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우가 펑해에 머물러 있을 때. 다시 보니 괜히 이 때로 잡은 것 같다OTL 급전개 주의.
금썰 가지고 망글이 나오는 것도 쉬운게 아닌데 말이야... 공백 제외 6219자.
로우, 좋아해. 틈이 나면 너는 나를 정면에서 바라보며 그렇게 말한다. 환하게 웃으며, 때로는 쑥스러워 하면서 너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나에게 고백을 한다. 우리가 그동안 만나지 못한 시간에 하지 못했던 고백을 몰아서 하려는 듯이 질리지도 않게 말한다. 이미 알고 있다며, 시끄러우니 그만 말하라고 해도 너는 몇 번을 말해도 부족하다며 그렇게 또 한 번 나에게 고백을 한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해도 말로 직접 들으면 좋다면서. 그런 너와는 달리 나는 너에게 제대로 된 고백 한 번 하지 않았다. 처음 사귀게 된 고백도 네가 먼저였고, 나는 그저 받아들이는 것뿐이었다. 그 후에도 너는 쉴 새 없이 반복하며 말했지만 나는 침묵으로서 받아들일 뿐이었다. 한 번쯤은 듣고 싶을 텐데도 너는 나에게 불만 한 조각 보여주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으니까 괜찮다고, 너는 그렇게 말하며 나의 침묵을 용서해줬다. 그래도 한 번은, 한 번이라도 너에게 말했어야 했다. 나도 너와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말로서 보여주고 들려줬어야 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너의 빈자리에 깊이 사무치지 않아도 되었을 지도 모르는데. 나는 비겁하게도 너의 용서를 면죄부 삼아 앞으로 말할 기회는 충분히 있다면서 도망쳤을 뿐이었다. 이렇게 너와의 시간이 짧은 줄 알았으면, 그랬다면. 그렇게 너의 죽음 뒤에 남은 것은 후회였다. 고백 W. 아르카디. 해는 넘어가고 새로운 한 해가 다시 시작했다. 겨우 하루 지난 것으로 무엇인가 달라진 것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새로운 한 해의 첫 날이라는 점은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해에 기대하는 희망의 첫 날이었다. 충분히 그들에게는 축복해야 마땅한 날이었다. 미래의 나날들을 위해 그들은 잔을 높게 들고 서로의 행운을 빌어주었다. 그는 그렇게 모두가 축복하는 날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탄생 자체는 누구에게도 축복받지 못했다. 축복받지 못하고, 축복 받아서는 안 되는 그의 생일이 해의 시작을 알렸다. 그가 살아있든 살아있지 않던지 시간은 당연하게 흐르고 날짜는 변함없이 쳇바퀴처럼 맴돌았다. [잘 잤어, 로우? 좋은 아침.]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로우는 천천히 눈을 떴다.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이제 조금은 익숙해진 자신의 거처의 천장이었다. 부스럭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주변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평소에는 시저의 실험으로 그의 부하들이 아침부터 분주히 움직이기 마련이여서 항상 짜증과 함께 잠에서 깨어났는데 말이다. 이유야 어쨌든 조용한 것은 나쁘지 않기에 로우는 침대에서 내려와 옷을 입기 시작했다. 그가 머물고 있는 섬은 절반은 마그마로 인한 열기로, 절반은 얼음으로 인한 냉기로 추위와 더위가 극명하게 나뉘어져 있으며 그 중 로우가 있는 곳은 겨울섬의 겨울보다도 매서운 한기가 휘몰아치는 장소였기에 평소보다도 옷을 더 두텁게 입어야만 했다. 다행이 로우의 방은 충분한 방한 시스템이 되어있기에 따뜻한 공기가 방안을 덥혀주었다. 온 몸을 감싸는 검은 코트까지 입음으로서 로우는 옷 갈아입는 것을 끝내었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항상 몸에서 떼놓지 않고 파트너처럼 데리고 다니는 귀곡까지 챙김으로서 그의 하루를 보낼 준비는 완료되었다. 오늘도 평소와 변함이 없는 하루이다. 로우는 다짐하듯이 그렇게 생각하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자, 아침 먹자. 