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사자 케마X고딩 이사쿠. 현대. 환생 소재 포함.
그는 생전에 죽음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해본 적이 없었다. 죽음을 동무로 삼아야 하는 닌자를 목표로 하고 있으면서도 죽음 자체에 대해서 깊이 파헤치는 의미 있는 고찰을 하지 않았다. 무릇 닌자라면 죽음에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 존재이기에 그런 것에 대한 생각이 많아질수록 죽음에 대한 두려움만 커진다는 호전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죽는 것보다도 살아남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더 가치 있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여겼다. 그는 닌자임에도 인간이 마땅히 가져야 할 삶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았다. 집착을 버리지 않으면 나중에 실제로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대범하게 나설 수 없다는 충고어린 경고도 들은 적이 있어도 남자의 가치관은 쉬이 바뀌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실제로 맞닥뜨릴 때까지는 알 수 없는 미지의 것이었다. 그것이 잘못되었다 후회한 적도 없었다. 사람으로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니까. 그 덕분인지 몰라도 케마 토메사부로는 사후 후에도 삶에 대한 미련을 두지 않을 수 있었다.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삶이다. 미련 같은 것을 뒀다간 그 삶을 살아온 자기 자신에 대한 모욕이 되니까. 케마는 제 삶과 죽음으로 마무리 지은 종결에 만족했다.
케마 토메사부로. 향년 25세.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지만 전쟁과 분열의 격동기를 코앞에 둔 시대의 끝에서 닌자로서 살아갔다고 고려해보면 그럭저럭 살다가 간 셈이다. 저보다 어린 애들이 전쟁의 부조리함에 희생된 것을 수없이 지켜봤다. 그런 아이들과 비교했을 때 자신은 나름 호상이지 않을까. 케마는 그리 생각하다가 피식 웃어버리고는 피우던 담배를 땅에 떨어뜨려 구둣발로 비벼서 껐다. 요즘 들어 이상하게 생전의 일이 떠올랐다. 이미 지나온 삶에 미련은 없어도 향수는 잔존하게 되는 모양인가 보다. 영원한 잠을 청하기 위해 이제 두 번 다시 뜨지 못할 눈을 감아버린 케마였으나, 공교롭게도 그는 다시 눈을 뜨게 되었다. 육신으로서의 눈이 아닌 영혼으로서의 눈을 떴다는 표현이 정확했다. 새롭게 눈을 뜬 케마는 검은 기모노를 입고 가슴에는 이름 모를 꽃을 달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저 혼자 덩그러니 외딴 곳에 남겨져서 처음에는 당황했으나, 곧이어 그의 영혼이 모든 것을 이해했다. 그는 분명히 죽었다. 영혼만 남게 된 케마 토메사부로는 인간이 아닌 저승사자로서 존재하게 되었다.
저승사자라고 해서 딱히 거창한 것은 없다. 그들이 맡은 임무는 앞으로 죽을 자를 지켜보며 그가 정해진 시기에 그에 알맞은 죽음을 이뤄내는지 확인하는 것뿐이다. 그들이 직접 나서서 목숨을 거둬가는 경우는 없다. 인간의 목숨을 거둬가는 것은 오직 같은 인간만이 가능했다. 그럼에도 그들이 지켜보는 것은 혹시나 일이 잘못되어서 예정보다 늦어지거나 빨라지면 미리 수를 써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만일의 사태 때문이다. 저승사자는 목숨을 앗아가는 존재가 아닌 인간을 죽음이라는 이름의 끝으로 도달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길잡이였다. 처음 케마는 왜 자신이 저승사자로 선택되었는지 납득하지 못했다. 살면서 지금껏 자신이 초월적인 무언가에 선택받은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해보거나 기대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케마 토메사부로라는 인간 자체를 놓고 보면 그저 평범한 청년에 불과한데 왜 자신인 것일까. 저승사자가 되고 수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케마는 그 이유를 깨닫지 못했다. 그래도 그는 전생에 닌자로서의 삶에 충실한 것처럼, 지금도 저승사자로서의 제 2의 삶에 충실히 임했다.
