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나가타리 패러디 이어서. 애니 기준 8~9화 패러디입니다.
여기까지 오니 완결 부분까지 가고 싶은데 그러면 완결 부분에서 타키가...(스포방지)
여행을 떠난 지도 어느 덧 반년이 지났을 때, 타키와 코헤이타는 여정에 오른 이후 처음으로 막부가 있는 수도에 함께 당도했다.
수도에 도착한 뒤로 코헤이타는 여태까지 방문한 도시들 가운데 가장 크고 번영한 수도의 장관에 도무지 눈과 귀와 고개를 가만히 둘 수 없었다. 섬에서 나왔을 때도 태어나 처음 방문하게 된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대한 신기함에 이곳저곳 시선을 돌리며 구경하기 바빴으나 수도는 그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갖가지 구경거리들로 가득 차 있어 코헤이타로서는 구경하는 것이 조금 힘들 정도였다. 풍요로움과 멋, 윤택함을 고루 갖춘 도시는 과연 수도라는 명칭에 어울리는 모습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히야, 대단하구만!”
“뭐, 수도니까요. 지금까지 지나온 다른 도시들 하고는 역시 다르죠?”
“응, 그렇네!”
첫 나들이를 나온 아이처럼 눈을 빛내며 이곳저곳을 구경하느라 바쁜 코헤이타를 타키는 기쁘게 웃으면서 지켜봐주다가 하늬바람이 불어오자 얼굴을 간질이게 하는 잔머리들을 귀 뒤로 쓸어 넘겼다.
한 달 전, 불의의 습격으로 그 전까지 높게 올려 묶고 다녔던 붉은 적갈색의 머리카락이 단칼에 잘려나가 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자칫하면 머리카락이 아니라 목이 날아갈 뻔 한 사태에 타키는 등골을 전율시키는 오싹함과 오랜만에 상기되는 죽음에 대한 공포에 몸을 떨기 바빠 자신의 어깨와 주변에 후두둑 떨어지는 옛 자랑을 아쉬워 할 틈도 없었다. 그렇게 얼어버린 타키를 대신해 반응을 보인 쪽은 코헤이타였다. 자신이 누구보다도 지키고자 결심했던, 반드시 지켜내어 털 끝 하나라도 상하게 해서는 안 되는 존재가 하마터면 자신의 부주의로 목이 잘려나갈 뻔 했다. 그리고 타키의 머리카락이, 그 스스로가 자랑으로 여기며 코헤이타 본인도 처음 타키와 만났을 때부터 제 시선을 강렬하게 사로잡은 인연의 실과 같은 적갈색의 머리카락이 잘려나가자 코헤이타는 그것으로 망설임 없이 이성을 버렸다. 그 때는 정말 뭐라고 말해야 할지. 타키는 아직은 어색한 단발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감히 타키의 머리카락을 자른 상대를 기어이 잔혹하게 죽여 버린 코헤이타를 떠올리자마자 바로 기겁하며 고개를 붕붕 저었다. 평소에는 섬에서 홀로 격리되어 살아온 탓에 세상물정 순박한 시골 청년처럼 굴다가도 가끔씩 보여주는 짐승을 닮은 호전적인 모습을 엿봐서 타키도 그의 본성이 따로 있다는 것을 예감했지만, 설마하니 이정도로 목줄 풀린 흉견처럼 나올 줄은 몰랐기에 그야말로 식은땀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타키는 코헤이타를 미워하지도, 무서워할 수도 없었다. 싸움이 끝나고 자신의 잘린 머리카락을 한 올 남기지 않고 전부 주워와 비 맞은 강아지처럼 축 처진 모습으로 미안하다고 중얼거리는 남자를 미워하거나 두려워해서 거리를 두는 방법 따위, 타키는 알지 못했다. 다만 다음부터는 도를 지켜달라는 주의를 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어디로 갈 건데?”
“아, 일단은 제 저택으로 먼저 가서 짐부터 풀도록 해요.”
