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밀이 많다.
여기서 말하는 ‘비밀’이란 나 자신에 대한 비밀이 아닌 타인에 관한 비밀이다. 물론 나에게도 자신만이 알고서 꽁꽁 감춰놓고 있는 비밀들이 존재한다. 그것들은 의식의 밑바닥에 얼룩처럼 지저분하게 그려져 있었다. 의식하지 않으면 눈치 채지 못할 희미한 얼룩이라 이따금 어, 여기에 얼룩 같은 게 있었나? 하는 식으로 비밀의 존재를 깨달을 때가 있지만. 아니면 타인의 비밀이 하나 둘씩 늘어나 쌓여가다 보니 자연스레 나의 비밀을 감추게 된 건지도 모른다. 어차피 내 비밀 같은 건 아무도 알고 싶지 않은 시시껄렁한 것들뿐이라 아무래도 좋지만. 원래 비밀이라는 것은 잊어지는 것이 가장 좋은 거다.
내가 가지고 있는 타인의 비밀이라는 것은, 쉽게 말해 타인이 남몰래 숨기고 싶어 하는 어떤 사실을 가리킨다.
대개는 아무 생각 없이 우연의 손길을 무심코 따라가니 발견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기이하게도 어렸을 적부터 눈썰미가 좋은 것인지 형제들의 은밀한 행위를 포착할 기회가 많았다. 토도마츠가 냉장고에서 몰래 카라마츠 간식을 꺼내 먹거나, 쥬시마츠가 쵸로마츠 형의 책에 주스를 엎어서 허겁지겁 숨기는 모습이나, 쵸로마츠가 집안에서 뛰놀다가 엄마가 아끼시는 비싼 화장품을 죄다 쏟아버려 그것을 숨겼는데 운 없게 카라마츠가 그걸 발견해서 때 마침 그 모습을 발견한 엄마가 오해해버려 결국 카라마츠가 바보같이 죄를 뒤집어쓰게 된, 어렸을 적에는 그런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나는 그 비밀들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사실 몇 번은 말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내 말을 제대로 들어준 사람은 없었다.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나는 비밀이라는 무게감이 주는 부담에 더욱 입을 열기 힘들어 했었고, 우물쭈물 말을 못하는 내 모습에 먼저 답답해하며 떨어져 나간 쪽은 항상 상대였다. 그런 패턴이 반복되자, 나는 고발하는 것을 관뒀다. 진실을 알려주려 해도 아무도 듣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일까. 게다가 내가 쥔 비밀들은 협박 거리도 안 되는 시시한 것들에 불과했다. 그들은 내가 먼지 같은 비밀을 하나도 빠짐없이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그 커다란 비밀 속에 여러 자질구레한 비밀들이 있었다. 어느 순간, 나는 그 비밀들을 끌어안고 멀찍이 구석으로 들어가 다른 비밀들을 주워 담는 일을 즐겼다.
오소마츠 형은 그런 내 비밀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는 내가 가족들의 사소한 비밀들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진즉에 눈치 채고 있었다. 내가 우연의 힘을 빌려 빵부스러기처럼 떨어진 비밀들을 줍는다면, 오소마츠 형은 타고난 눈치와 감으로 상대의 비밀을 간파해낸다. 오소마츠 형이 알고 있음직한 비밀들은 내 것과 달리 진짜 비밀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은밀하고 위험한 사실들이 태반이었다. 구체적인 내용이 뭔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라도 함부로 꺼내면 우리들의 관계 자체가 송두리째 뒤바뀔 수 있을 것 같은 비밀을 오소마츠 형은 아무렇지 않게 거머쥐고 있었다. 그에 비해 내가 쥔 비밀이라고 하는 것은 비밀이라 할 것도 없는, 아무 가치도 없는 구질구질한 허깨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오소마츠 형은 그렇게 알아낸 비밀들을 감쪽같이 숨겨놓고 평소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카라마츠 이상으로 탁월한 연기력이었다. 그러나 가끔씩, 혼자 있을 때만 보여주는 싸한 무표정을 어쩌다 발견할 때면 그가 품고 있는 비밀의 깊이를 감히 가늠할 수 없어 뒷목이 쭈뼛거리고 만다.
