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오지 않았다. 결승전이라는 중요한 일을 놔두고 있어서 그런지 후도 유세이는 잠이 오지 않았다. 평소에도 밤잠이 적었고 밤을 새는 경우가 많아서 이런 상황이 익숙했지만 내일의 컨디션을 위해서 자는 경우가 맞았다. 하지만 불안감은 뇌의 활동을 더욱 활발하게 하여 결국 유세이를 자리에서 일어나게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밤산책.
시계는 새벽 2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다른 방에서 자고 있는 잭, 크로우, 브루노를 깨우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한 유세이는 헬멧을 들고 밖으로 나와 자신의 D휠에 올라탔다. D휠에 올라탄 것만으로도 온 몸이 흥분되는 느낌이다. 조용히 시동을 걸고 차고 밖으로 나와 새벽 바람을 세차게 맞는 유세이. 헬멧이 보호해주고 있지만 몸은 바람을 그대로 맞았다. 바람이 그의 각성제 역할을 했는지 남아있던 그나마의 잠도 전부 몰아내었다.
하는 수 없지. 오늘은 잠을 포기해야 겠다. 유세이는 깔끔하게 수면보다 밤산책을 즐기기로 결심했다.
결정한 후, 유세이는 방향을 절로 그곳으로 돌렸다.
도착한 곳은 다이달로스 브릿지였다. 시티와 새틀라이트를 잇는 다리는 밤에도 그 위용을 자랑하였다. 바다에는 아직도 켜져있는 시티의 불빛이 반짝였고 대조적으로 새틀라이트에는 그 어떤 빛도 보이지 않았다. 시티와 연결 된 이후 새틀라이트의 사람들의 80% 이상이 시티로 이주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 새틀라이트는 버려진 유령 도시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새틀라이트. 자신과 후도 박사의 죄의 산물. 시티와 연결되면서 짐은 조금 덜어낸 느낌이 들지만 유세이는 어둠 속에서도 보이는 새틀라이트를 보면 가슴 한 구석이 쓰리게 아파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 통증은 새틀라이트에 있었을 시절보다 덜하지만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 결코 지울 수 없는 무언가라도 되는 듯이. 이 통증은 평생토록 따라다닐 것이다. 벗어날 수 없이. 속박된 것처럼. 그러나 유세이는 이것을 받아들였다. 제로 리버스로 일어난 불행의 대가라고 생각하고.
위선자.
ㅡ무언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원망에 찬, 비탄에 잠긴 목소리가.
정신을 차렸을 때, 유세이는 울고 있었다.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그 자리에 오도카니 서있었다. 방금,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는데.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그 곳에는 자신 뿐이었다. 아무도 없었다. 단순한 환청.
그런데도, 왜 이렇게 가슴이 뜨겁게 아픈 것일까. 마치 불에 달군 인장이 심장을 짓눌러 낙인을 씌우는 듯 같다.
우욱, 하고 토기가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뇌 속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다시 말한다. 너는, 위선자라고. 우욱. 눈물은 그치지 않고 유세이의 맑은 벽안에서 끝없이 흘러 나왔다. 흐르고, 흐르고, 또 흐른다. 몸에 있는 물기가 눈물로 변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얼마 울지도 않은 것 같은 데 장시간 운 것 같은 사람처럼 온 몸에 기운이 빠지고 머리가 어질하면서 멍하다. 온 몸에 기력이 상당수 빠져나가는 느낌. 털썩. 무릎을 굽히고 주저앉은 유세이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올라오는 신물을 삼키려는 듯이 인상을 온갖 찡그리고 눈물을 멈춰볼려고 했다. 그러나 눈물은 계속해서 흘러나온다.
마사가 어렸을 적에 들려준 말이 생각난다. 눈물은 피와 거의 같은 성분을 지녀서 투명한 피라고 생각해도 된다고. 그래서 눈물을 흘리면 피가 빠져나간 것처럼 기력이 빠지고 몸을 가누기 힘들어진다고. 그 말 그대로, 유세이는 온 몸을 가눌 수 없었다.
위선자. 자신은 위선자인가. 무엇이 자신을 위선자로 만드는 것인가. 제로 리버스에 대한 죄를 잊은 적이 한시도 없었다. 죄를 참회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동료들과 유대에게 바쳤다. 그런데 자신은 아직도 부족하다는 건가. 자신은 아직도 용서 받을 수 없는 존재라는 건가. 이유 없는 슬픔과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의문속에, 유세이는 울고 있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목소리의 주인공을 만났을 때 자신은 위선자라는 사실을 절감하였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존.
위선자, 라고 말한 이유는 자신이 모든 일의 흑막인데 동료들을 지키겠다고 나선 자신의 모습에 화가 나서.
일종의 자기혐오, 라고 표현하는게 나을 듯. 제 안의 존은 유세이를 싫어하는 모습이라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