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마이사의 날 기념 소설. 다행히 자정 안에 올렸네요ㅠㅠ
양지꽃 : 사랑스러움
달맞이꽃 : 말없는 사랑
“찾았다! 여기야, 토메사부로.”
조금 먼 곳에서 들려오는 이사쿠의 밝은 목소리를 들은 토메사부로는 수풀 헤집는 것을 관두고 이사쿠가 있을 방향으로 몸을 틀어 앞으로 나갔다. 밟으면 한 번에 뚝하고 꺾이는 썩은 나뭇가지와 발을 간질이는 잡초들을 헤쳐 걸어 나간 끝에 그가 도착한 곳은 탁 트인 공간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꽃밭이었다. 여러 색의 크고 작은 꽃들이 피어나 자연이 빚어낸 꽃밭은 소박한 미를 단정히 드러내며 마치 나비들과 함께 어울려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 안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색은 봄에 잘 어울리는 노란색이었다. 그 샛노란 색채를 보자 토메사부로는 이사쿠가 기쁨으로 외친 탄성 그대로 야산을 올라 한참을 돌아다닌 보람을 얻어냈다.
이사쿠는 토메사부로보다 한 발 앞서 꽃밭 안으로 들어가 꽃들을 따는 작업에 들어갔다. 이사쿠가 꺾는 꽃들은 전부가 노란 꽃들뿐이다. 토메사부로는 아직 꽃밭 가장자리에 가만히 서서 경치를 감상하다가 꽃을 꺾는 이사쿠의 손길이 눈에 들어오자 반사적으로 자신도 허리를 숙여 발언저리에 피어난 같은 꽃을 꺾어 들어올렸다. 토메사부로가 전날에 이사쿠로부터 들은 꽃의 이름은 양지꽃이다. 지금과 같은 4월의 봄철에 피어난다는 노란 다섯 잎의 야생화의 뿌리는 지혈 작용이 있어 약초로 유용이 쓰일 수 있다고 한다. 사전에 이사쿠를 통해 들은 꽃의 이름과 생김새, 그리고 효능에 대한 지식들을 차례대로 상기한 토메사부로는 자연히 전날 밤에 자신에게 두 손을 맞부딪치고 고개를 숙여가며 부탁한 이사쿠의 모습을 연상했다.
두 사람이 인술학원에서 먼 거리에 위치한 야산까지 온 이유는 전적으로 보건 위원장이자 케마 토메사부로의 룸메이트로부터 비롯됐다. 위원회의 예산을 줄이자는 일환으로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초들은 무리를 해서라도 돈 주고 사기보다는 직접 채집해 사용하는 보건 위원회의 활동으로 인해 위원장인 이사쿠는 아직 험한 산을 오르기 힘들고 약초 구분하는 능력을 전부 익히지 못한 후배들을 대신 해 솔선수범으로 약초들을 구하러 나선 적이 많다. 허나 이사쿠는 그것에 불평을 가지지 않았다. 금전적인 문제도 있지만 때로 산에서 귀한 약초나 시중에서 파는 것보다 질 좋은 약초를 얻을 수 있다는 보람찬 이유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특유의 불운으로 인해 그런 약초들을 구하는 날보다 본래 찾으려고 한 약초조차 거의 건져내지 못하고 빈손이나 마찬가지인 신세로 터덜터덜 돌아오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더 많았으나 그래도 이사쿠는 직접 발로 뛰어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혼자서 작업하기에는 벅찼기에 어린 후배들을 동반해 다녔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소 긴 연휴로 인해 대부분의 하급생 닌타마들이 집으로 잠시 귀가하게 되어 학원에는 여러 사정으로 남게 된 상급생 닌타마들만 있게 되었다. 애석하게도 이것 또한 이사쿠의 불운인지, 보건 위원회는 이사쿠를 제외한 소속 닌타마들은 1,2,3학년들이었고 그 학년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대상의 학년들이었기에 현재 학원에 남은 보건 위원회 소속 닌타마는 오직 위원장인 젠포우지 이사쿠 뿐이다. 이런 난처한 처지에 이사쿠가 동반자로 선택한 인물은 룸메이트인 케마 토메사부로였다. 이전에도 여러 번 약초 채집에 도움을 준적도 있는지라 상대적으로 부탁하기 조금 편하다는 점에서도 이사쿠가 가장 먼저 토메사부로에게 달려간 이유가 되었다. 다행히도 토메사부로는 연휴 동안 특별한 일정이 없었다. 처음 부탁을 받게 되었을 때는 이번에도 이사쿠의 불운에 휘말려 고생하게 되는 것이 아닌 가 싶은 우려에 쉽게 수락의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마지막에는 고개를 끄덕여 이사쿠를 웃게 해주었다. 불운으로 인한 원치 않은 고생보다도 이사쿠와 함께 있는 것을 택한 토메사부로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고맙다고 말한 뒤 드러낸 고민을 던 이사쿠의 미소에 뒤따라 웃고 말았다.