아침은 원래 안 먹는다는 소리 좀 그만 해. 아침 먹는 건 중요하다고 마르코가 말했단 말이야.]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로우 씨.” “마스터는?” “연구실에 계십니다. 아마 오늘은 하루 종일 거기에 계실 예정인 것 같습니다. 모네 씨는 다른 곳에 볼일이 있다면서 잠시 나갔고요.” “그런가.” 식당으로 들어오니 부하 한 명이 친절하게 인사를 하며 마스터뿐만이 아니라 그의 비서의 동향까지도 가르쳐주었다. 이곳의 부하들은 마스터뿐만이 아니라 임시로 머물고 있는 로우에게도 예를 표하며 정중히 대해주었다. 그들에게는 로우가 마스터만큼이나 은인이었기 때문이었다. 로우는 잠시 시선을 아래로 내려 그 증거인 부하의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인간임에도 다리가 동물의 것이었다. 마치 키메라를 연상시키는 그 모습은 로우가 그에게 사고로 잃어버린 원래의 다리 대신 선사한 것이었다. 인간의 다리가 아니었지만 다시 걸을 수 있다는 것에 그들은 감사히 여겼다. 짧은 대화가 끝났음에도 로우가 자리를 떠나지 않자 부하는 어리둥절했다. 보통 로우와의 대화는 이렇게 형식적이고 간략하며 용건만 물어보기에 이후에는 미련 없이 자리를 떠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잠시 고민하듯 식당 쪽을 보고 있자 부하는 이상하다 싶어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저, 로우 씨? 뭔가 찾으시는 거라도 있나요?” “…식사는 다들 끝났나.” “예? 아, 네. 이제 정리하려던 참이었습니다.” “괜찮다면 늦게나마 뭐 좀 먹고 싶은데 괜찮겠나.” “네?” 늦은 아침 식사를 요구하는 로우의 말에 부하는 깜짝 놀라 잠시 멍하니 로우를 보았다. 그를 만나 알게 된 것은 얼마 없지만 한 지붕 아래서 며칠 동안 지내다 보면 알 수 있는 것들도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로우는 아침 식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소식파인 그는 아침은 먹지 않고 점심도 간단한 주먹밥 정도이며 저녁조차 그렇게 먹지 않아 저렇게 먹어도 움직일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가 여기에 와서 처음으로 먼저 아침을 먹겠다는 말을 했다. 부하의 반응이 없자 로우는 눈빛으로 재촉의 의사를 전했다. 그제야 로우의 눈빛을 읽고 후다닥 놀란 부하는 허둥지둥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대답했다. “아, 죄송합니다! 지금 준비하겠습니다. 수프면 괜찮나요?” “아아, 충분하다.” 로우의 주문을 받은 부하는 재빨리 주방으로 들어갔고, 그 사이 로우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아 앉았다. 자신이 아침을 청하는 것은 단순한 변덕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로우는 앉은 자리에서 정면을 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로우는 책을 정말 좋아하는 구나. 게다가 이런 어려워 보이는 책만 읽고. 나는 뭐가 뭔지 모르겠는걸. 역시 로우는 똑똑하다니까.] 로우는 잠시 책을 덮고 고개를 젖혔다. 반나절 동안 책을 읽고 있으니 눈과 목이 뻐근했기 때문이었다. 연구실 내부에 위치한 도서관은 로우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곳이었다. 연구소의 전 주인인 Dr. 베가펑크가 모아둔 연구 자료들과 각종 서적들이 보관되어 있어 제법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의료 전문 책이 적다는 사실은 아쉽지만 그래도 충분했다. 또한 SAD에 대한 단서도 찾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였다. 고개를 드니 제법 높은 천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오늘따라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도플라밍고를 쓰러뜨리기 위해 SAD 탐색을 진행해야 하는데도 오늘은 그저 혼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고 싶었다. 