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르가 신청한 리퀘글.
토끼드롭스 1화 기반으로 쓴 글인데 몇몇 설정만 가져왔지 원작과는 상당히 많이 다릅니다. 로우루에 가까운 로우루로우.
변두리에 위치한 고향을 떠나 도시로 상경하여 대학 병원 의사가 되어 이럭저럭 자리를 잡고 있을 때쯤. 오랜만에 고향에서 온 소식은 뜻밖에도 부고였다. 부고의 내용은 동창 중 한 명이 교통사고를 당해 죽어버렸다는 것이었다. 사고 직후 바로 병원으로 후송하였지만 시골에 있는 병원이 처치하기에는 상태가 너무 심각했고, 결국 도시에 있는 병원으로 옮겨지기도 전에 숨을 거뒀다고 한다. 의사로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마치 제 잘못처럼 비난하는 것 같아 이야기를 듣다말고 졸음을 쫓기 위해 준비한 쓰디 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아무튼 사고로 죽기에는 세간에서 아깝다는 말이 당연히 튀어나올 정도로 젊은 나이였다. 나는 죽어버린 동창의 이름을 듣고 가만히 얼굴을 떠올렸다. 생각보다 쉽게 머릿속에서 떠올려진 얼굴은 학창시절 당시 친하지는 않았지만 적당히 교류를 가지고 있던 녀석이었다. 그 녀석이 죽어버린 건가. 주근깨를 달고 활짝 웃는 얼굴이 인상적인 녀석의 미소를 다시 못 본다고 생각하니 커피의 향만큼이나 씁쓸하기는 했다. 고향으로 내려와 장례식에 참석하겠냐는 학교 선배의 말에 나는 책상 위에 놓여 진 탁상 달력의 날짜들을 살펴보다가 장례식 마지막 날에 시간 내어 내려가겠다고 답했다. 의사라는 신분 상 함부로 자리를 비울 수 없는 노릇이고, 3일 내내 자리를 지킬 의리를 가질 정도로 살가운 관계는 아니었기에 이정도가 적당했다. 다행히 장례식 마지막 날은 당직이라 잠깐 얼굴 정도는 들이밀 수 있다. 도착 시간을 대강 알려주고 전화를 끊으니 뒤늦게야 자신이 동창의 죽음을 메마른 감성으로 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학창시절 선배도 그걸 알아채고는 마지막에는 섭섭한 티를 은근슬쩍 드러냈다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생과 사를 사이에 두며 지내야 하는 직업을 가지니 어느새 누군가가 자신의 곁을 영영 떠나버린 것에 대해 있는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나는 애써 자신에게 그렇게 변명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하루를 마무리하는 회진을 돌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론 달력에 붉은 펜으로 장례식 날짜에 별표시를 하고서 말이다.
[로우루로우]만남
W. 아르카디
병원 일을 마치자마자 바로 열차에 몸을 실은 덕분에 점심나절이 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방문한 고향은 별다른 변화 없이 떠날 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금의환향을 하고 돌아올 것을 믿고 과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물안개처럼 무겁게 침잠되어 있는 어두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작고 정이 넘치는 마을일수록 누군가를 잃은 공백은 쉽게 드러나게 된다. 든 사람은 몰라도 난 사람은 안다는 말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알려준 주소에 도착하니 문 앞에서부터 자신이 입고 있는 것과 같은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전부 모르는 얼굴이어서 순간 잘못 찾아왔나 싶었지만 이윽고 모르는 게 당연하다 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다시 표정을 가다듬고 사람들을 지나쳐 집 안으로 들어왔다.
