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서민
트위터에서 시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텐션이 올라서 처음으로 청엑 연성을 해봤습니다.
스구로와 시마 말투는 표준말로. 사투리는 저에게 있어서 너무 쓰기 어려운 말이라(...) 막상 표준말로 쓰니 시마 말투가 어색해서 몇 번이고 고쳤지만요ㅠㅠ 캐붕은 보너스...생각보다 여러 의미에서 쓰기 어려운 캐였다...
*청엑 48화 관련 네타 주의.
“ㅡ렌조!!!”
칠흑의 밤하늘을 찢어 가를 듯한 기세로 울리는 목소리는 비명과 닮았다.
아, 그러고 보니 어렸을 적 이후로 이름으로 불리기는 처음이네. 지금의 상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태평한 생각이었지만 지금까지의 ‘시마 렌조’로서의 생각이라고 한다면 어울리기도 했다. 이제 와서 이름을 들어도, 이미 너무 멀리 온 탓에 닿지도 않게 되었지만 말이다. 고개를 조금이라도 뒤로 돌리면 자신의 이름을 부른 자의 얼굴을 볼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일말의 여지를 줘서는 안 되었다. 고개를 돌아보고, 눈이 마주침으로서 혹시나 자신에게로 되돌아올 막연한 기대 같은 건 줘서는 안 되고, 주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기대는 나중에 자신이 받은 상처를 더 넓히는 흉기로서 되돌아 올 것이었다. 그동안 쌓은 신뢰를 배신이라는 칼날로 변모시켜 친구 놀이어 어울려준 사람들의 비수에 찔러 넣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여기서 기대를 주지 않는 것은 지금껏 자신을 친구라고 생각해준 이들에 대한 마지막이자 최소한의 배려였다.
아아, 그래도 궁금하네. 당신이 어떤 표정으로 내 이름을 불렀을지. 그 호기심을 이기지 못했더라면 나는 분명 뒤를 돌아봐 그의 얼굴을 봤을 것이다. 그것을 이겨내기도 전에 정신이 먼저 밤하늘을 닮은 어두운 무의식에 집어삼켜져 쓰러져야 했지만. 헬기의 문이 닫히자마자 체력적으로 한계가 와 쓰러지는 찰나의 순간에 자신의 몸이 가볍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숨기지 않다도 된다는 해방감이 무게감을 크게 덜어준 것이었다.
홀가분하다. 의식이 꺼지기 직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스구시마]가식
W. 아르카디
1.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스구로가 시마라는 인물에게 가지고 있는 동일한 인상은 가벼워 보이면서도 속내를 알 수 없는 녀석이었다. 스구로의 시야에 들어오는 시마 렌조는 언제나 경박하고 속세에 찌들어있는 모습이었다. 절의 아이로는 도저히 안보일 정도로 녀석은 제 욕망에 충실했고, 무슨 일이든지 웃음으로 넘기며, 겉으로 보면 자기가 타인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말 그대로 겉으로만 그럴 뿐 실제로는 타인이 자신에게 한 발자국이라도 다가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녀석이었다. 스구로는 그런 시마의 특성을 알고 있기에 처음에는 시마를 거북하게 생각하였다. 직설적이고 숨기는 것을 싫어하는 솔직담백한 성격인 스구로와 언뜻 가벼워 보이지만 실제 속내는 알기 힘든 시마는 극과 극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서로가 안 맞아보였다. 두 사람 사이에 명타종이라는 공통점이 없었더라면 분명 이만큼 친해지기도 힘들었을 것이라 스구로는 단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스구로는 시마를 거북하게 생각하면서도 결코 시마를 내치는 짓만큼은 하지 않았다. 속정이 많아 한 번 얽힌 인연은 소중히 여기며 먼저 끊지 않는 스구로서는 시마 또한 미우나 고우나 자신의 친구였다. 그리고 시마도 스구로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집안 관계 때문인지는 몰라도 마찬가지로 스구로에게서 멀어지지는 않았다. 그 덕분에 두 사람은 여기까지 함께 올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까지 이어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스구로가 가지고 있는 시마의 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 말은, 여전히 스구로는 시마에 대한 전부를 알지 못한다는 소리와 동일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째서인지 덜컥 무서운 심정이 들어 스구로는 애써 그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써왔다.
