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둘, 셋.
어떤 것을 눈에 깊이 담아두려면 천천히 세 번, 눈을 감았다가 떠야 한다. 소중한 것일수록, 기억에 오래 남겨두고 싶은 것일수록 그래야만 한다.
깜빡.
눈꺼풀이 한 번, 닫혔다가 떠지는 깜빡임의 소리. 찰나 속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속삭임.
아주 작은 소리라 수많은 소리에 파묻혀버려 쉽게 들을 수는 없지만, 차분히 귀를 기울이고 살며시 깜빡이면 분명히 들을 수 있는 소리이다. 눈을 뜬 순간에도 자신이 모르는 새 눈꺼풀은 깜빡임을 매 찰나 속에서 반복하고 있다. 쉽게 들을 수 없지만 분명히 울리고 있는 그 소리는, 아무도 모르는 축복의 소리였다. 그것은 앞을 볼 수 있다는 틀림없는 증거이니까.
-후우.
길게 숨을 내뱉는 소리가 담배 연기와 함께 나뭇잎을 간지럽혔다. 탁, 탁. 곰방대에 쌓인 담뱃재를 다 털어내고서 쵸로마츠는 나뭇가지 위에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조금 흐트러진 기모노를 단정히 갈무리했다. 그리고 나무 위에 서서 바로 아래서 훤히 내다보이는 군락을 훑어 내렸다. 그리 큰 마을은 아니지만 마을로 불릴 만한 충분한 규모는 되었다. 고즈넉한 분위기가 녹음과 함께 흐르는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딱히 목적지를 정해두고 온 건 아니지만, 떠돌아다니던 중에 온 곳들 중에서는 제법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당분간은 여기서 지낼까. 여기라면 그나마 귀찮은 일은 없을 것 같다. 쵸로마츠는 그리 결정을 짓고는 천천히, 붕대에 감기지 않은 왼쪽 눈을 감았다.
깜빡, 깜빡, 깜빡.
그렇게 하면 깜빡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인간은 쉽게 들을 수 없지만 몇몇 특별한 존재는 어렵잖게 들을 수 있는 소리. 눈을 감고 가만히 귀를 기울이다보면 인간들의 깜빡임을 들을 수 있게 된다. 때로는 보는 것보다도 깜빡임으로 상대가 누군지 알아낼 수 있다. 다행히 마을 규모만큼이나 사람 수도 그리 많지 않았다. 다만 신경 쓰이는 것이 있다면, 이따금 사람들이 일을 하다말고 흘끔흘끔 자신이 있는 마을 어귀 쪽을 훔쳐봤다. 깜빡, 깜빡, 깜빡. 깜빡임 속에는 두려움이 섞여있었다. 미지의 무언가가 자신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그런 종류의 두려움.
뭐지? 설마 나 때문에 그런 건….
“어이.”
발밑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우왓! 깜빡임에 신경 쓴 탓에 바로 제 밑에 있는 이의 인기척을 알아채지 못한 쵸로마츠가 목소리에 흔들려 하마터면 나무 위에서 떨어질 뻔 했다. 다행히 순발력을 발휘해 나무를 붙잡고 균형을 되찾았지만, 철렁였던 심장은 잠시 놀람으로 두근거렸다. 사박, 사박, 사박. 붕대 안쪽이 시끄러워졌다. 조금 진정이 되자 쵸로마츠는 감히 자신을 놀래 킨 괘씸한 놈을 찾아 바로 밑을 내려다봤다. 나무 아래에 있는 이는 붉은 기모노를 입은 소년이었다. 두 눈을 붕대로 단단히 감고 있음에도, 마치 쵸로마츠가 보이는 것처럼 고개를 위로 치켜들어 똑똑히 쵸로마츠가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는 소년은 쵸로마츠가 놀란 것도 봤는지 킥킥 웃고 있었다.
“안녕? 미안. 오랜만에 ‘보여서’ 나도 모르게 말을 걸어봤어.”
소년에게서는 깜빡임이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눈치 채지 못했던 건가. 쯧. 쵸로마츠는 혀를 찼다. 간만에 진득하게 머물 수 있는 곳을 찾았나 싶었더니, 별난 인간과 마주치고 말았다.
* * *
“나는 오소마츠라고 해.”
자기소개를 한 뒤에 오소마츠가 쵸로마츠를 데리고 도착한 곳은 마을 어귀에 위치한 작은 오두막집이었다. 숙련된 솜씨가 아닌, 어설픈 손길로 대충 얽어서 만든 티가 확 드러나는 허름하고 조그만 집에는 소년 혼자만이 이곳에서 줄곧 살아왔다는 흔적만이 가득했다. 마을에 혼자 동떨어져 있는 오두막집, 앞이 보이지 않는 소년, 소년이 사는 곳을 두려움과 불안으로 흘겨보던 마을 사람들. 이 마을에는 무언가가 있다.
“있지, 쵸로마츠는 인간이 아니지?”
집에 도착하고 아궁이에 불을 때려고 오소마츠가 쵸로마츠에게 대뜸 물어본 첫 질문은 그거였다. 이미 쵸로마츠를 볼 수 있다는 것부터 범상치 않은 인간이라는 증거이기도 해서, 쵸로마츠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래, 라고 답해줬다. 간혹, 이곳저곳을 떠돌다보면 이런 인간을 발견하게 된다. 남들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특별한 힘을 지니고 있는 존재. 대개 그런 인간들은 음양사를 업으로 삼기에 썩 친한 사이는 되지 못하지만, 소년은 아무리 봐도 음양사와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앞이 보이지 않는데도 용케도 날 보는군.”
“헤헤. 그렇지? 다른 건 다 보이지 않는데, 이상하게 쵸로마츠 같이 특별한 건 잘 보이더라고.”
“그건 태어날 때부터 그런 건가?”
“아니. 앞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부터.”
타닥. 장작이 타들어가면서 불똥 튀는 소리가 났다. 앗뜨. 불똥에 맞은 오소마츠가 뜨거움에 주춤 뒤로 물러섰다. 큰 불똥이 튀는 것을 보지 못한 탓이었다.
모든 변화는 평범함에서부터 비롯된다.
