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소녀님 리퀘 신청 소설.
※ 요괴 AU
※ 반요 쵸로마츠와 구미호 오소마츠 이야기.
끔찍해.
갓 태어나자마자 그 말을 듣게 될 아이는 세상에 과연 몇이나 될까.
축복은 고사하고 저주에 가까운 말을 자신을 낳은 모친으로부터 직접 듣게 되었을 때부터 그 말이 저에게 들러붙어 자신의 인생이 화려하게 말아먹을 것임을 직감했어야 했다고 쵸로마츠는 이따금 회상했다.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존재들. 마치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것처럼, 바로 곁에 있는데도 그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 인간은 그들을 ‘요괴’라고 부른다. 오래 전부터 인간과 요괴는 서로 공존하면서 살아왔다. 다만 서로 살아가는 세계가 판이하게 다르고, 요괴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대다수이기에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할 뿐이다. 그러나 인간들 중에서도 요괴의 존재를, 유리창 너머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인간이 이따금 나타난다. 시대가 흐를수록 그 수는 차츰 줄어들고 있지만 혈통을 통해 어찌해서 명맥은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요괴를 인식할 수 있는 인간은 두 가지 유형을 나눠진다. 우호와 배척. 애증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서로가 애정과 증오를 번갈아 주고받는다.
쵸로마츠의 모친은 대대로 요괴 관련 퇴마를 가업으로 삼고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선천적으로 요괴를 볼 수 있었지만 그들에 대한 감정은 건조했다. 그녀는 가문에 대한 어느 정도의 반감을 지녔고, 요괴의 일에 얽히고 싶지 않았던, 그저 인간으로서 평범하게 살아가기를 원했던 여자였다. 그래서 눈 맞은 어떤 남자와 함께 가문을 떠나 먼 지역으로 도망쳤다.
떠난 여자가 집으로 돌아온 것은 몇 년 후였다.
그녀의 품에는 포대기에 꽁꽁 싼 갓난아기가 얌전히 잠들어 있었다.
“끔찍하군.”
여자의 아버지가, 아이에게는 할아버지가 되는 늙은 남자가 아이를 보고 탄식조로 뱉은 말이다.
“내가 누누이 말했을 거다. 요괴는 인간을 홀리는 존재라고.”
모든 건 아버지의 충고를 무시한 여자의 경솔함에서 비롯된 것이었을까.
여자와 늙은 남자 사이에 누운 아기는 양 팔을 허공에 허우적거렸다. 늙은 남자는 미간을 좁혀 불편한 소리를 냈고, 여자는 보기도 싫은지 아예 고개를 돌렸다. 도륵, 도륵, 도륵. 여러 개의 눈동자가 바삐 굴러다니며 늙은 남자와 여자를 번갈아 봤다. 아기의 양 팔은 참 부산스러웠다.
어지간한 요괴들은 외견과 복장에서 인간과 큰 차이가 나기에 구분하는데 있어서 별 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어떤 요괴들은 교묘하게 인간과 흡사한 외양으로 변신해서 인간에게 접근하곤 했다. 그런 경우 요괴의 기척을 구분할 수 있는 웬만한 연륜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쉽게 요괴임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그것이 문제였다.
아이는 반요였다.
도도메키(百々目鬼)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쵸로마츠는 양 팔에 수많은 눈들을 달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봐서는 안 되는 것까지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양 팔 외에 다른 몸에는 눈이 달려있지 않았다. 본래 도도메키는 온 몸에 백 개의 눈이 달려있다고 알려진 요괴인데, 아무래도 반요이다 보니 그 수와 범위가 양 팔로 한정된 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도, 끔찍하다는 감상이 물려지는 것은 아녔다. 온 몸이든 양 팔이든 끔찍한 건 끔찍한 거였다.
믿고 사랑했던 이가 요괴라는 충격 때문인지, 자신이 낳은 아이가 끔찍한 형태를 지닌 것에 대한 충격인지, 쵸로마츠의 모친은 조금씩 기력을 잃다가 쵸로마츠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너는, 참, 끔찍하구나.”
