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카하시 루미코의 「인어 시리즈」의 설정을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당신이 왔다간 내 마음에
나 혼자 앉아 나는 가끔 울고 있다
당신이 새겨 놓은 흔적을 보면
얼마나 외롭게 내게 머물다 갔을까
나는 미안해서 눈물이 나고
당신은 아파서 울었을 것이다
- 이근대, 「꽃은 미쳐야 핀다」 中
인어(人魚).
상반신은 보는 이들을 삽시간에 홀려 버리는 마력을 지닌 묘령의 미인, 하반신은 화려한 비늘이 꼼꼼하게 수 놓여 진 유려한 물고기 꼬리인 이 기이하면서도 신비와 환상으로 빚어진 완벽한 생명체를 사람들은 입을 모아 ‘인어’라 부르고 있다. 깊은 심해에 숨어 지내면서 이따금 수면 밖으로 나와 뱃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그들은 여러 전설들을 알음알음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세간에 널리 퍼진 유명하고도 흥미로운 전설이 하나 있었다.
인어의 고기를 먹은 자는 불로장생의 삶을 얻게 된다.
비유와 왜곡 없이 말 그대로의 의미였다. 인어의 꼬리 부근을 잘라 먹으면 먹은 그 순간부터 인체의 시간이 정지하여 시간의 절대적 흐름에서 벗어나 더는 나이를 먹지 않게 되고, 아무리 심한 상처와 지독한 질병을 얻게 되어도 반나절 만에 멀끔히 회복되어 쉽사리 죽지 않게 된다. 늙지도 죽지도 않는 무한한 불로장생의 삶. 그것은 인류가 태초부터 갈구했던 절대적인 원망(元望)이었다. 대륙을 평정하여 바라는 모든 것을 손에 넣은 황제조차도 불로불사의 삶을 손에 넣기 위해 죽을 때까지 그 원념을 포기하지 않았을 만큼 그것은 이미 소원의 범주를 넘어선 갈망이었다. 죽음과 노화를 두려워하고 젊음과 영생을 바라게 된다. 유한한 삶에 갇혀 지내는 이상, 그것은 인류가 어쩔 수 없이 가지고 마는 바람이기도 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인어를, 더 정확히 지적하자면 인어 고기를 통해 얻게 되는 불로장생을 원하여 인어를 찾기 위한 노력을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 그러나 실존 여부도 불분명한 인어의 존재를 찾기란 그리 호락호락한 것이 아녔다. 바다 밑바닥을 샅샅이 뒤져도 인어의 지느러미 조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지친 사람들은 점차 인어의 존재 여부를 의심하게 되었다. 어차피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지조차 모르는 한낱 전설이지 않은가. 손에 넣을 수 없기에 전설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사람들은 인어의 전설에 대한 환상과 낭만을 품고 푹 빠져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손에 넣을 수 없기에 신 포도를 올려다보는 여우의 심정으로 인어와 불로장생의 실존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히 존재했다. 인어도, 인어의 고기를 먹은 자도.
“꽤 맛있었는데 말이야.”
파하- 가볍게 숨을 토해내는 소리가 났다. 여기서는 태우지 말라고 했을 텐데. 가볍게 언질을 주고서 소년은 손에 든 책 더미들을 힘겹게 내려놓았다. 책 더미들이 내려앉으면서 가볍게 먼지가 일었지만 책에서 피어오르는 먼지에는 애 저녁에 익숙해진 소년은 개의치 않아했다. 먼지보다도 느긋하게 의자에 앉아 곰방대를 태우며 책을 뒤적거리고 있는 쪽이 더 신경 쓰였다. 저러다가 불똥이라도 튀면 큰일이었고, 담배 연기 자체도 책에 좋지 못했다. 허나 소년은 한 번 꺼낸 타박 이상의 것을 차마 내뱉지 못했다. 조금 흐트러진 붉은 기모노를 입고, 곰방대를 쥔 손으로 턱을 괸 채 한쪽 다리를 들어서 다른 쪽 허벅지에 얹은 자세로 멍하니 책을 뒤적이는, 저랑 나이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사내의 모습은 참으로 오묘하여 시선을 뗄 수 없던 탓이 컸다. 작고 수수하면서 낡기만 한 책방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못한 사내였으나 그럼에도 사내는 자연스레 책방의 한 귀퉁이를 단단히 차지했다. 어느 새 소년의 눈이 책방 안 사내의 모습에 익숙해진 탓도 있었다.