그 말대로, 오소마츠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평범한 마을에서, 평범한 집안에서, 평범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아이였다. 평범한 속에서 자란 아이는 어느 것 하나 특출한 부분이 없음에도 그늘 한 점 없이 밝고 활기차게 성장했다. 그러나 평범함은 잘 놔두면 오래 지속되는 것이지만, 하나라도 잘못되면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섬세한 것이기도 했다. 오소마츠가 열 살이 되던 해, 그의 부모님은 약초를 캐러 뒷산을 오르다가 산사태를 만나 그대로 흙더미에 파묻혀버렸고, 마을 사람들 모두가 나서서 파헤쳤을 때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순식간에 고아가 된 오소마츠였지만, 그래도 그 때까지는 괜찮았다. 오소마츠는 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보호를 필요시 하던 어린아이였기에 마을 사람들은 기꺼이 나서서 오소마츠를 돌봐줬다. 그리고 2년 뒤, 오소마츠는 시력을 잃었다. 어떤 일도 겪지 않았는데, 잠에서 깨어나 눈을 떠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친숙한 마을 사람들의 얼굴도, 녹음으로 에워싸여진 정겨운 마을의 풍경도, 자신의 모습마저도. 의원이 나서서 살펴보고, 약초들을 구해 달여 마셔봤지만 나을 방도는 보이지 않았다. 그 후로 마을 곳곳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났다. 가뭄으로 인해 농작물이 말라가고, 홍수가 일어나 집들이 물에 잠겨버리고, 아이들은 수시로 병치레를 겪어 죽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불길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자 마을 사람들은 무슨 저주가 아닌가 싶어 어느 실력 있는 법사를 불러와 원인을 알아보려고 했다. 그리고 원인으로 지목된 것은, 열다섯이 된 오소마츠였다. 저 아이에게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니 마을에 둬서는 안 된다는 것이 법사의 판단이었다. 오소마츠는 그 당시의 일을 볼 수 없었지만, 두려움과 악의에 찬 사람들의 시선만큼은 살이 에일 만큼의 고통과 함께 느낄 수 있었다. 그럼 마을에서 나가도록 할게요. 여기서 떠나라는 말만큼은 하지 말아주세요. 마을 사람들도 일말의 정이 남아있던지라 결국 오소마츠가 마을 어귀 부근에 사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억울하고, 화가 나고, 외로웠지만, 오소마츠는 마을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이곳을 떠나면 정말로 혼자가 될 것 같아서, 나고 자란 고향을 차마 등질 수 없어서, 그래서 너머의 모습이라도 눈에 담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적적함을 달래야만 했다.
“마을에 지냈을 때부터 낯선 것들이 보였어. 그 때는 뭔지도 모르고 마을 사람들에게 저게 뭐냐고 묻곤 그랬는데, 그것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더욱 그 땡중의 말을 믿었던 거지.”
“바보 같아.”
“뭐, 앞도 보지 못하는 애가 자기는 볼 수 없는 걸 보고 있으니 무서운 것도 당연하겠지.”
그리 말하고서 다다미 위에서 뒹굴 거리던 오소마츠가 누운 자세로 쵸로마츠가 앉아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물었다.
“그래서, 쵸로마츠는 어떤 재주라도 있는 거야? 막 불을 뿜거나 바람을 일으킨다거나 그래?”
“그런 스케일이 큰 건 요력이 강한 특별한 놈들이나 가능하다고. 대부분의 요괴는 그런 재주 못 부려.”
“그럼 쵸로마츠는 뭣 때문에 우리랑 다른 건데?”
그 말이 쵸로마츠의 안 좋은 심기를 건드린 것인지, 곰방대가 조금 필요 이상으로 세게 창문턱에 부딪히는 소리가 나버렸다.
“인간 따위에게 가르쳐줄 마음 없어.”
쳇. 오소마츠는 섭섭하다는 듯이 혀를 찼지만, 그 이상 쵸로마츠에 대해 캐묻지는 않았다.
“어쨌든 당분간은 여기서 지내.”
“그걸 왜 네 멋대로 정하는 건데.”
“뭐 어때. 마을에 내려가는 것보다는 낫잖아. 사람은 몰라도, 너라면 같이 지내도 괜찮겠지.”
오소마츠의 제의에 쵸로마츠는 잠깐 망설이다가, 한 번 눈을 깜빡이고는 고개를 돌려 창문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창문 밖으로는 마을의 전체 모습이 훤히 보였다. 마을의 모습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다가 굳이 집을 지은 심보를 알겠어서, 쵸로마츠는 입안이 깔깔해 오소마츠의 제의를 거절할 말을 뱉어내지 못했다. 그런 쵸로마츠의 떨떠름함을 알아챈 것인지 오소마츠는 자꾸만 뭐가 그리 재밌는지 키득키득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느 새 서쪽으로 석양이 저물어가면서 녹음 위에 황혼이 덧칠해져갔다.
* * *
그 날 부로 쵸로마츠는 오소마츠의 고집에 못 이겨 함께 마을 외곽의 작은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여기에 아예 눌러 살 생각은 전혀 없었기에 쵸로마츠는 자주 언젠가 가까운 시일 내에 떠나겠다고 언질을 주었지만, 오소마츠는 아직은 떠날 날이 아니기에 괜찮다면서 대수롭지 않아 했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요괴와 인간이 함께 지내는 일은 뜻밖에도 평온했다. 한적한 마을 분위기 덕택인지, 그 작은 집에 인간 한 명과 요괴 한 명만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둘은 아직까지는 평범하고도 평화롭게 잘 지냈다.
쵸로마츠는 한가할 때면 오소마츠의 모습을 관찰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몸으로 여태껏 혼자 지내 와서 그런지 오소마츠는 우려와 달리 웬만한 일은 혼자서 잘 해냈다. 산에도 잘 오르고, 아궁이에 불도 땔 줄 알았으며, 밥도 잘 지었다. 산만한 면이 있어서 종종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거나 어딘가에 부딪치는 작은 실수를 저지르곤 했지만 아픈 기색 없이 익숙하게 넘겼다. 그 모습이 지극히 익숙해 보이면서도,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위태로워 쵸로마츠는 어느 날부턴가 오소마츠를 눈으로 쫓는 일을 관두고 나란히 걷는 횟수를 늘려나갔다. 자꾸 눈앞에서 성가시게 구는 것보다 나으니까. 쵸로마츠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그런 퉁명스런 변명을 댔지만, 오소마츠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쵸로마츠의 손을 잡고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면서 산의 정경들을 하나씩 보여줬다. 그것이 인간과 요괴의 일상이었다.
“소리가 나.”