한창 한 달 전의 일을 회상하던 타키는 먼저 앞서가 자신을 부르는 코헤이타의 목소리에 비로소 의식을 현재로 돌려놓았다. 그 후 두 사람은 타키의 저택이 위치한 무가 거리로 이동했다. 북적이던 시장가와는 달리 귀족과 관리들이 사는 구역이라서 그런지 무가 거리는 상당히 엄정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정갈하게 깔려있었다. 지나치는 건물마다 고풍스럽고 신분과 직위에 걸맞은 디자인을 갖추고 있어 헤에 하는 감탄사와 함께 이리저리 둘러보던 코헤이타는 불현 듯 자신의 앞에 마주한 어느 한 저택에 등장에 풋 소리를 내며 타키보다 먼저 앞서 내달려 보란 듯이 손가락으로 저택을 가리켰다. 코헤이타가 발견한 저택은 보라색으로 칠해진 기와를 얹고, 그 위에는 비까번쩍한 황금으로 큼직하게 만들어진 샤치호코(호랑이(또는 용)의 머리와 물고기의 몸체를 지닌 일본의 상상의 동물. 주로 지붕 장식에 많이 발견된다.)가 빽빽이 들어차 있으며 담벼락에는 붉은 장미꽃들이 과하게 장식되어 있는, 그야말로 정갈한 무가 거리의 분위기를 아주 훌륭하게 망치고 있는 저택이었다. 저택의 전경을 살피던 코헤이타는 바로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리며 뒤에서 걸어오고 있는 타키에게 외쳤다.
“푸하하하하! 뭐야 저 저택은!! 우와, 이정도로 분위기 파악 못하고 튀는 저택은 지금껏 여행하면서 처음 본다! 크하하, 뭐냐고 저 샤치호코들은! 이쯤 되면 악취미일 정도네. 너무 화려해서 오히려 괴상하게 보일 정도라고. 아하하하하! 나도 남 말 할 처지는 못 되지만 이정도로 우스꽝스럽게 혼자 분위기 따로 노는 건 처음 봐. 얼마나 눈에 띄고 싶은 거야. 크흐흐흐. 어이, 타키. 너라면 저 저택 주인이 누군지 알고 있지? 저 저택 누가 주인이야? 분명 저 저택만큼이나 분위기 파악 못하는 이상한 녀석일게 분명한데.”
“제 저택입니다.”
아무 감정 하나 드러나지 않은 무척이나 덤덤하고 깨끗한 얼굴과 평탄한 어조로 코헤이타가 실컷 비웃던 그 문제의 저택의 앞에 서서 당당히 선언하는 타키의 모습과, 그 안에서 은밀히 새어나오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코헤이타는 바로 사태를 깨닫고 얌전히 웃음을 거두고 입을 다물었다.
아무튼, 어찌해서 타키의 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예정대로 짐을 풀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사전에 전언을 받은 대로 ‘그’가 있는 저택으로 향했다.
타무라 미키에몬. 막부의 충신으로 알려진 무가 타무라 가문의 일원이자 현재 막부 직할 감찰소 총감독 직에 일임되어 있는 그는 과거 타키와 오랜 세월 동안 정계에서 첨예하게 대립하여 서로에게 크고 작은 피해를 안겨준 전적이 있는, 막부에서는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타키의 정적이었다. 그리고 여행을 시작하기 몇 달 전, 마침내 타키는 그를 완전히 실각시켜 막부에서 쫓아내는 것에 성공했다. 여행의 계획은 오래 전부터 세웠으나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그가 위로 올라갈 수도 있었기에 사전에 싹을 잘라낸 결과물이었고, 그렇기에 타키도 계획이 성공하게 되자 안심하고 여행을 나설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여행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불사조’라고 불리는 그답게 곧바로 자신의 세력을 규합시켜 다시 복직할 뿐만 아니라 감찰소 총감독이라는 거창한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여행 도중 이 소식을 들은 타키는 긴급히 예정을 변경하여 자신의 숙적이 돌아온 것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 수도로 돌아왔다. 그리하여 자타가 인정한 두 명의 정적은 몇 개월 만에 타무라 가문 저택 내 미키에몬의 방 안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보게 되었다. 턱을 괴고 한쪽 무릎을 세운 자세로 손님을 맞이하는 미키에몬과 반대로 정갈하게 예를 갖춰서 무릎을 꿇고 앉은 타키. 타키의 한 발짝 뒤에 앉아있던 코헤이타는 오늘 처음으로 얼굴을 보게 된 미키에몬을 살펴봤다. 고수머리로 높게 묶은 옅은 갈색머리와 홍옥과 같은 붉은 눈동자, 귀공자답게 새하얀 피부와 사내치고는 조금 가늘다고 할 수 있는 체구. 전체적으로 타키와는 어딘지 모르게 분위기가 비슷한 외견을 소유하고 있었다. 음, 저쪽도 여장을 하면 잘 어울릴지도. 코헤이타는 미키에몬에 대한 첫 인상을 그렇게 결정 내렸다.