그런 연유로 토메사부로는 연휴에 이사쿠와 함께 사람의 발길이 적은 야산에 올랐다. 토메사부로는 여기까지 오게 된 경위를 전부 되짚은 뒤 서 있는 자리에 그대로 쭈그리고 앉아 멀지 않은 곳에서 한창 약초들을 따고 손질하는 일에 열중 하는 이사쿠의 옆모습을 살폈다.
동실로서 힘든 일을 도와주겠다는 선의가 아닌, 그저 함께 있고 싶어서 너를 도와주겠다는 핑계를 댔다고 하면 이사쿠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토메사부로는 그런 생각으로 이사쿠의 반응을 상상해 봤지만 쉽사리 그려지지 않았다. 아마 부끄러워하지 않을까. 자신의 말을 듣고 수줍어하는 이사쿠를 방금 떠올린 추측을 토대로 나름대로 머릿속에서 그려본 토메사부로는 이사쿠가 들리지 않을 만큼의 작은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6년 동안 크고 작은 불운에 시달리면서 고생도 하고 그 과정에서 이사쿠와 다툰 적도 많으나 그럼에도 이사쿠를 향한 싫음보다도 함께 있고 싶다는 호감만 더 강해졌다. 언제부터 이사쿠를 좋아하게 되었는가, 하고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토메사부로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이 지금껏 살아온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함께 지내며 일상의 일부분이 된 이사쿠의 존재처럼, 그를 좋아하게 된 것도 일상의 하나와 같이 당연히 일어나게 된 일처럼 여겨졌다. 마치 자신이 이사쿠를 좋아하게 되는 일이 정해진 일 마냥, 거창하게 표현하면 운명처럼 그리 이루어졌다. 그리고 정말로 운명처럼, 이사쿠도 토메사부로를 좋아하게 되었다. 운명론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쿠노이치들이 호들갑스레 떠드는 ‘운명의 상대’가 이사쿠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제아무리 토메사부로라고 해도 가슴이 떨리고 묘한 기대가 솟아오르게 된다. 자신의 운명. 젠포우지 이사쿠는 케마 토메사부로에게 있어 그런 가치를 충분히 가진 유일한 존재였다.
이사쿠가 짊어지고 온 작은 바구니에 노란 꽃무리가 차곡차곡 쌓여졌다. 토메사부로는 조금 전까지 텅 비었던 바구니가 노랗게 물들어 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꽃밭 안으로 들어갔다. 사박사박 발자국 소리를 내며 꽃을 헤치고 이사쿠의 옆에 선 토메사부로의 인기척과 그림자에 작업에 몰두하던 이사쿠가 그제야 하던 일을 멈추고는 토메사부로를 올려봤다.
“왜 그래, 토메사부로?”
아직도 텅 비어있는 토메사부로의 빈 바구니를 보고 타박하는 것보다 무슨 문제가 생겼을까 싶어 아직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올려보는 이사쿠의 순진한 표정이 토메사부로의 시선에는 그저 귀여워 보였다. 몬지로가 가끔 빈정거리는 어투로 콩깍지가 끼었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았지만, 귀엽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마치 손에 쥔 꽃과 같은 사랑스러움이었다. 토메사부로는 손 위에 빙글빙글 돌리며 가지고 놀던 꽃을 제대로 잡아 이사쿠의 앞에 쭈그려 앉았다.
