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그 사람의 곁을 지나갈 때 옅은 담배냄새를 맡을 수 있다.
아주 희미하고 스쳐지나갈 때 잠깐 맡을 수 있는 것이며, 그 위로 평소에 항상 맡을 수 있는 소독약 냄새가 덮여져 있기에 쉽게 발견해낼 수 없는 것이었지만 운이 좋을 때면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소독약 냄새 아래서 사라져가는 담배냄새를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을 처음 찾아냈을 때는 묘한 납득이 오면서도 놀라게 되었다. 해적이지만 의사의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가장 먼저 의사의 몸이 온전해야지 누군가를 치료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자기 관리에는 은연중에 철저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몸에 해로운 것이 분명한 담배를 곁에 두지 않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자연스레 생겨나버렸고, 그것이 선장의 은밀한 비밀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냈다. 하지만 선장이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로는 운이 좋아야지만 찾아낼 수 있는 담배냄새 뿐이었다. 수북이 쌓인 담배꽁초나, 바닥에 지저분하게 떨어지는 담뱃재나, 주위의 공기를 더럽히며 연회색의 가느다란 실처럼 감싸는 담배연기나, 가느다란 손가락 사이에 끼어있을 새하얀 담배와 같이 눈에 확연이 보이는 증거는 좀처럼 발견되지 않았다. 배 안을 샅샅이 뒤져도 담배꽁초는커녕 담뱃재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니 담배냄새 또한 어디에서도 베여있지 않았다. 선장이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은 실체가 전혀 없어 착각이라고 생각하기 쉬워지지만 나는 그것을 단 한 번도 착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찾아내는 것에 지쳐 착각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질 때마다 자신의 후각을 자극하는 선장의 담배향의 존재가 나를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살 내음과 섞여서 풍겨지는 향은 어떤 향수보다도 유혹적이고 자극적이라 도저히 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맡을 때마다 찾아오는 묵직하게 눌러지는 아랫배의 감각에 축축한 한숨을 쉬었다가 밤이 되어 선원들 모두가 잠에 빠져들었을 때 선장실의 문을 두 번 두드리게 된다. 그렇게 찾아가 다시 한 번 그 특유의 내음을 맡고 싶어 그 사람의 품에 코를 박아보아도 그 때의 향은 벌써 흩어져 사라진 뒤였다. 알고 있음에도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아쉬운 마음에 그의 살갗에 따끔할 정도로만 이를 박아 넣게 된다. 사람의 애를 태우게 하는 것이 정말 주인을 닮은 향이다.
이러니 자연스레 그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 모습을 구태여 찾아다니지 않는다. 찾아내려고 발버둥 쳐도 찾아낼 수 없었다는 점도 이유 중 하나겠지만 역시 신기루처럼 잡힐 듯 잡혀지지 않은 향처럼 그것을 만들어내는 모습 또한 그렇게 남기고 싶었다. 그래도 보고 싶은 마음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기에 그럴 때마다 남몰래 눈을 감고 부족한 상상력을 최대한 이끌어내어 제 나름대로 그려내보곤 했다. 담배를 끼운 손가락과 그 사람 주변을 감싸 안는 담배연기, 그 안에서 조용히 담배를 무는 입술, 필터를 통해 담배연기를 잠시 빨아들였다가 뒤이어 코와 입을 통해 허공에 연기를 흩뿌리는 모습. 한 번도 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상상만으로도 그 사람과 상당히 잘 어울리는 자연스런 모습에서 나는 그리운 향 내음을 맡고 있다는 착각 아닌 착각을 하게 된다. 그래도 역시 상상보다는 실재가 낫겠지. 상상의 끝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생각은 담배를 다 태우고 입 안에서 끈질기게 달라붙는 씁쓸한 뒷맛과 닮았다.