“풉.”
한창 흐르던 정적을 깬 것은 미키에몬이 참다못해 웃음을 터트리는 소리였다.
“푸하하하! 아하, 아하하! 이거 보고로 듣고 예상한 것보다 더 잘 어울리잖아, 그 머리모양! 크하하하!!”
못 본 사이에 파격적으로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돌아온 타키의 모습이 우습고 신기했는지 상대에 대한 예의와 배려는 전혀 개의치 않아하며 부채로 땅바닥을 두드리며 실컷 웃어버리는 미키에몬과는 반대로 타키는 침착한 무표정으로 미키에몬이 자신의 비웃음을 멈출 때까지 아무 말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렸다. 여기서 감정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자신의 패배라는 것을 잘 알기에 유지하는 인내심과 침착됨에서 비롯된 대처였다. 이윽고 웃을 대로 전부 다 웃어버린 미키에몬이 조금씩 진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타키는 그제 서야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네 녀석에게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다.”
“뭔데.”
“내가 항상 외치는 「체리오」라는 말이 원래는 잘못된 말임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
“하! 그걸 이제야 알아차린 거냐?”
“…역시나.”
코웃음과 함께 타키의 말을 긍정한 미키에몬의 반응에 타키도 이미 짐작을 한 것인지 잠시 예상했다는 듯한 미소를 짓더니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미키에몬에게로 걸어갔고, 미키에몬 또한 마찬가지로 자리에서 일어나 타키에게로 걸어갔다. 서로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던 두 사람은 마침내 중간 지점이 되어서야 서로의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밀착되어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동시에 지어 서로를 노려보게 되었다. 둘 다 본래는 성별이 같으나 미키에몬 쪽이 조금은 더 컸기에 타키가 그를 올려다보는 모습이 되었으나 타키는 겉으로는 여자 행세를 하고 있어도 그의 앞에서 일말의 기죽음 하나 없이 당당하게 팔짱을 낀 자세로 대면했고, 미키에몬도 날카로운 그녀의 기백에 전혀 물러서지 않고 능숙하게 맞받아쳤다.
“이번에야말로 네 녀석을 쓰러뜨린 줄 알았는데 끈질기게 또 기어 올라오다니 말이야. 그래봤자 네 녀석은 이 유능한 타키님에게 절대로 이길 수 없는데 말이야.”
“네 녀석의 수준 낮은 기책에 내가 쓰러질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지. 네 녀석의 허세가 얼마나 하잘 것 없이 재수 없는지를 만천하에 밝혀내기 전까지는 유감스럽게도 아직 물러날 수 없어서 말이야.”
“미키에몬 주제에 어림도 없지! 네 녀석이 날 쓰러뜨리려면 백만 년은 더 있어야 할 것이야. 여자 하나 이기지 못하는 한심한 사내 녀석의 능력 따위 이미 밑천이 다 드러났단 말이다. 아무리 몇 번이고 살아나도 다시 이 몸의 유능하고 눈부신 능력으로 추락시켜 줄 테니 포기하라고!”
“하, 웃기는 소리하지 마시지. 꼬리 백만 개 달린 요호와 같은 네 년을 굴복시킬 때까지는 이대로 죽을 수도 없지. 오히려 이번에야 말로 네 녀석을 끌어내려 줄 테니 각오 하라고.”
“어디 한 번 해보시지. 이 몸의 진정한 능력을 몇 번이고 마음껏 보여줘서 네 놈과는 격이 다르다는 걸 알려주마.”
