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해, 오소마츠 형.”
첫째 날. 쵸로마츠가 나에게 고백했다.
흔해 빠진 상투적인 비유이긴 하지만, 눈을 감으면 그 때의 쵸로마츠의 모습이 또렷이 그려졌다. 고개를 땅에 박을 기세로 푹 수그렸지만 그래도 완전히 가릴 수 없었던 붉은 기와 새빨갛게 타오르던 귓불, 약간 고동빛이 섞여 들어간 검은 빛깔의 둥그스름하고 가지런히 빗어진 정수리, 지푸라기 잡듯이 옷소매를 쥐어짜듯이 말아 쥐고 있는 새하얀 손, 가늘게 떨리고 있지만 그래도 더듬거림과 머뭇함 없이 올곧은 발음으로 제 마음을 한 문장으로 응축시킨 목소리. 나에게 고백하는 쵸로마츠의 모든 모습들이 한데 모여 하나의 파노라마를 일궈냈다. 그 일련의 모습들에서 나는 감히 짐작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에게 이 말을 전하기 위해 너는 지금껏 얼마나 많은 갈등과 고뇌에 허우적거렸을까. 어른이 된 너는 누구보다도 상식을 중요시 여겼고, 우리들 중에서 세간의 시선을 가장 많이 의식하게 되었다. 그런 너라면 지금의 고백이 얼마나 아득한 배덕함을 머금고 있음을 족히 알 것이다. 그럼에도 너는 나에게 고백을 해줬다. 그 짧은 고백 하나에 너의 차고 넘치는 마음이 절실히 전해져왔다. 설령 그것이 불어나는 제 감정에 대한 압박감에서 비롯된 떠밀림이라고 해도, 나 또한 지금의 고백이 충분히 축복받지 못하는 것임을 이해하고 있음에도,
그래서 너의 고백을 받아들였다. 나 또한 오래 전부터 흘러넘치던 감정을 수습하는 것을 옛적에 포기하고 있었다.
그렇게 쌍방향의 애정인 것이 밝혀져 서로 받아들인 고백이지만, 극적인 일을 겪고도 나와 쵸로마츠 사이는 별반 달라진 것이 없었다. 기껏해야 우리들의 관계에서 ‘연인’이라는 단어가 추가된 정도가 다였다. 그러나 그 단어 하나만으로도 너와 앞으로 공유하고 싶고 경험하고 싶은 새로운 일들이 산더미처럼 늘어났다. 당장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걸 평생 살면서 전부 다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연인들 사이에서 위시리스트 같은 걸 만드는 이유가 이제는 이해됐다. 그러나 나는 조급하게 굴지 않았고, 너도 느긋한 내 태도에 대해 재촉하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시행할 수 있을지 없을지 불명확한 일에 애태우는 것보다는 사소하지만 네가 있어야지만 할 수 있는 일을 차근차근 실현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천천히 나아가는 대신 너와 발을 맞춰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깊은 의미를 두고 싶었다. 다행히도 그런 내 뜻을 너도 납득해줬다. 오소마츠 형이 좋다면 나도 그걸로 좋아. 그 말을 듣고 꼴사납게도 눈물이 핑 돌았다는 건 너에게는 비밀이었다.
둘째 날은 쵸로마츠와 손을 잡았다. 너와 내 손은 마치 처음부터 하나인 것처럼 꼭 맞춰졌다. 쌍둥이니까 손 모양도 똑같은 건 당연하겠지만 그것이 마치 운명과도 같았다. 너는 손이 차갑네. 내가 그리 말하자 쵸로마츠는 반대로 내 손은 따듯하다고 답해줬다. 서로 상반된 온도가 조화를 이루며 두 손 사이로 섞여들었다. 너의 손에 내 온기가 전해지고 있는 것이, 너의 한기가 내 손에 스며들고 있다는 것이 기분 좋았다. 우리는 서로의 손을 깍지 끼고 손의 감촉과 모양, 온기를 온종일 체감했다. 손바닥에 땀이 차오르고 깍지를 낀 손가락이 뻐근하고 저리기까지 하는데도 우리는 하루가 다 넘어갈 때까지 절대로 손을 풀지 않았다.