스구로에게 있어서는 한심하고 다행스럽게도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인물이 한 사람 더 있었다.
“정말인지, 시마 씨는 앞으로 어쩔 생각으로 저러는 걸까요?”
점심을 다 먹고 후식으로 사과주스를 마시다 말고 코네코마루가 푸념을 읊었다. 누가 들으면 친구를 걱정하는 말투가 아니라 철부지 아들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말투라고 착각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만큼 코네코마루가 시마를 걱정하는 깊이가 여타 다른 녀석들하고는 남다르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렸을 적부터 가족처럼 붙어 다니며 함께 자라온 사이이다. 특히 어렸을 적에 양친을 잃고 혼자 미와 가문을 이끌어오는 코네코마루에게 있어서 나와 시마는 가족과 같은 존재였다. 그러니 시마의 장래에 대한 불안도 제 일처럼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오쿠무라 군하고 같이 점심도 안 먹고 축제 때 같이 갈 여자 분을 구하러 갔고 말이죠.”
“하여튼 간에 그 바보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지내는 건지.”
정십자 학원은 얼마 안 있으면 열릴 문화제로 흥분이 고조된 상태였다. 여기저기서 문화제와 관련된 주제로 이야기꽃을 저마다 피웠으며 밖은 요란스럽게 축제를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였다. 그러나 엑소시스트를 목표로 하는 우리들에게 문화제는 사사로운 일에 불과했다. 카미키 녀석이 말한 것처럼 3개월 후에 엑소시스트 자격시험이 있을 예정이었고, 지금부터 죽어라 공부를 해야지 붙을까 말까 했다. 그런데 그 녀석들은 그런 중대사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다른 일에 한눈을 파니 곁에서 보고 있는 입장에서는 한심하고 답답해 보였다. 내가 이런데 쌍둥이 형인 오쿠무라 선생의 속은 얼마나 할까하는 걱정까지 할쯤에, 코네코마루가 사과주스의 팩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시마 씨는 정말로 저희들하고 같이 아리아 시험을 볼 생각일까요?”
“그 녀석도 생각이 있어서 아리아를 선택한 거겠지.”
“하하. 오쿠무라 군도 그렇게 말했는데 말이죠. 뭐, 시마 군의 장래에까지 참견하는 건 조금 지나치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걱정되어서요. 게다가 도련님도 아시겠지만 시마 군은 아리아보다는 나이트로서의 적성이 더 맞아 보이는데 굳이 아리아를 고집하고 있는 게….”
말끝을 흐리며 도중에 말을 멈춘 코네코마루였지만 충분히 그가 뒷말에 숨겨놓은 심정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코네코마루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것은 확실하게 재능도 있고, 적성도 좋은 길이 분명히 있는데도 굳이 자신과 적성에 맞지 않는 길을 선택한데다가 그 길을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력을 하지 않으며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는 시마의 태도였다. 나 또한 시마의 태도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정십자 학원에 처음 입학하면서 원하는 적성에 대한 조사에서 시마가 아리아를 적어놓자 나와 코네코마루는 펄쩍 놀라며 왜 아리아냐며 물어보았다. 너한테는 최소한 나이트가 어울리며 혹시나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서 아리아를 선택한 것이라면 굳이 그럴 필요 없다면서 설득했지만 시마는 끝까지 아리아를 적어놓는 것을 무르지 않았다. 이유를 물어도 그냥이라는 찝찝한 대답만 내놓을 뿐이었다. 정말인지 그 때 만큼 녀석의 속내를 읽기 힘들었던 적은 없었다. 그리고 입학을 하면 조금은 정신 차리고 공부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완전히 무너뜨리고는 여자들이 좋아하는 색이라며 머리카락을 분홍색으로 물들이고는 전보다 더 여자들을 밝히며 학업에 열중하지 않고 물 흘러가듯이 시간을 보냈다. 정말로 엑소시스트를 할 생각이 있는지, 명타종을 위한 사명을 다할 생각이 있는지, 곁에서 지켜보는 쪽이 더 불안할 지경이었다. 그 녀석의 싫은 점이 이것이었다. 본인은 가볍게 행동함으로서 자신이 가져야할 걱정과 불안은 가까운 타인에게 필요 없다는 듯이 떠넘겨버린다. 녀석도 분명 우리가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을 텐데도 그것을 바꿔보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녀석을 통해 가지고 있는 불안감을 더 커지고, 녀석은 그와 반대로 더 가벼워진 모습으로 지냈다.