선장이 칠무해에 가입하고 난 뒤, 해군의 개가 되어 눈에 거슬려졌다는 이유로, 혹은 칠무해의 목을 취해 자신의 이름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어중이떠중이들이 배를 습격하는 일이 종종 생겨났다. 이번의 전투도 그러한 이유에서 벌어진 것이었다. 당연히 전투는 우리들이 무리 없이 이겨냈지만 이번에는 상대 쪽의 수가 많았기에 그것들을 처리하느라 다소 무리가 있었다. 생명이 위급할 정도로 큰 상처를 가진 녀석은 없었지만 베이거나 뼈에 금이 가는 식의 손이 필요한 상처들은 제법 있었기에 각자 서로의 상처를 봐주며 치료를 해주게 되었다. 선원 대부분이 의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이런 점에서 편했다. 모두가 바삐 오가는 와중에도 내 시선은 한 사람만을 고정해 있었다. 가장 상처가 적은 선장은 그 빚을 갚아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가장 분주히 주변을 오가며 선원들 상처를 빠짐없이 살펴봐주었다. 평소와 같은 메마른 표정으로 빠짐없이 상처들을 살펴보는 선장에게는 평소보다도 한층 더 짙은 소독약 냄새와 이리저리 다른 이들의 것이 섞인 익숙한 피 냄새가 났다.
오늘 밤은 한차례 전투를 벌인 덕분에 다들 일찍 잠이 들었다. 피로와 상처로 무거워진 몸을 침대에 뉘이고 정신없이 잠을 취한 녀석들을 쭉 살펴보다가 밖으로 나와 선장실로 향했다. 피곤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마지막으로 선장의 상태를 확인을 해야지 안심하고 잠에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똑똑. 암묵적으로 정해진 두 번의 노크를 두드렸음에도 선장실 안에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안에서 느껴지지 않은 인기척의 부재에 선장실 앞에서 발길을 돌려 다른 곳으로 향했다. 어디에 있는지 짐작이 되지 않았으나 이 배안에서 갈만한 곳이야 지극히 한정적이었기에 조금만 수고를 들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몇 분 정도 돌아다녔을까, 배의 뒤쪽의 갑판 쪽으로 걸음을 옮길 때였다. 가장 먼저 알아챈 것은 냄새였다. 이제는 익숙하면서 그립지만, 이전보다도 한층 더 짙고 분명한 그것에 저절로 발걸음이 가던 길에서 그대로 멈춰지게 된다. 매캐한 내음은 결코 좋은 향이라고 할 수 없지만 자신에게는 그 어떠한 향기보다도 의미 깊은 것이었다. 설마. 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보게 되는 것을 망설여오던 순간이 찾아오자 저절로 숨이 멈춰져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 감히 상상해본 그 사람의 그 모습이 몇 걸음 앞에 있다. 욕정과 갈망 사이에어서 얼마나 은밀하게 품어오고 기다려오던 순간이었던가. 예고도 없이 찾아온 행운인지 아닌지 모를 것에 덜컥 겁이 나 그냥 이대로 돌아갈까 했지만 오랜만에 맡게 된 자신에게 있어 자극적인 미향과도 같은 짙은 내음을 뿌리치기에는 자신은 한심할 정도로 그것에 취해있는 자였다.
결국 떨쳐내는 것을 선택하지 않고 상상을 현실로 만들고자 발소리를 죽이고, 인기척을 지워내어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갑판 위로 조심스레 올라가니 줄곧 상상으로만 그려오던 모습이 눈앞에 실제로 나타나게 되었다. 밤하늘과 밤바다를 배경으로 갑판 난간에 몸을 기대어 서 있는 그의 검지와 중지 사이에는 그의 손가락만큼이나 길고 가느다란 담배가 끼워져서 보일 듯 말 듯 한 담배연기를 피워내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는 낮에 있었던 일에 대한 피로가 잔잔히 남아있었지만 지친 기색은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무채색으로 칠해져있는 풍경은 지금껏 상상해온 어떤 것들과 닮아있지 않아 있었고, 시시할 정도로 덤덤한 모습이었지만 그렇기에 저 사람다운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펭귄인가.”