이때의 계절은 가을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10월 말이었다. 그래서 바람은 여름의 것과 다르게 차디찼으며, 장례식이라는 분위기 덕분인지 냉기는 한층 더했다. 그 냉기에 몸을 떨며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주춤했을 때, 우연히 허공을 떠돌던 시선이 어느 한 곳에 멈춰 섰다. 새까만 머리카락과 눈동자, 어린애 특유의 볼 살과 우윳빛 피부, 그 위를 어색하게나마 얇게 덮고 있는 검은색 양복, 놀다가 다친 것인지 군데군데 드러나 있는 붕대와 반창고, 그리고 아이의 목 뒤에서 바람에 흔들려 덜렁이고 있는 밀짚모자. 아이의 인상은 이런 우중충한 장례식장보다도 진흙투성이의 옷을 입고 환한 밖에 뛰어나가 노는 것이 어울려 보이면서도 어쩐지 이곳에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를 품고 있어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아이를 보았고, 아이도 나를 올려다보았다. 가을바람이 두 사람의 시선을 얽히고설키게 만들었다.
“오, 트라팔가 왔구나. 어서 안으로 들어와.”
전화상으로 들렸던 목소리에 나는 시선을 앞으로 돌려 장례식장 밖으로 마중 나온 선배를 발견했다. 어, 하고 멍하니 대답한 뒤에야 다시 시선을 옆으로 돌려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방금 전까지 여기에 있던 아이는 어느새 자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어디로 갔나 싶어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보아도 떠나간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마치 신기루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진 아이의 행방이 신경 쓰였지만 추우니까 얼른 안으로 들어오라는 선배의 재촉으로 인해 나는 더 이상 찾는 것을 포기하고 끌려가다시피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향을 피우고, 절을 올린 후 영장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야 비로소 내가 온 곳이 어디인지, 누구의 장례를 치루고 있는지에 대한 실감이 슬며시 들었다. 장례식 안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내가 찾아온 때는 이미 장례식 절차가 거의 마감된 끝물이기에 사람들의 모습이 적어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남아있는 사람은 친척들과 그와 친분이 깊었던 사람들뿐이었다. 아니, 정정한다. 고인의 친척은 여기에 없다. 그가 고아였다는 사실이 뒤늦게야 떠올랐다. 오래 있을 이유가 없기에 나는 선배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오랜만에 만난 고향 선배와 할 이야기는 그다지 없었다. 이야기의 내용 대부분이 고인의 추억과 관련된 이야기들뿐이었다. 떠나간 이의 추억을 되새기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이 또 있을까 싶어 적당히 맞장구 쳐주며 이야기에 어울려줄 때 쯤, 나는 잠시 잊고 있었던 아이의 존재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여기 들어오기 전에 못 보던 애가 있던데, 누구네 앱니까?”
“애?”
“일곱 살 쯤 되어 보이고, 밀짚모자를 목에 뒤로 달고 다니던 남자애요.”
“아아, 루피 말이구나. 그러고 보니 너 루피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못 들었지?”
그 아이 이름이 루피인가, 하고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선배의 말이 앞질러 나갔다.
“에이스 녀석, 그 애를 구하려다가 죽었어.”
담배에 불을 붙인 선배는 부탁하지도 않았는데도 알아서 고인의 사정을 나에게 설명했다. 고아이긴 했지만 부모가 남겨주신 유산과 후견인의 도움으로 문제없이 자란 동창은 몇 년 전부터 어디선가 어린 사내아이를 하나 데리고 와서는 이제부터는 내 남동생이라면서 함께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어디서 데려왔는지,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전혀 말해주지 않았기에 처음에는 여러 소문들이 피고 졌지만 친형제 이상으로 우애가 좋은 모습들과 사내아이 특유의 활발함과 티 없는 밝음이 마을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었기에 아이는 다행히도 마을에 쉽게 자리를 잡고 나름 행복하게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며칠 전, 비가 많이 오던 날에 혼자서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아이는 신호등의 빨간불을 미처 보지 못하고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승용차와 맞닥뜨리게 되었고, 그 모습을 건너편에서 아이의 마중을 위해 가고 있던 동창이 발견하여 우발적으로 아이에게 뛰어들어 밀쳐낸 것으로 자신의 남동생을 구한 대신 그 대가로 자신의 목숨을 내놓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제는 거의 끝나가고 있는 장례식이다. 이야기를 마칠 때쯤에는 선배가 피우던 담배가 절반 이상 줄어든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무튼 그래서 지금 애를 누가 데려갈 지에 대해서 말들이 많아. 에이스 녀석은 고아였고, 루피도 출신을 알지 못하니 어디에 맡겨야 할지 모르고,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르는 애를 맡을 정도로 그렇게 여유롭고 인정 많은 녀석들이 아니고 말이야.”
