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르님 리퀘 신청 소설.
성직자 잣토X불운신 이사쿠. 소설 속 설정들은 깔르님의 썰을 기반으로 구성했습니다.
둔중한 몸을 뒤치는, 노곤한 소리가 났다.
흔히 들을 수 없는 소리기에 잠시 바지런한 발걸음을 세우고 귀를 기울였다. 깊고 깊은 첩첩산중을 넘고 또 넘다보면 산의 오래 된 뒤척임을 엿들을 수 있다. 후. 가볍게 숨을 내뱉으니 입김이 미약하게 드러났다 흩어졌다. 문득 정신을 차리니 벌써 서리가 내려앉는 시기가 왔다. 쾌청한 대낮에 서리로 일찍 몸을 덮은 산은 차츰 서늘해지는 공기를 견디기 위해 몸을 이리저리 바꿔 눕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이만큼 왔으니 다 온 거지. 그는 산 중턱에서 내려다보이는 절경을 감상했다. 이만큼 먼 곳에 다다른 것도, 인적이 없는 깊은 산중에 들어온 것도 오랜만이다 못해 거의 처음이다. 자신이 떠난 날부터 오늘까지는 속으로 꼽아봤다. 아직은 새파란 가을 하늘이 맑게 보이는, 그러나 겨울의 한기가 벌써 지척까지 온 계절이다. 그는 가을을 전부 채우고 나서야 가을의 끝자락에 자리한 목적지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조용하군.”
고요하고 정갈한 산. 과연 신이 머무는 성소(聖所)라 칭할 만 했다.
그러나 그렇기에, 산자는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적적하고 외딴 장소로도 불릴 수 있다.
하아. 이번에는 숨을 조금 크게 쉬었다. 조금 더 진해진 입김은 얇은 서리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 * *
본디 그는 교황청 소속의 신부로서 오랫동안 신의 이름 아래서 어린 양들을 위해 봉사했다. 유구한 역사를 품은 크고 화려한 교회를 자신의 이름으로 직접 관리할 만큼 인정받아 그 교회만큼이나 높은 명성을 얻었고, 자연히 신자들과 다른 성직자들에게 무수한 존경 또한 뒤따라 받고 있는 그는 단 한 톨의 자만과 겸손 없이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겸허히 받아들였다. 그것이 자신의 임무였고, 마땅히 해야 될 일이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신을 위해 봉사를 해오고 있다는 자각이 없었다. 그의 신앙은 마치 겉만 멀쩡하고 속은 텅 빈 상자 같았다. 신의 존재를 의심한 것은 아녔고, 신의 믿음에 대한 허무를 느낀 것도 아녔다. 그는 다만, 자신만의 신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신을 간직하며 기도를 올린다. 같은 종교 아래에 있다고 해도 개개인의 믿음에 따라 신의 형태는 서로 달라진다. 그러나 그에게는 자신만의 신이 없었다. 아무리 기도를 올리고, 성경 구절을 읽어도 자신 안에 신이 있다는 믿음이 들지 않았다. 어린 양들을 위해 제 몸을 아끼지 않을수록, 더 많은 기도를 올릴수록 늘어나는 것은 의구심과 타는 목마름 밖에 없었다. 나의 신, 내가 숭배하고 중히 여겨야 하는 존재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채워지지 않는 갈망이, 보상 받지 못한 믿음이 그의 안에서 허무로 맴돌이친다. 그럼에도 그는 기도를 올리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언젠가 자신의 내면에서 모습을 드러내어 마주하게 될 신을 위해서라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 즈음, 그는 한 가지 의뢰를 받게 되었다. 그가 예전에 엑소시스트(퇴마사)로서도 활동한 적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이는 이곳 교회에서 한참 멀리 떨어진 타지에서 온 자로, 어느 토지에 사는 재앙신을 쫓아내달라는 부탁을 청하기 위해 먼 길을 고사하고 그를 찾아왔다.
사정을 들어보니 그 땅에는 오래 전부터 불운과 재앙을 불러들이는 신이 존재한다고 전해진다. 권능을 보면 인간들에게 해가 될 만한 신이지만, 잘만 섬기면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수호해줄 수도 있기에 사람들은 신사를 세우고 오랫동안 신을 섬겨왔다. 두려움과 경외 사이에서 신앙은 그럭저럭 양쪽의 균형을 맞추며 유지되어왔다. 그러던 몇 십 년 전, 갑자기 그 땅에 큰 재앙이 찾아오면서 살아있는 존재들은 돌연히 죽거나 불치병에 걸리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신의 저주라면서 고향을 버리고 다른 지역으로 도망치듯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 세월이 흘러도 그 땅에는 불운의 저주가 잠재되어 있어 사람들은 며칠을 못 버티고 땅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보다 못한 사람들이 그를 찾아와 신을 쫓아내달라고 청하게 된 것이다.