그런 오소마츠 형에게 나는 어떤 동생일까.
어렸을 적, 우연히 부엌 앞을 지나가다가 오소마츠 형이 찬장을 뒤지는 모습을 발견했다. 찬장 안쪽까지 들어가서야 형이 꺼내든 것은 쵸로마츠 형과 토도마츠가 몰래 숨겨놓은 과자들이었다. 찾았다!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사람마냥 환호성을 지르며 전리품을 하늘 높이 치켜든 오소마츠 형은, 찬장 밖으로 나오고 나서야 나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아차. 이런 상황에서 눈이 마주친 적은 처음이라 나도 모르게 몸이 굳어버렸다. 마치 내가 오소마츠 형보다 더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았다. 나는 도망칠 생각조차 못하고 그대로 굳어버린 채 진땀을 뻘뻘 흘리며 머뭇머뭇 형의 시선을 피했다. 어쩌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은 그것밖에 없었다.
“이치마츠.”
형이 나에게 손을 까닥했다. 이리와. 그 손짓을 받고서야 굳었던 몸이 풀려 그에게로 다가갔다.
내가 형 앞에 쭈그려 앉자 오소마츠 형은 검지를 입에 갖다 대고서 쉬ㅡ하는 소리를 냈다. 입가에는 여전히 장난끼 넘치는 미소가 선명했다.
“알았지? 이건 우리 둘 만의 비밀이야.”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찌이익. 과자 봉지를 뜯는 소리가 났다. 그 날 나는 오소마츠 형과 함께 그 자리에서 과자를 다 먹어치웠다.
그 날을 기점으로 해서 나와 오소마츠 형 사이에 그런 일들이 반복해서 일어났다. 형제들이 숨겨놓은 과자들을 몽땅 먹어 치는 일부터, 형제들에게 해코지 하는 녀석들을 혼자서 상대하는 일까지 그 범위는 다양했다. 오소마츠 형이 혼자서 어떤 일을 남몰래 처리할 때마다 나는 기연의 힘을 빌려 그것을 목격했고, 오소마츠 형은 시선 끝에 있는 내 모습을 볼 때마다 단 한 번의 당황 없이 그저 어렸을 적처럼 검지를 입술 위에 갖다 대고는 쉬ㅡ하는 소리를 냈다. 비밀이야, 이치마츠. 우리 둘 만의 비밀. 그리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나와 형 사이에서만 사용되는 암호였다. 그런 식으로 둘만이 공유하는 비밀은 시간이 흐를수록 흐트러짐 없이 쌓여갔고, 암묵적으로 세워진 둘만의 약속은 한 번도 깨진 적이 없었다. 서로가 직접 그것을 말로 꺼내 확인한 적은 없었고, 비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었다. 비밀은 다만 비밀인 채로 묻어두는 것이다. 둘 사이에 공유되는 비밀이 있다는 것은 오로지 오소마츠 형의 검지와 내 고갯짓으로만 확인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했다.
한때는, 자만했었다. 오소마츠 형의 비밀을 나만이 알고 있다는 그런 어리석고 얕은 자만 말이다.
날이 추워지면서 해가 짧아졌기에 초저녁인데도 거리는 벌써부터 어둑했다. 골목에 사는 길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고 큰 길로 나오니 탁한 빛의 네온사인이 이리저리 뒤섞여 울렁거렸다. 퇴근 시간 때라 거리에는 회사원으로 추정되는 정장 차림의 남녀가 많이 보였다. 골목길 앞에서, 섞여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 인파들을 멀찍이 지켜보다가 슬리퍼를 끌고 발걸음을 옮겼다. 집으로 향하는 길목에 유흥가가 있는 탓에 인파는 줄어들지 않고 묘하게 늘어나기까지 했다. 여러 의미에서 지나가기 싫은 길이었지만, 집으로 가기 위한 빠른 지름길이기에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둘 곳 없는 시선을 방황한 채로 내버려 두고, 어디로 향하는지 종잡을 수 없는 발걸음을 막연히 옮기고 있을 때, 또 다시 우연의 여신이 불쑥 나타나 내 손을 잡고 억지로 비밀이 있는 곳으로 이끌었다.