무겁게 내려앉은 몸이 해루석을 삼킨 것 같았다. 고개를 내리니 시야가 자연스레 정면을 담았다가 순식간에 옆으로 틀어졌다. 그는 계속해서 마주보는 것을 외면했으며 들려오는 목소리를 무시했다. 요 근래 부쩍 도플라밍고에 대한 대책을 생각하는 탓에 벌어지는 환청이며 환각이라고 그렇게 치부했다. 그것이 오늘 발병하는 것도 단순한 우연의 일치에 불과했다. 방으로 돌아가 안정제를 먹으면 자연스레 괜찮아질 것이다. 그렇게 로우는 자신을 다스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사라지지 않았다. [안 추워? 로우는 노스 블루 출신이라고 했지? 그곳 사람들은 추위에 강하다고 들었는데 사실이구나. 그래도 옷은 따뜻하게 입고 다니는 편이 좋아. 감기 걸리면 큰일이잖아. 본인이 의사라고 해서 자기 몸을 소홀히 하지 마. 네가 아프면 꽤 속상하다고.] 결국 책 읽는 것을 포기하고 방으로 돌아온 로우는 그대로 모자와 코트도 벗지 않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원래대로라면 마스터와 그의 비서가 없는 틈을 타서 정보를 캐내려고 했지만 오늘만큼은 심적으로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밖은 벌써 저녁일 것이다. 하루가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로우는 침대에 묻혀있던 얼굴을 들어 옆으로 돌렸다. 고개를 돌리니 웃는 얼굴의 그가 있었다. 어떻게든 오늘 하루 외면하려고 애썼던 그가 아침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왠지 자신을 가지고 노는 것 같아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반응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래, 인정하자.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 아침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그가 자기 시야에 계속 들어오는 것을. 여기에 있을 리 없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으며 있어서도 안 되는 남자가 오늘 그가 태어난 날에 로우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처음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그의 모습에 로우는 심장이 추락하여 그대로 심장마비에 걸려 죽을 뻔한 위기에 직면했지만 애써 침착하게 이것은 환각이며 환청이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이 부정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하루를 보내려고 했지만 계속해서 나타나 말을 걸어오는 반투명한 남자의 모습과 목소리는 로우 스스로가 정신병에 걸렸다고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고도 충분했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외면하던 로우는 결국 정신적 피로와 한계를 느끼고 자신이 만든 환각인지 유령인지 알 수 없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기까지 하면서 로우는 멍하니 남자를 보았다. 그는 로우가 그제야 자신을 정면으로 봐준다는 것에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반응이 없자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궁금해 했다. 그런 모습이 어린아이 같아 로우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여기에 와서 처음으로 짓는 미소였다. 오늘 하루 자신이 미쳐있다는 사실을 인정했으니 이제 어울려 보자는 심정에서 로우는 환영을 향해 말을 걸었다. “눈에 거슬린다. 신경 쓰이게 하지 말고 이제 그만 사라지는 것이 어떠냐.” [에, 처음으로 눈 맞춰주고 말해주는데 그런 소리 하는 거야!? 뭐, 기대도 안 했지만 여전하구나.] “요 근래 환각계 마약을 먹은 기억은 없는데 말이지. 