어느 날, 오소마츠가 문득 그런 말을 했다. 막 오소마츠의 부탁으로 그의 눈에 감긴 붕대들을 갈아준 뒤-처음에는 인간과 닿기 싫다며 질색하던 그였지만, 자꾸만 엉성하게 감는 오소마츠의 모습을 보다 못해 결국 자신이 일을 맡았다-손을 씻던 쵸로마츠가 씻던 손을 마른 천으로 닦으면서 말했다.
“무슨 소리?”
“깜빡이는 소리, 속눈썹이 무언가에 스치는 소리. 쵸로마츠랑 같이 있으면 그런 소리들이 많이 들려와. 다른 사람들보다도, 훨씬 더 많이.”
앞을 볼 수 없게 되면 생존 본능에 따라 다른 감각들이 발달하게 된다고 한다. 그렇다곤 해도 설마 그런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인간이 있을 줄은 전혀 생각조차 안 해봤기에, 자신 외에 깜빡임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는 이가 존재한다는 것에 놀라 쵸로마츠는 잠시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럴 듯한 거짓말로 치부하기에는 오소마츠의 목소리는 또렷하게 울리고 있었다. 하아. 숨기려고 해도 이미 확신이 찬 말을 하고 있기에 그것도 무리였다.
“있지, 그게 쵸로마츠의 능력 같은 거야?”
“…관련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
그렇게 말하고 쵸로마츠는 떨떠름한 표정을 역력히 드러내면서도 천천히 팔에 감아놓은 붕대를 스르륵 풀기 시작했다. 꽁꽁 감아놓아 틈새조차 보이지 않던 빡빡한 붕대는 그것이 다 무색하게 너무도 쉽게 풀려져 나갔고, 이윽고 다 풀어진 붕대 너머로 쵸로마츠의 맨 팔이 시원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깜빡, 깜빡, 깜빡. 와아. 오소마츠의 입에서 탄성 소리가 나왔다. 짐작했던 것에 비해 반응이 얌전해 어째 이건 이것대로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나쁘게 보지 않는 것에 조금 안도를 느끼며 쵸로마츠는 오랜만에 보는 자신의 눈들을 마주했다. 빽빽하게 수 놓여 진 수많은 눈들. 조금씩 모양이 다른 눈들은 한쪽 팔뿐만이 아니라 온 몸에도 박혀있어 항상 눈을 깜빡이며 모든 것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나하나가 명백히 살아있는 그것들은 그 수를 헤아려보면 백 개에 달한다고 전해졌다.
문득 쵸로마츠는 앞이 보이지 않는 인간이 수많은 눈들을 지닌 요괴를 마주했을 때의 기분이 어떨지에 대해 잠시 생각해봤다. 아마 두려움 이전에, 다른 무언가를 느끼지 않을까. 쵸로마츠는 자신이 오소마츠에게 정체를 숨겼던 이유 중 하나가 그것이 아닐까 짐작해봤지만, 너무 나간 추측이라고 제 스스로 갈무리하여 애써 덮어버렸다.
“도도메키(百々目鬼)다. 이름 그대로 백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전해지는 요괴지.”
“와아, 대단하다! 그럼 쵸로마츠는 눈이 백 개나 있는 거야?”
“꼭, 그렇지만은 않아.”
그리고 쵸로마츠는 오른쪽 눈에 감겨진 붕대를 쓸어 만졌다. 붕대가 감겨져 있는데도, 예민한 손끝은 그 너머에 있는 공허를 매만졌다. 텅 빈 오른쪽 눈. 그것은 쵸로마츠가 요괴가 되었을 때부터 줄곧 채워지지 못한 상태였다.
“요괴는 대게 저절로 만들어지긴 하지만, 때때로 인간이 죽어 요괴가 되는 경우도 있지. 오른쪽 눈은, 인간으로 살아가던 시절에 잃었던 거다.”
쵸로마츠가 살았던 시기에는 오소마츠가 지내고 있는 마을의 분위기와는 정 반대로 한창 전쟁으로 혼란스러웠던 때였다. 온 곳에서 비명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고, 강에서는 피 비린내가 풍겼으며, 어디로 가도 시체가 산을 이루었다. 농작물과 집채는 화마에 태워 한 줌의 잿더미로 허망하게 사라지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 눈물이 마를 새가 없었다. 그래도 쵸로마츠는 그 난리통 속에서 어떻게든 혼자서나마 살아남았다. 허나 살아남은 대가였을까, 쵸로마츠는 피난 도중 화살에 맞아 오른쪽 눈을 잃고 말았다. 원래는 눈가를 스쳐간 상처에 불과했지만, 치료가 늦어버린 탓에 상처가 심해져 눈알까지 곪아갔고, 결국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눈을 뽑을 수밖에 없었다. 외눈으로 살아남은 쵸로마츠는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들어야만 했고, 평생 불구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큰 마음의 병을 얻어버려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 쵸로마츠는 도도메키가 되어 있었지만, 오른쪽 눈은 여전히 텅 빈 그대로였다. 아흔아홉 개의 눈을 가진 도도메키. 쵸로마츠는 요괴가 되어서도, 오른쪽 눈의 낙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도도메키인데도 아흔아홉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불완전한 놈으로 취급 받아 동족들에게도 쫓겨난 신세가 되었지. 다른 요괴나 인간의 눈을 빼앗아 오른쪽 눈에 넣어보기도 했지만, 얼마 못 가 곪아서 문드러져 버렸어.”
“그래서 떠돌아 다녔던 거야?”
“그런 녀석들, 눈이 멀쩡히 다 있었어도 내 쪽에서 사양이라고. 똥꼬털이나 다 타버리라지.”
“풉.”
마지막에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쵸로마츠의 거친 말에 오소마츠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뭐야. 왜 웃어.”
“푸흐흐. 아니,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쵸로마츠는 역시 말이 험하구나 싶어서. 헤에, 요괴들은 서로의 똥꼬털도 태우고 그러는 거야?”
“그럴 리가 없잖아.”
“하하. 그래서, 계속 눈을 찾아다닌 거야?”
“…이미 반쯤은 포기했어. 어디에도 돌아갈 곳도, 머무를 곳도 없으니 정처 없이 떠도는 것만 남아버렸지.”