셋째 날은 쵸로마츠와 데이트를 했다. 데이트라고 해도 딱히 대단한 건 없었다. 그저 다른 연인들이 해보는 형식적인 것을 그대로 베껴 따라한 게 전부였다.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노래방을 가고, 나란히 거리를 걸었다. 이전에 간혹 시간이 맞아서 함께 놀러 다녔을 때와 달라진 건 생각보다 그다지 없었다. 그래도 너와 데이트를 한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색달라보였고, 저절로 들뜨게 되었다. 다행히 너 또한 마찬가지인지 하루 종일 웃는 낯으로 함께 즐거워해줬다. 해가 저물고 밤이 되어 우리는 마지막으로 한산한 공원을 돌아다녔다. 오늘 즐거웠어. 나는 간략하지만 솔직한 감상을 남겼다. 나도. 쵸로마츠는 금방 내 말에 동감해줬다.
다음에는 다른 곳에도 가보자.
나는 그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자. 그러도록 하자. 목이 메여 직접 말하지 못했다는 점이 미안했다.
넷째 날은 쵸로마츠에게 기댔다. 우리는 수시로 자리와 역할을 바꾸면서 서로의 몸을 기댔다. 나는 너의 어깨에 기댔고, 너는 내 무릎에 누워 기댔다. 그러면서 우리는 서로의 얼굴이나 몸을 원 없이 감상하면서 만져댔다. 어차피 쌍둥이라 자신과 다를 게 없는 몸인데도 너는 신경지를 발견한 것처럼 내 몸을 탐구하는 열의를 보였다. 너는 나와 다른 점을 절대로 용납하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다른 점이 있다면 거기에 불만족스러워 했다. 쌍둥이라고 해서 다 똑같을 필요는 없잖아. 달래주는 내 말을 듣고도 너는 내 손을 끌어당겨 자기 뺨에 갖다 붙였다. 그런 네 모습이 귀여워 보여 나는 잔웃음을 흩뜨렸다. 서로 다르면 어떤가. 다른 점이 있기에 서로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아갈 수 있지 않을까.
다섯째 날은 쵸로마츠와 키스를 했다. 너는 내 앞에 정갈하게 무릎을 꿇고서 잔뜩 긴장한 티를 역력히 드러냈다. 누가 시코마츠 아니랄까봐. 역시 이번에도 내가 나서야겠구나 싶어 내가 먼저 짧게 쵸로마츠의 입술에 버드키스를 남겼고, 그 다음에 본격적으로 입술 사이로 혀를 집어넣어 진득한 키스를 시작했다. 하루 종일 입을 맞추면서 우리는 서로의 타액과 숨을 나눠가졌다. 서로의 숨소리만이 들리고, 입술의 감촉과 혀의 움직임, 그리고 뜨거운 숨결과 뒤섞이는 타액의 맛만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벅차올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너는 슬슬 요령을 터득했는지 주도권을 빼앗아가기 시작했고, 나는 순순히 그걸 넘겨주면서 너에게 절실히 매달렸다. 숨이 끊어지도록,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숨구멍이 틀어 막히도록, 입술이 퉁퉁 불어 터질 때까지 우리는 혀를 난잡하게 섞고 입술을 틈새 없이 부비며 숨결을 어지럽혔다. 키스가 거의 끝나갈 때, 나는 욕망으로 번뜩이는 너의 두 눈을 마주하면서 저항할 수 없는 아찔함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아, 차라리 이대로 너에게 숨을 빼앗겨 죽어버리고 싶었다.
여섯째 날은 쵸로마츠와 마주 안았다. 이불에서 벗어나지 않고 그저 나란히 누워 서로를 끌어안아 각자의 이야기를 나눠 갖는 것이 전부였다. 우리는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까지 구구절절 풀어놓았고, 시시껄렁한 말 한 마디에 자지러지도록 웃으면서 서로의 품에 기댔다. 나는 너의 가슴팍에 코를 깊이 묻어 묵직하게 퍼지는 너의 시원한 향을 맡았다. 민트라고 했던가. 알싸하면서도 청량하게 퍼져나가는 너의 향에서 그나마 가장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향을 골라 연상했다. 어떤 사람은 민트 향이 너무 강해서 싫다고도 한다. 코끝이 얼얼하도록 화끈할 만큼 독하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좋았다. 너를 연상케 하는 향이라 좋았다. 쵸로마츠가 내 정수리에 코를 박고는 중얼거렸다. 형에게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아. 너는 그것이 어쩐지 서글프다고 말했다. 그런가. 나에게서는 싸하지만 달콤함이 배어나오는 특이한 향이 난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아무렴 어때. 나는 민트향에 흠뻑 취해 내가 가졌던 향은 오래 전에 잊어버린 뒤였다.
그리고 일곱째 날이 되었다.