그야말로 남자와 여자(실제로는 남자와 남자)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기 싸움에 그 광경을 한 발자국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코헤이타는 단순히 말로만 싸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본 싸움들 중에서 가장 긴장감 넘치고 보는 사람이 무서울 정도의 광경인지라 아무 말도 못하고 두 사람의 모습만 멍하니 지켜봤다. 그러더니 드디어 대화를 앞세운 신경전을 마친 것인지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서로와 눈빛 교환을 나누다가 호승심에 찬 멋진 미소로 제자리로 돌아가 착석하고는 방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태연자약한 얼굴로 서로를 다시 마주봤다.
“그럼 인사는 이정도로 하고 본론으로 들어갈까?”
“뭐, 그러도록 하지.”
“에, 방금 그거 인사였어!?”
일련의 기 싸움을 ‘인사’라는 말 한마디로 간단명료하게 정리해버린 두 남자 사이에서 코헤이타는 전혀 분위기를 쫓아가지 못해 두 사람의 얼굴만을 번갈아 살펴보기 바빴다.
(중략)
위험해. 진짜 위험해.
새빨간 경보음이 머릿속에서 시끄럽게 울려대는 것을 들으며 타키는 지금껏 여행에 있어서 최대의 수난이자 위기를 겪고 말았다. 원인은 바로 그와 함께 여행을 이어나가고 있는 파트너이자 경호원, 그리고 연인 사이라고 할 수 있는 코헤이타와 현재 두 사람이 머물고 있는 마을의 큰 도장을 운영 중인 나카자이케 가문의 당주, 나카자이케 쵸지. 이 두 사람의 관계로부터 시작된 위기였다.
여러 이유와 사정을 거쳐서 타키의 기책으로 본의 아니게 격투가의 입장으로 도장에서 문하생으로 지내게 된 코헤이타는 그 후로 매일 아침 숙소에서 나와 도장으로 향해 사범인 쵸지에게서 검술을 수행 받아 해질녘이 다 되어서야 돌아오게 되었다. 문제는 이 다음이었다.
“가까워. 아무리 일시적으로 도장 주인과 문하생 사이가 형성되었다고 해도 이건 너무 가깝잖아! 이제 얼굴 본 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폭군」이라는 이명이 잘 어울릴 만큼 타키도 감당하기 힘들 만큼 호전적이고 활기 넘치게 다니는 코헤이타와 대조적으로 쵸지는 말수가 적고 정적인 움직임에 항상 차분함과 예식을 겸비하고 있었다. 얼핏 봐서는 서로 정 반대의 상성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이지만, 그렇기에 역으로 합이 잘 맞을 수가 있었던 모양이다. 두 사람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서로 대화가 묘하게 잘 맞으며 친근한 분위기를 형성하더니, 얼굴을 맞대는 날이 늘어날수록 교감이 형성되고 관계도 가까워져 이제 코헤이타는 수행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면 이야기의 대부분을 쵸지와 있었던 일로 채우게 되었다. 그것도 타키로서는 절망적이게도 평소보다 더욱 밝은 얼굴을 하고서 말이다. 덕분에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타키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는 척을 하면서 뒤틀린 심사를 쓰리게 진정시키면서 자신이 질투 같은 걸 하는 게 아니라고 필사적으로 자기 합리화를 거듭 세워야만 했다.
아냐, 이정도면 그래도 뜻이 잘 맞는 남자들끼리 만나서 기뻤다고 할 수 있어. 코헤이타 씨도 싸움이 아닌 평화로운 상황 속에서 자신과 잘 맞는 동년배의 남자와 만나는 것은 처음이니까. 하지만… 하지만 며칠 전의 그 장면은…!
