잣토+이사쿠
“이사쿠 군은 착한 아이구나.”
뒤에서 갑작스레 들린 때 아닌 칭찬에 이사쿠는 붕대를 정리하는 손놀림을 잠시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이사쿠의 뒤에는 어느 샌가 기척도 없이 나타난 타소가레도키 성의 닌자대 두령이 한쪽만 드러난 눈웃음을 지으며 손바닥을 활짝 펴 흔들어주는 것으로 뒤늦게 인사를 전해주었다. 잣토 콘나몬의 예고 없는 등장에 이사쿠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그가 이렇게 아무도 모르게 인기척을 숨기며 들어오는 것에 익숙해진 차라 처음 만났을 때처럼 물건을 집어 던지며 놀라지 않고 침착하게 손에 쥔 붕대를 바닥에 내려놓고 예의를 차려 손님을 맞이하였다.
“오셨어요? 잠시만 앉아서 기다리세요. 금방 차를 내올게요.”
“음. 부탁할게.”
이사쿠의 호의를 잣토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그의 말대로 보건실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후, 이사쿠는 방금 끊인 차가 담긴 찻잔 두 개와 주전부리를 챙겨들고 잣토와 자신 사이에 놓은 후에 뒤이어 자신도 잣토의 맞은편에 무릎을 꿇은 자세로 자리에 앉았다. 올곧게 펴진 허리와 단정한 무릎은 그가 예절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며 연장자에 대한 자세가 제대로 되어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실로 젠포우지 이사쿠와 어울리는 자세였기에 잣토는 언제나 이사쿠와 마주보면서 그 자세를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대접을 마치고 자리를 잡은 뒤에야 이사쿠는 잣토에게 물어볼 수 있었다.
“그런데 처음 여기에 오셨을 때 갑자기 왜 그런 말씀을 하신 거예요?”
“음? 아아, 그거 말인가.”
이사쿠의 질문에 잣토는 한 박자 늦게 자신이 여기에 와서 맨 처음 꺼낸 말을 떠올리고는 눈을 가늘게 해서 이사쿠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한쪽 밖에 드러나지 않는 눈에는 상대의 의중을 손쉽게 끄집어낸 듯한 차갑고 섬뜩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연륜 있고 실력도 이 바닥에서는 유명할 정도로 뛰어나며 호전적인 타소가레도키 소속의 닌자군을 이끄는 두령이라는 직함답게 손에 묻힌 피의 양도, 외눈에 새겨진 시체의 모습도 다양했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으로 만들어낸 눈은 매처럼 날카롭고 뱀처럼 오싹해서 누구든 마주하는 것을 꺼려했다. 그러나 이사쿠는 잣토와의 시선을 마주하는 것을 피하지 않았으며 언제나 항상 잣토와 눈을 마주보며 대화를 나눴다. 겉보기에는 유약하지만 실제로는 심지가 굳은 그의 성품이 묻어나는 태도에서 잣토는 이사쿠에게 호감을 느꼈다. 사실, 이사쿠에 대한 호감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였지만.
잣토는 차가 식어서 마시기 딱 좋을 때를 기다리며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그냥. 이사쿠 군은 왠지 그런 말을 많이 들었을 것 같아서. 안 그런가?”
“아, 그렇네요. 확실히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주로 제가 전장에서 환자들을 피아 구분 없이 치료해주는 모습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 것 같아요. 닌자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지만요.”
씁쓸히 웃는 이사쿠의 모습에서는 환자들에 대한 원망도, 과거의 행위들에 대한 후회도 없었다. 그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받아들이며 웃어버리는 이사쿠의 모습에는 타인에 대한 상냥함이 그대로 드러나 그것만으로도 이 아이가 올곧고 착한 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사실 그런 칭찬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잣토가 그렇게 생각할 때 쯤, 이사쿠는 곧바로 그의 생각을 부정하는 발언을 던졌다. 그 말에 잣토의 눈동자가 놀람으로 크게 부풀어 오르다가 이윽고 흥미롭다는 듯이 눈꼬리를 휘며 말했다.