깜빡, 깜빡, 깜빡. 많은 눈들이 깜빡이는 소리가 났다. 줄곧 붕대 속에 갇혀만 있다가 오랜 만에 세상을 봐서 신기한지 호기심 어린 빛을 머금고 깜빡이는 눈들은 징그럽게 보이지 않고, 도리어 순진해 보였다. 오소마츠는 가만히 그런 눈들의 움직임을 흥미롭게 지켜보다가, 슬며시 손으로 눈들을 쓸어내려봤다. 갑자기 닿아진 낯선 손길에 쵸로마츠는 움찔 놀랐지만, 용케 떨쳐내지 않고 그대로 놔두었다. 오소마츠의 손길이 지나가는 길마다 눈들은 잠시 조용히 눈을 감다가, 서서히 눈을 뜨고는 오소마츠를 빤히 바라봤다. 자신들을 겁내지 않아하고 대범하게 만지는 이가 누군지 알아보려는 것처럼, 자신들과는 다르게 요괴 외에는 무엇 하나 제대로 볼 수 없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응시했다. 그런 눈들을 쓰다듬는 오소마츠의 손길은 양지의 햇볕처럼 따뜻했고, 간지럽고, 부드러웠다.
“부러운 거냐?”
그 손길에, 쵸로마츠는 저도 모르게 그런 말을 툭 내뱉고 말았다. 순간 아차 싶었지만, 이미 엎어진 말은 오소마츠가 주워 담은 후였다. 음. 오소마츠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천천히 말을 열었다.
“그렇네. 쵸로마츠야 이렇게 눈이 많은데도 오른쪽 눈 하나 없다고 이 고생이고, 나는 아흔아홉 개는커녕 멀쩡한 눈 하나 없으니까. 솔직히 내 입장에서 쵸로마츠가 한 이야기는 배부른 소리 밖에 안 들리겠지.”
깜빡, 깜빡, 깜빡.
살아서 두 눈을 뜬 이들에게는 깜빡임의 소리가 들려온다. 도도메키로서 수많은 눈들을 달고 다니는 쵸로마츠에게는 그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오소마츠에게는 그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모두가 어렵지 않게, 의식하지 않고 내는 가볍고 평범한 소리가 오소마츠에게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 오소마츠를 만났을 때, 쵸로마츠는 오소마츠의 존재를 미처 눈치 채지 못했다. 깜빡임의 속삭임이 들리지 않으니, 제 발 밑의 존재조차도 일찍 알아 내지 못한 것이다. 어둠에 싸여져 살아있는 소리를 내지 못하는 두 눈은, 보이지 않아도 쓸쓸한 것이었다.
“그래도 괜찮아.”
하지만 오소마츠는 담담하게 괜찮다고 말했다.
“쵸로마츠가 보이니까.”
그래서 괜찮았다. 깜빡임이 없어도, 오소마츠는 쵸로마츠를 올곧게 보고 있었다. 두 눈을 온전히 뜬 인간보다도, 백 개의 눈을 가진 요괴보다도. 또렷하게, 틀림없이, 있는 그대로의 쵸로마츠를 봐줬다.
쵸로마츠는 지금까지 본 수 많은 눈들을 떠올렸다. 외눈으로 살아가던 인간이었을 시절에 마주한 거부의 눈길과 요괴로 지내오면서 겪었던 혐오와 경멸의 눈들이었다. 어느 것 하나 쵸로마츠를 봐주지 않았다. 그들이 봤던 것은 쵸로마츠의 뻥 뚫린 구멍뿐이었고, 그마저도 왜곡시켜버렸다. 그런 시선들에 쵸로마츠는 일찍이 그들을 포기했고, 저도 그들을 보는 것을 외면했다. 한쪽 눈이 없는 자신이 싫었고, 아흔아홉 개의 눈을 가진 자신도 싫었기에 붕대를 감아 눈들을 감췄다. 결국 쵸로마츠 본인도 자신을 마주하는 것을 관둔 것이다.
그런 나 자신마저도 버리고 외면한 것을, 너는 보이지 않는 눈으로 보고 있구나.
“그리고 머물 곳이 왜 없어? 지금 여기에 쵸로마츠가 머물고 있잖아. 나랑 같이.”
그 말을 듣고 쵸로마츠는 오랜만에 자신의 모습을 마주했다. 혼자서 떠돌아 다녔던, 아무 곳에도 섞이지 못했던, 그래서 혼자였고 외로웠던 자신이 보였다. 그리고 마을에서 나와 줄곧 혼자서 지낼 수밖에 없었던 오소마츠도 보였다. 그러나 이제 외로움은 보이지 않고 그 흔적만이 남았다. 그 대신에 보이는 것은 작은 집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인간과 요괴였다.
“그래, 그렇지. 오소마츠.”
쵸로마츠는 자신의 팔을 쓰다듬고 있는 오소마츠의 손을 잡았다. 살짝 달뜬 손이 너무도 간지럽게 느껴졌다. 어째서 인간의 체온은 이다지도 따뜻해서 닿는 것만으로도 간지러운 걸까. 쵸로마츠는 천천히 상체를 숙였고, 오소마츠도 가만히 쵸로마츠를 크게 끌어안아줬다.
그 날은 쵸로마츠가 처음으로 오소마츠의 이름을 불러줬고, 쵸로마츠에게 머무는 장소가 생겼고, 한 쪽 눈이 없는 요괴가 앞을 볼 수 없는 인간을 좋아하게 된 날이었다.
* * *
산꼭대기부터 내려오는 하늬바람이 크게 불었다. 산바람이라고 부르기에는 희한할 정도로 기세가 좋았다. 그리고 바람결에 섞여있는 젖은 깃 냄새. 평범한 바람이 아녔다. 누군가가 몰고 오는 바람의 기운에 쵸로마츠는 혀를 차고서 곰방대의 담뱃재를 털었다. 예정에 없던 손님이 찾아왔다.
쏴아아. 얼마 지나지 않아 기이한 회오리바람이 쵸로마츠의 앞에 들이닥쳤다. 주변의 낙엽들을 전부 쓸어 모으면서 한참을 제자리에서 돌던 바람은 서서히 기세를 늦추더니, 이윽고 바람이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그 중심으로 커다란 형태가 나왔다. 푸른 수험자 복장에 머리에는 붉고 코가 긴 가면을 얹고 있고, 손에는 새하얀 깃털부채를 쥐고서 걷기 불편해 보이는 높다란 게다를 신고 있는 젊은 남자였다. 펄럭. 남자의 등에 돋아난 검은 날개가 푸드덕거렸다. 윤기가 흐르는 큼직한 위엄 있는 날개는 의심할 여지없는 까마귀의 날개였다.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내리 찌르는 위엄이 느껴지는 비범한 존재는, 외모와 다르게 살가운 목소리로 쵸로마츠에게 먼저 인사말을 건넸다.