그녀는, 눈을 감는 그 날까지도 자신의 아이를 바라보며 그리 말했다.
쵸로마츠는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조금씩 숨을 거두는 제 모친이 완전히 숨을 멈추고, 눈을 감아, 세상을 타계할 때까지 가만히 지켜봤다. 그리고 죽은 제 어미를 두고 쵸로마츠는 겨우 말을 꺼냈다. 끔찍해.
철이 든 날부터 지금까지 쵸로마츠는 단 한 번도 사람들 앞에서 양 팔에 감은 붕대를 푼 적이 없었다. 집에서마저 그는 혼자 방에서 붕대를 갈 때를 제외하고는 절대 풀지를 않았다. 그는 필사적으로 인간처럼 살아가고자 노력했다. 어머니의 애정을 원해서였는지, 반요라는 이유로 멸시하는 집안에서 인정받기 위해서인지, 인간 사회에 어울리기 위해서인지, 양 팔에 돋아난 징그러운 눈들을 부정하고 싶어서인지. 이유는 각양각색이나 어느 하나 콕 집어서 말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다만, 끔찍했다. 자신의 양 팔에 단단히 박힌 눈들이, 매일 자신에게 끔찍하다고 말하는 어머니가, 경멸하는 시선을 숨김없이 보내는 집안사람들이, 반요로 태어난 자신이, 모든 것이 끔찍했기에 그랬다.
인간으로서도, 요괴로서도 살고 싶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끔찍함을 숨기고 살아가다보니 인간의 삶에 조금 가까워졌을 뿐이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 한때 그의 어머니가 꿈꿨던, 그렇기에 더욱 이루기 어려운 소망을 쵸로마츠 또한 갈구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장례식 날, 그는 붕대를 감은 한 팔을 꽉 쥐어 잡으며, 짓눌리는 눈동자의 꿈틀거림에 소름 끼쳐하며 더욱 각오를 굳혔다. 요괴에 대한 증오로, 인간으로서 평범하게 살 것이다. 절대로, 어머니 같은 삶은 살지 않으니라 맹세했다.
그녀의 시체를 집어삼킨 화마는 초라한 회색빛 뼛가루만을 남겼다.
끔찍해.
쵸로마츠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 *
그 녀석은 유리창 너머에 있었다.
처음 눈에 들어온 날은 점심시간이 지나고 5교시 수업이 한창일 때였다. 점심 때 먹었던 음식들이 뱃속에서 소화되면서 나른함이 몸 안에 녹아들었고,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선생님의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꾸벅꾸벅 조느라 정신이 없었다. 거기에 더해 따스한 오후의 햇살이 포근한 담요가 되어 제 몸을 덮어주니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쵸로마츠에게도 오늘은 유독 버티기 어려운 날이었다. 자꾸만 수업 내용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집중력은 분산되어 자꾸만 한눈을 팔게 만들었다. 그러다 문득 쵸로마츠는 창문 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운동장에서는 한창 체육 수업 중인 옆 반 애들로 떠들썩했다.
“오소마츠!”
학생 중 한 명이 어떤 이름을 부르자 머지않은 곳에 있던 아이가 고개를 돌려 이름을 부른 쪽으로 종종걸음을 쳤다. 쵸로마츠에게도 그리 생소한 이름은 아녔다. 옆 반의 오소마츠라면 나름 유명했으니까. 오소마츠는 주변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재밌는 말을 들었는지 배를 잡고 와하하 웃었다. 햇빛에 웃음이 녹아들었고, 주변 사람들의 중심에서 환하게 웃는 오소마츠는 누구보다도 눈부셨다. 아, 저렇게도 웃을 수 있구나. 저렇게 평범하게, 눈이 부시도록 웃을 수도 있구나.
유리창 너머에, 눈을 뗄 수 없는 아름다움이 존재했다.
