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다님 소재 제공. 청황인데 아오미네가 안 나오는 글입니다.(...) 게다가 이 뒤에 이어질 것 같은 반쪽짜리 글. 과연 이어질 것인가.(무책임)
“아무래도 권태기가 온 것 같습니다.”
고개를 약간 숙이고 눈에 띌 정도로 몸을 경직시키며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고 심각한 사태를 힘겹게 털어놓는 것처럼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키세 료타의 모습에 맞은편에 앉아있는 쿠로코와 키세의 옆에 앉아있는 카사마츠는 그 말을 듣자 동시에 여기에 괜히 불려 나왔다라는 의미로 짙은 후회의 표정을 유감없이 드러내었다. 전화 너머로 낮게 깔린 키세의 심각한 목소리에 혹시나 해서 온 것이 실수였다. 혹여나 정말로 안 좋은 일이 생겼을지도 모를 가능성을 생각해서 달려왔건만 키세가 내뱉은 말은 연인과의 권태기가 찾아왔다는 등의 시시한ㅡ적어도 쿠로코와 카사마츠는 키세의 고민을 그렇게 단정 지을 수 있었다.ㅡ고민을 내뱉었다. 왠지 모르게 속아 넘어갔다는 것에 대한 울컥함에 쿠로코와 카사마츠는 동시에 일어날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그러냐. 그럼 난 시험 준비로 바빠서 이만.”
“저도 카가미 군과의 약속이 있어서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잠깐, 잠깐, 잠깐! 아직 서두 밖에 꺼내지 않았는데 벌써 일어나는 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이런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이 쿠로콧치와 선배 밖에 없다고요!”
“그런 특권 사양이다.”
“동감입니다. 키세 군과 아오미네 군의 시시하고 귀찮은 연애에 일정 수위 이상 간섭하기 싫습니다. 무엇보다 카가미 군과의 약속을 미뤄둔 이유가 그딴 거라니. 지금 간신히 짜증을 억누르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주세요.”
“너무해!”
신랄하게 키세를 향해 내리꽂히는 쿠로코의 독설은 본인의 말대로 카가미와의 시간을 방해받은 것에 대한 짜증의 편린을 보여주고 있었다. 쿠로코의 말에 키세의 옆에 서있던 카사마츠는 쿠로코의 말에 속으로 몇 번이고 동감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에이스 후배이고 대학생이 된 지금도 자신이 좋다며 졸졸 쫓아다니는 후배의 고민을 그냥 흘러 넘길 수는 없어서 결국 선배로서의 무른 면을 보여주게 되었다.
“뭐, 일단 들어는 보자고. 정 바쁘면 쿠로코, 넌 먼저 가도록 해. 카가미 녀석하고 약속 있잖아?”
“…아뇨. 카사마츠 씨에게 신세를 질 수는 없죠. 키세는 몰라도 저도 불려 나왔는데 카사마츠 씨에게 전부 떠맡길 수 없으니까요.”
“쿠로콧치, 그 말은 절 위해서가 아니라 카사마츠 선배를 위해서 남는다는 소리인가요?!”
“당연한 소리입니다, 키세 군.”
키세에 대한 고민을 해결해주기 보다는 자신과 같은 처지로 끌려나온 카사마츠에게 짐을 떠맡기지 않기 위한 의무감으로 자리에 다시 착석하는 쿠로코에 키세는 우와아앙하고 울면서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모처럼 쿠로코가 자신의 고민을 들어준다고 하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는 것이었다. 쿠로코의 뒤를 이어 카사마츠도 자리에 앉아 팔짱을 끼고 들을 준비를 마치자 키세는 감정을 진정시키고 차근차근 쿠로코와 카사마츠에게 사정을 이야기했다.