소년은 곁눈질로 사내의 다리에 얹어진 책을 살폈다. 이틀 전에 새로 들어온 책이었다.
“이 책 꽤 엉터리라고? 대충 읽어봐도 순 자기가 생각한 대로만 적어놓고 말이야. 이런 책 갖다놔 봤자 절대로 팔리지 않을걸.”
“그런가.”
“그냥 대충 장작으로 써먹는 편이 더 낫겠다.”
“아까운 소리 하지 마.”
소년이 바로 눈초리를 보내며 사내의 책을 뺏어들었다. 아무리 쓸모없는 내용이 적힌 책이라 한들 ‘책’이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유용한 가치가 있다. 더욱이 소년이 뺏어든 책은 괜찮은 질의 종이로 만들어진 빳빳한 책이었다. 나중에 풀어서 빈 여백에 덮어쓰면 다른 책으로 써먹을 수 있다. 당시에 있어 종이는 무척이나 귀한 재질이고, 책 또한 미천한 자들은 함부로 다룰 수 없는 지식의 소유물이었다. 너도 참 알뜰하다니까. 사내가 능청스럽게 웃었다. 분명히 알면서도 그런 식으로 말한 것이다. 약 올라. 소년은 또 놀아난 기분에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그나저나 아깐 뭐가 맛있다는 거야?”
“응?”
“조금 전에 중얼거렸던 거.”
“아아.”
사내가 한 박자 늦게 반응하고서 여상한 목소리로 가볍게 답해줬다.
“인어의 고기.”
인어의 고기.
움찔, 성마른 손이 떨렸다. 인어. 인어의 고기. 때때로 소년은 사내와 대화를 나눌 때마다 의미 모를 현기증을 느꼈다. 그것이 사내의 입에서 나오는 화제들이 지닌 비현실성 때문인지, 아니면 그것을 주제로 제 맘대로 떠드는 사내의 모습을 목도할 때마다 그가 전설 속 존재라는 것을 실감하기 때문인지. 어느 쪽이든 소년이 원하든 원치 않던 간에 사내의 존재가 무엇인지 자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책에 뭐라고 쓰여 있는 줄 알아? ‘향간에 전해지길, 인어의 고기는 무척이나 독한 맛과 악취를 풍기는 탓에 제대로 삼킬 수 없을 정도라 한다.’ 근데 아니거든. 직접 먹어봐서 아는데, 그건 내가 살면서 여태껏 먹었던 것들 중에서 가장 맛있는 고기였어.”
그렇게 말해도 아직 어린 소년은 사내의 말에 공감할 수 없었다.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고기의 육질과 감칠맛 따위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게다가 그 원재료가 인어라니. 상상으로 어림짐작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하지만 사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입맛을 쩝쩝 다시면서 나른하게 제가 가지고 있던 낡은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어부 일을 하던 친구 녀석이 어느 날인가 별안간 인어 고기라면서 가지고 온 거 있지? 그 때도 인어 고기에 대한 전설은 유명했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믿지는 않았어. 한낱 전설 따위 믿는 건 꿈과 동심이 넘치는 어린 시절 뿐이잖아? 그래서, 그냥 평범한 고기일거라 생각하고 먹었지.”
처음에는 일상의 극히 일부분이라고 여겼던 것이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전설이라는 것은 예의범절 없는 무례한 불청객 같았다. 소년은 상상해봤다. 친구가 인어의 고기라는 흥미로운 것을 가져왔을 때 전설을 믿지 않고 그저 호기심과 무모함에 도취되어 있던 사내의 모습이 어렵지 않게 그려졌다. 오히려 지금보다도 훨씬 그 다운 모습이었다.
“고기를 먹고 사흘이 지나 같이 먹은 녀석들은 피를 토하고 죽어버렸어.”