그리고 순간, 둘의 눈이 마주쳤다. 멀리서도 보이는 두 눈동자는 어린애처럼 큼직했고, 그러면서도 맑고 깊어서 그대로 빠져들 것 같았다. 붕대 속이 수런거렸다. 제각기 다른 눈들이 일순간 하던 일을 멈추고 붕대 안쪽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더 정확히는, 그 너머에 있는 것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꼭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탁. 마츠노, 넋 놓고 창밖만 보지 마라. 어느 틈에 그의 옆으로 다가온 교사가 손에 든 교과서로 쵸로마츠의 머리를 가볍게 내려쳤다. 교실 안은 잠시 짧은 웃음소리로 채워졌고, 쵸로마츠는 화들짝 놀라 허겁지겁 다시 칠판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허나 여전히 붕대 안쪽은 창문 밖으로 곁눈질을 보내느라 바빴다.
“너 선생님한테 혼났지?”
수업이 끝나고 교실로 돌아온 오소마츠가 교복을 갈아입기도 전에 쵸로마츠의 반으로 찾아와서 그리 말을 걸었다. 누구 때문에. 일부러 퉁명스럽게 대꾸한 쵸로마츠의 반응에 오소마츠는 코 밑을 쓱 닦았다. 미안. 사과의 의미로 같이 매점 안 갈래?
그것이 두 사람이 친해진 계기였다.
쉬는 시간 때마다 서로의 반에 찾아다니는 일이 일상으로 자리 잡힌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고, 방과 후에 같이 하굣길에 오르는 것도 이제는 예삿일이 되었다. 성격적으로 많은 점이 달랐고, 그렇기에 투닥거리는 일도 다반사였지만 그래서 더 가까워진 것인지도 몰랐다. 쵸로마츠랑 같이 있으면 왠지 모르게 재밌어서 좋아. 쵸로마츠의 어깨에 제 머리를 기대면서 오소마츠는 말했다. 쵸로마츠는 그 말을 듣고는 온 몸이 간지러웠던 탓에 붕대 안쪽의 눈들이 하도 깜빡거려서 혹여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날까봐 팔을 꽉 움켜잡아야만 했었다. 아아. 자신과 같이 있어서 좋다는 말을 들은 적이 이전에도 과연 있었던가. 제 어미에게도 듣지 못한 소리를 그로부터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벅차올랐다.
그리고 끔찍했다.
네가 눈부시도록 소중한 존재가 되어갈수록, 나의 끔찍함도 비례되어 커져간다.
오소마츠가 자신과 함께 있는 것이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그가 자신을 보며 웃을 수 있는 것도, 제가 양 팔에 붕대를 감고 다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자각할 때마다 쵸로마츠는 뒤틀리는 속으로 인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토기를 억지로 우겨 삼켜야만 했다. 끔찍해. 끔찍했다. 제 팔에 박힌 징그러운 눈들을 모조리 감춰야지만 오소마츠와 함께 지낼 수 있다는 사실이, 만약 제 팔의 붕대를 모두 풀어져 무수히 많은 눈들이 오소마츠의 그 커다란 두 눈동자와 마주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더 없이 끔찍했다. 차오르는 불안과 혐오감은 점차 한계점에 임박했고, 쵸로마츠는 점점 오소마츠에게 신경질적인 태도를 드러냈다.
그러나 오소마츠는 꿈쩍하지 않았다. 마치 쵸로마츠의 그런 태도를 언젠가 예감한 것처럼, 평소 같으면서도 차분한 태도로 쵸로마츠의 신경질을 능숙히 받아줬다. 괜찮아, 쵸로마츠. 오소마츠는 쵸로마츠가 자신을 밀칠 때마다 입버릇처럼 그리 말했다. 그럴 때마다 쵸로마츠는 울컥하여 홧김에 그의 앞에서 붕대를 모조리 풀어내고 싶다는 충동이 치밀었지만, 가만히 자신을 흔들림 없이 똑바로 마주보는 오소마츠의 눈동자를 볼 때마다 차마 그러지를 못했다. 너는 어떻게, 언제까지고 나를 그런 눈으로 볼 것인지. 너의 그런 눈빛마저도 끔찍하게 여기는 나를, 어떻게 해야만 좋을지.
