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님에게 드리는 달성표 리퀘. 트위터에서 풀었던 썰을 기반으로 한 현대물. 최신 스포일러 주의.
“매번 무리해서 사줄 필요는 없단다.”
“…네?”
갑작스런 로시난테의 말에 로우는 근사한 장식들로 화려하게 꾸며진 케이크들과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구워진 쿠키들이 올려진 진열대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들어 로시난테를 보았다. 로우에게 보여주는 로시난테의 미소에는 평소와 같은 상냥함이 깊게 베어 들어가 있었으나 그 위에 미안함이라는 이질적인 감정이 곁들어가 묘한 쌉싸름함이 느껴지는 미소가 만들어졌다. 그런데도 새하얀 파티셰 복장과 화사한 금발과의 조합이 제법 잘 되어있어서 로우는 자신이 로시난테가 어떤 표정을 짓더라도 전부 마음에 들어 한다는 사실을 되짚었다. 어쨌든, 지금은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로시난테가 로우에게 돌발적으로 전한 말이었다. 동그랗게 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로우의 모습에 로시난테는 새삼 자신과 로우의 나이차가 꽤 많이 난다는 것을 상기하며 몸을 숙여 계산대 밑으로 들어가 무언가를 찾으면서 말을 이었다.
“사실은 이미 눈치 채고 있었거든. 로우가 무리해서 우리 제과점의 제품들을 사주고 있었다는 걸.”
“그러니까 그게 무슨…!!”
“빵이랑 단 거 싫어하지? 며칠 전에 로우가 일하는 회사 여직원들이 여기로 와서 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들었어. 역시 로우는 회사에서도 인기가 많구나 하고 생각했지.”
아차, 그 수가 있었구나. 로우는 자신의 방심에 제 머리를 쥐어박고 싶어졌다.
종종 여직원들이 과자나 케이크를 주면서 호의를 표할 때마다 로우는 매번 단 것을 싫어한다, 제 입맛에는 안 맞는 것이다 라며 거절했기에 여직원들 사이에서 로우의 까다로운 입맛은 오래 전에 널리 알려져 있는 상황이었다. 거절의 핑계 삼아 말한 것이지만 사실 입맛에 맞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밀가루로 만드는 음식보다도 쌀로 지어진 밥을 선호하며, 단 것보다도 쌉싸름하고 깔끔한 맛이 더 취향에 가까웠다. 그런데도 로우는 매일같이 로시난테가 운영하고 있는 제과점에 가서 보기만 해도 달달함이 느껴져 제 미각을 기준으로는 토할 것 같은 달콤한 제과들을 잔뜩 샀다. 그 이유를 로우는 당연히 알고 있지만, 그 사실을 제 입으로 이실직고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고백도 아직 인데 불순한 의도로 제과점에 방문한다는 사실을 들키게 되면 내일부터는 도저히 얼굴을 들고 이곳에 찾아올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로시난테와의 짧은 만남도 그것으로 끝이다. 로우는 어떻게 해서는 이 사태를 타파하기 위한 변명책을 생각해내기 위해 최대한 머리를 굴리며 끙끙거렸다.
한편, 계산대 뒤에서 쭈그려 앉아 따로 챙겨둔 무언가를 찾고 있던 로시난테는 어느 순간부터 말이 없는 대신 미약하게 끙끙거리는 로우의 목소리를 듣자 그만 풉 하고 작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이런, 웃으면 안 되는데. 자칫 들으면 분명 로우를 비웃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에 로시난테는 작게 큼큼 기침을 하며 표정관리를 했다. 사실 로우의 식성에 대해서 어렴풋이 눈치 챈 적은 꽤 오래되었다. 제 딴에는 열심히 감추려고 애를 쓰는 로우였으나 지난번에 사간 케이크와 과자에 대한 평을 물어봤을 때 본래의 맛과는 전혀 다른 평가를 내리거나, 때때로 달큰한 냄새를 풍기는 케이크가 눈앞에 있으면 본능적으로 코를 찌푸리며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티를 순간 드러내는 등 심증은 충분히 있었다. 여직원들과의 대화는 심증을 확증으로 변화시키게 해준 것 밖에 없었다. 그러나 진실을 알았어도 로시난테는 로우는 미워하지도, 실망하지도 않았다. 이곳에 와서 제과들을 사며 자신에게 보여주는 모습들과 감정들은 결코 기만으로 꾸며진 것이 아닌 순수한 호의로 이루어진 진심이었다. 매번 찾아와서 이제는 익숙해질 법한데도 늘 뻣뻣하게 굳어서 약간 상기된 얼굴로 추천을 부탁하거나 계산을 맡기는 모습을 볼 때마다 로시난테는 그 안에 슬그머니 드러나 있는 상대의 진심을 엿보았고, 그 때마다 어쩔 수 없다는 미소가 먼저 나오게 되었다.