먹었다고 해도 이렇게 효과 좋은 건 들어본 적 없고 말이야.” [그런 거 먹지 마! 아니, 넌 그런 걸 안 먹기는 하지만 그래도!] “…너는 뭐지?” [음, 글쎄. 그냥 로우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해. 솔직히 나 오늘 하루 종일 로우가 말 안 걸어줄 거라고 생각했거든.] 볼을 긁적이며 웃어버리는 그의 모습에 로우는 약하게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낡은 침대가 끼익 소리를 내며 울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에 걸터앉은 로우는 다시 남자를 외면하고 홀로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그런 로우의 모습을 남자는 덤덤히 지켜볼 뿐이었다. 만나고 싶었다. 미치도록 그리웠다. 그가 죽고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것에 절망했다. 그럼에도 오늘 처음 눈을 뜨고 꿈이 아닌데도 나타난 그의 얼굴에 느껴진 감정은 반가움도 기쁨도 아닌 두려움이었고 그 뒤에 따라오는 것은 더 깊은 절망과 후회였다. 그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지켜보기만 했을 나를 원망하여 찾아왔을 두려움과 반투명한 환상의 그를 보면서 확실하게 각인되는 그의 죽음에 대한 절망, 그리고 자연스레 찾아오는 이전과 같은 후회. 다정하게 일상적인 대화를 건네주며 웃어 보이는 그를 보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아 오열하고 싶었을 정도였다. 너는 이미 죽었는데 그렇게 실체도 없이 나타나봤자 공허함만 안겨줄 뿐이라며 외치고 싶었지만 그의 죽음에 누구보다도 뼈가 저리고 심장이 조여질 정도로 고통스러워하는 인물이 그 스스로였기에 차마 말로 내뱉지 못하고 크게 삼켜야만 했다. 그럼에도 그는 오늘 하루 종일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다정스럽게, 위로하듯이, 사랑을 담아서. 좋아해 로우. 그래, 그렇게 그는 말버릇처럼 자신에게 사랑을 속삭였다. 자신을 만나 죽을 때까지 하염없이 표현했지만 자신이 그에게 보여주는 것은 침묵뿐이었다. 바보 같이 그의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언젠가 그 사랑을 보답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어린아이도 아니고 이미 다 아는 사실을 떠들고 다니는 것이 귀찮고 부끄러워서 표현하는 것을 미루고 그렇게 시간들을 의미 없이 보내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에게 사랑의 여신이 벌을 내린 것처럼 돌아온 것은 싸늘한 그의 죽음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말해줄 수도 없고, 보답할 수 없게 된 현실과 함께. 문득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것이 현실이며 사실이고 눈앞에 나타난 그가 환상이나 환각이 아닌 정말로 자신의 연인 본인이라면, 그렇다면 지금까지 무시한 소중한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은 뒤로 하고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랐다. 자신이 말하지 못한, 말해야 했던 것에 대한 기회. 그렇게 생각에 도달한 로우는 휙 소리가 날 정도로 고개를 돌려 남자가 있는 곳을 보았다. 그는 여전히 로우를 보며 웃어주었지만 어쩐지 그 웃음이 오늘 질리도록 보여준 웃음과는 느낌이 달랐다. 그 웃음에 로우는 불길한 기운을 감지했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남자는 그윽하게 로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미안해. 좀 더 같이 있어 주고 싶은데, 이제 가야겠다.] 그 말은 그가 생전에 로우와 만나 헤어질 때마다 말하는 대사였다. 정말로 미안하다는 듯이 로우에게 사과하는 그의 말을 로우는 상관없다고 대답했다. 그 대답은 다음에도 만날 수 있다는 위로였으며 다시 만나자는 미래에 대한 약속의 말이기도 했다. 그래서 로우는 그가 어디로 가는지 굳이 묻지 않았다. 어디에 있든지 다시 만나면 되니까. 