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제트 형제 이야기. 캐붕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착각이 아닙니다.
1.
제트는 개발 당시, 즉 마인드 코어로 있을 적부터 제로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의 존재를 그 때부터 알 수 있었던 이유는 제로와 제트를 만들어준 또봇 개발자이자 부릉 모터스의 회장인 권 리모 덕분이었다. 세모를 입양한 후, 아들을 지키기 위한 로봇을 만들기로 결심한 리모는 즉시 마인드 코어를 만들어내어 제트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직접 배양에 나섰다. 원래대로라면 세모가 직접 배양하는 것이 낫겠지만 리모는 제트가 완전히 완성되기 전까지는 세모에게 또봇에 대한 존재를 최대한 알려주고 싶지 않아했다. 그것은 양아들에게 아직 제대로 마음을 열지 않았다는 문제가 아니라, 혹여나 또봇의 존재를 통해 눈치 빠르고 머리 좋은 아들이 자신의 은밀하고 어두운 계획에 대해서 눈치 챌 것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리모는 절대로 자신의 아들이 자기 계획에 휘말려들게 하지 않기 위해 사소하다고 해도 모든 가능성을 상정해두고 그것을 철저하게 막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한 세심한 노력 덕분에 세모는 리모가 범죄를 저지르고 체포되고 나서야 뒤늦게 양아버지의 비밀을 알 수 있었다. 아무튼, 그러한 이유로 리모는 세모를 대신하여 제트의 마인드 코어를 키워나갔다. 비록 완전히 상처에서 치유된 것이 아니고, 악당으로서의 계획을 그만둔 것은 아니었지만 세모의 존재가 확실히 리모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는지 리모는 세모를 만나기 전과 비교했을 때 조금의 인간미를 되찾을 수 있었고, 세모를 위한 또봇이라고 하니 제트에 대한 태도도 상대적으로 많이 누그러질 수 있었다. 비록 로봇에 대한 악감정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 살갑게 말을 걸어오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처럼 훈육하듯이 엄격하게 명령하였고, 철저하게 로봇으로서의 마음가짐과 주인의 안전과 명령을 최우선할 것을 주입시켜 놓았다. 아들을 지키기 위한 로봇이라는 의도를 상기하면 그러한 엄격함이 더욱 도드라졌다.
“너는 절대로 제로처럼 되면 안 된다.”
그런 제트에게 리모가 습관처럼 이야기하는 말이 바로 이것이었다. 또봇 제로. 제트는 리모가 종종 푸념처럼 늘어놓는 이야기를 통해 제로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자신보다 먼저 태어났으며 사실상 최초의 또봇이라고 불릴 수 있는 제로. 제트는 자세한 사정은 알지 못했으나 제로와 리모 사이에 무언가 아주 슬픈 일이 일어났고, 그 일로 인해 리모가 제로를 싫어하게 되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리모는 제트가 제로를 반면교사로 삼기를 바라는 것처럼 의도적으로 그의 나쁜 점만 골라서 말해주었다. 주인 하나 지켜주지 못하고, 명령에 따르지 않는 멍청한 바봇. 그것이 리모가 말해주는 제로의 모든 것이었다. 리모의 태도는 자신의 뜻대로 자라주지 않은 첫째 때문에 자연스레 첫째에 대한 기대감을 둘째에게로 떠넘기는 극성맞은 부모를 보는 것과 같은 히스테리 적 강박감이 그대로 드러났다. 리모는 마치 제트가 제로를 미워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악의가 가득한 말만 했지만, 이상하게도 제트는 제로를 미워하지도, 리모가 부담스럽지도 않았다. 제트가 둘에 대해서 느낄 수 있었던 감정은 슬픔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제트는 리모의 미움을 받는 제로가 안타까웠고, 제로를 미워할 수밖에 없는 리모가 안쓰러워보였으며, 그렇게 놓여 지고만 둘의 관계가 슬프게 느껴졌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계기는 어느 날 밤, 리모가 잔뜩 지친 표정으로 제트를 찾아왔을 때였다. 술까지 마셨는지 평소의 새하얀 피부는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제트의 앞에 앉은 리모는 이제 계획이 멀지 않았으며 실행에 옮기기만 하면 된다는 말을 하면서 내일 자신을 차량에 옮겨놓을 것이라는 말을 꺼냈다. 여차해서 세모에게 위험이 생기면 바로 세모를 데리고 도망치라는 말도 빼먹지 않고 말해주었다. 술에 취해 정신이 온전치 않은 와중에도 제트에게 전해야할 말은 확실하게 전하는 리모를 보며 제트는 그저 그를 위로하듯이 붉게 반짝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끝으로 한동안 말이 없어진 리모에 제트는 그가 술에 취해 그대로 잠이 들었나 싶었다. 그렇게 짐작할 때, 리모가 작게 중얼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로… 제로….”