“잠깐 가만히 있어봐.”
그 말 뒤에 토메사부로는 이사쿠에게 손을 뻗어 흘러내린 그의 갈색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줬다. 그의 손길에 따라 부드럽게 넘어가는 머리카락의 간지러운 움직임에 이사쿠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다가 금방 얼굴을 발갛게 물들였다.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긴 뒤에 그 언저리를 맴도는 토메사부로의 손길과, 그에 따라 움직이는 머리카락을 통해 전해지는 감각이 생소하면서도 낯간지러운지라 이사쿠는 절로 긴장으로 몸이 굳어져 토메사부로의 손이 떨어질 때까지 아무것도 못하고 그대로 뻣뻣하게 앉아 크게 뛰어오르는 자신의 심장에게 진정하라고 사정하면서 토메사부로가 이 소리를 들을지에 대해 노심초사했다. 이윽고 토메사부로의 손이 이사쿠에게 떨어졌고, 이사쿠는 아직도 긴장을 풀지 못하고 눈을 빠르게 깜빡거리다가 자신의 오른쪽 위에 무언가가 꽂혀진 것을 알아채고 조심히 손으로 그 주변을 건드려봤다. 이사쿠의 귀에 장식된 것은 토메사부로가 여기에 와서 첫 번째로 꺾었던 양지꽃이었다.
“자, 그럼 나도 시작해볼까.”
볼일을 끝낸 토메사부로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몇 걸음을 걸어가더니 이사쿠의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아 무심히 꽃을 꺾기 시작했다. 그런 토메사부로의 뒷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이사쿠는 그의 뒷목과 귓불이 노란 빛을 배경으로 빨갛게 물들어진 것을 발견했다.
그 모습에서 이사쿠는 뒤늦게 토메사부로가 자신에게 한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해하고는 부끄럽지만 그가 보여 준 애정 표현이 선사한 행복에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미소를 보답으로서 조용히 지어줬다. 그리고 그 모습을 줄곧 곁눈질로 살피다가 발견한 토메사부로는 저도 모르게 꽃을 꺾던 손에 필요 이상의 힘이 들어가고 말았다.
“이거 아무래도 길을 잃어버린 것 같은데.”
“역시 그런가. 미안, 토메사부로. 어쩐지 오늘은 무사히 넘어가는 것 같았는데 설마 이런 불운이 찾아올 줄은….”
“네가 사과할 일이 아니잖아. 신경 쓰지 마. 그나저나 날도 저물어서 돌아가는 길이 쉽지 않겠는걸.”
의기소침해진 표정과 불운으로 풀이 죽어버린 목소리로 토메사부로를 곤란하게 만든 것에 대한 이사쿠의 사과에 토메사부로가 즉각 반응하여 이사쿠의 말을 강하게 부정하며 격려를 해줬지만 그럼에도 그의 얼굴에 드리워진 낭패감과 난처함은 쉽사리 사라지지 못했다. 찾아낸 약초들을 전부 채집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마지막에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이사쿠의 불운이 빛을 발한 덕분에 두 사람은 산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사태에 처하고 말았다. 이 나이에 미아라니. 토메사부로는 반쯤 기가 차다는 헛웃음을 짓고는 ‘미아’라는 단어에서 인술 학원의 유명한 미아 두 명과 그들을 수습하느라 죽을 대로 고생하고 있는(그리고 앞으로도 졸업할 때까지 줄곧 고생할 예정인) 자신의 위원회 후배의 얼굴을 떠올렸다. 하지만 지금은 후배들 얼굴을 떠올릴 때가 아니다. 그냥 산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도 위험한데 시간은 벌써 저녁 해가 저문 한밤중이다. 빨리 내려가지 않으면 어떤 위험을 직면하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불행 중 다행이도 닌타마인 두 사람에게 있어서 밤은 닌자로서의 감각을 더 민감히 세울 수 있어 그들에게는 유리한 시간대라는 점이다. 두 사람이 닌자로서 숙련시킨 밝은 밤눈으로 각자 산길을 둘러보며 내려가는 길을 찾던 도중, 이사쿠가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그쪽으로 조금씩 발길을 옮겼다.