그러나 지금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디를 간다는 거냐.”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그래도 가야 해.] “내가 여기서 너를 막아낸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으음, 혼나지 않을까? 난 로우가 누구한테 혼나는 게 싫으니까 가봐야 돼.] “가지 말라고 말하면, 가지 않을 거냐.” 로우는 스스로 생각해도 답지 않은 말을 꺼내게 되었다. 억지와도 같은 만류에 남자는 잠시 놀랐다가 이내 아무 말 안하고 그저 슬프게 웃어보였다. 그것이 남자의 대답이었다. 로우는 남자의 미소를 보자 가슴이 저려오는 것과 같은 통증을 느꼈다. 남자를 곤란하게 만들고 만 것이다. 그러나 미안함도 잠시, 로우는 방법만 있다면 무슨 수를 써도 막아내고 싶었다. 그런 로우의 생각을 읽은 것인지 남자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조용히 로우를 달래주는 남자의 모습은 어른스러워서 자연스레 기대고 싶어진다. 로우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가고 이제는 정말로 때가 된 것이다. 단 하루뿐인,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었던 기이한 날이 끝을 고하려고 한다. 남자는 어느새 로우의 바로 앞에 섰다. 로우도 고개를 돌려 남자를 마주보았다. 앉아있는 로우와 서 있는 남자의 모습은 이제는 영원히 헤어지는 연인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었다. 남자는 로우를 내려다보았다. 소중히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너무 고맙고 미안해서 로우는 주먹을 꼭 쥐어 감정이 쏟아지는 것을 간신히 참아내었다. [사실 로우를 만나서 제일 먼저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이래저래 미뤄져서. 내가 죽기 전에 로우에게 이 말을 제대로 못해줘서, 그래서 미안해서 찾아온 거라고 할 수 있겠네. 들어줄래, 로우?] 남자의 부탁에 로우는 조용히 끄덕였다. 원망이든 분노든, 미움이든 후회든 뭐든지 들어줄 각오가 되어 있었다. 너의 말이라면 어떤 것이든 가슴 속 깊이 쌓아두고 있으니까. 잠시 머뭇거리던 남자는 천천히, 한 글자씩 소중히 말하며 로우에게 전해주었다. 아무리 말해도 부족했던, 몇 번을 말해도 기쁘고 행복했던 그 말. [사랑해, 로우.] 양 볼을 발갛게 물들이며 말하는 남자의 말에 결국 참았던 로우의 감정이 툭 하고 떨어졌다. 투명한 그의 눈물에 남자는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닦아주려고 손을 뻗었지만 그의 몸은 더 이상 로우에게 닿지 못했다. 살짝 숙여진 로우의 고개를 여전히 구슬과 같은 눈물들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자신은 끝내 전해주지 못했던 그 말을, 살면서 수 없이 말한 그 말을 이 남자는 죽어서도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다시금 자신에게 전해주었다. 그만큼 남자의 로우에 대한 사랑은 너무나도 크고 표현하기 힘들어 말로 조금씩 전해 줘야할 정도였다. 그러나 로우는 이미 충분히 남자의 사랑을 받았다. 자신은 앞으로 평생 이렇게 넘치도록 많은 사랑의 말을 더 이상 듣지 못할 것이다. 로우는 고개를 들어 에이스를 보았다. 이제 희미해져가는 그의 모습에 다급한 마음이 들었다. 수많은 말들이 떠올랐다 사라졌으며 많은 것을 전해주고 싶었지만 로우가 해야 할 말은 하나였으며 그 말에 자신의 모든 감정이 담았기에 로우도 에이스와 마찬가지로 확실하게 전했다. 에이스. 사랑하는 에이스. 나도 너에게 전해줄 말이 있어. 정말로 전해주고 싶고, 전해줘야 했으며 몇 번을 말해도 너보다 더 부족한 말이다. “나도 사랑한다, 에이스. 늦게 말해서 미안해.” 비로소, 뒤늦게나마 닿아진 로우의 첫 고백에 에이스는 동그랗게 눈을 뜨다가 이윽고 쑥스럽게, 정말로 기쁜 얼굴로 로우에게 몸을 숙여 그의 귓가에 위로하듯이 작게 속삭였다. [괜찮아.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그 말을 마지막으로 에이스는 회색빛 연기를 남기며 사라지게 되었다.