선잠이 들어 잠꼬대를 하는 것인지 작고 불분명한 발음이었지만 그 단어는 분명 제로를 뜻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상대에 대한 애정이 듬뿍 들어있는 목소리. 그리고 희미하게 올라가는 입 꼬리. 비록 희미하지만 저렇게 행복해 보이는 표정으로 제로를 부르는 리모의 모습을 제트로서는 처음 보았다. 꿈속에서 리모는 제로를 만나고, 기뻐하고 있었다. 분명 리모가 꾸는 꿈은 제로와 함께 했던 행복한 시간들, 제로에게 애정을 주며 아껴주었던 시절의 꿈일 것이다. 그렇게 미워하는데도, 원망하는데도, 악의를 가지고 있는데도 추억의 밑바닥에 묵혀두었던 행복했던 시절들과 그 시절들에서 찾아오는 애정들은 버리지 못하고 그대로 무의식 속에 남아버린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제트는 문득 제로가 이 모습을 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워하고 또 미워하지만 과거의 애정은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자신의 주인을 보며 제로는 무슨 생각을 할까. 제트는 처음으로 제로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제로는 리모를 미워하지 않고 있을 것이다. 그도 분명 리모의 슬픔을 이해하고, 그 슬픔 속에 차마 버리지 못하고 남아버린 옛 애정을 발견했기에 어찌할 수 없는 애달픔으로 곁에 남아있는 것이겠지.
제트는 천천히 눈을 감으며 바랐다. 앞으로 만날 세모라는 아이와 자기 사이에도 이런 유대감이 형성되었으면 좋겠다고, 서로를 미워하게 되는 순간이 오더라도 언젠가 다시 하나로 이어질 수 있는 뿌리 깊은 애정과 서로를 위한 유대감이 생겼으면 하고, 그렇게 된다면 자신은 그 아이를 위해서 제 몸을 희생해도 하나도 아깝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트는 진심으로 제로와 리모가 다시 화해하여 행복했던 때로 돌아갔으면 했다.
슬프지만, 그렇기에 사랑스러운 것이었다.
그 후로 제트는 세모를 만나고, 여러 일을 거치면서 과거의 일을 청산한 리모와도 함께 지내게 되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지내면서도 행복한 와중에도 이따금 제트는 제로의 존재를 떠올렸다. 부릉모터스 사건 이후로 완전히 망가져버렸다는 리모의 말을 듣고 제트는 결국 제로와 끝내 만날 수 없다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었다. 그 아쉬움, 혹은 미련 덕분인지 제트는 가끔씩 제로를 상상해보았다. 리모에게서 들은 제로의 정보를 참고하여 나름대로 제로의 모습을 그려보았으나 마지막에 와서는 일그러지고 흐려져서 끝내 포기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래서 제트는 더욱 제로를 한 번이라도 만나지 못했던 것이 아쉬워졌다. 오죽하면 적으로서라도 제로의 모습을 본 엑스와 와이가 부러울 정도였다.
그런 아쉬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쯤, 제트는 우연히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벌이고 있는 하나와 두리, 그리고 그 사이에서 오공하고 같이 둘을 말리는 세모를 발견하였다. 쌍둥이들이 형제 싸움을 벌이던 게 한 두 번이 아니었기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렇다고 싸우는 것을 지켜볼 수 없어서 오공과 함께 말리던 세모는 마침내 말리던 보람이 보였는지 하나와 두리 사이가 잠잠해지자 나머지는 오공에게 맡기고 자신은 몰래 빠져나와 제트의 곁으로 슬그머니 다가왔다.
“참나, 하여튼 간에 저 둘은 시시한 일로 맨날 싸운다니까.”
철없는 친구를 둔 어른스러운 아이처럼 고개를 설레설레 저어버리는 세모를 보던 제트는 문득 떠오른 궁금증에 바로 세모에게 질문해보았다.
“세모는 형제라던가 가지고 싶지 않냐 라고 그러더라고?”