때는 며칠 전, 코헤이타가 쵸지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수행에 돌입한 첫 날이었다. 코헤이타는 약속한대로 쵸지가 있는 도장으로 향했고, 타키는 그 모습을 배웅해주다가 숙소에서 할 일이 없어 무료했던 차에 코헤이타를 기뻐서 놀라게 해주자는 의도로 몰래 도장으로 향했다. 절로 가벼워지는 발걸음으로 걸어 나가며 타키는 수줍은 미소로 자신을 보고 반갑게 맞이할 코헤이타의 웃는 얼굴을 떠올렸다. 평소의 침착하고 부끄러움에 코헤이타의 스킨쉽을 받아들이기 버거워하는 그로서는 드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도장에 도착한 타키가 목격한 것은, 코헤이타와 마주앉아 그의 뒷머리를 잡고 쓰다듬은 쵸지와, 그런 쵸지의 손길을 가만히 받아들이기만 하는 코헤이타의 뒷모습이었다. 심상치 않은 손길, 아무리 봐도 상식선 이상으로 가까운 서로의 얼굴. 영락없는 밀회에서의 입맞춤 현장이었다. 만일, 타키가 정말로 여자였더라면 자신이 본 것을 오해라고 여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타키는 복잡한 사정으로 여장을 하고 있을 뿐 육체와 내면은 틀림없는 남성이었고, 코헤이타도 그 사실을 여행 시작부터 알게 되었으며 여행 도중에 그것을 타키에게 고백하여 타키도 코헤이타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두 사람은 연인 관계를 이어왔다. 어차피 남색이 허용되는 시대이고 타키는 그런 것에 편견이 없으며 코헤이타는 섬에서 자라온 터라 애초에 그런 편견이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코헤이타는 남자인 타키를 여전히 사랑한다고 말했고, 타키도 처음부터 자신에게 반하라는 명령을 내린 만큼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쵸지와 코헤이타, 두 동성의 모습에서 타키는 자연스레 ‘바람’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었다.
“아아악!! 아름답고 우수하며 뛰어난 이 몸께서 어쩌다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거야!!”
이불 속에 파묻혀 끙끙대던 타키는 결국 견디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베게로 이불을 퍽퍽 내려쳤다. 자존심과 자만이 끝없이 높은 타키로서는 자신이 이 상황 속에서 질투라는 미천한 감정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용납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타키는 도무지 지금의 자신을 다스릴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의 밀회를 목격하고 난 뒤에 타오르기 시작한 질투의 정염을 꺼뜨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코헤이타를 빼앗길까봐 두려웠다. 그가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까봐 무서웠다. 무섭고 두려워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혼자로 남겨지는 것이 이렇게나 무섭게 느껴지기는, 가문이 망하고 혈혈단신으로 세상에 던져졌을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아니 그 때도, 복수라는 불꽃의 열기에 몸을 맡겨 외롭다는 것을 느낄 틈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뭐야. 이 타키야샤마루님께서 언제 이렇게까지 약해진 거냐고….”
이불자락을 말아 쥐면서 작게 읊조려진 타키의 목소리는 더없이 처량하게 들려왔다.
코헤이타가 숙소로 돌아온 때는 해질녘을 넘어 거의 저녁때가 다 되어서였다. 코헤이타는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방에 준비되어 있는 저녁식사와 상 앞에서 가만히 앉아만 있는 타키를 무시한 채 오늘도 쵸지와 함께 후련히 땀을 흘리며 수행을 한 것이 보람차다는 미소를 만연에 띠우며 타키와 식사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제 이야기만을 주절주절 떠들기 시작했다.
“이야, 오늘도 굉장했어! 쵸지 녀석 정말 대단하더라! 그 녀석 검술은 뭔가 심오하고 대단해 보여서 나까지 진지하게 마주하게 된다니까.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쵸지하고 수행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코헤이타 씨.”
“응?”
“저녁밥, 준비 했는데 안 드세요?”
“어? 뭐야, 타키 아직도 밥 안 먹었어? 난 쵸지랑 같이 도장에서 밥 먹고 왔는데.”
“그래서… 그래서 저랑 같이 식사를 하지 않겠다고요?”
“타키?”
“제가…제가 계속… 계속 코헤이타 씨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에? 타, 타키?”
코헤이타의 무심함과 배고픔을 참으면서까지 기다린 것이 헛수고가 되었다는 점에서의 분함, 그리고 결정적으로 감히 자신을 무시하고 쵸지에 대한 이야기만을 일장연설 떠들어 놓는 코헤이타에 대한 질투가 임계점을 넘어 기어코 폭발하고 만 타키는 그대로 두 눈 가득 눈물이 고여 씩씩거리는 새빨간 표정으로 타키에게 어린애처럼 일방적으로 쏟아내고 말았다.