케마가 죽고 저승사자가 되어도 시간은 무념하게 흘러 시대가 변했다. 그 시대의 흐름을 지켜보며, 많은 인간들의 죽음을 인도하며, 거듭된 변화 끝에 지금에 도달하게 된 시대를 마주하며 케마는 자신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작은 지를 통감했다. 언젠가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시대가 도래 할 수 있을지 상상해봤다. 그리고 현실은 케마의 상상을 뛰어넘은 모습을 보여줬다. 그의 상상과 일념의 기대에 부응하듯 세상은 더없이 평화로워졌다. 이제 이 땅에 전쟁으로 죽는 자들은 없었다. 밤하늘의 별처럼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야경의 불빛들을 고층 건물의 옥상에 내려다보며 케마는 그 사실에 진심으로 안도했다.
네가 이 모습을 봤더라면 좋았을 텐데.
누구보다도 전쟁이 사라진 시대를 바랐던 동실의 얼굴이 자연스레 야경에 겹쳐져 그려졌다. 그 녀석이야말로 이 풍경을 봤어야 했다. 가슴이 따끔했다. 많은 시간이 흐른 만큼 그만큼의 길이가 전생에 대한 감정을 완화시켜주는 진통제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음에도 케마는 이따금 떠올리는 동실의 얼굴 앞에서는 아릿한 통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사쿠. 젠포우지 이사쿠. 케마는 야경의 밤공기에 그 이름을 오랜만에 읊조렸다.
저승사자가 되고 케마가 가장 먼저 신경 쓰였던 것은 이사쿠의 행방이었다. 인술학원을 졸업한 뒤 이사쿠는 당연하다는 듯 전장의가 되어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패잔병들이나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마을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굳은 일을 도맡았다. 케마는 그런 이사쿠의 모습에 닌자라는 험한 길을 선택하지 않은 것에 다행으로 여겨야할지, 아니면 전장이라는 위험한 곳을 자처해서 뛰어들거나 언제 다른 성들에게 안 좋게 찍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다는 막연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위험을 떠안아야 하는 것에 걱정을 해야 할지 종잡을 수가 없었지만 케마는 일단 지금에 만족하기로 했다. 자신이 시간을 내서 찾아가면 이사쿠는 항상 웃는 낯으로 반겨줬다. 그는 여전히 살아있고, 웃고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케마는 작은 사실에 매번 안도감을 새로이 가졌다. 그 후에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상하게도 이사쿠와의 마지막 모습이 통 기억나지 않았다. 전생의 기억을 대부분 가지고 있는 케마였으나 그가 유일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자신이 죽은 마지막 순간이었다.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 왜 죽었는지, 누구의 손에 죽었는지 그 경위를 알 도리가 없었다. 이사쿠와의 마지막을 기억할 수 없는 것으로 짐작해 보건데 분명 이사쿠가 자신의 죽음과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지만 잃어버린 기억을 찾을 수가 없으니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이사쿠는 자신보다 나중에 죽었겠지. 다만 케마는 부디 이사쿠가 조금이라도 오래 살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저승사자가 된 뒤로도 이사쿠를 만날 수 없었다. 오히려 그것이 다행으로 여겼다. 지금의 자신과 만난다는 것은 결코 좋은 의미가 되지 못하니까. 시간이 이만큼 흘렀으니 윤회의 법칙에 따라 다시 태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럼 되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비록 그립더라도 이사쿠를 위해서라면 이깟 그리움 정도는 견딜 수 있다. 케마는 앞으로도 이사쿠와 만나기를 바라지 않았다.