“오랜만이구나, 쵸로마츠. 요새 안 보이기에 한참 찾아다녔는데 말이다.”
“다이텐구(大天狗)라는 녀석이 여기까지 와도 되겠냐, 카라마츠.”
쵸로마츠를 찾아온 드문 손님은 텐구였다.
본디 텐구는 요괴들 중에서도 드물게 무리를 이루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느 높은 산에 터를 잡고 사는 요괴로, 오랜 세월 동안 쌓아온 지혜와 다른 요괴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신통력을 지녀 격이 높은 존재로 취급되어 오던 존재들이다. 그 중에서도 다이텐구는 텐구들 중에서도 가장 신통력이 높은 상위 계층의 종족으로서, 어지간해서는 자신들이 사는 산에 내려오지 않고 다른 요괴들과도 함부로 섞이지 않는 오만한 존재이지만 그런 존재들 안에서도 별종은 항상 나오는 법이다. 불완전한 도도메키로 취급 받아온 쵸로마츠를 유일하게 신경 써주어 여유가 되면 산에서 내려와 그를 찾으러 오는 카라마츠가 그랬다. 그런 카라마츠의 배려에 대해 쵸로마츠는 귀찮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 때문에 텐구들 사이에서 찍힐 까봐 줄곧 그만 찾아오라며 짜증을 부렸지만, 텐구들의 고집은 누구도 쉬이 꺾지 못하는 것인지라 아직까지도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중이었다.
“인간 냄새가 나는군. 설마 인간이랑 함께 지내고 있는 건가?”
“뭐, 그렇게 됐어.”
“…변했군, 쵸로마츠.”
“뭐야. 고작 인간이랑 좀 지냈다고 그런 소리 하는 거냐?”
“그게 아니라, 눈빛만 봐도 예전과 확연히 달라졌다는 게 느껴져서 그런다. 이거야, 내가 걱정한 게 헛수고가 될 정도로군.”
그 말을 하고서 한시름 놓았다는 듯이 웃어버리는 카라마츠의 모습에 쵸로마츠는 무안해져서 애꿎은 곰방대만 물어뜯고서 조금 전에 장작 주우러 올라간 오소마츠를 들먹였다.
“그나저나 오소마츠 이 녀석, 설마 또 샛길로 샌 건 아니겠지?”
“어이-! 쵸로마츠-!”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는 말처럼,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의 이름을 들먹이자마자 오소마츠가 지게를 짊어지고 산길에서 내려오면서 쵸로마츠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있었다. 그리고는 쵸로마츠의 옆에 있는 카라마츠의 존재를 발견한 것인지 금방 깜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지게를 벗을 틈도 없이 곧장 쵸로마츠에게로 달려와서는 쵸로마츠와 카라마츠를 번갈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와! 쵸로마츠, 이 녀석은 누구야?”
“보면 알잖아. 텐구인 카라마츠다.”
“와아!! 콜록. 텐구는 이름만 들어봤는데 보는 건 처음이야! 대단하다, 상상했던 것보다 멋지잖아! 근데 텐구들은, 콜록, 원래 이렇게 반짝이는 옷을 입고 다니는 거야?”
“아니. 이 녀석만 그래.”
“훗. 이 몸의 퍼펙트 패션이 마음에 드는 건가, 카라마츠 보이?”
“아야얏! 아퍼, 갑자기 갈비뼈가 아퍼!! 콜록, 콜록. 설마 이게 말로만 듣던 텐구의 신통력?”
“아니. 그냥 이 녀석이 아픈 소리를 자주 지껄여서 그런 것뿐이야.”
“에.”
“아하하. 콜록, 콜록. 텐구는 무서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재밌네. 콜록, 콜록.”
“어이, 오소마츠. 너 아까 전부터 자꾸 기침하는데 괜찮은 거야?”
“어? 아, 그러고 보니 조금 쌀쌀한 건지도.”
“카라마츠 녀석이 몰고 온 바람 때문인가… 아무튼 요새 기침도 자주 하던 것 같은데 먼저 들어가 있어.”
“응. 알았어. 카라마츠도 잘 가!”
쵸로마츠의 당부대로 먼저 집으로 들어가기로 한 오소마츠는,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들어가는 와중에도 계속 잔기침을 흘렸다. 쵸로마츠가 그런 오소마츠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으면서 날이 점점 쌀쌀해져서 몸이 차가워진 것이 아닌가 싶은 걱정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의 손이 쵸로마츠의 어깨를 덥석 붙잡았다. 갑자기 얹어진 큰 손에 고개를 돌려보니, 카라마츠였다.
“뭐야, 카라마츠.”
뒤를 돌아 마주한 카라마츠의 얼굴은, 어쩐 일인지 진지하게 굳어져서는 엄한 눈빛으로 쵸로마츠를 마주보고 있었다.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을 가다듬지 못하게 만드는 텐구의 눈빛. 아무리 아픈 발언을 일삼고 허당스러운 모습을 보여도 텐구들 중에서도 희구하면서도 가장 격이 높다고 알려진 다이텐구였다. 처음으로 마주하는 카라마츠의 엄중한 눈빛에, 쵸로마츠마저 잠깐 등줄기에 식은땀을 흘리고 말았다.
“쵸로마츠. 저 인간, 처음부터 앞을 보지 못했던 건가?”
“뭐? 그건 갑자기 왜….”
“묻는 말에 대답해.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인간인 건가?”
“아, 아니. 듣기로는 어느 날부터 갑자기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고…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나 다른 요괴들의 모습은 볼 수 있었다고 그랬어.”
“저 인간하고는 얼마나 같이 지냈지?”
“몇 년은, 지났어.”
쵸로마츠의 말을 전부 들은 카라마츠는, 붙잡은 쵸로마츠의 어깨를 놓아주고는 보기 드문 심각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내 고개를 들어 쵸로마츠를 마주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라, 쵸로마츠.”
* * *
본디 사람과 요괴는 본질부터 다른 존재로서, 살아가는 세계 또한 다르다.