“호오. 그럼 이사쿠 군은 스스로가 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가?”
“글쎄요. 다만, 주변에 그런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착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제가 하는 일은 당연한 것이고, 어떻게 보면 제가 닌자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걱정만 끼치는 행위로 보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저는 언젠가 닌자가 될 거에요. 닌자가 되면 원하든 원치 않든 많은 사람들을 죽여야 하고, 지금도 그것을 위한 것들을 배워가고 있으니까요.”
“후회하고 있는 건가.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일들이.”
“아니요. 그건 아니에요. 저는 지금까지 어떤 일이든 몇 번이고 생각하고 스스로 결정했어요. 그리고 그 일에 후회를 가지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했고요. 그러니까, 저는 후회하지 않아요.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부드러운 어조로 자신의 각오를 덤덤히 전하는 이사쿠의 모습에 잣토는 속으로 조용히 감탄했다.
아, 이 아이는 역시 자신하고 다르다. 더러워 질대로 더러워져 돌이킬 수 없는 자신과는 달리 확실한 각오와 과할 정도의 겸손함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감탄하던 잣토는 문득, 일말의 걱정과 두려움이 솟아났다. 시대는 이 아이의 각오를 손쉽게 부러뜨릴 수 있을 정도로 가혹하고 잔인하다. 피를 흘리는 것이 당연하며 누군지 모를 피에 젖어가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은 아직 10대 중반 남짓한 어린아이에게도 쿠나이를 쥐며 자신과 상관없는 사람을 죽이라고 종용하고 있으며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하다며 체념하듯이 받아들이고 있다. 과연 이 ‘착한 아이’는 얼마나 시대에 버텨가며 그 속에서 꺾이지 않은 채 살아남을 수 있을까. 잣토는 지금까지 이사쿠와 비슷하게 꺾이지 않을 것 같은 신념을 가진 자들을 많이 보았으며 그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죽어 가는지도 목격했다. 꺾이지 않을수록 더 많은 압박과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는 시대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상처받지 않기 위해 알아서 굽혀가며 목숨을 유지하고 있다. 오히려 저 올곧음을 어리석음이라고 매도하며 사정없이 짓밟으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어리석기에 소중한 것이다. 그렇기에 지키고 싶은 것이다. 그것이 잣토가 이사쿠와 처음 만나 지금껏 그를 찾아오며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이유였다. 잣토는 손을 뻗어 이사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빛바랜 초록색 두건 아래로 연갈색 머리카락의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갑작스런 잣토의 손길에 이사쿠는 당황한 표정으로 올려다보았다. 그 손길이 마치 자신에게 내리는 칭찬과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 잣토 씨?”
“이사쿠 군은 의외로 바보일지도 모르겠군.”
“에, 에엣!?”
“이사쿠 군은 ‘착한 아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부터가 착한 아이라는 증거란다.”
착한 아이. 닌자를 지향하는 그로서는 비꼼으로 들릴 수 있었지만 잣토는 지금껏 순수한 말의 의미로 어울리는 인물은 이사쿠 이외에 만나지 못했기에 칭찬으로서 말할 수 있었다. 앞으로 이 단어가 어떻게 변색될지는 모르지만, 눈앞에 있는 소년은, 젠포우지 이사쿠는 아이였다. 지금은 어른으로서 아이에게 칭찬을 남기고 싶었다.
잣토의 말에 이사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잣토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말이 상당히 의외라는 듯이 받아들여지는 반응이었다. 그 반응의 의미를 눈치챈 잣토는 짐짓 서운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 말이 좀 의외였다는 반응이군.”
“아, 아뇨! 그게… 사실은 잣토 씨는 그런 말을 싫어하실 줄 알았거든요.”
“나도 순수하게 칭찬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이거, 좀 상처 받는데.”
“아하하.”
서운하다는 투로 투덜거리는 잣토의 말에 이사쿠는 가볍게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