모든 것이 지나면 찾아오는 것은 위태로운 피로감이었다. 쵸로마츠는 한참을 오소마츠에게 온갖 패악을 부리다가, 마지막에서야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만다. 그리고 오소마츠는 그런 쵸로마츠를 도닥여준다.
“우리 쵸로마츠, 이제 좀 진정 됐어?”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오소마츠의 그런 넉살스러운 말투마저도 끔찍한데, 그런데도 차마 완전히 밀쳐낼 수가 없어서, 쵸로마츠는 일그러진 입매를 겨우 감추고서 오소마츠의 팔을 잡았다. 자신과 다르게 깨끗하고 단단한 팔은 매달리기 딱 좋았다.
끔찍했다. 너도, 나도, 이 마음마저도.
물기 없는 눈물 속에서 쵸로마츠가 허우적거리는 동안, 오소마츠는 침묵 속에서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빛만을 지어보였다.
* * *
“어쩌려고 이러시는 겁니까.”
“응? 뭐가?”
“…시치미 떼지 마. 저런 반요 따위, 가까이 해서 좋은 거 없잖아.”
“에이, 이치마츠. 너까지 그렇게 까칠하게 나오지 말라고? 안 그래도 오늘도 쵸로마츠 어리광 받아주느라 이 형아가 애를 썼는데 말이야.”
“오소마츠 형.”
한층 더 걱정으로 강하게 울리는 부름에 오소마츠도 쓰게 웃었다. 너무 그런 표정 짓지 마, 이치마츠. 부드럽게 머리를 어루만지는 손길은 익숙한 따스함이 녹아들어 있어 이치마츠도 더는 말하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텅 빈 교실 안으로 노을이 스며들었다. 교실로 퍼져나가는 노을은 모든 것을 붉게 물들였다. 노을빛을 머금었기 때문일까, 그의 눈동자는 한층 더 붉고 진한 색채로 날카롭게 빛났고, 세로로 찢어진 동공이 요염했다. 아지랑이처럼 어른거리는 붉은 노을빛을 배경으로 고양이와 여우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오소마츠는 교실 창문 너머를 바라봤다. 창문 너머에는 비쳐지는 자신의 흐릿한 인영이 자리했다. 언뜻, 여우의 귀와 꼬리 몇 개도 보이는 것 같았다.
유감스러운 사실부터 먼저 말하자면, 오소마츠는 요괴였다.
그것도 구미호라는, 요괴들 중에서도 가장 격이 높고 진귀한 존재였다. 요괴라는 미천한 표현으로는 감히 그 격을 전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떤 인간들 사이에서는 신으로 경건히 모실만큼 요괴들 내에서도 특별한 존재가 구미호였고, 오소마츠였다. 오래 전부터만 하더라도 금빛으로 물결치는 아홉 개의 풍성한 꼬리를 자랑스럽게 뽐내며 깊은 산 속에서 곰방대를 피우는 한가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그였지만, 한가로운 은둔 생활은 계속 지속되지 못했다. 불과 얼마 전-어디까지나 요괴인 오소마츠의 기준에서의 ‘얼마 전’이다-에 어떤 퇴치사 가문이 오소마츠를 봉인하겠다며 나선 것이다.
불길하고, 요사스러운, 끔찍한 존재 같으니.
오소마츠는 자신을 보며 그리 말했던 퇴마사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겁에 잔뜩 질린 얼굴과,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로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그럼에도 감출 수 없는 요괴에 대한 혐오감을 한껏 드러내는 인간이었다. 그를 보며 오소마츠는 그저 궁금했다. 인간은 대체, 무슨 이유로 두려워하는 것인지. 어차피 심심했던 차였고, 계속 산에 틀어박혀 있는 것도 지루했다. 한 번 쯤 인간들의 장단에 맞춰주는 것도, 뭐, 나쁘지는 않겠지. 그런 변덕으로 오소마츠는 순순히 퇴치사의 봉인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오소마츠의 힘이 너무 강대한 탓인지, 그들의 실력이 부족한 탓인지, 봉인은 불완전하게 마무리 되었다. 힘의 대부분은 살생석이 되어 봉인되었다고 해도 오소마츠 본인은 봉인되지 않고 그대로 남겨진 것이다. 어중간하게 남아버린 힘과 사라진 여우 귀와 아홉 개의 꼬리로 거의 인간에 가까운 모습으로 남게 된 오소마츠는 순순히 자신의 상황을 납득했다. 어차피, 이 또한 예상한 일 중 하나였다. 인간이 자신을 완벽하게 봉인할 수 있는 건 애초부터 무리였으니까.