“형제? 글쎄. 별로 생각해 본 적 없는데. 딱히 동생이라 던가 형이 가지고 싶다고 생각해 본적 없고. 동생이라면 온달이가 있고, 형이라면 네옹이 형이 있으니까. 그런데 그건 왜?”
“아니, 그냥 궁금해져서 라고 그러더라고?”
미련 없이 덤덤한 얼굴로 제 생각을 말하는 세모의 모습에 제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모에게는 비록 친형제는 없어도 그를 대신할 사람들이 있었다. 애초에 자신이 원래 고아였고, 양자라는 입장에 놓여 져 있으니 혈연, 비 혈연을 별로 따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상대방과의 유대를 우선시하는 입장이었다. 제트의 말에 대답해놓고 보니 이제는 제트의 질문의 의도가 궁금해졌는지 이번에는 세모가 제트에게 물어보았다.
“그러면 제트는 왜 갑자기 그런 걸 물어보는 거야? 혹시 형제가 가지고 싶어져서 그런 거야? 형제라면 다른 또봇들도 있잖아.”
“아, 아니 그게….”
제트는 세모의 질문에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하고 쩔쩔 매며 도망치듯이 뒤로 슬금슬금 내빼었다. 굳이 형제에 비유하자면 형이라고 할 수 있는, 제로를 보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힘들었다. 세모는 제로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했다. 리모는 출소 후에도 제로에 대한 이야기를 세모에게 해주지 않았고, 다른 아이들과 또봇들도 과거의 무용담을 회상하면서 지나가듯이 언급할 뿐이라 세모는 제로의 존재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다. 제로의 존재는 민감한 문제였다. 제트가 함부로 이야기하기에는 지금쯤 집에서 오늘도 실패로 끝날 것이 분명할 요리를 하고 있을 리모의 존재가 마음에 걸렸다. 리모가 과연 세모가 제로의 존재에 대해, 그리고 그가 해왔던 일에 대해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걱정되었다.
“얘들아, 슬슬 점심 먹어야지.”
“네에!”
“와, 밥이다, 밥! 오늘 점심은 뭐에요?”
다행히 아이들을 부르는 도운의 목소리에 아이들 모두가 집 안으로 쪼르르 달려갔고, 세모도 잠시 제트를 보다가 이내 별 신경 쓰지 않고 아이들을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감으로서 제트는 어찌해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날 밤, 차고에 들어가 있는 제트는 리모의 점검을 받았다. 세세한 점검은 아니고 그냥 하루의 마무리를 해놓는 간단한 점검이라 큰 절차 없이 짧게 끝날 수 있었다. 자, 다됐다. 리모가 허리에 손을 얹고 말하는 것으로 점검은 끝이 났고, 수고했다는 뜻으로 그는 제트의 보닛을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자, 이제 그만 자야지. 잘 자렴, 제트.”
“아, 저, 리모 박사님!”
“응? 왜 그러니?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어?”
“아니 그게…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그러더라고.”
“뭔데?”
“으음… 제로, 형님에 대한 것이라 그러더라고.”
제로 형님. 처음으로 불러보는 제로의 이름, 그리고 ‘형님’이라는 두 글자에 제트는 자기가 말하고 나서도 어색함이 느껴져 괜히 차체를 좌우로 흔들어 위화감을 떨쳐내고자 했다. 그리고서는 슬금슬금 리모의 눈치를 보았다. 제트의 질문에 리모는 제트의 예상대로 몸을 흠칫 떨며 깜짝 놀라더니 동그랗게 뜬 눈으로 제트를 빤히 쳐다보았다. 제트가 제로에 대해 처음 이야기하는 것처럼, 리모도 제트에게서 제로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은 예상도 하지 못했기에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제로. 리모는 출소 후 처음으로 듣게 되는 이름에서 찾아오는 죄책감과 그리움에 잠시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상념에 잠기고 말았다. 제트는 차마 그런 리모에게 말을 걸 수 없어서 우물쭈물하며 리모의 눈치를 보았다. 다행히도 리모는 금방 상념에서 벗어나, 그러나 아직 여운이 남은 탓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응, 괜찮아. 제로가 뭐 어쨌는데?”
“저… 제로 형님을 다시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 궁금하다고 그러더라고.”
“제로를 다시 만들어?”
당황한 기색으로 되물어보던 리모는 잠시 제트가 왜 그런 말을 꺼낸 것에 대해 의문인 듯한 표정을 잠시 지었다가 일단 제트의 질문에 대한 답을 먼저 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하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좌우로 미약하게 저어버렸다.
