 속에 들어있던 것은 집시도, 큰 짐승도 아니었다.
에이스가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늑대 꼬리였다. 탐스럽고 윤기가 흐르는 검은 늑대의 꼬리. 길고 쭉 뻗어진 늑대의 꼬리는 마치 저 위에 펼쳐진 밤하늘을 그대로 박아놓은 것처럼 아름다운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었으며 번쩍이는 윤기는 별빛과도 같이 반짝였다. 그리고 꼬리를 시작으로 천천히 시선을 올리면 바로 보이는 것은 건장한 성인 남성의 몸. 그것도 실오라기 하나 걸쳐져 있지 않은 전라. 옷을 대신하여 그 전라를 덮고 있는 것은 하트 무늬의 기묘한 문신 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위로 더 올리면 보이는 것은 늑대의 꼬리색과 마찬가지의 검은 머리카락과 커다란 늑대귀, 그리고 잠이 들었던 것인지 갑자기 치워진 짚더미에 방금 눈을 뜨고 한손으로 왼쪽 눈을 비비며 반쯤 뜬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나른한 눈빛이 인상적인 사내의 얼굴이었다.
"...뭐야, 갑자기."
"....에?"
늑대의 귀와 꼬리를 달고 자신의 단잠을 깨운 것에 살짝 짜증 섞인 말을 꺼내는 기묘한 사내의 반응에 에이스는 그저 넋이 빠진 목소리를 낼 수 밖에 없었다.
(중략)
"현랑(賢狼)?"
"나 같은 경우에는 이단이라고 할 수 있지."
살랑. 자신의 트라팔가 로우라고 소개한 남자의 말에 따라 뒤에서 검은 꼬리가 추임새처럼 한 번 부드럽게 흔들렸다. 그런 자신의 꼬리를 로우는 한손으로 끌어모아 얼굴에 비비면서 체념했지만 그래도 지울 수 없는 씁쓸함이 남아있는 어조로 말했다.
"보시다시피 색이 이래서 말이야."
아. 에이스는 로우의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옛부터 검은 늑대는 희귀하기로 소문났으며 그나마 존재하는 검은 늑대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불길함의 상징으로 악명 높았다. 일반적으로 늑대는 풍작을 전해주는 신의 화신이라고 하며 정성스레 섬겼지만 검은 늑대는 그와 대척되어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불길함을 선사하며 흉작을 전해준다고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배척하며 멸시했다. 에이스의 표정에서 자신이 한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는 것을 눈치챈 로우가 그를 위하여 조금 더
덧붙여서 설명했다.
"인간들 사이에서도 흑랑은 불길함의 상징이지만 우리 현랑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라서 말이지. 그래서 고향에서 쫓겨나서 떠돌아 다니는 중이야."
"얼마나?"
"글쎄. 아마 몇 백년은 되었을걸. 지금쯤이면 고향도 많이 변해있겠지."
약간 아래로 떨군 로우의 황금빛 눈동자에는 비록 자신을 추방시킨 고향이지만 그럼에도 지울 수 없는 태어난 곳을 향한 원초적 그리움이 서려있었다. 미워하려고 해도, 원망하려고 해도 결코 지워지지 않은 그리움과 애정. 수 백년의 세월이 흘러도 로우는 그것을 끝내 떨쳐낼 수 없었다. 로우는 은근한 손길로 자신의 꼬리를 쓰다듬었다. 달빛에 의지하여 전라로 다리를 꼬고 앉아 검은 늑대의 털을 매만지는 사내의 모습은 예상 이상으로 상당히 요염하여 에이스는 절로 얼굴이 붉어져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난감할 지경이었다. 흠흠. 에이스는 민망함을 떨쳐내기 위해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다시 질문을 이어나갔다.
"그, 그렇다면 그 소문은 사실인건가?"
"어떨 것 같아?"
"뭐?"
"정말로 내가 불운을 가져올 것처럼 보이냐고. 아니면 너도 흑랑은 불운의 화신이라고 믿고 있는 건가?"
