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어님 달성표 리퀘 소설.
사소한 것일수록 신경 쓰이고 떨쳐내기 어렵다. 그것은 유감스럽게도 병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도플라밍고는 시트 깊숙이 몸을 뉘이며 얼른 집에 도착하기를 고대했다. 그가 죄 없는 운전기사를 닦달하며 집에 돌아가는 길을 서두르는 데에는 나름대로의 중요하고 다급한 이유가 있었다. 그 사이 몇 번째인가의 소리 없는 한숨이 또 한 번 도플라밍고의 입 밖으로 나왔다. 머리를 둘로 쪼개버릴 기세로 머릿속을 쉴 새 없이 쑤셔대고 있는 고통에도 도플라밍고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앓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지리멸렬한 고통에 익숙해진 것도 있으나 이까짓 두통에 아픈 소리를 내는 것은 스스로가 용납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제 인생의 동반자처럼 함께 지녀온 편두통은 오늘도 도플라밍고를 괴롭히는 것을 잊지 않았고, 그 결과로 인해 도플라밍고는 오후 일정들을 죄다 취소하게 되었다. 도플라밍고는 가늘게 뜬 눈으로 차창 밖의 경치들을 흘겨봤다. 그러나 어지러운 도심의 풍경들은 그의 통증을 자극시킬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 다시 눈을 감고 말았다.
언제부터였는지, 원인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 새 자신에게 편두통이라는 달갑지 않은 단짝이 생긴 뒤였다. 어렸을 적부터 도플라밍고는 애를 써도 떨어지지 않는 골치 아픈 단짝 때문에 많은 곤혹을 치러야만 했다. 가벼운 두통에서부터 시작해, 상태가 악화될 때는 구토를 하거나 머리를 감싸 쥐며 기절하는 일도 있었다. 단순한 두통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괴롭고 견디기 힘든데다가 약도 잘 듣지 않아서 힘들어하는 어린 자식을 위해 그의 부모는 유능한 의사들을 찾아가 치료책을 물어봤으나 의사들의 입 밖에 나오는 진단들은 하나 같이 부정적이었다. 아직 의학계에서도 편두통의 원인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으며 해결책도 그저 고통을 완화시키는 것 이외에 방도가 없었다. 정신적인 원인도 있다는 말에 심리 치료도 받아봤으나 그쪽으로도 별 소득은 없었다. 결국 부모는 병을 완전히 치료하는 것을 포기하고 고통이 완화되는 약을 꾸준히 먹는 차선책으로만 만족했으며, 도플라밍고는 그 후로 의사들에 대한 깊은 불신감을 가졌다.
그 후로도 도플라밍고의 편두통은 계속되어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꾸준히 약을 먹고 있지만 이따금 약을 먹어도 머리를 둘로 쪼갤 기세의 통증이 발작처럼 찾아올 때가 있었고, 그 때마다 도플라밍고는 속수무책으로 예정된 모든 일정들을 취소했다. 도저히 그 통증을 끌어안고 평소처럼 행동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과 달리 지금은 건장한 어른이 되어서 구토를 하거나 기절까지 하는 극단적인 반응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으나 단지 어른의 몸이 되어 조금 더 버티기 쉬운 입장이 되었을 뿐, 그 이외에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에게 있어 편두통은 마치 오래 된 저주와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이 있듯이, 도플라밍고가 자신의 지병에서 벗어나는 것을 반쯤 포기하게 되었을 때, 구원의 손길이 나타났다.
“어서 와.”
잠시 뒤, 집에 도착한 도플라밍고가 문을 열고 현관을 지나 거실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그를 반겨준 것은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던 동거인 트라팔가 로우였다. 로우는 도플라밍고의 이른 귀가를 덤덤히 받아들였다. 이미 그의 회사 측에서 연락을 받아 이 시간에 집으로 올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나온 태연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평소라면 로우의 마중을 반갑게 여겼을 도플라밍고는 아무 반응 없이, 도리어 험악한 인상으로 로우를 노려보기만 했다. 그런 도플라밍고를 로우는 겁먹은 기색 하나 없이 소파에 앉아서 가만히 올려다보다가 이윽고 차분히 읽던 책을 덮어 근처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는 도플라밍고를 향해 두 팔을 크게 벌려 말했다.
“자. 이러면 되지?”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도플라밍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로우의 품에 달려들더니 그대로 로우의 허벅지에 머리를 베고 누워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조금 숨 쉬는 것이 버거울 만큼 힘을 준 탓에 로우는 답답하다고 중얼거렸으나 그 이상의 불평은 하지 않고 오른손으로 도플라밍고의 선글라스를 벗기더니 바로 그의 두 눈을 손으로 가렸다. 서늘한 로우의 손이 눈꺼풀 너머로 느껴지자 도플라밍고는 나른한 한숨을 크게 쉬었다. 집에 도착하기 전에 차에서 내쉬었던 한숨과는 확연히 다른 그것에는 고통이 물러간 평온함이 담겨있었다. 로우는 잠시 도플라밍고를 아무 말 없이 내려다보다가 어쩔 수 없다는 의미로 고개를 젓더니 고개를 뒤로 젖혀 천장을 올려봤다.