“그건 무리야. 제로의 마인드 코어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걸. 그 때 부서졌을 수도 있고, 무사하다고 해도 어디 있는지 모르고, 마인드 코어를 새로 만들어서 다시 만든다고 해도 그건 예전의 제로가 아니니 지금 당장에 새로 만드는 건 불가능해.”
“그렇구나 라고 그러더라고.”
“그런데 왜 그런 건 물어보고 그러니? 혹시 제로가 보고 싶어서 그러니?”
복잡한 표정으로 물어보는 리모의 말에 제트는 조용히 차체를 위아래로 흔드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제트가 제로를 보고 싶다는 말이 뜻밖이었는지 이번에도 처음 제트에게 질문을 받았던 것과 똑같이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던 리모는 이번에는 제가 궁금해져서 제트에게 물었다.
“어째서? 제트는 제로를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잖아.”
“그래서 더 보고 싶다고 그러더라고. 리모 박사님에게서 이야기만 들어서 그런지 한 번 실제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러더라고.”
“내 기억으로는 그 당시의 나는 너한테 제로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별로 안 해준 걸로 알고 있는데….”
“그래도 보고 싶다 그러더라고. 그 때 제로 형님에 대해 좋지 못한 이야기를 들었어도, 왠지 몰라도 나쁜 로봇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러더라고.”
제트의 말에 리모는 무언가 정곡을 찔린 사람처럼 당황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천천히 슬픈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제트의 보닛에 한 손을 가져다 대어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제트의 말을 들어보니 리모는 어느새 과거의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무자비할 정도로 제로를 미워하고, 비난하고, 원망하던 시절. 그렇게 일방적으로 쏟아낸 자신의 적의에도 제로는 단 한 번도 리모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이 그것을 모두 받아들여 감내하였다. 우직할 정도로 끝까지 자신의 곁을 지키는 제로를 보며 리모는 갈 곳 없는 원망과 분노를 정당방위라는 생각으로 그에게 쏟아내었다. 지금 생각하면, 자신이 어리석었다. 그 때의 리모는 미워하는 것이 당연하기에 미워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음 놓고 미워하기 위해 그가 저지른 과오를 과장시키고 왜곡시켰다.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돌이켜 생각하면 리모는 당장에 제로를 만들어 다시 만나 무릎이라도 꿇고 사죄하고 싶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제트. 제로는 나쁜 로봇이 아니야. 오히려 나한테는 과분할 정도로 좋은 녀석이었지.”
“리모 박사님도 충분히 좋은 사람이라 그러더라고. 제로 형님도 그걸 아니까 박사님 곁에 있어줬을 거라 그러더라고.”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제트.”
은근히 자기비하가 섞인 자신의 말에 바로 위로를 전해주는 제트에 리모는 서글프면서도 약간의 위로를 받은 미소를 제트에게 보여주었다. 제트는 그 미소를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속으로 몰래 쉬었다. 비록 제로를 만날 수 없다는 섭섭함이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리모와 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 정도 기분이 많이 나아진 것이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처음으로 리모에게서 제로에 대한 좋은 말을, 진실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제트는 리모에게 물었다.
“리모 박사님.”
“응? 아직도 더 궁금한 것이 있어?”
“제트가 제로를 형님이라고 불러도 되냐고 그러더라고?”
“물론이지. 제로는 제트의 형인 걸? 동생이 형을 형이라고 부르는 건 당연하잖아.”
제트의 질문에 그런 당연한 걸 왜 물어보냐는 식으로 밝게 웃으며 긍정해주는 리모의 말에 제트는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자신과 제로를 만들어준 사람으로부터 서로가 형제인 것을 인정받았으니 그 기쁨이야 당연했다. 리모가 인정을 해주었으니 제트에게 제로는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형이 되는 것이었다. 형. 제로 형님. 형님. 전보다 더 제로와 가까워진 느낌이 들어 제트는 당장이라도 차고에서 뛰쳐나와 변두리를 돌아다니며 이 기쁨을 표현하고 싶었다. 들썩거리며 기쁨을 숨기지 못하는 제트를 보며 리모는 전보다 편안한 미소를 지으면서 한편으로는 제로가 이런 동생이 생겼다는 것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졌다.
2.
그리고 제트는 제로를 만나게 되었다.
