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으로 망가진 이사쿠가 보고 싶어서 쓴 글.
대략 살인청부업자인 잣토가 어린 이사쿠를 구해줘서 함께 지내는 글입니다. 주요 장면만 쓰다보니 중간에 뛰어넘은 부분도 있으니 주의.
줄곧 입에 물고 있어서 필터가 너덜너덜해진 담배꽁초를 바닥에 내던지고 짓밟았다. 조금 세게 들어가는 발끝의 힘에는 예정보다 임무 일정이 하루 정도 길어진 것에 대한 짜증에서 비롯되었다. 하루라도 더 살아보겠다며 필사적으로 도망치긴 했지만 결국 하루 밖에 연명하지 못한 목숨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이쪽을 생각해서 예정대로 죽어주면 될 것을. 잣토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신의 발 언저리에 쓰러진 두 남자의 시신을 차갑게 얼어붙은 한쪽 눈으로 내려 봤다. 이번 임무로 들어온 남자 둘은 매춘, 장기매매를 목적으로 한 인신매매의 중간 상인 역할을 맡고 있으며 최근에는 마약 밀거래까지 엿보고 있는 질이 안 좋은 족속들이었다. 하지만 돈을 벌고자 문어발로 이것저것 건드리는 것이 누군가의 심기까지 안 좋게 건드렸고, 그 결과가 살인청부업자에게 살해당하는 비참한 말로였다. 그러게 적당히 한 우물만 얌전히 파면 좋았을 것을 말이지. 잣토는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들의 일에 대한 경멸보다도 도를 넘친 어리석음에 대한 한심함이 앞질렀다. 이런 직업을 천직으로 삼다 보면 이보다 더 한 인간들을 많이 보게 되니 자연스레 도덕적 기준이 많이 둔감해지게 된다. 인간은 항상 더 깊은 밑바닥을 파고 들어가게 된다. 그것이 잣토가 이제껏 살인청부업자로 지내며 알게 된 교훈 비슷한 깨달음 중 하나였다.
쿠르르르. 밖에서 구름이 우는 소리가 났다. 아침부터 하늘이 회색빛으로 잔뜩 끼어있던 것이 심상치 않더니 저녁때가 되어 기어이 한바탕 쏟아지려는 모양이다. 비가 오면 화상으로 입은 상처들이 쑤셔오는 탓에 잣토는 얼른 마무리 하고 돌아가 쉬고 싶었다. 일단 타겟을 말살하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공모자가 더 있을지도 모르니 잣토는 마무리 삼아 집안을 살펴보고 돌아가고자 했다. 그들이 점거한 은신처는 마을 외진 곳에 위치한 폐가로 머물기 시작한지는 대략 이틀 정도로 짐작되었다. 폐가는 규모가 작아서 잣토와 시체 두 구가 있는 거실을 제외하면 다른 공간이라고 해봐야 안쪽에 위치한 골방이 전부였다. 잣토는 조용히 손에 든 총에 총알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재확인하고 장전한 뒤 발소리를 죽여 골방 문 앞으로 걸어갔다. 인기척이 하나. 잣토는 방 안에 있는 사람 수를 짐작하고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잠시 간의 공백 뒤, 잣토는 마치 자신의 방에 평범하게 들어가는 사람처럼 익숙하게 문을 열고 안을 확인했다. 그리고 방 안에 있는 인물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드물게 눈을 크게 확장시켰다.
“아, 이제 다 끝나셨나요?”
나체에 낡고 찢어진 천 한 장만 겨우 걸치고 있는 연갈색 머리의 소년이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를 맞이하는 기색으로 환하게 물었다.
* * *
아이의 이름은 젠포우지 이사쿠였다.
인신매매를 주업으로 삼던 2인조는 주로 납치하기 용이한 신원불명의 고아를 목표물로 삼았고, 이사쿠도 불행히도 그 중 한 명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고아원 앞에 버려져 이름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천애고아인 이사쿠는 낙후된 시설의 고아원이었음에도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과 동변상련을 나누며 이럭저럭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1년 전, 질이 안 좋은 고아원 원장은 사업이 실패하고 당장 갚을 빚만 산더미로 쌓여지자 그는 고아원 건물과 함께 아이들까지 통째로 팔아넘기고는 그대로 도망쳐 잠적하고서부터 이사쿠의 불행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사실 잘 기억이 안 나요.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건 알겠는데 이걸 맞으면 정신이 몽롱해져서 분간이 잘 안가더라고요.”
