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범 토고와 모방범 오소마츠 이야기.
※ 약간 성적 묘사가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첫 만남은 정중한 인사서부터 시작된다.
“아, 네, 안녕하세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상대의 인사말과는 반대로 그의 말은 자잘한 것이 붙어버렸다. 한창 밖으로 나와 문단속 중이었는데 갑자기 인사를 받은 탓에 놀란 나머지 말을 잠깐 더듬은 탓이었다. 그러나 상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이에 비해 조금 앳되고 무해한 미소를 유지했다. 체구에 비해 폼이 조금 큰 검은 후드 티와 흔한 청바지를 입은 20대 초중반의 청년은 이 빌라에서 처음 보는 낯을 가졌다. 남자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지만, 남자라는 성별이 지닌 고정관념과 달리 선이 조금 가늘다는 것이 첫 인상을 가지고 내린 평가였다.
청년은 자신에게 내려지는 의혹의 눈빛을 읽고는 즉각 그것을 해소시켜줬다.
“어제 윗집으로 이사 왔는데, 모르셨어요?”
“아… 어제는 제가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소식이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뇨. 그나저나 어제 요 근처에서 강도 사건이 발생했다던데, 괜찮으세요?”
“네, 괜찮습니다. 다행히 다른 곳에 있어서 무사했거든요.”
“그거 다행이네요. 아, 아침부터 바쁠 텐데 붙잡아 둬서 죄송해요. 앞으로 자주 볼 이웃 사이인데 말 편하게 하셔도 되요. 그 편이 편하고, 저도 말 놓을 생각이니까.”
“아, 그럼….”
“그럼 다음에 또 봐, 토고 아저씨.”
그것을 끝으로 청년은 바로 토고를 지나쳐 때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 안으로 쏙 들어갔다. 청년을 태운 엘리베이터는 바로 문을 닫아버렸고, 그대로 아래로 지체 없이 내려갔다. 그런 청년의 뒤꽁무니를 혼자 남겨진 토고만이 멍하니 바라봤다. 사교성이 탁월한 것인지, 연장자에 대한 예의와 버르장머리가 없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만큼 청년의 말 놓음은 신속하고 자연스러워 화낼 타이밍조차 발견해내지 못했다. 허. 그래서 토고는 다만 힘 빠진 숨만 뱉어냈다. 그러면서 그는 석연찮은 위화감 같은 것을 느꼈지만, 청년의 잔망스러운 넉살 때문에 그렇다 넘겨짚었다.
그도 청년을 따라 엘리베이터 앞으로 갔다. 토고가 있는 층은 6층이었고, 엘리베이터는 1층에 있었다. 조금 오래된 엘리베이터이기에 다시 6층까지 올라오려면 조금 시간이 걸렸다. 굳게 닫힌 엘리베이터의 문 앞에서 토고는 아침 뉴스를 떠올렸다. 어느 가정집에 강도 살인이 일어났다는 뉴스였다. 청년이 예의 차 언급한 그 강도 살인 사건이 분명했다. 토고는 엄숙히 사건에 대해 말하는 아나운서의 말과 청년의 말을 교차시키며 근처에 강도 살인이 일어났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보다는 의아함으로 잠깐 고개를 옆으로 뉘였다. 띵. 6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가 문을 열고 토고를 맞이했다.
청년에게 말한 대로 토고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곳은 그가 사는 이곳 빌라와는 정 반대 방향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뉴스에서는 이 근방이라고 말하는 걸까.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으며 토고는 무심코 생각한 것을 작게 읊조렸지만, 문이 닫히면서 의혹에 찬 중얼거림은 흔적도 남기지 않고 흩어져 사라졌다.
* * *
어떤 일에는 그 일을 이루고자 하는 수단과 일에 대한 결과, 그리고 거기에 딸려오는 도덕적 의미가 존재한다. 일단은 함께 공존하고 있는 삼위일체지만, 비중을 어디에 우선적으로 두냐에 따라 사람의 가치관이 좌우된다.