유흥가의 어지러운 불빛. 기이한 불빛은 망막에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어 모든 것을 분간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어떤 중년 남성과 함께 팔짱을 끼고 모텔 안으로 들어가는 젊은 남자가 입은 파카의 붉은 빛만큼은 어느 것보다 순수하고 선명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눈이 마주쳤다.
쉬ㅡ
가느다란 긴 검지가 요염하게 휘어진 입가에 맞닿았다.
우리 둘 만의 비밀이야.
그리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얼마나 어리석은 자만을 가졌던가.
자신은 공범도 뭣도 아녔다. 오소마츠 형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생각을 감히 품다니. 실상 자신도 그에 대해서 하나도 알지 못했다. 그의 비밀의 일부분을 알아낸 것만으로도 이렇게 혼란스러운데 무엇을 안단 말인가. 그럼, 오소마츠 형에게 자신은 뭐였을까. 우리 둘 사이에 쌓아온 비밀들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비밀은, 우리 둘 만이 알았던 비밀이 아니었던 건가?
이번 비밀도 다른 것들과 같이 묻어두고 넘어가야 할까. 하지만 이번 것은 차마 묻고 넘어가기가 망설여졌다. 그렇다고 지금까지의 불문율을 깨뜨리고 물어보기도 무서웠다. 오소마츠 형과 쌓아온 은밀한 관계가 무너지는 것도, 비밀의 실체를 파헤치는 것도, 또 다른 비밀을 알아내는 것까지도. 나는 한동안 2층 방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낯선 아저씨와 모텔 안으로 들어가는 오소마츠의 잔상을 반복해 그려내며 여태껏 쌓아온 비밀들을 화풀이 삼아 마구잡이로 헤쳤다. 혼란 안에는 분노가 있었고, 분노 안에는 혼란이 있었다. 오소마츠 형에게 그런 비밀이 있었다는 사실이 혼란스럽고, 척 봐도 살집이 두터운 아저씨에게 비비적거리는 오소마츠 형의 아양에 화가 났다. 어쩌지. 나는 다시 어렸을 적, 오소마츠 형이 몰래 과자를 꺼내 먹는 장면을 발견한 아이처럼 그런 생각 밖에 하지 못했다.
그렇게 쌓아둔 비밀들을 치우고, 내던지고, 파헤치는 일을 끊임없이 이어간 끝에, 밑바닥이 보였다.
…어라, 이런 곳에 얼룩이 있었나.
“이치마츠.”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부스스한 머리를 들어 올려다본 시선이 다다른 곳에는, 오소마츠 형이 있었다.
오소마츠 형은 나와 달리 눈치가 좋아서, 타인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진실을 한 발 앞서서 알아채곤 했다. 서로의 관계를 송두리 째 바꿔버릴 수 있는 위력을 지닌, 그런 깊숙한 비밀들을,
처음부터 오소마츠 형과 나 사이의 비밀은 하나 밖에 없었다.
시선이 향하던 위치가 순식간에 반전되었다. 처음으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오소마츠 형의 얼굴은 생소했지만, 흐트러진 머리카락과 조금 놀란 탓에 살짝 커져버린 동공을 보니 그저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놀란 것도 잠시, 역시 형은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소리 없는 미소를 자신 있게 드러냈다.
헤에, 뭐야. 역시, 알고 있었잖아. 나도 모르게 히죽 웃음이 나왔다.
쉬ㅡ 이번에도 잇새로 바람이 새어나가는 소리가 났다. 그러나 입술에 닿아진 것은 오소마츠 형의 검지가 아닌, 내 입술이었다. 검지를 대신해 고개를 들어 내 입술에 살짝 입을 맞춘 오소마츠는 꼭 어렸을 적의 짓궂은 미소 그대로 나에게 속삭였다.
“알았지? 이건 우리 둘 만의 비밀이야.”
이번에도 어김없이,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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