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요소 주의. 베르고→도플로우 기반의 베르로우입니다.
건방진 꼬맹이.
베르고가 로우에게 가진 이미지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결 같았고, 그것이 변화될 기미는 일말의 여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베르고에게 트라팔가 로우의 이미지는, 가치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 이상 높게 평가할 이유도, 의미도 베르고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제 분수도 모르고 연장자인 자신에게 반항하는 애송이였고, 과분한 위치에 올라앉아 감히 다른 이들을 내려다보려고 난리치는 오만불손한 자였다. 그래서 오늘도 베르고는 자신에게 겁 없이 대든 애송이의 성질을 누르고 제 분수를 알려주기 위해 친히 손을 써주고 있는 중이다. 그가 주장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교육’이었다.
커헉, 쿨럭, 쿨럭. 목구멍 안을 긁어서 끓어오르는 불쾌한 기침 소리가 산발적으로 퍼졌다. 베르고는 무심한 표정으로 소리가 들리는 아래를 내려 봤다. 기침을 따라 뱉어져 나온 피가 바닥에 떨어져 크고 작은 동심원을 그려 넣었다. 그리고 그 위에 고래를 숙인 10대 후반의 소년은 두어 번 기침을 더하고는 아랫입술을 콱 깨물어 참는 모습을 보였다. 이 이상 남자에게 괴로운 기색을 보이기 싫다는 불필요한 고집이었다. 그런 부분조차 베르고에게는 어린애의 우스운 치기로만 보였다. 로우는 방금 전에 베르고에게 몇 번이고 차인 복부를 오른팔로 감쌌다. 오늘도 배에 시퍼런 멍이 울긋불긋 피어있을 것을 생각하니 뱃속부터 쓰라렸다. 하도 차여진 탓에 이제는 소화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 내장이 상하지는 않았는지의 여부도 고려해야할 것 같았다. 하지만 멍이 생겨날 곳은 복부만이 아니었다. 팔다리는 물론이요 얼굴마저도 성하지 못했다. 로우는 시큰거리는 왼쪽 눈가가 아려서 자꾸만 눈꺼풀이 감겼다. 퉁퉁 부운 눈꺼풀이 반강제로 내려앉으려고 하는 것이 큰 이유기도 했다. 퉤. 로우는 피가래를 뱉어냈다. 이가 빠지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것이 서글프게 웃겼다.
“이제 네 위치를 알겠냐, 로우.”
로우의 머리 위로 베르고의 목소리가 군림하자 로우는 바로 고개를 위로 치켜들고 반항적인 눈빛을 서렸다. 반쯤 감겨진 왼쪽 눈으로도 보여 지는 새파란 눈빛은 여전히 베르고의 심기를 효과적으로 불쾌하게 자극했다. 아직 교육이 덜 되었군. 여기까지 오면 로우뿐만 아니라 베르고도 지치게 된다. 어째서 도피는 자신에게 이런 애새끼의 교육을 맡겼는지. 이제는 하다못해 오랜 친우에 대한 원망까지 생겨든다.
“건방진 녀석 같으니. 그런 버르장머리로 감히 도피의 오른팔이 되겠다는 거냐?”
“…꽤나, 재밌는 이야기를 하는군, 베르고.”
“베르고 ‘씨’다.”
호칭의 작은 오류조차 감히 넘어가지 않은 베르고가 바로 응징에 나서 로우의 손을 구둣발로 친히 밟아줬다. 담배꽁초를 짓밟듯 무자비하게 구겨지는 손에 로우는 손등의 살갗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꼈지만 이를 갈면서 참아낼 뿐, 결코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그야말로 독기 서린 그 모습은 다름 아닌 베르고의 교육의 산실이었다. 지속적으로 가해지는 폭력 안에서 로우는 고통의 인내와 함께 그것을 독으로 치환하는 방법까지 스스로 독파해낸 것이다. 베르고는 여전히 로우의 손등 위에 발을 얹어 말했다.
“무슨 의미이지?”
“네 녀석은 나를 도피의 오른팔로 만들려고 이런 ‘교육’을 하는 거지만, 사실은 다른 이유가 있잖아.”
“뭐라고?”
“질투하는 녀석은, 꼴불견이라고. ‘베르고 씨’”
명백한 조소로 로우는 겁 없이 베르고의 가장 민감한 부분을 찔러 넣었다. 그리고 베르고는 그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로우의 손등에 올린 발을 반사적으로 들어올렸다. 오늘부터 내 오른팔로 키울 녀석이다. 베르고는 그 날을 기억하고 있다. 어디서 주워온 어린 꼬맹이를 데려와서는 다짜고짜 조직의 오른팔로 삼을 것이라 선언하던 오랜 친구이자 짝사랑의 대상의 만족스러운 미소와, 그 옆에서 돈키호테 도플라밍고의 선택을 받았다는 영화를 얻었는데도 심드렁한 표정으로 가만히 옆에 서있기만 한 열 살 남짓 꼬맹이의 짜증스런 낯짝을 베르고는 선명히 기억했다. 그 전까지 도플라밍고의 오른팔은 베르고였다. 그러나 로우의 등장으로 표면적으로는 여전히 베르고가 오른팔 위치를 차지했지만, 실질적이고 차후의 오른팔을 차지할 인물은 트라팔가 로우였다. 도플라밍고는 베르고에게 오른팔로서의 교육을 맡겼다. 아직 미숙한 로우를 위해서라지만, 베르고는 도플라밍고가 자신을 로우를 육성시키기 위한 소모품으로 쓰겠다는 의도를 읽어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베르고가 도플라밍고에게 버림받는다는 것은 아니다. 그는 도플라밍고가 가장 신뢰하는 친구이자 최측근이고, 간부였다. 오른팔에서 물러난다고 해도 실세 자체는 여전히 베르고의 손 안에 남겨지게 된다.