저절로 답답한 기분이 들어 한숨을 쉬고는 교실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때마침 시마가 눈에 들어왔다. 분홍색이라는 특이한 색으로 머리를 물든 덕분에 어딜 가더라도 금방 눈에 띄어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창문 바로 아래에 있는 녀석은 모르는 여자아이를 붙들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내 시선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무언가를 부탁하는지 쩔쩔매는 태도로 여자애를 설득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마 축제 때 파트너로서 같이 가달라는 부탁이겠지. 순간적으로 음료수 캔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바람에 캔이 우그러지고 말았다. 짧은 이야기 후, 여자아이는 미안한 표정으로 시마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했고, 시마는 낙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수그리다가 이내 애써 웃어 보이며 여자아이에게 손을 흔들며 떠나 보내주었다. 대화 내용은 들리지 않았지만 이번에도 거절당했음이 분명했다. 안쓰럽기 짝이 없는 일련의 과정을 코네코마루도 함께 지켜보며 말했다.
“시마 씨는 제가 봤을 때는 얼굴도 괜찮고, 성격도 밝아서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을 것 같은데 저런 모습을 보면 좀 의외라고 생각해요.”
“뭐, 저 녀석 태도가 워낙에 가벼워서 말이지. 저렇게 대놓고 여자 밝히는 모습 보여주고, 여러 여자들한테 찾아가서 작업 거는 녀석을 세상에 어느 여자가 진심으로 좋아하냐.”
“하긴, 그 부분만 고치면 시마 씨도 가망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말이죠.”
“아서라. 그 녀석이 제 성질을 고칠 날이 올 것 같냐. 저 녀석은 어렸을 적부터 쭉 저 상태라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가망 없다는 투로 말하자 코네코마루는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다면서 어색하게 웃으며 받아주었다.
속내를 알 수 없고, 타인 사이에 은밀한 거리감을 두고 있는 녀석을 좋아하는 녀석은 분명 없을 것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런 근거 없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2.
“너,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거냐.”
스스로 생각해도 지금 상황에서는 정말 뜬금없는 질문에 시마는 부러운 눈빛과 칭얼거리는 목소리로 댄스파티를 즐기고 있는 학생들을 보며 신세한탄을 하다말고 놀란 표정으로 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녀석이 나에게로 시선을 돌리자 급격히 후회가 물밀려오듯 찾아와 녀석에게서 잠시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주변은 한창 댄스파티가 만들어내는 음악소리와 웃음소리로 시끌벅적했고, 스태프를 자원한 나와 파트너를 찾지 못해 타의적으로 스태프를 지원한 시마는 잠시 다른 스태프와 교대되어 휴식시간을 가지고 한쪽 구석에서 파티장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질문이라니. 개연성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그저 갑자기 며칠 전에 코네코마루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라서 돌발적으로 튀어나온 질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아무것도 아니라며 무르기도 싫었다. 이참에 꺼내어진 거 한 번 제대로 녀석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었다. 일단, 시마는 예상대로 당황과 난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답했다.
“에, 이 타이밍에 갑자기 찬물 끼얹는 질문입니까?”