드문 부탁도 아녔다. 종종, 사람들은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그 땅에 사는 신의 저주라고 생각해 어떻게 해서는 원흉인 신을 쫓아내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었다. 교황청에서도 자신들이 믿는 신 이외의 다른 종교는 배척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으니 그들의 부탁을 들어줘서 나쁠 건 전혀 없었다. 신에 대한 이해보다 원망이 앞선 자들에게 더 이상의 신앙과 믿음은 없었다. 인간에게 신은 그 시점에서부터 골칫덩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너무나 쉽게 신을 믿어버리고, 신을 져버린다. 인간들의 제멋대로로 인해서. 그는 손에 쥔 십자가를 만지작거렸다. 다시금 자신의 신이 어디에 존재하는지 묻고 싶어졌다.
그래도 부탁은 거절할 수 없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 왼쪽 얼굴을 꼼꼼히 감춘 붕대가 불현 듯 거추장스러워졌다.
도착한 곳은 예상과 다르게 그의 마음에 쏙 들었다.
청명한 가을 하늘과 끝물이긴 하지만 아직은 울긋불긋한 빛깔이 남아있는 산은 단아하고 미려하여 가을의 아련함을 깊이 담아내고 있었다. 오히려 마지막이기에 더욱 덧없고 아름다울지도 모른다.
“분명 이 산 어디쯤이라 했던 것 같은데….”
신사의 정확한 위치는 의뢰한 당사자도 자세히 모르는지라 찾는 것에 꽤나 애를 먹고 있었다. 의뢰인이 말하길, 가까이 가면 해를 입을까봐 근처에 얼씬도 안하게 되다보니 위치를 완전히 잊어버리게 되었다고 한다. 나 참. 이 넓은 산에서 작고 낡은 신사를 찾아야 하다니. 눈앞에 닥친 고생길에 소리 없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설상가상으로 해가 서편으로 조금씩 넘어가고 있으니 시간적 여유도 부족했다. 불운의 신이 머무는 산에 밤을 새워 무슨 일을 당할지는 신이라 하더라도 쉬이 장담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그는 바지런한 발걸음을 잠시 세우고 오늘은 이쯤에서 내려가 하룻밤 쉬었다가 내일 아침 일찍 다시 이 산을 오를지에 대해 심사숙고했다.
바스락.
낯선 소리가 들린 건 그 때였다.
워낙 작은 소리였는지라 소동물이나 바람이 풀숲 사이를 스쳐간 소리라 짐작할 수 있겠지만, 엑소시스트로서 쌓아온 노련한 경험은 오감이 발견하지 못한 인간의 것과는 다른 특별한 기척을 감지해낼 수 있었다. 수풀이 작게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찰나에 스쳐간 기척은, 인간의 것도 야생동물의 것도 아녔다.
애초에, 생명을 품은 자의 기척이 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로 도달하게 된다. 그는 재빨리 수풀 쪽으로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설마 자기가 들킬 줄은 몰랐던 것인지 수풀 뒤에 있던 정체불명의 무언가는 화들짝 놀라 사박사박 저편으로 도망쳤다. 놀란 기색이 역력한 발자국 소리는 아이의 것처럼 잔망스러웠다. 하지만 아무리 달려도 간격은 쉽사리 좁혀지지 않았고, 얼굴은 고사하고 옷자락 조각조차 눈에 잡히지 않았다. 술래잡기 하나는 잘하는군. 그는 턱까지 차오르는 가쁜 숨을 억지로 삼키며 오랫동안 현역에서 물러나 녹이 좀 슬어버린 지금의 몸 상태를 뼈저리게 실감했다. 평소에 관리했던 것으로는 역시 부족했던 건가. 갑작스런 뜀박질에, 오랜만에 발을 내딛는 현장에, 신의 흔적을 쫓는 것에, 신을 죽이러 가는 일에, 반갑잖은 회의감이 들이친다.
무엇을 쫓아,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자신의 기도를 유일하게 귀 기울여줄, 자신만의 유일한 신이 필요했을 뿐인데.
그의 발밑이 일순간 훅 꺼진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 * *
“…괜찮…까요?”