토고가 우선시 여기고 있는 것은 수단이었다. 자신에게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수단을 강구해서라도 이루고 만다. 거기에 결과와 도덕적 의미가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그래서 토고는 범죄라는 수단을 선택했다. 그 편이 편하고 빠르게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손에 넣을 수 있을까. 그게 전부였다. 원래 범죄라는 것은 단출한 이유에서부터 시작되는 사소한 일인-비록 ‘사소함’의 기준이 전적으로 토고 개인의 기준점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셈이다. 협박과 절도는 기본이고 강도는 전공이며 살인은 옵션이었다. 몇 년 전부터 주기적으로 매스컴과 경찰들을 볶아대어 골치 아프게 만드는 연쇄 강도 살인 전문 범죄자는 어느 평범한 빌라 6층에 거처를 마련해 안락한 생활을 무사히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모든 것이 순탄했다. 일을 한 차례 벌일 때마다 손에는 두둑한 돈다발과 값나간 패물들이 쥐어졌고, 그것으로 몇 달은 무리 없이 살 수 있었다. 일을 하지 않아도 이렇게 편히 먹고 살 수 있었다. 그래서 토고는 성실히 일하는 직장인 같은 부류를 끔찍이도 싫어했다. 그들은 단지 겁쟁이기에, 요령이 없기에 어렵고 답답한 길을 선택했다는 것이 토고의 주장이었다. 가지고 있는 돈이 다 떨어지면 다시 남의 집에 들어가 남의 돈을 훔치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살아왔어도 지금까지 경찰에게 꼬리를 잡히거나 수상한 의심을 받지 않았다. 먼저 상대방에게 굽히고 들어가며 최대한 인간성 좋은 웃음을 만연에 드러내는 그만의 처세술이 큰 몫을 했다. 어느 강도의 일상은 다른 누구보다도 평범하고 평화로웠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문제라고 말해도 되는지 망설여질 만큼 꺼림칙하고 거슬리는 일이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따라하고 있다.
토고가 그걸 알아차린 때는 바로 최근이었다. 자신이 저지른 강도 범죄 외에도 다른 강도 살인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세상에 강도범이 토고 한 사람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행동반경이 겹쳐서 비슷한 범죄가 발생한 적은 이전에도 두어 번 있었기에 처음에는 남 일처럼 뉴스에 나오는 사건들을 관람하던 다른 일반인처럼 토고도 큰 의미 없이 무심하게 넘겼다. 그러나 몇 번 비슷한 일이 반복해서 일어나고, 인터넷을 통해 범인의 수법이 몇 차례 알려지면서 토고는 점차 스멀스멀 밀려드는 찜찜함을 기분 탓으로 넘기기 힘들었다. 딱히 전문가라고 칭할 자부심 같은 건 없었지만 오랫동안 이 일로 먹고 살면서 연륜이 쌓인 토고에게는 저만이 아는 ‘버릇’같은 것이 있었다. 주로 쓰는 흉기, 범행 수법, 뒤처리 방식 등에서 특유의 버릇이 나오게 된다. 그래서 경찰들도 수사할 때 그것을 발견해내고 각각의 범죄를 연결 지어 동일범의 소행이라고 결론을 내리지 않은가.
그래서 당사자인 토고는 경찰들보다 한 발 앞서 눈치 챌 수 있었다. 이것은, 의도적으로, 자신을 따라한 것이 분명하다.
모방범.
미드 같은 곳에서나 들어봤을-토고는 해외 드라마를 보지 않지만 신문에 실린 칼럼에서 범죄 전문가가 언급한 단어를 봤기에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었다-그 단어를 떠올리자 토고는 혀를 차면서 담배를 뻑뻑 피워댔다. 남이 사람을 죽이든 뭘 하든 관심은 없지만, 자신의 범죄를 고대로 따라하는 상황 자체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누군가가 자신을 따라한다는 것은 호기심과 어리광이 많은 어린애들에게만 통하는 애교였고, 그마저도 토고에게는 애교로 전혀 비춰지지 않았다.
“또 외출이야?”
그러는 와중에도 새로운 이웃과의 교류는 계속됐다.
6층 엘리베이터 앞, 청년은 집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온 토고를 웃는 낯으로 반겼다. 오늘도 검은 후드 티에 물 빠진 청바지, 흙투성이 운동화였다.
“그러는 너도 어디 가는 거냐?”