키세가 털어놓은 사정을 이러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키세가 먼저 아오미네에게 중학교 때부터 가지고 왔던 연모의 감정을 마침내 정식으로 표현했고, 그런 키세의 고백을 아오미네도 진지하게 받아들여 마침내 두 사람은 연인 사이가 되었다. 그 후 두 사람은 같은 대학에 입학하여 아오미네는 농구에, 키세는 모델 일에 전념하게 되었다. 각자의 일에 충실하여 바쁜 시간을 보내는 두 사람은 조금이라도 같이 있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동거에 들어갔으며 지금은 동거에 접어든지 두 달 정도가 되었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동거에 접어들고 키세는 자신과 아오미네가 신혼부부가 된 듯한 환상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으며 그와 한 지붕 아래서 생활하는 것을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처음 동거가 결정 되었을 때는 잔뜩 흥분해서는 자신이 알고 지내는 모든 사람들에게 호들갑스럽게 연락했었다. 쿠로코도 그 일을 기억하고 있다. 한사람과의 통화로 휴대폰 배터리가 다 된 적은 그 때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원치 않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그만큼 키세 료타의 주변에는 사랑의 오라가 옆에서 보면 지독할 정도로 분출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얼마 안 가 발생하고 말았다. 동거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오미네가 키세를 피해 다니기 시작한 것이었다. 처음 키세는 자신과 아오미네의 시간이 안 맞아서 마주치지 못한 것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차츰 키세는 아오미네가 자신을 제 발로 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태를 파악하게 된 키세는 틈이 날 때마다 아오미네와 대화를 나누거나 스킨쉽을 시도했지만 아오미네는 절묘한 타이밍으로 말을 자르거나 자리에서 비켜나가는 것으로 키세의 어택을 가볍게 피했다. 노골적으로 피하는 행동에 키세는 자신이 무엇인가 잘못한 게 있을까 고민했지만 자신이 아오미네에게 잘못한 일은 전혀 없었다. 언제나 아오미네를 중심으로 그에게 자신을 맞춰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에 적어도 자신의 실수로 화내는 일은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일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나오지 않는 원인에 답답함을 느끼던 중, 키세는 동료 모델로부터 ‘권태기’라는 말을 들었다. 오랫동안 함께 지내다보면 상대에게 질린다는 이야기. 그 말에 키세는 덜컥 겁이 났다. 혹시, 동료의 말대로 아오미네가 권태기에 접어들어 자신에게 싫증난 것이 아닐까. 그래서 자신에게 관심을 잃고 피하는 것일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키세는 이 문제를 혼자서 감당할 자신이 없어졌다. 연인의 일이라면 한없이 약해지는 키세는 속으로 끙끙 앓다가 결국 견디지 못하고 (자칭)중학교 최고의 친구였던 쿠로코와 아오미네와 함께 키세 료타의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준 존경하는 선배 카사마츠는 부른 것이었다. 그 두 사람은 키세가 힘들 때마다 가장 먼저 생각나며, 아오미네 다음으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쿠로코와 카사마츠는 풀이 팍 죽은 키세의 푹 숙여진 모습을 지켜보았다. 결국 사랑싸움이라는 건가. 카사마츠는 여기가 사람들이 많은 마지바가 아니고, 키세가 보기에도 불쌍할 정도로 풀이 죽은 모습만 아니었어도 벌써 발차기가 날아갔을 거라고 스스로의 행동을 짐작했다. 하지만 일단 후배가 걱정거리를 들고 왔으니 선배로서 최소한의 조언을 해줘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연애에 문외인 자신이 해결책을 쉽게 내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카사마츠는 키세 몰래 쿠로코에게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쿠로코라면 분명 자신보다는 더 나은 해결책을 내놓을 것이다. 쿠로코는 카사마츠의 신호를 이해하고는 그와 키세 몰래 낮은 한숨을 쉬고는 자신이 카사마츠를 대신해서 키세에게 말을 걸었다.
“이야기는 잘 알겠습니다. 요점은 키세 군은 아오미네 군이 키세 군에게 질렸는지 알고 싶은 거로군요”
“그런 거라면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는 편이 낫지 않나? 단도직입적으로 내가 질렸는지 물어보라고.”
“그, 그렇게 큰 돌직구를 어떻게 날립니까! 그리고 날려서 대답이 잘못 맞으면 즉사라고요!”
“누가?”
“제가요!”
“그렇다고 이렇게 계속 혼자서 고민해봤자 답은 안 나옵니다, 키세 군.”
“우으으….”
“그것보다도 아오미네가 너한테 질렸다는 게 사실이야? 아직 확정된 것도 아니잖아.”
“그, 그렇습니다만 만약의 가능성을 생각해서 정말로 아오미넷치가 저에게 질렸다면 그에 대한 해결책도 생각해야죠!”
“예를 들면?”
“그걸 카사마츠 선배와 쿠로콧치가 답해줘야 합니다. 애초에 그것 때문에 두 사람을 부른 거니까요.”