이사쿠는 입 안 가득 음식물을 메워 넣으면서 잣토가 입혀놓은 코트의 한쪽 소매를 걷어서 앙상한 자신의 팔을 선보였다. 긁히고 맞아서 생긴 상처들과 멍들 가운데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여러 번 맞아 시퍼런 멍까지 들 정도인 주사 자국이었다. 그러고 보면 신종 마약이 나오면 사전에 몸에 큰 무리가 없는지 실험하는 경우가 있다는 풍문을 들은 적이 있다는 것을 잣토는 떠올렸다. 아이는 계속해서 자신이 그간 1년 동안 겪은 이야기들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1년 사이에 죽은 아이들도, 어딘가로 팔려간 아이들도 있었다. 이사쿠는 그 중에서도 마지막으로 남은 아이였다. 쫓기는 와중에도 사업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는지 2인조가 자신을 장기매매로 팔지 아니면 매춘으로 팔지 갑론을박을 벌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이사쿠는 증언했다. 후아. 이사쿠는 잣토가 편의점에서 사온 도시락을 전부 먹고 배가 불렀는지 포만감에 찬 한숨을 쉬었다. 일주일 동안 제대로 먹은 것이 없다는 말을 듣고 일단 밥이라도 먹이고 이야기를 들어보자며 잣토가 사온 것이다.
“아저씨는 착한 사람이네요.”
“사람을 죽였는데도?”
“절 괴롭히던 어른들을 저 대신 죽여줬고, 배고프다니까 먹을 걸 사주셨잖아요. 제 기준에서는 충분히 착한 사람이에요.”
“먹을 걸 내주면서 말거는 어른은 함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말은 못 들었나?”
“그런 걸 알려주던 어른은 아저씨가 처음이에요.”
순해 보이는 얼굴 치고는 어른을, 그것도 청부업자를 상대로 밀리지 않는 이사쿠의 말을 듣자 잣토는 별 특이한 아이도 있구나 싶어 어깨를 떨구었다. 간혹 이런 일을 하다보면 아이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잣토가 지금껏 본 아이들은 하나같이 몸도 마음도 망가져서 빈껍데기가 된 경우가 태반이었고, 살아남은 몇몇은 피눈물 섞인 독기를 삼켜 이 세계에 적응하게 된다. 그러나 이사쿠는 어느 쪽도 속하지 않았다. 어그러진 아이의 순수함이 묘한 매력을 이끌어냈다.
“그래서, 이다음에는 저도 죽여주실 거잖아요.”
지금처럼, 아이는 그 나이에 어른을 따르는 신뢰감을 기반으로 한 심상찮은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잣토에게 던졌다.
아이의 말에 잣토는 표정 변화 없이 다만 쭈그려 앉은 자세로 이사쿠를 정면에서 마주보며 아무 말도 안했다. 자신의 말에 답하지 않는 잣토를 보며 이사쿠를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잣토의 가슴 쪽을 슬쩍 살폈다. 그가 손에 쥐고 있던 총을 정장 안주머니에 넣은 것을 이사쿠는 똑똑히 기억했다. 언제 그가 안주머니에서 총을 꺼내 쥐어서 자신의 미간에 겨누게 될 것만 가만히 앉아 기다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모습은 마치 어른에게 칭찬을 받는 걸 기대하는 보통의 아이의 모습과 닮았다.
총을 들고 있던 아저씨 모습, 꽤 멋있었지. 총도, 그것을 손에 든 어른들의 모습도 노예처럼 끌려 다니던 때 몇 번이나 봤지만 이사쿠의 시선에서는 하나 같이 흉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잣토는 달랐다. 이사쿠의 시선에서 본 잣토의 총을 든 모습은 참으로 멋졌다. 검은 정장, 그에 대비되는 새하얀 붕대, 얼굴의 대부분을 가렸지만 그 아래서 선명히 드러나는 이목구비, 커다란 손과 그 안에 쥐여진 총. 이런 멋진 사람 손에 죽다니, 자신의 불운이 마지막에 찾아오지 않은 것에 이사쿠는 감사했다.
하지만 인생은 여전히 이사쿠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내가 널 죽이지 않고 내 집으로 데려가면, 나는 너에게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하는 건가, 이사쿠 군.”
아. 잣토는 처음으로 아이다운 얼굴을 드러낸 이사쿠의 모습에 잣토도 덩달아 이사쿠와 함께 놀란 반응을 드러냈다.
(중략)
“많이 아파요?”
눈을 뜨고 잣토가 가장 먼저 보고 들은 것은 울음으로 범벅이 된 이사쿠의 얼굴과 걱정으로 잔뜩 젖어 떨리기까지 한 여린 목소리였다. 아, 그런가. 이번 임무는 꽤나 난이도가 높았던 것을 잣토는 상기했다. 상대 쪽 실력은 잣토보다 뒤떨어졌지만 쪽수에서는 밀렸다는 것이 문제였다. 어찌해서 임무는 성공했지만 다수를 상대하다보니 부상도 많고 체력도 바닥나서 그대로 중심을 잃었고, 마지막에 까무룩 넘어가는 시선 너머로 다급히 자신을 부축하는 손나몬의 얼굴을 본 것까지 잣토는 전부 기억해내는 것에 성공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익숙한 인테리어에서 잣토는 자신의 방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잣토는 고개를 옆으로 살짝 틀어 자신의 옆에 꼭 달라붙은 이사쿠를 확인했다. 제 손을 두 손으로 꼭 잡고 연신 훌쩍이는 이사쿠의 모습은 척 보기에도 안쓰럽게 비춰져 잣토는 일단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이사쿠에게 잡히지 않은 반대편 손을 들어 이사쿠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머리 위로 느껴지는, 이제 조금씩 익숙해지는 듬직한 손길에 이사쿠는 조금씩 울음을 잠재워갔다.