“시꺼! 네 녀석 때문에 신경 쓰고 있는 코네코마루에게 미안하지도 않냐! 그녀석이 네가 아리아를 지망하고 있는 걸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지?”
“에, 뭐. 코네코마루 씨가 보기보다 고지식한 부분이 있으니까 말이죠.”
“적성에 맞는 길도 있고, 재능도 있으면서 굳이 무리하면서 자기하고 맞지도 않는 길을 왜 가는 거냐.”
“글쎄요. 그냥이라고 답하면 화낼 겁니까?”
“그러니까 그 ‘그냥’이 뭐냐고!!”
“으아아, 역시 화내잖아요! 그냥이 그냥이지 뭔 의미가 있어요. …다만, 지금 여기서 제대로 된 적성을 선택해도 의미가 없기 때문이죠.”
이번에도 그냥으로 대답하는 시마의 태도에 욱한 나머지 위협적으로 올라간 주먹이 뜻밖에 이어진 시마의 말에 그 자리에서 우뚝 멈춰 서게 되었다. 그리고 나 또한, 얼빠진 표정으로 시마를 보았다. 녀석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의미가 없다니, 여기서 자신에게 맞는 적성을 선택하더라도 그 길로 갈 수 없다는 소리인 것일까, 아니면 여기서 적성에 맞는 길을 가서 그 뜻을 이룬다고 해도 무의미하다는 것일까. 어느 쪽이든 납득은커녕 이해도 할 수 없어서 반박조차 꺼낼 수 없었다. 천천히 내려가는 내 주먹에 시마는 한 대 맞을 것을 생각했는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슬그머니 내 눈치를 살펴보았다. 녀석의 눈빛에는 이런 말을 할 생각은 아니었는지 조금은 곤란한 빛을 띠었다. 그렇다면 녀석은 수수께끼와 같은 말의 의미를 가르쳐주지 않을 것이다. 순간, 지금껏 묻어둔 시마를 향한 근원을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조금 솟아나는 것 같았다. 잠시 멍하니 서 있던 나는 그 두려움을 눈치 채자마자 곧바로 그것을 떨쳐내기 위해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고는 나직이 말했다.
“…뭔 소리냐고 물어도 대답 안할 생각이지?”
“에에, 뭐. 참, 이거 코네코마루 씨한테는 말하지 말아줬으면 해요. 코네코마루 씨가 알면 분명 난리 날 게 분명하다고요.”
“난 예전부터 네 녀석의 그런 점이 싫었어.”
“네?”
“가볍게 굴고, 안 그러는 척 해도 다른 녀석들하고 깊이 사귀지 않고, 카미키 녀석보다도 더 속을 모르겠고! 네 녀석의 그런 뭐든 가볍게 숨기려드는 가식적인 태도가 꼭…!!”
꼭, 당장이라도 이곳을 떠날 사람처럼 같았다.
시마 녀석에게 직접 답답함을 풀어내며 말을 하니 그제야 그를 통해 가질 수밖에 없었던 두려움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녀석의 태도가 언제 어느 때라도 미련 없이 홀가분하게 떠날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이곳에 있었다는 증거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이 녀석은 타인과 적정성 이상을 깊게 사귀지 않았으며, 자신에게 있어 올바른 적성을 선택함으로서 뿌리를 내릴 생각을 하지 않았고, 곤란한 상황이 와도 녀석은 언제나 웃으면서 얼버무리려고 했다. 자신의 진심 따위는 일체 보여주지 않겠다는 각오가 보일 정도로, 녀석의 모든 것은 가식으로 뒤덮여 본심이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코네코마루와 나한테까지, 그 태도를 일관하고 있었다. 어째서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일까. 가족처럼 함께 지내온 우리한테까지 훌쩍 떠날 사람처럼 구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째서 모두에게서 떠나려는 것일까.
어째서 내 곁을 떠나려는 것처럼 보일까.
“…설마하니 도련님이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뭐?”