그렇기에 대개의 인간은 요괴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으며, 요괴 또한 함부로 인간들의 일을 간섭하지 않는다. 이것은 오랫동안 이어져오던 불문율이며 자연의 이치였다. 그러나 간혹, 서로의 세계가 섞여드는 경우가 있었는데 바로 인간이 요괴의 모습을 인지하는 경우이다. 그리고 인간은 요괴를 볼 수 있는 힘을 핏줄을 통해 후대로 이어 내려갔고, 그렇게 해서 요괴를 볼 수 있는 힘을 계승받은 인간은 대게 음양사 같은 직업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음양사들은 다른 집안보다도 자신들의 혈통을 중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드물게, 아주 드물게 후천적으로 요괴를 볼 수 있게 된 존재가 나타나게 된다. 그들은 소위 말하는 ‘요괴의 눈’을 얻게 된 케이스였다. 원인도, 경위도 알 수 없으며 그저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면 멀쩡했던 시력을 잃어버리고, 그 대신 자신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존재들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들의 눈은 더 이상 인간의 것이 아닌, 요괴의 것이 된 것이다.
“너무 희귀한 사례인지라 요괴들 사이에서도 알려져 있지 않지만, 우리들 문헌에는 사례가 기록되어 있어서 기억하고 있었지.”
그러나 다시 한 번 강조하듯이, 인간과 요괴는 본질부터 달라 공존할 수 없는 존재. 인간의 몸으로 요괴의 것을 가질 수 없는 것이 자연의 이치였다.
“요괴에게 있어 인간이 해롭듯이, 인간에게 있어서도 요괴는 해로운 존재가 될 수밖에 없지. 시력을 잃고서 그 인간 주변에 안 좋은 일들이 연달아 일어났다고 했지? 그건 그 눈에 깃든 요괴의 힘이 인간들의 인과에 악영향을 끼쳐서 그런 거다.”
그리고 주변의 것들에 해를 끼치던 요괴의 힘은, 이윽고 자신의 숙주마저도 갉아먹어버리고 만다.
“그 눈을 가지게 된 인간은 전부 빠짐없이 단명하게 되어버려. 게다가 요괴인 너와 함께 지냈으니 더 악화되었겠지. 내가 봤을 때, 이미 몸이 쇠약해지기 시작한 단계에 접어들었어.”
“그, 그럼 나을 방법이나, 눈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방법은….”
“안타깝지만 원래대로 되돌릴 방도는 없어. 한 번 피안의 너머로 가버린 것은 다시 돌아오지 못해. 나을 방법도 현재까지 밝혀진 바가 없고. 딱 하나, 지금이라도 목숨을 건지려면… 원인을 제거하는 수밖에 없겠지.”
아아. 이런 걸 두고 인간은 ‘절망’이라고 부르는 걸까.
바람이 불었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삭풍은 예정보다 한 걸음 일찍 겨울을 끌어오고 있는 중이었다.
* * *
카라마츠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겨울이 찾아왔고, 오소마츠가 앓아눕기 시작했다.
잔기침을 뱉는 수가 점차 늘어나면서 기침은 거칠어져갔고, 이윽고 목구멍이 헐어버려 피를 토해내는 일이 빈번해졌다. 팔다리는 말라가 혼자 힘으로 제대로 서는 것조차 버거웠고, 음식을 제대로 씹지 못할뿐더러 겨우 넘겨도 소화해내지 못해 도로 토해버리기 부지기수였다. 그런 일들이 몇 번 반복하니 이제는 누워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못하게 되었다. 이전에는 귀찮게 할 만큼 잘 떠들었으면서, 지금은 말하는 것조차 힘겨워했다. 말 그대로 메말라갔다. 무언가에 기력을 빼앗기듯, 오소마츠는 함박눈에 덮여가는 초라한 집 안에서 가쁜 숨을 들이쉬며 살아가고 있었다. 아직은, 죽지 않은 채. 그러나 언젠가는 머지않아 죽을 모습으로.
「그리고 머물 곳이 왜 없어? 지금 여기에 쵸로마츠가 머물고 있잖아. 나랑 같이.」
왜 그 말을 덜컥 믿어버린 걸까. 인간이 하는 말 따위, 믿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는데. 여기 또한 자신이 머물러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오소마츠 또한 자신과 함께 지낼 수 없는 존재였다. 조금이라도 더 일찍 이곳을 떠났더라면 그만큼 더 살아갈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런데 자신으로 인해 그 아까운 시간마저 단축되고 말았다. 좀 더 빨리, 아니 애초에 여기에 오는 게 아니었는데.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서, 쵸로마츠는 죄책감에서 허우적거렸다. 이럴 생각이 아녔다. 오소마츠의 눈에 대한 사정을 알았더라면 어떻게 해서는 빨리 떠났을 것이다. 허나 이미 모든 것이 늦어버린 후였고, 남은 건 싸늘한 후회와 그 안에서 쇠약해져서는 죽음에 이르려고 하는 오소마츠 뿐이었다. 깜빡, 깜빡, 깜빡. 깜빡이는 소리가 들렸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깜빡임에는 묵직한 물기가 어려 있었다. 마치 눈물을 참아내듯이, 온 몸에 있는 눈들이 쉴 새 없이 깜빡였다. 이대로 너는 죽어버리고 마는 걸까.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깊은 심연 속에서, 혼자, 외롭게.
「지금이라도 목숨을 건지려면… 원인을 제거하는 수밖에 없겠지.」
원인. 오소마츠를 죽이고 있는 원인.
여전히 오소마츠의 눈에는 붕대가 감겨져 있다. 잘 때도, 씻을 때도 항상 감겨있는 붕대는 하루에 한 번 갈아줄 때를 제외하고는 풀린 적이 없었다. 그나마 풀어놓는다고 해도 오소마츠의 여린 눈꺼풀은 떠지지 않았다. 깜빡임의 소리 없이, 숨죽은 듯이 고요함을 지니고 있는 두 눈은 쓸쓸하면서도 어딘가 경건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 오소마츠의 맨 얼굴을 볼 때마다, 쵸로마츠는 마치 자신만이 볼 수 있는 오소마츠의 은밀한 모습을 엿본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렸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빛을 담아낼 수 없어도 가장 특별하고도 사랑스러운 눈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그마저도 모두 요괴가 보여주는 허깨비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처음부터 엮이지 말았어야 했다.
“안 돼.”