“…아까, 의사 선생님으로 보이시는 분이 찾아오셔서 치료해주시고 가셨어요.”
딱 잘라 ‘의사 선생님’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은 이사쿠의 말에서 잣토는 자신을 치료해 준 인물이 단골 야매 의사라는 것을 추리해냈다.
“매일 이렇게 많이 아프나요?”
자신은 임무로 다치는 일이 드문에 왜 ‘매일’이라는 표현을 쓸까. 잣토는 그 이유를 바로 알아차렸다. 화상으로 붕대를 감고 있다 보니 어린 이사쿠의 눈에는 그가 매일 상처를 달고 사는 사람처럼 보였던 것이다. 붕대는 단순히 상처를 가리고 덧나지 않기 위해서 두르는 것이지, 아프다는 이유로 감고 다니는 건 아닌데 말이다. 잣토는 이렇게 이사쿠의 말 한 마디에 귀를 기울여주고, 그 안에 쓰인 단어들의 의미에 깃든 이사쿠의 마음을 알아내고자 노력했다. 이렇게 상대의 말을 기울여본 적은 처음이라 잣토는 일종의 흥미도 생겨들었다.
“붕대를 두르고 다닌다고 해서 아픈 건 아니다. 옛날 상처라 더 아플 것도 없어. 이번에는 조금 힘든 임무여서 이런 것뿐이지, 흔한 일은 아니야.”
“하지만 앞으로도 이렇게 다쳐서 올 수도 있잖아요.”
그 말에는 잣토도 반박하지 못했다. 앞으로는 절대 다쳐서 들어오지 않겠다, 는 임시방편에 불과한 거짓말을 잣토는 이사쿠에게만은 하고 싶지 않았고, 이사쿠도 그런 얄팍한 말에 넘어갈 아이도 아니었다. 결국 잣토가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하고 침묵으로 대신 답변을 내놓자 이사쿠는 더욱 그의 손을 꼭 쥐더니 이윽고 무언가를 결심한 듯 고개를 들어 잣토에게 물었다.
“의사 선생님은 상처를 치료해주시는 분이 맞죠?”
“그래.”
“저도 의사가 된다면 잣토 씨를 치료해 줄 수 있나요?”
“…그렇겠지.”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지만 잣토는 이사쿠의 말에 꽤 놀라는 중이었다. 이제껏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장래희망 같은 게 있냐고 물어도 이사쿠는 단지 잣토와 앞으로도 함께 있고 싶다는 답변만 초지일관 내놓았다. 얼마 전에 다니기 시작한 학교에서 장래의 꿈을 글짓기로 쓰라고 해도 같이 사는 사람과 계속 지내고 싶다는 것을 쓰기만 해서 며칠 전에 담임으로부터 이사쿠는 장래희망이 없다는 염려 섞인 연락까지 받았던 잣토였다. 그러던 이사쿠가 처음으로 무엇이 되고 싶다고 말한 것이다. 그래서 기쁜 내색을 감추지 못하고 말을 불쑥 꺼냈다.
“의사가 된다면 많은 사람들을 치료해 줄 수 있겠지.”
그 말에, 이사쿠의 몸이 갑자기 움찔 걸리더니 오묘한 표정으로 변했다. 갑자기 이사쿠에게서 느껴지는 싸한 위화감에 잣토는 급변한 분위기 속에서 이사쿠를 올려봤다. 저 표정, 분명 어디선가 본 적 있던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이 잣토의 뇌리로 스쳐갔다.
“…의사가 되면, 사람들을 치료해줘야 하는 건가요?”
“그게 의사가 해야 할 일이니까.”
“하지만 저는 잣토 씨만을 치료해주고 싶어요. 잣토 씨 외에 다른 사람들을 치료해줘야 한다면, 별로 의사가 되고 싶지 않아요.”
그 말을 듣자 잣토는 비로소 이사쿠의 표정과 목소리의 음색의 기시감을 알아챘다. 처음 이사쿠를 만나 자신을 죽여주기를 당연히 기다리고 있던, 겉은 멀쩡했으나 돌이킬 수 없는 부분이 망가져버린 이사쿠의 편린을 잣토는 여기서 다시 목격하게 된 것이다. 그렇군. 원인은 나한테 있던 건가. 어긋난 초점으로 자신을 간절히 내려다보는 이사쿠의 눈빛을 그대로 받아내며 잣토는 아이의 어그러짐을 제때 봉합하지 못한 과오를 뒤늦게 깨달으며, 그리고 그 과오를 알아챘음에도 죄책감과 후회보다는 묘한 소유욕의 성취감을 느끼는 가슴 한 구석의 감정에 질 다른 위화감까지 가져야만 했다.
곤란하게 되었군. 잣토는 이사쿠의 말을 듣고 앞으로의 일을 고심하면서도 자신의 손을 놓칠세라 애타게 꼭 잡고 있는 이사쿠의 작은 손을 도저히 뿌리칠 수 없어 뒤따라 맞잡아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