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또봇 소설. 으으 권부자 좋아요ㅠㅠ
처음이라서 이것저것 넣고 싶은 욕심에 마구 썼더니 뒤죽박죽인 느낌이 많이 드네요ㅠㅠ 게다가 세모 1인칭 소설인데 세모가 너무 어른스럽게 나온 것 같아서... 세모가 원작에서도 어른스러운 편이지만 아직은 10살인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정확히 가늠할 수가 없어, 때로는 누구보다도 가깝게 느끼던 사람이 어느 때에는 멀리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나와 아빠 사이가 바로 그런 모호한 관계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빠가 불편하다는 것이 아니다. 가깝게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다. 나와 아빠의 사이는 서로의 노력 덕분에 서로에게 있어서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었으며 거리감 없는 관계에서 서로가 기대어 안정감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가끔, 정말 가끔이지만 아빠는 기대고 있던 나를 조심스럽게 떼어놓고는 잠시 홀로 저 멀리 가버리시고는 시간이 지나 돌아오는 경우가 있었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 시간이었으며 돌아왔을 때의 아빠는 내가 알고 있는 상냥하고 다정한 아빠의 모습 그대로라 걱정할 필요가 없는데도, 나는 그 공백의 시간이 마음에 걸려, 그 사이에 닿지 않는 저 멀리서 홀로 있을 아빠가 걱정되어 안절부절 못하게 된다. 따라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떠날 때 보여주는 아빠의 뒷모습은 차마 나조차도 감히 뻗을 수가 없어 결국에는 주저하며 들어 올린 손을 내려놓게 된다. 우리에게는 아직 메워지지 않은 거리감이 있는 것일까. 그것은 혈연으로 이어져있지 않기에 필연적으로 생겨버리는 간격인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면 어째서 나는 저 사람의 피를 이어받지 못해 저렇게 혼자 두게 놔둬야 하는 것일까, 하고 스스로를 원망해버리고 만다.
선명하지만 때때로 아스라이 비춰지는 아빠의 등은 생각 했던 것보다도 작고 힘겨워보였다.
거리감
W. 아르카디
소박하고 어린애 같은 꿈이기에 쑥스러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작은 소망이 있다. 바로 가족 간의 목욕이었다.
고아원에 지냈을 당시에 잠깐 다녔던 학교에서는 종종 비슷한 또래의 남자 아이들이 아빠와 목욕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주말에 아빠와 함께 목욕탕에 간 이야기, 아빠가 하도 부탁해서 어쩔 수 없이 등을 밀어줬다는 불평, 이제 자기도 다 컸는데 아직도 딸과 함께 목욕하고 싶다고 성화인 아빠에 대한 불만. 이야기의 절반 이상이 사사로운 불평이었지만 고아인 나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배가 부른 소리였다. 그런 사소한 일상들을 손쉽게 넣고, 자신들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사소한 의미로 여겨지기에 저런 소리를 하는 것이다. 다른 누군가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얻고 싶은 소중한 일상이자, 꿈인데. 나는 저 아이들과 다르다는 괴리감과 그 감정에서 피어오르는 외로움을 더 이상 느끼고 싶지 않아 홀로 자리에 앉아 헤드셋을 끼고 음악을 틀어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차단해버린다. 얻을 수 없다면 적어도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다. 아직 어리기에 피하는 방법 밖에 몰랐다. 그리고 얼마 후, 극적으로 찾아온 사고가 일어나게 되고, 나는 더 이상 남들에게서 외로움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도 타인들과 같은 일상을 얻기에는 다소의 시간이 걸렸다. 평범치 않는 만남과 또한 평범치 않은 아버지를 얻은 덕분인지 나는 한동안 아버지와 잠시 떨어져 지내야 했으며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뒤에야 비로소 안정적인 일상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나는 그것에 굳이 불평을 가지지 않았다. 앞으로 얻을 소중한 나날들을 생각하면 이정도의 시련은 기꺼이 감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각오는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는지 출소하신 날, 내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는 헤어지지 말자. 세모야. 아빠는 언제나 세모 곁에 있을 거야.”