당시 제로가 나타나게 된 상황이 상당히 안 좋게 흘러가던 탓에 대놓고 기쁨을 표현할 수 없었지만 제트는 속으로나마 몰래 영원히 못 만나게 될 줄 알았던 제로를 만나게 된 것에 대해 기쁨으로 흥분했다. 비록 예전 모습과는 상당히 많이 달라진 견인차의 모습이었지만 마인드 코어는 예전 그대로라 형태만 달라졌을 뿐 과거의 제로 그대로였다. 비록 첫 만남은 워낙 경황이 없었고 대화도 적었지만 제트로서는 제로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설레었다. 정작 제로는 주인인 리모의 안전을 생각하느라 제트를 신경써주지 못했지만 제트는 충분히 이해했다. 자신도 세모가 같은 위기에 처해있었으면 제로를 만났다는 기쁨조차 느끼지 못했을 테니까. 아무튼 제트는 그 때 처음으로 제로에게 형님이라고 불렀다. 리모의 행방을 찾는 와중에 제트는 제로를 자연스럽게 형님이라고 부른 것이었다. 워낙에 자연스러웠던 탓에 제로는 처음에 제트가 자신을 뭐라고 불렀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가 뒤늦게 서야 깜짝 놀란 반응을 보였다.
제로가 제트의 존재에 대해 몰랐던 것이 아니었다. 그 또한 제트처럼 리모를 통해 제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양아들인 세모를 위한 최신식 또봇. 제트와는 달리 제로는 제트에 대한 이야기를 리모에게서 단편적으로 밖에 얻어내지 못했지만 제로는 제트에 대해 나름대로 관심을 가지면서 적어도 새로 태어나게 될 또봇은 자신과는 달리 주인과 잘 지내기를, 그리고 자신과 같은 과오를 두 번 다시 저지르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물론 제로로서는 자신 이외의 또봇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또 다른 또봇의 존재를 제트를 통해 처음 알게 된 것이니 한 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제로의 부탁을 당시의 리모가 들어줄리 만무했고, 오히려 주인에게 상처만 준 이런 자신은 만나봤자 별로 좋지 않다는 체념감이 생기면서 일찍이 만나는 것을 포기했다. 그리고 여러 사건을 겪고, 제로는 새로운 모습으로 리모의 손을 거쳐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마인드 코어를 다시 수복하고, 차체를 점검하는 과정은 마치 깊고 어두운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다가 천천히 수면 위로 떠오르는 인양 작업과도 같았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제로는 자신의 마인드 코어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어주는 리모의 손길이 예전처럼 매섭지 않고 다정하게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것에 제로는 자신이 지금껏 받았던 모든 상처가 치유되는 것 같아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깊이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로봇인 제로로서는 결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리모는 제로를 수복하는 과정에서 출소 후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제로에게 이야기해주었고, 그 중에는 당연히 제트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리모에게서 세모와 원활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제트의 이야기를 듣고 제로는 진심으로 안심했다. 제트는 자신이 바라던 대로 파일럿과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다. 아무런 아픔도, 슬픔도 겪지 않고 지낸다는 점은 사소하지만 가장 큰 축복이자 행운이었다. 제로는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지난 시간동안 뼈저리게 깨달았었다. 과거였던 시절 제트만큼은 자신을 대신해서 상처 없이 행복하게 살기를 얼마나 바랐던가.
“그러고 보니 제트가 예전에 너에 대해서 물어본 적이 있었어.”
정비를 하면서 제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떠오른 것인지 리모는 분주히 움직이던 손길을 멈추고 아 하는 탄성 뒤에 그렇게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제로의 마인드 코어가 조금 더 밝게 빛나며 반응을 보여주었다. 제로로서는 설마 제트가 자신에 대해 궁금해 할 줄은, 그것보다도 제트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워 멍한 기분이 들었다. 리모는 방금 전까지 나사를 죄던 스패너를 손에서 내려놓고는 제로의 마인드 코어를 어루만져주며 이야기를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사실 예전에 제트가 마인드 코어였던 시절에 너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어. 그 때는 너도 알다시피, 너에 대해서 좋은 이야기를 할 수 없었던, 아니 그냥 하지 않았던 때였지.”
그렇게 말하고 리모는 잠시 말을 멈추고 짙은 죄책감을 얼굴 위에 드러냈다. 이렇게 제로와 관련된 기억들은 대부분이 괴롭고 죄책감 밖에 들지 않아 떠오르는 것이 힘들었지만 차근차근 떠올리면서 극복하고, 반성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앞으로 제로와 함께 있기가 힘들어진다. 짧은 공백 후, 리모는 금방 자신을 추스르고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런데 제트는 너에 대해서 나쁘게 생각하지 않고 있더라고. 오히려 널 보고 싶다고 그러던데? 그리고 나한테 물어보더라고. 제로는 제트의 형이 맞냐고. 그래서 내가 대답해줬어. 제로는 제트의 형이 맞다고.