“…으니까 …곧 …뜰 거야. 너무….”
아득히 울리는 목소리가 그에게로 천천히 다가와 말의 조각들을 의식 위로 쏟아 붓는다.
잃었던 의식을 겨우 다시 되찾자 그는 눈을 뜨기 전에 자신이 어째서 이런 처지가 되었는지를 곰곰이 추리했다. 분명 수풀에서 살아있는 것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쫓다가… 발아래가 꺼지는 감각을 느꼈다. 아마 절벽이나 구덩이 같은 곳에 빠졌던 것이겠지. 한심하군. 그는 속으로 잔뜩 뭉쳐진 한숨 덩어리를 푹 내쉬었다. 아무리 약해져 있어도 신이 있는 성역이니 방심하지 말았어야 했다. 자, 그러면 다음 문제가 남아있다. 여기는 어디고, 아까 전부터 들리는 목소리는 무엇인가.
이쯤에서 슬슬 눈을 뜨기로 했다.
“아, 정신이 들었나봐.”
“오오-.”
또렷하게 들려오는 목소리는 어린 아이와 앳된 소년의 것으로 추정되었다. 어느 쪽이든 이 산에서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하나 남은 눈을 간신히 치켜뜨고, 초점이 흐릿한 시야를 반쯤 억지로 맑게 만들어서 그는 제 옆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두 명을 확인했다. 한 명은 검은 기모노에 천으로 얼굴을 가린 소년이었고, 그 옆에 앉아있는 쪽은 반대로 새하얀 기모노에 연갈색 머리카락을 길게 풀어헤친 소년이었다. 소년은 수수하지만 좋은 재질로 만든 것으로 보이는 기모노를 정갈하게 입고서는 소매를 걷어 이 산에서 채취한 약초 같은 것을 손에 쥐고 있었다. 등을 반쯤 덮어서 부드럽게 굽이치는 연갈색 머리카락, 위로 곱게 올라간 순한 눈동자, 상냥함으로 그려진 이목구비, 새하얀 피부, 옷 아래로 언뜻 보이는 붕대와 반창고, 그리고 가느다란 목을 에워 감싸고 있는 두꺼운 가시 넝쿨.
그 일련의 모습들은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소년같이 보이면서도, 인간이라 말할 수 없는 신이한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었다.
더 따질 것도 없이, 그의 옆에서 친히 간병을 하고 있는 이가 바로 이 산에 있다는 재앙의 신이다.
“날 구해준 게 그쪽인가?”
“네?”
그가 자신에게 시선을 돌려 그리 묻자 신은 깜짝 놀라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혹시나 다른 인간이 이곳에 들어와 있나 확인하듯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신의 사자를 볼 수 있는 인간은 찾아보면 어렵잖게 발견할 수 있지만, 신을 직접적으로 보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경우는 극소수에 속했다. 그리고 신은 그가 자신을 볼 수 있는 ‘극소수의 인간’이라는 것을 금방 눈치 채지 못한 기색이었다. 하긴, 오랫동안 방치된 신으로서도 인간과 서로 시선을 마주하고 대화라는 걸 해보는 것도 정말 오랜만일 것이다.
“그쪽한테 말한 거라네. 자네가 이곳에 산다는 신이지?”
“네? 아, 네! 제, 제가 보이시는 건가요?”
“아아. 한쪽 눈밖에 없어도 잘 보이지. 어쩌다보니 만나자마자 신세를 지게 되었군.”
“아뇨, 괜찮아요. 저야말로 제 식신 때문에 난처하게 만든 것 같아 죄송한 걸요. 이 산에 인간이 들어온 건 무척이나 오랜만인지라 이 아이도 적잖게 놀랐던 탓에 본의 아니게 저지른 일이니 부디 너그러이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자, 후시키조. 사과해야지.