그 말을 내가 지금껏 얼마나 듣고 싶어 했던가. 나는 대답을 대신해 아빠의 허리를 끌어안고 품에 폭 안기었다. 아빠는 그런 내 응석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잔잔히 미소를 지었다.
그 후로 일상은 이어지게 되었고, 아빠와 친구들, 또봇들과 함께 지내는 것에 완전히 익숙해질 쯤에야 나는 이전에 내가 소망했던 작은 꿈을 떠올릴 수 있었다. 원체 무언가를 먼저 부탁해본 적은 드문데다가 응석도 잘 못 부리는 성격인지라 막상 도전하려고 하니 쑥스러워 제트에 올라 타 끙끙거리기가 일쑤였다. 그런 내 모습에 제트가 더 답답했는지 그냥 편하게 이야기 하면 된다고, 리모 박사님이 설마 세모 네 부탁을 거절하겠냐고 타박에 가까운 격려를 해주었다. 제트의 말은 꽤나 위안이 되어서 나는 그 말에 자신감을 얻어 곧바로 제트에서 내려 바로 집으로 들어가 아빠를 찾았다. 아빠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정신없이 요리를 하고 있었다. 나름 열심히 하고, 레시피도 찾아보며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싶어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결과는 아빠의 노력에 한참 뒤처지게 나올 때가 많았다. 어쨌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슬그머니 아빠의 옆에 서서는 그의 가디건 끝자락을 잡고 아래로 잡아당겨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리게 했다.
“아빠.”
“응? 왜 그러니, 세모야.”
한창 바쁠 때라서 귀찮게 여겨질 수 있는 내 부름에도 아빠는 귀찮음 한 조각 없이 평소와 같은 상냥한 미소로 나를 따뜻하게 바라봐주셨다. 아빠는 어느 때라도 내 말을 함부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보물을 한 조각 얻은 것처럼 소중히 들어주었다. 나는 아빠의 그런 점이 너무나도 좋았기에 역으로 말을 거는 것이 조심스럽게 된 모양이다.
“저, 부탁이 있는데요.”
“무슨 부탁?”
“그게, 오늘 저녁 먹고 저와 같이… 목욕해줄 수 있어요?”
뜸을 들이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말은 수월하게 나왔다. 뭐야, 생각보다 간단하잖아. 하는 싱거운 생각마저 들었다. 평소에 아들바보라고 불리며 내 말이라면 끔뻑 죽을 아빠였기에 분명 이런 내 부탁을 들어줄 것이다. 아빠도 이런 사소한 일상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
하는, 오만한 생각을 마음 한 구석에서 가지고 있었기에 나는 안도하며 아빠의 수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스쳐지나가듯이 난처하게 굳은 얼굴을 보여준 아빠와 뒤이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딱딱하게 굳어버린 목소리로 말한,
“미안하지만 오늘은 안 되겠구나. 다음에 하자구나.”
라는 냉정한 거절이었다.
아빠는 나에게 등을 돌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요리를 재개했다.