가늘게 좁혀진 금안으로 에이스의 날카롭게 바라보는 로우의 눈빛에는 그를 시험하겠다는 뜻이 담겨져 있었다. 차갑게 얼어붙은 그의 두 눈동자에 에이스는 마치 자신의 속내를 늑대가 자신의 가슴팍을 뜯어내어 억지로 열어 젖히는 것과 같은 감각에 사로잡혀 몸을 살짝 떨어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여기서 물러서면 오히려 자신이 불리할 뿐이었다. 만약에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라면 여기서 물러서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두려움에서도 상인 특유의 냉철함으로 무장하여 에이스는 다시 표정을 바꿔 지지 않겠다는 듯이 로우를 바라보았다. 이정도의 일은 그간 겪은 수 많은 거래들과 협상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런 근거 없는 소문이나 전설은 안 믿어서 말이야."
그렇게 말한 에이스의 반응에 로우는 그런 말은 처음 들은 것인지 눈을 조금 크게 뜨며 잠시 아무런 반응 없이 에이스를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눈을 초승달처럼 둥글게 휘며 재밌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헤에, 제법인데."
그 미소는 자신의 말에 호기롭게 맞선 한 인간에 대해 첫 관심을 가졌다는 검은 현랑의 증표이기도 했다.
쾅!
밀폐된 덕분에 유독 소리가 더 잘 울리는 잠수함 특유의 내부 구조 덕분에 방금의 부딪히는 소리만큼이나 큰 소리는 천둥소리와도 같이 크게 울릴 수 밖에 없었다. 로우는 갑작스럽게 울려퍼진 굉음에도 놀란 기색 하나 없이, 오히려 소리의 원인을 예측했다는 덤덤한 표정으로 소리가 난 중심지를 향해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 로우의 예상대로 소리의 근원지에 있는 것은 이마를 감싸쥐고 몸을 숙인 채 짧은 신음소리를 흘리고 있는 사보의 모습이었다. 벌겋게 부어오르는 이마를 만져대며 눈꼬리에 아픔으로 인한 눈물을 맺힌 어리숙한 모습은 그가 혁명군 NO.2로 세간에 알려져 있다는 사실에 대한 거리감을 벌려놓고 있었다. 로우는 그가 오기 전까지 읽고 있던 책을 덮어 옆의 책상 위에 올려놓고는 하아 하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몇 번을 왔을텐데 아직도 부딪히는 건가. 그것도 밖에는 잘만 돌아다니면서."
"하하. 아직 잠수함 내부 구조에 익숙치 못해서 말이야."
"...이리와서 앉기나 해라."
자신의 바로 앞에 있는 의자를 턱으로 가리켜 앉을 장소를 가르쳐주고는 앉아있는 의자를 회전시켜 소독약과 거즈를 준비하는 로우의 반응에 사보는 머쓱히 뒷머리를 긁적이며 조심스럽게 로우가 안내해준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로우에게 약시인 것을 들킨 후, 사보는 로우의 말대로 가끔씩 그에게 찾아와 시력에 좋은 약을 처방받고 있었다. 사보의 처방에 대해서는 로우만이 알고 있는 비밀로, 사보의 부탁을 받아들여 하트 해적단의 크루들도 사보에 대한 자세한 병명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덕분에 사보는 잠수함에 찾아올 때마다 크루들의 의심의 눈초리를 받아야 했지만 그런 시선 정도야 사보는 이미 예측했던 것이기에 거뜬히 넘겨내고는 로우가 기다리고 있는 의료실로 향해 발걸음을 바삐 놀렸다. 그러나 매번 찾아올 때마다 그는 잠수함의 어느 한 곳에 반드시 머리 등 몸의 어느 한 부분을 부딪히는 작은 사고를 겪어야만 했다. 사보 말에 따르면 두 눈의 시야가 다른 탓에 거리감이 애매해져서 이렇게 실수를 할 때가 있다고 설명했다. 로우도 두 눈의 시력차로 생기는 체감 거리차와 실제 거리차의 차이를 알고 있기에 그런 사보의 이유를 처음에는 납득했지만, 한두번도 아니고 매번 찾아올 때마다 큰 소리를 내며 부딪치니 이제는 한심하게 느껴지면서 동시에 의구심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애초에 혁명군의 간부로서 직접 나서서 싸울 때가 많고, 벌써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거리감 정도는 극복했을 터인데 유독 자신의 잠수함, 특히 자신이 보는 앞에서 부딪히는 모습을 보이니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제와서 거리감에 난점이 생겼다고 하기에는 의문이 될 부분이 한둘이 아니었다.