불빛? 노란 빛이 섞인 새하얀 빛 무리가 얼핏 보였던 것 같아 신경이 쓰인 이사쿠는 조금씩 그것에 이끌려 발걸음을 옮겼지만, 머지않아 발걸음은 끊어졌다. 밤눈이 밝더라도 지형을 완전히 파악할 정도는 아니며 산 속인 탓에 다른 곳보다 더 어둡고 수풀이 우거진 탓에 발밑을 살피기는 것이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해, 이사쿠는 그런 시간적,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발밑이 빠져 그대로 아래로 추락해버리고 만 것이다.
“우와아아아!!!”
“이사쿠!!”
수풀이 크게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아래로 떨어지는 이사쿠의 비명소리에 근처에서 길을 찾고 있던 토메사부로가 바로 비명이 난 곳으로 재빨리 달려갔다. 혹시나 적의 습격인가 싶어 품 안에 든 쿠나이의 존재를 단단히 새겨 이사쿠가 빠진 아래쪽으로 미끄러져 내려간 토메사부로는 곧바로 도착한 아래에 발을 내딛어 넘어진 이사쿠를 부축했다. 다행히 이사쿠는 넘어진 탓에 쓸려진 손바닥과 더러워진 옷을 제외하면 크게 다치는 곳은 없었다.
“괜찮은 거야?”
“으, 으응. 괜찮아. 걱정 끼쳐서 미안해.”
“다치지 않았다면 다행이지만… 이건…!!”
“우와…!!”
이사쿠를 꼼꼼히 살피며 크게 몸이 상한 것은 아닌가 걱정하던 토메사부로와 그런 그를 달래며 자신의 상태가 양호하다는 것을 어필하던 이사쿠는 자신들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바로 두 눈을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밤하늘에 빼곡히 수 놓여 진 별들과 그들을 보석처럼 둘러매어 커다랗게 떠서 어둠을 환히 비추는 보름달, 그리고 그 아래서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적막 속에서 고고히 빛내어 피어난 달맞이꽃들과 그 주변을 날아다니는 흰 색의 나비, 그리고 지상에 내려온 별과 같은 반딧불들이었다. 마치 신들의 정원에 실수로 발을 들인 것과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두 사람은 말로 미처 표현할 수 없는 장엄한 정경에 아무 말도 못하고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두 사람 모두 이런 평범한 야산에 숨은 명소가 있을 줄은 전혀 예상치도 못했기에 마치 뜻하지 않은 보물을 찾은 것 같았다.
“예쁘다.”
“어…. 설마 산에 이런 곳이 있을 줄이야.”
산에서 나가야 한다는 생각도 잊어버린 채 넋이 나간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던 중 이사쿠가 갑자기 자리를 털고 일어나 꽃밭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그 모습에서 토메사부로는 낮에 봤던 이사쿠에게 느꼈던 분위기와는 다른 것을 발견했다. 낮에 노란 꽃들 사이에 둘러싸여 여느 때처럼 웃어 보이는 이사쿠와는 평소와는 달리, 빛나는 달맞이꽃 안에서 살짝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서있는 이사쿠의 모습은 꼭 달에서 내려온 전설 속 공주와 같았다. 공주와 같은 여자다움도, 우아함과 고결함도 전혀 보이지 않았으나 그 신비함과 그 안에서만 발현되는 정적인 아름다움은, 분명 전설의 그것과 비슷했다. 전설 속 카구야 공주는 결국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져 달로 돌아가 버린다. 언제까지나 지상에 남아 함께 있을 줄 알았던 공주는 예정된 이별의 때가 왔다는 듯 미련 없이 돌아섰다. 이별도 운명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토메사부로와 이사쿠가 언젠가 학원을 졸업해 헤어지게 되는 것 또한, 그들이 만나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 것과 같은 예정된 결과였다. 그것으로 토메사부로는 슬픔도, 운명에 대한 애석함도 품지 않았다. 이런 시대에 태어나 만나게 된 것에 원망하기 보다는 서로 함께 있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 시간조차 아까웠다. 함께 지내는 것이 허락된 6년의 끝이 저 멀리에서부터 조금씩, 그럼에도 꾸준히 다가왔다. 그리고 끝은 어느새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듯이 서있었다.