그리고 제트는 제로의 동생이야.”
형, 동생. 그리고 형제.
제트가 자신을 형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과 리모가 자신과 제트를 형제로 인정해주었다는 것이, 너무나도 놀랍고 과분했으며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기뻐져서 제로는 할 말을 찾지 못해 그저 아롱아롱 마인드 코어에 빛을 띄울 뿐이었다. 과연 자신이 형으로서의 자격이 충분할지, 이런 행복을 자신이 감히 받아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불안감도 함께 치솟아 올랐지만 그것이 기쁨을 지울 정도로 강하지는 않았다. 그저, 기뻤다. 자신을 형으로서 인정해주고 받아준 제트가 너무 고마웠고, 얼른 제트를 만나고 싶다는 기대감이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혼란 속에서도 기뻐하는 제로를 리모도 알아차린 것인지 세모를 바라볼 때를 닮은 눈빛으로 제로의 마인드 코어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너희들은 분명 좋은 형제가 될 거야.”
이제 제로에게 제트는 같은 또봇이라는 관계에서 더 가까워진, ‘형제’이자 ‘가족’이라는 관계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 후, 기대했던 평화로운 재회와는 정 반대로 재회의 기쁨을 나눌 틈도 없이 정신없고 가슴 졸이던 사건들을 보내고 나서야 제로는 간신히 제트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생겼다. 제트는 제로와는 정 반대로 꽤나 활발한 성격이었다. 딱딱하고 진중한 성격의 제로와는 달리 제트는 위트 있고 붙임성이 강한 성격이었다. 제트에게 먼저 말을 걸지 말지에 대해 망설이던 제로와는 달리 제트는 처음 만나자마자 자연스럽게 제로를 형님이라고 부르며 친근하게 다가왔고, 리모를 구출하고 일련의 사건에 대한 누명이 벗겨지게 되어 일이 잘 풀리게 되었을 때는 엉엉 울면서 제로에게 매달렸다. 이런 적은 예전에도, 지금에도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었던 일이라 제로는 어찌해야 할지 잠시 당황하다가 결국 그만 진정하라는 식으로 제트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서툴게 위로해주었다. 그 후 제로와 제트는 리모와 세모를 태우고 집으로 돌아갔고, 제로는 따로 작업실로 가서 리모에게 점검을 받았다. 제트도 펀치봇과 혈투(?)를 벌였지만 가장 피해를 많이 받았던 것은 제트를 대신하여 펀치봇의 공격을 피하지도 못하고 온 몸으로 받아낼 수밖에 없었던 제로였다. 여기저기 펀치봇의 주먹으로 인해 기껏 깨끗하고 새롭게 만들어진 몸이 금방 찌그러지고 엉망진창이 되자 제로보다도 리모가 속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제로의 차체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미안해, 제로. 기껏 새로 만들어진 몸인데 금방 이렇게 돼서는….”
“위로. 사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리모 박사님께서 다시 깨끗하게 수리해 줄 것이니까요.”
“응, 그래. 이전의 새 모습처럼 금방 치료해줄게.”
“감사. 고맙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이미 시간이 늦었고 리모 박사님도 여러 가지로 힘든 일을 겪으셔서 많이 피곤하실 텐데 오늘은 세모와 함께 푹 쉬고 내일 수리해주셨으면 합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대로 둘 수는 없어. 너도 빨리 고쳐지는 게 좋잖아.”
“긍정. 그렇습니다만 하루 정도는 버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박사님의 건강이 저로서는 더 중요합니다.”
“…그런 점은 예전 그대로구나. 그래, 오늘은 당장 급한 것부터 수리하고 본격적인 건 내일 시작하자. 그럼 괜찮지?”
“긍정. 알겠습니다.”
서로의 타협점을 찾아낸 후에야 리모는 제로를 수리하기 위해 공구함을 열 수 있었다.