“도련님의 얼굴, 꼭 뭐에 겁이라도 먹은 표정 같네요. 그런 표정은 저도 꽤 오랜만에 보는데 말이죠. 제 속을 알아보기 전에 먼저 도련님 본심부터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달라진 목소리와 말투에는 경박함과 활기와는 전혀 다른 무겁고 차가운 분위기가 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지금까지 시마를 알고 지내면서 이런 목소리와 말투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기에 나는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따라가기 벅찰 정도라 그저 시마의 말을 듣고, 얼굴을 바라보는 것 외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일 수 없었다. 순간적이었지만 시마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실망감이 서려있었다. 그것은 분명 나에 대한 실망감이었다. 무엇을 실망한 것일까. 자신의 본심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자기 속내를 알아보려는 태도가 그렇게 실망스럽고 마음에 안 든다는 것일까. 주변에는 아직도 축제로 북적이는데 우리 둘 사이에는 심해와도 같은 적막이 감돌았다.
시마의 말을 들으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째서 시마가 떠날 사람처럼 구는 이유에 대해 두려움을 품은 것일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째서 시마가 떠난다는 것이 두려운 것일까. 혹시 시마는 내가 그 이유를 알아내기를 바랐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이것 또한 추측이었고, 여전히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치직. 귀에 꽂아둔 소형 무전기에 교대를 알리는 목소리가 기계음과 함께 흘러들어왔다. 지금 당장 자신이 있는 곳으로 모이라는 슈라의 명령이었다. 시마는 어느새 잠깐 내비치던 분위기를 태연하게 걷어내고는 두 손을 깍지 껴 머리 뒤로 넘기고는 푸념을 읊었다.
“하이고, 이번에는 무슨 일을 시키려고 이리 부르는 건지. 얼른 가자고요, 도련님.”
시마는 평소와 같은 태도로 되돌아 와 이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나를 대하였다. 그런 시마의 모습을 보니 마치 그 짧은 대화가 꿈처럼 느껴졌다. 어느 쪽이 가식인지 애매모호한 상황에서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망연히 어, 라고 대답하고는 시마의 뒤를 따라 슈라가 모이라고 한 장소로 이동했다.
3.
그 때, 조금이라도 빨리 알아차렸다면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별빛과 하나가 되어 어느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멀어져버린 헬기의 뒷 꽁무니를 쫓듯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나는 뒤늦은 후회를 했다. 흔히들 이런 말을 한다. 소중한 것을 지키고 싶으면 그것이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이며 곁에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고 깨달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떠난 후에야 비로소 그 소중함과 의미를 알고 후회를 품게 된다. 그 말이 맞았다. 어쩌면 시마는 그 사실을 내가 알아줬으면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시마가 품었을지도 모를 바람과는 달리 지금에서야 그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나는 네가 내 곁을 떠나지 말아줬으면 했다. 네가 언제든 떠날 것처럼, 당장이라도 눈앞에서 미련 없이 사라질 것처럼 굴었던 게 싫었다. 네가 사라진다는 것 자체를 생각하는 것이 싫었으며, 그로부터 찾아오는 두려움조차도 마주하지 못하고 겁쟁이 같이 외면하고 숨겨왔다. 너는 기다렸을지도 몰랐다. 내가 스스로 감정을 깨닫기를 바랐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모든 것을 알아차린 내가 더 이상 늦기 전에 이름을 부르며 자신의 손을 잡아주며 말려주기만을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네가 떠나버린 지금에 와서 모든 것을 깨닫고 추측해보아도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저 네가 나와 같은 바람과 생각을 품었을지도 모른다는 헛된 기대만을 할 뿐이었다. 난간을 붙든 손에 힘이 들어간다. 너와 나눈 마지막 대화가 미련처럼 머릿속을 맴돌았다. 바보다. 정말로 바보였던 것은 나였다.
그래서 더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너에 대한 나의 마음조차도 알아채지 못했다.
설마하니 도련님이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렌조.”
스스로에게 가식을 품고 있었던 건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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