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보로우. 로우가 펑키해저드로 떠나기 전. 두 사람 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지만 친구 이상 연인 미만. 시점이 이리저리 바뀌니 주의.
“가는 거야?”
그의 질문에 로우가 소리 없이 몸을 돌려 상대를 보았다. 평소에 자주 보여주는 장난끼 서린 미소와는 달리 진지하게 로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화사한 금발 아래에 꾹 다문 입술은 평소의 미소가 걸쳐있지 않아 어색한 느낌을 주었다.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댄 모습에서는 그의 험난하고 자유를 갈망하는 인생과는 상반되게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귀족으로서의 품행이 은은히 묻어나고 있었다. 자신의 출생을 부정하는 그로서는 달가운 사실이 아니지만 말이다.
언제나 자신에게 애살스러운 미소를 지어주는 사내다. 말버릇처럼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찾아오며 들러붙는 사내를 로우는 귀찮아하면서도 그것을 진정으로 내치지 않았다. 22살이 되어서도 소년으로서의 순수함을 간직하면서도 그 나이에 걸 맞는 청년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누구나 그의 곁에 지내다 보면 저절로 의지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고 부드러운 버팀목이 되어주는 인물이었다. 그 황금빛 머리칼과 같은 색의 햇살을 떠오르게 만드는 사내였다. 로우도 정신을 차리고 보면 그 햇살에 자신의 몸을 쬐이고 있었다. 불처럼 뜨겁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위험했다. 너무 따뜻해서, 자신도 알아채지 못할 사이 녹아내릴 것 같았다.
그래서 트라팔가 로우에게 있어서 사보는 방심해서는 안 되는 사내였다. 지금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두 눈에 걱정스러운 빛이 서린다. 그 걱정마저도 너무 따스해서 살짝, 흔들리고 만다.
그러나 이것을 사보에게 들켜서는 안 된다. 로우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확고한 의지가 담겨있는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사보는 잠시 입을 열었다가 닫는 것으로 더 이상의 말을 하지 않았다.
몇 번이고, 통할 때까지 그를 붙잡고 말리고 싶었다. 그러나 사보에게는 그럴 입장이 되지 못할뿐더러, 로우의 결심만 흔들어 놓을 게 분명했다.
도플라밍고와의 악연. 13년에 걸친 그 악연은 앞으로 로우가 살아감에 있어서 반드시 매듭을 지어야만 하는 최대의 과제이다. 사보는 줄곧 지켜보았다. 로우가 그 악연에 얽매여서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자신만큼이나 자유를 갈망하는 사내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도, 어떤 바다로 가던 그 남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현실에 절망했는지. 자신이 바다로 나와 해적단을 만들 수 있도록 해준 은인의 희생에 애통해하는지 사보는 로우를 알고 지금까지 그 모습들을 충분히 목격하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로우가 자신의 목숨까지 걸면서, 혹시나 죽을지 모르는 전장에 홀로 뛰어든다는 것을 반긴다는 것이 아니다. 로우의 계획을 들은 후로 사보는 몇 번이고 로우를 말리고 그를 이렇게까지 몰아넣은 그 남자에게 원망했지만 로우의 결심은 변하지 않았다. 차라리 자신이 죽음으로서 복수를 이룰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족하다는 비장함까지 느껴져서 사보는 등골이 서늘했다.
에이스. 사보는 2년 전에 잃은 자신의 의형제를 떠올렸다. 루피의 눈앞에서 죽어야만 했던 에이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지켜보기만 했던 자신. 이번에도 자신은 같은 일을 반복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만큼은 싫었다. 다시금 누군가를 잃는 다는 슬픔을, 소중한 사람을 지키지 못했다는 비참함을 경험하기 싫었다.
그리고 그 상대가 로우, 너라면 더더욱.
사보는 벽에서 기대던 몸을 똑바로 세워 로우와의 간격을 좁혔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보의 발소리에 로우는 괜히 긴장이 되었다.
이윽고 바로 코앞까지 도착한 사보는 팔을 뻗어 칼을 쥐지 않은 로우의 남은 손을 찾아 쥐었다. 차가운 로우의 손과 대조적으로 사보의 손은 충분히 따뜻했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줘. 바로 달려와서 도와줄 테니까.”
“…아아.”
로우는 사보의 부탁을 거짓말로 답해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사보도 알아차렸다.
어디까지나 자신과 도플라밍고와의 문제이다. 그 사이에 타인, 그것도 오랜 세월 알고 지낸 지인이자 특별한 위치에 있는 인물을 끌어들일 수 없다. 세계의 범죄자인 자신과는 달리 그는 아직 이 세계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많은 중요한 인물이었다. 만약의 상황에, 자신을 대신해서 서로가 바라던 것을 이뤄줬으면 하는 작은 바람도 있었다.
사보는 로우의 거짓말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렸다. 죽음의 외과의라는 섬뜩한 이명과는 달리 그는 사실 상냥하고 자신보다 타인의 안전을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얼음 같은 외모 뒤로 피처럼 뜨거운 온기가 있다는 사실을 사보는 알고 있다.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알고 있다. 그래서 하트 해적단이라는 이름 아래 너를 따르는 것이다.
“로우.”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로우는 사보를 내려다보았다. 그보다 키가 조금 작은 사보는 로우와 시선이 마주치자 슬며시 웃어주었다. 그와 잘 어울리는 해사한 미소였다.
“약속 해줘. 죽겠다는 각오가 아니라, 살아남겠다는 각오로 도플라밍고를 날리고 와 줘. 안 그러면 드레스 로자까지 따라가서 널 구하러 갈 테니까. 내가 오는 게 싫으면 약속해줘.”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기에 나는 미간을 좁히고 대답하지 못했다. 앞으로 내가 할 싸움은 살아 돌아올지 어떨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해서기도 했다. 그러한 내 표정을 읽은 것인지 사보는 헤헤 웃으며 손을 놔주었다. 그의 온기가 아쉬움을 남기고 멀어져 간다.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그러면 다시 너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위태롭게만 느껴지던 그 온기를 이제는 온전히 받아 자신의 안에서 녹아 스며들게 할 수 있을까. 아직은 모르는 일이며 확신을 가져서도 안 된다. 바람도, 기대도 전부 자신의 각오를 뒤틀리게 하는 방해 요소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작게 의지해본다.
그것은 너이기에 그런 것일까.
나의 부탁에 로우가 당황과 난감이 교차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주었다. 정말로 따라올 거라는 내 의지를 읽었기에 나온 반응일 수 있다.
나는 헤헤 웃으면서 맞잡은 손을 놔준다. 사실은, 그 마른 몸을 으스러지도록 꼭 끌어안고 싶었지만 그것은 그가 돌아왔을 때를 위해 꾹 참고 남겨두었다. 살아 돌아와 줘서 고마워, 라는 말과 함께 전해주기 위해서.
로우. 이번 일이 끝나게 되면 너는 드디어 자유롭게 바다를 누비고 다닐 수 있게 된다. 네가 오랫동안 바래왔던 일이고 나 또한 소망했던 일이었다. 그러니까 네가 살아 돌아와 줬으면 한다. 돌아오면 그 때는 진심으로 서로 웃으며 바다 위에 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