급한 부분부터 수리하자고 해서 금방 끝날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도 당장에 손을 봐야할 부분은 많았고, 덕분에 리모는 예정과는 달리 밤늦게까지 제로를 붙잡고 지낼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밤이 깊어질수록 제로는 몇 번이고 그만 괜찮으니 오늘은 들어가서 쉬라고 수시로 말했고, 결국 자정이 지나고 새벽 1시가 되어서야 리모는 제로의 강요에 두 손 두 발 들고 작업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급히 수리해야 할 부분은 전부 살펴봤으니 여기서 끝내고 되었기에 리모도 순순히 물러난 것이었다. 너도 참 어지간하구나 하는 약간의 투덜거림이 섞인 말을 한 후에 잘 자라는 작별 인사를 남기고서야 리모는 작업실을 떠나 세모가 기다리고 있을 집으로 들어갔다. 제로는 작업대 위에서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다가 리모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들었던 고개를 내리고 편히 누울 수 있었다. 리모도 들어가 잘 테니 자신도 이제 그만 자는 것이 낫겠다 싶어 휴면 모드로 접어들려고 할 때, 멀지 않은 곳에서 엔진 소리와 자동차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제로는 그 소리를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듣기에는 전부 다 같은 자동차 소리라고 할 수 있으나 도운이나 리모와 같이 자동차에 해박한 사람들이나 자동차 그 자체인 또봇들에게는 엔진 소리와 자동차 바퀴의 마찰음의 미세한 차이로 누가 누구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었다. 그것은 제로도 마찬가지였다. 익숙한 소리는 아니었고 두세 번 들어보기만 한 소리였으나 소리의 주인은 확실하게 제로의 데이터베이스 안에 저장되어 있었다. 소리를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과연 제로의 예상대로 제트가 어둠 속에서 조심스럽게 소리를 죽이고 제로가 누워있는 작업대에 가까이 다가왔다.
“질문. 아직 휴면 모드로 접어들지 않았습니까, 제트.”
“형님이 걱정되어서 잠이 오지 않는다 그러더라고.”
이제는 작업대에 딱 달라붙어 있다고 생각할법한 거리에 다가온 제트는 제로를 제대로 보기 위해 고개를 들어 작업대 위를 보았다. 다행히 작업대는 리모가 떠나기 전에 최대한 낮춰줘서 제트가 고개를 들면 제로를 바로 볼 정도로 낮은 높이에 맞춰져있었다.
“위로. 저는 괜찮습니다. 제트도 오늘 많이 힘들었을 텐데 휴면 모드로 안정을 취하셨으면 합니다.”
“…저….”
“? 의문. 저에게 하실 말이 아직 남아있습니까?”
“…미안하다, 그러더라고.”
“의문. 뭐가 미안하다는 겁니까?”
“형님이 이렇게 되기 전에 내가 빨리 풀려났어야 했는데, 나 때문에 다친 것 같아서 미안하다 그러더라고.”
축 쳐진 모습으로 우물우물 사과하는 제트는 제로가 이렇게 된 것이 전부 제 책임인 것 같아 저절로 기분이 가라앉아가는 것을 느꼈다.
세모, 혹은 리모가 저렇게 되면 같은 기분을 느꼈을까. 상상조차하기 싫은 일이었지만 제트는 펀치봇에 맞고 쓰러지는 제로를 보며 일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안젤라의 수작으로 인해 링의 로프에 묶여 움직일 수 없을 때 제로가 제트를 대신해서 펀치봇을 상대했었다. 말이 상대였지 사실상 제트를 대신하여 샌드백처럼 일방적으로 맞는 일이 전부였다. 펀치봇에게 매달려 그대로 얻어맞고만 있는 제로를 보면서 제트는 제로가 공격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어서 공격하라고, 옛날의 제로는 분명 강하다고 들었는데 왜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냐고. 답답한 마음에 공격하라고 외치려던 때, 세모와 리모의 대화가 제트에게 전해졌다.
“아빠! 어째서 제로는 공격을 하지 않는 거죠?”
“제로는 말이다, 공격을 하지 못한단다. 왜냐하면….”
리모의 말은 계속 이어지지 못하고 그대로 끊어졌지만 제트는 그 대화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어째서 제로가 일방적으로 얻어맞을 수밖에 없는지, 리모가 제로에게만은 공격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는지. 그렇게 이해하고 나니 제트는 더욱 조바심이 나서 얼른 이 답답한 로프들을 풀고 제로를 구해주고 싶었다. 이대로 다시 제로가 고철로 되돌아가도록 만들 수 없었다. 다행히 디의 노력으로 제트를 속박했던 로프들이 느슨해졌고, 나머지는 제트 혼자서도 충분히 풀 수 있었다. 몸에 힘을 주니 로프들이 언제 단단하게 묶였냐는 듯 후두둑 끊어졌고, 제트는 곧바로 스파이더 요요를 꺼내 펀치봇에게 휘둘러 제로에게서 떨어뜨려놓았다. 그리고 제로는 제트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자마자 제 임무를 다하고 쓰러져버렸고, 리모와 세모, 딩요, 디가 달려들어 제로를 링 밖으로 끌어내었다.