“응. 이번에 새로 기계가 들어왔다기에 한 번 돌려봐야지.”
청년은 오른손으로 무언가를 잡는 시늉을 하면서 까딱까딱 돌렸다. 아직 창창한 나이와 백주대낮인데 물 빠진 아저씨들처럼 빠칭코나 돌리는 모습이 여간 한심한 게 아니지만 토고는 청년의 나태함을 지적하지 않았다. 남의 일이라면 필요 이상 간섭하지 않는 주의였고, 엄밀히 따지면 토고 본인도 일이 없었다. 강도도 직업의 일종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엘리베이터가 오는 것을 기다렸다. 대화 없는 침묵 속에서도 어색함은 없었다. 자연스럽게 오가던 격식 없는 대화처럼, 두 사람은 이웃으로서 어느 정도 허물없는 사이가 되었다는 증표였다.
그 남자의 이름은 오소마츠였다. 마츠노 오소마츠. 오소마츠. 참 이상한 이름이라 쉬이 잊기 어려운 이름이었다.
내 이름은 마츠노 오소마츠. 오소마츠라고 불러줘.
토고가 앳된 청년의 이름을 안 건 두 번째 만남 때였다. 오소마츠는 높낮이 없는 평이한, 그러나 발음만은 또박또박하고 목소리가 나긋나긋해서 귀에 쏙 들어오는 그런 목소리로 제 이름을 토고에게 직접 알려줬다. 특이한 이름과 더불어 그 목소리와 발음, 그리고 그 안에 내제되어 있는 형체 모를 무언가가 토고의 뇌리에 그 이름 넉 자를 깊게 새겨뒀다. 그래, 오소마츠. 토고는 알았다는 말 대신 그 이름을 불러줬다. 오소마츠는 기뻐했다. 생기가 완연히 퍼져나가는 그 얼굴에서 토고는 마치 제가 오소마츠라고 불러줌으로서 눈앞의 소년 같은 남자가 비로소 ‘오소마츠’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을 얼핏 가졌다. 허나 다 허깨비라고 생각해 도리질을 쳤다.
“아저씨는 일하러 가는 거야?”
도리질을 치니 현재에 안착했다. 엘리베이터는 1층에서 태운 승객들을 내려주고 있었다. 토고는 그 말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평소 같았으면 그렇다며 수더분하게 웃으며 말했겠지만, 왠지 지금은 그럴 기분이 들지 않았다. 제 주변에 얼쩡거리는 모방범인지 뭔지 때문인지, 아니면 아랫집 이웃 이상으로 자신을 따르는 요상한 이름의 애송이 때문인지. 그러다 더 생각하기도 귀찮아 토고는 이전과 다른 대답을 내놨다.
“아니. 당분간은 쉬기로 했다. 일하는 곳에 문제가 생겨서 말이지.”
따지고 보면 그 말은 사실이기도 했다. 방금 정한 것이지만, 토고는 하던 일을 잠시 쉬기로 결정했다. 아직 정말로 자신의 범죄를 따라하는 귀찮은 녀석이 있다고 단정된 것도 아니지만, 주변에 자신과 유사한 수법의 범죄가 일어난다는 것만 봐도 좋은 징조는 아녔다. 자칫하다가는 그 녀석의 죄까지 자신이 저지른 것으로 오인되어 성가신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남이 저지른 일까지 대신 신경 쓸 만큼 토고는 자비로운 남자가 되지 못했다. 지난번에 크게 한 탕 해서 아직 남은 돈이 넉넉했다. 적당히 지내다보면 두 달 정도는 넉넉히 보낼 수 있다.
“그렇구나.”
띵. 엘리베이터가 6층에 도착하는 소리였다.
“그럼 아저씨도 나랑 같이 갈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새로 만나 친해진 아이에게 새로운 놀잇감을 찾으러 가자는 어린 소년의 천진함과 지나가는 행인을 느슨히 붙잡는 윤락가의 퇴폐가 기묘한 공존을 이루는 말투였다. 어느 쪽이든,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었다. 간단하고 흔한 단어로 구성된 그 말은 그만큼 강렬한 제안을 매혹적이게 내던지고 있었다. 게다가 토고에게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휴업을 결정하면서 임시 백수가 되었고, 운과 확률에 대한 맹신이 없어 도박을 꺼려하면서도 한 번의 일탈은 괜찮지 않을까하는 관대함마저 자리했다.