그러나 베르고에게 오른팔의 자리는 단순히 권력의 좌가 아니었다. 자신이 당연히 있어야 할 자리를, 도피의 옆 자리를 고작 자신보다 열 살 이상 차이나는 애송이에게 빼앗겨야 했다. 어느 밤의 복도를 걷다가 도플라밍고의 방문 앞에 섰을 때 들은 두 남자의 신음소리를 듣고, 베르고는 난생 처음으로 패배감을 겪었다.
패배감은 곧 증오로 변절되었다. 베르고의 ‘교육’에 폭력이 동반하게 된 것은 그 때부터였다.
“그만 인정하는 게 어때?”
로우는 피식 웃으며 베르고에게 말했다. 조소인지, 아니면 동정인지 가늠할 수 없는 의뭉스러운 미소로 올려다봤다. 어느 쪽이든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도플라밍고에게조차 철저히 감췄던 자신의 속내를 저 애송이가 손쉽게 간파해냈다는 점이다.
그 때, 베르고의 머릿속으로 어떤 충동이 스쳐갔다. 평소의 자신이었다면 생리적 거부감과 불합리적인 요소로 고려조차 하지 않고 파기했을 사안이었지만, 겉으로는 냉정해도 사실 속으로는 로우의 도발적 발언으로 임계치를 넘어버린 베르고였기에 그 충동에 쉽게 이성을 떠맡기고 말았다.
“그래, 좋다. 지금 도피의 오른팔은 네 녀석이라는 점은 인정하도록 하지. 하지만 아직 멀었군, 로우. 이참에 새롭게 하나 가르쳐주도록 하지.”
새로운 교육적 가르침에 로우는 이번에는 또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육체를 혹사시킬지 염려해서 반사적으로 몸을 굳히고 그의 주먹이나 발차기, 아니면 죽대가 날아올 것을 대비했다. 그러나 베르고의 행동은 이전과 딴판인 양상을 보였다. 그는 로우의 바로 앞에 서서는 무릎을 굽히고 앉아 로우의 멱살을 낚아채고는 그대로 로우의 입술에 제 입술을 부비었다. 그것은 명명백백한 키스였다. 이전과는 180도로 다른 육체적 접촉에 로우는 눈을 홉뜨고 그를 밀쳐내려고 했지만 베르고는 바로 로우의 턱을 붙잡아 도망치지 못하도록 사전에 막아 냈을 뿐만 아니라 양 볼에 압박을 가해 억지로 입을 열게 만들어 그 틈을 파고들었다. 가장 먼저 맛볼 수 있는 건 다 터져나간 로우의 입안에서 진하게 풍겨지는 피 맛이었다. 애송이라서 그런지 키스 맛도 최악이군. 그렇게 된 원인 제공이 자신이라는 것은 편리하게 잊어버린 베르고는 로우의 입 안을 거칠게 휘저어갔고, 로우는 키스마저 난폭한 베르고의 행위에 쾌락은 고사하고 고통만을 고스란히 겪어야만 해서 베르고가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진지하게 이 상황을 숙고해야만 했다.
다행히 키스는 길지 않게 끝났다. 숨도 못 쉴 정도로 이리저리 휘둘려진 로우는 바로 참았던 숨을 터트려 기침과 함께 자신의 입술을 옷소매로 벅벅 닦았다. 그제야 로우는 자신이 방금 무슨 짓을 당했는지 이성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그 베르고와 키스라니! 로우는 혐오감으로 소름이 돋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깨닫게 되었다.
“이게, 지금 무슨 짓이지?”
당장 주먹이라도 한 대 갈기고 싶은 걸 간신히 억누르고 이유부터 따져 물어본 로우는 자신과 다르게 여유롭게 손수건을 꺼내 혀가 섞임으로서 입 안으로 넘어간 로우의 피를 뱉어내고 입을 닦아낸 베르고를 서슬 퍼런 눈빛으로 쏘아보자, 베르고는 이전과는 조금 달라진 눈빛에 약간의 만족감을 느끼며 말했다.
“자고로 자리라는 것은 얻는 것이 아니라 뺏기는 것이다.”
“하아?”
“네 녀석이 절조 없이 나한테도 엉덩이를 내준 걸 알면, 도피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 되는군.”
여전히 무미건조한 입매와 눈빛이 드러나지 않는 선글라스로 평소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베르고였지만, 그 목소리 안에서 들끓는 감정의 진득한 불순물을 감지한 로우는 새로운 눈빛으로 베르고를 쳐다봤다. 베르고는 그 표정을 마주하면서 속으로 이런 표정을 짓게 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자신이 앞으로 할 행위들에는 나름의 가치와 수확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 일그러짐과 엇나감은 처음부터 무시한 채.
이것은 복수였다. 트라팔가 로우의, 돈키호테 도플라밍고의, 그리고 자신에 대한 치졸하고 추잡한 복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