아빠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 아니었다. 아빠가 당시 부릉모터스 회장으로 있던 시절에는 드물기는 했지만 몇 번 발견할 수 있었던 모습이었다. 평소에는 친아들처럼 대해주시다가도 갑자기 낯선 반응을 보이며 나를 어색하게 대하는 아빠의 모습을 나는 몇 번 정도 마주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은 항상 나에게 등을 돌리시는 모습으로 끝나게 된다. 나는 그 모습이 아직은 양자인 자신에 대한 거리감을 느끼고 있기에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하긴, 이전까지는 생판 남인데다가 수족을 잃게 만든 아이이니 당장에 살갑게 대하는 것도 무리일 것이다. 나는 이렇게 해서 얻은 아빠를 잃기 싫어 어떻게 해서는 아빠를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이런 아빠의 모습은 정말 어쩌다가 한 번씩 보는 것이고, 또 다음날이면 상냥하고 자상한 아빠로 돌아와 주니 크게 마음에 두지 말자 생각했다. 거리감은 시간이 전부 지워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출소 후 아빠는 단 한 번도 나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잊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빠의 거절은 크게 다가올 수 있었다. 겨우 목욕 같이 안한 것으로 심란해 한다는 것을 두리가 알면 어이없어할 것이 분명했지만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충격 받은 것은, 아빠가 직접적으로 나의 부탁을, 소망을 거절한 것이었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고 아빠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그렇다고 조금 전의 일이 없던 일이 되지는 않았다. 나는 밥을 대충 먹고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한참을 생각했다. 무엇이 아빠와 나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일까. 아빠는 무엇으로 인해 나에게 등을 돌려 일부러 거리를 벌리고, 내 부탁을 거절한 것일까. 사소한 일이었다. 정말 작디작은 일이었다. 평범한 가정에서는 감정이 상한 축에도 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와 아빠는 평범한 가정이 아니다. 아빠와 나는 형식적으로, 서류상으로 이어진 가족이다. 아무리 마음으로 이어지고 또 이어져 있어도 혈연이라는 강력한 끈에 대적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결코 얻을 수 없는 것. 아빠와 나 사이에는 그런 강력한 끈이 없었다. 불안하기 짝이 없는 얇은 끈이 언제라도 끊어질 수 있도록 연결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아빠와 나는 서로에게 필사적이었다. 이렇게 연약하기에 서로에게 더 기대어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사소한 일 하나에도 다른 가족과 비교하며 큰일처럼 생각되어 지고, 남들이 가지지 못하는 것에 더 큰 상실감을 느끼고 만다.
하아.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사실 아빠한테는 이런 일로 서운함과 거리감을 느끼고 싶지 않은데 자신이 아직 어리기에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일까. 아빠는 왜. 정말인지 아빠는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었다. 다시금 머릿속으로 아빠의 등이 그려졌다. 아빠의 모든 것을 좋아했지만 유독 등만큼은 좋아할 수 없었다. 자신에게 보여주는 그 등이 자신과 아빠 사이를 가로막는 거대한 벽처럼 느껴지고, 또 그 벽이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여 초조한 심정이었다. 그래서 보고 싶지 않았는데.
이래저래 생각하니 슬슬 눈꺼풀이 아래로 무겁게 내려왔다. 저녁밥을 먹고 바로 누우니 잠이 곧바로 쏟아지는 것이었다. 아, 아직 숙제도 덜했고, 씻어야 하는데. 하지만 그러기에는 몸이 물 먹은 솜처럼 푹 가라앉아 움직이기 싫었다.
그냥, 모든 것이 답답하고 싫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싫은 것은 아빠에 대해 전부를 알지 못하는 나 자신이었다.
눈을 다시 뜨니 시간은 순식간에 한밤중이 되었다.
잠에서 깨어난 나는 상체를 들어 올려 눈을 비비고 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은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제 와서 씻고 숙제를 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차라리 잠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잠드는 것이 더 나았다. 숙제는 아침에 일찍 하나한테 부탁해서 베껴 쓰기로 하고 잠옷으로 갈아입기 위해 침대에서 내려와 섰을 때, 문득 아빠는 주무시고 계시는지 궁금했다. 종종 아빠는 제로와 제트를 정비하신다고 늦게까지 주무시지 않을 때가 있었다. 갑자기 아빠 얼굴이 보고 싶어졌다. 자기 전에 그런 생각들을 해서 그런 건지 몰랐다. 나는 문을 열고 거실로 나와 주변을 살펴보았다. 컴컴한 거실에 스며들어오는 한 줄기 빛을 발견했다. 빛이 새어나오는 곳은 제로와 제트가 있는 정비실이었다. 역시 안주무시고 계셨구나. 나는 발소리를 죽여 정비실의 문 앞까지 도착해 틈새를 통해서 안을 살펴보았다. 예상대로 아빠는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제로를 살펴보고 계셨다. 멀지 않은 곳에는 정비를 마친 것으로 보이는 제트가 수면 모드로 들어가 있는지 미동도 않은 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잠시 후, 아빠는 잠시 안경을 벗어 피곤한지 미간을 꾹꾹 누르고는 다시 안경을 써서 제로에게 말했다.