그리고 살아남은 건 뜻밖의 불로장생을 손에 넣는데 성공한 사내뿐이었다. 친구도, 가족도, 마을 사람들도 전부 세월의 풍파에 쓸려나가 죽어가는 와중에도 사내만이 오롯이 살아남아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다. 수십 년, 수백 년의 시간의 흐름 속에서, 혼자. 결혼도 한 번 해봤다고 하지만 말년이 되었을 때 노파가 된 아내는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며 남편에게 고백했다. 저는 무서워요. 혼자만 늙지 않는 당신도, 혼자만 이렇게 늙어가는 자신도. 사내는 그토록 아끼던 반려를 위로해주지 못했다. 그녀의 임종을 지켜주는 것만이 사내가 그녀를 위해 해줄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이었다고 한다.
“쵸로마츠.”
사내의 부름에 소년은 그제야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자각하지 못한 사이 사내의 이야기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한두 번 있던 일이 아니지만 이럴 때마다 어쩐지 민망해져 소년은 화드득 얼굴을 붉혔고, 사내는 제 기모노랑 똑같은 색이 된 소년의 어린 얼굴을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며 큭큭 웃었다. 약 오른 웃음소리에 소년은 사내를 향해 항의 섞인 눈빛을 올려붙였지만 그 이상의 반박은 표하지 못했다. 솔직히, 사내의 이야기는 지금껏 읽은 책들의 이야기보다도 훨씬 더 재밌었다. 그것이 사내의 입장에서는 비극으로 점철된 이야기라고 해도, 소년은 어쩔 수 없이 사내가 이따금 풀어낸 인생사에 빠져들고 만다.
“자, 얼른 정리 안하면 나중에 아저씨한테 혼난다고?”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고는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겨 책방에서 나와 저잣거리로 향했다. 몸이 근질거릴 때면 늘 주변을 쏘다니다가 돌아오는 사내의 일과를 잘 알기에 소년은 굳이 어디에 가냐고 묻지 않았지만, 떠나는 사내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목 끝까지 차오르는 초조함이 거북했다. 저대로 먼 곳을 떠나고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사내는 어디에도 매이지 않고 정처 없이 부유하고 있었다.
소년이 손을 조심히 들어 조금 흐트러진 제 머리를 슬슬 매만졌다. 아침에 신경 써서 단정하게 정돈한 머리였는데 사내가 무심히 훑고 지나간 탓에 엉망이 되었다. 그것이 조금 속상했지만, 정수리에 남겨진 사내의 손길이 간지러워 입술을 꾹 닫고 참아내야 했기에 불평을 토로할 수가 없었다. 아득한 바다 냄새가 났다. 사내에게는 늘 바다 냄새가 풍겼다. 인어의 고기를 먹으면 그렇게 항상 바다를 품을 수 있는 걸까. 사내를 만나고서 가장 궁금한 점이지만, 소년은 차마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째서 다들 그렇게 인어 고기를 탐내는 걸까?”
그 날은 쌓인 책들의 먼지를 털어내고 눅눅해진 책들을 밖으로 꺼내 뒤뜰에 말려놓는 날이었다. 햇빛에 너무 많이 노출해두면 종이가 상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너무 그늘진 곳에 처박아두면 퀴퀴한 냄새가 베이는데다가 물기로 인해 좀이 쓸어버려 못쓰게 될 수 있기에 주기적으로 날을 정해 책들에게 햇빛 구경을 시켜줘야 했다. 사내는 여전히 붉은 기모노를 입고서 책방 청년이 일하는 모습을 멀뚱히 구경하고 있었다. 어차피 도움을 청해도 일하기 싫다며 투정을 부릴 게 뻔했기에 처음부터 말도 꺼내지 않았지만, 저렇게 대놓고 손가락 까딱 안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조금 짜증나기도 해서 청년은 다소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그야 다들 불로장생을 얻고 싶어서 그런 거겠지. 누구나 다 그렇잖아.”
“하지만 난 그런 걸 원한 적이 한 번도 없는 걸? 고기를 먹은 것도 그냥 어떤 건가 싶어서 아무 생각 없이 먹은 것뿐이고. 오히려 반대였지.”
“반대?”
청년의 반문에, 사내는 오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때는, 원래의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한 적도 있었거든.”
