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의 로우(36)X고등학생 도플라밍고(18). 원작 도플로우에서 입장을 바꾼 듯한 느낌인 단문.
“오, 집에 있었군. 훗훗훗.”
현관에서 막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오던 도플라밍고가 거실에서 가방을 던져놓고 목을 꽉 졸라매던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있던 로우를 보고 의외라는 듯이 말을 걸어왔다. 뭐 그렇지. 로우는 도플라밍고의 말에 조용히 맞장구를 쳐주었다. 도플라밍고가 의외라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었다. 의사라는 신분 상 다른 사람들보다도 집에 있는 시간이 드물었기에 오후 일찍 집에 있다는 것 자체가 동거인으로서도, 본인으로서도 뜻밖의 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특히 트라팔가 로우와 같은 유능한 외과 의사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남들과 같은 쳇바퀴 같으면서도 평범한 일상과 자신만의 여가 시간을 대가로 지불해야 한다. 그렇게 로우는 26세부터 지금까지 10년을 외과 의사로서 살아왔다.
넥타이를 마저 끌어내린 로우는 소파 끄트머리에 털썩 앉고는 마른세수를 했다. 10년이면 충분히 의사로서의 생활에 적응하고도 남을 시간이었지만 나이가 하나 둘 늘어가면서 그에 반비례로 체력은 점점 떨어지고 만다. 그리고 그와는 반대로 피로도는 점점 높아지고 만다. 피곤에 젖은 한숨을 거칠게 쉰 로우를 보며 도플라밍고는 어쩐지 그의 모습이 고소하다는 듯이 웃어버리며 어깨에 맨 빈 가방을 바닥에 아무렇게나 팽개쳐 두고 말했다.
“훗훗훗. 많이 피곤해 보이는 군, 로우.”
“로우 씨다. 연상을 부를 때는 그에 맞는 호칭을 쓰라고 말했을 텐데.”
“그냥 어린애가 자기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게 기분 나쁜 게 아니라?”
“알고 있으면 똑바로 부르도록. 그것보다도, 나보다도 네가 이 시간에 집에 있는 게 더 신기하군. 학교는?”
“땡땡이.”
태연하게 땡땡이를 쳤다고 말하며 부엌으로 들어가 냉장고를 여는 도플라밍고의 모습에 로우는 다시금 한숨을 쉬고는 좀 더 편안히 앉기 위해 몸을 뒤로 누워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로우의 한숨소리를 들은 도플라밍고는 냉장고 안에서 생수병을 꺼내 뚜껑을 열고 크게 꿀꺽거리는 소리를 내며 마신 후 어깨를 으쓱거리며 변명조로 말했다.
“출석 일수는 잘 맞추고 있으니까 걱정 말라고. 로우 말대로 졸업은 확실하게 할 테니까.”
“그거 참 고맙군. 되도록 큰 일 저지르지 말고 조용히 지내. 지난번처럼 학교에 번거롭게 찾아가는 일 없도록 하고.”
“훗훗훗. 여부가 있겠어? 우리 로우 의사 선생님은 바쁜 몸인데 학교까지 오게 할 수는 없지.”
명백한 비웃음과 빈정거리는 어조로 말하는 도플라밍고의 모습을 로우는 못마땅하다는 듯이 보다가 이내 못 본 것으로 하고 피곤한지 눈두덩을 잠시 문질렀다. 도플라밍고의 지금과 같은 모습은 로우 자신이 어느 정도 자초한 것도 있었다. 어쩌다가 함께 살게 된 아이는 제대로 된 보호자를 만나지 못해 함께 산다는 생각이 들지 못할 정도로 텅 빈 집에 남겨지는 경우가 많았으며 로우 스스로가 아이를 위해 무언가를 하거나 정성을 보이는 등 단 한 번도 도플라밍고에게 제대로 된 정을 주지 못했다. 로우의 생활 패턴이 아이와 확연히 다르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지만 로우로서는 자신이 아이와 혈연으로 이어진 것도 아니며 형식상 후견인으로 있을 뿐이니 아이의 일에 후견인으로서 최소한으로만 신경을 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결정하고 방임주의로 아이와 함께 지내게 된 결과가 지금의 모습이었다. 로우는 도플라밍고를 볼 때마다 가끔씩 자신은 소아과 체질이 아니라고 절감하게 된다.
메마른 관심과 애정결핍 속에서 자라난 아이는 나이를 하나 둘 씩 먹어갈수록 비뚤어져 갔다. 툭하면 패싸움을 하며 로우만큼이나 집에 잘 안 들어오게 된 도플라밍고는 고등학교에 들어갈 쯤에는 일대에서 상당히 악명 높은 요주의 인물이 되었으며 어른들도 피해 다닐 정도가 되었다. 로우가 도플라밍고가 일으킨 문제로 학교에 호출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대로라면 졸업이 힘들 수 있다는 담임의 최후통보에 로우는 도플라밍고와 상의해서 최소한 고등학교는 졸업하자는 합의를 내렸다. 그 덕분에 도플라밍고는 이전보다는 학교생활에 있어서 조용히 지내게 되었다.ㅡ학교 밖에서는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것 같았지만 그것은 담임과 로우가 관여하는 부분이 아니다.ㅡ통제 불능 그 자체이며 로우와 사이가 좋다는 표현보다 나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의 관계였지만 그는 아직까지는 로우의 말을 고분고분 따라주는 편이었다.