“자, 이정도면 됐다. 늦게까지 수고 많았어, 제로.”
“수고. 시간도 많이 늦었는데 박사님께서도 이제 주무시길 바랍니다.”
“응, 그래야지.”
제로의 말에 쉬이 대답하던 아빠는 어째선지 금방 자리에서 일어나시지 않고 잠시 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셨다.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아빠의 반응에 제로도 그 의미를 알지 못해 차체를 약간 갸우뚱거리는 것으로 자신의 의문을 표현하였다. 제로는 굳이 아빠에게 대답을 재촉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우직한 성격의 제로는 어떤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먼저 나서는 일이 없으며 아무리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로는 아빠의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뒷모습 밖에 보이지 않는 아빠의 얼굴을 보고 싶어 고개를 옆으로 이리저리 흔들며 어떻게든 보려고 애를 썼지만 내가 있는 위치에서는 아빠의 얼굴을 제대로 확인할 수가 없었다.
결국 아빠의 얼굴을 보는 것을 포기하고 까치발을 원래대로 돌렸을 때, 낮게 속삭이는 아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래도 너는 이렇게라도 말끔해져서 다행이다.”
그 말은, 지금껏 들었던 아빠의 목소리들 중에서도 가장 깊게 가라앉아 있는 음울한 분위기의 목소리였다. 마치, 부릉모터스 회장 시절의 극도로 불안정했던 아빠의 모습처럼. 그것을 제로도 느낀 것인지, 아니면 그 의미심장한 말의 의미를 한 번에 알아차린 것인지 처음으로 차체가 덜컹거리며 심하게 흔들려 크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감정의 기폭이 적은 제로를 생각했을 때 그것은 충분히 큰 반응이었다. 아빠는 분명 제로의 반응을 알아차렸음에도 그것을 지적하지 않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제로를 한 번 쓰다듬어주었을 뿐이었다. 말로 표현하지만 않았을 뿐, 그 손길에서는 놀래 켜서 미안하다는 아빠의 사과가 들어있었다. 여전히 아빠의 얼굴은 나에게 보이지 않았다.
“그럼 잘 자, 제로.”
늦은 취침 인사를 끝으로 아빠는 작업실에서 나와 방으로 곧장 들어가셨다. 나는 아빠가 작업실에서 나오기 전에 재빨리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겨서 다행히 아빠에게는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탁 하는 메마른 소리가 짧게 들리는 것으로 방에 완전히 들어간 아빠를 확인한 나는 어둠 속에서 나와 다시 작업실 앞에 섰다.
아빠는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그 말은 무슨 의미였을까.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아빠가 그런 슬픈 말을 하신 원인을 내가 제공한 것 같아서 출처를 알 수 없는 죄책감에 몸이 묵직해졌다. 그래서일까, 평소라면 무게조차 느끼지 않아야 할 의수와 의족이 족쇄처럼 무거웠다. 자책과 채 낫지 못한 상흔이 드러나는 말에 못 박혀 작업실 앞에 서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을 때, 나를 발견한 제로의 부름이 들려왔다.
“발견. 이 시간에 어쩐 일입니까, 세모.”