담배연기와 섞여서 나온 낮은 목소리에 목구멍으로 심장이 올라와 뱉어 나올 감각이 느껴지는 것처럼 놀랐지만 재빨리 그의 말에 대답했다. 네, 선장. 텁텁한 입술과 입안으로 내 목소리는 어색하게 갈라져 있었으나 그는 개의치 않아하며 나에게 자신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 신호에 맞춰 나는 그 사람 옆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바로 옆에 서니 멀어서 잘 보이지 않았던 담배연기가 선명히 보였다. 천천히 선장의 몸을 휘감아들다가 소리도 없이 사라지는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선장이 내 시선에 대한 대답을 해주었다.
“내킬 때마다 가끔씩 피우는 거다.”
변명 같은 말이었지만 목소리는 당황도, 변명도, 죄책감도 없이 담배에서 떨어지는 재처럼 투득, 하고 떨어지듯이 나왔다. 사실 직접 보게 된다면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어째서 말도 없이 혼자서 몰래 피우는 건지, 언제부터 피우게 된 건지, 계기는 무엇인지, 그것을 입에 물때마다 무엇을 생각하고 계시는지. 그런데 이렇게 마주하고 나서 눈으로 목격하고 나니 그 질문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그는 이제 손가락 사이에 끼운 담배를 입으로 옮겨 필터를 살짝 물고는 담배 연기를 자신의 폐 안으로 빨아들였다. 안쪽으로 타들어가는 담배는 아직 벌겋게 달아올라 있는 재를 바다 속으로 떨궜다. 컴컴한 바다에 떨어진 재의 행방을 신경 쓰기도 전에 선장은 잔뜩 속에 머금은 연기를 입을 작게 벌려 밖으로 내보내셨다. 소리도 없이 나온 연기들은 뭉게뭉게 피어오르다가 쫓을 새도 주지 않고 홀연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 일련의 과정들이 내 눈 앞에서 사실이 되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그 모습들을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없었지만, 직접 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상상보다도 더없이 아름답고 덧없는 모습이라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제 자신은 이전의 희미한 담배내음으로 만족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한 번 피워볼래?”
대수롭지 않다는 식으로 말하며 그 사람이 나에게 내민 것은 방금 전까지 입에 물고 있던 그 담배였다. 왜 새 담배가 아닌 자신이 피우던 그 담배를 주냐는 질문은 애초에 할 생각이 없었다. 말없이 그것을 건네받은 후, 그가 했던 것처럼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우고 입에 물어 연기를 들이마신다. 그가 몸 안으로 받아들인 연기가 자신의 안에도 들어왔다고 생각하니 그 연기를 다시 밖으로 내뱉어야 한다는 것이 싫어졌다. 그러나 자신의 신체가 연기를 완전히 받아들일 수는 없었기에 아쉽더라도 밖으로 내보내야 했다. 후우. 작게 소리 내어 나온 연기는 선장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고, 그 덕분에 잠시나마 내 시야에서 선장의 얼굴이 희뿌옇게 되어 잘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금방 연기를 걷혀지어 다시 그의 얼굴이 선명히 드러나게 되었다. 자신의 얼굴에 뱉어진 담배연기가 이미 사라졌음에도 그는 그것이 아직도 눈에 보이는 듯이 시선을 허공에 잠시 띠웠다. 나와 그가 피운 담배는 내가 피운 것을 마지막으로 다 타들어가 재를 전부 떨어뜨린 후 꺼져가는 벌건 불씨만을 남겼다.
“밤이라 쌀쌀한데 이제 안으로 들어가요.”
내 말에 그는 허공에서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단지 그것뿐인 무미건조한 반응이었지만 처음부터 우리들 사이에 형식적인 답은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불씨만을 남긴 담배필터를 검은 바다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 불씨가 없어도 따뜻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충분히 있었다.
그 사람의 품 안에 깊게 코를 박지 않아도 충분히 그 내음을 맡을 수 있었다. 나의 몸에서도 그의 냄새가 배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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