“이사쿠.”
“응?”
“좋아해. 네가 좋아, 이사쿠.”
토메사부로는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인 뒤 하늘을 올려봤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밤하늘 위에 총총히 뜬 조각 별들은 토메사부로의 담백한 고백에 귀를 기울이는 것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 고백을 빠짐없이 들은 이사쿠는 고개를 돌려 토메사부로를 마주봤다. 그는 고백을 속삭였던 목소리와 같이 다정함과 애정으로 빚어진 미소로 이사쿠를 지긋이 지켜봐주고 있었다. 어느 때보다도 멋져 보이는 토메사부로의 모습에 이사쿠는 저절로 마음이 설레어져 부끄러움에 오래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 낯가림을 우물쭈물 드러내다가 문득 달맞이꽃 하나에 시선이 닿았다. 그리고 아직 자신의 머리에는 토메사부로가 꽂아준 꽃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그대로 손을 뻗어 가장 활짝 핀 달맞이꽃 하나를 조심히 꺾어서 손에 쥐고는 토메사부로가 서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토메사부로의 바로 앞에 서서는 그에게로 천천히 손을 뻗었다.
“잠깐 가만히 있어줘.”
그리고 토메사부로가 저에게 했던 것처럼, 이사쿠는 토메사부로의 오른쪽 귀에 달맞이꽃을 꽂아 장식했다. 그의 얼굴 옆에서 시드는 기색 하나 없이 여전히 빛나는 피어난 꽃의 모습과 그 옆에서 눈을 깜빡이며 가만히 서 있는 토메사부로의 모습을 함께 보던 이사쿠는 갑자기 웃음을 터트려서는 손으로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아하하. 생각만큼 잘 안 어울리네.”
“당연하잖아. 그리고 꽂아 넣은 건 너면서 이제 와서 그런 소리를 하면서 웃는 거냐.”
“아하하하. 미안, 미안. 낮에 대한 보답이야.”
그렇게 말한 뒤 이사쿠는 손가락으로 제 귀에 장식된 양지꽃을 가리킨 뒤에 얼굴에 흘러내리며 삐져나온 토메사부로의 잔머리를 낮에 그가 이사쿠의 머리를 뒤로 넘겨주며 정리해준 것처럼 마찬가지로 꼼꼼한 손길로 정리해줬다. 그리고 토메사부로는 잠시 눈을 감고 그 손길을 하나씩 받아들였다. 세심한 배려가 깊이 묻어난 이사쿠의 손끝에는 낮에 꺾은 양지꽃의 향기가 아직 남아있었다.
“나도 정말 좋아해, 토메사부로.”
이사쿠는 차분하고 더없이 상냥한 목소리로 토메사부로의 고백에 대한 답을 되돌려줬다. 그 말을 들은 토메사부로는 소리 없이 눈꺼풀을 들어 올려 조용히 눈을 뜨고는 이제 막 자신의 잔머리 정리를 끝낸 이사쿠의 손을 잡아냈다. 갑자기 자신의 손을 잡은 토메사부로의 손길에 이사쿠는 살짝 놀란 기색을 드러냈지만 곧바로 빙그레 웃으면서 자신도 토메사부로의 손을 맞잡아줬다.
앞으로가 어떻든 간에 적어도 지금은, 지금만큼은 이 순간에 집중하고 싶다.
두 사람은 서로가 같은 심정을 품으며 본능적으로 이끌리듯 천천히 서로의 거리를 좁혀나가더니 이윽고 하나로 겹쳐졌다. 단단히 얽혀진 깍지 낀 손이 더 강하게 서로를 붙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