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님 소재 제공. 얀데레 적황. 폭력 주의.
철썩. 살과 살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벼락처럼 내리쳤다. 힘없이 흩날리는 금발이 벽에 부딪쳐서 그대로 아래로 흘러내렸다. 손바닥에 맞부딪친 한쪽 볼이 벌써부터 새빨갛게 부풀러 오르기 시작했다. 관리를 잘해 보통의 여자들보다도 피부가 새하얗기에 더욱 눈에 띄었다. 키세는 오른손으로 맞은 부위를 감싸며 주저앉은 채 상대를 올려다보았다. 자신보다 체구가 작지만 평생을 숭배하듯이 위로 올려다봐야 하는 존재. 설령 연인이라고 해도 예외 없이 그의 시선 아래에 존재해야만 했다. 하늘 위에 군림하는 천제와 같은 남자. 아카시 세이쥬로.
그가 기적의 세대 중 한 명이자 현재 톱모델 중 한 명으로서 반드시 언급되는 모델 키세 료타를 때린 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아카시가 키세에게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그가 키세와 정식으로 사귀면서, 비슷한 시기에 키세가 본격적으로 모델 일에 집중하여 덕분에 인기의 상승세에 제대로 올라타 급속도로 유명해진 뒤였다. 처음에는 말로서의 협박이었다. 일에 집중하지 말고 나에게 집중하라고. 애원으로도 들리면서 한편으로는 협박으로 들리는 이중성의 말을 키세는 그가 외로워하는 것에 미안해하면서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의 키세가 그 때 일을 생각하면 반드시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부분 중 하나로 꼽을 것이다.
그 후로 얼마동안은 잠잠히 지내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카시는 마침내 키세에게 손을 대기 시작했다. 뺨을 때리거나, 일부러 남들이 쉽게 보이는 자리에 멍 자국과 키스자국을 남기거나, 도구를 사용해 괴롭히거나, 강간에 가까운 관계를 가진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한 번은 계단에서 키세를 굴러 넘어뜨려 병원에 입원시킨 적도 있었다. 다행히 낮은 계단이라서 일주일 입원으로 끝난 일이었지만 키세는 아카시가 얼마나 깊게 망가지게 되었는지 그 때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키세는 반항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있어서 아카시 세이쥬로는 중학교 때 처음 만난 이후로 결코 반항해서는 안 되는 절대적인 존재였으며 그것은 연인이 되어도 마찬가지였다. 설령 반항을 한다고 해도 아카시에게 조금이라도 타격이 갈까. 오히려 자신에게 더 큰 대가만 돌아올 뿐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이유는, 자신이 아카시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이었다.
“료타. 지금 어디에 간다고 그랬지?”
“화, 화보 촬영 간다고 했습니다. 일찍 돌아올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흐음. 화보 촬영이라면 나도 들었어. 분명 상당히 큰 잡지사에서 먼저 요청한 거지? 역시 료타는 대단하다니까.”
“그, 그럼 가도….”
“하지만, 그 촬영이 선사되어 키세의 화보집이 나오면 분명 지금보다도 인기가 더 많아지겠지? 나만의 료타를 사랑할 다른 녀석들이 늘어난다는 거잖아. 난 그런 번거롭고 귀찮은 일은 싫어.”
“아카싯치…?”
“나도 료타가 누구에게나 사랑 받으면 좋아. 하지만 료타는 나만의 것인데 다른 누군가가 나의 료타의 사진을 가지고, 료타의 이름을 연호하며 좋아하는 건 역시 연인으로서 기분 나쁘네. 애초에 료타가 정말로 나를 사랑한다면 그런 일은 거절해야지 왜 받아들였을까?”
“아카싯치 제발… 이, 이번 일은 정말로 중요한 일이라 거절해서는 안 되었어요…! 소속사에서도 이번에는 확실히 몸 간수 잘하라고 신신당부 했고!”
“료타는 능력이 있으니까 다음에 더 좋은 일을 할 수 있을 거야. 다만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안 된다는 거지.”
정말로 안 되었다는 듯이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유감스러운 표정을 지은 아카시는 곧이어 키세의 바로 앞에 다리를 굽히고 앉아서 키세와 시선을 맞추었다. 누구든지 올려다보는 것이 허용된 남자가 유일하게 스스로 몸을 낮춰 마주보는 인물은 오로지 키세 료타 뿐이었다. 키세는 그 영광에 기뻐했지만 지금으로서는 연인이 자신에게 앞으로 무슨 짓을 할지에 대한 두려움으로 덜덜 떨고 있었다. 료타는 추위를 잘 타는구나. 모르는 건지, 알면서 능청스레 시치미를 떼는 것인지 아카시는 키세의 떨림의 이유를 추위로 돌리며 한 손으로 조금 전에 자신이 떼린 키세의 뺨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부드럽고 상대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넘쳐흐르는 그 손길에 키세는 자신도 모르게 반쪽짜리 눈물을 흘렸다. 아카싯치. 이렇게 자신을 애정이 듬뿍 담긴 손길로 쓰다듬어줄 수 있으면서 어째서 한편으로 그 손으로 자신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을 하는 것일까. 그리고 자신은 왜 그런 아카시를 계속해서 사랑하며 그의 행위를 용서하는 것일까. 풀릴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모순의 틈새에 갇혀 키세는 혼란스러움에 현기증을 느꼈다.
철썩. 또 다시 뺨을 사정없이 후려치는 소리가 울렸다. 이번에는 반대쪽 뺨이었다.
“내가 눈앞에 있는데 한 눈 팔면 안 되지, 료타.”
“죄, 죄송합니다.”
“자, 그럼 벌을 줘야겠지? 이번에는 료타도 반성하고 있으니까 간단하게 양쪽 뺨에 각각 수십 대씩 맞는 거면 되겠다.”
“!! 아, 아카싯치! 어, 얼굴은 제발…!!”
“나도 사랑스런 료타의 얼굴에 해를 끼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걱정하지 마. 난 료타의 어떤 얼굴이라도 사랑해줄 수 있으니까. 피멍이 좀 들겠지만 그정도는 평소에 있는 일이니까 견딜 수 있지?”
“아카, 싯치….”
“사랑해. 정말로 사랑해. 료타.”
상냥한 목소리로 사랑의 세레나데를 읊는 아카시 세이쥬로의 모습은 정말로 사랑에 빠진 소년으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