그렇게 따지면 나도 저쪽이랑 비슷한 감정이려나. 문득 떠오른 생각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알았음에도 로시난테는 부정하기 보다도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고는 드디어 찾고자 하는 것을 찾아내어 그것을 들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대에 다시 바로 서서 고개를 내미니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는 로우를 발견하여 로시난테는 다시 한 번 웃음이 나오려고 하다가 꾹 참고는 그 대신 계산대 위에 무언가를 올려놓았다.
“그래서 사과의 의미로 이걸 준비해 봤단다.”
로시난테의 말에 로우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로시난테의 얼굴과 계산대 위에 올려 진 상자를 번갈아 보다가 다가오라는 뜻으로 자신을 향해 손짓을 하는 로시난테의 제스쳐에 천천히 계산대로 다가갔다. 계산대에 도착한 로우에 로시난테는 기다렸다는 듯이 상자를 열어 안의 내용물을 보여주었다. 상자 안에 들어있는 것은 곱게 장식되어 있는 케이크였다.
“이건….”
“떡케익이라는 건데, 말 그대로 떡으로 만든 케이크란다. 떡은 밀가루가 아닌 쌀로 만든 거니까 이거라면 로우도 좋아하지 않을까 싶어서.”
“절위해서 이걸 준비하셨다고요?”
“응. 마음에 드니?”
“하지만 이건…화, 안 나셨어요?”
“화? 내가 너한테?”
“보통은 다 화낸다고요. 왜 먹지도 않고 만든 사람 성의를 무시하는 식으로 바보로 만드냐 면서.”
“하하하. 로우다운 말이구나. 흠, 하지만 화는 별로 안 났는걸. 오히려 미처 네 사정 알아주지 못하고 입에 맞지도 않은 걸 자꾸 추천해서 감상평 물어본 내 잘못이지.”
상대를 탓하기보다도 자신의 부주의에 잘못을 두며 로우를 생각해주는 로시난테의 모습에 로우는 다시 한 번 그에게 반할 것 같아 고개를 푹 숙여 지금쯤 그 어느 때보다도 붉게 달아올랐을 것이 분명한 자신의 얼굴을 필사적으로 숨기고자 노력했다. 정말인지, 이렇게 상냥하면 어쩌자는 거야. 로우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입 속으로 숨죽여 투덜거렸지만 그와 동시에 그만큼 자신을 생각해준 그의 호의에 너무나도 기뻐서 감정이 제대로 통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 로우를 보며 로시난테는 고개를 숙였음에도 보이는 로우의 새빨간 귀에 살며시 미소를 지어주고는 저도 모르게 숙여진 로우의 머리 위로 손을 얹어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자신의 머리 위로 큼직하고 따뜻한 로시난테의 손길에 로우는 크게 몸을 떨며 놀랐지만 그와 동시에 몸이 굳어버려 차마 손을 치워달라고 부탁할 수조차 없었다. 로시난테 또한 무의식적으로 손이 저절로 가버린 데다가 막상 쓰다듬어보니 생각보다 느낌이 너무 좋아서 손을 뗄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말았기에 한참 동안 두 사람은 쓰다듬고, 쓰다듬을 받는 자세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무척이나 애매하고 어색한 시간이 상당히 흘러서야 로우는 천천히 진정된 감정을 추스르고 낮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이제 그만해 줬으면 하는데.”
“어? …아, 맞다! 그렇지! 미, 미안해!! 나도 모르게 그만!!”
로우의 말에서야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달은 로시난테는 한 박자 늦게 정신을 차리고 허겁지겁 손을 떼며 뒤로 물러나다가 그만 뒤쪽에 쌓아두었던 상자더미에 부딪쳐서 그대로 와르르 무너지게 되었다. 순식간에 상자더미에 파묻힌 채 쓰러진 로시난테의 모습에 로우가 허겁지겁 계산대 안쪽으로 몸을 내밀어 상태를 살펴보았다. 다행히도 상자들은 전부 종이로 되어있던 것들인지라 로시난테가 넘어질 때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은 것으로 인해 척추를 타고 올라가는 통증을 제외하고는 별 다른 피해는 없었다. 얕게 앓은 소리를 늘여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로시난테는 준비한 떡케익에 어디 손상이 가거나 먼지가 묻지 않았는지 꼼꼼히 살펴보고는 다시 원래대로 포장을 하여 로우에게 내밀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먹어줄 거지?”
그 말에 로우는 미안함과 고마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복잡한 표정을 잠시 비춰주다가 천천히 손을 뻗어 상자를 챙겨들고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이번에는 제대로 된 감상평 준비할 테니까 각오해둬요.”
“기대하고 있을게.”
선선히 웃으며 대답해준 로시난테의 말에 마지막에는 로우도 그를 따라 옅은 미소를 그려내게 되었다. 아, 웃었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발견한 로시난테는 어쩌면 가끔씩 자신의 앞에서 드러내주는 저 미소를 보기 위해서 지금까지 로우가 보여준 모든 것들을 눈감아 준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스쳐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