제로의 목소리를 들어서야 나는 고개를 돌려 작업실 안을 볼 수 있었다. 작업실은 아빠가 나가면서 불이 꺼져 있지만 제로의 헤드라이트 덕분에 작업실 안의 모습이 쉽게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 제트는 여전히 수면 모드에 들어가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소리 없이 작업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와 제로에게 다가왔다. 제로는 내가 오는 길마다 헤드라이트를 비춰주어서 혹여나 어두워서 미처 장애물을 보지 못해 그것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해주었다. 말투는 또봇들 중에서 가장 로봇답다고 할 수 있다고 할 정도로 딱딱했지만 세심한 부분에서 배려를 쉽게 보여주는 모습이 참으로 아빠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아마 아빠가 직접 제로의 마인드 코어를 배양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냥. 눈이 떠져서 잠깐 나왔어.”
“수긍. 그렇습니까.”
“… 저기, 제로. 사실 나 아까 전에 제로랑 아빠가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거든.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어서.”
“의문. 어떤 부분이 말입니까.”
“실은 저녁 때 아빠랑 이런 일이 있었거든.”
나는 제로에게 저녁 때 아빠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이런 이야기를 제로에게 해주는 이유는 그라면 내가 그토록 궁금해 했던 아빠의 거절을 속시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었다. 제로는 나보다 더 아빠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입양되기 전부터 아빠의 곁에 있으면서 아빠가 가장 힘든 시기를 겪게 만든 원인 중 하나이자 동시에 그 힘든 시기에 나보다 더 많은 시간 속에서 아빠의 곁에 있어준 존재였다. 조금은 분한 사실이었지만 나는 그것을 인정했다. 제로가 돌아왔을 때의 아빠는 진심으로 기뻐했으니까.
이야기를 마친 후, 제로는 잠시 아무 말 하지 않고 무언가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였다. 여전히 켜져 있는 헤드라이트의 빛이 나를 비춰서 마치 제로가 나를 시험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절로 긴장이 되었다.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 내 의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으나 그것을 말해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갈등을 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난 그 모습을 알고 있었다. 제로를 처음 만났을 때, 제로와 제트의 마인드 코어의 비밀을 알고 싶어서 그에 대한 질문을 던졌을 때 제로가 보여줬던 그 모습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때와 마찬가지로 진실을 바로 눈앞에 두고 있으니 급한 마음이 들어 또 한 번 제로를 재촉하게 되었다.
“제로, 말해 줘. 아빠는 왜 그런 말씀을 하신거야?”
내 재촉에 제로도 결심을 굳힌 것인지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고요한 목소리로 나에게 이야기 해주었다.
“아. 세모야, 좋은 아침. 일찍 일어났구나. 오늘은 휴일이라서 늦게까지 자도 괜찮았는데 말이야.”
“안녕히 주무셨어요.”
아침 일찍 일어나 거실로 나와 보니 부엌에서 아침 식사 준비로 바쁜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살갑게 인사를 하며 화사한 미소를 맞아주는 아빠의 인사에 나는 평소처럼 아빠만큼은 아니지만 평안한 미소를 마주 지으며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아침 인사를 말하고는 더 이상의 말도 없이 식탁으로 찾아가 자리에 앉았다. 어제까지의 아침과는 다른 변화된 내 모습에 아빠는 분주히 요리하던 손길을 멈추고 식탁에 앉은 나를 의아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러나 곧이어 치이익 소리를 내며 타버리는 요리에 다시 신경을 그쪽으로 돌리게 되었다. 다시 요리에 집중하는 아빠는 아마도 내가 잠에서 아직 덜 깨었다는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버린 것이 분명했다. 잠시 후, 아빠는 토스트와 베이컨, 계란 후라이를 준비해 식탁 위에 차려놓으셨다. 휴일 아침이기에 간소하게 차려진 식단이었다. 나와 아빠는 잘 먹겠습니다, 라는 인사를 말하고는 식사에 몰입했다. 화창한 휴일 아침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바로 옆집의 하나와 두리 네는 아침부터 법석 떠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데 아빠와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참으로 차분하고 조용했다. 이렇게 아침에 대화가 적은 것은 아니었다. 아침 식사에서 아빠와 나 사이에는 앞으로의 일정을 주제로 대화가 오고갔다. 쌍둥이 네처럼 소란스럽지는 않지만 대화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대화가 없다는 것은, 내가 대화를 진행할 의사가 없다는 것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빠는 조간신문과 내 눈치를 번갈아 살펴보며 식사를 하셨다. 조금 전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갔지만 내가 계속해서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이제는 점점 문제를 중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간단하고 짧은 식사를 마치고 아빠는 싱크대에 식기들을 집어 넣으셨다. 나는 아직도 입을 열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결국 먼저 인내심이 드러나게 된 건 아빠였다. 싱크대의 수도꼭지를 열어 수돗물이 콸콸 나오는 틈을 타 아빠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러나 어딘가 어색한 말투로 나에게 말을 거셨다.
