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전에 올려보는 원피스X해리포터 크로스오버
어느쪽에 넣어야 할지 몰라서 일단 기타 항목에 올립니다. 현대물 대학 AU. 요즘 교수님에 대한 망상을 하고 살다보니 자기 전에 이런 글을 쓰네요. 나중에 또 같은 설정으로 이어쓸지도.
“이렇게 부탁할게, 트라팔가!”
고개와 허리를 숙이고 두 손을 싹싹 비는 동기를 앞에 두고 로우는 선배의 정수리와 손에 든 서류철을 번갈아 보며 쉽게 대답을 꺼내지 못하고 난색을 비췄다. 로우의 표정은 부탁의 내용을 떠나 이렇게 비는 동기의 행동 자체가 부담스럽고 꼴사납기 짝이 없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뜻하지 않게 교수의 출장으로 휴강이 생겨 간만의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얼굴만 알지 대화도 몇 번 해본 적 없는 동기가 뒤에서 불쑥 나타나 억지로 손에 서류철을 쥐어주며 어떤 교수에게 전달해달라는 부탁을 한 것이다. 자신의 일을 남에게 떠넘기는 꼴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 로우는 일단 지금은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내키지 않는다는 기색을 대놓고 드러내며 말했다.
“네가 대신 전해주면 되잖아.”
“그, 그게 난 이왕이면 그 교수하고 1:1로 마주하는 건 되도록 피하고 싶어서….”
눈길을 슬슬 피하며 변명치고는 상당히 어처구니없는 말을 늘어놓아 로우는 허어, 하는 소리를 낸 뒤 미간을 구기고는 서류철의 표면을 슬쩍 살펴봤다. S. S라는 약자가 필기체로 휘날리게 쓰여 져 있어 풀네임은 알 수 없었으나 로우는 그 약자가 교수의 이름일 것이라 짐작했다. 대체 어떤 교수이기에 학생이 이런 자료집 하나 전해주는 것조차 피하는 건가. 로우는 자신이 아는 교수들 중에 이런 약자를 쓰는 분이 있나 생각해봤으나 당장에 떠오르는 이름은 없었다. 한편, 로우가 계속 확답을 주지 않자 조바심이 난 동기는 뭐 마려운 사람처럼 끙끙대며 계속 말했다.
“다, 다음번에 밥 살 테니까 이번 한 번만 부탁하자, 응?”
로우는 다시 서류철과 동기의 얼굴을 번갈아 살폈다. 뭐, 어차피 시간도 많은데다가 서류철 하나 전해주는 걸로 식비를 굳힌다면 썩 나쁘지 않았다. 냉정하게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을 계산해본 로우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해줬다. 그 짧은 고갯짓 하나로 순식간에 얼굴이 환해지는 동기를 보며 로우는 무슨 한 편의 삼류 코미디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하여 로우가 도착한 곳은 그가 속한 의과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약학대였다. 약학대라는 명칭 덕분인지 알싸한 약품 냄새가 풍기는 것 같은 흰색 기조의 건물 안으로 들어서며 로우는 주변을 훑어봤다. 소속 대학이 다르다고 해서 로우가 약학대에 한 번도 오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약학과 의학은 상당히 밀접한 관련이 있었고, 자신들의 전공에 도움이 될 수도 있기에 서로의 수업을 신청하는 경우도 있었다. 로우도 몇 번 약학대에 와서 수업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로서는 외과 쪽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 약학 지식은 크게 중요치 않았으나 약학이라는 분야 자체에 대한 흥미는 있었다. 로우는 다시금 서류철을 내려다 봤다. S. S. 로우는 동기에게서 전해들은 교수의 풀네임을 떠올렸다. 그 교수였나. 그 교수라면 로우도 잘 알고 있었다. 일전에 한 번 그가 한 특강을 들어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수업을 듣기만 했지 직접적으로 마주치거나 대화한 적은 없었기에 로우로서는 잘 알지 못하는 교수였다. 하지만 간간히 그 교수에 대해서 열의 아홉은 씹고 다니는 약학대 소속 학생들의 말을 간간히 주워듣다보니 학생들 사이의 평판은 그다지 좋지 못한다는 것 정도는 눈치 있게 파악했다. 오죽하면 학생이 일대 일로 대면하는 것조차 피하겠는가. 그래도 교수와의 대면을 피하기 위해 남에게 일을 떠넘기는 것부터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나라도 그런 학생이라면 싫어할만 하겠군. 로우는 그리 생각하며 엘리베이터에 타 교수 연구실이 모여 있는 층의 버튼을 눌렀다.
짧은 시간 안에 엘리베이터가 목적지 층에 도착하자 로우는 바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곧장 연구실로 향했다. 그리고 도착한 어느 방문 앞에서 로우는 잠시 멈추고 명패를 올려다봤다. Severus Snape. 흰색 바탕에 검은색 잉크로 유려하고 정갈한 글씨체로 쓰여 진 이름을 확인한 로우는 바로 두 번 노크를 했다.
