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어님께서 신청하신 단문 리퀘입니다.
“꼴좋군.”
차가운 빗물과 뜨거운 핏물이 섞여진 물웅덩이 위에 널브러져 있는 유스타스 키드의 처참한 몰골을 우연에 이끌려 목격한 트라팔가 로우를 내놓은 감상평은 냉정했다. 동정도, 빈정거림도 없는 있는 그대로의 단평. 로우는 천천히 무릎을 접고 앉아 자신의 맞은편에서 죽어가고 있는 키드를 메마른 눈으로 조용히 살펴봤다.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된 키드의 상태는 척 봐도 심각했다. 온 몸에 크고 작은 구멍을 만들어낸 여러 개의 총상이 그 중에서도 가장 위중했다. 사실 총상 자체는 목숨에 큰 위협이 되지 않았으나 문제는 총상으로 인해 일어난 과다출혈과 장시간 차가운 비에 그대로 노출되어 체온이 급격히 내려갔다는 점이다. 그리고 아무래도 맞은 총알도 범상치 않은 것으로 보였다. 로우는 근처에 나뒹굴어져 있는 피 묻은 총알을 집어드려다가 불길한 기운에 금방 관두었다. 그리고 그 불길함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혀를 찼다. 아무래도 해군과 난전을 벌인 모양이군. 로우는 총알 하나만으로 키드가 겪은 상황을 쉽게 추리해냈다. 단순한 총알이라면 맷집 좋은 키드가 충분히 버텨낼 수 있겠지만 최근 해군에서 개발한 총알은 능력자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해루석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총알 하나라고 방심해 맞았다가는 능력자는 자칫 큰 낭패를 볼 수 있었다. 아마 그도 해루석 총알인 줄 모르고 무심히 맞았다가 이런 몰골이 되었겠지. 로우는 작게 한숨을 쉬며 키드의 방심을 탓했다. 의사의 관점으로 전체적인 상태를 살펴봤을 때 중상이긴 하나 못 살릴 정도로 가망이 없지는 않았다. 여기서 바로 근처에 정박해 있는 자신의 잠수함으로 데려가 수술을 시작한다면 충분히 살릴 수 있는 목숨이다. 그런데, 어째서 자신은 그것을 바로 실행에 옮기지 않고 이러고 있는 것일까.
으, 으으…. 괴로움으로 쥐어짠 신음소리가 빗소리에 허무히 파묻혔다. 신음소리가 흘러나와도 의식은 거의 없는지 키드는 로우가 바로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는데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로우는 그 신음소리를 익히 잘 알고 있었다. 의사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이래로 골백번 넘게 들은 고통과 죽음의 신음소리. 이미 지겹도록 들어서 이제는 별 감흥도 느껴지지 않는 소리이거늘, 로우는 새삼 그 신음소리가 신경 쓰였다. 다른 이도 아닌, 죽어도 죽지 않을 것 같은 자신의 연인의 것이라서 그럴까. 로우는 손을 뻗어 키드의 뺨에 제 손바닥을 가져다 대었다. 차가운 감촉. 피를 많이 흘리고 거기에 비까지 맞아서 그런지 그의 안색은 시체처럼 창백했으며 온기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로우는 손을 아래로 조금 내려 목 부근에 갖다 댔다. 피가 흐르는 움직임이 옅게 전해졌다. 다시 손을 아래로 내렸다. 가슴 부근에 손을 얹자 이번에는 심장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가끔, 이렇게 그가 다쳐서 자신의 앞에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습관처럼 그의 얼굴에, 목에, 가슴에 손을 얹어 안색과 맥박, 그리고 심장이 뛰는 것을 확인한다. 단순히 상태를 알아보는 것이 아니다. 평소의 그는 절대로 죽을 것 같지 않은 남자처럼 보였다. 그는 강인했고, 쉽게 쓰러지지 않으며, 삶에 대한 의지가 확고한 남자다. 그런 그가 지금처럼 죽음에게 붙잡혀 끌려가는 상태가 될 때, 그리고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나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마다,
ㅡ우습게도, 너무나 기뻤다.
그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존재가 나라는 사실이, 어느 순간부터 그 환희를 억누를 수 없게 되었다. 그의 목숨이 나라는 사실에 대한 실감을 여기서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스스로도 그것이 미친 생각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자각하고 있지만 그래도 기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로우는 그 기쁨을 끌어안고 키드에게 다가가 입을 맞췄다. 피와 빗물이 섞여 비린내만 풍겨져 오는 차가운 키스였지만 로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혀까지 집어넣어 키스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키스가 끝나고 피 맛이 느껴지는 입술을 혀로 핥으며 고개를 들었을 때, 로우는 키드와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 너덜너덜해진 육신과는 대조적으로 총기 어린 눈빛을 형형히 빛내며 로우를 응시하고 있는 키드의 눈동자는 도저히 죽어가는 자의 것이 아니었다. 로우는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 너무 놀란 나머지 숨을 삼키고 그대로 굳어버렸지만, 키드는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눈을 감고 의식을 잃었다. 하지만 키드가 눈을 감은 뒤에도 로우는 아무 말도 못하고 여전히 굳은 채로 있다가, 이윽고 천천히 정신을 차리듯 고개를 살짝 숙였다가 저도 모르게 마른 웃음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하하. 한 손으로 눈을 가리며 잠시 아무 말도 안하던 로우는 잠시 뒤, 자리에서 일어나 키드를 부축했다.
“…정말인지, 이래서 포기할 수 없다니까.”
이런 녀석이기에 죽게 내버려 둘 수 없는 거겠지. 이런 것도 사랑이라면 사랑인 것인가, 하고 로우는 잠시 자신이 키드의 눈빛을 통해 한순간만 느꼈던 생소한 기분에 취해 고개를 갸웃거려봤지만 금방 생각하는 것을 관두고 키드를 데리고 여전히 쏟아지고 있는 비를 맞으며 자신의 배로 데려갔다.
역시, 자신은 이 녀석이 살아서 자신과 계속 함께 있기를 바랐다. 좋아하고 있으니 당연한 결정일지도 모른다. 로우의 입가에 잔잔히 피어오르는 미소는 분명 연인을 위하는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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