이대로 인간들 눈에 띄지 않고 느긋하게 기다리다보면 살생석의 봉인도 전부 풀리게 되어 완전히 힘을 되찾게 될 것이다. 그 때까지는, 지금의 상황을 즐기면 그만인 것이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덕분에 쌓여온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이 이럴 때 도움 아닌 도움이 되었다. 오소마츠는 인간들이 사는 곳으로 뛰어들었다. 이치마츠가 말려보기도 했지만 한 번 정한 일은 자기 방식대로 밀어 붙이는 그였기에 소용없는 짓이었다. 오소마츠는 수 십 년 동안 여러 모습으로 둔갑하면서 인간들과 함께 어울려 다녔고, 그 생활에 나름의 재미도 붙였다.
그래도, 어딘지 모르게 부족했다. 힘의 대부분이 없어져서 그런 것인지, 인간들의 감정이 조금이나마 그의 안으로 녹아들어서 그런 것인지, 시간이 흐를수록 오소마츠는 이따금 드는 허한 느낌에 쓰게 입맛을 다셔야만 했었다.
인간도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인간들은 이것을 무어라 부를까.
그러다가, 너를 만났다.
처음 보자마자 오소마츠는 쵸로마츠의 정체를 간파했다. 두 팔에 감싼 붕대 안에서 들리는 깜빡이는 소리와 보통 인간들과는 사뭇 남다른 기척. 요즘 같은 시대에 반요를 볼 수 있는 건 드물었기에 오소마츠도 처음에는 놀라 흥미를 가졌었다. 그리고 조금 반갑기도 했었다. 인간들과 어울려 노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반쪽이나마 요괴인 존재와 만나니 친근감이 불쑥 들긴 했다. 그래서 친해지고자 접근했다. 이 또한 지나갈 인연이니 찰나 동안이나마 즐겨보자는 가벼운 마음에서 기인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역시, 알면 화내겠지?”
“죽이려 들지도 모르겠네.”
“무셔! 그 정도야!?”
“딱 봐도 요괴라면 질색하고도 남을 녀석이고, 그런 타입은 자길 속이려고 했다는 걸 그냥 안 넘어간다고.”
“우와, 그렇게 들으니까 꼭 의처증 남편 둔 것 같다.”
“그래서, 사실대로 말할 거야?”
이치마츠의 말에 오소마츠는 먼 기억 하나를 다시금 상기시켰다.
불길하고, 요사스러운, 끔찍한 존재 같으니.
너 또한 나를 보며 그렇게 말할까. 요괴라는 사실을 숨기고 인간으로 둔갑해서 너의 곁에 있는 나에 대해 모든 걸 알게 되는 날, 너는 태어날 때부터 품을 수밖에 없던 증오심을 한껏 내뿜을까. 그리고 미워할지도 모르겠다. 나보다도, 너 자신을 더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너에게 미움 받고 싶어서, 너 스스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이렇게 곁에 다가온 것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것이 전부 다 헛된 것이 되어버렸다. 그만큼 많은 세월을 살아와 특별한 존재가 되었는데도, 너에게 비밀 하나를 고백하는 일을 어찌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하기 그지없다.
“아아, 끔찍하네.”
너에게 미움 받는 것도, 미움 받고 싶지 않아 계속 너를 속여 가는 나도.
그렇기에 너와 함께 이 끔찍한 나날들을 이어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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