속상했다. 제로를 만나면 잘해주고 싶었는데, 좋은 동생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제가 방심을 한 탓에 안젤라의 수에 넘어가 링에 묶여 움직이지 못했고, 그 사이에 제로가 자신을 대신해서 희생했다. 작업실로 실려가 리모의 수리를 받는 제로를 보니 그 죄책감이 더하여 제트는 차마 말도 제대로 걸지 못하고 그저 멀찍이 서서 제로가 조금씩 나아져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리모가 집으로 들어가고 제로와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서야 제트는 간신히 용기를 내어 잘못을 고하였다. 제로는 잠시 제트의 사과가 예상치도 못한 것이라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제로를 관찰하듯이 응시하다가 잠시 후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제로의 보닛에 제 손을 얹었다. 세모의 오른손과는 달리 차갑고 투박한 제로의 손길에 제트는 고개를 살며시 들었다. 제로의 손길에는 위로가 담겨있었다.
“부정. 저는 제트로 인해 다친 것이 아닙니다. 저는 리모 박사님의 명령에 따라 수행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 상처들은 제트의 잘못이 아니니 너무 죄책감을 가지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하지만 기껏 새로운 몸을 가지게 되었는데 얼마 안 가서 이렇게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그러더라고. 속상하지 않냐 그러더라고.”
“위로. 몸이라면 리모 박사님께서 금방 새것처럼 고쳐 주실 거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저는 이 상처들이 속상하지 않습니다.”
“어째서냐 그러더라고?”
“설명. 이 상처들은 전부 제트를 지키기 위해서 생긴 겁니다. 그러니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망설이지 않고 당당하게 제 뜻을 전하는 제로의 말에 제트는 그의 말에 감동으로 온 몸이 찡하고 울리는 것을 느끼며 제로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제트를 지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며, 제트를 지키기 위해 생긴 상처들이 오히려 그를 지켜냈다는 증거가 되어 기쁘다고 말해주는 그가 너무나도 어른스럽게 보이고 고마웠으며, 마치 동생을 지키기 위해 제 몸을 던져 희생한 형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 발짝 더, 그가 형제처럼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리모 박사님이 예전에 나한테 제트와 제로 형님은 형제라고 그러더라고.”
“동감. 저도 리모 박사님에게 들었습니다. 저와 제트는 형제라고 합니다.”
“계속 형님을 형님이라고 불러도 되냐 그러더라고?”
“수락. 물론입니다. 저야말로 제트를 같은 또봇 동료이자… 동생으로서 생각해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이라 그러더라고!! 엄청나게 기쁘다 그러더라고!!”
정식으로 제로로부터 동생으로서 인정받은 제트는 마치 세상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예컨대 세모와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벅차오르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몸을 격렬하게 들썩이며 제로의 주변을 빙빙 돌며 기쁨을 한껏 표현해내었다. 하도 요란스럽게 떠들어서 다른 또봇들이나 도운, 리모네가 깨어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실제로 제로는 혹여나 이 소란에 다른 이들이 잠에서 깨어날지도 몰라 제트를 진정시키느라 애를 써야만 했다. 그러는 본인도 제로를 말리기 위해서 침착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지 실제 속으로는 제트만큼이나 기쁨으로 차오르고 있었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많이 돌고 돌아가야만 했던 과정들이었지만 마지막에는 서로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 것부터 느꼈던 낯설면서도 설레었던 정체 모를 유대감이 지금 여기서 명확한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이었다.
그것은 ‘가족’이었다.
“인사. 다시 한 번 새롭게 인사드립니다. 제트,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나도 잘 부탁 한다 그러더라고!”
제트는 내일 아참 학교를 가기 전에 자신을 찾아와 줄 세모에게 이야기 할 생각으로, 제로는 자신을 마저 수리하기 위해 찾아올 리모에게 이 사실을 보고할 생각을 하면서 자신의 파일럿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상하면서 두 로봇들은 오랜 세월을 넘어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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