자신에게 이사쿠는 가장 친한 동실이었고, 누구보다 지키고 싶었던 소중한 존재였고,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뭐, 다시 태어났으면 전생의 일을 다 잊어서 나 같은 건 더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케마는 씁쓸하게 웃으며 조금 전에 담배를 피웠음에도 그새를 못 참고 또 한 개를 꺼냈다. 닌자가 된 이후로 케마는 자신의 안에 응어리를 덜어내기 위해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곰방대를 이용해서 피웠는데 요즘에는 종이로 만들어진 작고 가벼운 담배가 나왔다. 세상 참 편해졌다는 것을 여기서 실감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복장도 많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기모노였으나 지금은 지금 시대상에 맞춰져 양복으로 변했다. 확연히 다른 두 복장의 유일한 공통점은 옷 색깔이 검은 색이라는 것과 가슴에 달린 이름 모를 새하얀 꽃이었다. 장례식의 조문객을 연상시키는 양복과 그 위에 유일하게 새하얗게 빛내어 더욱 돋보이게 하는 꽃. 꽃은 저승사자가 인간에게 보내는 조화(弔花)라는 점을 생각해볼 때 케마의 지금 모습은 영락없는 장례식의 조문객이었다.
“자, 그러면 이번에는 또 누굴 지켜봐야 하나.”
모처럼 맡은 임무였다. 썩 좋은 임무가 되지는 못해도 저승사자로서 마지막 가는 길 외롭지 않게 지켜봐줘야 한다. 흐음. 케마는 잠시 자신이 선 고층건물 옥상 위에서 까마득한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곧바로 망설임 없이 아래로 뛰어내렸다. 순식간에 아래로 떨어지는 케마는 자신이 전생에 올라갔던 가장 큰 나무보다도 더 높은 곳에서 떨어지고 있음에도 얼굴에는 두려움 기색 하나 전혀 없었다. 그리고 그의 발이 땅에 닿으려는 순간, 갑자기 추락하던 그의 몸이 둥실 떠오르더니 이윽고 사뿐히 착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케마는 바삐 지나가는 인파들과 마주했다. 바로 건물 위에서 젊은 청년 하나가 낙하했고, 그것도 모자라 생채기 하나 없이 멀쩡히 착지하는 믿기 힘든 곡예를 보여줬음에도 사람들은 케마라는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 듯 태연한 얼굴로 제 할 일에만 집중했다. 저승사자는 본디 평범한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들을 볼 수 있는 인간은 선천적으로 ‘눈’이 좋은 사람이나 죽음을 앞에 두고 있어 저승사자가 지켜봐야 하는 자들이었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케마의 모습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케마는 잠시 고개를 좌우로 돌리더니 이내 어느 한 방향을 정해 걸어갔다. 저승사자는 제가 맡은 인간을 본능적으로 알아볼 수 있었고, 최초로 그 인간을 마주하게 되면 저승사자는 그의 이름과 죽을 시기, 그리고 사인(死因)을 전부 파악하게 된다. 그들이 사후 후 처음 눈을 떴을 때, 자신들이 저승사자가 되었다는 것을 바로 이해했던 것처럼 말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인파에게 이리저리 흔들리며 걸어가던 케마는 본능적으로 이 길이 맞다고 확신하면서도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는 대상자에 슬슬 조바심과 약간의 짜증이 스멀스멀 피어 올렸다. 그 와중에도 케마는 자신의 전생 때보다도 사람들이 왜 이리 많아졌는지, 여자들 옷차림은 왜 저렇게 얇은 천 조각만 붙이게 되었는지, 밤인데도 과할 정도로 밝은지에 대해 투덜거렸다. 현 시대에 임무를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더욱 적응하지 못하는 것도 불평이 생기는 원인이 되었다. 그러다 문득 이사쿠라면 이 세상을 어떻게 감상했을 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났다. 아마 신기하다면서 이곳저곳 쏘다니지 않을까. 인술학원에 있었을 적에 마을 축제에 가서 1학년처럼 활기차게 구경하며 즐기던 이사쿠의 모습이 네온사인 위에 덧그려졌다. 그의 기억 속 이사쿠는 대부분 전장에 있는 모습임에도, 전장이 아닌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 해사하게 웃던 이사쿠가 더 인상 깊고 잘 어울렸다. 삶과 죽음 속에서 발버둥 치며 피가래 끓는 비명소리와 쇠붙이들이 맞부딪치는 전쟁이라는 이름의 아수라장에서 언제나 울듯이 얼굴을 찡그리던 전장의로서의 모습이 아닌 따사로운 햇살과 꽃내음과 풀내음을 맡을 수 있는 평화롭고 소박한 일상 속에서 화사하게 웃던 평범한 15살의 모습이 애석할 만큼 어울렸던,
“우왓!”