“그럼 시설에 맡기겠네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마지막으로 담배 한 모금을 마시고 바닥에 떨어뜨려 구둣발에 비벼 끄는 것으로 이야기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짓밟혀버린 바람에 흉하게 일그러져 불씨가 꺼진 담배꽁초의 취급이 낡은 밀짚모자를 쓴 아이가 이곳에서 받고 있는 취급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와 헤어진 후, 나는 볼일도 다 봤으니 열차 출발 시간 때까지 적당히 시간을 때우기 위해 장례식장 주변을 배회했다. 의사가 된 이후로 이렇게 여유로운 시간을 가져본 적이 오랜만이라 이 여유를 맘껏 즐기고 있을 때, 저 멀리 벤치에 누군가가 앉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작은 체구에 검은 양복에는 어울리지 않은 낡은 밀짚모자가 바로 눈에 들어왔다. 장례식장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만난 상대이자 조금 전까지 이야기의 소재가 되었던 아이였다. 이름이 분명 루피라고 했나. 어렴풋이 아이의 이름을 떠올리며 반대편으로 돌아갈까 생각하다가 굳이 피할 이유는 없었기에 발걸음을 마저 옮겨 아이가 앉아있는 벤치의 끄트머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발을 까닥거리며 말없이 앉아있던 녀석은 내가 갑자기 앉은 것에 놀란 것인지 눈을 둥그렇게 뜨며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내 얼굴을 똑바로 보고 있는 녀석의 표정을 곁눈질로 살펴보니 아무래도 장례식장 앞에서 만난 것을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까는 왜 도망친 거지?”
어찌할 새도 없이 먼저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와버리고 말았다. 아무래도 나도 모르는 새에 사라져버린 아이의 행방에 대해 신경 쓰고 있었던 모양이다. 내 질문에 아이는 무엇을 말하는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한 박자 늦게 말의 뜻을 알아차리고는 고개를 푹 수그리며 대답했다.
“형도 내가 있으면 싫어할 줄 알았어. 여기 있는 어른들은 내가 보이면 다들 불편해하거나 싫어하는 것 같아. 그래서 여기에 있었어.”
아이는 어른보다도 예민하다. 비록 소아과 담당은 아니지만 종종 아이들을 진찰하는 경우가 있었기에 상처 입은 아이들이 얼마나 예민하고 어른들의 눈빛을 신경 쓰는지 알고 있다. 사흘 내내 장례식장에 있으면서 어른들의 어두운 시선들을 받다보면 제아무리 활기찬 아이라고 해도 금방 기가 죽고 만다. 이곳의 어른들은 침묵의 시선으로 아이의 존재를 불편하게 쳐다보았을 것이다.
“에이스가 나 때문에 죽었대. 나를 지키다가, 죽었어.”
일곱 살의 남자아이가 말한 말치고는 너무 우울하고 무거운 이야기이다. 여기서 무어라 위로하는 것이 좋을까. 자신이 있을 곳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아이에게 무엇을 이야기해야 좋을까. 유감스럽지만 자신에게는 실의에 빠진 아이를 위로하는 재주가 부족했다. 훌쩍, 하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아이는 어느새 굵은 눈물을 떨구며 울고 있었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은 어른들 앞에서 미처 울지 못하고 꾹 참았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떨어지고 있다는 사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점입가경이군. 울고 있는 아이는 딱 질색이다. 더 이상 옆에 앉아있지를 못해 그냥 이대로 자리를 뜨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고 자리에서 막 일어나려고 했을 때, 문득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아이의 반바지 아래로 종아리에 감겨져 있는 붕대가 반쯤 풀려져 있었다. 사고를 당했을 때 입은 상처처럼 보였다. 의사로서의 직업정신이 몸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나는 아이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아이의 붕대를 다시 감아주었다. 훌쩍훌쩍 울고 있던 아이는 낯선 손길에 잠시 움찔거리며 놀라다가 내 솜씨를 보고는 와아하고 감탄했다. 의외로 아이는 이런 사소한 걸로 울음을 멈추었다.