오소마츠의 눈으로 뻗어가는 쵸로마츠의 손을 저지한 것은, 어느 틈엔가 일어난 오소마츠였다. 마른 손으로 쵸로마츠의 손목을 힘없이 잡고서 말리는 오소마츠의 만류는 힘으로만 보면 너무도 쉽게 물리칠 수 있는 것이지만, 손끝과 말끝에서 새어나오는 절박함이 강하게 붙들어 매어 쉽게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싫어, 쵸로마츠.”
“오소마츠! 너 지금 무슨 상황인지는 알고…!!”
“알고 있어. 전부. 지난번에 온 텐구가 나한테도, 알려줬거든.”
젠장, 그 바보가. 어느 정도 기력을 차린 것인지 오소마츠는 이제 몸을 돌려 양 손으로 쵸로마츠의 손을 포개어 잡고서는 말을 이었다.
“이 눈이 없으면, 쵸로마츠 마저 못 보게 되잖아. 그건 싫어. 내가 볼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쵸로마츠인데, 쵸로마츠도 보이지 않으면 안 되잖아.”
“하지만 그 눈 때문에 네가 죽어가고 있는 거라고! 그리고 내가 있어서….”
“에이, 정말로 그 말을 믿은 거야? 그 텐구, 다른 건 다 믿을 만한데 그런 엉터리 같은 말을 남겨서 사람 곤란하게 만든다니까. 괜찮아. 쵸로마츠 때문에 그런 거 아니야.”
밖에서 눈보라가 슬피 치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에 벽이 흔들렸고, 눈이 몰아치는 소리가 구슬피 울렸다. 마치 그 안에 생명이 꺼가는 것을 안타까이 여기는 것처럼, 장송곡마냥 곡을 울렸다. 아, 이제 정말로 손쓸 도리가 없구나. 그것을 직감한 쵸로마츠는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괴로움에 잇새 사이로 고통을 새어 보내며 오소마츠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러나 요괴의 체온으로는 인간의 몸을 데워줄 수 없었다. 요괴임에도 인간 하나 살리지 못한다는 것이 이토록 가슴을 칠 만큼 원통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있지, 쵸로마츠. 붕대 좀 풀어줘. 좀 더, 제대로, 쵸로마츠의 얼굴을 보고 싶어.”
그런 쵸로마츠를 달래듯, 오소마츠는 여전히 평소와 같은 말투와 친근한 목소리로 쵸로마츠에게 부탁을 했다. 그 말을, 쵸로마츠는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조심스럽게 오소마츠의 뒤통수로 손을 가져다가, 단단히 고정시켜 놓은 붕대의 끝을 잡고 천천히 풀어나갔다. 천천히, 천천히. 그러면서 붕대 사이로 조금씩 감긴 오소마츠의 두 눈이 드러났다. 붕대에 감겨져 있어 느끼지 못했던 찬바람이 눈두덩 위를 지나가자 긴 속눈썹이 흠칫, 몸을 떨었다.
“이제 됐어. 눈 떠봐.”
그 말을 듣고, 오소마츠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윽고 파르르 속눈썹을 떨면서, 마치 알에서 방금 막 깨어난 아기 새의 날갯짓처럼 조용히, 눈송이가 땅에 내려앉듯이 마침내 오랜 세월 동안 감겨있던 두 눈을 떴다. 몇 년 만의 개안이었다. 마주한 두 눈동자는 싱싱한 석류알처럼, 혹은 황혼을 담뿍 적신 것처럼 붉었다. 인간이 가질 수 없는 피안의 빛깔. 그렇기에 바라볼수록 홀리듯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매혹적인 눈동자였다. 지금껏 오랜 세월을 살면서 여러 곳을 방랑했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붉은 빛깔은 맹세코 단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너의 생명을 먹고 뜬 눈동자는 밉도록 아름다웠다.
“보여….”
처음 눈을 뜬 오소마츠가 중얼거리듯이 꺼낸 말이었다. 오소마츠로서도 오랜만에 눈을 뜬 것인지라 낯설면서도 새로운 기분에 잠시 취한 탓이었다. 뜻밖에도 붕대를 풀고서 뜬 두 눈은, 어느 때보다도 잘 보였다. 밖에서 내리고 있는 새하얀 함박눈과 아늑한 집안, 그리고 자신을 안고서 내려다보고 있는 쵸로마츠의 얼굴까지도, 또렷하게 잘 보였다.
“아아. 드디어 만났네.”
깜빡. 한 번, 깜빡이는 소리가 났다.
새하얀 손이 천천히 올라가 쵸로마츠의 두 뺨을 어루만졌다. 소중한 것을 만지는 것처럼, 이 날만을 고대하는 것처럼 환희로 살짝 떨리기까지 한 손은 그토록 보고 싶었고 만지고 싶었던 사랑의 형태를 확실하게 기억해두기 위해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오소마츠의 손끝에 오른쪽 눈을 가렸던 붕대가 걸렸고, 이윽고 붕대는 사르륵 풀려나가 휑한 쵸로마츠의 오른쪽 눈을 드러냈다.
“뭐야. 자꾸만 붕대로 감춰서 어떤가 싶었는데, 생각보다 괜찮잖아.”
그러니까 울지 마, 쵸로마츠.
깜빡. 두 번, 깜빡이는 소리가 났다.
오소마츠의 말을 듣고서야 쵸로마츠는 자신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으로 지냈던 시절에 오른쪽 눈을 통째로 잃었을 때도, 요괴가 되어 동족들에게 배척당해 부평초 신세로 전락해 버렸을 때도, 한 번도 울지 않았던 왼쪽의 눈에서 처음으로 감정이라는 것이 흘러 넘겼다. 자신이 유일하게 지니고 있는 인간이었다는 증표가, 다가오는 이별을 견디지 못하고 자꾸만 슬픔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이래서 인간은 귀찮아. 귀찮단 말이야.
“나중에, 내 눈을 써봐.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나 모르니까.”
“오소마츠.”
“여기에 계속 혼자 있는 것도 이젠 질렸거든. 쵸로마츠랑 같이 지내는 게 훨씬 재밌었어. 정말로, 즐거웠어. 기왕이면 쵸로마츠랑, 같이, 더 많은 걸 보고 싶었는데.”
“오소마츠.”
“괜찮아, 쵸로마츠. 우린 계속, 같은 것을 보고 있었어.”
깜빡. 그리고 세 번째.