“우리한테 떠넘기지 말고 너도 생각해!!”
“아팟!”
해결책을 쿠로코와 카사마츠에게 떠넘기는 키세의 말에 곧바로 카사마츠가 테이블 밑에서 응징을 가했다. 정강이가 걷어차인 것으로 인한 통증으로 잠시 끙끙대던 키세에게 쿠로코가 처음 마지바에 왔을 때 사놓은 바닐라 쉐이크를 한 모금 마신 후 말했다.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뭐, 뭔가요?”
“만약, 아오미네 군이 정말로 키세 군에게 질렸거나 다른 사람에게 흥미가 생겼다고 한다면 키세 군은 헤어질 의향이 있습니까?”
“에? 이, 이야기가 갑자기 멀리 나간 것 같은데요?”
“만약의 가능성을 생각해 보자고 말한 건 너잖아. 그러니 최악의 사태도 생각해야지. 만약 그렇다면 헤어질 마음이 있냐?”
“그건….”
카사마츠의 추궁에 키세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이내 잔뜩 구겨진 얼굴로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아오미네와 헤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로서는 상당히 힘든 일로 보이는 것 같아 카사마츠는 괜히 후배의 기를 죽인 것 같아 쩝 소리를 내며 약간 미안한 기색으로 살며시 물러났다. 뭐, 좋아하는 거니까 당연하지. 연애에 무지한 카사마츠도 옆에서 키세를 지켜보면 그가 얼마나 아오미네를 사랑하는지, 그것으로 얼마나 행복해 하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사랑은 현재 진행형이며 앞으로 이어질지 어떨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 여기서 끝을 냈다가는 키세는 다시 일어서기에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 짐작했다. 카사마츠가 선배로서 후배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진지한 표정으로 자연스레 앞에 놓여진 콜라를 마시고 있을 때, 쿠로코가 그런 카사마츠의 상념을 깨뜨리는 말을 했다.
“흔히 권태기에는 한 가지 특효책이 있다고 하죠.”
“특효책?”
“그, 그게 뭡니까!?”
“바로 성교입니다.”
푸우우우웃!!!! 카사마츠는 그대로 입에 머금었던 콜라를 분수처럼 분출해내어 밖으로 뱉어내었다. 다행히 고개의 방향이 결정적인 순간에 정면이 아닌 측면으로 틀어졌기에 쿠로코가 아닌 키세에게 고스란히 피해가 전해졌다. 갑작스런 콜라 세례에 키세는 우울했던 기분을 잠시 접고 예상치도 못하게 찾아온 참사에 비명소리에 가까운 외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뒤늦게 피신했다.
“우와아앗!?!? 선배, 갑자기 무슨 짓이에요!!”
“콜록, 켁… 아, 일단 미안 키세. 그리고 쿠로코! 너, 너, 너 지금 그게 무슨…!!”
“여자와 성적 관계에 대해서 예민한 카사마츠 씨가 계셔서 말하는 걸 망설였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말해야지 키세 군이 알아들을 것 같아서요.”
“아니 그래도 이런 데에서 대놓고 말하냐!! 그리고 그게 어떻게 해결책이 되는 거야!”
“보통 권태기가 오는 이유 중 하나로서 상대의 성적 매력이 느껴지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니까 키세 군이 아오미네 군을 유혹해서 성적 만족감을 채워준다면 그걸로 어느 정도 급한 불은 꺼지지 않을까요?”
“그,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확실히 제가 너무 바빠서 아오미넷치와 관계를 가진 적이 드물었으니… 핫, 혹시 아오미넷치가 화난 이유가 그것 때문일까요!?”
“흠. 그럴 가능성도 있겠네요.”
뭐냐 이건. 카사마츠는 처음으로 쿠로코와 키세의 대화가 쿵짝이 잘 맞으며 굴러간다는 사실에 대한 경악과 그들이 나누고 있는 대화의 내용으로 얼굴이 벌겋게 물들어지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런 카사마츠의 반응을 눈치 채지 못한 것인지 쿠로코와 키세는 어느새 화제를 ‘아오미네의 욕구불만을 풀 방법’으로 넘어가 저희들 딴에는 제법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역시 오지말걸 그랬어. 카사마츠는 두 사람의 대화를 멍하니 들으면서 처음보다도 더 깊으면서 다른 방향의 후회를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