주변의 사람들은 전부 생명의 이치에 따라 늙어 죽어가는 데 자신만이 유일하게 젊음을 유지하고 죽음에서 벗어나 있다. 인연을 맺어도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죽어 사라질 것이고, 그마저도 오래 곁에 머물 수가 없어서 자신이 그들에게서 떠나야 할 때가 많았다. 사내는 당시의 일을 회상하면서 수라를 걷는 것 같았다 비유했다. 늙지 않는 그를 보고 괴물로 취급한 사람들로 인해 처참히 죽었다가 반나절 만에 다시 살아난 적도 있었다. 그런 비슷한 일을 몇 번 더 겪고서 다시 살아난 사내는, 돌아가고 싶다고 간절히 생각했다. 다시,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가 평범한 삶을 보내며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그 후로 사내는 온 곳을 가리지 않고 돌아다니며 인어와 인어의 고기를 먹은 자에 대한 소문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마침내, 기적적으로 어느 늙은 인어를 만나게 되었다. 처음으로 사내가 만난 인어였다.
“그래서, 그 인어가 뭐라고 하던데?”
“자기들도 원래대로 돌아가는 방법을 모른다고 하더라. 그냥 이대로 쭉 살아야 한데. 정말로 죽고 싶으면 참수를 당하거나 인어의 독을 먹는 방법 밖에 없다더라.”
“그래서?”
“그래서… 죽어볼까 생각했지.”
아,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 이런 건가. 무심코 청년은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사내는 죽지 않았다. 몇 번을 괴로워하고 고민한 결과 우습게도 사내는, 죽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죽지도 못하고 혼자 외롭게 살아가다가 제 손으로 자신의 목을 끊는 최후가 끔찍이도 싫었다. 지금의 결정을 후회하는 날이 언젠가 오더라도, 사내는, 조금 더 살고 싶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죽지 않을까?”
그런 결론을 내리고서, 인어의 고기를 먹은 사내는 오늘도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었다.
청년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인어의 고기가 어떤 맛인지 모르는 것처럼, 주변 사람들이 전부 죽어도 혼자 살아남아 괴롭게 살아가고, 그러면서도 스스로 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하지 않는 사내를 일개 인간에 불과한 청년은 아마도 한평생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소중한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아무도 달래줄 수 없는 슬픔에 홀로 힘겨워하는, 그럼에도 죽지 않고 살아가는 길을 택한 인어의 고기를 먹은 사내.
그 모습이 전설만큼이나 안타까웠고, 그래서 전설보다 더 처연히 아름다웠다.
“이제 그만 안으로 들여야 하지 않겠어? 그 책들 말이야.”
“어? 어, 그래, 그렇지.”
벌써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이제 그만 책들을 정리해 안으로 들여야 했다. 청년은 얼른 책들을 모아 안으로 들이기 위해 발길을 돌렸다.
그런 사내의 급한 채비를 붙잡은 것은, 두 손가락으로 살짝 그의 옷자락을 잡은 사내의 손길이었다. 무척이나 작은 힘인데도 청년은 자신을 뒤에서 잡은 이가 누군지 알아채자 차마 뿌리치지 못했다. 뒤를 돌아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청년은 못 박힌 채로 서서 자신의 등에 이마를 대는 사내의 움직임을 힘겹게 따라다녔다.
“책 냄새가 난다.”
그의 등에서 속삭임이 들렸다.
“좋네. 너한테는 언제나 이런 냄새가 날 것 같아서, 그래서 좋아.”
등이 근질거렸다. 옷자락이 간지러웠다. 그의 손길이 닿은 모든 것이,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청년은 더는 참지 않기로 했다. 몸을 바로 돌려 바다를 한껏 품에 안고 깊게 들이마셨다. 바다가, 아득한 바다 향기가 코끝을 울렸다. 이대로 빠져 죽어도 족할 만큼 깊은 향기에 취해 청년은 더욱 깊숙이 파고 들어갔다. 인어는 뱃사람을 홀리는 요물이라고 전해진다. 그러면 인어의 고기를 먹은 자들도 똑같이 그렇게 될까. 그 의문에 대해 청년이 답할 수 있는 말은, 그렇다였다.