“세모야, 혹시 무슨 일 있니? 아까 전부터 조용해서 신경이 쓰이네.”
나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들어 아빠를 보았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아빠의 등이었다. 아빠의 등을 보니 자연스레 제로가 나에게 해주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는 아랫입술을 잠시 짓씹으며 뜸을 들이다가 이윽고 아빠에게 무겁게 말했다.
“아빠. 어제 제가 아빠에게 부탁하셨던 걸 거절하셨던 이유가, 혹시 등의 흉터 때문인가요?”
쏴아아아. 물줄기가 세차게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식기들이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불시에 멈춰졌다. 아빠는 내 말에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나는 아빠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정면에서 마주했다. 고개를 돌린 아빠의 표정은 순식간에 야위어보였고, 치부를 들킨 사람처럼 두려움과 당혹, 그리고 수치스러움이 어지러이 뒤섞여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사람마저 같은 감정을 느끼게 만들 정도였다. 아빠. 나는 애타게 아빠를 불렀다. 아빠의 어깨가 안쓰럽게 달싹였다.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 아빠를 보니 죄책감이 들었지만, 이것을 그냥 덮고 넘어갈 수 없었다.
“세모야. 어떻게 그걸….”
너는 알지 말아줬으면 했는데. 끝내 이어지지 못한 말이 귓가에 저절로 들려오는 듯 했다.
아빠의 과거에 대해서는 간략하게나마 알고 있었다. 물론 아빠가 이야기 해준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의 들려오는 아빠의 과거의 파편들을 조금씩 주워 담아 퍼즐 맞추듯이 이어 붙여서 알아낸 정도였다. 아빠한테는 참으로 예쁘고 착한 아내ㅡ나에게 있어서는 ‘엄마’가 되시는 분이지만 아직은 그 호칭이 어색해 아직 입에 담지 못하고 있다.ㅡ분이 계셨으며 그 사람의 뱃속에서는 새로운 작은 생명이 잉태되어 앞으로 세상에 나올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공장에 대규모 화제 사고가 일어났고, 아빠는 극적으로 살아남았지만 아빠의 아내분과 아직 태어나지도 못한 아기는 그대로 뜨거운 화염 속에서 허무하게 죽어야만 했다. 모든 것이 지옥불과도 같은 거대한 불꽃 속에서 사라지고 남은 것이라고는 제 몸뚱이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무력했던 아빠는 그저 그 잔혹한 현실을 증오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나는 아빠의 과거에 대해서 간략한 스토리로만 알고 있었다. 모두가 알고 있을 법한 보편적인 사실이었으며 아빠는 그 이상을 나에게 따로 말씀해주시지 않았다. 나는 굳이 그것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아빠가 모든 것을 이야기 해주리라 믿었다. 그러나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때가 바로 제로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였다.