그 때, 케마의 앞에서 조금 먼 곳에 누군가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길바닥에서 넘어지는 소리와 그로 인한 아픔을 호소하는 신음소리. 앞으로 한 발자국 걸어 나갈수록 인파 사이로 얼핏 드러나는 연갈색의 머리카락. 그 뒤에 차례대로 나열하듯 눈앞에 하나씩 드러나는 눈매. 콧날. 입술. 몸짓. 버릇. 말투. 목소리. 그리고 불운.
이사쿠, 괜찮아? 으응, 난 괜찮아. 또 넘어져 버렸네. 그러게 조심하지. 일어설 수 있겠어? 고마워, 토메사부로.
그 사소한 대화가, 어째서 지금 떠올리고 마는 것인지.
다시는 만나지 않기를, 그렇게나 바랐는데.
지금이라도 발길을 돌려 자리에서 벗어나야 했다. 하지만 이미 저승사자로서의 각인이 끝난 것인지 그의 발걸음은 아무 저항도 펼치지 못하고 속절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아니, 그것만이 아니었다. 케마는 처음부터 발걸음을 돌릴 수 없었다. 그가 넘어질 때마다 케마는 단 한 번도 그를 버리고 뒤돌아가지 않았다. 크게 넘어지는 소리가 들리면 늘 있는 일인데도 언제나 심장이 떨어진 것처럼 크게 놀라며 그의 앞으로 달려가 걱정을 드러내 상태를 살펴본다. 그러면 그는 매번 웃으면서 걱정 끼쳐서 미안하다는 사과와 고마움을 함께 전한다. 두 사람에게는 그것이 당연했다. 상대가 넘어지면 반드시 손을 뻗어서 일으켜 세워준다. 두 사람 사이에 정해진 불문율의 약속은 이제는 본능이 되어 케마를 기어코 그의 앞에 세워두게 만들었다. 잠시 넘어진 소년을 내려다보던 케마는 천천히 무릎을 굽히고 소년의 앞에 꿇어 앉아 손을 내밀었다. 내밀어진 손길은 그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너무도 익숙한 모양새를 있는 그대로 보여줬다.
“괜찮아?”
“아, 감사합니다.”
소년은 내밀어진 친절의 손길을 망설임 없이 잡았다. 저승사자의 손을 아무 의심 없이 잡은 소년은 그대로 케마의 도움을 받아 툭툭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복을 입은 소년은 적어도 고등학생으로 보였다. 소년은 제 몸에 묻은 먼지들을 전부 털어낸 뒤 바로 허리를 숙여 자신을 도와준 친절한 인물에게 깍듯이 인사하고는 밝게 웃으며 말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소년은 그 뒤에 자신보다 앞서 가던 친구들의 부름을 듣고는 바로 쫓아가기 위해 마지막으로 케마에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남기는 것을 잊지 않고는 그대로 그를 지나쳐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케마는 소년이 떠난 뒤에도 발을 뗄 수 없었다. 임무를 위해 소년을 쫓아가야 하는데도 도무지 움직일 엄두가 나지 못했다. 그 와중에도 케마는 시대가 변하고 시간이 무수히 흘러도, 저 미소 하나만큼은 그대로 형태를 유지한다는 것에, 다시 마주할 수 있게 된 것에 걷잡을 수 없는 비참함과 어쩔 수 없는 기쁨을 혼잡하게 느껴야 했다. 결국 자신은 그렇게 만나지 않기를 기도했음에도 끝끝내 다시 만나고 싶다는 마음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것이다. 어째서, 왜 하필이면 네가 이런 식으로 내 앞에 나타나야만 하는 것일까. 아무래도 불운의 여신은 여전히 자신과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있었나 보다.
젠포우지 이사쿠. 향년 18세. 사인 자살. 앞으로 남은 기간은 1년.
케마는 소년과 마주하고서 머릿속으로 밀려들어오고 있는 정보를 회피하려는 듯이 이를 악 물고 눈을 질끈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