그것으로, 더 이상 깜빡임의 속삭임은 들리지 않게 되었다. 딱 세 번만 들을 수 있었던 소리는 그대로 눈에 고이 파묻혀버렸고, 더는 아무도 들을 수 없는 소리가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쵸로마츠는 계속 차가워져가는 시신을 끌어안고, 그 흔적을 찾으려는 듯 눈물로 얼굴을 부비며 한참을 그리 수그린 채로 있었다. 세 번의 깜빡임으로 전해진 것을 자신도 답해주고 싶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메아리뿐이라 그것이 너무도 미안해서, 쉬이 놓을 수가 없었다.
밖은 여전히 눈이 내렸지만, 그래도 겨울이 끝나가고 있었다. 머지않아 마을에도, 요괴와 인간이 살던 집에도, 떠났던 봄이 돌아올 것이다.
* * *
산새가 지저귀고, 꽃봉오리가 활짝 피어나고, 햇살을 태운 따스한 마파람이 불어왔다. 화사한 빛깔을 에두른 산 속 마을에는 봄이 만개했다. 어딜 보나 모자람이 없는 절경이었다. 그런 한적하고 아름다운 마을의 외곽에 잠깐 회오리바람이 불더니, 곧바로 걷혀지면서 바람 안에서 텐구 한 마리가 나왔다. 봄이 되어서야 산에서 내려올 수 있었던 카라마츠는 줄곧 마음에 걸려 다시 그 집을 찾아왔다. 그러나 도착한 집에는 인기척 하나 없었고, 최근까지 누군가가 살았던 흔적도 없었기에 카라마츠는 계속 주변을 둘러보던 중 뒤뜰에까지 가봤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침내 줄곧 찾아다녔던 이를 발견했다. 녹색 기모노를 입은 조금 마른 체격의 남자는 뒤돌아 선 채로 잠시 산의 녹음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의 손에는 낡은 붕대가 가볍게 쥐어져 있었다.
“쵸로마츠?”
의아한 목소리로 조심히 이름을 부른 카라마츠의 목소리를 들은 남자가 몸을 돌려 카라마츠를 마주했다. 기모노 아래로 보여 지는 붕대들과 날카로운 눈매, 콧잔등에 걸쳐진 안경과 검은 왼쪽 눈동자.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붉은 빛을 영롱하게 빛내고 있는 오른쪽 눈동자였다.
그 눈동자를 본 것만으로 모든 일을 이해한 카라마츠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른쪽 눈은, 괜찮은가.”
“어. 며칠이 지나도 썩지 않고 유지되어 있어. 마치 처음부터 내 몸이었던 것처럼.”
“그래. 잘 보이는 모양이군.”
“응. 빌어먹게도 너무 잘 보여서, …오히려 짜증날 지경이야.”
그리고 조용히, 미련이 흘러넘쳤다.
오른쪽 눈동자에서만 흐르는 기이한 눈물 줄기는 한동안 멈출 기미를 보여주지 않고 쉼 없이 흘렀지만 쵸로마츠는 그것을 닦으려고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놔둔 채로 잠시 동안 젖은 눈으로 오소마츠와 함께 살았던 곳을 둘러봤다. 물기가 어려 제대로 시야가 비쳐 들어오지 않을 텐데도 오른쪽 눈동자는 어느 때보다 생기 있고 맑게 트여있는 것 같았다. 오랜 어둠 속에 잠겨있던 만큼, 눈동자는 그 어느 것보다 크게 트여진 상태로 붉은 홍채 위에 녹음을 덧칠했다. 오른쪽 눈으로 비쳐 보이는 세계는 지금까지 수많은 눈들로 봤던 세계보다도 선명했고, 자신이 발견하지 못한 사랑스러움으로 채워져 있어, 그래서 자꾸만 눈물이 멈추지 않은 듯 했다.
잠시 후, 떠날 채비를 마친 쵸로마츠는 카라마츠와 함께 처음 오소마츠를 만났던 나무 밑에 서서 헤어질 인사를 나눴다.
“동족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갈 건가?”
“말했잖아. 그런 녀석들은 오라고 해도 내 쪽에서 사양이라고.”
“그럼 계속 떠돌아다닐 생각인 건가?”
“뭐, 이제는 이쪽 생활이 더 익숙해졌고, 이 눈으로 보지 못했던 것들을 전부 보려면 한동안은 좀 바빠서 말이야. 하여튼, 성가신 게 생겨버렸다니까.”
“그래도 잘 되지 않았나. 혼자가 아닌, 함께 보는 것이 더 나으니까.”
“…뭐, 그렇긴 하지만.”
“자, 그럼 나도 이만 산으로 가봐야겠군. 몸조심해라, 쵸로마츠.”
“그래.”
그렇게 작별인사를 마친 카라마츠는 여기에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바람을 타고 홀연히 사라졌다. 카라마츠를 떠나보내고, 혼자가 된 쵸로마츠는 잠시 고개를 돌려 산 아래를 내려다 봤다. 녹음으로 둘러싸인 마을과, 자신과 오소마츠가 함께 살았던 소박한 집이 한 눈에 들어왔다. 봐, 네가 태어난 마을과 우리가 함께 지냈던 집이야. 마치 그것을 알려주려는 듯 쵸로마츠는 그렇게 서서 가만히 마을과 집을 내려다봤다.
깜빡, 깜빡, 깜빡.
하나, 둘, 셋. 어떤 것을 눈에 깊이 담아두려면 천천히 세 번, 눈을 감았다가 떠야 한다. 소중한 것일수록, 기억에 오래 남겨두고 싶은 것일수록 그래야만 한다.
그렇게 눈에 담아둔 쵸로마츠는 이윽고 발길을 돌려 먼 길을 떠나기 시작했다. 긴 여행이 되겠지만, 앞으로 이 눈으로 볼 것들을 생각하니 발걸음이 마냥 힘겹지는 않았다.
그 후로 세월이 흘러, 요괴들 사이에서 묘한 풍문이 돌기 시작했다. 녹색 기모노를 입고, 온 몸에 붕대를 두른 도도메키가 하나 있는데, 그 도도메키는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부평초마냥 정처 없이 떠돌고 있으며 그의 오른쪽 눈은 평범한 눈과 달리 붉게 빛나고 있는데, 그것은 다른 눈들과 다르게 황혼을 본 딴 붉은 피안을 담고 있어 어떤 눈동자보다 아름답기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 그 눈동자를 보고자 많은 이들이 그 도도메키를 찾아 다녔지만, 쉽게 그 모습을 찾아낼 수 없었다고 한다.
* 공백 포함 19,570자
* 2016. 08. 21. 후반부 장면 수정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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