토고는 열린 엘리베이터 안으로 먼저 발을 들였다. 오소마츠도 웃는 얼굴로 껑충 뛰어서 뒤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자 두 사람을 태운 엘리베이터는 지체 없이 아래로 훅 내려갔다.
* * *
그 후로도 토고는 오소마츠와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나 밖에서 어울렸다. 여기서 ‘어울렸다.’라는 표현은 참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빠칭코나 경마장을 휘젓거나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노닥거리는 식으로 ‘어울렸고’, 삼촌과 조카처럼 길거리를 배회하는 식으로 ‘어울렸고’, 행운의 여신이 베푼 자비에 감격해 값싼 호텔을 운 좋게 발견해 몸을 섞는 식으로 ‘어울렸다’ 그들은 여전히 사이좋은 이웃이었다. 오소마츠는 토고가 하는 말이라면 대체로 군말 없이 잘 따랐다. 누구든 제 말을 순종적으로 잘 따르는 사람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속궁합도 좋고 피임 걱정도 없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이런 관계에 대해 토고는 꽤 신선하게 받아들였다. 이중생활을 하는 특성상 누군가와 함부로 가까이 친분을 가져서는 안 되기 때문에 토고는 항상 가식과 기만을 경계로 타인과 선을 그었다. 그것은 오소마츠에게도 매한가지였다. 오소마츠 앞에서도 토고는 인자하고 헤픈 웃음을 잘 짓는 친절한 이웃이었다. 토고가 그은 경계선을 오소마츠는 아직 넘지 못했다. 그럼에도 남들과 다를 수밖에 없는 건, 오소마츠가 그 선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몇 번 섹스를 했다고 마음까지 가까워진다는 것은 순진한 애들이 할 법한 소리였다. 그런 이유로 끌리기에는 토고는 이미 불혹을 향해 달리는 중이다.
오소마츠.
토고는 그 이름에 힌트가 있지 않을까 추측했다. 그 이상하고도 신기할 만큼 뇌리에 깊숙이 새겨지는 이름말이다.
그 와중에도 다른 일이 진척을 보이고 있었다. 물론, 그 모방범에 대한 것이다.
토고가 움직이지 않으니 모방범의 활동도 잠잠해졌다. 따라하고 싶어도 정작 따라할 롤모델이 없어지니 속수무책인 셈이다. 뉴스에서는 강도 살인보다도 한창 무르익어가는 가을 단풍과 그것을 구경하기 위해 굳이 먼 길을 행차하는 사람들을 중계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들에게는 누군가가 죽는 일보다도 올해의 단풍이 얼마나 붉고 아름다운지를 조명하는 것이 더 중한 것 같았다. 시간은 시월을 향해 잔잔히 흘러갔다. 그리고 9월의 마지막 주, 토고는 비축해둔 돈이 다 떨어졌다는 현실에 직면했다. 일도 안하고 흥청망청 쓰기만 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토고는 잠시 고민했다. 이제 슬슬 일을 재개해야 될 때였다. 하지만 모방범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확신을 가지기에는 일렀다. 어쩌면 자신이 움직일 때를 잠자코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고민을 30분하고 2분이 넘게 가지다가, 마지막에는 짜증 섞인 귀찮음이 토고를 설득했다. 어디서 뭐하는지도 모르는 그런 놈에게 쫄아서 이딴 고민을 할 필요가 과연 있는가. 애초에 처음부터 눈엣가시로 여기는 녀석이다. 오히려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면 이번에야말로 잡아서 본보기를 보여주면 된다. 감히 겁도 없이 누구를 따라하고 있었는지 톡톡히 가르쳐줄 것이다. 좋아. 토고는 그 결정과 동시에 다음 타깃을 정했다. 최근에 봐둔 먹음직스러운 2층 집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나일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대게 모방범들은 유명한 연쇄살인마들을 따라하는 경우가 많다. 인기 절정의 아이돌의 패션이나 TV 속 유행어를 따라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사람은 유명하고 특별한 인물을 정해 따라하는 습성이 있다. 그런데 어째서 모방범은 ‘평범한’ 강도범인 토고를 고른 것일까. 그것이 모방범의 존재보다도 더욱 토고를 신경 쓰이게 했다.
