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는 잭칼리+키류. 그렇다고 키류가 칼리를 좋아한다는게 아니라 그 사이에 끼어든 입장.
내용은 키류가 민족타운 일이 있은 후 정식으로 보답하겠다는 생각으로 시티로 올라오다가 길을 잃었는데 우연히 그곳에서 잭과 칼리를 만나게됨. 일단 키류는 칼리가 다크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잭을 좋아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음(아지트에서 지겹도록 들었으니;;) 그런데 칼리는 자신과 다르게 기억을 찾지 못한걸 보고 당시에 나이또래도 비슷했고 다크너로서의 인연과 죄책감, 잘 되라는 마음에 모르는척 했지만 칼리는 키류의 얼굴을 보자마자 두통을 호소하며 기절.
시티와 새틀라이트가 통합 되었다는 소식을 오래 전부터 들었지만 직접 보니 기분은 남다르구나, 라고 키류 쿄스케는 시티에 입성한 소감을 생각했다. 줄곧 가고 싶었고 보고 싶었고, 갈 수도 있었지만 다크 시그너로서의 기억에 억눌려있던 당시의 자신은 심한 죄책감으로 시티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지도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자신을 구원해준 후도 유세이 덕분에 지금은 이렇게 당당히 시티에 들어설 수 있었다. 마커가 새겨진 얼굴을 들고 있어도 사람들은 태평하게 걸어다닌다. 줄곧 꿈꿔왔던 시티의 모습. 모두가 차별없이 웃으면서 지내는 시티의 모습. 유세이, 잭, 크로우가 이루어낸 모습.
그런 의미에서 자신은 시티를 붕괴 시킬려고 했으니 또다시 가슴이 쿡쿡 쑤셔온다. 죄책감이라는 것은 역시 쉽게 없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새틱스팩션 타운의 설립도 거의 끝나갈 무렵, 키류는 도와준 보답을 제대로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려 마을 사람들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홀로 시티로 올라왔으나 생각보다 시티는 복잡하고 사람도 엄청 많은 곳이었다. 최소한 세 사람이 지낸다는 곳의 주소를 미리 알아둘 것이라고 후회하는 중이었다. 그 때는 무슨 배짱으로 찾아갈 수 있을거라고 호언장담 했을까. 자신의 길눈이 밝다고 하지만 생판 모르는 곳에서는 소용없는 짓이었다. 근처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본다고 해도 주소도 모르고, 시큐리티에게 물어본다니 예전의 일로 왠지 어색하고 낯선 느낌이 든다.
그냥 주위를 돌아다니다 보면 찾을 수 있겠지, 라고 생각하며 키류의 고개가 길 건너편으로 돌려졌을 때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커다란 장신에 하얀 옷을 입고 보랏빛 눈동자와 한눈에도 쉽게 들어오는 금발. 당당한 표정과 걸음걸이. 잭 아틀라스.
생각지도 못하게 자신의 동료를 발견하게 되자 키류는 놀라움과 반가움으로 얼굴이 밝아진다. 불과 한달전에 만났지만 다시 보니 반가울 수밖에 없는 것이 동료라는 것이다. 차들이 한산해진 틈을 타서 무단횡단을 하려는 순간, 사람들에게 가려져서 안보이던 또 다른 인물의 모습이 보인다. 보통 성인 여성의 키, 활동하기 편한 긴 셔츠와 청바지 차림, 뱅뱅이 무늬가 그려진 안경, 검은 머리카락, 활기찬 표정. 칼리 나기사.
키류의 움직임은 자신의 눈에 칼리가 포착되자 저절로 정지되었다. 칼리, 칼리!? '그' 칼리 나기사?
다크 시그너 시절, 당시의 동료들을 생각하면 저절로 칼리와 가까워질 수 밖에 없었는데, 일단은 나이대가 10대 후반이라는 점에서 일치하였고(물론 나이는 키류가 연상이었다.)두 사람 다 공통적으로 '잭 아틀라스'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야기를 자주 나누었다. 그녀는 키류가 잭과 과거에 알고 지내는 사이라는 사실을 알자마자(아마도 미스티에게 들었을 것이다.)키류에게 접근하여 잭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봐주었다. 키류는 처음에는 귀찮아했지만 활기차고 다크 시그너라기에는 밝은 모습에 저절로 칼리에게 마음을 열 수 밖에 없었고 나중에는 라이딩 듀얼도 가르쳐주고 양산형 D휠을 주기도 하였다.
생각해보니 키류는 칼리가 잭과 함께 있다고 해서 놀랄 필요는 없었다. 칼리는 잭과 알고 지내던 사이였고, 잭을 좋아하니까.
문제는 이거다. 칼리 나기사는 다크 시그너의 일을 기억하고 있는가.
키류의 답은 '아니요'다. 자신이 알고 있는 칼리라면 분명히 기억을 되찾자 마자 극심한 죄책감으로 망가질거니까. 자신도 그랬으니까. 자신도 방황했는데 다크 시그너가 되어서도 사람들을 죽였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칼리라면 분명히 키류보다도 더 절망에 빠질 것이라는 사실을 키류는 짐작하고 있었다.
그는 두 사람 사이에 나타나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잭도 길 건너편에 서있는 키류를 발견하고는 모두가 들을 정도의 큰 소리로 키류에게 소리쳤다.
"어이!! 그쪽에 있는 녀석은 혹시 키류 쿄스케냐!!!"
"에, 잭? 누구?"
우렁찬 잭의 목소리에 혼자서 마음껏 떠들고 있던 칼리는 퍼특 놀라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키류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두꺼운 안경알 너머로 보이는 검은 눈동자가 키류를 발견하자 순간적으로 동공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잭이 칼리의 팔을 붙잡고 성큼성큼 차가 지나다니는 도로를 당당하게 지나간 후 키류가 서있는 도보에 올라온 다음 반가움이 담긴 목소리로 말하였다.
"여긴 무슨일이냐? 마을 복구로 꽤나 바쁠줄 알았는데."
"아... 지난번의 보답으로 왔는데."
"그러냐? 어이, 칼리. 너도 알겠지? 내 동료인 키류 쿄스케... 칼리?"
막 칼리에게 키류에 대해 소개해 줄려는 순간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했는지 잭은 말을 멈추고 칼리를 불렀고 키류는 이미 불안한 눈으로 칼리를 응시하였다. 두꺼운 안경에 가려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혼란스러워 하는 표정이 역력이 드러났고 이윽고 천천히 손을 들어올려 머리를 이리저리 헤집더니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머...머리가......갑자기....왜...왜 이렇게 아픈거지....."
"칼리? 어이, 왜그러냐! 정신 차려라, 칼리!!"
"잭... 나 머리가... 머리가 너무.....너무....."
괴로운 나머지 눈을 꼭 감아버린 그녀는 곧바로 어둠 속에서 잔상이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마치 영화를 보듯이 장면들을 주르륵 살표보는 것 같았다. 아르카디아 무브먼트에 잠입하는 자신의 모습, 듀얼을 하고 있는 디바인, 유리조각들과 함께 낙하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 벌새 그림, 아스라피크스, 다크 시그너, 미스티, 루드거, 키류 쿄스케.
사라져가는 사람들, 죽어가는 사람들, 자신의 듀얼로 상처를 입은 잭. 귓가에 웅웅거리는 잭의 말소리.
그러나 그 말소리를 듣기도 전에, 칼리는 극심한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만다.
마지막으로 칼리는 귓가에서 웅웅거리는 잭의 목소리 대신 정신차리라며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잭의 표정을 보았고 그것을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