제로가 알려준 사실에 따르면 아빠는 당시 화제 사건 때 목숨을 건졌지만 심각한 중상을 입으셨고 특히 불에 휩싸인 자재들에 깔려있었던 탓에 등에는 심한 화상 흉터가 남아버렸다고 했다. 당시 아빠가 입원한 병원은 뛰어난 의료 기술을 가져서 아빠의 흉터 정도는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말끔히 지워줄 수 있었으나 아빠는 병원 측의 제안을 강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그 덕분에 아빠의 등에는 흉터가 남아 있으며 그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한다. 제로도 흉터가 남아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 직접 본 적은 없다고 한다. 그래도 너는 이렇게라도 말끔해져서 다행이다. 아빠가 제로에게 남긴 그 말은 흉터와 연관된 말이었다. 그리고 아빠가 내 제안을 거절하셨던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추측. 리모 박사님께서 세모와 함께 목욕을 하기 싫다는 것이 아닙니다. 아마도 등의 흉터를 세모에게만큼은 보이기 싫으셔서 부득이하게 거절하신 걸로 보입니다. 그런 흉한 모습을 세모가 보면 혹여나 자신을 싫어하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빠는 정말 바보에요.”
“세모야?”
“제가 고작 그런 이유로 아빠를 싫어하게 될 것 같으세요?”
나도 모르게 그만 격양된 목소리가 돌발적으로 튀어나왔다. 조용히 내지르는 목소리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디딤대로 삼아 평소보다 높은 톤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처음으로 내는 나의 목소리에 아빠도 놀란 것인지 아빠의 어깨가 놀람으로 크게 들썩였다. 두 손이 저절로 주먹을 만들었고, 그곳에 힘이 강하게 들어갔다. 아빠는 두려웠던 것일까. 내가 언젠가 아빠를 싫어하게 될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자신의 과거와 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는 모습을 숨기고 나와 거리를 두며 필사적으로 피해 다녔던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면서 분노와 실망감이 한꺼번에 몰아닥쳤다. 누구를 향한 감정인가. 자신에게 이러한 사실들을 숨기며 피해 다녔던 아빠를 향한 것일까, 아니면 아빠의 사정을 미처 헤아리지 못한 나를 향한 것일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다만 아빠가 나를 믿지 못했다는 것이 서글펐고, 그런 생각을 하는 아빠가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지금껏 아지랑이처럼 느껴졌던 거리감을 처음으로 직접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순간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가슴 아픈 일이었다.
감정을 통제하려고 애쓰는 통에 고개를 푹 숙이고 더 이상 말을 이어나가지 못하는 내 모습에 아빠는 잠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무언가 큰 결심을 내린 사람처럼 처연한 얼굴로 나에게로 다가와 내 앞에서 반쯤 무릎을 꿇어 나와 눈높이를 맞춘 후 한 손을 내 어깨 위에 올려놓으시고 조곤조곤 말씀해주셨다.
“그런 게 아니야. 아빠는 세모를 믿지 못해서, 세모가 아빠를 사랑하지 않을까봐 두려워서 그랬던 게 아니야.”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들어 아빠를 보았다. 바로 앞에 보여 진 아빠의 눈동자는 결심을 내린 사람의 결연한 빛이 서려 내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빠는 세모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단다. 종종 아빠가 나에게 이야기 해주시던 그 문장이 떠올랐다. 아빠니까, 아들의 생각 정도는 쉽게 읽어낼 수 있다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던 모습도 그려졌다.
“세모야. 사람은 소중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법이란다. 소중한 사람에게 자신의 안 좋은 모습, 흉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마 이 세상에 없을 거라고 생각해. 만약에 그 사람이 자신의 그런 모습을 보면 분명 슬퍼할 테니까.
아빠도 같은 마음이야. 아빠는 세모가 너무 소중해서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었어. 아빠 등에 있는 상처는 너무 흉해서 보기 안 좋으니까 그런 흉한 상처를 세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 그리고 우리 세모는 착해서 아빠의 상처를 보면 슬퍼할 걸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망설였던 거야. 결코 세모가 싫어서, 믿지 못해서 거리를 두었던 게 아니야. 가까울수록, 소중할수록 생기는 거리감도 있단다. 그 사람이 너무 소중해서 조심히 다루고 싶은 마음에서 나오는 배려였어. 세모는 아빠에게 그런 존재란다.”