어쨌든 모든 건 그 모방범이 모습을 드러내면 만사 해결될 일이다.
“어라, 아저씨네.”
계절은 아직 구월이었다. 토고가 막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했을 때, 열린 엘리베이터 안에는 오소마츠가 먼저 탑승해 있었다. 어디 마실이라도 다녀올 셈인지 후드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다.
“어디 가?”
“너야말로 이 시간에 어디 가냐.”
“내가 먼저 물었으니까 아저씨가 먼저 말해줘.”
오소마츠는 꼭 이런 부분에서 고집을 부렸다. 토고는 그런 잔망스러움에서 더욱 청년의 이름을 겹쳐 적었다. 그런 변하지 않는 잔망스러움이 오소마츠라는 이름을 더욱 요상하게, 인상 깊게, 그리고 청년에게 잘 어울리게 했다.
그나저나 뭐라 말해야 되나. 머리 긁는 소리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복도의 전조등은 시간이 지나 꺼졌고, 불빛은 열린 엘리베이터에서만 줄줄 흘러나와 토고를 덮쳤다. 어두운 복도에 비해 엘리베이터의 빛은 너무 밝아 어둠보다 더 껄끄러웠다. 그러나 그 불빛이 있어 오소마츠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빛 속에서 어둠이 웃었다. 허깨비였다.
다시 도리질을 쳤다. 여전히 엘리베이터는 열린 상태로 6층에 머물러 있었고, 오소마츠는 먼저 그 안에 타고 있었다.
“다시 일하기로 했다.”
이번에도 말이 먼저 나왔다. 맞는 말이다. 토고는 오늘부터 다시 일을 하러 나간다. 일을 하러 나가면 다시 돈이 생기고, 그러면 또 여유 있을 때 오소마츠와 함께 밖에 하릴없이 나돌아 다닐 것이다. 이제 곧 시월이라 단풍이 절정을 이룬다. 남들은 다 하는 단풍 구경 자신은 못할게 뭐있나 싶었다. 토고의 앞으로의 계획에는 자연스럽게 한 앳된 얼굴의 청년이 그려졌다. 그를 무척 잘 따르는 애정 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봤다. 바라보는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그 남자를 따라하면서까지 그 남자와 관련된 모든 것을 손에 넣을 기세였다. 어른이 하는 걸 곧이곧대로 보고 따라하여 관심을 얻고자 하는 어린아이처럼, 그 본바탕에는 어찌 나무랄 수 없는 순수함이 버젓이 깔려있었다.
“그렇구나.”
후드 모자의 그늘이 씌워진 얼굴이 미소로 채워졌다. 마침내 기다리던 선물이 도착한 것처럼 목소리와 눈매에는 숨길 수 없는 기쁨이 어렸다.
“그럼 나도 아저씨랑 같이 가도 돼?”
같이.
이 얼마나 자신에게 턱없이 어울리지 않는 말이면서도, 그럼에도 감히 무시할 수 없는 단어인가.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어떤 결과가 오든, 도덕적 모럴이 희생되든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누군가를 죽이는 것으로 돈을 얻는 것처럼, 그것을 따라함으로서 좋아하는 이의 관심을 받는 것도 별 차이는 없는 것이다. 단순하고 쉬운 명제였기에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엘리베이터 문은 여전히 열려있었다. 토고는 잠시 발을 복도 바닥에 붙이다가, 천천히 발을 들어 안으로 침범했다. 뚜걱. 구둣발이 엘리베이터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참 요란했다.
“오소마츠.”
엘리베이터 안에 완전히 들어왔을 때, 토고는 그 이름을 불렀다. 몇 번을 덧새긴, 반복한, 그럼에도 여태까지 들은 이름들 중에서 가장 특이한 이름이었다. 잔망스럽고 겁도 없이 영악한, 그래서 저 선악이 분별치 않는 앳된 얼굴의 청년에게 더 없이 어울리는 이름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텅 빈 복도에 스산한 가을바람이 맴돌았다. 시월의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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