요즘 거리에 영 좋지 않은 소문이 돌았다. 책방 주인이 장사는 내팽겨 치고 가게에 틀어박혀 책에 빠져들고 있다는 소문이 마을 곳곳에 파다했다. 사람도 만나지 않고 두문불출한 채 여러 전설과 민담에 관련된 책들을 구해다가 그것들을 미친 듯이 읽는다는 거였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하나 같이 책방 주인이 미쳤다고 말했다. 혀를 끌끌 차면서 동정을 표했다. 하지만 그것도 화제에 올랐을 때나 겨우 나오는 것이었고, 금방 주제는 다른 흥미로운 것으로 넘어갔다.
자신은 항상 뒤늦게 후회한다. 몇 백 년을 살아도 이것만은 고쳐지지 않는다며 사내는 자조했다. 그래, 내가 너무 늦은 거지. 너무 오래 머물러버렸지.
“쵸로마츠.”
어둠과 서책에 둘러싸여 있던 마른 등이 움찔, 움직였다. 그리고 조금만 더 기다리면, 뻣뻣한 고개가 어색하게 돌아가면서 사내를 마주했다. 초췌한 인상과 신경질적인 눈빛이 어둠 속에서 형형했다. 아아. 그와 몇 발자국의 간극을 두고서 사내는 후회를 남몰래 흘렸다. 담담한 사내의 표정이었으나, 겉으로 분명히 드러나 있는 것은 남자를 향한 걱정이었다. 왜? 남자는 사내의 걱정이 이해되지 않았다. 애초에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이해되지 않는 사내였지만, 오늘은 더욱 그랬다. 그래서 화가 났다. 어쩌면 처음부터 자신은 화가 나 있었는지도 모를 만큼 익숙한 화였다.
“이제 그만해라.”
“뭘 말이야.”
“지금 하고 있는 짓.”
“내가 뭘 하고 있는지는 알아?”
“알아. 너 같은 녀석들 의외로 꽤 흔하거든. 평생을 그렇게 동정인 채로 살아갈 생각?”
그 때까지만 해도 평소의 여유로움을 잃지 않던 사내였지만, 그 다음 말에서 사내는 처음으로 딱딱한 목소리로 남자에게 말했다.
“인어의 고기를 찾는 짓은 그만둬.”
돌이켜보면 남자는 늘 그랬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남자는 사내에 대한 일이라면 참아보려 애를 써도, 참을 수가 없었다.
와르르!
첩첩 세워져 있던 책의 산들이 남자로 인해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먼지와 낡은 종이 냄새가 매캐하게 풍겼지만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바로 사내와의 거리를 단숨에 좁혀 우악스럽게 사내의 두 팔을 꽉 잡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내는 침착한 얼굴이었다. 이런 일을 전부 예상했다는 듯, 혹은 이미 경험해 본 적 있다는 듯, 그래도 완전히 적응하지 못해 애써 차분해지려고 노력하는 듯. 결국 감정의 풍파에 휩쓸린 쪽은 남자 밖에 없었다. 오가는 대화는 없었다. 남자의 씨근덕거리는 숨소리만 들릴 뿐, 어느 쪽도 입을 열지 못했다. 분명 따지고 싶은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막상 사내를 붙잡고 제 손에 가두니 입이 마음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 어느 틈엔가 남자의 시선 아래로 내려가 있는 사내의 모습 때문이리라.
“나는 떠날 거야, 쵸로마츠.”
“…찾아보면 분명 있을 거야. 어딘가에, 인어가 있을 거고, 그러면 부탁해서 살 한 점 얻어내면 돼.”
“쵸로마츠.”
“아예 없는 걸 찾겠다는 소리가 아니잖아. 네가 바로 그 증거고. 너도 어딘가에 인어의 고기가 있다는 걸 믿고 있지? 불가능한 소리가 아니라고.”
“만약 그만두지 않는다면, 내가 널 막아야 할지도 모르는데 그런 건 싫다고.”
“어째서!!!”
그것은 숫제 절규나 마찬가지였다.