“언제부터 쵸지 씨하고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된 겁니까! 저를 곁에 두고 눈앞에서 그렇고 그런 파렴치한 짓거리를 하다니!! 게다가 이젠 식사까지! 이제는 함께 무릎을 맞대고 식사를 하면서 살림을 공유하는 사이로까지 간 겁니까!? 저하고의 사이는 그냥 단순한 불장난이었냐고요!!”
“아니, 타키. 의미를 모르겠거든? 일단 진정하고….”
“게다가 도장에서 돌아오면 항상 쵸지 씨 이야기만 하고! 도장에서는 그, 그, 그런 파렴치한 짓까지 했으면서!!”
“아까부터 파렴치한 짓이니 뭐니 하는데 나는 쵸지랑 아무것도 안했다고.”
“아아, 그러시겠죠! 꼭 여자하고 바람난 남자들 변명이 다 똑같지 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뻔뻔하게 지리멸렬한 변명만 하고! 여자를 무슨 바보로 아냐고!!”
“아니, 너는 남자잖아. 그리고 난 네가 말한 대로 열흘 간 도장에 가서 쵸지의 문하생으로 수련을… 아! 타키, 이거 좀 위험할지도 몰라.”
“위, 위험하다고요?!”
어린아이와 닮은 투정을 부리며 벌써 자기 멋대로 단정 지으며 이런저런 오해와 망상을 곁들인 이야기에 코헤이타는 드물게 타키의 말에 밀리면서도 침착하게 그를 말려보고자 자기변호에 힘쓰던 중 어떤 사실을 깨닫고 타키에게 위험을 경고하자 타키는 바로 깜짝 놀랐다. 다만, 코헤이타가 말한 위험을 다른 식으로 해석한 것이 문제였다. 타키는 한창 이리저리 날뛰던 탓에 옷매무새가 흐트러지고 머리가 헝클어진 것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아하며 재빨리 코헤이타의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반쯤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속사포처럼 제 심정을 쏟아냈다.
“무, 물론 제가 먼저 코헤이타 씨에게 격투가의 신분으로 도장에 들어가 문하생이 되어 달라 부탁을 한 거지만, 그것으로 코헤이타 씨의 가문과 오의를 무시하고 낮추게 봤다는 비난도 마땅한 것이며 거기에 불만을 품고 있는 것은 당연하고, 그것으로 정나미가 떨어졌다면 저도 딱히 할 말은 없지만 저는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깊은 뜻을 두고 선택한 일인데 일단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야지 이렇게 일방적으로 말씀하시면 저는…저는…!!”
감정이 격화되어 제 말을 전부 끝내지 못한 타키는 평소의 자신감 넘치고 또래에 비해 어른스럽고 침착한 모습은 어디에 버려두고 왔는지 바로 때를 쓰는 어린아이처럼 와아앙 하고 울면서 코헤이타의 가슴팍을 퍽퍽 두드렸다. 주먹으로 두드린다고 해서 코헤이타가 그것에 아파할 위인도 아니었고, 타키의 주먹은 솜 주먹이나 다름없기에 아픔은커녕 간지러울 정도였다. 그리고 울먹이면서 주먹으로 툭툭 두드리는 타키의 모습은 이 상황에서 이런 감상을 품기에는 어울리지 않고 상대에게 무례한 감상일수도 있지만, 상당히 귀여웠다. 이렇게나 어리게 보이는 타키는 처음이라 귀여웠다. 코헤이타는 그렇게 생각하며 당장 타키를 끌어안아 귀엽다는 칭찬을 연발해주고 싶었으나 일단은 오해를 풀어 이 상황을 정리하는 것이 우선이기에 코헤이타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타키의 말에 답했다.
“아니, 내 말은 그런 게 아니라. 이미 그 문제는 이미 끝났으니까.”
“끄, 끝나다니! 그게 무슨 소리신가요!! 지금껏 저희들이 쌓아온 관계를 이런 일방적인 통보로 끝내다니 그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제가 지금껏 이 열흘 간 얼마나 불안으로 밤을 지새우고 몸을 애태웠는지는 알고서 하시는 선언이냐고요!!”