검은 아이는 신의 지시에 바로 허리를 90도로 굽혀서 그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 죄송합니다. 아이는 또박또박 사과 인사를 말했다. 그 모습이 여간 기특한지라 그는 슬며시 웃고는 무릎을 탁탁 쳤다. 아이는 그 제스쳐를 이해하고는 바로 그의 무릎 위에 사뿐히 앉았다. 아직 초면에, 그것도 환자인 인간의 무릎 위에 서슴없이 앉은 아이의 경망한 행동에 신은 잠시 당황하여 허둥거렸지만 그는 괜찮다면서 신을 진정시켰다. 원래부터 아이 돌보는 일을 좋아했던 그였기에 이만한 어린 아이를 만난 것이 반갑기도 했던 참이다. 그는 식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제 옆에 무릎을 꿇고 단정히 앉은 신을 바라봤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으로서의 신성한 기운이 아녔다면 어느 모로 보나 평범한 소년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말투는 겸손했고 행동은 소박했으며 약초를 직접 제 손으로 손질하는 모습이나 간간히 햇살처럼 포근히 드러나는 부드러운 시선은 상냥하고 따스했다. 도저히, 마을을 재앙에 빠뜨린 무자비한 신으로 보이지 않았기에 그는 놀라움을 넘어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버려진 채로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견디지 못해 이제는 거의 다 스러져가는 신사의 내부와 신의 목을 물러 싸고 있는 가시 넝쿨이 심상찮은 신의 뒷사정을 은근히 암시하고 있었다.
“오랜만이네요. 인간하고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건.”
그것은 자신은 모를 그리움이 녹아들어 있는 아련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여기까지네요. 이 이상은 위험하니까. 오늘은 여기서 쉬시고 내일 일찍 내려가세요. 여기가 어떤 곳인지, 제가 누구인지는 이미 아시는 것 같으니.”
그리고 단호한 목소리였다. 그런 목소리에도 어김없이 상냥함은 스며들어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그는 이곳에 오기 전, 이 산에 사는 신은 인간을 증오하고 미워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인간들에게 끊임없이 버림받고, 다시 섬겨졌다가, 이제는 신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하나의 재앙이 되어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렇게 되면 설령 신이라고 한들 인간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싹트지 않을까. 퇴마 활동을 하면서 그는 인간에 대한 애정을 품었다가 나중에는 그들에게 실망하고 타락하여 퇴마된 신을 몇 번 마주한 적이 있었다. 신의 사랑은 인간의 것과 다르게 깊고도 진실 되어서, 그렇기에 그 사랑이 보답 받지 못하고 내쳐졌을 때를 더욱 견디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전지전능한 존재라고 한들 그들도 사랑할 줄 알고, 사랑 받기를 원하는 존재라는 것을 그는 신을 이 땅에서 지울 때마다 씁쓸하게 깨달아갔다.
그러나 이 신은 달랐다. 그의 앞에 있는 신은 여기까지 와서도, 이런 비참한 처지가 되어서까지도, 여전히, 인간에 대한 상냥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것은 신이기에 가질 수 있는, 그러나 신조차도 감히 손에 넣기 어려운 신성(神聖)이자 선성(善性)이었다.
“이름을,”
“네?”
“이름을, 묻고 싶은데 괜찮은가.”
신의 이름을 함부로 묻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불경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성직자인 그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그는 눈앞의 저 작은 신을 단순히 재앙과 불운을 불러들이는 신으로만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이름을, 신의 이름을 부르고 싶었다. 마음속으로 깊이 우러러 부를 수 있는, 그 이름을 말이다.
신은 갑작스러운 부탁에 조금 망설이다가, 이윽고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가을 하늘만큼이나 맑고 청명한, 그리고 서리가 내린 이 산에 미약하게나마 잔존해있는 온기를 닮은 온화한 미소였다.
“이사쿠라고 해요. 이사쿠.”
이사쿠. 그 모습만큼이나 참 소박한 이름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무척이나 소년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이기도 했다.
“이사쿠.”
처음으로 불러보는 신의 이름은 마치 햇살을 한 움큼 입 안에 넣은 것 같아 세 글자의 이름을 말한 것만으로도 평온함이 찾아왔다. 네. 제 이름을 들은 신은 기쁘게 웃어줬다. 자신의 이름을 누군가가 불러주는 것조차 너무도 오랜만이라 그저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반가워하는 기색이었다.
아.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신이었다.
가을은 이제 끝나가고, 미지근한 서리를 앞장세워 백색의 겨울이 고요히 찾아오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곳에는 아직도 온기가 떠나지 않고 남아있어, 다가오는 겨울 속에서 그는 잠시의 안식과 같은 온기를 체험하고 있었다.
“나는 잣토 콘나몬이라고 한다네.”
그 이름을 듣고 신은 반갑게 웃어줬다. 잣토 씨. 그 부름에 잣토도 마주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어줬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아직 겨울은 아녔다. 그렇다면 조금은 더 이 온기를 즐겨도 되지 않을까. 답지 않은 느슨한 마음으로 잣토는 자신의 신을 어느 것보다 다정하게 바라봐줬다.
어느 쪽이든 오래토록 기다려왔고 그리웠던 것이기에,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