차분한 어조로 설명해주시는 아빠의 모습은 오로지 나만을 바라보고 계셨다. 정말로, 내가 소중하다는 진심어린 눈빛으로 어루만지듯이 바라봐주셨다.
“과거를 숨기려던 건 아니었어. 시간이 걸리더라도 조금씩 너에게 알려줄 생각이었단다. 하지만 이런 내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서 널 초조하게 만들었고 상처 입혔구나. 아무리 소중하다는 이유에서 나왔다고 해도, 가족이니 숨기는 게 없어야 했는데 말이야. 미처 제대로 말하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구나, 세모야.”
아, 이 사람은 나를 정말로 소중히 생각하고, 사랑하고 있구나.
아빠의 말을 듣고 그렇게 경탄하듯이 터져 나오는 독백과 함께 나는 두 팔을 벌려 그대로 앞으로 몸을 기울여 아빠의 목을 감아 끌어안았다. 아빠는 갑작스런 나의 포옹에 놀라셔서 잠시 몸을 굳혔지만 이내 잔잔히 미소를 띠우며 내 등에 손을 올려 토닥토닥 두드려주셨다. 행복하다. 이렇게 행복한 기분은 처음이었다. 이 사람이 나의 가족이구나. 이 사람이 나의 아빠구나. 이 사람은 나를 사랑하고 있구나. 벅차오르는 환희 속에서 나는 다시 한 번 갓 태어난 아기 새처럼 아빠의 사랑을 깨달으며 속으로 탄성을 내질렀다. 이 순간만큼은 아빠가 과거에 지은 상처와 죄도, 혈연이 아니라는 점에서 찾아오는 불편함도, 때로 느껴야만 했던 거리감도 지금의 행복을 방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것들 하나하나가 아빠와 나를 이어주는 강한 인연이 되었고, 아빠의 마음이 느껴져서 사랑스러울 지경으로 승화되었다. 목을 감은 손끝으로 아빠의 등이 닿았다. 등에서부터 아빠의 봄볕과 닮은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괜찮아요, 아빠. 저는 아빠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도 아빠가 좋아요. 흉한 상처도, 범죄자라는 과거도, 지금의 아빠도 전부 좋아요. 아빠니까, 좋아요.”
“… 그렇게 말해주니 정말 고맙구나.”
안겨있는 탓에 볼 수 없었지만 아빠의 목소리에는 약간 물기가 묻어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빠를 더욱 힘을 줘서 꽉 안았다.
잠시 간의 시간이 흐른 후, 나는 천천히 아빠의 목을 감았던 팔을 풀어 아빠에게서 멀어졌다. 다시 마주하게 된 아빠의 얼굴은 생각보다 더 밝아보였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 그럼. 아빠는 굽혔던 무릎을 펴서 자리에서 일어나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시고는 기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아빠랑 같이 목욕할까?”
“네? 아직 아침이잖아요. 그냥 저녁 때 해요.”
“아침 때 목욕하는 것도 색다르고 좋잖아, 안 그래? 그리고 저녁 때 또 한 번 목욕하면 되고. 사실 아빠도 세모랑 같이 목욕하고 싶었거든.”
“하루에 두 번이나 목욕하라고요?”
“싫어?”
빙긋 웃는 아빠의 미소에는 여유로운 익살 끼가 묻어나 있었다. 그러면서도 눈빛에서는 그동안 감춰뒀던 기대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아빠도 사실은 나와 같은 것을 꿈꿔왔다고 생각하니 차마 여기서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거절할 마음도 없었지만 말이다. 이제 와서 부끄러운 기분이 들어 나는 아빠보다도 먼저 발을 돌려 욕실로 먼저 걸어갔다.
“어서 들어가요.”
얼굴을 살짝 붉히며 내가 그렇게 이야기 하자 아빠는 환히 웃으며 답했다.
“그래. 우리 세모가 등 밀어줄 걸 생각하니 기대되는구나.”
나는 고개를 돌려 아빠를 보았다. 아빠는 평소와 같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더 이상 아빠의 모습이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