벌겋게 부어오른 이마에 소독약을 바르고 거즈를 붙인 후, 이전과 마찬가지로 시력에 좋은 약들을 쥐어준 후, 로우는 그동안 궁금했던 부분을 물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사보여. 한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
"뭔데?"
"왜 유독 내 잠수함에 올 때마다 그렇게 거리감을 잡지 못해 자주 부딪치는 거냐? 전투 시에나 다른 자들이 있을 때는 잘만 다니면서 말이다."
"아, 그게..."
로우의 질문에 사보는 난처하다는 듯이 볼을 긁적이며 시선을 허공으로 던져 로우의 시선을 회피하였다. 대답을 피하려는 듯한 사보의 모습에 로우는 더욱 시선에 힘을 주어서 대답을 재촉하였고, 결국 사보는 로우의 시선에 졌다는 듯이 끙 소리를 내며 볼을 긁적이던 손을 내리고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게, 평소에는 주의를 주면 거리감 정도는 알아서 잘 잡아내어서 움직일 수 있는데, 이상하게 로우 앞에만 서면 긴장이 풀려서 말이야."
"뭐?"
"로우하고 같이 있으면 편안해지고, 또 이렇게 다치면 치료해주니까 안심이 되어서 긴장이 풀려지는 바람에 자주 부딪히게 된다는 거지. 그렇게 따지면 내가 자주
부딪히는 이유가 잠수함 구조 때문이 아니라 로우 때문이라는거네?"
"바보 같은 소리."
"하하. 뭐 어때. 게다가 난 로우한테 치료 받는게 오히려 좋은데?"
넉살스럽게 웃으며 이마에 붙은 하얀 거즈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는 사보의 모습에 로우는 기가 막히면서도 한편으로는 딱히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아 부끄러운 듯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리고 말았다.
그런 로우의 모습에 사보는 여전히 귀엽다고 생각하면서 빙긋 웃으며 계속 로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린 나이에는 당연한 생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당시의 나는 또래들보다도 더 조급하게 생각했다. 아마 내가 다른 아이들보다도 더 험한 일들을 겪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어찌되었든 그 때의 나는 이유 같은 건 따질 새도 없이 그냥,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이 자신의 뜻대로 이뤄질 것 같은 망상이자 바람이 있었다. 어른이 되면 강해질 수 있고, 자유로워 질 수도 있어. 내가 지금 원하는 것들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도 어른이 아니라 아이이기에 그런거야. 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당시의 나는 내가 약한 이유, 자유롭지 못한 이유, 보호받아야 하는 이유 전부를 어른이 아니라는 사실에 전부 쏟아부어버리고 말았다. 어린 마음에 답답하고 분한 심정으로 그런 것이겠지. 지금 생각하면 그런 생각 자체야말로 아이 같으면서 한없이 얕은 생각인데 말이다. 그렇게 어른을 갈망하던 나에게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어른의 상징과도 같았다. 얇고 짧은 막대기를 입에 물고 희뿌연 연기를 피우며 그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마시는 그들이 멋있게 보였으며 그들은 어른이라는 증거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 그것은 어린아이가 어른에게 가지고 있는 동경이었다. 자신이 체험할 수 없는 것이기에 기대를 넣어 더욱 가지고 싶어하는 동경과 갈망. 그래서 나는 어른이 되면 가장 먼저 담배를 피워보고 싶었다. 단순히 담배를 피우는 것만으로도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안 돼, 로우. 이런 걸 피워봤자 좋은 건 하나도 없단다.
