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로우 SS. 시점은 드레스로자 편 이후.
하아. 입을 조금 크게 벌려 숨을 뱉어내면 새하얀 김이 물기를 머금으며 몸 안에서부터 쏟아져 나왔다. 몸 안으로 깊게 박히는 칼날 같은 바람은 제법 아프게 스쳐 지나갔으며 눈은 바람 따라 함께 흩날리고 있었다. 그 곳과 비슷하군. 로우는 잠시 회색빛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신답지 않게 과거의 일을 떠올려 보았다. 펑크 해저드에서의 날씨도 섬의 절반뿐이었지만 이곳의 날씨만큼이나 매섭도록 추운 곳이었다. 그 때의 자신도, 지금의 자신도 똑같이 하트해적단의 졸리 로져가 그려진 검은 코트를 입고 애용하는 검인 귀곡을 손에 쥔 채 서 있었다. 하지만 과거와 현재가 완전히 같을 수 없었다. 그 증거로 로우의 눈앞에는 그 당시 펑크 해저드에 있던 자가 아닌 신세계에 들어와서야 다시 만나게 된 인물이 쓰러져 있었다. 썩어도 준치라는 건가. 제법 욱신거리는 상흔들을 억누르며 로우는 X 드레이크의 실력을 과소평가한 것에 대해 반성했다. 사황 밑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해도 자신과 같은 최악의 세대 중 한 명이자 그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강자인 것이다.
뿌득. 눈이 부서지는 소리가 바람 소리를 타고 흘러 들어오자 로우는 고개의 위치를 원위치 시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눈밭에 엎드려 있던 드레이크가 어느 정도 기력을 찾은 것인지 비틀거리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나 그것이 한계인지 완전히 일어나지는 못했다. 눈대중으로만 살펴봐도 심각한 중상이라는 것을 로우는 의사의 식견으로서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원인에 로우 자신의 공격도 있지만 그 이외에도 자잘한 상처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묵혀 있다가 한꺼번에 터져나간 것도 볼 수 있었다. 자신을 한계에 몰아 붙였던 것일까, 카이도가 부하를 함부로 다룬다는 것일까. 어느 쪽이든 그리 유쾌한 이유는 아니었다. 붉은 피들이 눈 위에 떨어져 퍼져나갔다. 붉은 꽃이 순백의 땅에서 피어나는 모습과 닮았다. 계속 싸울 생각인가. 로우는 손에 쥔 귀곡을 탁 소리 나도록 어깨에 두드리고는 흥미가 떨어졌다는 투로 말했다.
“그쯤 해두어라, 드레이크여. 승부는 이미 결정 났다 아닌가.”
“………….”
로우의 말에 드레이크는 침묵으로 답했다. 답할 가치도 없다는 것일지, 분함으로 말문이 막힌 것인지. 거기까지는 로우도 알지 못했다. 휘이이잉. 바람 소리가 매섭게 들려왔다. 이 구도, 이 풍경. 이전에도 한 번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었다. 그래, 펑크 해저드에서 여 해군의 몸을 두 동강 냈을 때의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쓰러진 자도 전직 해군이었다. 기이한 데자뷰이다. 침묵 끝에서 드레이크가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한심하군.”
허탈하게 내뱉은 드레이크의 말에는 용광로의 밑바닥에 물엿처럼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는 침전물과 같은 감정들이 응어리져 있었다. 트라팔가 로우는 그 감정들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도 과거, 그러한 감정들을 가슴 깊이 묵혀두어 눌러 붙게 만들었다. 그대로 방치해두면 무겁게 들러붙고, 떼어내려고 하면 그만큼의 고통을 수반해야 하는 감정들. 그 감정들은 13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완전히 녹여 없애버렸고 자신은 살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한 해방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다. 더 이상 누군가에게 굴복하며 살아가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운 삶. 그것은 트라팔가 로우가 26년간 바라오던 삶이었다. 그렇기에 로우는 드레이크의 모습이 꼴사납게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외면할 수가 없었다. 강자에게 억지로 굴복당해 끓어오르는 분노를 발산하지 못하고 그대로 눌러 지내야 했던 속박의 나날들. 로우는 이따금 해방된 후에도 도플라밍고에 대한 원한과 과거의 상흔들을 떠올렸다. 벗어났다고 해도 잊혀 지지 않으며 지울 수 없는 과거의 일들을 로우는 평생 동안 가끔씩 떠올리며 과거의 일들을 되새기며 살아갈 것이다.
로우는 드레이크를 내려다보았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주먹을 꽉 말아 쥐는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동정하는 것일까. 구역질이 나면서도 희미하게 타인에게서 바라던 애착의 감정이었다. 드레이크의 모습에서 과거의 자신과 겹쳐보고, 거기서 동정을 겪다니. 예전의 자신이라면 혐오밖에 품지 않았을 것이다. 변한 건가. 이 섬에 오기 전, 펭귄이 자신에게 넌지시 말한 것이 떠올랐다. 선장님 어딘가 달라지신 것 같아요. 아, 나쁜 의미로 그런 말 한 게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납득은커녕 이해도 못했지만 지금이라면 펭귄의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아. 한숨을 쉬니 다시금 뿌연 김이 흩어지며 나왔다. 밀짚모자와 하도 붙어 다니다 보니 쓸 때 없는 것에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르겠군. 괜히 책임을 이 자리에 없는 자신의 동맹 상대에게 돌리며 로우는 차분하게 가라앉는 목소리로 말했다.
“X 드레이크여.”
“…죽이려거든 얼른 끝을 보아라, 트라팔가.”
“성급하게 말하지 마라. 네 녀석을 죽일지 어떨지는 내가 결정하는 일이다. 너도 아시다시피 나는 밀짚모자와 함께 카이도를 쓰러뜨리기 위해 이 섬에 왔다.”
“알고 있다. 그걸 왜 다시 말하는 거지?”
“… 아직 널 죽이기에는 이르고, 생각해보니 써먹을 가치가 있는 것 같아서다.”
“뭐?”
어디까지나 작전의 연장선상이다. 나중에 밀짚모자와 만나거든 작전을 일부 수정해야겠군. 로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처음 루피에게 동맹을 제안 했을 때의 당찬 미소였다.
“나와 밀짚모자와 함께 카이도를 쓰러뜨리지 않겠나, 드레이크여.”
드레이크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급격히 팽창하였다. 바람의 세기가 한층 더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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