“교수님, 잠시만 안으로 들어가도 될까요?”
“…들어오도록.”
출입의 허가가 떨어지자 로우는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연구실 안은 생각보다 깔끔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만큼 수많은 책들과 여러 약품들이 철저하게 정돈되어 놓여 져 있었고, 연구실 안에는 종이 냄새와 약냄새가 섞여 퀴퀴하면서도 쓰라린 냄새가 동시에 풍겨져왔다. 아늑하다는 느낌보다는 조금 서늘하다는 느낌이 드는 연구실 안에서 로우는 정중앙에 놓인 테이블 뒤에 앉아 한창 서류 처리를 하고 있는 교수를 발견했다. 목을 두툼하게 덮은 고동색 터틀넥을 입은 검은 단발의 교수는 학생이 안에 들어왔는데도 바로 신경 쓰기보다는 눈앞에 놓인 서류들 처리에 열중했다. 손에 쥔 만년필을 놀려 몇 자를 적어 내려가며 교수는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무슨 일이지?”
“전해드릴 서류가 있어 찾아왔습니다.”
로우는 성큼성큼 테이블 앞으로 다가가 서류철을 슥 내밀었다. 눈앞에 나타난 서류철에 교수가 그제야 고개를 들고 로우와 서류철을 번갈아 봤다. 그리고는 바로 눈살을 찌푸렸다. 로우는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낯선 학생이 심부름을 와서 당황한 거겠지. 로우는 바로 교수의 의문을 풀고자 묻기도 전에 대답해줬다.
“의과 대학 소속 3학년생인 트라팔가 로우라고 합니다. 대신 부탁을 받아 찾아왔습니다.”
“대신 찾아왔다고?”
“네. 상대 쪽에서 사정이 있다고 해서….”
“같잖은 핑계로군.”
교수는 신랄한 어조로 독설을 내뱉은 뒤 로우에게서 서류철을 받았다.
“이걸 가져오라고 부탁한 녀석이라면 잘 알고 있다. 녀석에게 이번 학기 태도 점수는 포기하는 게 좋다고 말해두도록.”
그 말에 로우는 문득 언젠가 지나가면서 들은 교수의 악담을 떠올렸다. 엄청나게 깐깐해서 점수를 주는 것보다도 깎는 것에 더 능통한 교수이기에 A하나 받기 그렇게 힘들다는 어느 학생의 푸념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확실히 이런 사소한 일에도 점수를 깎는 걸 보면 어지간하다는 기가 막힌 감상이 절로 든다. 좋은 말로 하면 엄격한 것이고, 나쁜 말로 하면 더러울 만큼 빡빡하군. 어느 쪽이든 학생들에게 인기 많은 교수의 유형과는 거리가 멀다. 로우가 무슨 생각을 하든 말든 교수는 받은 서류를 펼쳐 눈으로 훑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자신이 할 일은 여기서 끝난 것이다. 로우는 동기에게서 밥을 얻어먹은 뒤 이 이야기를 해주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해보며 조용히 목례를 올리고 발걸음을 돌렸다.
“잠깐만.”
로우가 연구실을 나가기 직전, 교수가 그를 붙잡았다.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로우는 고개를 돌려 교수를 마주봤다. 교수는 서류철을 다 읽은 것인지, 아니면 중간에 잠시 멈춘 것인지 머리색만큼이나 새까만 눈동자로 로우를 응시하며 말했다.
“이름이 트라팔가 로우라고 했나?”
“네.”
“그래… 그럼 Dr. 트라팔가의 아들인가 보군. 그에게 대학생 아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어본 적이 있으니까.”
교수의 말은 뜻밖이었으나, 로우는 크게 놀라지 않고 납득했다는 의미로 작게 끄덕였다. 로우의 아버지는 의학계에서 명망 높은 의사로 알려져 있으며 유명한 논문도 몇 차례 낸 적이 있었다. 의학과 약학이 연관이 많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약학 교수로서 로우의 아버지의 논문을 읽어본 적이 많을 것이다. 교수는 잠시 관찰하는 시선으로 로우를 바로 조금 전 서류를 훑어본 것과 같이 위아래로 살펴봤다. 무덤덤한 눈빛에는 아무런 감정도 들어있지 않았으나 자신을 살펴보는 시선 자체는 썩 좋지 않아 로우는 애써 그런 내색을 드러내지 않고자 속으로 꾹꾹 누르며 일단 가만히 서 있었다. 한참 동안 아무 말 않던 교수는 이윽고 나가라는 의미로 손을 휘저었다.
“그래, 그만 나가보도록.”
그 말에 로우는 잠시 의문을 가졌으나 이내 별 상관없다 짐작하고는 다시 목례를 올린 뒤 미련 없이 연구실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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