또 코헤이타의 말을 왜곡해서 들어버린 타키는 이제 코헤이타의 가슴팍을 때리는 것을 관두고 그의 옷자락에 매달려 보름달처럼 큼직한 두 눈망울에 구술과 같은 눈물을 대롱대롱 매달고 애원하기까지에 이른다. 아무래도 코헤이타와의 관계가 일방적으로 정리되어 자신이 버림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과 분위기에 휩쓸린 나머지 그의 이성이 완전히 날아가 버림으로서 만들어진 모습 같았기에 코헤이타는 그런 타키의 모습도 귀엽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이상 오해가 번졌다가는 당장 숙소 밖으로 뛰쳐나가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기에 코헤이타는 타키와 대화를 나누는 것을 포기하고 오해를 풀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을 선택했다.
“코헤이타 씨는 그렇게 제 마음을 몰라주시고 항상 무심하게 나오시니까…!!”
“타키.”
“뭡니까!! 아직도 변명이 남아있는….”
코헤이타가 선택한 해결책은, 다름 아닌 입맞춤이었다.
갑자기 저에게 다가와 입을 맞추는 코헤이타의 돌발적인 행동에 타키는 그에게 매달려 오해에 심취해 따지는 것도 잊어버린 채 더욱 커져버린 눈동자로 자신에게 달려든 코헤이타를 빤히 보다가 자신의 입술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능숙하게 혀를 휘감아 뒤섞은 코헤이타의 혀 놀림에 금방 정신을 빼앗겨 신음소리와 함께 그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다다미 위로 쓰러졌다. 아, 안 돼! 이런 식으로 어물쩍하게 넘어가서는 안 되는데…! 이성은 몇 번이고 몸을 일으켜 코헤이타를 밀쳐내라고 힘껏 외치고 있지만, 이미 그의 몸은 코헤이타의 혀와 숨결, 그리고 자신을 강렬하게 내려다보는 눈빛에 처음부터 사로잡히고 말았다. 여행을 시작하고 수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함께 몸을 섞는 일도 자연히 생겨났다. 처음에는 자신의 성별을 들키게 될까봐 적정선 이상의 접촉은 타키 쪽에서 엄격히 밀어냈지만, 코헤이타가 사실은 처음부터 타키의 비밀을 알고 있음이 들어난 뒤로 서로에게 감출 것이 없게 되자 그것을 계기로 더 이상 서로를 막아낼 것이 없어져 코헤이타는 몇 번이고 타키의 위에 올라타 그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침범했고, 타키도 그런 코헤이타를 거부 한 점 없이 모든 것을 받아들여줬다. 그런 관계를 수어 번 가지다보니 이제는 입맞춤 하나만으로 몸이 저절로 반응하기에 이르는 단계에까지 도달하게 된 것이다. 서로의 혀와 타액이 뒤섞여지고, 그렇게 생겨나는 질척이는 소리와, 키스에 열중하는 와중에도 아래로 부산히 움직이는 커다란 손에 타키는 점차 몸이 달아오르면서 이제는 자신이 무엇으로 화를 내어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가 점차 흐려져 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 이어졌던 키스는 타키의 숨이 한계에 도달한 적당한 때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아직 끝내기 아쉽다는 여운으로 끈적거리며 떨어진 두 사람의 입술은 서로의 타액으로 번들거려 잠시 아무 말 없이 상대의 얼굴만을 바라봤다. 그리고 먼저 입을 연 쪽은 코헤이타였다.
“자, 이제 사소한 건 신경 쓰지 마. 타키.”
이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듯 만족스럽게 웃어버리는 코헤이타의 모습에 타키는 잠시 분하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다가 이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버리며 잔뜩 기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치사해요, 코헤이타 씨.”
“냐하하.”
여기에 또 한 번 두근거려 홀라당 넘어가버리는 자신이 얼마나 한심스러운지 충분히 자각하고 있음에도, 타키는 코헤이타의 말대로 이전의 일을 ‘사소한 일’로 받아 넘길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