“형아 붕대 잘 맨다! 여기에 있는 어른들보다도 잘 해!”
“의사니까 이 정도는 당연한 거다.”
“의사? 형은 의사야?”
“그래.”
짧은 대화를 끝마치고 아이의 다리에서 손을 떼니 제대로 감겨진 붕대가 깔끔하게 눈에 들어왔다. 와아, 이제 움직이는 게 편해졌어! 다리를 위아래로 흔들거리며 환하게 웃는 아이의 모습은 조금 전의 우울한 모습과는 달리 상당히 자연스러웠고, 보기 좋았다. 고마워. 방싯 웃으면서 감사 인사를 전하는 아이의 눈가에는 아직 눈물자국이 남아있었지만 전보다는 기분이 많이 나아져 있어 보는 나마저도 뒤따라 서툴게 웃어 보이고 말았다. 그래서일까, 지금이라면 이 아이에게 겉치레나마 위로를 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네 잘못이 아니다.”
“응?”
“네 형이 너를 감싸고 죽은 것은 네 잘못이 아니야. 기껏 목숨 바쳐서 구했는데 그렇게 울고만 있으면 그 녀석도 구한 보람을 못 느낄 거라고.”
“… 하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에이스도 없으니 이제 여기에 있을 수 없는 걸. 다들 나랑 같이 있기 싫어하는데, 그럼 난 누구랑 있어야 하는 거야?”
머물 곳을 잃고, 자신과 함께 있어줄 사람도 잃어버린 아이는 어디로 가야할까. 혼란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불안에 떠는 아이를 보니 어렸을 적의 자신과 자꾸만 겹쳐보였다. 그래서 신경이 쓰였던 것일까. 오늘 처음 만난 아이이고 대화도 이것이 처음인데다가 별 의미도 없는 것들뿐인데. 이 아이와 자신을 연결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렇기에 이끌리는 만남이라는 것이 있다고 했다. 장례식장에서의 기묘한 만남이 떠오른다. 가을바람이 몰고 온 만남은 과연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정신을 차리고 보면 자신이 머릿속 한 구석에서 쳇바퀴나 다름없던 자신의 일정에 다른 누군가를 개입시켜 새롭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적어도 자신은 눈앞의 아이를 이대로 내버려둔 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의 평가와는 달리 자신은 생각보다 아이에게 무른 것인가 하는 새롭고도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된다. 선생님은 의외로 상냥하니까요. 언젠가 자신이 주치의가 되어 맡은 적이 있던 아이가 퇴원 날에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지금까지 봐온 수많은 환자들에게 덮여져 이제는 이름도, 얼굴도 떠오르지 않는 아이가 그 대신 사내아이의 탈을 쓰고 다시금 말했다. 선생님은 의외로 상냥하니까요. 지금 자신이 품고 있는 것이 과연 상냥함인가, 동정심인가. 어느 쪽이든 언젠가 끝날 것이 분명한 짧고도 충동적인 감정이다. 그것에 휩쓸리는 것은 분명히 바보 같으면서도 서로에게 큰 상처만 남길지도 모르는 불길한 것이지만 그런 것을 전부 재보기도 전에 자신은 그 충동에 입술을 맡기었다.
“나와 같이 갈 생각은 없나.”
“에?”
“나는 너와 함께 있는 걸, 나쁘게 생각하고 있지 않으니까.”
그래. 지금은, 적어도 지금은 이 아이와 함께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된다. 어디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불확실한 생각이지만 아이에게 내민 손을 지금 와서 거두고 싶지는 않았다. 어차피 누군가의 보금자리가 되어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가뜩이나 바쁜 의사의 직업으로 아이를 얼마나 키울 수 있을지 모르지만, 무책임하게 중간에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나와 함께 가자, 루피.”
처음으로 아이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아이의 이름은 예상 외로 부드럽게 잘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