그리고 내가 그런 기대 섞인 바람을 은근히 꺼낼 때마다 코라 씨는 반드시 나에게 주의를 주었다. 몸에 안 좋다느니, 불량스럽다느니 하는 교과서적인 훈계였다. 나를 걱정해서 하는 소리인 것은 알겠지만 그래도 속상한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 그리고 코라 씨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도플라밍고는 근처에서 훗훗 하고 웃기만 했다. 그저 철 없는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 같아서 나는 그럴 때마다 도플라밍고를 불만스럽게 노려보는 것으로 작은 반항과 화풀이를 동시에 던져보았다. 한 번은 자꾸만 웃는 도플라밍고에게 화가 난 나머지 이렇게 따져 물었다.
왜 그럴 때마다 웃는 거야? 도피는 코라 씨처럼 날 혼내고 싶은거야?
훗훗훗. 그럴리가. 나는 거기까지 간섭하진 않는다고? 뭐, 그 녀석이 너와 관련된 일이면 답지 않게 싸고 도니까 그런 일에 민감하게 나오는 거겠지.
도플라밍고는 그렇게 말을 끝내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그 또한 동생의 묘한 고지식함에는 두 손 두 발 다 든다는 반응이었다.
어쨌든 그럼에도 나는 담배와 어른에 대한 연관성과 그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면 안 좋다고 하는데도 어른들은 왜 자꾸 피우는 거야?
그 질문은 그 환상을 버리지 못한 것에서 찾아오는 코라 씨에 대한 답답함에서 나와버린 말이었다. 그 때도 코라 씨는 나를 타이르고 있던 중이었다. 내 질문에 코라씨는 잠시 망설이듯이 흠 하고 말을 멈추시더니 이내 처음으로 내 앞에서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른이니까 그런 게 아닐까.
그 말을 하던 때는 코라 씨가 죽기 일주일 전이었다.
코라 씨가 죽은 후 나는 홀로 바다로 나왔다. 새파란 바다가 눈부시게 펼쳐지며 조금 전에 벌어진 참극과는 대비되는 평화롭고 잔잔한 이미지를 품고 있었다. 낭떠러지 위에서 그 바다의 풍경을 지켜보고 있던 어린 시절의 나는 이윽고 더 이상 못 버티겠는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그럼에도 시선은 올곧게 바다로 향해있었고 나는 한치의 흔들림 없는 눈동자로 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담아내고자 애를 썼다. 당시의 내 모습은 마치 며칠 동안 잠을 못 잔 사람처럼 초쵀한 모습이었으며 양 볼에는 말라붙은 눈물 자국이 선명히 남겨져 있었다. 저 바다. 앞으로 조금만 더 있으면 코라 씨하고 같이 나가기로 한 바다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 이제는 아무런 의미도 없어져 버렸다. 푸른 빛으로 영롱하게 빛나는 바다가 지금은 왠지 회색빛으로 음울하게 빛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참을 말없이 바다를 보던 나는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손에 쥐어보았다. 여기에 오기 전에 몰래 챙겨든 담배갑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내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말리는 사람도 없으니 눈치보지 않고 마음껏 피울 수 있었다.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이 되면 분명 이 아픔 정도는 쉽게 떨쳐낼 수 있을꺼야. 그런 절박하고도 어리석은 심정으로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담배갑에서 담배 한개피를 꺼내 입에 물고 담배갑과 함께 챙겨든 라이터로 끝에 불을 붙여 마침내 고대하던 담배 한 모금을 마셔보았다.
......!! 콜록, 콜록!!
태어나서 처음으로 맛보게 된 담배는 생각 이상으로 너무나도 쓰고 매캐했다. 어른들은 이딴 걸 왜 피우는가 하는 의문과 동시에 속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주르륵. 그리고 다시금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어째서? 나는 이제, 이제...
이제 어른이 되었을텐데.
내 기대를 산산히 부숴주겠다는 듯이 눈물은 쉴틈없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 눈물과 함께 흘러넘치는 감정들에 휩쓸려버려 나는 끝내 온몸을 웅크린 채 오열을 쏟아부었다. 그 눈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지금도 알지 못했다. 연기의 매캐함으로 나와버린 생리적 현상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였는지는 몰랐다.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을 견딜 수 있을 줄 알았다. 그 기대는 어리석음을 품었던 만큼 형태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부서졌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나는 그 날에서야 어른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코라씨의 그 말도.
그 후로 나는 단 한 번도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그 날의 담배가 나에게 있어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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