알고 있다. 머리로는 남자도 사내가 왜 자신을 막아서는지 알고 있다. 아마, 사내는 남자가 자신과 같은 처지가 되는 걸 원치 않을 것이다. 불로장생이라는 말만 들었을 때 사람들은 죽지도 늙지도 않는 삶에 대한 축복으로 여긴다. 그러나 사내에게 있어 그것은 축복이 아닌 제 살점을 먹은 인간에게 내리는 인어의 한 맺힌 저주였다. 인어의 고기를 먹고 불로장생의 몸이 되어 몇 백 년을 살아온 사내는 누구보다도 절절히 알고 있었다. 죽지 못하는 괴로움을, 함께 늙어가지 못하는 외로움을. 그래서 자신과 같은 사람이 더는 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그러면 사내의 곁에는 누가 남는다는 건가. 앞으로도 죽지 못해 혼자 외롭게 살아갈 그의 곁을 메워줄 존재는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남자는 자신이 그 존재가 되고 싶었다. 더는, 사내를 혼자 두고 싶지 않았다.
“쵸로마츠.”
사내가 다시 한 번 남자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뻗어 남자의 뺨을 어루만졌다. 천천히, 세심한 손길로 귀중품을 매만지는 것처럼 그는 손끝으로 남자의 얼굴에 새겨진 주름들을 하나씩 더듬어갔다. 벌써 그의 이마와 눈가, 입가에는 세월이 지나간 흔적이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세월로부터 젊음을 빼앗겼다는 증거에 사람들은 수치스러워했지만, 사내에게 있어서 이것만큼 탐이 나고 귀중한 것은 없었다.
“원래는 조금 더 빨리 떠났어야 했는데, 조금 욕심을 부려서 오래 머물고 말았지 뭐야.”
쌉싸름함이 묻어난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너울을 빼닮았다.
“인어의 고기를 먹는다고 해서 불로장생을 얻는다는 보장도 없어. 네가 그걸 먹고 죽는 것도 별로고, 나처럼 되는 것도 싫어. 그래서 떠날 거야. 나 혼자서.”
“인어를 찾을 거야.”
“쵸로마츠.”
“찾아서, 먹을 거야. 인어의 고기를. 그래서… 너처럼 되어서… 계속….”
한 방울, 두 방울. 그들의 주변에 어질러진 책들 위로 물방울이 떨어졌다. 아, 책에 물이 젖으면 안 되는데. 사내는 남자를 대신해 그런 생각을 품었다. 언제나 이렇다. 조금만 더 곁에 머물고 싶어서 얼른 떠나야 하는데도 계속 맴돌다가 이렇게 후회하는 일이 비일비재였다. 오랜만에, 정말로 오랜만에 자신을 위해 울어주는 사람을 만나서, 함께 있고 싶다고 말해주는 사람을 만나서, 그래서 떠나는 발걸음이 꾸물거렸다. 아아, 좀 더 빨리 떠났어야 했는데. 이제 조금은 무뎌지는 줄 알았던 외로움이 사내를 옭아맸고, 그 외로움을 잘래줄 수 있는 사람의 애정에 위로를 받았다. 그래서 사내는 남자를 위로할 자격이 없었다.
주름을 타고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그저 미웠다. 사내에게 멋모르고 인어의 고기를 먹인 그의 친구가, 사내를 불로장생으로 만들어버린 인어가, 사내가, 사내를 두고 혼자 늙어버린 자신이, 전부 다 미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제 그만 때가 되었다. 사내는 양 손으로 남자의 뺨을 감싸더니 까치발을 들고서 그대로 사내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주름지고 옅은 검버섯이 피기 시작한 그의 이마에 경건히, 오랫동안 입을 맞췄다. 남자는 이마로부터 전해지는 입술의 감촉을 느끼며 아련한 바다 냄새를 맡았다. 이따금 그 냄새를 맡을 때마다 생각했다. 인어의 고기를 먹지 않은 사내와, 그의 고향에서 단 둘이 살아가는 삶을 꿈꿨다. 꿈속에서의 사내는 외로움 한 점 없이 남자를 보고 맑게 웃었다. 네가 지금껏 얼마나 많은 외로움을 삼키며 감내해야했는지를 알기에, 더욱 그렇게 웃게 해주고 싶었다.
인어가 주는 꿈에, 남자도 사내를 뒤따라 웃어줄 수밖에 없었다.
“안녕, 잘 있어. 쵸로마츠.”
눈을 뜨자, 사내는 꿈결처럼 홀연히 사라졌다.
“…오소마츠.”
아직 남은 꿈의 여운에 취해 쵸로마츠가 인어의 이름을 불렀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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