있잖아, 쵸로마츠. 그거 알아? 오늘이 네가 고백한 지 딱 일주일이 된 날이야. 그래. 우리가 연인 사이가 되고서 일주일이나 지난 셈이지. 일주일 동안 우리가 한 일은 정말 소소한 일 밖에 없었네. 손을 잡고, 끌어안고, 데이트도 하고, 키스도 하고, 그리고 지금처럼 섹스도 하고 있고. 동정이라서 그런지 너무 서툴러서 좀 아프긴 하지만 내 위에서 나만이 볼 수 있는 표정으로 내려다보면서 좋아한다고 말하는 널 보니까 아픈 것도 모르겠더라. 내 안에 치고 들어오면서, 내 깊은 곳에 너의 흔적을 남기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를 거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너를 받아들이는 그 순간들이 처음처럼 새롭거든.
쵸로마츠. 우리는 아주 오래 전부터 연인이었어. 맨 처음 네가 나한테 고백한 모습은 지금도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고? 고개를 땅에 박을 기세로 푹 수그렸지만 그래도 완전히 가릴 수 없었던 붉은 기와 새빨갛게 타오르던 귓불, 약간 고동빛이 섞여 들어간 검은 빛깔의 둥그스름하고 가지런히 빗어진 정수리, 지푸라기 잡듯이 옷소매를 쥐어짜듯이 말아 쥐고 있는 새하얀 손, 가늘게 떨리고 있지만 그래도 더듬거림과 머뭇함 없이 올곧은 발음으로 제 마음을 한 문장으로 응축시킨 목소리. 물론 나도 예전부터 너를 좋아했기에 기다렸다는 듯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았지. 우리는 순조롭게 연인이 되었고, 일주일 동안 여러 일들을 해봤지. 고백하지 못한 지난날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고 싶다는 양 너는 최선을 다했어. 그리고 일주일을 채우고 다음 날, 나는 네가 사고를 당해 응급실에 실려 갔다는 소식을 받았어. 그 당시의 일은 잘 기억나지 않아. 네가 사고를 당하고, 혼수상태로 줄곧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보던 일들은 떠올리고 싶지도 않거든. 그냥, 그냥 세상의 끝에 다다른 그런 절망감만 남아있어. 며칠이 지나고 너는 눈을 떴고, 네가 집으로 돌아간 사이에 나는 의사 선생님께 네가 일종의 기억장애를 가지게 되었다는 통보를 듣게 되었어. 너는 최근의 기억들을 전부 잊어버린 상태였고, 앞으로는 일주일 동안만의 기억을 가질 수 있다고 하더라. 다시 말해 일주일이 지나면 그 전주의 기억을 잊어버리고 다시 새로운 일주일을 시작한다는 이야기였지. 너는 앞으로 아무것도 모른 채 일주일의 시간을 계속 되풀이하면서 그 안에 갇혀 지내야 하는 신세가 된 거지. 어째서 일주일이었을까. 하필이면 사고가 있기 전날까지가 우리가 연인이 되기 꼭 일주일째가 되던 때라 더욱 우스웠어.
하지만 집에 돌아와 네가 나한테 고백을 했을 때, 비로소 너와 나 사이에 무겁게 얹어진 사태가 실감되더라.
그 후로 우리는 일주일 동안 연인이 되고, 일주일이 지난 다음 날에 너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나에게 고백을 하게 되었어. 계속, 계속 너와 일주일을 반복하고 있는 중이지. 너에게서 고백을 받고, 손을 잡고, 데이트를 하고, 키스를 하고, 섹스를 했던 그 반복이 지금까지 얼마나 되었는지 이제는 세는 것도 포기하고 말았지 뭐야. 하지만 그게 뭐 어떤가. 사랑이라는 것은 처음에만 뜨겁게 타오르지만 시간이 지나버리면 차차 식어버리는 변덕스러운 것인데, 차라리 너와 일주일만 좋아하다가 다시 새롭게 일주일을 열렬히 좋아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은가. 그 일주일만으로도 너와 하고 싶은 일들이 차고 넘치도록 많았다. 고작 그런 사소한 것들이 하고 싶어서 이 반복을 되풀이하고 있냐고 하지만, 사소하기에 몇 번이고 다시 새롭게 덧입혀가야 했다. 딱 일주일 동안만 너를 사랑하고, 다시 일주일을 새로 사랑하면 그만이다. 너는 적어도 그 일주일 동안은 식지 않은 사랑을 나에게 줄 것이니까. 그렇기에 나는 일주일을 전부 채운 날, 내일 또 다시 나에게 고백할 너를 기대하며 노곤한 눈꺼풀을 편히 감을 수 있었다.
“오소마츠 형, 좋아해.”
첫째 날. 쵸로마츠가 나에게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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