도플라밍고와 로우가 동거를 시작한 지 2년 가까이 되었고, 그 말은 다시 말해 두 사람이 만난 지 이제 2년이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당시 로우는 이제 막 의대를 졸업해 본격적인 의사로서의 길을 걷기 위해 인턴 활동을 하던 새내기 의사였고, 도플라밍고는 지금이나 그 때나 여전히 세계적인 대그룹을 이끄는 회장이었다. 두 사람이 만날 일은 그야말로 백만분의 일의 확률 밖에 되지 않았으며,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살아가도 아무런 지장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고로 두 사람이 만난 건 어디까지나 우연이었다. 돈키호테 그룹과 연결되어 있는 병원에 볼일이 있어 방문한 도플라밍고가 그곳에서 인턴으로 일하던 로우를 만난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단순히 스쳐지나갈 사이였음에도 도플라밍고는 로우를 본 순간 그를 망설임 없이 붙잡았다. 그 자리에서 도플라밍고는 한 가지 기적 같은 사실을 깨달았다.
로우를 만남으로서, 그의 편두통이 말끔히 사라졌다.
원인도, 이유도 알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이었으나 애초에 편두통의 시발점부터 미궁 속에 빠져있으니 그 이유 따위 도플라밍고는 관심도 없었다. 중요한 것은 결과였다. 로우가 자신의 곁에 있거나 그와 접촉하게 되면 편두통이 말끔히 나아졌다. 도플라밍고는 그 중요하고 역사적인 사실 이외에 다른 것은 신경 쓸 가치조차 없었다. 도플라밍고는 바로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로우를 손에 넣고자 노력했고, 맹렬한 도플라밍고의 공세에 로우는 반쯤 휩쓸려가다 시피 그에게 이끌려 지금과 같은 동거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제 좀 괜찮아?”
“훗훗. 덕분에 말이지.”
“정 못 참겠으면 약이라도 먹던가. 아플 때마다 매번 일정 취소하고 나한테 찾아오니까 베르고 녀석이 나한테 눈치를 엄청 준다고.”
“그러면 너도 회사에 따라오면 되잖아.”
“싫어.”
“훗훗. 너무하는군.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데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고는 나으려는 의지가 전혀 안 보인다고.”
“뭐, 그렇군. 네가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그 말에 로우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한 박자 늦게 고개를 홱 돌려 부끄러움에 달아오른 얼굴을 급히 감춰보려 했지만, 이미 손가락 사이로 로우의 얼굴 변화를 살펴본 도플라밍고는 훗훗 하고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더욱 세게 로우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허리를 끌어안는 팔에는 얕잡아 볼 수 없는 집착이 어려 있었다.
“그러니까, 너는 내 곁에 있어라. 로우.”
순간, 로우의 어깨가 그의 말에 한순간 움칫하고 잘게 떨렸지만 다행히도 도플라밍고는 그것은 미처 보지 못했기에 로우의 미심쩍은 반응에 의문을 가지지 않아도 되었다. 로우는 다시 고개를 원위치로 돌려 도플라밍고를 내려다보다가 그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에 작은 목소리로 한숨 자라는 말만을 남겼다. 그리고 도플라밍고는 로우의 말대로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요 근래 회사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에 대한 준비로 알게 모르게 쌓여진 피로가 편두통으로 자극받아 한꺼번에 쏟아져서 그런지 도플라밍고는 무리 없이 로우의 무릎을 베고 편안히 잠들 수 있었다. 얕은 숨소리만이 들려오는 공간에서 로우는 한 손으로는 여전히 도플라밍고의 눈을 가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의 짧은 금발을 만지작거리며 가만히 침묵을 지키다가 한참 뒤에야 무거운 말문을 열었다.
“그거 아나, 도플라밍고. 옛날에는 편두통을 전생에 큰 죄를 지거나 소중한 것을 잃은 자가 그 죄를 속죄하기 위해, 혹은 잃어버린 소중한 것을 찾아내기 위해서 전생의 자신이 현재의 자신에게 남긴 족쇄 같은 것이라 믿었다고 하더군.”
너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냥 터무니없는 미신으로 여겼는데. 로우는 알 수 없는 누군가를 향한 조소를 허공에 던지고는 비어있는 왼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옅어지는 두통이 편안하면서도 원망스러웠다.
어느 쪽이든 너에게 빗대어 보면 우스운 이야기면서도, 외면할 수 없는 과거의 잔재였던 것이다.
나를 만나서 편두통이 나았다는 것은, 너에게 있어 나는 그만큼의 존재가 되었다는 것일까. 로우는 앞으로도 물어보지 못할 질문을 또 한 번 가슴 속에 담아두고 맴돌기만 하면서 천천히 눈을 감았다.
“네 말대로, 적어도 지금은, 여기에 있도록 하지.”
로우는 서서히 멀어져가는 머릿속의 오래된 통증을 잠시나마 떠나보내며 아련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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