로우는 넥타이를 완전히 풀고 그대로 옆으로 쓰러지듯이 누웠다. 집에 오기 전까지 꽤 긴 수술을 마치고 온 터라 피곤에 몸이 늘어지게 된다. 병원에서는 피곤해도 흐트러짐 없이 다니는 로우였지만 장소가 집이라서 그런지 병원에서와는 다르게 피곤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로우는 서서히 눈을 감으며 도플라밍고에게 작게 속삭이며 말했다.
“잠시 눈 좀 붙일 테니까 나중에 병원에서 연락이 오면 깨우도록 해.”
“안에 들어가서 자지 그래?”
“침대에서 자면… 금방 못 일어날 것 같아서 그래. 부탁한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로우의 눈이 완전히 감기면서 곧바로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색색거리는 숨소리를 내며 잠든 로우의 모습을 도플라밍고는 말없이 지켜보았다. 잠자리를 조금 가리는 편이라 병원에서는 제대로 깊게 자지 못할뿐더러 얕게 잔다고 해도 몇 시간, 혹은 몇 분 후에는 호출을 받고 곧바로 일어나야만 했기에 그의 눈 아래는 언젠가 다크서클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가끔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로우가 대부분 하는 일이라고는 잠을 자는 것 이외에는 없었다. 이렇게 한 지붕 아래서 지내 모처럼 같은 공간에 있어도 지금과 같은 간단한 안부 이외의 대화는 이뤄지지 않는다.
쳇. 도플라밍고는 혀를 차며 손에 쥔 플라스틱 생수병을 한 손으로 우그러뜨리고는 바닥에 내던졌다. 그리고는 천천히 발소리를 죽이며 소파에 누워있는 로우에게로 다가갔다. 구부정하게 잠든 로우의 모습은 집에서도 혹시나 올지 모를 병원에서의 호출에 금방 일어나기 위한 준비 태세와 같아 어쩐지 안쓰러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도플라밍고는 상체를 숙여 조심히 로우의 위로 그림자를 드리웠다. 고급 소파라서 그런지 도플라밍고의 무게에도 소리 없이 조용히 소파에 무게를 싣는 도플라밍고의 몸에 움푹 파여 들어갈 뿐이었다. 도플라밍고는 입을 꾹 다문 채 로우를 보았다. 간만에 깊이 잠든 것인지 도플라밍고의 행동에도 지금까지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가까이서 본 로우의 얼굴은 36살이라는 나이치고는 상당히 어려보이는 외모였다. 10년 이라는 세월이 지났어도 트라팔가 로우는 여전히 돈키호테 도플라밍고가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달라지지 않았다. 그의 모습도, 처음부터 벌어져 있던 자신과 그 사이의 격차도, 건조한 눈빛도, 메마른 관심도, 결핍된 애정도. 모든 것이 10년이라는 세월 앞에서 무색할 정도로 그대로였다. 그것이 도플라밍고에게 크나 큰 상실감을 주었다. 몇 번이고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이 사람을 따라가겠다고 결심하지 않았으면 이런 상실감을 가지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자신과 로우에 대한 원망을 쌓아갔다.
그러나 도플라밍고는 로우를 싫어하지 않았다. 어찌되었든 그는 그 끔찍한 시설에서 꺼내준 사람이며 자신의 가족이자 보호자였다. 다만, 그가 이토록 원망스러운 건 로우가 자신을 향해 애정도, 미움도, 그 어떠한 감정도 전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자신을 학대하며 미워했다면 좀 더 편했을 것을. 이렇게 혼란스러운 감정을 가지지 않고 간단하게 자신도 그를 미워하면 되는 터였는데 로우는 언제나 도플라밍고를 무미건조한 태도로 일관할 뿐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은, 돈키호테 도플라밍고는 트라팔가 로우에게 과연 어떤 존재가 되는 것일까. 허무한 질문을 속으로 되풀이 해봐도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도플라밍고는 손을 뻗어 로우의 얼굴에 가져다 대었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로우의 피부 감촉은 피로로 인해 거칠었고 온기는 희미하게 느껴졌다. 그 이상 도플라밍고는 손을 뻗지 않았다. 더 이상 뻗어봤자 얻어지는 것은 채워지지 않는 상실감과 결핍뿐이었다. 그리고 집착. 그 상실감과 결핍이 로우가 자신에게 준 몇 안 되는 것이라 채 놓지 못하고 붙들고 있는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스러웠다.
“…차라리 미움 받는 편이 더 마음 편하겠군.”
그렇다면 이 애매하고 미지근한 감정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도플라밍고는 말없이 손을 거두고 몸을 일으켜 신발을 갈아 신고 현관문을 열어 밖으로 나갔다. 쾅 하며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크게 메아리쳤다.
잠시 후, 텅 빈 거실에서 로우가 조용히 눈을 떴다. 그 눈에는 도플라밍고가 보지 못한 것이 담겨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